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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위장 살인 역대하 28장:3 261002설교역대하

20261002a 울산강의-역대기하(25강) 28장 3절 : 위장 살인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역대하 28장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왕은 아하스인데 이 왕은 남쪽 유다나라의 열두 번째 왕입니다. 이 아하스 왕에 대해서 상당히 길게 나와 있지요. 긴 이유가 하나님 앞에서 나쁜 짓을 많이 해서, 그 나쁜 짓의 목록을 하나하나 나열하다보니 이게 길어진 거예요. 그 아하스가 나쁜 짓을 해서 28장 27절에 보면, “아하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이스라엘 열왕의 묘실에 들이지 아니하고 예루살렘성에 장사하였더라”

대대로 왕이 묻히는 그 산소에는 무덤에는 묻히지 못하고 열왕의 묘실에 묻히지 못하고, 그냥 예루살렘성에 장사했다. 이렇게 보면 이 유다나라 왕, 또는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 보시기에 왕 노릇을 잘했다 했을 경우에는 열조, 조상의 왕들과 같은 장소에 묻히게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악한 일을 했을 때는 선배 왕들의 반열에서 이탈되어서 그냥 아무 의미 없는 그런 사적인 무덤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으니까 여러분들은 아하스 이 왕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느냐,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이라고 했는가? 어떤 잘못을 했는가,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겠지요.여기 잘못한 이유가 28장 1절에 보면 나옵니다. “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륙년을 치리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 이게 나쁜 짓이라는 거예요.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했다.’

우리가 보기엔 전혀, 전혀 나쁜 짓이라고 느껴지지 않아요. 만약에 아하스가 왕이 되는 그 시점에 여러분들이 태어나서 유다나라에 왕으로서 통치를 할 때 백성 입장에서 잘한다, 못한다를 나름대로 평가할 수 있잖아요. 평가했을 때 우리 왕은 참으로 악하다는 생각을 백성들이 과연 가질까요? 과연 우리 현 대통령은 현 왕은 나쁜 왕인가, 라는 판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못 내립니다. 백성들 안목에서 입장에서.

지금 역대하 28장에서 악하다고 하는 것은 이건 누구 관점이냐 하면 하나님 관점에서 악해요. 그런데 백성들 관점에서 전-혀 악하지 않습니다. 어떤 대통령이 있고, 왕이 있다고 합시다. 대통령이 왕이 개인적인 종교가 있을 수 있잖아요.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종교를 가졌다 이 말이죠.

그런데 백성들 입장에서, 또는 국민들 입장에서 당신이 개인적으로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 난 모르겠고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우리 백성들, 국민들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면 좋겠다. 그것 잘해주면, 수출이 늘어나고 국민소득 올라가고 주식 값 올라가면 훌륭한 대통령, 훌륭한 왕이라고 판정을 내립니다.

백성은 뭐냐 하면 개인이에요, 개인. 개인들이잖아요. 개인들의 소망은 뭐냐? 자기 행복이 증진되는 거예요. 자기 사는데, 이 시대 이 나라에 사는데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 당시의 왕에 대해서는 참 좋은 왕으로 치하를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개인은 자기 사랑에서 벗어날 재간이 없어요. ‘자기 집착, 자기에게 미쳐있다.’

인간은 자기한테 미쳐있기 때문에 ‘나는 미쳤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자기에게 지쳤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면, ‘나는 행복하고 싶어요’ 이게 자기한테 미친 거예요. 자기에게 미쳐있다는 것을 고상한 말로 하면, 자기 사랑이죠. 그래서 자기 사랑에서 자기를 괄호를 치고 빼버리면 사랑에서 못 벗어나고 사랑에 미쳐있다, 이렇게 되지요.

그래서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누가 나를 죽도록 사랑해줄 때 그걸 사랑이라고 이해합니다. 누가 나를 죽도록 사랑해줄 때 나 위주로 살 때 그걸 사랑이라고 이해해요. 결혼조건이 뭡니까? 젊은 사람들, 자기 나만을 사랑할거지? 이건 주례도 그래 묻잖아요. 노래도 그런 노래가 얼마나 많습니까. 혜은이 노래에 있잖아요. “당신만을 사랑해” 그것도 모자라서 한 번 더 해요. “당신만을 사랑해. 정말, 정말” 두 번해서 강조. 아멘, 아멘하고 비슷해요. “정말, 정말 사랑해.”

인간이 자기 사랑, 자기한테 미쳐서 자기 행복만 추구하면서 타인에게 그걸 요구를 하는 거예요. 이 또한 미친 짓이죠. 남이 내 머슴입니까? 왜 남한테 나만 사랑하기를 요구를 해요? 무슨 권리로, 무슨 자격으로? 터무니없는 거예요, 이거는. “당신, 나 사랑해.” “네가 뭔데? 왜 나한테 그걸 요구하는데?”

거기에 대한 사람은 뭐라 하느냐 하면, 그냥. 경상도 말로 기양. 좀 해줘. “정말 나만을 사랑해줘. 아무 소리하지 말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슬프면 눈물이 안 나올 수 있도록 좀 해줘.” “왜 해야 되는데?” “묻지 말고, 묻지 말고, 묻지 말고 그냥 해줘. 나 행복하게.”

그러면 상대는 말이 안 통하니까 말 통하는 방법으로 하죠.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 그러면 니는 나한테 뭐 해줄 건데?” give & take에요. 지난 시간에 울산강의에서 그걸 개인 대 개인의 언약이라 했어요. 사적 언약. 주고받는 거예요. 그 조건을 내가 사랑해줄 테니 너는 뭐 해줄 건데? 돈 벌어줄게. 오케이. 생각해보고. 그럼 나 놀아도 돼? 놀아도 돼. 그러면서 사랑해줄게. 둘 다 자기만을 사랑해요. 둘 다 자기한테 미쳐있습니다.

따라서 이 성경에서 아하스 왕이 악한 왕이다, 라는 것에 대해서 그 당시 백성들이나 어떤 인간도 이 아하스 왕이 어떤 점에서 나쁘다는 것을 눈치 채고 알아챌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보면서 성경대로 본다면 종교적인 면, 신앙적인 면이 하나님의 심기를 건드렸구나.

그러나 그 종교 떠나서, 신앙 떠나서 백성들의 행복증진과 백성들은 잘 살게 하고 더 부강하게 하는데 그 사람이 마냥 논 게 아니잖아요. 열심히 뭐 했잖아. 그렇다면 그 성의는 알아줘야지. 왕이 무슨 종교를 믿는지 난 모르겠고 그저 백성들 잘 먹고 잘 살고 건강하고 그렇게 해준다면 당신이 이슬람을 믿던 마귀를 믿던 모르겠고 그냥 우리는 당신을 훌륭한 대통령, 훌륭한 왕으로 쳐주겠다. 그게 백성들 생각입니다.

괜히 성경 보면서 성경에서 아하스 왕이 나쁘다고 하니까 덩달아 뭣도 모르고, ‘그래 나빠’ 이렇게 편들지 마세요. 적어도 아하스에 대해서 나쁘다고 이야기하려면 적어도 선지자가 돼야 돼요. 9절 누가 읽어보세요. “그 곳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는데 이름은 오뎃이라” 됐습니다. 지금 선지자가, 이것 여러분 아셔야 돼요. 공식 하나 들어갑니다. 공식 해봐야 사람들 잘 기억하는지 모르겠어, 하여튼.

‘선지자가 지적해서 그 말씀에 순종했다, 그 말씀에 순종 안 했다. 순종 안 하니까 저주가 임했다.’ 보통 이런 공식을 생각하잖아요. 선지자가 하나님 말씀으로 지적할 때 말씀에 순종 안 하니까 저주가 임한다. 이렇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게 성경적으로 변화가 변동이 생긴 거예요. 원칙이 아니고 원칙에서 틀어진 거예요.

