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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행 20"28-32 (피와 이리)우리교회사도행전

Re..행 20:28-32 (피와 이리)

이름 : 이근호(IP:)

피와 이리

2005년 5월 11일 본문 말씀: 사도행전 20:28-32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20:29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20:30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20: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20:32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교회란 말씀에 의해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도가 말씀하기를. 자신은 비록 떠나도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를 지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 속에는 신약만 들어있는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도 들어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이삭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삭은 출생한 참으로 특이합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미 아버지 아브라함과 어머니 사라 사이에서는 더 이상 자식이 생겨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둘 사이에는 이삭이라는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성경에서 왜 이런 기적같은 출생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신약에 있어 성도의 운명도 반드시 이어하다는 겁니다. 즉 이삭같은 출생의 기적을 갖고 있지 아니하는 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삭 뿐만 아니라 야곱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이 천국의 자녀가 된 것은 야곱의 지상에서는 활동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이미 야곱을 사랑하기로 된 그 목적성이 지상에서 구체화 되어야 하기에 필히 태어나야만 하는 자가 바로 야곱입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창세 전에 사랑받기로 작정되었다는 목적성을 품고 있지 않는 자는 이 신약 시대의 성도가 아닙니다. 이처럼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법칙을 동일합니다.

이 기적적인 법칙에 준해서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드십니다. 그래서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너무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참된 교회가 숨겨지고 말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자기 건물을 갖고 아래층에는 교육관으로 윗층에는 본당으로 사용하면서 약 200명 정도 모여야 교회처럼 간주하는 잘못된 선입견이 작용하고 있기에 참된 교회는 교회가 아닌 것처럼 취급당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교회가 이런 식으로 가짜들로 범람한다는 것을 이미 사도 바울도 알고 계시고 하나님도 알고 계십니다. 특히 사도는 이런 경우를 내다보고 3년 동안이나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밤낮으로 눈물로 하소연을 하고 왔었습니다. 그 주범은 이리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양과 이리 사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양이란 단순히 자기 갈 길만 모르는 비독자적인 대상에 머무는 정도가 아니라 이리라는 것에 의해 먹이감이 된다는 점도 된다는 겁니다. 양의 영원한 목자장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양을 이런 차원에서 보호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감독자로 세웠습니다.

물론 이 감독자 자체도 하나님의 양이라는 점으로 스스로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는 마치 양이 아닌 양 거들먹거리면서 양 위에 군림하려고 해서는 아니됩니다. 그러면 우선 어떤 자가 양입니까? 그것이 이사야 53:4-6의 말씀에 의해 적용을 받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러니까 뭔가 '담당시키신 그 무엇이' 실려 있는 자라야 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은 참으로 양같아서 제 갈길로 가셨는데, 그런 자신에게 목자가 찾아오셔서 목자가 당한 시련과 고난의 효력이 고스란이 자기에게 도달하도록 조치당했다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양입니다. 즉 양의 배를 짼다면 그 안에는 목자의 찢겨진 살점과 흘리신 피가 가득 담겨 있어야 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은 훌륭한 양'이라든지, 자신은 '쓸만한 양'이라든지 하는 소리를 하면 안되는 겁니다. 양이라고 운을 떼었다면 그것은 곧 자력으로 구원될 수 없는 대상자이었음을 전제하고 하는 겁니다. 만약에 자신이 구원되었다면 그것은 순전히 목자의 몫임을 알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 피흘리신 그 피를 찾아 교회에 나와야지 그것 외에 뭔가 신으로부터 얻어내기 위해서 교회를 왔다면 절과 교회를 분간 못한 처사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다른 무당집을 찾아가도록 권유해야 하는 겁니다. 교회라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피의 의미를 되새기는 곳입니다. 왜 자신이 구원되기 위해 예수라는 분이 험난 꼴을 보시고 돌아가셔야 하는지를 그 내막의 깊이를 알아 가는 곳입니다.

그리고 목자의 피는 영업용 상품이 아닙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이리가 출몰한다는 겁니다. 이리는 양을 볼 때는 자기 생계용으로 간주합니다. 즉 양이 있음으로 인해 본인들이 밥먹고 산다는 점에서 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목회를 하게 됩니다. 이런 이리들로 인하여 예수님의 피는 가림을 받고 짓밟힘을 당하게 됩니다.

따라서 참된 양은 피로 인하여 예수님을 파악합니다. 다른 노선으로는 예수님께 나가가는 방도가 없습니다. 오직 피를 통해서만 목자를 진정 알아보는 자만이 양입니다. 그러나 이리들은 예수님의 피를 빙자해서 심약해진 양을 쳐다보며 혀로 군침을 다십니다. 사실 이 세상은 전부다 피와 상관없는 세상입니다.

교회 목사의 목회나 종교가들의 구제활동이나 과학자의 연구 활동이나 무역상의 물품 구매나, 공무원들은 공무집행이나 모두다 피없는 행위들입니다. 피 있는 행위는 오직 예수님만이 할 수 있지 다른 자는 일체 못합니다.

이런 점을 사도 바울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사도는 참된 사도의 형편이 어떤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4-10에 보면,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양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비참하게 망할 수 있는 자만이 진정 성령님께서 세워준 참된 양의 감독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과 사도 바울처럼 양을 보면서 그 안에 거룩한 하나님의 피를 발견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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