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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튜브강의(522강/523강) , 군대/ 광야 260922설교시편

522강 음성

523강 음성

522강-YouTube강의(군대 시편 33:16-21)20260922-이 근호 목사

제522강, ‘군대’. 군대는 전쟁할 때 동원되죠. 전쟁이 없으면 군인은 필요 없습니다. 옛날에 신라시대나 고대국가에서는 정기군이 없이 평소에 농사짓다가 외부에서 쳐들어온다 싶으면 왕이 갑작스럽게 소집을 해서 훈련 같지도 않은 훈련받고 전쟁에 나왔다가 전쟁 끝나면 다시 또 농사지으러 갑니다.

그러니까 농경사회에서 ‘전쟁 없이 평화’라는 것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희망사항인지 아시겠지요. 요새 같으면 전쟁은 군인만 하고 나머지는 일상 생활할 수 있잖아요. 우크라이나 군인은 러시아 전쟁하고, 우크라이나 다른 사람들은 취미생활하고 스포츠하고 골프치고 지금 이렇게 한다고요. 전쟁은 네가 하고 우리는 일상생활하면 되니까.

그런데 고대사회는 그게 안돼요.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굉장히 바랐죠. 왕들의 주 업무가 그거에요, 이웃나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좋은 게 좋다고 좋게 좋게 살자. 그렇게 이웃나라와 좋게 좋게 하려면 인간적인 방법으로 할 수 있는 게 뭐냐? 바로 화친하는 거죠. 친하게 지내자.

그러나 말로만 친하게 지내자 한다고 친해지는 게 아니거든요. 각자 각자의 인질 비슷한 것을 잡아놓는 겁니다. ‘내 아들 거기 가고, 당신 나라 당신 딸 우리한테 오고. 그럼 이제 딸, 아들 헤어지면 안 되니까 일단 혼인을 해서 나한테 공조가 있다면 당신한테 줄게. 당신한테 공조 있다면 우리 아들의 아내가 되어서 내 며느리 삼자.’ 이게 어떤 극단적인 상황, 위험을 대비해서 든든한 담보 같은 그런 입장에서 그런 결혼, 화친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 만들 때 인간들이 그런 식으로 이웃나라와 화친한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알죠. 그래서 신명기에 보면 절대로 다른 나라와 혼인하지 말라 했어요. 이유가 뭐냐? 혼인하게 되면, 시집오거나 장가올 때 특히 시집올 때 그쪽에서 믿었던 신이 수입되게 됩니다. 수입하게 되면 새로 온 색시는 자기 종교, 바알 종교죠, 자기 종교를 전파하는 전도사 역할을 하게 돼요. 사람만 오는 게 아니에요. 종교도 같이 따라오는 거예요.

공장에 일손이 없다. 그러면 이슬람 청년들을 그냥 산업 연수원생으로 뽑자. 오면 그 사람들이 그냥 옵니까, 이슬람 종교도 같이 와요? 같이 오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농촌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아가씨들이나 회사에서 외국인을 뽑을 때 면접할 때부터 이미 요구를 해요. 수건 안 쓸 수 있느냐고 물어요. 수건 쓰면 우리 회사에서는 못 뽑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온 이슬람 교도들이 기세를 못 펴는 이유가 여자들 머리에 수건을 안 써서 그렇죠. 종교 티내면 안 되니까. 그럼 그들은 순교할 요량으로 수건 쓰지, 왜 안 쓰냐? ‘나는 취직 안 되는 한이 있더라도 코란을 벗어나면 우리는 나중에 지옥 갑니다. 그래서 저는 할 수 없이 써야겠습니다.’ 왜 그렇게 안 나오느냐 이 말이죠. 남자들 취직할 때 “금요일에 엎드려 기도하는 그거 하려면 우리 회사에서 당신 못 뽑습니다.” “예.” 왜 예,할까요?

종교보다 돈이 급하기 때문에. 친정집이나 자기 나라에 돈 보낼 궁리로 우리나라 왔잖아요. 결혼해도 남편 돈해서 필리핀 자기 친정에 돈 다 보내고. 캄보디아, 라오스, 네팔에 있는 자기 식구들한테 보내고. 돈 앞에 종교고 뭐고 이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은 태어나면서 전쟁해요. 무슨 전쟁이냐? 생존 전쟁입니다, 생존 전쟁. 그런데 개인적으로 생존 전쟁한다면 개인으로서는 생존하기 힘들잖아요. 그럼 국가로 뭉쳐서 생존하려고 하겠죠.

문제는 구약성경에서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줬단 말이죠. 그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들 때는 기본이 뭐냐? 먹고 마시고 하는 이 생존에 대해서 일체 네가 염려하지 말기를 당부하면서 나라가 만들어졌어요.

