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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행 22"12-16 (선택의 하나님)우리교회사도행전

Re..행 22:12-16 (선택의 하나님)

이름 : 이근호(IP:)

선택의 하나님
2005년 7월 6일본문 말씀: 사도행전 22:12-16

22:12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22: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22:14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22: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오늘 본문은 아나니아와 사울이 만나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이 아나니아 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내용이 놀랍습니다. 즉 사울이 개인적으로 당한 경험을 하나님의 자신의 뜻 전달과 관련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친히 선택하지 아니하면 도저히 생겨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이 '선택' 받은 자의 등장으로 이제 사울은 단순히 개인적으로 구원된 사람에 머물러 있는 존재가 아니라 그로 인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 진리로서 퍼지게 되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답답해하는 것은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리만 안다면, 진리에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 진리에다 자기 목숨을 던져버려도 조금도 손해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울과 예수님과의 만남은, 진리라는 것이 어떤 형식으로 인간 세상에 떨어지느냐를 보여주는 시범 케이스가 됩니다. 그것은 바로 '선택'입니다.

사울의 선택되었다는 사실은 사울이 자기 선택을 위해 그 어떤 노력이 가미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울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걸까요? 그 근거는 에베소서 3:8-11에 보면,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사울 자신의 선택이 곧 '영원부터 감추인 비밀'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일이며 그 비밀의 순서상 절차에 따른 일이라는 겁니다. 즉 사울 본인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찾아오신다는 일은 철저하게 그동안 자기가 눈치채지 못한 일이라는 겁니다. 왜 사울 본인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찾아오신다는 사실을 사전에 짐작되지 못해야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일관된 일이 모두 인간에게 들키지 않는 비밀로서만 일하시기 때문이랍니다.

즉 '선택'이라는 말 속에는 오로지 비밀스러운 방식으로는 일하시는 하나님의 뜻의 온전함이 담겨있습니다. 비밀스럽지 않고 사전에 인간에게 들통난 그런 식의 하나님의 일은 없다는 말이고, 이는 곧 '선택'이라는 말 한마디로 다 담아낼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선택받은 당사자인 사울은 이런 관점을 가지고 모든 주 예수님의 말씀을 판독해 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 편지를 대하는 우리들이 참으로 구원된 자라면 사도 바울의 그 어느 말씀을 대하든지 최종적으로 '선택'이라는 덩어리가 걸려올라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지만 비밀스럽게만 일하시는 하나님의 취지가 그 '선택 의식'으로서 대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실제로 그러한가를 성경의 예를 통해서 알아봅시다. 우선 요한복음 3:27에 보면,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일이란, 지상에서 인간들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 낼 수가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이는 곧 하나님 쪽에서 일을 시작하지 아니하면 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겁니다. 물론 인간 쪽에서 절망이지요. 그런데 하나님 쪽에서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시작하셨다는 겁니다.

즉 '인간이 요구하는 것이 하나님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절망에 머물 수 없는 하나님의 성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물론 하나님 쪽에서 일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 주변에 어떤 분이 성도가 되었다면 반드시 이 세례 요한이 고백한 고백이 터져 나오는 것으로 하나님의 일의 일관성을 증거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요 즐거운 일입니다.

이 성경 구절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이 경우를 연결시켜 봅시다. 사울이라는 사람은 결코 예수님이 살아있다는 낌새를 챈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쪽에서 일이 시작한 일이 사울에게 덮쳐졌다는 것이 아나니아의 증언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도 바울은 본의 아니게 진리 자체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진리가 그를 포획했고 진리가 그를 점령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도 바울은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진리로 인하여 주어진 자유입니다. 저는 이것은 낙하산타고 허공을 내려오는 '활공'에 비유해보고 싶습니다. 나머지 그의 인생이 하나님쪽에서 실시한 하나님에 의해 압수당한 상태, 이것이 바로 세상으로부터 자유입니다. 그는 마음껏 살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자신이 이런 자유를 원한 것도 아닙니다.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님 쪽에서 선택하신 결과가 바로 '자유'로 나타난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죄씻음을 받으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6:14-16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11제자에게 40일 동안 부활 하신 기간 동안에 지시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이 예수님의 말씀에 지시에 따라 살게 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경우, 11제자들에 의해서 전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사울이라는 사람은 교회를 적극적으로 핍박하고 가해했던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가복음에서 제자들에게 지시한 대로의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즉 사울은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죄씻음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지시했다고 해서 제자들의 힘으로 성취될 말씀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세상 끝날까지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단순히 지켜보기만 하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제자에게 주신 그 '하나님 쪽에서의 일'을 주님께서 일관되게 진행시키겠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선택'의 양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선택으로 구원된 사람들은 그 생애 자체가 '자유' 덩어리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창세 전의 뜻이 듬뿍 담겨있는 인생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선택하신 은혜만을 감사하면서 평생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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