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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왕과 제사직의 결합 261007우리교회열왕기하

왕과 제사직의 결합(열왕기하 14:5-7)

왕과 제사직의 결합

2026년 10월 7일 본문 말씀: 열왕기하 14:5-7

(14:5) 나라가 그 손에 굳게 서매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14:6)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14:7) 아마샤가 염곡에서 에돔 사람 일만을 죽이고 또 셀라를 쳐서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왕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무슨 권리로요? 사람이 사람을 죽여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면 나라 내에서 성질난다고 함부로 사람 죽이는 일이 빈번할 겁니다. 복수의 복수가 연발로 일어날 겁니다. 그래서 사람을 죽인 살인자는 누군가를 잡아다가 사형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 죽입니까?

왕이 나서서 죽입니다. 무슨 근거로 죽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아마샤 왕은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한대로’ 사람을 죽였다는 겁니다. 그 근거는 신명기 24:16에 나옵니다.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문제는 이 율법을 시행하면서 시행하는 당사자는 이 율법이 담긴 의미를 충실해서 실행에 옮길 자격이 과연 있느냐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아마샤가 죽은 자들은 아버지 요아스 왕이 통치 하에 신복들이었습니다. 여기에 관한 내용은 역대하 24장에 나옵니다. “요아스가 크게 상하매 적군이 버리고 간 후에 그 신복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인하여 모반하여 그 침상에서 쳐 죽인지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대하 24:25)

그런데 이처럼 아마샤 왕의 아버지가 죽는 이유도 같이 나와 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인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아스 왕은 제사장 여호야다의 죽음 이후에 마음이 돌변하면 신하들과 더불어 우상 섬기기로 정책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야다의 아들인 선지자 스가랴를 요아스 왕에서 보내었습니다.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고로 이 죄로 인하여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저에게 보내사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저에게 경계하나 듣지 아니하니라 이에 하나님의 신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저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을 좇아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였더라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비 여호야다의 베푼 은혜를 생각지 아니하고 그 아들을 죽이니 저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대하 24:18-22) 즉 스가랴 선지자가 죽어가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그 기도의 응답에 의해서 갑자기 아람 나라가 쳐들어왔고 왕이 신복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면 이는 왕이 죽을만 해서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요아스 왕 죽인 신복들에게 그 어떤 살인죄를 물을 입장이 아니잖습니까? 그렇다면 자식 입장인 아마샤가 신복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범죄한 우리 아버지 요아스 왕을 하나님의 뜻에 의해 적절하게 살해할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상을 내릴까요?”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하면서 하나님의 법과 뜻을 도용해서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세울려고 합니다. 아버지를 죽인 범인들에게 자신의 복수심을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허락한 범위 내에서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식들에게는 아버지의 죄를 묻지 않았다’는 선에서 멈춘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왜 왕은 출애굽기 20:5의 말씀을 적용해서 자신의 복수를 정당화하지 않았느냐 하는 겁니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참으로 자신이 선왕의 신복들을 사형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내려지는 저주라면 자식이 아니라 3,4대까지 죄를 물어서야 했습니다. 따라서 과연 인간은 인간을 죽일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가 있느냐를 새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창세기 2:17에 의해서 인간이 이미 죽어 있는 자들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따라서 죽을 자가 누구를 죽일 자격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경우, 과연 죽은 자를 하나님께서 죽였는지 아니면 인간이 죽였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의 앞으로 끌어왔으나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민 15:32-35) 당연히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죽여셨다고 말할 겁니다.

그렇다면 다음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행 7:55-58)

스데반 집사님의 죽음의 경우를 통해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미리 나서서 자기 사람을 안 죽게 막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일관된 하나님의 진실을 스데반 집사님의 죽음을 통해서 보여주시려고 합니다. 그 진리는 바로 이러합니다. 진짜 하나님께서는 ‘죄인은 반드시 죽이신다’는 하나님과 죄인으로부터 도리어 ‘반드시 죽임을 당하신다’가 결합된 하나님이십니다.

