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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행 22"22-29(세상사람들의 두려움)우리교회사도행전

Re..행 22:22-29(세상사람들의 두려움)

이름 : 이근호(IP:)

세상 사람들의 두려움
2005년 7월 13일본문 말씀: 사도행전 22:22-29

22:22 이 말 하는 것까지 저희가 듣다가 소리질러 가로되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22:23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22: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한대
22:25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22:26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가로되 어찌하려 하느뇨 이는 로마 사람이라 하니
22: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22:28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
22:29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

영적인 일이라는 것은 교회 안에서 사람들의 토론 안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밖에서도 여전히 작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예배나 찬송 같은 것을 영적인 일이라고 간주하고 세상의 일상적인 일을 통해서 일어나는 영적인 일에 대해 판단이 명백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일어나는 일은 결코 예배당이란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세속적인 행정당국이 관여하고 사도 바울은 그 사람들에 의해서 강압적으로 체포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일이 영적인 일이 될 수 있습니까?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 중에 소경이 눈이 뜨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일을 가지고 놀라운 기적이라고 치하합니다. 그렇다면 멀쩡한 눈이 소경되어 버린 것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일이 아니란 말입니까? 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영적인 일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에 대한 사람들의 평소의 선입견이 공정치 못합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일만 기적으로 간주하고 불리한 것은 저주인 것처럼 폄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3에서 말씀하시기를, "환란 중에 즐거워하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정말 환란 중에 즐거워할 수 있다면 참으로 영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비록 환란 가운데 있지만 영적인 일 속에 놓여 있습니다.

거기에 비해서 사도 바울을 체포한 사람들은 '환란 중에 즐거워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의 말에 '두려워하고'입니다. 즉 그들이 휘두르고 있는 권세와 권력은 어디까지나 언제든지 '두려움'을 불러모으게 되는 그런 속성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이들을 비교해 봅시다.

예수님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존재의 집은 하나님 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 분은 참으로 홀가분하게 사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머리 둘 곳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숱하게 사람들에게 사랑과 혜택을 베풀었지만 결국에는 혼자였습니다. 그것은 평소에도 늘 혼자였다는 말입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실 때에, 예수님을 최후의 안식처로 삼았던 사람들은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면서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물 위를 걸었고, 자기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했던 베드로마저 예수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지켜 본 사람은, 이래나 저래나 별 볼 일없었던 아줌마 몇 명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자신의 일이 실패했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늘 예수님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거지 나사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을 때까지 거지였고 환자였지만 결국 그는 아브라함 품에 안겼습니다. 그것은 곧 평소에도 아브라함의 품에 있었던 사실이 궁극적으로 공개된 것 뿐입니다.

이처럼 모든 성도는 결코 홀로 있게 내버리지 않겠다는 것은 예수님의 구원계획입니다. 요한복음 14:20에 보면,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그 날이란 성령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을 고아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즉 지금은 제자들이 고아같은 신세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성령님이 오시면 당연히 성도는 아버지 안에 있게 되고 성자 예수님 안에 있게 되고 또한 성도 안에 예수님이 계시는 겁니다. 성령님이 찾아온 자에게만 이것이 믿어지고 당연한 현실로 알아지게 됩니다. 이것은 환란이나 고난은 나에게 결코 찾아들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 어떤 환란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그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께서 기어이 자기 백성을 '환란 중의 기쁨' 하도록 하신다는 겁니다.

세상 일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없는 자라면 자신들이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삽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매여 사는 인간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환란과 곤고가 언제 들이닥칠지 겁이 나서 늘 안절부절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안정시켜 줄 든든한 힘을 필요로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을 겁주기 위해서 사람들은 온갖 술책을 다 씁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이 하는 짓들이 가소롭기만 합니다. 사도와 함께 계신 주님이 사도 바울을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그들이 최종 기대는 그 권세의 허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로마라는 나라는 구약 다니엘에 나오듯이 그 당시로서는 신판 바벨론 나라입니다. 최고와 최상과 최선이 모두 집결되는 곳이 로마입니다. 모든 길을 결국 로마로 모여들고 최종 판단 기준도 로마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로마가 표준입니다. 로마는 진리입니다. 로마는 모든 인간들의 이상나라요 현실화된 꿈입니다.

요한계시록 18:12-13에 보면,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인이 된다는 것은 요즈음 말로는 미국사람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각양 좋은 것에 가까지 접촉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로마가 있음으로서 그들은 삶의 희망과 포부가 발생됩니다. 로마인이 된다는 것이 로마 식민지에 있는 사람들의 인생 목표입니다. 따라서 이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 목표에 저해되는 일이 발생되는 것이 제일 큰 두려움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알기에 그들에게 일부로 시비걸어 보는 겁니다. 즉 로마인인 나에게 정식 재판없이 체포하느냐고 대듭니다. 이것은 마치 일제 시대때, 조선 말단 순사가 감히 현지 일본인을 체포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들의 권력의 세계에는 행정적 징계사유가 발생되는 일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갇혀 있는 자들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세상이 주는 안도감보다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홀가분하는 사는 것이 영적 사람의 특징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친히 주신 자유를 우리가 외면치 말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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