이유가 뭐냐 하면 구약에서 선지자, 왕, 제사장이 있는데 하나님과 늘 상대하시는 분이 제사장, 가끔 상대하는 분은 선지자, 그리고 늘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을 율법으로 통치해야 될 왕. 왕 밑에는 공무원들이 있어요. 공무원 중에 제사장도 있지만 공무원들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서 백성들을 율법이란 법에 의해서, 우리나란 헌법이죠. 그 당시에는 율법입니다.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도록 왕에게 권한, 권세를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왕은 하나님의 율법 따라 통치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뭐냐 하면 왕은 하나님과 일 대 일로 나서서 하나님의 나라를 백성들에게 통치한다. 이게 제대로 정상적으로 가동이 된다면 여러분, 선지자가 나설 이유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선지자가 나서서 말 안 하면 저주받는 게 아니고, 선지자가 나섰다는 자체는 이미 왕은 저주 아래 놓여있다는 뜻이에요. 선지자가 나섰다는 거, 이 말은 신약 시대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다는 자체가 이 세상은 어디 아래 있다? 저주 아래 있는 거예요. 선지자가 나서서 여기 아하스 왕에게 지적을 했다는 말은 하나님과 왕 계약에 있는 백성들 있잖아요. 백성들도 현재 어떤 상태에 놓여있다는 말이지요? 저주 아래 놓여있다는 거예요, 저주 아래.

그런데 아아 나는 이런 잘못이 있어 저주 아래 놓여야 마땅해, 이렇게 생각하는 백성들이 없다니까요. 이런 인간은, 개인들은. 아까 제가 뭐라 했습니까? 개인은 어디에 미쳐있어요? 자기 사랑. 자기 사랑인데 일상생활하면서 삶의 목표가 뭡니까? 나의 행복이 증진되는 것, 그 행복의 단위가 뭐냐? 가족 단위에요. unit가 가정 단위에요. 내 새끼, 내 가족, 내 남편, 내 아내 그저 행복만 하기를 원하는 거예요. 이 시대에서.

우리 가족, 우리 식구. 단위니까 최종 단위가 가정이니까 가정에서 내 새끼 내 자식 잘 되고, 내 남편 내 아내 잘 되고, 남편 건강하고 돈 벌고, 나는 건강하게 돈 쓰고. 취미활동하고 에어로빅 다니고 얼굴 좀 뜯어고치고 친구 만나 수다 떨고. 가끔은 뷔페에 가서 맛있는 것 먹고. 아내로서 사는 보람을 느끼는 그걸 소망하고 있는 거예요. 그걸 왜 소망합니까? 자기 행복을 왜 소망합니까? 지금 몇 번째 묻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날 때부터 누구한테 미쳐있기 때문에? 자기한테 미쳐있는 거예요. 하나님이고 예수고 그 딴 거 관심도 없어요. 어떤 지도자가 나서서 내가 주식투자했는데 주식이 오른다? 그건 훌륭한 대통령이죠, 뭐. 국력을 증강시키면 국력의 혜택을 입는 하나의 국민으로서 돌아올 혜택이 많을 것 아닙니까?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적게 일하고 수입이 많아지면 그 대통령은 최고에요, 최고에요. 그 대통령이 하나님을 믿던, 예수를 믿던, 여호와를 믿던, 알라신을 믿던 백성들은 관심도 없다니까요. 관심도 없어요.

그런데 구약의 이스라엘은 바로 그 자체, 인간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랑에 대해서 요한일서 4장인데 아시는 분은 아실 거예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에 나온 말씀, “사랑은 여기 있으니” 무슨 뜻이냐? 사랑을 아는 사람이 없다. 사랑 앞에서 생뚱맞은 견해 내놓지 말라. 너희들은 사랑은 몰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이게 바로 사랑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주께서는 거부합니다. 자기 사랑에 미쳐있는 인간이 어디서 구라를 떨고 있어. 어디서 거짓 사랑을 내놔요, 하나님 앞에? 자기 사랑에 미쳐있으면서.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이용하고 싶습니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해. 요한복음 12장 25절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거에요. 제 말 아니니까 저한테 화내지 마세요.

하나님이, 보통 교회에서 하잖아요. 주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주의 뜻이면 지키겠나이다. 금요철야 기도할 때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이 교회는 안 한지 너무 오래됐다. 아예 할 생각도 없겠지요. 금요철야 기도할 때 얼마나 많이 주의 뜻대로…. 주의 뜻, 궁금해요? 오백 원 안 줘도 괜찮습니다. 알려드리겠습니다.

주의 뜻은 요한복음 12장 25절에서 이겁니다. 자기를 미워하라, 됐습니까? 나 예수 믿습니다, 그런 되도 않는 이야기. 주의 뜻은 뭐냐 하면, “예수 믿어?” “예, 믿습니다.” “너를 미워하는 채? 너를 미워한 채 예수 믿나?” 너 좋아서 예수 믿나, 아니면 네가 너무 미워서 예수 믿나? 어느 쪽이야?

요한복음 12장 25절에,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엄청난 걸 줘요. 보너스, 사십 일 휴가? 아닙니다. ‘영생’을 주는 거예요. 이게 신약성경 요한복음 12장 25절에 나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역대하 28장은 신약일까요, 구약일까요? 구약이죠.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구약에선 하나님이 누굴 앞장세워서 백성들에게 자기를 미워하라는 취지의 말씀을 전하겠어요? 이걸 누가 해야 돼요? 왕이 해야 돼요. 근데 왕부터 백성들까지 전부 다 자기 사랑에 미쳐있어요. 그러니까 이거는 이 상태가 하나님의 계약에 의하면 저주받은 상태에요. 영생은 없어요. 있는 것은 지옥 불밖에 없습니다. 지옥밖에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유다를 사랑해서 누굴 보내느냐? 선지자를 보내는 거예요. 왕이 제대로 못하니까 선지자가 뜬 겁니다. 너 저주 아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선지자에게 이야기해요. 그래서 만약에 선지자의 말을 듣는다면 착한 사람인데 잠깐 실수해서 주의 뜻을 버렸으니까 다시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저주 철회하고 하나님께서 사랑을 해준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절차는 그렇잖아요.

그러나 그게 아니고 선지자의 말하는 것은, 그동안 내가 저주 아래 있는 존재란 걸 몰랐었다. 이제 알았네. 내가 저주 아래 있다는 내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는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이제 하나님의 선지자 말씀 때문에 알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이게 돌아오는 거예요. 하나님께 돌아오는 방법이 이 방법이에요.

‘나에 대한 하나님의 질책과 지적이 참으로 합당합니다’를 받아들이면 그동안 내 사랑에 미쳐 있다가 그다음에 그 사람은 주님의 말씀이 미쳐버린 사람이 돼요. 주의 말씀이 내가 몰랐던 나를 그때그때 친절하게 알려주니까 얼마나 고마우신 주님이십니까. 선지자 준비해놨다가 제대로 정답 이야기하니까요.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단출하게 추려보겠습니다. 진짜 단출합니다.

이 질문에 여러분 답변해보세요. 너는 무엇을 현실이라고 여기는가? 도대체 네가 말하는 현실은 뭐냐? 추석 연휴 때 길잖아요. 그래서 식구들끼리 괌이라든지 일본이라든지 따뜻한 데 여행을 갔어요. 가족끼리 비행기 표 끊고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갔다 왔습니다. 갔다 온 인천공항에서 마이크 들고 인터뷰한다고 칩시다.

“이번 여행 어떠셨습니까?” 보통 이렇게 질문하잖아요. “선생님, 현실을 뭐라고 보십니까?” 이렇게 질문한다면 방금 여행 갔다 와서 업된 동남아 티 입고 쓸데없는 것 사서 들고 온 그 사람에서 “선생님 가족은 무엇을 현실이라고 보십니까?” 여러분 물으면 뭐라고 하세요? “야아 태국 날씨 정말…. 백사장의 모래알 곱고, 현실이요? 태국이 그렇게 따뜻한지 몰랐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그렇게 답변하겠지요.

