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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행 21"30-36 (소동의 이유)우리교회사도행전

Re..행 21:30-36 (소동의 이유)

이름 : 이근호(IP:)

소동의 이유
2005년 6월 15일본문 말씀: 사도행전 21:30-36

21: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21:31 저희가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의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21:32 저가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저희가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21:33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누구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21:34 무리 가운데서 어떤이는 이 말로, 어떤이는 저 말로 부르짖거늘 천부장이 소동을 인하여 그 실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21:35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포행을 인하여 군사들에게 들려 가니
21:36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 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폭력이란 그 존재를 송두리째 제거하기 위해 시도하는 겁니다. "네 같은 인간은 이 사회가 필요치 않다"는 표현을 그런 식으로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폭력을 당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이질적이기 때문입니다. 사고방식이나 세상 보는 눈이 대부분의 사람들과 확연하게 틀리기 때문에 그 사회에서 죽음으로서 추방당하고 있는 겁니다.

이 세상은 동질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힘으로서 승자와 패자로 가름합니다. 힘 있는 승자는 힘 없는 패자를 자기 밑에 둘 수 있습니다. 힘이 곧 정의요 진리처럼 통용됩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사도 바울이 이질적이기도 하고 또한 힘이 없는 자이기에 그 예루살렘 사회는 사도 바울에게 폭력을 행사하므로서 자기 사회의 진리됨과 정의로움과 승자됨을 과시해 보입니다.

과연 사도 바울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런 수모를 버티어 낼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자신의 복음 전파는 자기로부터 시작한 일로 보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한 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복음 전파의 와중에서 어렵고 힘들고 목숨이 위태로운 일들이 일어난다고해서 스스로 자기 일을 철수시킬 권한이 본인에게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여러 군데 강의를 해 본 바에 의해 느낀 점은 어느 곳이든 할 것 없이 생계와 생존으로 심령들이 불안하고 날카로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예수님에게 관심 없는' 자가 천국 갈 리는 만무하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살기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그 생계상의 이유로 인해 예수님에게 무관심하게 지내고 있다면 그것으로 그 사람은 처음부터 구원될 수 없는 사람인 것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러한 복음 전파에 생명을 들이대는 이유는, 예수님 또한 이 땅에서 아슬아슬하게 사셨던 분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승자되기를 학수고대하고 희망으로 삼고 생존경쟁에 나서는 이 한 복판에서 예수님은 참으로 패배자 중의 패배자로 등장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 승리와 힘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나셨습니다.

이렇게 나오는 세상도 가만있지 않고 그 약한 예수님을 완전히 패배자로 전락시키기 위해 끝까지 따라 옵니다. 이 장면이 요한계시록 12:1-6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 가셨을 이 세상에 그 어떤 권력을 그 분을 갋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이 그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그 분만이 영원한 승자로 등극하는 것을 그들은 닭 쫓던 개 모양 쳐다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이상스럽게도 여자와 여자가 나은 아들의 관계에서 여자는 그냥 지상에 남아 있고 아들은 여자보다 먼저 하늘로 올라가 버리는 대목이 나옵니다. 결국 이 점은, 바다에서 올라론 용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노리는가 하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 그동안 아들과 함께 있었던, 그 여자를 그냥 지상에 남겨 두는 겁니다.

물론 그 여자는 그 때부터 호되고 용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표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 대목은 마치 용이 아들을 놓친 분풀이를 아들과 연관된 자들에게 퍼붓는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헤롯 왕은 예수님을 놓치고 또한 동방박사도 놓칩니다. 그 분풀이로 그는 예수님이 태어난 지방 베들레헴의 두 살 밑의 아이들을 다 학살해버립니다.

이렇게해서 이 세상은 용이 설치면서 예수님의 남은 자를 핍박하는 공간으로서 유일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대로 실현되는 증거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난 받는 종들이 아직도 출몰하고 있다는 그 점에 있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5장 초반에서 '복이 있는 자'의 성격을 보면, 이 핍박과 관련되어져 있습니다. 용이 활개치는 세상에서 제대로 복음이 드러나는 현장은 '핍박'이라는 형식으로 되비쳐나온다는 사실입니다. 흔히 8복이라고 언급되는 각 복의 문장 앞에서 '핍박받아'라는 말을 집어넣게 되면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예를 들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대목은 '핍박을 받아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하는 대목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라는 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제일 나중에 나는 복인, "나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구체적 사례를 앞에서부터 전부다 적용시킨 것이 됩니다. 이로서 8복 속에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의가 그대로 들어가 있음이 밝혀지는 겁니다.

이 세상은 이처럼 존재의 이유는 확정적으로 정립됩니다. 창세기 25:23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쌍둥이로서 등장하는 에서와 야곱이라는 두 자식은 앞으로 모든 인류의 운명을 압축시킨 모형으로 등장된 자들입니다.

즉 에서와 야곱처럼 모든 인류의 운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무조건적으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고 이번에는 반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무조건적으로 저주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류는 반드시 이 둘 어느 하나에 속하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지역에 놓여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운명이 확정지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안심되고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즉 우리가 애쓸 필요도 없이 우리의 운명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장만한 운명이기에 하나님에 의해서 끝장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어떤 시련 속에 있다할지라도 사랑받기로 된 자들에게 그 모든 시련이 다 사랑인 것을 기억합시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살아있다는 이 자체를 더 이상 우리 자신의 일로 생각하지 않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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