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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출 32:25-29 (숨어있는 거룩)우리교회출애굽기

숨어있는 거룩 2006년 12월 25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32:25-29 32: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32:26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 32: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32: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명 가량이 죽인바 된지라 32: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하나님의 뜻에 위배했다고해서 식구나 친구까지 사정없이 도륙한 대목이 오늘 본문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죄는 우상숭배입니다. 즉 왜 가짜 신을 참된 신이라고 우기느냐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가짜 신을 계속해서 만들어냅니다. 모세의 친척이요 전부터 친구라고 할지라도 분명 이 이스라엘 나라는 결코 ‘모세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아론의 나라’도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따라서 이 나라에서서 가짜 신을 그냥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들의 우상 만들기는, 자연세계 안에서 특정 부분을 따로 떼내어 그것을 거룩이라고 간주하서는 그 거룩을 근거로 거룩한 하늘 나라까지 점령하고자 나서게 됩니다. 즉 과거에 특이한 사건이 일어났다든지, 아니면 기적이 일어난 적이 있는 공간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게 됩니다.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안식일 제도, 즉 다른 6일 간과는 차이가 나는 특별한 한 날에다 유독 ‘거룩’이라는 내용을 갖다 붙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시했다는 겁니다. 뿐만아니라 십일조라고 해서, 생산물의 제일 좋은 10%는 거룩한 하나님의 것이고, 나머지 90%는 전혀 거룩하지 않는 인간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성막이나 성전을 지워놓고서는 그 공간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거룩한 지역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이처럼 곳곳에 거룩한 것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서 제정되어 생겨나게 되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거룩한 사태를 딛고서 거룩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홉니와 비느하스의 경우, 하나님의 언약궤만 앞장 세우면 반드시 적들에게 승리할 줄로 알았기만 그들은 언약궤 옆에서 패전의 수치를 뒤집어쓰고서 전사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이 자동적으로 인간들을 거룩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들을 통해서 거룩을 얻고자 하는 자들을 무서운 거룩한 율법조항이 그 사람들을 죽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이란 새삼스럽게 거룩한 물체를 제조해서 소유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거룩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즉 거룩이란 ‘숨어있는’ 겁니다. 흔히들 자연 세계의 일부를 떼와서 그것으로 거룩을 창안하고자 하지만 하나님의 거룩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 자연세계를 배후에서 공격하는 식으로 전개됩니다. 그 거룩의 위력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 이름 앞에서는, 인간이 자기 이름으로, 자기 행함으로 만든 모든 것은 뒤로 던져버립니다. 쓸데없고 필요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섞일 수 있는 내용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없는데서 있게 하시는‘ 분이요, ’죽은데서 살려내시는 분‘입니다. 시편 8:1-2에 보면,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즉 남들보기에 어린 아이들이 무슨 전장에 나가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게나 싶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함께 하면 그 어린 아들을 가지고서도 하나님의 승리케 하시는 겁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소년 다윗의 경우입니다. 소년 다윗은 덩치가 자신의 수 배나 되는 골리앗 앞에서도 하나님께서 숨어있는 거룩을 어떻게 발동시키느냐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민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알았습니다. 즉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반드시 할례 받은 이스라엘에게 패배하는 식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믿고 나선 겁니다. 이런 예 뿐만아니라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에 갈렙과 여호수아는 분명히 장대같은 아낙 자손들이 득실거리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하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 약속의 땅은 분명히 하나님의 자기 숙제에 해당되는 땅이기에 분명히 점령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12:2의 숫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약속의 땅을 포기하고 맙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하시는 것이 참 하나님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앞장 세웁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자신이 납득이 되는 잠재능력을 하나님께서 부여해주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우상숭배자가 됩니다. 신약에 와서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특정 문구나 특정 행위를 되풀이하게 되면 신기한 능력이 나올 것으로 여기는 것은 ‘주의 이름’의 능력을 완벽하게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인간의 이름을 꺽고 등장합니다. 어린 아이의 통해서는 ‘주의 이름’이 일을 하신다는 것은 어린 아이에게 무슨 특별한 재주를 덧입혀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 어린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결코 우리 어린 아이들의 능력으로 우리가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라는 솔직한 고백이 터져나오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헤맬 때, 하나님은 인간들로 하여금 당황스러운 여건들을 유발하시면서 인도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다면서 가보면 물이 메말라 있고, 설사 물이 있더라도 써서 못먹는 물이고 또한 양식이 구할 길이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악조건 안에서 쏘옥 ‘하나님의 거룩’이 올라오도록 하십니다. 인간들이 자기 이름과 행함과 능력으로 가능한 모든 것을 절단시켜 버리는 능력으로 거룩은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그 절단이 오늘 본문에도 나옵니다. 모세는 이 백성들에 대하여 자기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애쓰고 있지를 않습니다. 참 하나님을 거부한다면 친척이 되었든지, 친구가 되었든지 하나님 보시기에 결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만 의지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가 한결같이 주의 이름만으로 구원되었음을 모일 때마다 확인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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