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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6대구강의]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27 - 내 속의 마귀설교마태복음

[26대구강의]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27 - 내 속의 마귀

26,10,05 강의 : 이근호, 정리 : 구득영

*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

오늘은 교재 235페이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여기에 보면 세례요한이 말하기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 라고 하는데,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뭔고 하니,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그렇게 도끼를 휘두르듯이 찍어버린다는 말이죠.

(마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세례요한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우리 인간에 대해서 그렇게 살벌하게 나오시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피조물인데, 이 피조물이라는 것은 그 전제가 "창조주가 따로 계시다" 라는 겁니다.

그렇게 엄연히 따로 계신다는 것인데, 그러면 여기서 더 나아가 봅시다. "우리는 피조물이다" 라고 하고, 그 다음에 나온 것이 뭐냐 하면 "내 것은 전무하다" 라는 것인데,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내 것이란 성립되지 않는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세례요한이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 라고 하는 것은, 주님께서 추수를 하려고 하신다는 것인데, 그래서 '내 것' 이라는 것은 아예 성립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따라서 그런 자기 것의 유무를 따지면서 울고불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말이죠. 즉 울고불고 할 처지가 못 된다는 겁니다.

* 내 것은 전무하다 !!

다시 말씀을 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다" 라는 것은 "창조주가 따로 계시다" 라는 것인데, 엄연히 따로 계신다는 말이죠. 그러니 "내 것은 없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 것의 있음과 없음을 가지고, 그것을 따지면서 마지막에 울고불고 할 처지가 못 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그 출발이 어디서 나왔어요? 피조물이라는 것인데, 이것을 아주 고상한 단어로 '초기화'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초기화는 뭐든지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인데, 처음으로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도끼를 들고 설치하는 이유는, 처음과 다를 때는 다 잘라버리겠다는 겁니다.

* 나를 청소해준 분을 존중하자 !!

세례요한은 구약에 속한 사람이라서 여전히 율법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율법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창조주시면서 그 창조주의 명령대로 피조물이 순종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를 따지면서, 그 하나님의 창조주 됨을 거부할 때는 하나님께서는 청소를 하시겠다고 나오신다는 말이죠.

지난 울산강의에서 청소 이야기를 했는데, 하나님은 아예 청소를 하시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를 청소해준 분을 존중해야 하는데, 이 대목이 사무엘상 2장에 나옵니다. 6절에서 8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삼상 2: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삼상 2: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삼상 2: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여기 6절에 보면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고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고" 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고" 라고 하는데, 이것은 "죽을 만해서 죽는다" 라는 뜻이란 말이죠.

그래서 인간이 죽는 것도 마땅한데, 그리고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죽은 데서 부활해서 영생을 얻는 것도 마땅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말이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죠.

* 저는 아니라예 !!

그 다음에 7절에 보면,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라고 하는데, 높인다는 것은 잘난 척, 즉 교만을 말하는 게 아니고, 주께서 남들 보기에 높여주신다는 겁니다.

자기가 높아지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고, 자꾸만 다른 사람들이 "너는 하나님을 믿고 난 뒤에 잘 됐네. 출세했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경상도 사람은 뭐라고 해야하나요? "어데예, 아니라예" 라고 나와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자기가 대추 농사를 지어서 소득을 많이 올렸다고 한다면, "주께서 대추 농사를 짓게 하셨지, 저는 아닙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것이 십일조의 의미인데, 즉 "저는 아니라예" 라는 것이 십일조라는 겁니다.

방금 이야기한 사무엘상 2장 6절에서 8절 말씀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참으로 부지런하시다" 라고 말이죠. 하나님은 쉬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상 2장 6절에서 8절에 나오는 이 작업을 하신다고, 연휴도 없고 대체 공휴일도 없다는 겁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마귀에게 가있는 인간의 주도권을 도로 찾는 작업에 있어서 주님은 멈출 줄을 모른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 알곡과 가라지 !!

그래서 여기 교재 235 페이지에 보게 되면, '알곡' 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렇게 알곡을 언급을 한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다 알곡라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알곡도 있고 가라지도 있다는 말이죠.

여기서 알곡인 사람의 경우에는 "가라지와 이 땅에 섞여서 사는구나" 라고 나오는데, 반면에 가라지는 뭐라고 합니까? 가라지의 경우에는 "내가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사는구나"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가라지, 즉 불신자는 무엇이 없어요? 알곡이란 개념이 성립이 안 된다는 말이죠. 말씀을 모르니까, 즉 배후에 악마가 있으니까, 알곡 존재 자체에 대해서 아무런 감각이 없다는 겁니다. 그것을 두고서 성경은 '죽었다' 라고 하는데, 그게 죽은 것이란 말이죠.

* 하나님의 '초기화' 작업 !!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도끼를 들고 일을 하신다는 겁니다. 즉 도끼를 들고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는, 그 추수를 행하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 너무나 부지런하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초기화' 때문에 그러한데, 하나님의 처음 영광을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런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뭐냐 하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는 그 어떤 경우라도 살 권리가 없다" 라는 겁니다.

*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 !!

왜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가 생겼느냐 하면, 하나님을 모독하고 싶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이게 악마의 본성인데, 이것을 모든 인간이 다 갖고 있다는 겁니다. 묻지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하나님을 모독하고 싶다는 것이죠.

심지어 교회까지 나오면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싶은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모독하고 싶다는 겁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들이 자신만만하냐 하면, 자기 자신이 살아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자기는 살아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알곡과 가라지의 기준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하십니까? 그 기준을 만들기 위해서, 이미 인간들은 하나님을 모욕하고 싶어서 환장했다는 말이죠. 악마가 다스리는 세계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떻게 하시느냐 하면,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다는 말이죠. 그렇게 오셔서 모욕과 멸시를 친히 경험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여기에서 무엇이 나오느냐 하면, 여기서 복음이 나온다는 말이죠.

그러니 복음은 어떤 경우에 나온다는 겁니까? 세상으로부터 모욕과 멸시를 당하는 현장에서만 복음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 현장에서만 말이죠. 성경지식을 나불나불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게 복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복음 생산은 반드시 이 조건이 맞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주님이 당하신 모욕과 멸시는 어떤 경우일까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고 하니까, 마태복음 16장 26절에서 예수님께서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네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라고 하셨다는 말이죠.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 복음의 가치 VS 나의 가치 !!