즉 왕으로서 죄인들을 율법의 저주에 입각해서 벌하시면서 도리어 그 저주받을 죄인들로부터 희생을 당하시는 기능을 율법에 준해서 완성하게 됩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죽이는 이유는 그 어떤 경우라도 자신이 ‘가해자’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어서 이미 죽은 자’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 죽음에 죽게 하심을 결과로 놓고 이런 사건을 위해 필요한 원인들을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계속 발생시켜 오신 겁니다. 이를 통해서 바깥에 있는 율법이 인간 세계 안으로 들어와서 제사장직을 완수하시는데 그 구체적 인물이 바로 멜기세덱이었습니다.

‘왕+제사장’이었습니다. 이 계열에 따라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 완성으로서의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허무합니다. 일시적 사랑이 아니라 영원한 사랑은 예수님이 주시는 사랑 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사랑은 죄인 중의 괴수인 사울마저 주어짐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36강-열왕기하 14장 5-7절(왕과 제사직의 결합) 261007-이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열왕기하 14장 5절에서 7절까지입니다.

열왕기하 14:5-7

“나라가 그 손에 굳게 서매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아마샤 이야기입니다. 아마샤가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므로 백성들이 높은 산의 산당에 가서 자기 소원들을 품은 이방 종교를 용인하는 가운데 있었습니다(왕하 14:3-4). 그러나 아마샤가 한 일이 나오는데 오늘 본문 5-6절에, “나라가 그 손에 굳게 서매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라는 이 대목에 대해서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이 사람을 죽일 권한이 있느냐?’하는 문제를 생각해 봐야됩니다. 왕 자기가 뭔데 사람을 죽여요? 자기가 뭔데, 왕이면 왕이지 사람을 자기 맘대로 죽일 수 있느냐는 겁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없다. 사람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천벌을 받는 식으로 –번개가 떨어진다든지, 홍수가 난다든지-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사람을 죽일 수 있지 인간이 어떻게 같은 인간을 죽이느냐?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만이 인간을 죽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도전하는 행위가 되지 않느냐?’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어떤 나라에서 일체 국가의 그 누구라도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면 그 나라 사회는 엉망이 되겠지요. 성질나서 사람을 죽여버리겠지요. 성질나서 죽였는데 그 살인자를 죽일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한다면, 그러면 나도 성질나서 사람 죽이면 그다음에 누가 나한테 살인자라고 감옥에 집어넣는다든지 보복할 것인가? 없다.

그러면 나라가 엉망이 될 겁니다. 어떤 강도를 만나서 어떤 자식이 죽으면 그 자식의 부모가 강도를 찾아가서 죽여놓고 “너 사람 죽였잖아. 나도 너 죽인다. 내 자식 죽인 강도를 죽인다. 뭐 어때서? 네 자식이야? 내 자식이지.” ‘그런 식으로 복수를 하는 것에 대해서 제삼자는 입 다물고 가만있어. 저 인간이 내 자식을 죽였기 때문에, 내가 내 손으로 저 인간 죽이겠다. 이게 정당하고 정의 아닌가?’ 이렇게 나오면 나라 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엉망이 되겠지요.

예를 들어봅시다. 군대를 능멸한 사람이 있다, 합시다. 아시안게임 축구 국가대표 선수가 예비군 모자 삐딱하게 쓰고 “나 군대 안 간다”라고 나왔을 때 군대를 능멸한 그 인간을 누가 죽여야 돼요? 군대가 나서서 죽여야 되겠지요. 그러면 결국 이것은 사람이 사람을 죽일 권한이 있다는 논리, 그런 결론에 도달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아마샤 왕이 자기 아버지를 죽인 자에 대해서 복수를 하면서 그냥 복수하는 것이 아니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복수했다는 거예요. 모세의 율법책이 뭐냐 하면, 신명기 24장 16절에 나옵니다.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여기 율법에 대해서 나옵니다. 율법은 누가 썼느냐? 하나님이 썼지요. 오늘 열왕기하 14장 본문을 다시 보게 되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5-6절에,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게 어떤 뉘앙스냐 하면, ‘사돈의 팔촌까지 다 죽이지 않았으니 얼마나 훌륭하냐?’ 이런 뜻이잖아요.

