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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행 20"17-21 (사도의 심정)우리교회사도행전

Re..행 20:17-21 (사도의 심정)

이름 : 이근호(IP:)

사도의 심정
2005년 4월 27일 본문 말씀: 사도행전 20:17-21

20: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20:18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20: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회개라는 것은 기분으로 결정짓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기 감정을 임의로 조립하려는 시도하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회개하라'고 한다면 기분상 자신을 자책하고 우울하게 만들면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회개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모습으로만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기 산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 산은 누가 만드셨습니까? 시편 121편에 보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즉 하나님에 의해서 분명히 만들어진 산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그 신앙의 눈이 바로 회개입니다.

바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푸른 바다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제대로 보는 마음의 눈이 회개입니다. 여기에서 그 어떤 감정도 섞일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몸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바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몸은 더 이상 우리 자신이 관여할 바가 아닌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자세가 회개입니다.

이러한 회개가 바로 사도 바울로 하여금 '거리낌'이 없이 마음껏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왜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당당한 회개가 할 수 없을까요? 도대체 인간들의 마음이 어떤 식으로 돌처럼 굳어져 있었을까요? 그것은 에베소서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복음 가운데 다 담겨있습니다.

에베소서 2:1-3에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도는 이 구절에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언급하고,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세상을 파악하고 묘사하는데 있는 영적인 문제로 생각해야지 결코 인간의 지혜에서 출발해서는 아니된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마약과 담배와 음주와 도박을 하는 이유가 다 세상 영광을 가져보려는 욕구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 세상 것을 갖고 싶도록 악마가 인간의 욕심을 부추긴 결과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하늘의 영광까지도 알게 됩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과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이 변화산에 올라가는 대목이 나옵니다. 산을 오를 때까지 예수님은 그저 평범한 이스라엘 사람의 차림새였습니다. 그러나 산 정상에 오르자 홀연히 예수님이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몸에서 눈부신 광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해같이 빛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태양 빛을 맨 눈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그 이상의 영광이 예수님에게서 흘려나왔습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황홀했든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주여 여기가 좋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빛나는 광채 앞에서 술이나 퍼마시고, 담배나 피우고, 도박이나 마약을 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세상의 영광이란 예수님의 이러한 영광 앞에서 여지없이 쓰잘데 없는 것들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좋은 것도 예수님의 몸에서 나오는 영광을 바라보는 순간 다이상 좋은 것이 못됩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영광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삼층천에 빨려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 세계가 너무나도 황홀하고 좋기에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너무 자고하지 않기 위해 몸이 가시를 박아 놓을 필요까지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세 번 씩이나 빼달라고 기도했지만 예수님의 응답은 그 때마다, "네 은혜가 네가 족하다"였습니다. 따라서 이런 황홀한 경험을 한 사도에게 있어 세상의 권세나 명예나 인기 같은 것은 다 쓰레기 같은 것들입니다.

사도 바울 앞에 세상의 모든 보화를 산더미로 쌓아놓아서 유혹한들 그런 것들은 결코 유혹감도 되지를 못합니다. 바로 이러한 회개성을 가지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실제 상황들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영안이란 바로 어두운 세상의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는 눈입니다. 마치 비밀리에 쳐놓아진 경보 시스템을 특수 안경으로 파악해 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세상은 악마가 각 사람들의 마음을 장악하는 거미줄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빠져나간다는 것은 도저히 성사될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들은 그 무슨 일을해도 항상 자신의 욕심을 당해내지를 못하기 때문에 결국 욕심에 이끌리어 일을 저지르고야 마는 그런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바로 그런 자들을 천국으로 빼내어 준 것은 결코 본인의 자질이나 능력이 아니라 그 당사자에게만 특별히 뭔가 임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은혜가 주어질 밖에 없는 근거는 어디서 비롯되는 겁니까? 에베소서 1장에서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은 바로 에베소서 2장의 실태를 타당하게 만드는 영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거기에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노림수는 영적 세력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은 악한 영적 세력 때문에 결코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1:4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 또한 영안이 있어야 믿어지는 현실입니다. 창세 전부터 개시된 일로 인하여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다는 겁니다. 그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영안으로 세상을 볼 줄 모르는 자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는 말이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지를 못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인생을 자기가 처리하기 따라 결정된다고 믿기에 늘 불안합니다. 이것이 회개없는 자들의 모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을 영안으로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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