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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마 24: 9-14 (영의 사람)우리교회마태복음

Re..마 24: 9-14 (영의 사람)

이름 : 이근호(IP:)

영의 사람

2005년 6월 5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4:9-14

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24: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하나님은 끝을 보겠답니다. 인생에 끝을 내고 세상의 끝을 내겠답니다. 왜 하나님은 끝을 고집합니까? 그것은 원래 하나님이 만드신 그 인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생명나무 과실을 따먹을 수 없는 인간은 인간이라고 간주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기 원칙대로 나가십니다.

우리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자기 원칙에 충실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개인적이 감정 위주로 나가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다 냉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냉정하게 일하십니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모두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 인간이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성경 전도서에는 잔치집에 가지말고 초상집에 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초상집에서 자신의 진정한 실체를 파악하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의 죽음과 세상의 종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관된 뜻이 무엇인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 뜻은 바로 인간 안에 하나님에 반발하는 속성을소 품고 있다는 겁니다.

원래부터, 처음부터 인간은 이러했습니다. 노아가 살던 시절에도 그러했고 아브라함이 살던 소돔시절에도 그러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인간들의 근본 본성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에 대한 거부감입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에 다녀도 이 마음은 늘 품어져 있습니다.

로마서 1:28에 보면,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신앙이란 자신의 속마음을 여과없이 드러내게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항상 회개하는 겁니다.

자신을 아무리 곱게 장식하고 변명쪼로 일관하는 이러한 생활 태도가 하나님 앞에 설 때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노아 때나 소돔과 고모라 때를 놓고 볼 때, 롯은 자기 사위도 떠나고 심지어 사랑하던 아내 마저 떠납니다.

롯의 처가 결코 남편이 미워서 뒤돌아본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하나님에게 대들고 싶은 겁니다. 세상 만사를 하나님 홀로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 극도의 반발심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멀쩡하게 그동안 잘 살아왔던 정든 고향을 송두리째 하나님께서 진멸하시는데 그 이유에 롯의 처는 같이 동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 신께서는 나를 없애기를 원하는냐?"에 대한 무한한 분노가 그녀의 마음 안에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는 한 항시 하나님에 대한 반발이 튀어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건에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라는 조항을 하나님께서 첨가하지 않았더면 지옥갈 사람이 천국가는 행정적인 실수가 있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실수를 하시지 않습니다. 지옥갈 자가 어떻게 잘못해서 천국가는 예가 없도록 기어이 그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한 반발이 자진해서 고백하는 사건들을 일으키게 하십니다. 인간들이 오죽하면 하나님에게까지 화를 내겠습니까. 그만큼 하나님은 인간들을 못살게 구시는 겁니다. 즉 '너희들이 언제까지 너의 본색을 감추겠느냐'라는 식으로 하나님은 나서십니다.

제발 하나님을 저주하고 싶다면 솔직하게 노골적으로 저주하라는 겁니다. 이래도 하나님을 저주 안 할거냐 하는 식입니다. 그렇게해서 하나님은 육의 한계를 몽땅 드러나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질타를 당하는 그 자리입니다.

디모데후서 3:1-5에 보면,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 과연 우리가 자기를 사랑하는 자가 아닐까요? 돈을 사랑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 있습니까? 우리는 원한을 스스로 알아서 푸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까? 쾌락보다 과연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있는 겁니까? 하나님 말씀을 늘 대하게 되면 하나님은 이런 말씀들을 통해서 건성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그 허점을 철저하게 파헤치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다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일부러 이 세상에 내려온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쓸데없이 자신의 경건스러운 감정에 호소해서 구원을 타내려고 해서는 아니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세상은 철저하게 육적인 세상이었습니다. 그 육적인 세상 속에 영적인 분이 잠입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6-8에 보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육으로 난 것은 육입니다. 육은 아무리해도 영이 될 수 없습니다.

육은 주님에 손에 의해서 처리되어야 합니다. 육이 고유의 권리나 자격이나 입장을 고수하면 안됩니다. 육을 아무리 굴려봐야 거기서 영은 나오지 않습니다. 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영 속에 들어와 있는 사람은 아무리 해도 육적인 세계관으로 되돌아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마지막 때에 영적 인간으로 오신 이유는 육적으로는 도저히 구원이 될 수 없음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아무리 염려하고 두려움을 가지려고 해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몸은 이미 자기 몸이 아니기에 근심이나 걱정을 할 입장에 놓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미리 아는 입장에서 일부러 사서 염려하고자 해도 그 일도 불가능할 지경입니다. 그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조치에 영광돌리고 감사하고 감격스러워 할 뿐입니다.

바로 이 마지막 때에 이런 영적인 인간이 출현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전도'의 결과입니다. 즉 복음의 전파는 결코 전도자의 몫이 아닙니다. 전도자의 고민거리가 아닙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열심히 전도한 덕분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이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고마움을 돌리는 것임을 우리가 잊지 않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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