‘감히 우리 아버지 왕일 때 너희들이 죽였잖아. 죽였으면 내 성질상 너희만 아니고 너희 씨족을 멸하고 능지처참할 것이다. 그래도 내 속이 안 풀린다.’ 이 정도 돼야 우리 아버지 원수에 대해서 본때 보이듯이 하는 것인데 아마샤 왕은 얼~마나 맘이 어진지 아버지를 죽인 자만 죽이고 그 자식들은 죽이지 않았다. 그래서 착하다는 이야기에요?

다 죽일 수 있는데 많이 봐주고 많이 배려했다는 이야기에요? 그래서 임금님이 자비가 하늘에 닿았다는 그런 뜻입니까? 이 대목에서 아마샤의 자기 아버지가 죽은 이유를 알아야 해요. 그 이유가 열왕기하 12장 20-21절에 나옵니다.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서 모반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궁에서 저를 죽였고 저를 쳐서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이었더라.”

이 본문에 보면 그야말로 신복들이 요아스 왕을 죽인 것 맞습니다. 그런데 역대하 24장에 보면 왜 죽었느냐 이 말이에요. 왜 요아스는 신복들 손에 죽었느냐? 그게 역대하 24장 25절에 나옵니다. “요아스가 크게 상하매 적군이 버리고 간 후에 그 신복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인하여 모반하여 그 침상에서 쳐 죽인지라.”

이게 지금 약간 복잡해지려고 하지요? 요아스 왕이 오늘 본문의 아마샤의 아버지입니다. 요아스 시대에 아람 군대가 와서 유다 나라를 박살 내 버리고 물건들을 노략질했고, 전쟁에 패했습니다. 그런데 역대하 24장 24절에는 그 이유가, 아마샤의 아버지인 요아스 왕이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벌을 내려서 아람에 패하게 만들었고, 또 요아스가 부상을 당해서 돌아오는데 그의 신복들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요아스 왕을 죽여버렸다고 나옵니다.

잘 죽었네요. 잘 죽었잖아요. 잘 죽었고 잘 죽였네요. 신복들이 잘 죽였잖아요. 아람 나라가 갑자기 쳐들어오고 신복들이 요아스 왕을 죽인 이유가 뭐냐? 제사장 여호야다가 있을 때 요아스 왕이 어려서 어른이 시키는 대로 군소리 없이 따박따박 잘 따라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정상이라 여겨서 여호야다 제사장과 어린 요아스 왕이 한 세트가 되어서 왕위가 멀쩡하도록, 이방 나라의 공격이 없도록 조치를 한 거예요.

그런데 제사장 여호야다가 130세에, 오래 살기는 살았는데 죽고 난 뒤에는 달라졌어요.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의 말을 듣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고로 이 죄로 인하여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저에게 보내사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저에게 경계하나 듣지 아니하니라”라고 역대하 24장 18, 19절에 있습니다.

또 20절에는 “이에 하나님의 신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저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죽은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와서 “임금님! 왕년에는 여호와를 잘 섬기다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우상 섬기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니까 요아스 왕이 건방지다고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돌로 쳐 죽여 버렸어요. 어디서? 성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을 좇아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였더라”(역대하 24:21).