여러분, 복음의 가치가 세상의 가치보다 귀한 것은 맞지요? 복음의 가치가 세상의 가치보다 더 크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누구도 포함이 되겠어요? 자기 자신도 포함이 된다는 말이죠. 즉 "복음의 가치가 나보다도 더 크다"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16장 26절에 근거해서, 복음의 가치가 어떤 사람에게 진짜로 들어온다면, 여기에 상응하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야 정상이란 말이죠. 그렇지요? 입으로만 복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하면 실제적으로 복음이 왔을 때, 이 세상 속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지요? '나' 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복음이 들어왔다면, 지식이나 정보가 아닌 복음이 진짜로 들어왔다고 하면, 자기의 모든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다시 말씀을 해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6장에서 복음의 가치는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크다고 했는데, 그런데 세상 안에는 반드시 누가 포함이 되어있어요? 세상의 일부로서 자기가 포함이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복음이 지식이 아니고 진짜 능력으로 들어왔다고 하면, 그러면 자기 인생에 있어서 자기보다도 복음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거기에 상응하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죠. 그렇지요?

그런데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지, 거기에 대해서 어렵지만 지금 설명을 좀 하고 싶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그 정도의 실력은 되지 싶은데, 그렇지요? 어렵지만 여러분을 믿고 해보겠습니다.

* 강요된 선택 !!

저는 여기서 여러분에게 "거기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이세요" 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것을 '상징화' 라고 한다는 말이죠. 다른 말로 하면, "환경 속에 우리가 놓여 있다" 라는 겁니다. 현실, 즉 해와 달과 별, 그리고 사람들의 사회단체, 이런 것들이 다 환경이라는 말이죠.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환경 속에 놓여있는데, 그러니 이것은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즉 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것을 두고 '강요된 선택'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지금 복음의 가치가 왜 우리에게서 막히고 있는지, 거기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 복음의 가치가 왜 우리에게서 막히느냐는 것이죠. 말로는 이해를 하는데, "복음의 가치가 우리보다 크다" 라는 것을 말이죠. 그런데 막상 우리가 사는 것은 누구 위주로 삽니까? 복음이 아닌 자기 위주로 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열심히 해서 복음 위주로 삽시다" 라고 해도, 우리가 아무리 그렇게 다짐을 해도, 그런데 살아보면 모든 게 누구 위주입니까? 자기 위주라는 말이죠. 그래서 지금 그 원인에 대해서 설명을 하려고 한다는 말이죠.

그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환경에 의해서 강요된 선택을 당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 어느 것 하나도 자기가 임의로 고른 것이 아니고, 환경이 골라주는 쪽에서 자기가 하나 뽑아낼 뿐이라는 말이죠. 그게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제주도에서 컸던 아가씨가 결혼을 하는데, 그 마을에 총각이 10명이 있다면, 그것은 강요된 선택이라는 겁니다. 10명 중에서 하나 뽑는다는 말이죠. 그러면 도시에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해도, 도시에 가봤자 그 10명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강요된 선택이기 때문에,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복음을 모멸하고 상대적으로 모독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그러니 "복음의 가치가 이 세상보다도 크다" 라고 하는, 이것에 대한 반응은 무엇입니까?

이것을 반대로 바꾸는 것인데, 그래서 복음보다도 누구의 가치가 더 크다고 나옵니까? "나의 가치가 더 대단하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즉 "성경에서 무슨 소리를 하든지 간에, 알곡이 어떻고 해도 그딴 것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고, 나는 내가 중요하다"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자기 안에서 뭔가 무럭무럭 자라나기 때문인데, 환경, 즉 강요된 선택과 자기 사이에서 뭔가 뭉게뭉게 올라오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왜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 무대장치에 드라이아이스를 가지고 안개처럼 피어오르게 하지 않습니까?

* 상징, 그것을 알려주마 !!

그렇게 자기 위주로 뭉게뭉게 올라오는 게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상징'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이 '상징' 이라는 말이 상당히 어려운데, 이게 무슨 뜻인지는 감은 오는데, 그런데 막상 설명을 하려고 하면 잘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그것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상징이란 현실을 '나' 나름대로 설명하기 위해서 동원된 그 무엇인데, '나' 나름대로는 무엇과 함께 있습니까? 강요된 선택에 의해서 형성된 '나' 라는 말이죠.

그래서 상징이란 무엇인고 하니, 자기를 뭉개고 자기와 함께 있는 자기의 세계, 그런 자기의 현실관을 설명하기 위해서 동원된 이미지나 말이나 행동이나 습관과 같은 것, 그것을 두고 '상징'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사람을 때려죽이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든 범죄가 여기에서 나온 것인데, 안중근 의사도 그런 경우라는 말이죠. 이토히로부미를 죽이겠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우리 조선을 일본이 압제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조선은 어디서 나왔지요?

그분은 천주교 신자인데, 그러면 그 당시 천주교의 신부가 "복음의 가치가 나에게 형성된 그 어떤 것보다 더 크다" 라는 것을 가르쳤느냐는 겁니다. 가르치지 않았지 싶은데, 왜냐하면 천주교는 뭐냐 하면, 복음의 가치보다도 교회의 가치가 더 크다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즉 교회의 가치가 천국보다 더 크다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에는 누가 있기 때문입니까? 자기의 신념이 거기에 모여있기 때문인데, 이것을 뭐라고 합니까? 이런 교회를 두고, 조금 전에 배웠는데, 이것을 '상징'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천주교 신부는 교회가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에게는 자식과 아파트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죠. 또한 취직과 결혼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런 것이 뭐냐 하면, 현실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누구 중심으로 한다는 겁니까? 그렇게 '나' 중심으로 설명을 하는데 있어서 동원된 그 무엇은 전부 다 상징이 된다는 것이죠.

* 상징은, 곧 허상이고 환상 !!

여러분,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상징은 무엇이라는 겁니까? 상징은 곧 환상이고 허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3절에 보면,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이 말씀이 그런 의미라는 것이죠.

