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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출 23: 7- 9 (나그네 만들기)우리교회출애굽기

나그네 만들기2005년 5월 22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23:7-9
23:7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23:8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23:9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 크게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지킬 능력이 있기에 이 말씀을 주셨다고 여기는 태도입니다. 예를 들면, '뇌물을 받지말라'고 하면 뇌물을 받지 않는 능력이 마치 우리에게 있다고 여기에 이 말씀을 준 걸로 여깁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습니다. '뇌물을 받게 되는 능력'이 이미 우리 속에 상주되어 있기에 이 능력이 있음을 까발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냥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분주하게 활동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곧 '사건'으로서 우리에게 벌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그 터지는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지킬 만한 입장이 못된다는 사실을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들 반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그냥 하늘 저편에 가만히 계셔서 지켜나 보시는 분이고, 이 말씀대로 살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라고 여깁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의로운 자를 핍박하지 말라'고 하시면 우리는, "저희들은 의로운 자로 우대하고 절대로 핍박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각오로 나오게 됩니다. 본능적으로 말입니다.
이로서 우리는 이 말씀을 일단 수행한 걸로 여깁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아직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사건을 일으키느냐 하면은, 분명히 의로운 자인데 그가 존재하므로서 우리 자신의 위신과 체면과 품위와 상대적으로 죄인으로 노출되는 일이 벌어질 때면 그 의로운 자를 미워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건이 일으키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던지신 말씀이 인간의 손에 의해서 달성되는 것을 방치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필히 하나님 본인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한 예로서 요한복음 13:26-27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여기에서 보면, 예수님은 사단, 즉 악마의 활동까지 관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악한 일을 도모하신다는 말이 아니다. 악함까지 이용해서라도 말씀을 이루어내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義)'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홀로 다해내는 것을 뜻합니다.
그 뜻 가운데는, 예수님이 해내신 의로움을 아무런 댓가도 없이 자기 백성만 그저 넘겨주고 그들도 또한 의롭다함을 것도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죄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죄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공로가 자신에게 그저 넘겨옴을 믿지 않는 것이 바로 죄가 됩니다. 사실 예수님의 공로를 믿는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생겨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 대신 인간들은 자신의 옳고 그름을 자신의 선에서 결정지으려고 합니다. 이런 자태가 곧 죄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모든 이로 하여금 입을 막고 죄를 더욱 죄되게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악마도 다루시는 예수님께서, 이미 악마의 술책에 빠져 있는 인간들이 이 율법을 통해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다져나겠다고 시도하는 것을 지켜 보고 싶어하십니다.
예를 들면, "뇌물을 받지 말라면 내가 기어이 받지 않겠다. 의로운 자를 박대하지 말라면 기어이 박대하지 않겠다"고 나섭니다. 그러나 실제로 뇌물을 100번을 거절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101번째의 뇌물 사건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우리 마음 속에 이미 뇌물을 원하는 마음이 태어날 부터 자리잡고 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그네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들은 원천적으로 외로운 것을 싫어합니다. 나그네로 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좀 외롭다 싶으면 일부로 친구를 만들고 가족을 만들고 양자까지 들입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대로 덜 외로운 쪽으로 삶을 몰아갑니다. 따라서 우리보고 나그네라고 지칭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 도리가 없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이 말씀을 곡해해서 자진해서 나그네처럼 외로워지려고 애씁니다. 이런 사람은 성격상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하며 사회 안에서 머물고자 합니다. 대놓고 나그네 생활을 하고자 하는 자들은 일종의 세상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걸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인간들은 나그네처럼 안되는 방향으로 인생을 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성도를 대해서 '나그네'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나그네처럼 살아라 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본성과는 반대로 나그네로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그런 사건을 계속 일으키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 모든 말씀이 성취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처럼 성경을 보기 전에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인지가 스스로 구분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도리어 예수님의 공로를 훼손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입장에서 보는 의로움에 대한 고의적인 공격이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양보없는 전쟁이 늘 일어납니다.
여호와가 신이 되든지 아니면 내가 신이 되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비로소 그동안 우리 자신을 알지 못했던 죄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는 그 현장에서 밝혀집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하나님은 끊임없이 사건을 자기 백성 위에 터뜨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우리가 책임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우리를 더욱 죄인되게 하시는 하나님 작업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우리를 죄인되게 만드시는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義)'가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의를 알고 혹은 의인됨을 아는 것도 순전히 의로우신 예수님의 업적에 그 기초와 근거가 있음을 우리가 놓치면 아니됩니다.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와 화목케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화목을 알려면 우리가 어째서 하나님의 '원수'로 등장될 수 밖에 없는 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 전제를 위해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과 같은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아직 우리 자신이 확인되지 못한 무수한 죄가 있음을 저희들이 믿을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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