자 이야기가 이렇게 돼요. 여호야다 제사장이 있었다. 왕은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유다 나라를 제사장이 다스리면서 “왕이 할 일은 성전을 지키는 겁니다. 성전에서 죄용서 받고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니 늘 하나님과 만나야 합니다.” 그렇게 했는데 여호야다가 죽고 난 뒤에 요아스가 자립심이 생겨서 ‘나도 고집이 있다. 그동안 너무너무 참았다. 이 나라를 내 거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 했고, 또 부하들이나 방백들이 “우상 섬겨도 괜찮습니다. 나라가 튼튼한데 쉽게 무너지겠습니까?” 이렇게 죽이 맞아서 우상을 섬겼더니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아람 나라 보냈고, 전쟁에서 패배했고, 부상 입어서 돌아오는 길에 그의 부하들이 요아스 왕을 죽여버렸습니다.

어떻습니까? 죽을만하지요. 여기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뭐냐? 죽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죽인다. 하나님만이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것도 하나님의 율법대로. 그러면 율법대로 죽었잖아요. 누가요? 아마샤의 아버지 요아스가. 그런데 율법에 의해서, 다른 말로 하나님에 의해서 죽었는데 그 죽인 신복을 아들 아마샤가 복수한답시고 신명기 24장 16절을 거론하면서 죽여버렸어요. ‘우리 아버지 왜 죽였냐?’ 하고 죽여버렸어요.

“네 아버지는 죽을만해서 죽었잖아.” 하나님께서 치셔서 사람을 통해서 죽였다는 말이지요. 따지려면 하나님한테 따져야지. 그리고 네 아버지 요아스는 하나님이 친히 치셔서 죽을만해서 죽였잖아요. 죽을만해서 죽였는데, 아마샤는 신명기 24장 16절의 율법에 근거해서 ‘우리 아버지 왜 죽였느냐?’라고 사적인 복수 비슷하게 해서 죽이기는 하되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아버지 죽인 자는 죽였지만 내가 너무 인간성이 좋고 믿음이 좋아서 그의 자식들은 차마 안 죽였다.’

지금 잘했다는 거예요? 성경에서 다소 복잡한 이야기가 이렇게 나올 때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해요. 과연 인간이, 그리고 질서를 잡을 권한이 있다는 국가의 질서 책임자가 살인자를 죽일 때, 사형 언도해서 죽일 때 과연 그 죽이는 것이 정당하냐 그 말입니다. 하나님을 빙자해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그 말입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벼락을 맞아서 죽인다든지 해서 ‘역시 하나님은 살아계시네’ 이런 식으로 직접 드러내지 않고, 사람을 통해서, 아람 나라를 통해서 그리고 부하들을 통해서 요아스 왕을 죽이면서 ‘너는 여호야다의 피를 모독했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 이런 겁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내야지요.

‘그래. 요아스 왕은 죽을만했다.’ 그런데 아마샤는 ‘우리 아버지 누가 죽였어?’ 이미 지나간 것인데 새삼 또 끄집어냈어요. 육영수는 진짜 누가 죽였는가, 이런 거요. 생각해 보세요. 인간이 정의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까? ‘세상은 정의로워야 해. 죄인은 용서하면 안 돼. 의인은 상 받아야 하고 악인은 벌받아야 해’라고 인간들이 하나님이나 서로를 향하여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까?

내 자식 아프게 하면 가만두지 않는다. 학교에 찾아가서 선생님부터 해서 나라에 고소할 수 있는 자격이 과연 인간에게 있습니까?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정의를 요청할 수 있는 어떤 권한이 없어요. 그것은 창세기 2장 17절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정녕 죽으리라. 이 말은 인간은 이미 모두 죽어 있다는 거예요. 모든 인간은 이미 죽어 있어요. 따라서 죽어 마땅한 인간이 같은 죽어 마땅한 인간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은 없습니다. 그들을 죽임으로써 정의를 바로 세운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율법 신명기 24장 16절은 왜 있느냐? 자식을 위해서 아버지 죽이지 말고 아버지를 위해서 자식을 죽이지 말라는 이 율법 신명기 말씀은 출애굽기 20장 5절의 말씀과 정면으로 충돌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우상이지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3-4대까지 이른다. 부모가 지은 죄를 갚는 것이 3-4대에 이르니까, 부모의 자식이 1대, 2대가 부모의 손자, 3대는 부모의 증손자, 증손자가 증조부의 죄 때문에 저주를 받는다.