(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그리고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홍수 전 노아 때까지 사람들을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하다가 망한 것처럼, 인자의 날도 그러하다"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마 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 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마 24: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러면 이것을 조금 전에 말한 공식을 가지고 이해를 해봅시다. 예수님의 가치, 즉 복음의 가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인데,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무엇으로 바꿨어요? 이 '크다' 라는 부등호를 복음의 가치든 노아의 소식이든 간에,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더 크다는 것으로 그만 바꾸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무엇으로 이어집니까? 주님의 오심에 대한 모욕과 멸시와 조롱으로 이어진다는 말이죠. 그러니 주님 앞에 의인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알아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그 당시의 현실이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가짜 상징에서는 뭐냐 하면, "나는 예수를 믿는다. 하나님을 믿는다" 라고 하는데, 그것은 자기 중심의 가짜 현실이라는 겁니다. 환상이라고 할까요? 또는 상징적인 뭉개구원, 즉 자기를 지켜주기 위한 뭉개구원 안에서는 예수님도 믿고 하나님도 믿고 다 믿는다는 말이죠.

* 세례요한의 오해 !!

그러나 실제는 무엇입니까? 실제는 오직 예수님만이 알고 있는데, 즉 "이 모든 인간은 나를 개무시했다" 라는 겁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구약도 마찬가지고 신약도 마찬가지인데, 심지어 세례요한도 예수님을 잘 몰랐다는 것이죠.

세례요한이 이렇게 도끼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은 모두 다 자기 이야기가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라고 다 해놓고는, 막상 예수님이 오시니까 무엇이라고 합니까? "예수님, 꼭 그랬어야만 합니까? 왜 내가 받은 계시대로 하지 않습니까?"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게 교재 235페이지에 나오는데, 알곡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뭔가 세례요한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마 11: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마 11: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마 1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마 11: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 11:6)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 복음을 위해서 소경이 되어야 !!

그런데 어떤 소경이 스스로 눈을 뜹니까? 그런 일은 없다는 겁니다. 걷지도 못하는 앉은뱅이가 스스로 걷고, 듣지도 못하는 귀머거리가 스스로 듣게 되는 경우는 없다는 겁니다. 또한 죽은 자가 자기 힘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러니 알곡이라는 것은, 그게 교재 236페이지에 나오는데, 소경이 성령을 받으면 눈을 뜹니까? 그게 아니고, 복음의 가치를 위해서 그 사람은 소경이 되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도 자기 죄로 소경이 되는 것이 아니고, 주의 뜻대로 소경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복음의 가치를 위해서 어떤 사람은 가난해져야 하고, 또한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복음의 가치를 위해서 아들은 잘 생겨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는 아무리 못 생겼어도 말이죠(ㅋㅋ).

* '나' 말고 '예수님' !!

왜 그렇습니까? 복음의 가치가 무엇인고 하니까, 우리가 성령을 받으려고 하면 먼저 예수님이 하나님의 오른쪽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는 겁니다. 성경에 그렇게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성령을 주세요" 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우리 인간이 놓여있지 않다는 겁니다. 모든 일은 '나' 말고 '예수님' 혼자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말이죠. 어느 자리까지 말인가요? 그것이 하나님의 우편의 자리까지라는 말이죠.

* 하나님의 우편의 자리까지 !!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이 하나님인데, 그렇게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하면, 그냥 옆자리에 가면 안 됩니까? 왜 굳이 지상을 거쳐서 오른쪽으로 가야 하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지상을 거치지 않으면 오른쪽에 갈 수가 없는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끼리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말이죠.

자기 백성을 구하려면 주께서 자기 백성을 찾아와서, 그들로부터 모멸과 멸시를 받으면서, "일체 인간의 힘과 인간의 공로로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 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주님 자신의 행위로 밝혀낸 다음에,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무상으로 성령세례를 주시게 되는데, 그러면 그 성령세례로 인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죠. 그러면 여기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그런 인간의 자리는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런 것은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어떤 특징이 있느냐 하면, 방금 제가 이야기한, 즉 자기 위주로 살아가는 이 환상적인 상징세계, 그 세계가 주님을 충분히 모독하고 모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런 자들이 바로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이라는 말이죠.

"당신의 고운 눈매에 할 말을 잊었지만은 ♬" 라는 노래가 있는데, 김수희가 부른 '잃어버린 정' 이라는 노래라는 겁니다. 벌써 30년이나 지난 옛 노래인데, 이 땅에 오신 예수님 때문에 할 말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말이죠.

* 오직 예수님만이 주의 자리에 !!

여기 교재 236페이지에 보면, "성령세례는 주의 자리에 앉아야 주는 겁니다" 라고 되어있는데, 그 주의 자리에 누가 앉았습니까? 과연 어느 인간이 걸터앉았느냐는 겁니다. 다윗입니까? 누구였습니까? 없다는 겁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주의 자리에 올라간다는 말이죠.

그러니 포스트맨, 즉 우편 배달부인데, 말만 하면 안 되고 소포나 편지를 전달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진짜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하면, "나는 성령을 받았어요" 라고 안 되고, 뭔가를 내놔야 한다는 말이죠.

* 함께 하심 !!

그게 뭐냐 하면, 이 교재 236페이지서는 '함께 하심'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어제 낮 설교시간에 이것을 '동조', 또는 '공명' 이라고 했다는 말이죠. 어제 낮 설교의 초반 내용을 잠시 간추리면, 복과 저주의 차이가 무엇인고 하니, 복은 영원토록 지속된다는 겁니다. 영원토록, 즉 영생이라는 것이죠.

반면에 저주는 중간에 끊어지는데, 이게 저주라는 겁니다. 그렇게 중간에 끊어지니까, 지옥에 간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면, 애곡과 통곡이라는 말이죠. 투자를 잘못한 것인데, 부도가 날 회사의 주식을 몽땅 샀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평생을 내가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해서 나에게 투자를 했는데, 이게 그만 나가리 되었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자기가 평생을 노력한 것이 모두 다 소용이 없게 되고 말았다는 것이죠.

여기서 갈라디아서 6장 8절을 보겠는데, 누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

여기서 보면 인간 세계에서 생산되지 않는, 아무리 인간들이 모여서 회의를 해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영생' 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 영생은 인간 세계에 없다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애초부터 영생이 없는 곳으로 추방을 시켰다는 뜻이란 말이죠.

