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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출 24:12-18 (하나님의 가르침)우리교회출애굽기

Re..출 24:12-18 (하나님의 가르침)

이름 : 이근호(IP:)

하나님의 가르침
2005년 7월 10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24:12-18

24: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너로 그들을 가르치려고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24:13 모세가 그 종자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24:14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찌니라 하고
24: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24: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 칠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24: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24: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일 사십야를 산에 있으니라

사람들은 성경을 대하면서 자기의 문제를 해결받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이 일하시는 중심사상에는 일차적으로 관심 밖이라는 말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는 반드시 그 핵심되는 중심점을 비켜 지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핵심되는 내용을 말씀하시지만 인간들은 하나님의 그런 중심되는 뜻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중심되는 관심사만 챙기기에 급급합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쪽으로 뭘 얻고자 하는 것은 전혀 하나님에게 관심없습니다. 하나님은 순전히 자신의 뜻만을 펼치실 뿐입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인간들의 자신의 뜻을 꺽고 하나님의 핵심되는 뜻을 거기에다 심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첫 번째 시내산 꼭대기로 올라오라 하셔서 모세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아직 하실 일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즉 백성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친히 기록하신 돌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모세에게 십계명과 각가지 규례들을 내려보내었고 모세는 빠짐없이 그것을 백성들에게 글로 남겨서 알려준 바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것으로서 충분하게 백성을 가르치지 못한다고 보시는 걸까요? 돌판이 있고 없고 가 어떤 점에서 가르치기에 차이가 나는 걸까요?

그것은 인간은 여전히 자기 자신의 내막을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이러한 의식은 전혀 하나님께서 율법이 내린 의미를 모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 구원은 순전히 '사랑'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율법은 그 사랑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품고 있는지를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음을 하나님에게 이미 아십니다.

이 점을 알려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내부에서 모세를 빼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모세가 있어 그들에게 율법을 전하면 그들에게는 그저 '잔소리'로만 들려질 뿐입니다. 즉 '모세 부재(不在)'의 상황이 일어났을 때, 진정 그들의 본색이 무엇인가를 모세가 함께 있을 때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시는 진단이었습니다.

이제는 잠시 동안 그 모세를 백성들 속에서 빼 내어가십니다. 이것이'모세 부재기간'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합류되고 백성들은 구름을 경계선으로 하여 거룩한 나라로부터 차단되어 있습니다. 40일 후에 모세가 다시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에 모세는 빈 손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양 팔에는 계명이 박힌 돌판이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 돌판의 운명이 어떤 식으로 끝장나는 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이 어떤 식으로 백성들을 다루시는가가 드러납니다. 돌판은 백성들의 태도 앞에서 여지없이 박살났습니다. 이로서 언약은 깨어져버렸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우리 내부의 심정을 정확하게 드러다보는 계기를 갖게 됩니다.

즉 인간들이 알고 있는 신(神)은 인간들이 임의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신입니다. 각자 인간들이 품고 있는 종교심과 양심과 거룩을 쳐다보는 심성들을 끄집어내어 그것을 종합, 정리하여 '대충 이 정도로 알고 있으면 실제 하시는 신도 섭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처럼 인간들의 선입견을 가지고 신을 제조해 내는 이유는, 그래야 그 신의 이름으로 모든 사람들이 하나로 단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사불란하게 조직체를 움직일 때, 사람들은 그 안에서 비로소 자기 존재의 안정성을 찾게 됩니다. 자기를 위한 하나님, 자기를 의한 하나님, 자기의 소유의 하나님을 인간들은 얼마든지 제조해냅니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자기 사랑'입니다. 참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된 사랑을 가르치기 위하여 돌판은 여지없이 깨어집니다. 그리고 모세로 하여금 지상에서 돌판을 다듬어 만들기를 지시하고 세 번째로 모세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께로 올라가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해서 새겨진 돌판은 직접 백성들에게 다가서지 못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이미 백성들은 그들의 비언약적 속성이 만천하에 다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연관성을 갖는 것은 모세가 새로운 받은 그 법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그 법에 보면, 그 돌판을 상자 안에 가두어집니다. 그 상자 곁으로 백성들은 일체 접근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위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전히 하나님으로 사랑과 자비를 받을 수 있는 관계에 놓인 것은, 그 돌판을 가두어놓은 그 뚜껑에 발린 속죄 제물의 피 때문입니다. 대속죄일날 정기적으로 그 언약궤 뚜껑에는 하나님의 거룩의 피가 발립니다.

백성의 죄를 하나님 스스로 해결해 나가시는 방식으로 그들을 구원의 세계로 데리고 들어가시는 겁니다. 그 뚜껑을 '증거궤'라고 합니다. 이와같은 은혜로의 인도하심은 마치 매번 은혜를 짓밝는 것을 용납하는 사랑하는 배우자와의 결혼 관계와 같습니다. 부부라는 것은 규칙을 철저하게 지킴으로서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이 제시하는 법을 아내가 다 지키고, 아내가 제시한 법을 남편이 남김없이 다 지켜내어야지만 부부가 비로소 성사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가 '남'을 일체시킬 수 없습니다. 상대방이 제시한 법을 다 준수해도 그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타인과 하나가 되는 경우는 '사랑 뿐입니다.

남편의 변치않는 사랑이 여전히 아내를 아내로 유지시켜줍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중심되는 뜻은 곧 '사랑'입니다. 그것도 집요하게 주시는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 앞에서 인간은 여지없이 자신의 관심사는 무색해져야 하고 희석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존재란 단지 하나님 만드신 '별'과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반짝이는 별말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렇듯 매일같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찢고, 또 찢어버립니다. 자신이 원하는 듯이라는 반항심을 갖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랑은 이런 인간들을 끝까지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이 아닌 자를 오직 사랑으로만 차별화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은 하나님의 주신 사랑으로만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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