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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마 23:34-36 (의로운 피)우리교회마태복음

Re..마 23:34-36 (의로운 피)

이름 : 이근호(IP:)

의로운 피
2005년 5월 8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3:34-36

23: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 가리라
23: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성경 속으로 들어가면 세상과는 딴 판입니다. 세상에서 통용되는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것은 '피'만으로 세상으로 점검하겠다는 겁니다.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들추어내는 방식은 오직 의로운 자의 피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으로는 세상의 정체가 들통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이 세상 원리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려합니다. 거기에는 우리에게 낯선 다른 식으로 세상을 조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피한다는 그 모양새 자체가 결국에는 예수님을 계속해서 거부하고 공격하는 삶이 될 뿐입니다.

즉 예수를 믿는다고 우기면서 예수님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성경 속의 원리로 예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통하는 원리로 예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께서 '피'로서 세상을 진단하시겠다는 것은 끝까지 다 들추어 내겠다는 겁니다. 갈 때까지 갔다는 말입니다. 더 이상 남겨둔 것도 없고 더 이상 파악될 여지도 없을 정도로 다 파헤치고 마무리 지었다는 겁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경우가 바로 이러합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예수님 이야기하니 그들이 스데반 집사에게 피로서 되갚아주었습니다. 인간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러받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를 감추는 습성입니다. 아담 부부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을 가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벗겨졌습니다. 그 대신 가죽옷으로 친히 그들을 가려주었습니다.

인간은 자기 것은 뒤로 감추고 자기 것이 아닌 것으로 자기 것인 양 여기는 버릇을 대대로 물러받았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하는 그 중심에는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은 '자기 것'이라는 독한 집념이 스려있습니다. 즉 자신을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기 싫다는 말입니다. 내 인생은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인간들은 이처럼 진정 '잃어버림'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보면 세 가지 '잃어버림'이 나옵니다. 양 한 마리의 잃어버림과 동전 하나의 잃어버림과 탕자의 잃어버림이 나옵니다. 전적으로 잃어버림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신을 진정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 꽉 쥐고 삽니다. 반성하고 회개한 것으로 계속 자기 자신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여전히 자기 자신을 자기 것으로 삼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출입니다. 이런 '잃어버림'이 없는 자에게는 결코 '구원'이라는 표현도 적절치 않습니다. 구원을 진정 모른다고 보면 됩니다.

이러한 현실적 차이점이 결국 끝에는 피 흘림으로 끝이 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두 명의 피 흘리는 자가 등장합니다. 모두다 자기 인생은 자기 것이라는 집념에서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겁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자기가 드린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면서 동생이 드린 제사는 하나님이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분통이 터져 그냥 가만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에서 보면, 아벨이 드린 제사는 아벨의 본인의 아이디에서 드린 제사가 아니라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신 고로 예수님께서 아벨은 자신의 뜻을 전파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신 것 뿐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이 점을 모르고 동생 아벨만 죽이면 그만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즉 자기 행위로 드린 제사만 정당한 것으로 계속 보존하겠다는 심보에서 이런 살인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 나오는 사가랴의 피도 마찬가지입니다. 역대하 4:17-22에 보면, "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의 말을 듣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고로 이 죄로 인하여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저에게 보내사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저에게 경계하나 듣지 아니하니라 이에 하나님의 신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저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 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을 좇아 여호와의 전 뜰안에서 돌로 쳐 죽였더라 요아스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비 여호야다의 베푼 은혜를 생각지 아니하고 그 아들을 죽이니 저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선지자를 죽인 인간의 대표자로서 요아스 왕으로 등장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의 왕이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순종해야 될 역할을 해야 될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왕이라는 작자가 하나님의 계시를 거부하고 그 나라를 마치 자기가 마음대로 정치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즉 왕직을 자기 소유용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왕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하나님의 소유로 보지 않고 자기 소유로 보고 있습니다. 자기 것인양 여깁니다. 이것은 인간이 어떠한 행위를 하든지 드러나는 양상입니다. 반드시 '소유화' 된 상태가 아니고서는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는 겁니다.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상사와 비극은 모두 소유의식에서 발생되는 것입니다. 참된 우리의 소유자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자기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예수님의 왕됨을 거부하고 결국 죽이고 맙니다. 그런데 선지자의 입장에서는 '죽는다고해서' 계시를 전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자신이 죽든 말든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의 죽음을 사용해서 전달되어야 하는 겁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람은 이 땅에서 피와 피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너무 섭섭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우리는 잃어버렸던 자에 불과한 자들입니다. 손해 볼 것이 전혀 없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앞으로 세상을 볼 때, 세상 돌아가는 정치나 경제적으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십자가 피 위에서 내려다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피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친히 인도하십니다. 성도에게 일어나는 매사가 다 피로 모아지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해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영안이 열려서 성경 속에서 예수님이 보는 것처럼 세상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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