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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마 25: 1-13 (등불처녀 비유)우리교회마태복음

Re..마 25: 1-13 (등불처녀 비유)

이름 : 이근호(IP:)

등불 처녀 비유
2005년 7월 24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5:1-13

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5: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25: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25: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25: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25: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25: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25: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하거늘
25: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마 25: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닫힌지라
마 25: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마 25: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마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늘 우리 인간의 예상을 빗나가게 하십니다. 천국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어떤 이유에서 천국을 구상하고 기대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자기 자신을 불사(不死)의 존재로, 즉 불멸의 존재로 전환시키고 싶어합니다.

자기 자신이 신이니 그 신에 합당하도록 자신을 신처럼 불멸하는 존재로 탄생시키겠다는 것이 인간들의 종교적 욕망입니다. 자기 인생은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겁니다. 종교라는 것이 이로서 인간 세계에 번창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도 이 종교적 배경을 두고 전파됩니다. 인간들의 이러한 종교적 욕망대로 천국이 이루어진다면 그 천국은 '너의 나라'요 '나의 나라'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천국은 '인간이 주인인 나라'가 아니라 '예수님의 나라'입니다. 이 말은 곧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결코 들어올 수 없는 나라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미 태어나면서 '자기 사랑'에 푹 젖어있습니다. 자기 밖에 모릅니다. 하나님이든 누가 되었던 그 앞에서도 자기 사랑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 자들이 바로 인간입니다.

여기서부터 예수님은 자신의 천국 작업이 개시됩니다. 즉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서 오시는가 하면, '천국만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를 벌하려' 오시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절대 신으로 만들기 위해 끝까지 자기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자를 벌하려고 주님께서는 지금 이 세상 안에서 이미 천국 작업을 실시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보통 우리들이 생각하기를 천국이란 우리 머리 위에 완성된 형태로 존재해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 목숨이 끊어지는 날, 그 위에 있는 세계로 훌쩍 뛰어올라가면 그만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천국을 소개하면서, 드넓은 푸른 잔디밭에서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그런 정경을 가지고 설명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에서는 신랑과 신부 10사람을 가지고 설명하시고자 합니다. 게다가 그 처녀들이 다 주님의 신부가 아니다는 말입니다. 이 10명의 사람들을 분류시키는 그 작업을 통해서 비로소 천국은 빼곡히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천국을 알고 싶으냐? 그렇다면 10명의 처녀들이 어떻게 참된 신부로 분류되고 혹은 반대로 퇴출 당하는지를 보고 그러한 작업 자체에서 천국을 알아라"라는 취지로 천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선입견을 정면으로 받아버리겠다는 주님의 단호한 의지를 표명하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참 신부가 되는 조건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내미신 조건은 이것입니다. 내가 올 때 등에 기름을 준비해서 등불을 켜고 신랑을 기다리라는 조건입니다. 이 조건은 얼마든지 인간의 능력을 가능할 것 같아 보이지요.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미 자기 나름대로의 신랑 고대하는 방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신랑을 사랑하고픈 생각은 없고 단지 신랑이 올 때, 신랑이 제시하는 조건만 부합하면 자신은 구원받는다고 여기는 사람은 온종일 등불만 켜고 살지는 않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신랑의 등장'이나 '혼인 잔치'는 자신의 일상의 일 중에 일부에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자신은 그러한 신랑 맞을 준비 말고 또 다른 해야될 일들이 또 있기 마련입니다.

결코 신랑을 무시한다든지, 죽어서 지옥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신랑과 만나는 일이 자기 생의 전부일 수는 없다는 생각을 어리석은 처녀들은 자연스럽게 가졌던 것입니다. 이 어리석은 쳐녀들의 생각을 검토해보면 이 세상 관점에서는 도리어 전형적인 지혜로운 생각에 해당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으로 인해 자신이 전부가 잠식당하지 않고 여전히 자아의 절대성은 유지하고 있는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비해서 예수님으로부터 소위 '지혜로운 다섯 처녀'로 분류된 자들이 세상 관점에서보면 참으로 어리석어 보입니다. 이 처녀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자기 인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부여된 시간 전부가 '신랑과의 만남'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아직 신랑이 오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신랑이 막 방금 도착한 것처럼 자기 인생을 다 투자해서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한심스럽고 모자라는 지혜로 보이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반대로 말씀하십니다. 즉 '얼마나 나를 사랑했으면 자기 생을 따로 갖지 않겠느냐!"라는 겁니다. 이것이 참된 '슬기'요 '지혜'라는 겁니다.

유대인들의 혼인은 밤에 하는 혼인식이 절정입니다. 깜깜한 천지를 배경으로해서 신부는 등불을 켜고 자신이 꼭 쥐고 있음으로해서 신랑으로 하여금 발견되기를 고대합니다. 즉 "저 여기 있어요. 주님!"라고는 식으로 말입니다. 등불은 신부 본인의 좌표를 나타냅니다. 지옥처럼 깜깜한 이 세상에서 한 구석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신랑은 더디옵니다. 더디온다는 조건은 인간에게 요구한 조건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더디오신다는 조건은 순전히 신랑쪽의 일방적인 방식입니다. 왜 그렇게 더디오실까요? 그것은 누가 진짜 신랑을 사랑하는지 확인될 때까지 고대하기 위해서 더디오시는 겁니다. 주님의 뜻은 이렇습니다. "아무리 숫자가 적은 한이 있더라도 천국을 올 수 없는 자는 기어이 천국에 넣어주지 않겠다"는 겁니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음을 확인되는 순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주님께서 들이닥치시고 혼인식을 마무리 지어버리십니다.

구원은 오직 영생주기로 작정한 자에게만 제공되어 되어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인해 구원을 얻게 된 자들은 자신의 구원을 순전히 요행이요 횡재한 것으로 여기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노고로 구원되지 않았음을 영원토록 명심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22에 보면,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직 택하신 자만 남기겠다는 작전, 이 작전이 천국을 오직 자신의 나라로 만드시는 방식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구원은 오직 주님의 공로와 작업으로만 가능함을 알고 영원토록 주님께 감사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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