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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출 23: 1- 5 (성도는 재판관)우리교회출애굽기

Re..출 23: 1- 5 (성도는 재판관)

이름 : 이근호(IP:)

성도는 재판관
2005년 5월 15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23:1-4

23:1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23:2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
23:3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찌니라
23:4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사람은 늘 주위를 살피면서 판단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판단이 최선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판단이 주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압력을 받고 있음을 밝혀주십니다. 다수의 의견이나 조직의 요구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존재는 있으나마나 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주위의 시선이나 눈총보다 우선적으로 하나님 말씀 앞에 홀로 서기를 당부하십니다. 그렇게 될 경우에만 바른 판단을 하게 되고 말씀은 그 사람을 통해서 펼쳐질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존속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온 지구상을 펴뜨리는 역할을 해야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판단력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 전파에 방해가 되기 십상입니다. 윌리엄 제임스(1842∼1910)라는 심리학자는 인간의 의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네 가지 특징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첫째, 의식은 사적이라는 겁니다. 즉 모든 사고엔 소유자가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둘째, 의식은 늘 변화하며 완전히 똑같은 의식 상태를 두 번 경험하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셋째, 의식은 흐름이며 그 흐름을 통해서 소위 '자아'라는 것을 형성한다고 했습니다. 끝으로 넷째, 의식은 항상 선택적이라고 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느낌 중에서 다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수용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자아성입니다.

특히 우리는 이 네 번째 특성인 '선택적 수용'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인간은 쉴새없이 자신과 타인을 재판하게 된다는 겁니다. 어느 순간에든 본인이 해야될 일이 숱하게 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실시하자면 그 중의 하나를 골라 잡게 됩니다. 과연 무슨 근거로 그 하나를 골로 잡을까요?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평가를 의식해서 그것을 선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인간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본능같은 겁니다.

인간들의 이러한 취약점에 대해서 예수님도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3-4에 보면,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직접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으면 전혀 인간을 의식하지 않게 될까요!

오늘 본문 4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주위의 사람들을 의식할 필요가 전혀 없을 정도로 우리 속에 계신 하나님 말씀 자체가 활동을 벌릴 경우에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비해서 일반 나라에서의 재판은 오로지 인간 사회의 유지성과 영원성을 위하여 재판하게 되어 있습니다. 개개인은 소속된 나라가 국가나 사회를 유지해야될 의미와 책임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전체 조직이란 소속된 구성원들이 하나 둘 씩 집합해서 생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구성원이 없는 조직이란 이미 조직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일반 나라에서의 재판은 사회를 유지하고 지탱하는데 있어 힘을 증강시키는 방향으로 재판하게 되어 있지 결코 힘을 와해시키는 방향으로 재판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만약에 그 사회에서 유력한 사람을 재판할 때, 그 사람이 그동안 소속 사회 유지에 어떤 기여와 어떤 장애를 주었는가를 따져보게 됩니다.

만약에 도움 준 것이 월등하게 많다면, 그 사회는 그 유력 인사를 함부로 정죄할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만약 그 사람을 도태시키면 그로 인해 사회 지반에 지장이 되고 사회는 발전을 못하게 되고 퇴보하게 되면 나중에 붕괴되는 수가 생깁니다. 따라서 사회 기여도에 따라 형량이 조절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어떻게 재판해야합니까? 성도는 이미 이 세상의 재판장입니다. 고린도전서 6:2-7에 보면,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라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천사가 세상을 바라본다면 어떻게 보겠습니까? 천사는 이 땅에 대해서 자유분망합니다. 결혼하지도 않고 자식도 없습니다. 그리고 재산도 필요치 않습니다.그 어떤 것에도 얶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토록 자유로운 안목을 가진 것이 천사인데 바로 이러한 천사마저 재판할 수 있는 자격자가 성도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차라리 속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은 결코 재산이나 수명이나 세상의 평판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자유란 그야말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할 수 있는데 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기준이나 판단에도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하나님 앞에 똑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남이 뭐라든, 누가 뭐라든 우리 안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가 뭔가를 알아서 그런 판단력으로 세상을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다수에 휩싸이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결코 하나님 나라가 아니고 하늘 나라 또한 민주주의 형식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가 이 땅에서 천사와 같이 살기를 원합니다. 세상 요구에 부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이 기대하는대로 살 하등의 의무가 없습니다. 도리어 그 반대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판단하고 그 판단으로 우리는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의해서 하늘 나라가 이루어짐을 알려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자유롭게 이 세상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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