그런데 방금 여행에서 돌아온 인천공항 나오자 마자에요. 무엇이 현실이라고 봅니까, 물으면 태국이든 한국이든 저주받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답변한 사람을 여러분 만나봤습니까? 태국 가도 저주고 한국 와도 저주입니다, 라는 말을 물론 태국에서 돈 빼앗기고 그런 건 빼놓고, 그냥 잘 즐기다 온 사람에게 태국도 저주고 한국도 저주라는 그런 발언을 내놓는 사람은 여행 갈 수도 있어요. 유럽 갈 수도 있는데 어디 가봤자 나는 저주받은 이 세상에서 저주받은 내가 잠시 추석 연휴 때 여행 갔다 왔다, 그런 식으로 현실감을 갖는 거예요.

지금까지 이야기한 게 뭐냐 하면 하나님이 묻는 것은, 현실을 네 행복과 네 사랑에 거기에 두고 현실은 이러이러해야 된다고 네가 요구하느냐, 아니면 하나님 보시기에 말씀으로 보시기에 언약으로 보시기에 율법으로 보시기에 현실은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떻게 보이느냐를 신경 쓰면서 현실을 생각해요? 어느 쪽이에요? 답변은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 해줄 겁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 봅시다. 제가 읽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님께서 외칩니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렇게 됐어요. 여기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고 예수님도 마찬가지고 예수님께서 먼저 운을 떼는 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면 참 좋잖아, 이래 되잖아요. 좋을 것 같으면 회개하라란 말이 하나님 나라와 접속이 안 돼요.

요엘서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처참한 심판의 순간이에요. 심판의 날이 가까이 왔다. 아시안게임 중계할 때는 그게 잘 안 나타나는데 올림픽게임 생중계할 때 영어로 JOHN 3:16 크게 써서 카메라 보란 듯이 눈치 보면서 카메라 앞에 들고 방송에 등장하고 이런 것이 올림픽게임이 전 세계 80억 인구에 생중계되잖아요.

광고비 내지도 않고 짧게 보여주는 게 뭡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그다음 뭡니까? 순서가 뭐예요? 영생을 얻을 것이다, 아니죠. 뭡니까? 멸망치 않는 거죠. 올림픽 하고 있는 선수와 임원진과 백성들아 국민들아 이걸 보고 있는 모든 나라 인민들아 너희들은 지금 멸망의 대상이야, 지금 이걸 들고 있는 거예요. 회개하라.

성경에 회개하라는 말이 굉장히 많이 나와요. 하나님께 돌아오라. 스가랴 1장 3절에,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면 어디 갑니까? 몇 번지에 내비 찍어서 갈까요? 하나님이 어디 계신데 돌아오란 말입니까? 어디 계신데요?

성경에서 돌아오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상당히 어려워요. 왜 어려우냐 하면 원래 이 집 식구인데 집 나갔기 때문에 돌아오라는 이야기입니다. 원래 이 집 사람 아니면 돌아오라 하는 게 성립이 안 돼요. 누가복음 15장에 탕자가 돌아오잖아요. 탕자는 원래 그 집의 아들이었어요. 둘째 아들이었잖아요. 내 아들이 내 집에 살아야지 왜 아버지 없는 곳에 가출하느냐, 돌아오라. 그때 돌아오라가 성립돼요. 아무나 돌아오라는 게 아니에요. “내 백성만 들으라. 이제 좀 돌아오지, 응?”

백성이라고 칩시다. 돌아온다고 칩시다. 마음먹는다고 칩시다. 돌아오는 방법은요? 어디로 어떻게 돌아오는 데요? 버스 탈까요, KTX 탈까요? 돌아오라는 게 어디에 어느 장송에 집합하란 말입니까? 돌아오라는 말은 그걸 잘 설명한 것이 바로 여리고성 함락할 때 기생 라합이에요. 진공청소기가 있습니다. 저기 먼지와 종이조각이 있습니다. 그러면 청소기가 확성기에 대고 “돌아오라 먼지여. 종이여 돌아오라” 하면 먼지가 돌아옵니까? 종이쪼가리가 돌아옵니까? 지금 말한다. 너희들은 멸망이다. 빨리 돌아오라. 포위됐다. 항복하라, 하면 돌아옵니까?

청소기의 기능이 뭐예요? 청소기가 찾아가잖아요. 찾아가서 그다음에 어떻게 합니까? 찾아가서 돌아오라, 이렇게 합니까? 빨아 당기죠. 빨아 당길 때 먼지는, 종이쪼가리는 어떤 자리를 포기하고 딸려갑니까? 어떤 자리를 포기하는 거죠? 진공청소기가 천국이라면 천국에 가는 것은 빨려 들어가는 건데 그때 빨려 들어가는 대상은 어떤 자리에 있었어요? 그냥 나그네 하다가 빨려간 거예요, 자기 자리가 있었어요? 자기가 평생 지켜오고 쌓아놓은 자기 자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지요.

자기 자리, 오늘 다섯 번째 이야기합니다. 자기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면 죽도록 나만 사랑했던 자리죠. 죽도록 나만 사랑해요. 하나님이고 예수님이고 나한테 잘해줘야 믿겠다는 그걸 유지하고 그걸 사수하는 자리가 자기 자리에요. 그래서 인간이 자기 자리에서 떠날 능력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없으니까 빨아 당기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자리에서 누구 자리로 오느냐 하면 신약적으로 하자면 자기 자리에서 주님 속으로 빨려 들어가요.

그러면 자기 자리에서 자기 육신이 있잖아요. 몸이 있다, 몸. 이 몸이 주님 속으로 딸려 들어갈 때 이게 아파요, 안 아파요? 아픈 정도 아닙니다. 문장으로 쓰면, 주님 저한테 왜 그래요. 그저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면 안 되나요? 저한테 왜 그래요? 남들처럼 평범하고 돈 벌어서 가족끼리 오순도순 자식 잘되고 노후자금 넉넉하고 몸은 건강하고 무탈하게 그래 살면 안 되나요? 저한테 왜 그래요? 나 내 자리 못 떠난다는 것 주께서 아시잖아요. 그런데 왜 내 자리 박살내십니까?

거기에 대해서 합당한 답은 하박국 3장 17절이 답변하고 있습니다. 외양간에, 외양간 누가 세웠어? 내가 세웠어요. 포도나무에, 내가 세웠어. 포도원에 포도가 없고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를 빨라 당기는 주님으로 인하여 나는 기뻐하리로다고 했어요. 하박국 3장 17절, 18절.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걸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여기 안경케이스가 있습니다. 안경케이스를 하나님께 툭 던져줘요. 이 안경케이스가 마치 땅콩껍질처럼 생겼지요. 이 안경케이스가 원래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케이스 안에 안경을 이렇게 담았어요. 여기 케이스 있지요, 안경 있지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에요. 잘 보세요.

주님께서 안경케이스에 딱 맞춤, 하나님의 뜻에 딱 맞춘 안경으로 예수님 계십니다. 예수님이 이 자리를 떠나요. 그러면 이 안경케이스는 비어있지요. 비어있는 곳이 뭐냐 하면 천국 가는 백성의 틀로 작용해요. 붕어빵, 국화빵 몰딩하듯이 제품 생산하듯이 이 틀에 맞추어서 예수님의 형상, 예수님이 첫 번째, 두 번째 형상, 세 번째 형상, 형상대로 찍어내는 거예요.

