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라
야고보서 5:7-8 참으라
부러워하는 것과 감사하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부러워하는 것은 ‘자기 것’을 못버린 모습이고, ‘감사하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떠난 마음 상태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참으라’는 어디에 속할까요? ‘참으라’는 것은 자기로부터 떠난 상태를 지나서 ‘주님에게 속한 마음’으로 쓰여지는 관계에 놓인 마음 자세입니다.
쉽게 말해서 이런 사람은 자기 계획이라는 것이 도무지 없습니다. 스스로 만들어내어도 주님께서 그 계획을 무산시키십니다. 왜나하면 ‘세상을 떠날 대상자’로 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떠날 사람은 떠나면 됐지 무슨 이 세상에 성과를 남길 필요가 있단 말입니까? 주님에게 속한 사람의 할 일은 간단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당했던 모든 것을 주님께서 이끄시는 현장에서 당하는 체험을 갖는 마주하고 맞이하는 일입니다.
즉 주님께서 그 어떤 상황에서 참고 또 참으셨는지를 몸소 느끼는 삶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막 3:6)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 대”(마 22:17)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요 11:57)
재림이란 예수님께서 겪었던 모든 것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복수하기 위하여 자신의 본질적인 영광성을 발휘하는 순간을 말합니다.
누구도 예수님 자태에서 뿜어나오는 그 영광성을 피하거나 마주할 자가 없습니다.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 6:16-17)
이렇게 되면 인간이 자신들에게 의식 있다는 점이 이처럼 참담하게 느낄 때도 또 없을 겁니다. 차라리 죽어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더 행복하게 느낄 겁니다. 문제는 이 재림 때의 영광성이 성도에게 이미 내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