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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마 24:32-36 (아무도 모르는 일)우리교회마태복음

Re..마 24:32-36 (아무도 모르는 일)

이름 : 이근호(IP:)

아무도 모르는 일
2005년 7월 3일본문 말씀: 마태복음 24:32-36

24: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24: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성경을 보면 나오게 되어 있는 '천국'이라는 개념은 개인적으로 죽어 혼자 빠져나와 편하게 살게 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세상이 아닙니다. 천국이란 이 세상을 걷어치우고 교체해 버리기 위해서 장만된 세상입니다. 즉 하나님은 세상을 재편성하고자 하십니다. 천국과 지옥, 이 두 구획으로 나눌려고 하십니다.

이 세상은 천국이라는 나라의 무게로 인해 뭉개지고 허물어지고 소실되어 버려야 될 대상에 해당됩니다. 단순히 성도 개인을 편하게 해주고자 하여 허물어지는 세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 인한 죄가 하늘에 상달되었기에 마땅히 허물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불신의 죄로 인해 성도는 스스로 자책하며 살고 있습니다.

즉 "왜 나는 수시로 하나님의 약속을 안 믿고 사느냐?"에 대한 자기 미움 같은 것이 있어야 성도입니다. 성도는 늘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 죽도록 자신이 미워져야 합니다. 이렇게 미워져 있어야 더 살려는 생각이 싹 가시게 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은 우리보고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십니다.

참으로 믿는 순간이라면 이 말씀 자체가 고맙고 즐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생으로 통하는 길을 친히 통보해 주시는 이런 고마운 분이 또 있겠습니까! 그러나 불신이 싹트면, 이 좁은 길라고 하는 말씀에 화가 나게 됩니다. "나더러 어떻게 그 어려운 일을 하란 말이야"하면서.

좁은 길이란, 사람이 찾아나서는 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비로소 닦아 놓으셨기에 전에는 없었던 길이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길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을 안고 그 길로 가십니다. 그 가는 와중에는 성도에게 있어 모든 것이 생소하고 예상 밖의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당연히 불신이 싹터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도록 주님께서 친히 인도하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천국으로 교체시키는데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점은 우리가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육적인 사람으로는 새로 교체되어 발생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물론 육적인 사람들로 나름대로 세상을 보는 눈이 있습니다. 니체라는 철학자는 말하기를, 인간에게 가장 문제점은 '권태'를 느낀다'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권태란 곧 지루함입니다. 신선하지도 않고 새로울 것도 발견하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육적인 사람들의 눈에도 세상은 참으로 허무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신께서 세상을 교체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새하늘과 새땅을 갈구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세상이 허무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악하기에 마땅히 징벌 차원에서 멸망당해야 한다는 겁니다.

허무를 느끼는 것은 종교요, 세상의 악함을 알게 되는 것은 복음 앞에서입니다. 요한계시록 1:7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계 1:7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되면 그동안 세상이 예수님에게 악한 짓을 해서 그래서 마땅히 심판을 받게 됨이 드러난다는 겁니다. 이 세상은 악해서 망하는 것이지 허무하기에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세상의 악함에 대해서 바로 알려면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을 포기하고 예수님 중심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무화과 나무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무화과 나무가 '나 여기 있다'고 자기 주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여름이 가까워서 열매가 무르익을 때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아. 우리 곁에 무화과 나무라는 존재가 있었지. 이 나무가 열매가 맺는 것과 봐서 벌써 여름이네"라고 비로서 현실적인 사실로 파악하게 됩니다.

이 '여름'에다 예수님은 자기 중심적으로 전개되는 그 하나님의 '종말'로 대입시켜보라는 겁니다. 사람들은 평소에 무화과 나무의 존재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각자 자기에게 중차대한 사건들을 항상 의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들은 각종 사건이 터져도 자신의 이해관계에 걸려든 사건만 중요시하고 나머지 사건을 선별해서 묻혀버립니다. 우리에게 여름이 오는 것도 이와마찬가지요 종말이 오는 것도 이와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름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에게 들이닥치는 현실이지 사람들이 골라잡아 가려낼 대상의 사건은 아닙니다. 깊은 산골에서, 그저 순박하게만 살아가는 자들에게도 여름은 오고. 시갓집 간의 갈등을 겪고 있는 가정주부에게도 여름은 들이닥치고, 강원도 바닷가에서 명태 말리는 아주머니에게도 여름은 찾아옵니다. .

세상 물정 전혀 모르는채 밤무대에서 노래부르는 무명 가수에게는 여름은 어김없이 들이닥칩니다. 부엉이만 뜬 눈으로 보내는 깊은 휴전선 야밤의 제대 말년 보초병에게도 여름은 옵니다. 목회를 성공한 목사에게나 개척 교회 실패해서 의자와 십자가 장식과 강대상 팔려고 내놓은 가난한 목회자에게도 여름은 사정보지 않고 들이닥칩니다.

벌써 몇 시간째 신장 이식에 열중하고 있는 종합병원 의료진에게도 여름은 오고 서울 청계천 근처에서 중고 악기상 하는 상인에게도 여름은 들이닥치고, 한창 바이올린을 조율하고 있는 관현악단에게도 여름은 단호하게 들이닥치고. 미아리 다리 밑에서 점치는 무당들에게도 여름은 들이닥칩니다.

예수님만이 알고 있는 기준과 종말의 원칙을 지니고 예수님은 이 역사를 주도하고 계십니다. 관권은 예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는 것이 한 번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 심판이 있다는 것도 정해진 일이듯이 여름의 옴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길이 없습니다.

인간들은 자기 구원중심으로 이 세대의 길이를 측정하고 판단하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가지고 이 세대의 성질이 결정된다고 보시는 겁니다. 드디어 인간들이 총체적으로 예수님을 거부하는 그런 속성이기에 마땅히 온 우주는 멸망해야 된다는 것이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는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사건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기준으로 하여 오는 세대와 이 세대를 구분지으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보실 정도로 하나님의 심판 계획이 차질없이 이루어짐을 우리가 불신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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