이 형상이 구약에서 율법이고 신약에선 이걸 복음입니다. 왜? 예수님이 계셨던 현장이었으니까. 이게 바로 뭐냐? 선택이에요. 이게 선택의 구조입니다. 선택의 바탕이고. “뭐 살다가 예수 믿지.” 아니, 아니에요. 이 틀, 요 틀 안에 들어와야 돼. 이 틀은 예수님께서 틀에 계시다가 나갔잖아요. 그 나간 것은 부활로 봅시다. 그러면 예수님이 나가기 직전에 사흘 전에 있었던 이 틀은 무슨 틀입니까? 십자가 틀이죠. 십자가 안에 들어온 자만이 예수님처럼 부활이 돼요. 주님께서 복음을 전할 때 그 사람으로 하여금 십자가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거예요.

마태복음 16장 24절,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아까는 자기를 미워하라 했잖아요. 이번엔 자기를 부인하고, 뭘 지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그렇게 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는 게 아니라 내가 기어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미워하고 나를 따라오도록 내가 빵빵하게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으로 나를 천국 안으로 진공청소기로 빨아내겠다는 거예요, 주님께서. 태국 가서 예수 믿으면 되지, 이런 한가한 그런 안일한 자기 사랑 유지하고 그렇게 나설 재간, 방법은 없어요. 그런 방법이 없다니까요.

구약에서 내게로 돌아오라고 주께서 이야기했습니다. 내게로 돌아오라는 것, 이사야 31장 6절을 제가 읽어볼게요.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은우상, 금우상을 그 날에는 각 사람이 던져버릴 것이며” 이 말씀은 주께서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려면 필히 뭐가 있어야 되느냐 하면 던져버릴 게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아이 꼴도 보기 싫어, 하고 던져버릴 게 있어야 된다 이 말이죠.

자, 그렇다면 뭘 던져버려야 되느냐? 그건 제가 이렇게 쭉 설명하면서 말씀드렸습니다. 던져버릴 게 있다는 데 무엇을 던져버려야 되는가? 이사야 아까 31장 6절,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너희가 섬기던 것을 던진다. 그럼 뭘 던지느냐? 우상을 던진다는 말은, 우상이라 하는 것은 우상을 사랑하는 인간은 없어요. give & take에요.

내가 당신을 신으로 인정할 테니까 당신은 나한테 뭘 해줄 겁니까? 예수여, 하나님이여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 하나님 저한테 뭘 해줄 거예요? give & take 이게 우상이에요. 명칭은 뭐 예수, 하나님, 삼위일체 붙였다고 우상에서 탈피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게 바로 우상입니다. 물론 우상이야기 안 하면 교회 부흥 안 되니 문제가 되지만.

역대하 오늘 28장을 하면서 아하스 왕이 섬긴 게 뭐냐 하면 백성들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아하스 왕은 아주 거침없이 우상을 섬겼습니다. 백성을 위해서 나라 잘 되기 위해서 부강하기 위해서 백성들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서. 강력하게 자기를 쳐들어오는 앗수르 나라의 그 신을 자기가 받아줌으로써 더 이상 우리 것을 약탈하지 않도록 행정가로서 국가의 통치권자로 백성들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지도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최선의 길이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왕이었지요. 우상을 반기면서까지.

우상 반기면 앗수르가, “네가 모면하기 위해서 섬기는 척하지?” “아닙니다. 제 아들을 앗수르 신에게 불 위에 태우겠습니다.” 그래서 태웠어요. 그 불 위에 태우는 장소가 힌놈의 골짜기에요. 놈 붙였다고 욕하는 게 아니고 지명이에요. 베냐민과 유다의 경계선의 위치인데 힌놈의 골짜기 성경본문 보겠습니다.

이게 역대하 33장 6절,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라고 돼 있어요. 이건 히스기야 다음에 므낫세입니다. 근데 이 전통이 바로 아하스 왕 때부터 아들 바치는 것을 했어요. 그 전통이 계속 남아 있는 거예요.

이게 3절에 나옵니다. 28장 3절 누가 읽어보세요.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 자녀를 불사르고 또 산당과 작은 산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한지라” 대통령이 사적인 종교 행사하는 것에 있어서 이걸 나쁘다고 하는 게 아니라 백성은 당신이 어떤 신을 찾고 어떤 종교를 찾든 간에 백성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흰 밥에 고깃국 해주면 되지 않아요?

북한 현지 주님들이 김정은 씨가 김정은 일가가 왜 예수님을 안 믿는지, 그것 때문에 백성들이 불만이 많은 거예요, 안 그러면 하얀 쌀밥에 고깃국 안 줘서 불만이에요? 그래서 탈북을 왜 합니까? 북한에 남한으로 왜 와요? 뭐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거의 없을 걸요. 자본주의의 맛을 보기 위해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잘 사니까. 자기 사랑이죠. 힘들면 도로 북한으로 가면 되니까. 개인은 자기 사랑과 자기 행복에 미쳐 있어요. 그것뿐이에요. 국가가 대통령이 뭘 하든지 상관없어요. 자기밖에 몰라요. 구약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아요. 왜? 둘 다 저주받았으니까.

그래서 좀 더 힌놈의 골짜기 보게 되면, 그 힌놈의 골짜기가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그걸 게헨나라고 해요. 그게 뭐냐 하면 지옥입니다. 지옥불이에요. 힌놈의 골짜기에서 불붙었잖아요. 불붙은 그것이 바로 지상에 사는 모든 인간들의 사고방식이 꼭 지옥 불에 들어가야 합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는 겁니다. 자기 행복과 자기 사랑에 미쳐서 나 하나님 믿어주면 되잖아. 예수님 믿어주잖아 해놓고는 사랑에 빠져있는 것, 그게 바로 자기를 위한 신이 있어야 된다는 의식 자체가 지옥에 아주 합당하고 적합한 존재에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목사님, 천국에는 어떤 사람이 집합합니까?” 제가 어떤 강의 때 그런 이야기했지요. 천국은 있는데 구원이 없다 했지요. 천국이 있어요. 왜? 하나님 사는 동네는 있는데 갈 위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3장에 의도적으로 영생과 인간을 분리시켜놨기 때문에. 이게 팩트고 이게 현실이에요. 그래서 일단은 하나님이 생각하는 현실과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이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 일단 그것부터 분명하게 생각하시고, 10분 쉽시다.

20261002b 울산강의-역대기하(25강) 28장 3절 : 위장살인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하겠습니다.

이 아하스가 열두 번째 왕이니까 열한 번째 왕이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열한 번째 왕이 지난 시간에 했던 역대하 27장에 요담입니다. 이 요담 왕이 하나님께서 만들었느냐? 아주 거부로 만들었어요. 요담 왕 때 나라가 너무너무 부강하게 잘 살았어요. 그 잘 살은 게 27장 4절에 보면, “유다 산중에 성읍을 건축하며 수풀 가운데 견고한 영채와 망대를 건축하고”

옛날에 백성들이 목돈 쥐는 순간은 국가에서 공공건설 정책에 의해서 일자리를 주는 거예요. 막대한 국가 돈이 들어오니까 깨작깨작 농사짓는 것보다 건설현장에서 일하게 되면 나중에 목돈 되고 백성들은 자기 딸, 아들 시집, 장가보낼 수 있게 돼요. 그러면 그 돈 어디서 나오겠어요? 국가 자체에 많은 자금이 비축돼 있다는 뜻이지요.

여기 보면 27장 5절에, “암몬 자손의 왕으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그 해에 암몬 자손이 은 일백 달란트와 밀 일만 석과 보리 일만 석을 드렸고 제 이년과 제 삼년에도 암몬 자손이 그와 같이 드렸더라”고 돼 있어요. 그러니까 삼년 동안, 삼년 동안인지 그 이후에도 계속 왔는지 여긴 안 나타나지만 하여튼 계속해서 외부에서 요새 같으면 달러가 들어오는 거예요.