주님께서 출애굽기 20장 5절에서 이미 선언을 했잖아요. 조상 죄 때문에 손자가 이렇게 저주 받잖아요. 요한복음 9장에서 이걸 알고 있던 제자들이 소경 된 사람 보고 뭐라고 했습니까?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요 9:2). 물을 만한 근거가 있었던 거예요. 그들은 뭔가 알고 있었던 거예요. 출애굽기 20장 5절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저주는 대를 이어서 흐르고 있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는 그런 논조의 책도 나왔어요.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으려면 뭘 해야 해요? “도를 아십니까?” 부모 제사를 드려야지요! 천도제 드리면 끊어집니까? 그런데 출애굽기 20장 5절에서는 그렇게 해놓고는, 신명기 24장 16절에서는 왜 아비의 죄 때문에 자식을 죽이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이게 뭐냐 하면, 율법 자체 내에서 율법이 충돌하는 사례를 율법을 만드신 주님께서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시는 거예요.

그 만드는 이유가 뭐냐? 살인했기 때문에 살인자에 대해서 처벌한다. 이것은 뭐냐 하면, 원인은 살인, 결과는 처형. 맞지요? 그렇게 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처형이 먼저 있고, 처형 받을만한 이유를 수집하는 식으로 살인 사건이 일어나게 만드는 거예요. 하나님의 율법안에서.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달라요.

보통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는데, 결과가 원인보다 앞서 있고, 그 뒤에 나오는 것들은 이런 결과가 필히 일어나야 되기 때문에, 원인을 수집하는 식으로서 하나도 그 원인을 버리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서 창세기 4장 8절에 보면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입니다.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형이 동생을 죽일 때 이 성경 대목을 보는 사람은 누구냐 의아해할 거예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리고 동생이 하나님과 우호적인 관계로서 하나님이 인정하는 동생이라면 형이 동생을 죽일 때 하나님은 방치하고 방관하는 이유가 뭐냐?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고 동생을 그냥 죽이게 되면 소위 지금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무슨 보람을 가지고 하나님을 계속 믿을 수 있느냐 하는 말이지요.

죽을 때쯤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신다든지, 그래야 하는데 아니 죽는 것을 뻔히 아시면서 그냥 죽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보람이 없잖아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영화에 보면 트랩 대령의 집 일곱 남매의 가정교사로 마리아가 갔는데 처음에는 힘들어서 뛰쳐나왔어요. 그때 수녀원장이 말하기를,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하는 말씀을 인용해서 “하나님께서 시험당할 때 피할 창문을 열어놓는다”라고 하면서 “다시 가거라. 가서 가정교사 해라.” 이렇게 격려를 해줘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아벨한테는 피할 길을 안 주십니까? 창세기 4장 9-10절에 보면, 아벨이 죽고 난 뒤에 뒤늦게 하나님이 찾아와서 뻔히 아시면서 네 동생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요.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이 하는 말이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나님도 안 지킨 것을 내가 왜 지킵니까?’ 그런 식이지요.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그래서 “너는 빼도 박도 못한다. 빼박이야. 네가 사람 죽인 것 맞아.”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 나가봅시다. 선악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했지요. 그러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따먹을 때 왜 주님은 저것 따먹으면 죽는 줄 알면서도 방치했지요? “어비, 안돼!” 천사를 보내서 사전에 막아야지요. 사전에 막아야죠!