그런데 여기 본문에 보면 영생이 나오는데, 이것이 그야말로 신기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는 것이 신기해야 한다는 것이죠.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 라고, 그렇게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렇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아니, 내가 영생을 다 보다니, 내가 저주 노선에서 복의 노선으로 들어가다니, 이것이 도대체 말이 돼? 내가 무엇을 했다고 나에게 이런 일이?" 라고 하면서, 굉장히 신기하게 여겨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 인간들은 복을 받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인간들은 전부 다 자기를 위해서 살기 때문에, 즉 썩어질 양식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복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저주의 노선에서 복의 노선으로 가기 위해서는, 복된 분이 저주의 노선으로 와서 올라가는 절차를 밟게 된다는 말이죠.

* 예수님의 심문 받으심 !!

그 절차가 뭐냐 하면, 그것을 어제 낮 시간에 이야기를 했는데, "심문을 받는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즉 재판을 받는다는 말이죠. 그렇게 재판을 받으면서, 드디어 성령에 속한 사람인지 아닌지 들통이 난다는 것이죠.

제가 요령을 하나 가르쳐드렸는데, 만약에 여러분이 법정에 나가서 심문을 받는다고 하면, 그때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기억이 납니까? 여기에 요령이 있는데, 재판관이 "너는 왜 그렇게 살아?" 라고 물었을 때, 어떻게 한다고 했지요? "너는 어떻게 살지? 너는 어떤 기준으로 살아?" 라고 다시 물어보라는 겁니다.

그럴 자격이 성도에게는 있는데, 왜냐하면 성도에게는 천사도 판단하고, 그리고 이 세상의 심판관, 즉 판사나 검사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그것이 성령을 통해서 성도에게는 주어졌다는 말이죠.

물론 성도가 드물어서 그렇지, 진짜 성도는 그렇게 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재판관이 심문한 대로 고분고분 따라가지 말고, 거기에 주눅이 들지 말고, 도리어 "너는 어떻게 살아가는데?" 라고, 되물어버리라는 말이죠.

그것을 예수님께서 심문을 받으면서 시연을 하셨는데, 즉 보여주셨다는 겁니다. "나처럼 이렇게 국가에 대해서 되물어라" 라고 말이죠. 왜냐하면 국가는 상징이기 때문에, 즉 국가는 허상이라는 말이죠.

금메달을 땄다고 좋다고 예비군 모자를 삐딱하게 서고는 "나는 이제 군에 가지 않는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군에 갔다온 사람들은 뭐라고 여기겠습니까? "나는 얼마나 능력이 없으면 군대를 다 갔지? 그것도 무려 30개월을 말이야" 라고 하면서 열을 받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허상인데, 이게 다 환상이라는 말이죠. 이것을 경상도 말로 지줌 지줌 지줌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자기만의 현실이라는 겁니다. 각자가 그 현실을 가지고 온다는 말이죠.

물론 부부사이도 마찬가지인데, 공통점이 없다는 겁니다. 서로 밀고 당기고,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라는 말이죠. "네가 내 현실에 맞춰야지. 그러니 네가 나에게 따라와" 라고 하는데, 이렇게 평생을 싸운다는 겁니다.

아무튼 이렇게 심문을 받게 되면, 여기서 뭐냐 하면, 동조 현상, 즉 떨림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렇게 진동이 일어나면서, 이 세상은 중간에 끊어진다고 했는데, 세상은 그렇게 진동하면서 중간에 끊어져 버린다는 말이죠.

여러분, 전자제품이 진동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사용할 수가 없는데,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자동차를 타는데 벌벌 떤다고 하면, 그러면 계속해서 탈 수가 없다는 것이죠. 이 세상은 우리가 살 곳이 되지 못하는데, 진동하기 때문에 말이죠. 그러니 진동을 진동케 하시는 분만이 안전빵인데, 이게 복의 노선이라는 겁니다.

* 되물으세요 !!

여기서 문장을 하나 적어본다면 "사람의 말을 듣지 말라" 라는 것인데, 그 다음에 "그리고 되물으세요"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이게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님이 가신 길, 즉 심문을 받는 길의 재현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아이가 아프다는 말이죠. 그러면 주변에서 "빨리 아이가 나아야 하는데, 걱정이 많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위로를 해준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을 그대로 이 방정식에 대입해서, "당신은 당신의 아이가 아플 때 어떤 마음가짐이었습니까?" 라고 물어본다는 말이죠.

그러면 상대방은 "나는 미치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 어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라고 합니다"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초기화가 되지 않은 것인데, 그게 하나님에 대한 모멸이고 모독이란 말이죠. 복음의 가치보다도 자기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겁니다.

* '나의 능력' + '알파' !!

여기 칠판에 있는 것은 다 지우고 다시 해보겠습니다. "나의 능력 + 알파" 라는 것인데, 그러니까 그 무엇의 능력이 없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나의 능력 + 알파", 바로 이것을 남들에게 나타내면 된다는 말이죠.

"우리 아이가 아파서 나는 주님께 기도합니다" 라고 하면, 그것은 인간의 능력이라는 겁니다. 그것말고 알파, 즉 "내 자식이고 누구 자식이고 간에, 애초부터 피조물이기에 내 것이라는 것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나는 그 기준으로 삽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이 '+알파' 라는 것인데, 이게 바로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란 말이죠.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목사님, 그것은 참 어렵습니다" 라고 하는데, 이것은 어려운 게 아니고 아예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 상황 속에서 일을 계속해서 주신다는 말이죠.

이러한 원칙 가운데 여러분이 살아가게 되면, 가짜들을 여러분이 판결하게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이용해보려고 교회에 왔다가, 이제 약발이 떨어지니까 빠이빠이를 외치는데, 그것은 말씀에 복종할 의사가 없이 교회에 나왔다는 것이죠.

그것은 바로 "나는 누구에게 복종하지 않겠다" 라는 것인데, 심지어는 그 대상이 하나님이라고 해도 복종하지 않겠다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바로 복음에 대한 모멸과 모독이라는 말이죠.

* 세례, '이미 작업개시다' !!

이제 교재 237페이지를 봅시다. 여기에 "죽을 때 같이 죽었다면, 부활도 같은 부활이 되겠지요" 라고 되어있는데, 이렇게 손을 잡고 들어온 것을 '세례'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세례라는 것은, '믿어라' 라는 게 아니고, 벌써 '믿어라' 라고 하기 이전에, 이미 주께서 작업을 개시했다는 말이죠.