많은 자금이 들어와서 그것이 시장에 유통이 되면서 백성들은 공공사업을 벌이면 일하고 거기에 소득이 증대하잖아요. 백성들 신났고 백성들 잘 사니까 왕은 존대 받고, 존대 받으니까 백성들은 왕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내리고, 그리고 국가 안정이 저절로 되고, 아무 문제없지요. 이렇게 막강한 재벌 집이 됐단 말이죠. 요담 왕 때. 그걸 누가 털어먹느냐 하면 오늘 28장 아하스가 다 털어먹어요. 돈 없는데 돈 벌기보다 있는 돈 까먹기가 더 쉽다니까요.

여러분도 다 한 번씩 재벌 돼봤잖아요. 안 됐구나. 돈푼이나 손에 만져봤어요? 도박판 말고 딴 데 가서. 돈 있을 때 많아 보이지요. 돌아보면 후딱 다 날아가요. 돈 좀 있다하면 자식부터 해서 달려듭니다. 부모가 돈 있는데 자식이 갑자기 직장 때려치우고 왜 그럽니까? 소문 들었거든요. 아버지에게 여윳돈 많다는 소문….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돈 있다는 소리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큰일 납니다. 여러분 망하고 자식 망하고 다 망해요. 보니까 돈이 없어 보이니까 천만다행

28장 5절에 보면, 그러니까 여러분 쉽게 생각합시다. 집에 돈이 있잖아요. 권력이 있는데 그걸 사주보는 사주팔자, 윤석열 때 했던 점쟁이 이름 뭡니까? (천공? 건진법사?) 여러분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종교를 바꿨다고 해서 있는 재산 다 날아갑니까? 이거는 종교보다도 인간은 돈부터 먼저 챙기고 사랑하는 게 인간인데 종교 바꾼다고 해서 갑자기 있던 돈 다 날아가는 그런 것은 기적이죠. 그런 것은 인간의 상식이나 이성적인 마음에는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다른 신을 섬기는 것도 아하스 왕은 자신만만한 거예요. 왜? 돈은 있겠다, 종교 하나 바꾸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겠다 이 둘이 연관이 된다? 그거는 이게 왜 연관이 돼요? 집에 돈 있고 교회 바꾼다고 종교 바꾼다고 있는 돈 다 날아갑니까? 이건 말 같은 소릴 해야지. 그게 어떻게 관련성이 있어요. 이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지요.

그런데 돈은 안 가져가는 데 아람나라가 와서 여기 5절에 보면, 아람나라가 와서 많은 무리를 잡아 갔고요. 이게 첫 번째고요. 두 번째가 유다나라 위에 북이스라엘 있거든요. 이스라엘이 와서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이만 명이 죽었으며, 죽은 자가 십이만 명이에요. 그리고 포로 잡힌 자가 얼마냐 하면 8절에 보면, 이십만 명이에요. 십이만+이십만, 얼마 게요? 인적 손실이 삼십이 만이죠.

그런데 이것이 왕이 율법에 없는 다른 종교 식으로, 다른 종교가 뭐냐? 그냥 심심풀이 땅콩으로 장난삼아 해봤다. 사주 안 맞지만 그냥 행여나 싶어서 해봤다. 그게 어때서? 있는 재산 다 날린다? 그건 말도 안 되지. 이런 편한 마음으로 돈은 있으니까 재벌이니까 편한 마음으로 그냥 여호와 믿는 게 지루하니까 딴 종교 살짝, 사알짝 점성술 한 번 하고 타로점 찍어봤다.

그런데 삼십이만 명 인적 손해 봤다, 할 때 어느 누구가 여호와 안 믿고 이방종교 믿어서 삼십이만 명 인적 손실 났다는 그 논리적 연관을 이 세상에 어느 인간이 연결시키겠습니까? 시킬 사람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다니까요. ‘운이 나빴겠지. 운이 나빴고 이거는 정치적으로 그렇게 전쟁이 질라하니까 진 거지. 이것과 여호와 믿는 것과 자꾸 엮지 마라.’ 우리 자신들이 그렇게 생각해요.

만약에 여호와 믿어서 그렇게 됐다면 이건 미신 중에 미신이라고 책망 받을 짓이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아하스 왕입니다. 어떤 조치를 내렸을까요? 목록을 두 개 주겠습니다. ①회개하고 여호와 믿는다. ②더욱 더 여호와 멀리한다. 아하스 왕은 몇 번이었습니까? ①번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 같으면 몇 번이겠습니까? 묵언수행하십니까? 시간 가니까 빨리 이야기해보세요. ②번이에요.

왜냐하면 아하스도 아담의 자손이고 우리도 아담의 자손이에요. 아담 까보면 인간 까보면 그 안에 아담의 죄, 마귀 죄가 들어 있어요. 그래서 어떤 인간도 자기 힘으로 마귀가 하는 그 지시를 탈피할 위인은 없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했느냐 하면 아까 이야기했지만 오뎃이라는 선지자 보냈잖아요. 선지자가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 곳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는데 이름은 오뎃이라 저가 사마리아로 돌아오는 군대를 영접하고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유다를 진노하신고로 너희 손에 붙이셨거늘 너희 노기가 충천하여 살륙하고 이제 너희가 또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압제하여 노예를 삼고자 생각하는도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역대하28:9,10) 이게 오뎃이 사로 잡아가는 북이스라엘 보고 이런 이야기를 해요.

자, 오늘 강의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이 나옵니다. 이 본문이 복잡한데 아주 쉽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둘로 돼 있지요. 우리나라로 치면 남북처럼. 남쪽에는 유다, 북쪽에는 이스라엘. 이름도 이스라엘이에요. 열 지파를 가져갔기 때문에 간판도 다수가 있는 열 지파가 갖는 게 마땅하다고 전통적인 이스라엘을 가져갔고, 너는 유다 너거들 뿐이라 해서 유다에요. 남쪽은 성전이 있고 북쪽은 성전이 없어요.

유다나라 아하스가 돈 좀 있다고 뭘 했느냐 하면 그냥 돈이 있으니까 어떻게 돼요? 마음이 여유롭겠지요. 여호와께 안달 나고 그런 것 없겠지요. 시편 62편 10절에 보면, “포학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 말찌어다” 재물이 늘어나도 마음 두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 성경을 이렇게 보세요. 보면 성경말씀 하나하나가 터무니없어요. 족집게 같아. 우리가 못 지킬 것만 이야기해요. 성경 지켜서 구원받는 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왜? 성경은 인간의 능력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재물이 있는데 재물이 있으면 그걸로 됐지 뭐가 아쉬워서 뭐가 답답해서 여호와를 섬기겠어요. 돈이 있는 데요. 돈 없어도 안 섬기겠지만 돈 있어도 안 섬겨요.

하나님께서 오뎃이라는 선지자를 보냈는데 그때가 이십만 명 되는 포로를 잡아갔어요. 십이만 명 죽고, 이게 하나님의 붙이시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게 하사 십이만 명 죽고 북쪽에 이십만이 포로 잡혀 올라갈 때에 오뎃이 아하스 왕에게 이야기한 게 아니고요. 잡아가고 있는 북쪽 이스라엘에게 이야기했다고요. 네가 잡아가는 이십만 명은 하나님께서 유다를 저주했다는 증표에요. 증거물이에요.

경찰이 마약범을 잡고 보니까 마약이 백만 명 먹여도 남을 정도인데 액수로 하면 약 백 억짜리 마약이 있다. 그래서 경찰이 그걸 적발해서 압수를 했어요. 그러면 원래라면 그 마약 어떻게 해요? 폐기처분해야 되잖아요.

근데 영화가 되려면 영화는 항상 예술적인 작품을 근거해서 진실이 뭐냐는 그런 건 묻지 않고 그런 경찰 없지만, 그래야 영화가 재미있으니까 그 경찰이 마약을 자기 것으로 삼았다. 부패한 경찰이죠. 예술은 부패한 예술가 없어요. 무조건 해내면 부패하지 않아요. 경찰은 부패해요. 부패한 경찰이 마약을 가져갔습니다. 그러면 마약이란 것은 돈으로 교환이 된다, 이것만 생각했지 마약을 내 자식이 먹으면 인간이 완전히 괴물 된다, 그 생각을 경찰이 못하잖아요. 그렇지요.