제가 옛날에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요. 총각 때 작은 숙모가 우리 집에 같이 살았어요. 조카가 있었는데 혼자 조카를 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애가 부엌에 가서 자꾸 고추장을 먹으려고 해서 내가 말렸어요. 말리다가 짜증이 났어요. 그래서 ‘먹어봐라. 맛보고 매우면 안 먹겠지.’ 그 이야기를 추후에 듣고 숙모가 얼마나 화를 냈는지요. 나는 복음대로 했는데.

이게 뭐냐? 진짜 하나님은 인간이 예측 못 하는 하나님이에요. 인간이 예측해서 믿는 하나님은 모조리 다 가짜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예측을 피해서 인간이 찾아오는 것을 실패하게 만드는 하나님이에요. 인간은 어떤 생각이 있느냐 하면, 원인이 있고 결과가 주어질 것이라고, 원인이 먼저 있고 결과가 나중에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진짜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렇습니다. ‘죽이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니다.’ 첫 번째, 죽이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니다. 죄를 죽이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니다. 두 번째, 인간에게 죽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니다. 이 둘을 합쳐버려요. 죄인을 죽이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니에요. 그런데 인간에게 죽지 아니하는 하나님은 다 우상입니다.

죄인에게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는 하나님, 그런 하나님은 없어요. 가짜 하나님이에요. 이 둘이 어떻게 합치되느냐? 죽는 하나님이 최종 결론으로 나와 있고, 왜 인간들은 결국 하나님을 죽일 수밖에 없는가를, 그 죄를 수집하고 모으는 거예요.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끌어모으는 거예요. 결과가, 십자가라는 사건이 나중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창세 전부터 십자가라는 사건이 이미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확정이 되어 있어요.

확정이 된 것을 주고 왜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죽임을 당해야 하는가, 그 이유를 증명하는 식으로 인류의 역사는 악마와 더불어 같이 한통속이 되어서 전개해 왔던 거예요, 줄곧. 그래서 하나님은 “살인하지 말라. 살인은 내가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보고 “살인하지 말라. 내가 사람을 죽일 거야”라고 하는 소식을 듣는 순간. “따먹지 말라” 하는 순간 따먹은 것처럼 ‘살인하지 말라’에 대해서 인간의 대응은, 악마와 한통속이 된 인간의 대응은 ‘내가 살인하겠다’라고 나서게 되는 겁니다. 살인은 내가 하겠다.

출애굽기 20장 13절에 “살인하지 말찌니라”라고 분명히 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성경에 나오는 세 가지 경우를 설명해 드리고 이것이 사람이 죽인 것인지 하나님이 죽인 것인지 판정해 보세요.

민수기 15장 32-36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의 앞으로 끌어 왔으나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찌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찌니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 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하니라.”

자 하나님이 죽인 거예요, 사람이 죽인 거예요? 사람들이 나서서 죽인 겁니까? 여기서 분명히 하나님이 죽인 거죠. 하나님이 죽였는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죽일 때, 하나님이 그 사람을 죽였다는 게 놀라운 게 아니고 사람들이 거기에 거들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게 인간들의 취미가 아니에요. 그건 미친 인간이에요. 그런 인간은 없어요, 제정신 같으면. 사람은, 사람을 죽여버리면 자기가 살인자이기 때문에 그런 경우를 피해버리지,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몰라도 아무리 하나님의 명이지만 안식일 날 나무했다고 선뜻 죽여버리면, 그러면 만약에 내 자식이 안식일 날 나무하면 내 자식을 죽여달라고 남한테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럴 자신 있습니까? 하나님이 너무 가혹한 것을 시켰어요.

왜 그러냐, 왜 하나님이 그걸 시키느냐? 결국 인간 배후에 있는 악마가, 인간이 도저히 못 할 짓을 그대로 따라 하도록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가복음 23장 20-25절에 보면,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저희에게 말하되 저희는 소리질러 가로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 대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저희의 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를 놓고 예수를 넘겨주어 저희 뜻대로 하게 하니라.”