그것이 어떤 개시인고 하니, 하나님은 이 땅에 있는 우리를 죽이고자 이 세상에 살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세상 자체가 우리를 죽이는 용도인데,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존재 이유라는 말이죠.

그래서 "열심히 일한다" 라고 하면, 왜 그렇습니까? 열심히 일해야 힘들어서 죽을 게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러면 "놀면 되지" 라고 하는데, 하지만 "노는 게 심심해서 미치겠다. 죽고 싶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데, 죽어야 산다는 말이죠. 이 세상은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 주께서 지연시켜 놓고 만든 공간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는 가치를 위해서, 그 준비된 가치를 위해서 주께서 아주 열심히 지금도 활동하신다는 말이죠.

이 알파, 이게 주님의 능력인데, 달리 표현하면 미지의 능력이라는 겁니다. 자기가 현재 예상했던 능력이 아니고, 지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능력, 즉 미지의 능력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나의 능력 + 미지의 능력",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이게 오늘의 분량인데, 그러면 내일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나의 능력 + 미지의 능력", 이것이 무엇이 되지요? 이게 무엇으로 변하죠? '나의 능력'으로 변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옛날에 참 기도가 끝내주었다" 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지사라는 겁니다.

그러면 오늘이 되었다는 말이죠.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무엇입니까? 이게 '나의 능력'도 있으니까, "나의 능력 + 미지의 능력(알파)", 그렇게 또 준비가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미지의 능력이 살살 꼬드긴다는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하는 성경말씀이 있다고 하면, 그 한 구절을 가지고 계속해서 써먹는 게 아니고, 매일같이 성경말씀이 새롭게 새롭게 나타난다는 겁니다.

* 잠자는 사람을 깨운다 !!

여기 교재 237페이지에 보면 "잠자는 사람을 깨운다"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깨어나서 보니 예수님이 자기 대신 돌아가셨다는 것을 안다" 라는, 그런 의미라는 겁니다. 깨어나서 십자가를 믿고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성령을 받아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벌써 대가를 다 치렀다는 겁니다. 즉 "내가 믿는 공로로 내가 구원을 챙기는 게 아니고, 믿기 전부터 벌써 다 주님이 하셨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아기의 기저귀는 부모가 준비하는 것이지 아이가 준비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죠. 아이가 태어나서 겨우 기면서 "맘마, 돈을 좀 주세요. 마트에 가서 기저귀를 사와야 합니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챙겨야지요" 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이큐가 높은 정도가 아니고 괴물이라는 겁니다(ㅋㅋ).

그러면 부모는 몇 살까지 챙겨줘야 할까요? 그 결정을 자식이 내리지 못하는데, 부모는 자기가 눈을 감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이죠. "제발 나를 좀 이용하거라" 라는 것인데,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로 해야하는데, 부모로서 폼을 내는 정도까지만 해야지, 감당치 못할 것까지 요구하면 곤란하다는 말이죠.

부모는 계속해서 부모 값이라는 자기 의를 지속시키기 위해서, 자식이 요구하는 바를 거절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이 세상에는 거절하는 부모도 있기는 있겠지만, 아무튼 부모의 마음은 항상 "다 못해줘서 미안하다"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말이죠.

* 제발, 나를 죽이지 마세요 !!

이제 교재 239페이지를 봅시다. 여기에 "(제발) 나를 죽이지 마세요" 라고 되어있는데, "설교든 기도든 다 치우고, 기도원에 3박 4일을 금식하든 말든 다 치우고, 딱 한마디로 하면 무엇입니까?" 라고 한다면, 그것은 "나를 죽이지 마세요" 라는 겁니다.

이게 누구의 음성이지요? 물론 마귀의 음성인데, 주께서는 마귀가 들어있음을 들추어낼 때까지 계속해서 압박을 가한다는 말이죠. 즉 "네 안에 괴물이 들어있다" 라는 것인데, 바로 그 괴물의 음성이 무엇이라는 입니까? "제발 나를 죽이지 마세요" 라는 겁니다.

왜 마태복음 8장에 보면, "나를 괴롭게 하려고 왔으니까?" 라고 귀신이 들린 자가 이야기했다는 말이죠. 그야말로 귀신다운 것인데, 즉 "나를 죽이지 마세요"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이게 마귀의 보이스라는 말이죠.

(마 8:29)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것을 무엇으로 바꾸느냐 하면,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라고 하는데, 주님께서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마귀에 속한 자기 백성을 끝까지 밀어붙여서, 마귀의 음성이 튀어나오도록 조치를 해주신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치밀한데, 주님의 계획은 빈틈이 없다는 것이죠.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 인간은 숨쉬는 동안 단 한 순간도 "나를 죽이지 마세요" 라는 것을 포기한 적이 없는데, 인간에게서 나온 모든 말은 무엇인고 하니, "나를 죽이지 마세요" 라고 하는, 이 악마의 말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치장하고 포장하는 말들이고, 또한 그런 행위들이고 행동들이라는 겁니다.

아무리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주고 해도, 또한 그 어떤 성경구절을 동원하고 봉사를 하고 헌금을 해도, "이렇게 잘나고 훌륭한 나를 설마 하나님이 죽이겠어? 죽이지 않겠지" 라고 하는, 그게 동기부여가 되어서 나오는 행동들이라는 말이죠.

* 물세례와 성령세례 !!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것을 죽이는 방법으로 1단계와 2단계를 준비했다는 겁니다. 1단계는 뭐냐 하면, '물세례' 라는 말이죠. "물 속에 들어가" 라고, 완전히 해병대라는 겁니다. 그리고 2단계는 '성령세례' 라는 것인데, 이 성령세례 이전에 불세례가 있다는 말이죠. 그것을 것을 같이 보면, 불세례는 2단계라는 것이죠.

바로 여기 1단계에 예수님이 합류를 하시는데,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사 물 속에, 즉 사망 속에 있는 자기 백성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성령세례를 받은 자로서 시범을 보이고, 그리고 하늘에 올라가서 성령을 보내서, 현재의 "나를 죽이지 마세요" 라고 하는 여기서부터 끄집어내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3장 11절에 보면,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라고 하는데, 이게 사도바울의 고백이라는 말이죠. 어찌하든지 간에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서 십자가로 간다는 겁니다.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 3: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성경에서 나오는 사도들의 이런 발언들을 보게 되면, 여러분은 과연 무슨 생각이 듭니까? 왠지 뭔가 낯설어 보이고, 자기가 경험한 신앙세계와는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 않던가요? 그렇지요?

