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마 24:43-51 (도적과 악한 종)
Re..마 24:43-51 (도적과 악한 종)
이름 : 이근호(IP:)
도적과 악한 종
2005년 7월 17일본문 말씀: 마태복음 24:43-51
24: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24: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24: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24: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24: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24:49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24:50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24:51 엄히 때리고 외식 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오늘도 성경 말씀은 어김없이 사람을 두 부류로 쪼개는 계십니다. 악한 종과 그렇지 않는 종으로 말입니다. 이러한 성경 말씀의 경향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 세상 사고방식은 아닙니다. 이 세상 사고방식은, 결국 인간이란 한 통속이며 같은 운명으로 끝난다는 생각이 대세를 이룹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라짐과 소멸됨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비록 자신들의 세대가 사라져도 또 후 세대가 이 세상을 가득 채우며 살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달리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것은 인류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 뿐이라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이 담겨 있지 아니한 모든 것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인생이란 새벽녂에 잠시 풀잎에 맺혀있는 이슬에 불과합니다. 새벽녂에는 이슬이 많이 맺혀 있는 듯 하지만 오후가 되면 그 많은 이슬이 다 사리지고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며 원리이며 법칙입니다. 진리는 사람들이 데모한다고해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자연의 이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진리가 원래 인간들의 요구에도 달라지지 않는 겁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진리하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진리에게는 양보하는 것이 없습니다. 타협도 없습니다. 그저 진리가 진리답게 일 처리가 될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내뱉은 말씀입니다. 따라서 진리 그 자체입니다. 변동사항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말씀대로 세상은 끝장납니다. 가라지와 알곡으로 분류되면서 끝이 나옵니다. 물론 최후의 심판 때에 확연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늘 진리되시는 말씀으로 인해 세상은 스케너, 즉 되풀이해서 조명되게 되어있습니다. 지금도 말씀에 준해서 분류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는 말씀입니다.
쌀을 씻을 때, 처음에는 뿌옇게 보이는 것이 여러 번 씻어내면 그제사 돌멩이와 쌀과 찌끼 같은 것이 뚜렷하게 밝히집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오늘날도 말씀으로 세상은 되풀이해서 씻어지고 있습니다. 썰물이 한 번 지나가면 그 바닥에 그동안 안 보인 보석이 새삼 보이게 되듯이 말씀으로 지속적으로 밀려왔다가 밀려가면 그 나머지에는 누가 천국 백성인지 누가 지옥 백성인지 뚜렷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악한 종일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48절부터 보면, '악한 종'이라는 말이 나오고, '동무들을 때리고',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자, 우리가 과연 타인을 평가하면서 이런 조항을 적용시킬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만약 갖고 계신다면 천국 백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이런 조항들을 모든 자에게 적용시킬 마음이 없다면 악한 종입니다.
쉽게 말해서, 어떤 악한 종이 교회도 안 다니고, 예수님도 안 믿고, 술친구와 함께 마음껏 인생을 즐긴다고해서 자신을 결코 '악한 종'이라고 간주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기독교신자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절에 가거나 아예 종교가 없거나 그런 입장에 놓인 자에게 이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입장을 참된 진리라고 강요할 처지가 아닌 것입니다.
즉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이 절대적 기준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아예 교회도 안 다니고 예수도 안 믿는 본인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말씀이라고 그들은 주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은 그들 자신에게 결코 '악한 종'이 아닌 것입니다. 그저 자유롭게 자율적으로 자기 인생을 꾸려나가는 평범하고 순한 시민의 한 사람일 뿐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말씀대로,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을 가지고 '악한 종'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은 이미 참된 주님의 종입니다. 왜냐하면 그 기준을 가지고 자기 자신도 포함해서 조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때를 고대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는 그들이 바로 참된 주님의 종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몰래 오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 가짜 하나님의 자녀로 차고 넘치기 때문입니다. 즉 주님의 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벌려놓은 일을 사랑하는 가짜 주의 종들을 제대로 가려내기 위해 몰래 오십니다. 도적같이 오십니다. 즉 전부터 친분 관계가 형성된 그런 쉬운 분으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따로 자기 일이 있는 한 결코 주님의 일을 최종적으로 간주하는 법은 없습니다. 자신이 하는 그 일이 최종적인 것으로 삼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살아있는 그것으로 자신을 최종 승리자로 간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있는 것을 무슨 큰 자랑인양 여깁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51절에 보면, " 엄히 때리고 외식 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살아있기는 하지만 저주스러움을 살아있습니다. 후회함으로 살아있습니다. '일단 살고보자'하는 의식으로 인해 주님의 일이 우선이 아니라 자신이 벌려놓은 일이 우선되기 마련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가짜입니다. 주님이 안보일 때는 열심히 자기 일에 몰두하다가 주인님이 가까이 왔다가 한다면 얼른 주님의 일로 바꾸겠다는 자들입니다. 이런 부정직한 태도에 주님께서 속아넘어가지 않을 요량입니다. 그래서 도적같이 오십니다. 친근한 양상이 아니라 의외로 낯선 양상으로 들이닥친다는 겁니다.
그러나 참된 종은 예수님이 어떤 식으로 다시 오신다고해서 전혀 겁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자신이 하는 일이 곧 주님의 일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과 주님의 생각이 일치됩니다. 현재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본인이 차라리 타인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 성공이니 실패니 하는 것도 본인이 결정 내릴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됩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조바심을 내는 이유는, 남에게 이기고자 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지기 싫다는 겁니다. 이런 태도는 여전히 주님보다 자기가 우선적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우리 코 앞에 펼쳐진 이 성경책 속에 있습니다. 이 말씀이 지금 우리 가슴과 두뇌에 들어있어 계속해서 우리 전신을 스케너 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인생을 늘 말씀으로 인해 검토받기를 원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