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만든 백성 시편 72:1 260914
20260914a 부산강의 : [시편]88(72:1)-왕이 만든 백성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시편 72편,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이렇게 시작되지요. 듣는 사람은 굉장히 기분 나쁩니다. 특히 현대인들이 기분 나쁘죠. 왜 그러냐 하면 현대인들은 왕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고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에요. 나의 가정, 내 시간, 내 가정, 내 몸 육신, 특히 내 컨디션, 내 기분 본인 챙기는 것에 스물네 시간 그 이야기하고 자기 챙기는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72편은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소서” 폭포가 그냥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면 되는데 중간에 어디를 거칩니까? 왕이란 자리를 거쳐서 나오잖아요. 그럼 그 폭포를 바라보는 우리는 삐질 수밖에 없어요.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직접 내가 원하는 걸 주셔야 되잖아요. 그래야 하나님 믿는 보람이 생기는데 중간에 내 앞에 누가 끼어든다 이 말이죠.
예를 들어서 아까 나의 컨디션, 나의 건강, 지금 나는 나의 컨디션, 나의 건강 여기에 신경 쓰고 나의 수입, 나의 재정상태 여기 신경 쓰고 내 가족 신경 쓰는데 중간에 왕이 어떤 차단막처럼 끼어있으면 하나님의 관심사가 왕에게 쏠리게 되지요. 그럼 여기서 우리에게 뭐가 생기느냐? 질투심이 발생되는 거예요. 왕만 인간이고 나는 인간 아니냐? 아까 이야기한 삐지는 거예요.
삐지게 되면 나 성경 안 봐. 성경 안 보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삐졌어요, 삐졌다고요. 성경 대신에 토정비결, 점치는 것, 그 점치는 건 직접 누구한테 이야기해요? 그 우상이 직접 나한테 이야기하잖아요. 왜? 내가 점치고 나면 돈 주니까.
그런데 왕이 끼어들게 되면 결국 하나님께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나는 왕 이야기만 할 거야” 그럴 때 개인은 소외감을 느낍니다. 개인은 스물네 시간 자기만 생각하는데 왕 이야기한다면 자기는 소외감을 느끼고, 나는 왕 이야기가 들어있는 성경책은 안 볼 거야, 하고 그냥 그걸 외면해버리죠.
그래서 왜 하나님께서 왕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이 개인은 상대를 안 합니다. 상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상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왕이 기도한다. 내가 기도한다. 이 원칙에 의하면 나의 기도는 안 받습니다. 누구 기도를 받는가? 왕의 기도만 받습니다. 요 왕의 기도가 신약에 바로 이분이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많이 들어봤지요. 기도 마지막에 예수의 이름으로, 많이 들어봤지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말은, 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는 안 받음을 내가 그냥 수긍하겠습니다. 내가 뭘 해도 안 받는다 것에 대해서 기꺼이 동의한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이 이야기가 남들 듣기에 이상하죠. 내 기도를 안 받고 내 소원을 안 받는데도 굳이 굳이 기도를, 그럴 경우에 굳이 기도할 필요 없잖아요. 해도 안 받는데 왜 하지요? 해도 안 받아주는데 왜 기도를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 말이죠. 간절히. 할 필요가 없지요.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엘리야 한 명, 여기에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팔백오십 명이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 현장에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있어요. 누구 기도가 응답되는지 누가 관람하느냐 하면 백성들이 관람해요. 현재 이 엘리야, 그리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백성들 지금 이들이 놓인 상황은 삼 년 육 개월 동안 가뭄 든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그러면 엘리야가 제단에 나무를 놓고 그 위에 소를 잡아 놓고 불이 떨어지느냐, 안 떨어지느냐? 지금 이 문제, 누구 기도의 응답으로 불이 떨어지느냐, 안 떨어지느냐는 이 문제와 과연 이들에게 삼 년 육 개월 동안 막혔던 이들에게 비가 오느냐, 안 오느냐와 관련이 있어요, 관련이 없어요? 관련이 있다는 거예요.