지금 이스라엘은 전리품으로 유다나라보다 우리가 낫다. 지금 전리품으로 이십만. 그것 봐. 너희가 유다나라가 하나님…, 여호와가 우리 편이야. 전리품으로 가져가는 거예요. 북한 여자축구 감독이 이야기했습니다, 경기 전에. 남한 여자축구 어떻게 봅니까? 그게 미얀마 수준이에요.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우리 여자축구는 세계 탑이고 저건 미얀마나 안 그러면 스리랑카 그 정도밖에 안 돼요. 아이고. 기자 양반도 참. 질문할 걸 질문해야지. 경기 보세요. 10:0으로 되는지 두고 보라고. 경기 끝났어요. 1:1 됐습니다. 이제 그 감독은 아오지 탄광 감이라.

이스라엘이 포로 잡힌 것은 하나님의 저주의 증거물이에요. 진노의 증거물을 네가 가져가버리면 그 진노가 누구한테 임한다? 고스란히 이게 코로나 바이러스 갖고 있으면 뭐 돼요? 코로나 걸리겠지요. 그게 바로 역대하 28장 12절에 아마사가 나옵니다.

“아마사가 일어나서 전장에서 돌아오는 자를 막으며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포로를 이리로 끌어 들이지 못하리라 너희의 경영하는 일이 우리로 여호와께 허물이 있게 함이니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더하게 함이로다 우리의 허물이 이미 커서 진노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하매 이에 병기를 가진 사람이 포로와 노략한 물건을 방백들과 온 회중 앞에 둔지라” 다 풀어주고, 그리고 벗은 자는 옷 입히고 신 신기고 배고픈 자는 먹여서 그들을 다시 원위치 유다로 도로 보내라. 이렇게 했어요. 시껍하려고 그랬느냐.

오늘 강의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이 나왔으니까 그 대목을 제가 하나의 문장으로 질문형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포로를 관대하게 고향으로 돌아가면 포를 풀어준 이스라엘은 구원받습니까, 이 질문이에요. 구원 못 받지요. 첫째 강의 생각해보세요. 구원 못 받습니다. 구원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포로를 풀어준 내가 죽어 마땅함을 알아야 돼요.

쉽게 말해서 경찰관을 마약범에게 지가 돈 된다고 증거물 일부를 빼돌려서 돈 받고 팔려다가 호기심이 생겨서 마약을 먹든지 주사를 맞는지 했어요. 그 경찰관 어떻게 됐을까요? 좀비 됐지요. 그 압수한 것 돌려준다고 해서 본인이 멀쩡한 인간은 아니에요. 마약쟁이들이 마약을 하는 이유가, 그들이나 마약을 호기심으로 먹은 나나 둘 다 조상은, 누구의 후손이에요? 아담의 후손이죠. 아담의 죄가 마귀와 결탁된 마귀의 본성이 인간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죽어 마땅한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이 땅의 어떤 인간도 천국 갈 위인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갈 수가 없어요. 마귀가 붙들고 자기 사랑에 미치게 만들어버렸는데 자기 행복이 전분데 내 새끼 내 가족이 전분데 보름달 뜨면 보름달 보고 빌고 해 뜨면 저 울산 간절곶에 비는 게 인간 아닙니까. 뭐 주의 영광을 위해 빌었어요? 그 간절곶에 1월 1일에 가서 빌 때 하나님이여, 주님이여 제발 올해는 나를 미워하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 봤습니까?

저는 MBC, KBS 인터뷰할 때마다 뭘 빌었어요, 하면 “올해도 우리 남편 몸 건강하고 자식들 공부 잘하고 우리 가족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맨날 그 이야기를 지금까지 수백 번 들었어요. 그렇게 이야기한 게 누구 자손이냐 하면 아담의 자손이에요.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누구 자손이에요? 아담의 자손이잖아요. 어디서 우리가 아닌 척하고 우리가 종교적 기독교로 포장을 왜 해요. 본심은 그대로인데. 그들이 본심을 우리 대신 다 이야기해주고 있잖아요. 살면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 단 한 사람도 없어요.

그래서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립니다. 천국 갈 사람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수많은 성도들이 천국에 갔느냐? 어떻게 갔느냐? 그걸 말씀드리겠어요. 위장살인. 이게 인간들이 말하는 위장살인은 죽지도 않았는데 죽은 척하는 것, 그리고 죽었다 치고 이름 바꿔서 온갖 범죄를 다 저지르는 그런 영화도, 이 제목은 아니지만 그런 쪽 영화가 한두 개 나온 게 아닙니다.

남한테 빚 있다. 사기 쳐서 이조 원이나 빚을 진 사람이 중국 가서 소문이 어떻게 났느냐? 나 이미 죽었다. 나한테 돈 받을 생각하지 마라, 해놓고는 이름 바꾸고 위장해서 지는 남은 돈 몇 천억 가지고 잘 먹고 잘 산다는 그러한 그게 사실이냐 중요한 게 아니고 그걸 영화로 만들면 돼요. 영화는 사실이냐가 아니고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 되는 거죠, 뭐. 이런 사기범이 있다고 소문났지요, 여러분. 중국 가서 이조 원 사기치고 안 죽었는데 죽었다 치고 한국에서 장례 치르고.

그런 의미잖아요. 위장살인이. 그런데 위장살인을 만약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척한 게 아니고 예수님은 진짜 죽었어요. 진짜 죽으셨는데 놀라운 사실은 이거에요. 위장살인 의도를 갖고 있다는 그런 합리적 의심이 드는 이유가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이래 나와요.

마태복음 16장 21절,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됐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무엇까지 생각합니까? 나는 죽는다, 이것까지 이야기했습니까, 죽고 난 뒤에 삼일 만에 살아난 것까지 이야기해요? 이것이 인간이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일까요? 이만희 같으면 몰라도. 이게 인간으로서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입니까?

다시 말해서 내가 죽는 이유는, 내가 죽고 난 뒤에 내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두고 내가 다시 살아나서 찾아가서 물어서 내가 죽은 이유에 대해서 질문을 해서 합당한 답을 하는 자만 천국에 데려가겠다는 거예요. 내가 죽고 난 뒤에 살아나서 찾아가겠다는 거예요. 제가 위장살인이라 하는 인간세계에서는 이게 성립이 안 돼요.

인간의 위장살인은 아까처럼 사기 치는 것밖에 안 돼요. 인간은 죽으면 끝나는 것이지 죽고 난 뒤에 사는 그런 것 없어요. 그러고 싶어도 인간은 해당이 안 돼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죽고 난 뒤에 살인도 남이 죽인다 하는데 인간의 살인을 빙자해서 주님이 스스로 죽는 거예요, 이거는. 요한복음 10장에 누가 나를 죽인 게 아니고 내가 스스로 죽는다.

요한복음 10장 보겠습니다. 성경대로 해야지 안 그러면 바로 예수님 안 죽은 척했다. 그런 것은 박진영한테 하는 소리고. 여기 요한복음 10장에 여기 보면 18절,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스스로 버리는데 그 버리는 모습이 인간들로 하여금 나를 쳐 죽이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게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계약이에요.

아까 땅콩껍질처럼 생긴 안경집, 안경케이스 있지요. 예수님이 계셨는데 빠져나갔지요. 케이스만 남기고 빈자리만 남기고 빠져나가요. 빈자리라 하는 것은 빈자리가 아니라 누군가 있었다는 그 내용을 채울 것을 요청하는 빈자리, 요구하는 빈자리. 내가 천국 가는 일종의 방주지요. 천국 가는 몰딩된 틀은 형태는 내가 만들어놨지. 따라서 너라는 육신은 이 틀 안에 맞추어야 천국 온다는.