결국 빌라도는 민란과 소요가 일어날까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살인교사(殺人敎唆)라고 해요. 간접정범(間接正犯)에 의한 살인. 죽이도록 부추기고 압력을 행사하는 살인. 또 다른 말로 하면 청부살인(請負殺人). 누가 누구를 죽였지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지시가 없으면 사람을 못 죽이니까 자기 손에 피 묻히는 거 싫어서, 본디로 빌라도에게 압력을 가해서 이방 민족, 율법을 전혀 모르는 이방 민족을 통해서 하나님을 죽이도록 악마가 부추기는 대로 간접정범에 의한 살인, 살인교사 죄를 저지른 거예요.

그래서 처음부터 있어야 했던, 하나님이 사람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그러한 애초부터의 정해진 코스대로 인간이 거기에 말려든 겁니다. 그들은 ‘율법에 의해서 그렇게 했다’라는 거예요. 아마샤가 율법을 가지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복수하듯이요. 또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레위기 24장 10-16절에 보면,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애굽 사람 된 자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나가서 한 이스라엘 사람과 진중에서 싸우다가 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며 저주하므로 무리가 끌고 모세에게로 가니라 그 어미의 이름은 슬로밋이요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었더라 그들이 그를 가두고 여호와의 명령을 기다리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저주한 사람을 진 밖에 끌어 내어 그 말을 들은 모든 자로 그 머리에 안수하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찌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당할 것이요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찌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일찌니라.” 그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가? 죽였어요. 23절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니 그들이 저주한 자를 진 밖에 끌어내어 돌로 쳤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돌로 쳐 죽였어요. 여호와 이름을 모독하는 자를 왜 돌로 쳤습니까? 모세와 그리고 회중들이? 이것은 본인들이 친 게 아니고 누가 쳤느냐? 하나님이 모세와 율법을 통해서 그들에게 치게 했죠.

지금 이것을 실시하라고 하면 교인들 중에서 아무도 돌 들 사람이 없습니다. 왜? 모두 다 훌륭한 사람이니까. 모두 다 훌륭한 사람들이에요. 내 손에 더러운 살인의 피를 묻힐 사람은 전혀 없어요. 그런데 그 자세가 예수님을 훼방하는 죄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나는 착하고 의롭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의 법이라도 나는 사람 죽이는 그런 것에는 가담하기 싫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도리어 훼방하는 짓이에요.

그게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사도행전 7장에 나옵니다. 스데반 집사의 죽음입니다. 스데반 집사의 죽음을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그 대목을 한번 읽어보면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그다음에 뭐를 막았느냐? “…귀를 막고 일심으로…” 어떤 마음? 각각 딴 마음? 아니에요, 일심으로. 갑자기 찬송가 가사가 생각나요. “일심으로~”, 한 마음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그다음에 중요합니다.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사울은 이 일에 책임자로서 와 있는 거예요. 행정 책임자로 그걸 윗사람에게 보고할 책임이 있어요. 윗사람이 누구냐 하면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에요. ‘율법에 정통한 사람은 율법에 의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이름이 아니고,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돌로 치라는 그러한 지시를 따르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라고 율법을 해석하는 사람들, 그중에 한 사람이 사울이라는 청년이었습니다. 엠지(MZ) 세대죠, 그 당시의 청년이었습니다.

보세요. 스데반 집사가 죽은 것은 율법의 완성으로서 순교한 것이고, 스데반 집사님을 돌로 친 것은 완성을 향하여 노력하는 자에 의해서 저질러진 살인이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둘 중에 어느 쪽에 속하겠습니까? 사울이라는 사람은 바리새인중에 바리새인이요,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에요. 율법대로 따라야 영광이 된다는 것을 설파한 사람이고, 그걸 그냥 설파만 한 게 아니고 행동과 실천으로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라는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다가 여럿 죽였습니다. 그 사람 발 앞에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일심으로,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서 스데반 집사를 죽였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죽을 때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하나님과 옆에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질문 들어갑니다.