그럼 생존문제를 염려하지 않는다면 뭐만 생각하면 되겠어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면 복이 오고, 못 살면 저주다. 그 기초는, 생존 문제-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그거는 문제 삼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대로 이 땅에 펼치는 그런 사명을 갖고 있는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그 이스라엘이 드디어 약속의 땅을 차지했습니다. 차지했을 때 주변나라는 이스라엘이 아니죠. 다른 이방민족이 그들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을 게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쳐들어왔을 때, 제가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농사짓다가 전쟁하고 또 전쟁 끝나면 농사짓고 그런 식인데, 과연 어느 정도 군대를 모아야 이스라엘이 든든해지겠는가? 그 생각을 왕이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데 시편 33편 16-21절까지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군대 동원령은 왕의 의지에서 나온단 말이죠. 그런데 왕보고 하는 말씀이에요. 많은 군대로 구원 얻는다는 말은 승리한다는 뜻인데 승리할 왕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한다.” 힘 빼라 이 말입니다. 군대 빼라.

17절, “구원함에 말은 헛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한다.” 이게 이스라엘의 특수성이어야 한다. 다른 나라와 차이나는 점이 이 점이어야 한다. 그럼 오늘날 우리가 이 말을 듣는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시편 33편 이 말씀을 가르친다면 가르침 받는 우리의 기분은 어떻겠습니까?

난감하죠. ‘아, 그건 참 곤란하겠다.’ 그런 생각 들지 않겠습니까? 그럼 자연적으로 뭡니까? “우리가 안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 말 빼고 다른 말해주세요.” 하고 말씀에 대해서 강력하게 두 팔을 내밀면서 저항하겠죠. 무엇의 저항이라고요? 말씀에 대한 저항.

그 다음에 계속 보면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군대를 빼라. 힘 빼라. 그러면 이스라엘에게 작용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다.’ 그런 이야기거든요.

그러면 ‘이스라엘이 자체적으로 군대를 키우고 힘을 키우겠다.’ 이것은 곧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지금 우리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안 계신다.’ 그걸 말하는 거고, ‘계시더라도 별 볼일 없다.’ 오늘날 교회 교인들의 마음가짐처럼. ‘계시겠지. 그러나 뭐? 나한테 뭐해줬다고?’ 그러니까 그 당시 이스라엘이나 오늘날 우리와 별반 차이나지 않습니다. 극구 말씀을 밀어내는 데는 둘 다 똑같아요. ‘하나님을 경외할 만해야 경외하지. 지금껏 내 힘으로 살아왔는데.’ 지금 이러고 있으니 말씀이 귀에 들어올 리 없고 말씀을 보기도 싫은 거예요.

19절, “저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 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아, 여기서 바로 핵심이 나옵니다. 적이 쳐들어왔다. 자기가 모집한 군대로 이겼다. 무사히 적을 쳐부숴서 적이 물러갔다. 그러면 그들의 영혼이 삽니까? 영혼이 안 살죠. 자기의 교만과 으시댐만 더욱 키워졌죠.

영혼을 사망에서 건져내는 방법은, 전쟁이 일어나나 안 일어나나 평소에 있던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보살핌으로, 그것도 인자하심, 사랑으로 보살폈다는 감각, 그 감각을 다시 회복하면 그 영혼이 사망에서 사는 거고, 아무리 잘 먹고 잘 살고 떵떵거리고 군대 많고 아쉬운 게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뭐?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이렇게 나오면 그거는 이미 사망 가운데 있는 거예요.

끝으로 20절,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주변에서 적들이 쳐들어올 때 그때 우리가 진짜 이제는 내가 가진 힘과 재주와 지식에 의존할 게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나님께 이 모든 사태를 맡기기 위해서 내가 나서지 않는 그 마음자세.

이 일을 주께서 일으켰으니까, 나도 이 일을 통해서 그동안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내가 얼마나 훼방꾼이고 내가 방해자인가를 자인할 때, 비로소 우리가 그동안 놓쳐버린, 이런 나밖에 모르는 인간도 사랑해준다는 그 사랑을 아는 관계 속에서 주의 그 다음 조치가 감사와 고마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겁니다.