그래서 "사도는 역시 사도다. 참 훌륭하다. 내가 넘볼 경지가 아니다. 그래, 당신은 사도로서 살고, 나는 소박한 나의 소신대로 살고, 그러면서 당신을 존중해줄 테니까, 그냥 한번 봐주소. 내가 성경대로 살지 못해도 봐주소" 라는, 그런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죠.

* 가능성(可能性) !!

하지만 사도의 말 하나 하나는 다 율법인데, 지금은 없어졌지만 옛날에 국민학교 통지표에 보면 '수우미양가' 라는 것이 나오는데, 선생님이 성적을 그렇게 매겼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의 '가(可)' 라는 것이, 그게 '가능성' 이란 말이죠.

어떤 학생이 과목마다 모두 '가'를 받으면, 너무 기가 죽으면 곤란하다는 말이죠. 그래서 "너의 가능성 폭이 남들보다 더 높다. 1등은 불쌍해. 이런 희망이 없잖아" 라고, 공부를 못해도 격려하는 차원에서 '가'를 붙여놓았다는 겁니다.

지금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고 하니, 사도바울이 전한 모든 말씀은 우리의 오만과 교만, 즉 "복음이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이제 빠이빠이다" 라고 하는 마음 자세, 거기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여기 교재 239페이지에 나오는 "나를 죽이지 마세요" 라고 하는 것은, 지금 잘하고 못하는 차원이 아니라는 겁니다. 마귀가 그동안 얼마나 인간을 속여왔는지 모른다는 말이죠. "열심히 해라. 말라" 라는 차원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죠.

악마가 자꾸만 "네가 열심히 하면" 라고 하면서 선악과를 집어넣는 이유가 뭐냐 하면, "네가 열심히 노력하면 악에서 선한 쪽으로 가게 되고, 그렇게 선한 쪽에 가게 되면, 주께서 천국에서 구원할 때 착하다는 이유 때문에 앞 순위로 건질 가능성이 높다" 라고, 그런 식으로 가르쳐 왔다는 겁니다.

누가 그렇게 했다는 겁니까? 마귀가 그렇게 했는데, 마귀가 꽂혀있는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말이죠. 거기서 만들어진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종교인데, 그것이 곧 기독교이고 교회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교회에 다니고 무엇을 해도, 심지어 성경을 보고 설교를 들어도 어떻게 나온다는 겁니까?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 입장에서, 내가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내가 노력하는 만큼 좀 가상히 여겨서, 제발 나를 좀 살려주세요"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 출발점은 죽음 !!

그런데 여기에서 살려줘 버리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된다는 겁니다. 살려줘 버리면,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라고 하는 그 절차가 우리 안에서 구성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사망에서 생명으로 가려면,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어디서 출발해야 합니까? 그 출발점이 죽음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시범을 보였는데, 즉 "내가 죽는 십자가에서 출발하자. 십자가에 가야 부활이 이르잖아"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리고 사도바울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게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것이죠.

* 환경이 곧 전도 !!

우리가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여기에 대해서 "목사님, 이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을 합니까?" 라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전도라는 것은 누구 소관이냐 하면, 전도는 어디까지나 주님 소관이라는 말이죠. 인간들의 전도는 없다는 겁니다.

환경이 전도인데, 성도가 된 것은 성령을 받은 새로운 환경, 즉 '+알파', 그 미지의 능력에 휩싸였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그 미지의 능력대로 이 세상에 그냥 존재할 뿐이라는 겁니다. 전도가 아니고, 그냥 존재라는 말이죠.

성령을 받은 자는, 그 성령이 능력이 있기 때문에, '+알파', 즉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능력, 주님의 능력이 왔기 때문에, 그러면 이 능력이 어떻게 할까요? 이 세상은 전체가 범위가 큰데, 거기에 비해서 이 '+알파'는 작고, 세상의 범위는 크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악마의 세계가 아닙니까? 곧 지옥이란 말이죠. 지옥에 이것을 풍덩 담가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왜 시커먼 보이차 티백을 물 속에 집어넣으면, 투명하던 물이 어떻게 됩니까? 시커멓게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그냥 존재할 뿐인데, 그런데 악마의 세계에서는 전부 게임이라는 겁니다. 이기고 지고 이기고 지고, 그렇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것은 그것과는 초월적이라는 것이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 대통령 투표, 그냥 골라잡으세요 !!

지난 수요일에 올려놓은 동영상에 대해서 어떤 분이 댓글을 달았는데, "목사님, 대통령을 뽑는 투표를 아무나 뽑으라고 하는 것은 너무 나간 게 아닙니까? 세례요한도 국가에게 목을 배였는데,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합니까?" 라고 말이죠

그래서 제가 아주 친절하게 길게 답변을 달아놓았다는 겁니다. "세례요한이 목을 배인 것은 십자가 사건 이전의 이야기이고, 십자가 이후는 달라요. 공간이 달라요. 사도바울이 대통령 투표에 대해서 어떻게 했을까요? 성도가 투표를 하는 경우에, 첫 번째로 후보의 내력을 아는 게 불가능합니다" 라고 말이죠.

계속해서 "하나의 인생이 있다면, 그 인간이 형성되는 것에는 수 많은 변수들이 있는데, 그것을 일일이 다 체크할 수 없어요. 그 사람이 7살 때, 17살 때, 27살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요. 모든 것이 썰인데, 그리고 그 변수 옆에 또 다른 후보들의 변수가 있고, 이런 변수를 남들이 어떻게 알아요? 그러니 이게 뭐냐 하면, 자기 선호도에 입각해서 투표하면 됩니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누구의 선호도라는 겁니까? 자기의 선호도, 즉 "내가 마음에 든다" 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게 진리입니까? 투표하는 것 자체가 진리인가요? 아닌가요? 이것은 진리가 아니고, 이것은 상징적인 행위라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7장에서 "아내가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그리고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라고 했는데, 왜 그렇습니까? 세상은 전부 다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고전 7: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고전 7: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고전 7: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이 세상은 없어지기 때문에, 누가 되든 간에 하나님의 계획은 어떻다는 겁니까?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그리고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 세상은 파괴될 대상이라는 말이죠. 그런 사실을 느긋하게 바라볼 때, 투표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냥 재미있는 게임이니까 아무나 골라서 찍으면 된다는 겁니다.

