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의 새끼들 2005년 4월 24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3:29-33
Re..마 23:29-33 (독사의 새끼들)
이름 : 이근호(IP:)
독사의 새끼들
2005년 4월 24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3:29-33
23:29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23: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23: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23: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예수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옵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욕설은 일종의 판결문입니다. 지옥가야만 하는 자들을 향한 판결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최종 판결자가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통하지 않은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오로지 무엇이 '참된 사실'인가만 고려합니다. 즉 우리가 뭘 원하고 있고, 우리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십니다. 누가 되었든지간에 하나님이 원하는 '사실'에 부합되지 아니하면 가차없이 '독사의 새끼'이라는 판정을 받게 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판정을 내립니다. 즉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내가 이렇게 하면 죄가 될까"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옳은 행동이면 하려고 하고 나쁜 행동이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게해서 계속해서 자기가 판단해 볼 때 여전히 자기 자신은 선한 사람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 판정과 판단이 이 우주를 움직이는 원리나 법칙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사실'에 주목합니다. 즉 인간들은 이 우주의 사실과 위배되는 행동을 하면서 계속 그것이 참된 사실이기를 우기고 있습니다. 다시금 말씀드립니다만 우리가 판결자가 아닙니다. 판결자는 따로 계십니다.
내가 스스로 판단하기에 옳은 행동을 했다고해서 그것으로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판단할 입장에 있다고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우리보고 욕하시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환경 탓으로 돌리고 환경보고 욕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환경을 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이런 환경을 조성해주신 신에게 항거하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인간은 결코 자신이 자기를 판결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그를까"라고 여길만한 그런 대상이 아님을 사람들은 아직도 모릅니다.
예를 들면 어린 자식이 부모에게 따집니다. "용돈을 준다고 해놓고서는 왜 용돈을 안주느냐?"라고 말입니다. 그럴 때 부모는 자식을 상대로해서 자신의 정당성을 논하거나 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 그래 내가 잘못했다. 얼마 달라했지?"라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마구 사랑을 있는대로 다 퍼내줍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에게 요구하시는 바가 이것입니다. "하나님, 이러니 제가 잘했잖아요"라든지 "하나님 제가 지금 이러니 저는 가망성이 없는 놈입니다"라고 하든지 그런 자세들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네 자신에 대해서 옳았다 그라다 라는 판정내리는 짓을 그만하라. 그저 받은 사랑이나 남들에게 무구 퍼주어라"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과거 훌륭한 선지자들과 신앙 영웅들의 무덤을 새로 손질하고 거기에다 비석을 세우는 일을 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이들이 왜 이런 짓을 했을까요? 이 모두는 후손들에게 교육하기 위함입니다. 교육해서 뭘하는데요? 교육이란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나쁜 짓을 버리고 옳은 행동만 하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인간적인 기준이 요청되겠지요. 바로 이러한 '기준'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과거 지나간 선지자들의 업적이라는 겁니다.
보고 본받으면 지금 이 시대나 후대 시대에 그 신앙과 그 훌륭함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입니다. 그들이 이것이 참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사실'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최종 재판장 되시는 예수님 보기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사실'에 정면되는 위배되는 악마의 짓으로 보는 겁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이나 다음과 같은 사고방식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즉 그들은 말하기를 자신들이 옛날 그 때 살았더라면 선지자가 원하는대로 시키는대로 다 순종하면서 살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은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면, 스스로 판단해서 옳은 쪽으로 방향을 틀어 살아갈 수 있다는 능력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즉 아담은 비롯 선악과 유혹에 말려들어갔지만 자신들 같으면 그 에덴동산 속에 살면서 선악과를 따먹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선지자 시절에도 선지자가 시킨대로 고분고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보시기에 이들은 선지자가 무엇이라 외쳤는지 조차 모르는 자들입니다. 선지자의 외침은 이러합니다. "너희들은 독사의 새끼들이다. 너희들의 함으로 지옥을 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은 자신의 잘남과 자기 의를 한시로 포기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라는 점입니다.
즉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원수'로 태어나서 지금껏 살아가고 있습니다. 로마서 8:7에 보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려고해도 도저히 굴복될 수 없는 능력을 지닌 그 어떤 존재도 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실에 위배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원래 창조하신 그 인간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태는 이미 타락된 인간들의 군집 뿐입니다. 따라서 인간들은 갈라디아서 6:8의 말씀처럼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즉 자기 육신을 살려고 하는 자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남는 것은 썩어질 것 뿐이요 쭉정일 뿐이라는 겁니다. 영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육의 존재성을 포기할 때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새두개인들은 그런 예수님을 못을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로서 아담으로부터 물러받은 독사의 본성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열심히 훌륭한 선지자들의 무덤을 보수공사하고 있습니다. 후대에 대한 교육용으로 삼고자 하면서 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의 구원이 결코 '인간의 달라짐'을 근거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십니다. 평생 인간은 십자가의 죄 씻음의 혜택을 포기하지 않고서 구원될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 오래했다고해서 스스로 자신을 지탱할 그런 입장에 놓여있지 않습니다. 무엇이 죄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제시한 사랑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겁니다. 즉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이것만이 사실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이 살아남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실이 아님을 알게 해주시고, 우리가 자신이 스스로 착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요구하는 바가 아님을 알게해조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