주님께서 인생을 살게 하면서 계속해서 전쟁이라는 것을 일으키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523강-YouTube강의(광야 시편 63:1)20260922-이 근호 목사

제523강, ‘광야’. 광야에 두 종류가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집단적으로 통과했던 그것도 광야입니다. 그때 광야는 하나님의 율법을 주신 취지를 드러내기 위해서 집단적으로 생판 경험치 못한 광야를 그들에게 터벅터벅 걷게 하신 거예요. 율법이 어떤 내용인가 알리기 위해서.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도대체 율법의 내용이 뭐기에 그들은 광야 생활을 굳이 해야 되는가? 율법 안에 들어있는 게 희생이에요. 희생.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해야 된다는 말입니까?” 이렇게 물으면 그 질문을 보류하고 “하나님이 먼저 너희를 위해서 희생한 사건이 있다.” 그게 바로 유월절 사건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걸 느끼지 못했어요. 하나님이 희생한 것이 아니고, 자기 집에 키우던 어린 양이 희생했다고 생각한 거예요. 내 재산, 내 물건이. 내가 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양의 피 바르면 된다는 소리를 듣고, 자기 집에 있는 양의 피를 발랐더니만 희한하게도 다른 집은 전부다 통곡소리 난리도 아닌데 자기는 우리 장자가 아침에 보니 멀쩡하게 깨어났더라. 아, 하나님께서 내 것 희생하면 하나님이 가상히 여겨서 ‘아이고, 그걸 나한테 바치나? 내가 너를 구원해줄게.’ 뭐 그런 조로 생각을 했겠죠.

그런데 그 어린 양의 희생이 내 소유의 양을 바친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우리를 위해 바쳤다는 사실로 점점 내용이 전개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단 애굽에서 나오는 것은 성공했기 때문에 ‘그거는 다 과거 일이고 지금 당장 배불리 먹고 여유만만하게 당당하게 호강하면서 약속의 땅이나 가서 영원히 살아보자.’ 이런 식으로 나왔을 거예요. 살던 가락이 애굽에서 살던 가락을 유지하면서 그랬습니다.

어린 양 그건 옛날이야기니까 난 모르겠다는 거죠. 그런데 그 유월절 어린 양의 그 취지가 그냥 ‘유월절 어린 양, 유월절 어린 양’ 이러면 ‘저희들 다 압니다. 저희들이 다 경험했어요.’ 이걸로 끝날 건데, 그 유월절 어린 양에다가 주변에 뭐를 둘러싸느냐 하면 율법이 둘러싸요, 율법이.

모세가 일부러 시내산까지 갔고 모세를 불러다가 율법을 짐 지워가지고 땅에 전달할 때 그 율법의 전달된 내용을 보게 되면,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송사문제, 그 문제도 들어있고, 그리고 의식주 생활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네가 알던 애굽 백성과의 차이점도 거기에 나와 있고. 그리고 핵심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드려야 된다는 거예요. 제사를.

제사를 드린다는 말은 제사 받는 분이 계시다는 뜻이잖아요. 그럼 제사를 드리면 정성과 성의를 다해서 제사 드리면 되지 않겠는가? 아니죠. 그럴 것 같으면 율법을 준 이유가 없어요. 어떤 사람이 나한테 돈 빌려 갔는데 내가 그 돈을 탕감해줬다. 그럼 저쪽에서 뭐라고 하느냐? “아이고, 세상에 이런 큰 은혜를 주셨으니 제가 성의와 정성을 다하여 모시겠습니다.” 인간과 인간 같으면 “아, 감사합니다.”하면 되는데, 하나님은 그게 없어요.

율법을 준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고맙고 감사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 믿습니다. 하나님께 성의를 다 하겠다.’ 하는데, 나는 그의 말을 일체 믿지 않는다. 내가 준 율법을 준수할 때, 나는 사랑 안한다 할지라도 사랑으로 받아주고, 안 믿습니다 해도 난 믿음으로 인정해줄게. 따라서 너의 기준, 나 안 받고, 율법의 기준만 받는다.

그러면 뭐 율법 지키지, 뭐. 구원해줬으니까 율법을 지키면 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율법 지키는 조건이 묘해요. 뭐냐 하면, 물이 없고 먹을 양식이 없습니다. 사람이 좀 여유가 있고 돈푼이나 있고 연금을 한 달에 500만원, 600만원 탈 것 같으면 심심풀이 땅콩 삼아 교회 나가서 졸든 말든 도장 찍고 나중에 죽고 난 뒤에는 ‘나 교회 나왔습니다, 하나님. 알아서 하나님이 구원해주세요.’ 보험 조로 이럴 수 있는데, 먹을 게 없는데 하나님께 감사한다?

여러분, 이 등식이 성립돼요, 먹을 게 없는데? 아니, 먹을 거 없어도 괜찮아요. 마실 물이 없는데. 마실 것 없고 먹을 것 없다는 말은 하나님 뜻은 명쾌해요. ‘죽어라.’ 어디서? ‘광야에서.’ 그 광야에요, 그 광야. 애굽에서 살았다는 의식을 제거하는 용도로 광야라는 그런 자연환경에 절차를 마련해놓고 통과케 하는 겁니다.