왜 주님은 스데반 집사가 죽기 전에 왜 살리지 않았습니까? 왜, 살리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바로 스데반 집사만이 그 현장에서, 율법의 완성을 유일하게 넘어선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율법의 완성을 넘어선 사람.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율법은 무한 퇴행이 되어서 지킬 율법이 계속해서 점점 더 깊게 되어서 그 수렁에 빠져버려요.

율법대로 완성한 것은, 율법 바깥에 계신 분이 율법을 통해서 율법 속으로 들어오면 율법 안에 있는 자기 백성을 율법을 통해서 그 바깥으로 끄집어내는 ‘완성’을 보여줍니다. 그게 뭐냐 하면 ‘제사’예요, 제사. 오늘 본문의 아마샤는 왕이예요. 그러나 진짜 율법은 ‘왕+제사장’ 율법대로 하면 왕과 제사장이 합치돼야 합니다.

이런 제사장, 이런 왕이 누구냐? 멜기세덱이에요. 멜기세덱은 왕이요, 제사장이었습니다. ‘왕’은 죽이는 자요, ‘제사장’은 희생하는 자예요. 치는 자와 침을 받는 자가 통합되어 있는 이것이 율법안의 완성입니다. 그렇게 해서 바깥에 계신 분이 율법안으로 들어오고, 안의 제사 업무를 완성하고 바깥으로 끄집어나가면서 –희생의 효과를 가지고 끄집어나가게 되면- 율법안에서 저주받는 자기 백성이 율법 바깥으로 완성이 되어서 영생을 받고 구원을 받는 거예요.

스데반 집사님은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스데반 집사가 죽는 것을 그냥 방치하신 거예요. “네가 죽어 마땅하다!” 왜? 선악과를 따먹은 자는 정녕 죽어야 하기 때문에. 정녕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창세기 2장 17절의 말씀에 의해서 벌써 그걸 인정하는 사람만이 율법 바깥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율법 바깥에는 모든 죄를 용서하는 사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 없으면 여러분, 허무해집니다. 인간들의 사랑도 참 가치 있죠.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둘 다 죽어요. 오래 안 간다고요. “여보, 같이 천년만년…” 천년만년 안 갑니다. 갈 수가 없어요. 갑자기 떠나면 섭섭합니다. 영원한 사랑은 백만 한 번, 백만 두 번…, 안 돼요. 계속 영원해야 돼요. 영원한 사랑은 율법 밖으로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나갔던 사람이에요.

끝으로, 율법의 완성이 사랑으로 영원히 이어진다는 그 대목이 에베소서 3장 17-19절에 나오는 사도바울의…, 참, 이 사도바울이 옛날에 사울이었던 사람이에요. 사울이라는 사람이 율법 안에 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 만나서 율법 밖으로 튀어나와 버린 거예요. 그것도 구원받고 하는 말이,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잖아요. 내 인생이 어떻게 꼬이던 내가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원망할 하등의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아요.

그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바울의 기도예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의 사랑, 이리 봐도 사랑, 어화둥둥 내 사랑, 앞을 봐도 사랑, 뒤로 가도 사랑, 엎어져도 사랑, 깨져도 사랑,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도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인 것을! 바로 가해자 된 우리 대신 스스로 피해자가 되셔서, 피해자 입장에서 피를 흘려서 자신의 피해 입은 그것으로 우리 가해자를 구원해 내는 이 진리가 유일한 진리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왕과 제사장이 결합되지도 않은 어설픈 왕이 감히 율법을 거론하면서 아버지의 복수를 해버렸지만, 그런 왕이나 오늘날 우리나 진배없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항상 자기보존이 먼저고 항상 자기 잘남 유지하는 것이 생활의 우선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십자가 앞에서 정녕 죽으리라 된 자가 바로 이런 모습인 것을 깨닫는 기쁨과 감격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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