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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마 24:29-31 (사방에서 모으리라)우리교회마태복음

Re..마 24:29-31 (사방에서 모으리라)

이름 : 이근호(IP:)

사방에서 모으리라

2005년 6월 26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4:29-31

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4:31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교회란 예수님의 생명으로 인해 모인 단체입니다. 거기에서의 중앙에는 예수님의 생명 뿐이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생명이나 목숨도 교회 중앙에 있는 예수님의 목숨보다 더 고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생명과 다른 생명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종류입니다. 세상의 생명은 죽으면 죽게 되는 생명이지만 예수님의 생명은 죽어도 다시 살게 되는 생명입니다. 교회는 이로서 온 우주보다 귀한 단체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교회말고 바깥 세상에서는 무엇을 귀하게 여길까요? 그것은 바로 대자연입니다. 낮에 종일토록 빛과 열을 보내주는 해와 밤을 품위있게 장식하며 쉬게 만드는 달과 그리고 하늘의 영광을 뽐내는 별이 안정되게 늘상 그 자리를 유지시켜 주므로서 지상에 있는 인간들은 비로소 대자연의 영원성 품에 마음놓고 안기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그 대자연의 질서가 흔들린다는 겁니다. 그것이 송두리채 날아가 버린다는 겁니다. 그동안 대자연의 안정성은 곧 인자의 혈통의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비록 자신이 죽는다는 것은 분명한 비통한 현실의 한 자락이지만 그 냉혹한 현실마저 담담하게 받아낼 수 있었던 것도 자자손손 자신의 존재함을 이어나간다는 혈통의 영원함 때문입니다.

즉 대자연은 인간의 존재성과 함께 영원히 이어가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신의 확실한 뜻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그 끝에는 항상 신이 자신들을 마중 나올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러한 질서의 안정함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인정하고 긍정하고 자랑할 만한 토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난데없이 이 우주에 단단히 묶여있는 해와 달과 별이 와르르 무저져 버린다는 겁니다. 이것은 곧 그동안 알고 있는 신의 질서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인간들이 생각해 놓은 대자연관이 결코 참된 현실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대자연의 존재 이유를 잘못 알고들 있다는 것은 곧 자기가 자신에 대해서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해 줍니다.

이 우주라는 대자연은 그 자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시적으로, 잠정적으로만 자연의 질서를 보여준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질서를 철수할 시점에 와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생각입니다. 해와 달과 별은 그저 무대 세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최후의 참된 주인공이 이 무대 정 중앙에 등장할 때까지만 하나님의 속성을 보여주는 세트였습니다. 드라마 같은데 보면, 주인공이 연기하면서 좀 과격하게 설치다보면, 대충 걸어놓은 세트용 액자들이 우둑둑 떨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드라마가 결코 액자 중심이 아니라 주인공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점을 말해주는 증거입니다. 그동안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은 나름대로 역할을 잘해 왔습니다. 그 역할이 무엇일까요? 시편 136:5-9절에 보면,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해와 달과 별은 그냥 아무 의미없이 움직여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 즉 은혜와 사랑을 담뿍 안고 이 우주 속을 운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종의 하나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조명탑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밤 낮으로 쉬지 않고, 어느 곳에서든 하나님은 이 우주 안에다 자신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을 안 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자비와 사랑과 은혜의 본체가 해와 달과 별일까요? 아닙니다. 해와 달과 별에게 자비을 담아주시는 주인공은 따로 계셨습니다.

그 분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제 그 분은 자신의 모든 몸짓으로 통해서 참된 인자와 사랑과 자비와 은혜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곳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었습니다. 누가 그 분은 죽이는 자가 있어 어쩔 수 없어 죽으신 분이 아니라 처음부터 죽어서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일은 두 개의 다른 종류의 생명을 보여주게 됩니다. 하나는, 죄악된 생명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철저하고 완벽한 외면당함과 저주를 야기시키게 됩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죽은 예수님을 사흘만이 다시 살게 했습니다.

바로 이 두 번째 생명이 사랑의 본체와 자비와 은혜의 본질입니다. 이 자비를 가리지 않기 위해 이제 태양과 달과 별은 이 우주의 무대에서 은퇴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과 목숨을 은퇴해서 무대 뒤로 사라져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죽이시는 분입니다. 처음부터 우리를 죽이려고 달려드신 분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이 늘 주의 일을 하나님께서 설마 나의 생명을 더 귀한 것으로 봐서 오래 살게하거나 풍족하게 살게 하실 것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주의 일을 많이 한 사람이라도 지금도 죽이려고 달려드십니다. 그리고 반항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사랑의 교체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생명 교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향하여 돌진하는 저주를 자신의 몸으로 돌려서 도중에 막아서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사전에 물어보지도 않으시고 일을 결행하셨습니다. 우리는 단지 추후 통고만 받았을 뿐입니다. 즉 "어떤 분이 나에게 날라오는 저주를 자기 생명으로 받아내셨다'고 말입니다. 바로 교회란 이처럼 예수님의 생명만 목숨이 이 온 우주의 존재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을 알고 모인 단체입니다. 여기에서는 결코 돈에 인색하다든지 자신의 충성심이 부각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마당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이로서 이 세상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으로 구분지어집니다. 마태복음 13장 43의 말씀처럼 구원된 자는 하늘나라에 해와같이 빛납니다. 더 이상 해나 달과 별이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이 작업과 병행해서 가라지는 가라지대로 가려내는 작업을 지금도 주님께서 실시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비밀입니다. 비밀은 비밀의 모습으로만 간직됩니다. 성도란 이처럼 하늘이 알려주신 비밀은 이 세상 전부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성도의 성도됨이 오로지 십자가 자비에서만 나온 결과임을 알고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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