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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마 24:37-42 (인자의 때)우리교회마태복음

Re..마 24:37-42 (인자의 때)

이름 : 이근호(IP:)

인자의 때
2005년 7월 10일 본문 말씀:마태복음 24:37-42

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24: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24:40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24:41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이 세상에 우리 자신들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이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팔공산에 등산한다고해서 팔공산이 갑자기 무너지고 변화를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 자신들은 예언된 자가 아니기 때문이요 그 예언을 성취시킬 자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예언을 듬뿍 담고 오신 분입니다. 뿐만아니라 예수님은 그 예언을 성취할 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하여 세상은 재편성되어야 합니다. 산과 바다는 흔들려야 합니다. 요동쳐야 합니다. 무너져 내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남기신 그 업적을 기리고 높이고 영광돌리는 것들로 인하여 세상은 새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거기에 비해서 인간들의 삶이란 자신의 자유와 포부로서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즉 '내가 하고 싶은 바'가 있고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자유'가 나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만을 중요시합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 나와있는대로 인간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갑니다. 하지만 이 항목 속에 결코 '홍수나고'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유황불이 내리고'도 없습니다.

왜 없습니까? 만약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면 그동안 나의 자유와 나의 포부가 다 깨어지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바로 인간들이 이런 마음을 지녔는줄을 알면서도 오늘 성경 말씀은 대범하게 세상의 멸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여러분은 기분 나쁘지 않습니까?

사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그 내부에 신에 대한 반발심과 적개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교회와서 복음을 듣기 전에는 자신 속에 신에 대한 반항심이 들어있다는 사실을,f 알지 못하게 됩니다. 되레 자신은 신에 대해서 늘 겸손하고 존중하고 신의 말씀에 고분고분하는 그런 타잎이라고 간주하기 일 수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교회에 와서 참된 복음, 즉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되게 기분이 나쁩니다. 생각해보세요.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이 뭐가 그리 큰 잘못된 일이란 말입니까? 아니, 그런 일도 못하게 막아버리면 우리가 무슨 낙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겁니까?

그러니까 진지하게 이런 성경 말씀에 대해서 대하든지 아니면 더 심하게 말해서, 이런 홍수나 최후의 종말과 멸망에 대해서 언급하는 그 성경 말씀 자체를 거짓말이라고 간주해 버림으로서 신에게 반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봅니다. 자신이 스스로 운명론을 지어낼 정도로 소설가들이고 작가들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써내려가는 그 시나리오에서 주인공인 자기 자신이 홍수나 불심판으로 더 이상 생존이 막히고 불가능해진다고 한다면 어떻게 그 줄거리를 즐겁게 맞아들이겠습니까! 반발하거나 아예 무시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홍수나 장차 올 불심판을 당연하고 지당한 하나님의 뜻으로 반기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자신이 결코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못됨을 도리어 다행스럽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니엘 7장에 나오는 그 '인자'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이 땅에서 할 일이 있어 나타나야 하는 분입니다. 그 일이란 다름이 아니라, 영원히 멸망되지 않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세상 나라를 뭉개는 작업에 나서시는 일입니다. 즉 영원한 나라가 따로 있기에 영원하지 않는 나라는 자연적으로 축출되어야 합니다.

인자란 바로 이런 예언의 완성자로서 이 세상에 출몰했습니다. 마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의 현장 사무소장과 같습니다. 왼 팔에는 한아름 설교 도면을 끌어안고는 그 설교도면에 나와 있는대로 새로운 아파트촌을 건립하고자 하십니다. 한 점 오류나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시공하십니다. 실수라는 것이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언한 대로만 움직이십니다.

천국 생명책에 나와있는 명단(리스트)에 해당되는 사람과 빈틈없이 골라서 천국으로 인도해내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두 사람이 매를 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다른 한 사람은 버려움을 당합니다' 결코 잡초 뽑는 매작업을 제대로 한 사람을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는 모내기라는 것은 없습니다. 천국은 오로지 인자 되시는 예수님이 하신 일에 찬동하는 사람만 필요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서 스스로 건전하다고 여기는 일에 종사하고자 합니다 즉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하고 착한 일에 매진하는 것이 구원받은 사람들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자되시는 분의 구원은 그런 행위에 영향받지 않습니다. 세상 살이를 똑바로 했다고해서 구원시켜주고 상대적으로 세상살이를 개판같이 했다고해서 지옥보내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은 오직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전형적인 '깨어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어린 사무엘의 경우, 그가 잠을 자고 있는 하나님께서 세 번씩이나 사무엘을 불러댑니다. 어린 사무엘이 자진해서 하나님을 불러달라고 요청할 입장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사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거룩된 영광을 보여주기고 이사야의 입을 제단 뿔로 지져서 그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세례요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예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까지 벙어리 만들어 세례 요한을 출생시켰습니다.

예수님을 임신한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리아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을 임신하고자 애쓴 적이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임신시켰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는 더욱더 황당합니다. 그 사람은 아예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이단으로 간주하고 그 이단을 박멸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에게 찾아와서 자신의 주되심을 알려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책의 명단을 들고와서 자기 백성을 알아서 골라내가십니다. 이러한 인자가 하시는 일에 대해서 마음에 적개심이 일어나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고 도리어 그 인자의 일에 찬동하고 감사하고 '잘 하신 일이라'고 여겨지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데려감을 당할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깨어있으라"라는 것이 이런 경우를 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자유롭고. 넉넉하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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