그냥 자기 선호도에 의해서 하면 되는데, 그러니 여기에서 "투표를 잘했다" 라고 하면 곤란하다는 말이죠. 의미가 없다고 여기면 되는데, 사도바울이라면 누구를 찍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의미를 주게 되면, "내가 대통령이 되도록 뽑았으니까, 하나님은 나를 죽이지 마세요" 라고, 결국 그렇게 연결이 된다는 겁니다.

* 저들은 개코도 모릅니다 !!

그게 교재 239페이지에 나오는데, "'아, 내가 나쁜 짓을 하니 저 사람이 돌을 던지는구나' 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라고 되어있다는 말이죠. 이게 스데반 집사님의 이야기인데, 그분이 무슨 나쁜 짓을 했습니까? 그게 아닌데, 돌에 맞아 죽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돌에 맞아 죽을 때, 스데반 집사님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자기가 이렇게 주님의 복음으로 인해서 돌에 맞는 것을 굉장히 영광스럽게 생각했다는 말이죠. "왜 이런 복을 저에게 허락하십니까?" 라는 것인데, 그래서 준비된 집사님의 말은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저들은 개코도 모릅니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기죽지 않고 주눅들지 않아야 하는데, 그래서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재판을 받으면서도 "그러면 너는 어떻게 사는데?" 라고, 그렇게 되물어야 한다는 말이죠.

* 사도바울의 삶의 목적 !!

이제 교재 240페이지를 보겠는데, 여기에 사도바울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지가 나온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기 위해서 산다"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고린도전서 1장 17절 말씀이라는 것이죠. 복음의 가치가 온 우주보다 더 크다는 고백이 사도바울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고전 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렇게 사도바울은 "십자가를 헛되지 않기 위해서 삽니다" 라고 하는데, 그 다음에 구체적인 것이 12절과 13절에 나온다는 말이죠. 사도바울이 "내가 너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라고 되묻는데, 그 정답은 무엇입니까?

(고전 1:12)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고전 1: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 나는 십자가를 지지 않았다 !!

사도바울 자신이 십자가에 박혔다는 겁니까? 아니라는 겁니까?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는 십자가에 박히지 않았는데, 그러면 어떻게 구원을 받았을까요? 예수님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라고 하셨는데, 즉 "같이 십자가를 져야 구원이 된다" 라는 확정된 공식을 내놨다는 말이죠.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그런데 사도바울은 뭐라고 합니까? "나는 십자가를 지지 않았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정답은 뭐냐 하면,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라고 한다는 말이죠.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내가 십자가를 지겠다고 하는 것도 죽여버려라" 라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의 십자가 뭐라고 한다는 겁니까? "이제 너의 십자가는 없어. 내 십자가야" 라고 한다는 것이죠.

그러니 "내 십자가의 길로 가겠습니다. 주의 말씀도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하는 '나'를 죽여버리는 것이 십자가고, 미지의 능력이라는 겁니다. 거기서 나오는 것이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라는 고백인데,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이죠.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이 땅에 선택의 자리는 없어 !!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요한복음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라고 했을 때, 그 출발점을 성급하게 자꾸만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여기 중간에 서서 두리번거리면서 "어느 것을 선택할까? 아, 여기에 생명이 있네. 생명을 선택해야지" 라고 말이죠.

왜 그렇습니까? 이 땅에는 그런 자리가 없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은 자꾸 설명을 하고 해석을 하고 해명을 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강요된 선택이라는 겁니다. 이미 마귀로부터 강요되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말이죠.

그래서 마귀가 우리를 보고 뭐라고 합니까? "너는 사망인 지옥에 갈래? 아니면 천국에 갈래? 그래, 천국에 간다고? 참 잘했어요" 라고 하는데, 그렇게 마귀가 부추긴다는 겁니다. 그러니 성경해석을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 복음은 상징이 죄라는 것을 까발려 !!

여기 교재 241페이지에 보면 "아볼로파, 게바파, 사도바울파, 이런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라고 되어있는데, 그러니까 장로나 감리교,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죠. 그런 것은 하나의 상징인데, 상징은 복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복음은 그 상징이 죄라는 것을 까발리는 것인데, 그러니 "나는 상징이 없다" 라고 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죠. 상징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강요된 선택인데, 즉 우리의 환경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환경에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그러면 우리가 사는 이유가 과연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죽이기 위함인데, 그런데 하나님은 그냥 죽이지 않고 무엇을 짓게 해서 죽입니까? 매일같이 무엇을 짓게 하지요?

죄를 짓게 만들어서 우리를 죽이는데, 그렇게 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복음의 가치가 나의 현실보다 더 우세하구나" 라는 것을 발견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는 말이죠.

* 혼미케 하는, '세상 신' !!

그 다음으로 여기 교재 243페이지에 보면, "성령을 받지 않으면 예수를 믿을 수 없습니다" 라고 되어있는데, 교회에 다니면서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다 아는 내용이라고 여긴다는 겁니다.

여기서 고린도후서 4장 3절과 4절을 보겠습니다.

(고후 4: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그러니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지능이 떨어진다든지 공부를 게을리 한다든지, 그런 것과 관계가 없다는 말이죠. 성경공부를 적게 해서 복음을 모르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죠.

인간 주변에는 뭔가 둘러싸고 있는 막강한 힘이 있는데, 그 힘이 세상 신이라는 겁니다. 이 세상 신을 인간들이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인간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이죠. 그렇게 믿기 못하기 때문에, 자꾸만 믿는다고 우긴다는 것이죠.

여러분, 인간의 말을 믿지 마세요. 그 사람에게서 무엇이 나오는지, 그게 중요한 것이지, 그 사람이 나불거리면서 성경에 있는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그것을 믿지 말라는 겁니다. 오히려 뭔가를 감추어놓고 있다는 말이죠. 자기가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는 것이죠.

* 나는 불신앙이었습니다 !!

