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답변부탁드립니다.
철학이란 모든 학문을 토대와 방향을 잡는 학문입니다.특히 서양철학은, 하나님을 믿고 아는 신앙인이실생활에서어떻게하면 좀 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을 탐구한 업적들입니다.이것은 성경과 현실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입니다.일종의 신앙의 선배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후발주자로 기독교를 접하게 된 한국인은 이런 선배들의 활동상황과 내용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자기 딴에 제대로된 신앙을 갖추고 실생활에 적용하고 실천에 옮긴다고 주장하지만 무수한 시행착오와오류와 허위와 위선으로뒤집어 쓸 가능성이 항상 있습니다.그리고 사람이란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자신을 반성하고 반성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자꾸만 자기 행동에 대해서 변명, 변명으로 일관하기 십상입니다.그런데 여기에 동원되는 것이 얄팍한 교회 상술(교회 부흥, 선교 방법, 교회 내에서의 자기 역할)에 관한 책들이어서는 아니됩니다. 그리고 더나아가서처세술(내가 어떻게하면 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기 위해 가정이나 일반 기업체나 공직 사회에서어떤 태도와 에티켓으로 대인관계에 나서고 자신의 인격을 도야하고 무장하면 되는가에 관한 책) 같은 책은사람을 교만으로 파멸시키는책입니다. 바로 신자든 불신자든, 자신의 뿌리와 근본에 어떤 한계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가를 파악하는 공부를 죽을 때까지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자기 반성이지요. 예를 들면, '내가 주의 종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한 책이 아니라'과연 아직도 내가 종인가?'를 자신에게 묻게 하는 책 같은 겁니다.이점에 대해서 성경해석학, 즉 서양 철학은 큰 도움을 줍니다.불신자의 철학공부는, 계속해서 한계와 허무로 미끌어져갑니다. 거기에 비해서 신자의 공부는 , 왜 예수님의 공로만이 구원이 되는가를 뚜렷하게 합니다. 이제 정리해서 말씀드리면,서양 철학은, 이 땅에 앞서 태어나서 (예를 들면, 파스칼 같은 사람) 성경을 인간은 어떻게볼 것이며 어떻게 삶에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저술해 놓고 있고 (예를 들면, 파스칼의 '팡세'나 헤겔의 철학), 그 선배들의 고통과 몸부림을 후배들인 우리들이 들여다 공부하면서자신의 교만이나 잘못된 적용이나 실천 같은 같은 면을 발견하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겁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1:28에 나오는 말씀, "생육하고 번성히라 땅의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라는 말씀이 과연 청교도들의 아메리카 정복이라든지, 유럽 국가의 라틴 아메리카는 아프리카 정복을 정당화하는지 아니면 한국 교회의 중국 선교 방식을 합법화 할 수 있는지 아니면 북한 쌀 보내기 운동이 과연 이 말씀에 저촉되는지 아니되는지를 반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후서 3:8,10에 나오는 말씀, "누가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말고 오직 수고하야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이니,... 누구든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라는 이 말씀을 교회적으로, 곧 국가적으로( 중세, 근대 서양 국가는 그 자체가교회였으니까) 어떻게 적용할 것이며, 국가적인 복지 정책과 구제 정책과 오늘날의 시민사회 운동이이 말씀의 현실 적용인지 아닌지를 파악해 봐야 하는 겁니다.그리고 칸트의 도덕률이라는 것은, 천국이란 절대선을 이 땅에서 신앙인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글입니다. 잠언에 나오는 말씀과 사도 바울의 소위 명령법이라고 일컬어지는 각종 권면들이 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절대선으로 펼쳐지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가, 그리고 예수님의 산상설교과 야고보서에 나오는신앙인이 삶을 어떤 마음자세를 갖추어야성취할 수 있는가에 대한 탐구입니다.쉽게 말해서, 계속 공부하지 않고서는 계속적인 자기 회개나 자기 반성이 안되는 법입니다.그저 자기 교만과 자기 행동의 정당성만 주장할 뿐입니다. 그러나 철학을 공부하거나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전혀 구원문제와 상관없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공부와 성실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성령의 오심으로만 가능합니다. 마치사도행전에 나오는 이방인에게 성령 세례가 내리는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