“너 어린 양 피 발라서 살았나?” “예. 살았습니다.” “아니야. 어린 양이 살았지, 너는 죽은 거야. 어린 양 때문에 네가 산 거야. 나는 너를 포기해도 너를 살린 어린 양은 포기 못하겠다.” 그 어린 양이 어떤 내용으로 살렸느냐 그 내용에 대해서는 내가 율법을 줘서 너에게 참조하게 하겠다는 거예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잖아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은 내가 산 것이 아니고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방식으로 나를 구원한 것이다.” 그걸 광야에 연결시키면 확 와닿는 거예요. 아,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내가 구원받은 게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을 어떤 식으로 방해하는가, 방해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나를 채택했구나.’ 방해하는 자로 앞섬으로써 그것이 바로 내가 미처 생각 못한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인 거죠.

네가 네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못되게 욕하고 무시하는지, 나와 함께 가자. 양식과 물을 안 준다는 것은 평소에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내가 나보고 ‘걱정하지 마. 내가 양식과 물 얻어줄게.’하는 식의 그러한 애굽적 사고방식이 틀려먹었다는 거예요. 우리는 나를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나를 사랑하면 이기주의밖에 안되고 자기 의밖에 안돼요.

그래서 집단적 이스라엘이 실패합니다. 굳이 성공했다면 갈렙과 여호수아, 그 두 사람 성공했어요. 이 갈렙과 여호수아가 이제는 애굽에서 나왔음을 경험하지 못한 그 후손들, 광야 때 태어난 제2세대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수아가 앞장서고 갈렙이 구원받은 예로써 거기 섞여서 따라오면서 갈렙과 여호수아가 인도하는 그러한 이스라엘로 제2기 이스라엘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갑니다, 요단강 건너서.

들어오게 될 때 여전히 백성들은 ‘율법을 왜 줬는지 모르겠다. 그냥 우리를 사랑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게 해주면 되지 않느냐, 이 약속의 땅에서.’ 그러니 약속의 땅은 뭐냐? 광야와 대조된다는 거예요. “광야에서 너 살겠어, 못 살겠어?” “아, 못 살겠습니다.” “그럼 약속의 땅은?” 광야 끝에서 보니까 “세상에 이런 세상이 다 있나? 젖과 꿀이 흐르네.” “그래? 오래 살고 싶어?” “예, 오래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율법 지키겠습니다.”

주님께서는 힘들 때 율법 못 지켰으니까 이제 여유만만하면 지킬 수 있다고 하는 그 생각이, 인간들이 아직 자기 자신의 주제를 파악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시편 63편 1절을 한 번 봅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이 이야기를 누가 하느냐 하면 ‘다윗의 시’니까 다윗이 했어요.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를 새로운 이스라엘, 제3기 이스라엘로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주께서 왕의 자격으로 1대 1로 계약을 맺을 사람입니다.

모세 언약은 이스라엘 전체와 상대해서 율법을 줬지만, 다윗 언약은 “왕 너, 다윗 왕 이리와. 왕 너하고 나하고 계약을 맺는 거야.”라고 해놓고, 이방민족 말고 이스라엘 내부적으로 다윗이 핍박을 받고 쫓기게 합니다. 그러면 다윗 언약의 그 왕은 소위 율법을 준 사람들로부터 핍박 받고 설움 받고 광야로 피신하면서 광야에서 쫓겨 다니는 그러한 제3기 이스라엘의 모습을 단 한 명, 자기 몸으로 대표로 보여주는 위치입니다. 그 위치가 왕의 위치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십자가와 바로 연결되죠? 예수님의 메시아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왕이시잖아요. 왕인데 누구한테 죽임을 당해요? 소위 자칭 ‘우리는 유다 지파다. 다윗 지파. 또 우리는 다윗 자손이다.’라고 한 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아서 사형당하죠. 그리고 죽어버리죠. 죽은 분을 다시 살려냄으로써 현재 인간이 자처해서 이스라엘이라 한 그들, 그들 가짜로부터 핍박받는 방식으로만 새로운 왕이 등장합니다.

왕이 승리하게 되면 이제는 왕이 승리했던 그 승리를 백성들에게 거저 주시면 뭐가 되겠어요? 하나님과 왕 사이에 언약이니까 그 계약을 예수님의 다윗의 자리로 성취했으니까 이미 성취된 거예요. 백성 된 거예요. 하나님의 죄 사함 받은 겁니다.

받은 것을 공짜로 나누어주면 그들이 뭐가 되겠어요? 하나님의, 예수님의 백성. 메시아의 백성이 되어서 구원받는 사람이 되겠죠. 그것을 시편 63편, 예수님이 하실 일을 다윗이 몸소 먼저 체험했고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광야에서 또 광야 생활하면서 다윗은 오히려 주를 앙망하나이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완성함으로써 완성된 것이 시편 63편 1절에 완성된 채로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는 우리 안에서 예수님이, 왕이 제대로 하신 그것을 찬양하면서 새로운 이스라엘의 면모를 우리를 통해서 보여지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시편 63편이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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