그럼 어떻게 틀을 맞추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없는데 주님께서는 뭐냐 하면 위장살인인 것처럼, 위장살인을 한 건 아니지요. 진짜 돌아가셨으니까. 눈 감고 죽은 체한 게 아니고 돌아가시고 난 뒤에 이렇게 하신 이유는, 어떤 누구도 인간은 애초부터 천국에 올 자격이 없음을 천명하는 거예요. 분명히 하는 거예요.

천국 간다, 구원받는다, 그런 네 주제에 맞지도 않는 소리에요. 네 권한에 맞지도 않는 소리하지 마라. 아무도 없어요. 없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와서 우리한테 물어요. 내 죽음에 대해서 너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을 때 그 묻는 것으로 그 사람은 어떻게 돼요? 영생을 얻는 겁니다. 그럼 물을 때 묻는 내용이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와요.

15장 25절부터 보면,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그다음에 26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원수와 맞짱 뜨고 싸운다 하는 것은 상대가 사람이든지 마귀든지 귀신, 유령이든지 천사든지 아저씨든지 뭐 있어야 되잖아요. 사망은 형체가 없잖아요.

사망이 뭐냐? 마지막 정복해야 되고 쳐 부셔야 될 전쟁의 최후의 적이 사망 그 자체라는 거예요. 그러면 이러한 인식은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왜 사망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를 설명해주고 있어요. 한 판 붙자. 한일전 축구 붙자. 이러면 우린 납득이 돼요. 너희 열한 명, 우리 열한 명 붙자. 이렇게 되는데 사망과 어떻게 싸웁니까? 우리 인간은 사망하고는 싸움 대상이 안 돼요. 사망한테는 이미 정복당해버렸지요.

그걸 로마서 5장에서는 뭐냐? 사망의 왕 노릇이라고 해요. 죄의 왕 노릇, 사망의 왕 노릇. 우리에게는 왕이 있어요. 그게 뭐냐? 사망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죽기를 무서워해서 어떤 생각이나 행동이 나온다는 거예요. 모든 인간은 어떤 행동을 할 때. 여자 양궁시합에서 해설자가, “마음을 편안히 잡고 바람 부는 것 평소에 훈련한 대로 바람의 결을 생각해서 제대로 조준해서 쏴야 돼요. 쏴야 됩니다” 해설한다고 신경 바짝 쓰고 이렇게 하지요.

그러면 제가 묻지요. 쏴서 10점 맞으면 뭐하는데? 그럼 해설자가 10점 맞으면 금메달 땁니다. 금메달 따서 뭐하는데? 금메달 따면 연금 생깁니다. 연금 생겨서 뭐할 건데? 덜 죽습니다. 풍부해서 풍요하다는 것은 죽음과 거리가 멀다는 거죠. 죽음에 가까이 아니고 죽음과 멀어지고 죽음과 관계없습니다. 그럼 당신은 양궁 해설이 결국 뭐냐? 어쨌든 간에 죽음을 이기라는 이야기와 똑같은 거예요. 그렇지요. 그런데 여자선수 쏘는데 쏠 때마다 8점, 8점, 8점 은메달. 인도한테 져서. 그다음에 해설자, 그래도 잘했습니다. 뭐 바람이 불어서…. 그쪽은 바람이 안 부는가?

이번엔 레슬링 해설하는 사람. “저때는 저렇게 들어와야 됩니다. 더 힘내서 들어가야 됩니다. 아하,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젊으니까 다음 기회 있겠지요.” 다음 기회가 뭔 뜻입니까? 이런 이야기들에 대해서 방송을 듣는 사람이 납득을 해요, 납득을 안 해요? 해설자 마음이나 우리 마음이 똑같지요. 똑같이 어디에 종노릇하고 있습니까?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현실세계입니다.

“너 시험 쳤는데 몇 점 맞았어?” 그 이야기 뭐예요? 그래서 죽음을 이길 수 있겠어, 이런 뜻이거든요. 평생을 우리는 성경을 여러분 몇 독했어요? 평생을 성경을 보면서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적이 있는데 그 적이 이미 우린 패배 당했다, 실패했다. 누구한테? 사망에게. 사망에 이미 우리는 패배했다는 것은 율법이 요구하는 동일수준의 반복에서 틀어져 있다는 거예요. 이걸 쉽게 하면 반복적으로 우리는 동일시에 실패한다.

여기 매직이 있지요. 매직을 던졌습니다. 잡았습니다. 잡았지요. 또 해볼까요? 잡았습니다. 같습니까, 틀립니까? 틀리지요. 올라가는 궤적, 내려오는 궤적, 위치 다 안 같지요. 다 같지 않아요. 옛날 찬송가 405장, Amazing Grace 놀라운 은혜지요. 그때 찬송 부를 때 눈물 나더라. 그다음 불러보세요. 눈물 나는가, 안 나는가? 안 나요. 왜? 어디서 실패했어요? 동일성의 실패에요. 율법은 똑같이 요구해요.

그러나 인간에게는 어떤 행동을 해도 두 번 다시 똑같은 행동을 인간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 보면 인간이 연약해서 할 수 없는 그것을 우리 주님이 해주셨으니 자기가 할 수 없는 육을 의지하는 자는 사망이고, 주님을 의지하는 자는 영생이니라. 그러면 주님을 의지하려면 누굴 알아야 돼요? 내 자신이 뭘 해도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는 이 사실에 동의해야 돼요.

신혼 초에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티를 내려고 아내 생일에 꽃을 사서 주니까 아내가 참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이제까지 맨날 내 행동을 자책했는데 잘한 것 하나 있다. 당신 만난 것, 당신 선택한 것 정말 잘했다. 고마워 여보” 하고 안아줬다면 그다음 해의 생일에 아내가 좋아하는 꽃을 주니까 어떻게 되느냐 하면 아내가 꽃을 헤아려요.

“당신 이것 얼마 줬는데? 이걸 오만 원 주고 사나. 당신 알다시피 애 크고 돈 나갈 때 한두 가지가 아닌데 당신은 팔자도 좋다.” 비비 꼬기 시작하는 거예요. “당신 참, 참 가정사정을 몰라. 당신 낭만만 좋아하네. 한 푼이라도 아껴야 된다는 생각 안 들어? 그렇게 결혼 일년 동안해도 몰라?” 경상도 말로 쿠사리라. 쿠사리 실컷 때려버리는 거예요. 가계부에다가, ‘오늘도 남편은 쓸데없이 오만 원 주고 꽃 사왔다’ 남편은, 똑같이 했는데?

그리고 난 뒤에 결혼 한 사십 년 해서 생일이라고 밥이나 먹자 이럴 때 “아이고 참 여자 팔자 다른 가정에서는 생일 됐다고 꽃다발 사주던 데 당신은 뭐고? 결혼 초에 한 번 사주고 끝났잖아.” “어쩌라고, 어쩌라고? 돈 아끼라며…. 꽃다발 사달라는 그 이야기냐?” “마음가짐이 식어졌다 이 말이잖아. 왜 당신은 한결같지 않아.” 그럼 그 말 듣고 남자 입에서 막 나오는 말 있지요. 뭡니까? 너는 왜 한결같지 않아, 이 말 나오려고 하다가 또 남자로서 어떻게 돼요? “그래 아는? 자자.”

상대를 ‘한결같이’를 요구하는 것도 잘못이고요, 나는 한결같이 당신을 사랑하는 거짓말도 이제는 그만하라 하세요. 인간은 본인이 누군지를 몰라요. 오늘 목쉴라 한다. 정말 중요한데. 나를 장악하는 것은 사망입니다. 근데 그 사망을 누가 장악했어요? 우리 주님이 벌써 이겼다는 거예요. 한결같이.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들을 수 없어서 사망이 저주가 올 수밖에 없다. 어떤 인간도 주님이 요구하는 율법을 이룰 없는 거예요. 아하스 왕은 나쁘다. 그럼 다른 왕은 안 나빠요? 메시아 아니기는 마찬가지에요.