여기 교재 243페이지에 보면, "자기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을 수 없습니다" 라고 되어있는데, 그러니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겁니다. "내가 믿어서 구원을 받고 싶어도, 이것은 나에게는 해당이 없는데, 나는 그게 불가능했습니다" 라고, 과거 동사를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나는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나의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불신앙이었습니다" 라는 것, 그것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아, 저 분은 누가 함께 있구나" 라고 하게 되는데,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을 함부로 얕잡아보면 안 된다는 말이죠. 그 사람의 믿음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고, 그 사람이 아닌 말고 다른 분이 같이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런 성도를 함부로 대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이죠.

목사에게 대들어서 저주를 받는 게 아니고, 사실 목사에게는 대들어도 괜찮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은 목사가 거의 없기 때문에 말이죠. 성령을 받았으면 자기가 목사라고 우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성령을 받았으면 예수님만 자랑하지, 자기가 목사인 것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여기서 갈라디아서 5장 10절 말씀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갈 5: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여기에 보면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라고 되어있는데, 주의해야 되겠지요? 그러면 자기를 건드리면 심판을 받습니까? 심판을 받아요?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가 방금 답변을 해놓고도 진도를 나가지 못하겠는데 말이죠.(ㅋㅋ)

* 너, 까불지마 !!

성경 말씀을 전하고 나서 "나를 건드리는 심판을 받습니다" 라는 소리를 하면 곤란하다는 말이죠. 왜 그렇습니까? "나는 혼자 있는 게 아니고, 주님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라는 겁니다. 자기는 이미 심판을 받았는데, 그 다음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라는 것, 그것은 누구의 몫이죠? 함께 계신 주님의 몫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자기가 남들에게 욕도 먹고 심판을 받는 것에 대해서, 섭섭해할 이유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혀 없다는 겁니다. 그게 날아가 버렸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 말씀조차도 현재 성도의 경우에는 "너, 까불지마" 라는 이야기로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아니고, "이것은 인간들이 들어야해" 라고 하면, 주님께서는 "바로 네가 들어야해"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나'를 건드리면 저주를 받습니까? 도대체 그 '나' 라는 것이 뭐냐는 겁니다. 자기가 뭐라고 함부로 이 말씀을 자기에게 적용을 시키느냐는 말이죠.

오늘 이 본문을 읽지 않았으면 큰일이 날 뻔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이제 나를 건드리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내가 관찰해봐야지. 이제 나를 괴롭히던 저놈의 원장을 한번 살펴보자"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원장은 멀쩡하다는 것이죠(ㅋㅋ).

그러니 "자기를 부인하라" 라고 하는 것은, 함께 동행하시는 주님께서 날마다 어떻게 하신다는 겁니까? 그 말씀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낮추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나, 이것을 다 가질래" 라고 하는, 그런 것은 안 된다는 말이죠.

* 사도바울의 마귀 이야기 !!

여기 교재 245페이지에 보면, 사도바울이 마귀 이야기를 하는데, 여러분은 마귀가 보고 싶지요? 그러면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마귀의 모습이 뭐냐 하면, 특징이 양의 탈을 썼다는 겁니다. 양의 탈을 말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짐과 순결함과 순종함, 바로 그 탈을 썼다는 겁니다.

우리는 탈이라고 하면 '하회탈' 이라는 말이죠. 얼마나 민중들이 살기가 힘들었으면 그야말로 활짝 웃는 탈을 만들었겠느냐는 겁니다. 그 탈을 쓰고 누구를 욕합니까? 양반을 욕한다는 말이죠.

'페르소나' 라는 말이 있는데, 즉 모든 인간은 배우들이라는 겁니다. 자기 내부를 감추고, 자기가 부러웠던 자의 이미지를 자기의 탈로 만들어서, 마치 자기가 그런 생각인 양, 그런 사람인 양, 그렇게 위장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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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소나(Persona) - 라틴어로 고대 로마의 가면을 의미한다. 유럽 제어에서 사람(person), 인격/성격(personality)이라는 말의 어원이 되고, 심리학 용어가 되었다. 예컨대 현대의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에서는 라틴어로 '사람'이라는 뜻의 '페르소나(persona)'라는 단어가 그대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으며, 그 외에 다른 국가들의 언어에서는 통상적으로 '이미지 관리를 위해 쓰는 가면'을 의미한다.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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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를 조심하자 !!

어제 오후 시간에 잠깐 들은 이야기인데, 어떤 남자가 여자가 자기를 좋아해서 졸졸 따라다니면서 스토킹을 하는 줄로 알고 그만 죽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같이 듣고 있던 집사님들이 "조심해, 조심해지"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하지만 다른 누구를 조심할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조심하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에게는 또 다른 페르소나, 즉 가면이 있다는 말이죠. 모든 것은 이 상징, 즉 환상 때문인데, 그래서 자기 자신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가면을 쓴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지금도 살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왜 지금도 이렇게 살아있느냐는 말이죠. 그것은 바로 "아직 네 안에 마귀가 있다" 라는 것, 그것을 마지막까지 들추어내기 위해서 살아있게 해주신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꾸만 숨기기 때문인데, 그래서 주님은 까발릴 대로 까발리기 위해서 계속 살려주다가, 나중에 어떻게 합니까? 우리를 결국 요양병원으로 보내버린다는 말이죠. 그러면 요양병원에 가서 드디어 만세를 부르는데, 즉 "나를 건들면 다 죽여버린다"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부터는 거의 괴물, 즉 짐승이 된다는 것이죠.

* 인간의 초기화 !!

이제 마지막으로 '인간의 초기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는데, 우리가 어디까지 낮아져야 될까요? 어디까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하느냐는 겁니다. 죄송합니다만 한번 따라해 주세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바로 이것이 '나' 라는 말이죠. 그 이상은 생각하지 마시고, 빨리 이 자리를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사람은 무엇을 따라 산다는 겁니까? 이성도 아니고, 학식도 아니고, 인간은 자기 기분을 따라 살아간다는 말이죠. 감정을 따라서 산다는 겁니다. 충동을 따라서 살아가는 게 인간이라는 말이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버지, 우리가 잘난 척을 해봤자 속에는 괴물이 들어있는데, 이 사실을 주님 앞에 고백할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남이 어떻고 저떻고 하기 이전에, 나부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사실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노골적으로 들추어내었사오니, 이러한 십자가가 십자가가 되게 하는 데만 쓰여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Swallow it if it's sweet, spit it out if it's bitter !!

2026,10,09 오후 3시에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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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