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 2003년 1월 12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5:43-48 5:43 또
Re..마 5:43-48 (하나님의 아들)
이름 : 이근호(IP:)
하나님의 아들
2003년 1월 12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5:43-48
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5: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사람이 누구하고 사귈 때는 그 사람에게 뭔가 얻을 것이 있다고 예상하기 때문에 다가갑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사람들은 누구든지 상대를 자기 이익의 이용물로 일단 여기고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만약에 더 이상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나오지 않고 짐작되면 가차없이 관계를 중단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체는 예수님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하게 됩니다. 예수님에게서 뭔가 얻을 것이 있고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여길 때만 기도를 하든지 교회 일에 애교를 부린다든지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한 번 읽어보세요. 과연 우리가 쉽게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예수님에게 이용할 부분이 있는가 말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씀이 과연 우리네 일반적 사업이나 교회 사업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원수를 사랑하면 교회를 키워주겠다는 그 어떤 보장이라도 해 주십니까? 오늘 본문에 그런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마음으로 아직도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는 겁니까? 다른 꿍꿍이 속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엉뚱한 예수로 상상해 놓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충성을 다하면 거기에 대해 댓가를 충분히 보상해 주는 예수님으로 말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차라리 신앙을 사칭하는 자들입니다. 이처럼 가짜 신앙인들은 항상 반대 급부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댓가없는 일은 아예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런 성질은 비록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 성질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에게는 묵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름대로 계획이 있습니다. 은혜로만 구성되는 스케줄이 있습니다. 이 은혜성이 빠져 있다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정면으로 충돌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은혜로만 채워져 있기를 원하십니다.
악마가 하나님께 반항한 것이 이런 하나님 위주의 은혜성에 도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혜에 대드는 품성은 대대로 인간들에게 물러주었습니다. 오늘 본문 45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여기에 보면, 해와 비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해와 비를 보면서도 그것이 은혜에서 나오는 것인줄 모르고 있습니다. 태양과 비는 그저 그대로 있는 것인줄로 압니다. 그 자체로서 기쁨으로 받아드릴 줄을 모릅니다.
그렇다면 태양과 비는 왜 있는 걸까요? 시편 136:7-9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즉 해와 달과 별들은 그 지은신 이, 즉 하나님의 인자하신 드러내기 위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유독 인간들 만큼은 이런 하나님의 크신 프로젝트에 거부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 노력의 댓가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노동의 댓가를 사모하는 것은 스스로 부끄러운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속성은 창세기 3장에서 일어난 일로 야기된 것입니다. 아담 내외가 죄를 짓고 난 뒤에 그들은 무화과 나무 밑으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찾자 그들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하나님 앞에 나옵니다.
이것이 나름대로의 수치심에 대한 극복 방식입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부끄러운 점을 가리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관되게 은혜로만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담 부부에게 무화과 나뭇잎 대신 가죽옷을 입혔습니다.
그 때부터 아담은 하나님의 은혜로 둘러쳐진 세계 속에 놓여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은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할례를 통해서 나타났고 신약 시대에는 세례를 통해서 보여집니다.
요한계시록 3:20에 봐도,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놓인 자에게는 더 이상 수치가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관된 은혜가 담겨 있는 말씀을 가지고 마치 자신의 행함으로 달성할 수 있는 말씀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씀 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는 소리를 듣는 보상을 기대했습니다.
이런 식의 생활에 대해서 예수님도 인정하시다피 그 당시에 바리새인보다 더 열심인 사람들이 또 없었습니다. "너희들이 바리새인보다 더 의가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바리새인이나 유대인들을 보고 그들의 능력으로도 전혀 도달할 수 없는 더 큰 의가 있음을 소개하십니다.
그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즉 그 당시 유대인들은 제기 딴에 하나님의 법에 충실한다고,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을 원수같이 분류해서 그들에게는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행위를,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온전하심 같이 그들은 온전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고 선언해 버리십니다. 자식이란 그 아버지의 그 자식이 되어야 합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닮아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온전하신다면 하나님의 아들도 필히 온전해야 합니다. 만약 온전치 못한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없는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전할 때에 사람들은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충성께나 하면 하늘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처할 것 같지만 실제로 계시는 예수님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 생각일 뿐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즉 성경 말씀 중에 자신이 지킬만한 것만을 지키고 나머지는 나중으로 미루는 식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함'에 충족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그 어떤 말씀에 대해서 우리 인간은 온전함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결코 음란성을 영원히 제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말씀에 맞아 죽어 마땅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은 평생에 두고서 싸워서 우리 뇌리에서 지워지지 아니합니다.
그러면 어떻게해야 합니까? 그것은 말씀이 주는 정죄성을 그냥 맞아야 합니다. 마치 타이슨이라는 권투 선수의 핵주먹에 맞아 상대방이 K.O 되는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 말씀이라는 핵주먹에 맞아 K.O 되어야 합니다. 바로 우리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죽음이 바로 은혜가 주어지는 바탕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으로부터 정죄를 받아 자신이 죽어야 됨을 알 때 비로소 '자유'를 갖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경우에는, 이 의로움을 방해하는 죄악된 수치심에 의해서 계속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수치심을 이겨내기 위해서 완벽한 행동에 나서게 됩니다. 이것은 일종의 댓가를 원하는 행위가 됩니다. 이런 모습은 전혀 은혜와는 거리가 멉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 지상에서 사랑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죄로부터 자유가 필수적입니다.
죄로부터 자유는 먼저 죄로 인해 자신이 이미 죽은 자로 간주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대할 때 다음과 같은 고백만 터질 뿐입니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입니다. 이 불쌍히 여겨 달라는 이 마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찾고자 했던 완벽한 은혜의 증거물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해와 비를 은혜라는 차원에서 작용하시듯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아들도 오직 은혜만을 발산하면서 세상에서 살게 됩니다. 이미 말씀에 의하면 자신이 죄인이기에 새삼스럽게 무슨 댓가성을 기대하면서 행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봉사하는 마음이 계속 터져 나올 것입니다. 낮의 해처럼, 밤의 별처럼, 하나님의 자녀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특별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겁니다. 더 이상 돈이 없고, 세력에서 밀려 남의 뒷자리에 쫓겨난 채 살아간다 할지라도 패배라는 수치심에 더 이상 시달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차피 그런 대우를 받아도 싼 죄인이기에 그저 하나님께 받은 은혜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나갔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