이제 남은 것은 왜 하나님께서 구약 때 자기 백성이 인간이 안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왜 끊임없이 동일한 율법과 동일한 언약으로 다가오시면서 왕이 나름대로 백성을 위해서 애쓰고 우상까지 섬기는 성의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주께서는 우상 섬겼다고 왕도 망하고 백성들도 망하게 하는 그 이유가 뭐냐? 이걸 거기에 대해서 오늘 제목 하나 나옵니다. 빨간 걸로 쓰겠습니다. ‘청소’ 이게 초등학교 같으면 학생들 따라해 보세요, 할 텐데 여러분들은 딱 보면 알잖아요. 청소.

청소에는 세 가지 있어요. 대청소. 소청소. 소소청소. 아까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뭐냐? 하나님의 뜻은 말씀의 뜻인데 요한복음 12장 25절 뜻이 뭐였습니까? 자기를 미워하는 거예요. 자기를 미워해야 나를 청소해주시는 주님의 청소의 취지와 합한 거거든요. “너 없어야 돼. 청소해야 돼.” 그 말씀이 그전에 마귀가 사망이 우리를 지배했던 우리 마음에 너 청소 대상이야, 너 없어져야 돼, 라는 그 말씀으로 대체되기를 바랍니다. 바꿔지기를 바랍니다.

대청소는 뭐냐? 노아홍수 때 이미 이야기했어요. 노아홍수 때 물로 대청소했잖아요. 앞으론 물로 청소 안 합니다. 불로 청소해요. 물로 청소는 약간 여지가 남아 있어요. 물로 청소하면서 남아 있는 게 있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방주였습니다. 동동 떠다녔지요. 물로 덮여버린 세상, 대청소 되는 중에서도 방주는 거기서 둥둥 떠다니면서 미래를 약속했습니다. 노아약속, 노아언약이에요.

그런데 불 청소는 물청소와 동일해요. 규모는 동일해요. 다 덮어버림에 동일한데 물청소는 육신은 남겨두잖아요. 그런데 불 청소는 육신마저 죽여 버려요. 왜냐하면 육신마저 죽어야 더 이상 내 구원을 위해서 내가 뭘 할까라는 자체가 아예 근원적으로 작살나기 때문에 그러한 여지조차 완전히 짓밟기 때문에 내 육신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우리 행함으로 없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 불 청소입니다.

세례 요한의 물청소는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잖아요. 나와서 뭐 해야 될 게 있잖아요. 불 청소는 불속에 들어가면 끝났어요. 나와서 따로 내가 할 게 없어요. 오히려 불세례에서 나온, 세례 요한은 물세례고 불세례에서 나오고 난 뒤에는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것은 우리가 아니고 주님이 되는 겁니다. 주님이 쓰레기 껍질 같은 우리 들고 뭔가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뭐 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구원받고 난 뒤에도 없지요. 주께서 우리를 말씀대로 이끄시니까. 청소기에 빨려가기 때문에. 말씀으로 된 진공청소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아아 이게 말씀이구나, 이게 말씀이구나, 잃어버린 말씀들이 계속 떠오르게 하고 그걸 경험케 하는 그런 새로운 예수님의 공간 안에 들어가 버려요. 그럼 대청소는 이야기했어요.

그럼 소청소는 뭐냐? 소청소는 율법을 주고 하는 거예요. 율법을 주고 이스라엘 집단을 전체를 하나의 개인으로 봐서 청소하는 것, 이걸 다윗언약이라 해요. 다윗언약은 왕 하나를 통해서 왕이 잘못했을 때 왕뿐만 아니고 백성이 다 같이 벌을 받고 저주받는 계약, 그게 다윗언약이에요.

모세언약은 언약을 행하는 사람이 언약대로 안 했을 때 예를 들어서 안식일에 나무 했다? 돌로 쳐 죽이죠. 아들이 부모의 말을 안 듣는다? 신명기 20장인가 보게 되면, 그 아들을 부모가 그 동네 장로에게 내주면 장로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다른 이들이 그 자식을 돌로 치게 돼 있습니다.

신명기 21장 18~21절,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찌니”

부모 말 안 듣고 술 먹었다는 이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와서 그 자식을 부모가 죽일 자식을 다른 사람이 대신 죽여주는 거예요. 친절한 이웃. 이걸 석 자로 하면 뭐라 하는 줄 알아요? 참교육. 울산의 고등학교 참교육하려면 운동장에다가 돌로 치는 장소를 따로 만들어야 돼요. 축구장 말고 모래사장 옆에다 참교육장해서 돌은 이만큼 쌓아놓고 여차하면 담배 피다 걸리면 돌은 던져버리는 참교육.

요즘 국가에서 이것 하면 뭐 되겠어요? 광주 5‧18 사건 날 거고, 그다음에 제주 항쟁사건에 그런 수준에 맞는 학살을 할 거고. 그걸 모티브로 해서 소설을 쓸 거고 그 소설이 노벨문학상 받을 거고.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을 민주주의가 뭔데 인간이 인간을 존엄하게 하는 민주주의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종교적인 태형이 말이 되느냐? 그것 말하면 뭡니까? 데모하는 거죠. 따라하세요. 광화문에 모여서. 우리는,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을. 거부한다, 거부한다. 밤에는 촛불 들고.

그 시위 광화문까지 안 가도 돼요. 우린 매순간 거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굳이 거부 안 해도 괜찮아요. “하나님이라도 내 새끼, 손만 해봐라. 안 그러면 욕할 거야.” 마음, 기본자세가 그래요. 율법 있으면 뭐 합니까? 국가가 이웃이 이런 처벌을 안 내리는 데요. 그게 나름대로의 민주주의 방식이 되어서 아무도 율법도 우리의 동의 없이는 율법을 시행 못하는 그런 시대가 이스라엘 시대 된 거예요. 주께서 이스라엘 어떻게 했습니까? 청소 해버렸지요. 소청소.

그럼 나머지 하난 뭡니까? 소소청소. 작은 청소 가운데 청소. 이거는 개인적으로 찾아가는 거예요. 누가? 성령께서. 오늘 살고 우리 그만 살자. 보험 넣은 것 할 수 없다. 너 오늘 죽으면 못 찾는다. 저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 건강보험, 실비보험 넣은 것 다 소용없어요. 오늘 밤 네 영혼 데려가면 저것이 누구 것이 되는가? 이 어리석은 자여, 누가복음 12장에 나오지요.

메달 딴 것, 좋다고 메달 땄지. 오늘 밤에 네 영혼 데려가면 메달 누구 것이 되겠는가? 소소청소. 작은 청소, 누가 하느냐? 성령님이 이 청소를 담당합니다. “주여, 청소해주시옵소서.” 왜, 물으면 죽었다가 다시 살기 때문에.

아까 안경케이스가 예수 안이죠. 예수 안이라는 것을 만들어놓고 이걸 벌리고 여기서 성령이 나오고 성령을 진공청소기 삼아서 자기 백성을 빨아 당겨서 예수 안 십자가에 같이 닫아버려요. 이 안에서 닫고 열리는 주님에 일어나는 일을 반복함으로써 반복은 주님의 동일성의 반복, 늘 죽고 늘 살고 또 죽고 살고. 그래서 사나죽으나 누구의 것이로다? 주의 것이로다. 주님이 계시는 곳에 매일 죽고 매일 사는 그런 혜택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이제는 알게 하옵소서. 그동안 우리가 주님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알지 못했던 이유가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이 마귀적인 고집 때문에 그런 줄 압니다. 이제는 그 고집을 버릴 것이 아니고 이 고집도 주께서 의도적으로 우리의 죄를 알기 위해서 주신 고집인 것을 감사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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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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