그게 왜 관련이 있느냐 하면 이거는 성경 열왕기상에 보면 나오는 데요.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은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이 막혔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열왕기상 17장 1절,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엘리야가 아합한테 이야기합니다.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지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합 왕은 뭐를 결정해야 되느냐 하면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도 없다는 말은, 그동안 비가 오는 것과 엘리야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과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합 왕이 수용해야 돼요. 받아줘야 된다고요. 사람들은 비를 원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비 오지 않는 이유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알과 아세라 이들은 뭐냐 하면 아합이 믿던 신이죠. 그들은 이곳에 비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제쳐버리고 하든 말든 나는 듣기 싫고 비만 내려달라는 거예요. 그러면 엘리야의 제단과 바알 제단을 순서 하나를 거쳐야 비 오지 않는데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그냥 비 오지 않는 것이 아니고 엘리야를 통한 주의 말씀을 듣지 않는 그것이 장애가 되고 이유가 되어서 그동안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제단에서 기도는 뭐냐 하면 누가 이기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이런 식으로 엘리야는 무엇을 전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쯤 했으면 여러분들이 간파했을 거예요. 그동안 이 땅에 비가 오지 않은 이유는, 바로 팔백오십 명 되는 이 사람들이 왕부터 해서 백성들이 뭘 섬겼단 말이죠? 바알을 섬긴 것이 원인이 되어서 비가 오지 않았다는 거예요. 백성들이 바알을 섬겼겠는가 하는데 그중에 여호와 믿는 사람은 엘리야 혼자밖에 없어요. 백성들 다 넘어갔어요. 근데 하나님께서 남긴 칠천 명 있다고 했지요. 그만큼 소수라는 거예요.
바알 신과 백성들 관계는 뭐냐? 직통으로 와요, 직통으로. 비 달라하면 비가 내리는 거예요. 왜? 바알 신이 구름과 풍랑과 비와 그리고 폭우와 농사에 유리한 신이 바알 신이거든요. 농사 좀 안 된다 싶으면 농사 되게 하는 것을 그 나라 전체가 이미 진리, 이거는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럼 하나를 거쳐야 되는데 그럼 엘리야냐? 엘리야겠지요. 엘리야 때문에 비가 안 왔어요? 그건 아니거든요. 엘리야는 인간이고. 엘리야가 제단에 기도할 때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러니까 이 땅에 누가 계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여전히 소유주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소유주가 된 땅은 어떠해야 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어야 했다.
지금 왜 우리 기도를 안 받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곳.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에 의해서 하늘에서 빗방울이 내려온다. 그러면 이 비는 누가 내리게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리시죠. 내리는 빗방울a, 빗방울b, 빗방울c, 빗방울d, 이 빗방울이 함유하고 있는 의미는 뭐냐? 나 외에 다른 신은,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이곳에서는 없다. 이 땅에서는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의 결론은, 하나님께서는 특수한 땅을 마련했어요. 보통 인간들은 내가 사는 땅, 사람들이 사는 상황을 땅이라 하잖아요. 그 땅을 전제로 해서 그 땅 말고 하나님이 거주하는 땅을 인간이 살고 있는 땅 안에 따로 부동산을 마련한 거예요. 이것은 사람 사는 동네에 하늘에 사시는 독생자가 내려온 취지와 어때요? 동일해요.
사람 사는 동네니까 누구 땅입니까? 인간들 땅이죠. 인간들 땅에 하늘에 계시는 독생자가 와서 이 땅에 와버리면 그 독생자 예수님과 더불어 플러스 뭐가 오느냐? 땅과 하늘, 새 하늘과 새 땅이 같이 동반해서 오는 거예요. 이걸 어렵게 해서 예수님은 새로운 시공간을 끌고 왔다, 이런 뜻이에요.
이 새로운 시간관을 끌고 오게 되면 여기에 어떤 법칙이 있느냐 하면, 새로운 시공간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그 말씀, 율법이죠.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그 율법에 들어가는 사람을 새로운 하나님의, 신약적으로 하면 그냥 천국 백성이 된다, 이래 되는 거죠. 그러니까 한 번 물어봅시다.
천국 백성은 본인의 소유에요, 누구 소유에요? 주님의 시공간에 의해서 물방울 하나에도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그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아는 이 천국 백성 소유권이 누구한테 있습니까? 예수님한테 있지요. 그러니까 이걸 여러분 잘 아시듯이 천국 백성의 특징은 뭐냐 하면 이거에요.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는다.’ 딱 공식이 나왔네요.
아까 인간은 스물네 시간 뭐만 생각한다? 내 컨디션, 내 건강, 내 자식, 내 행복, 내 꿈 이것 외에 다른 게 없어요. 그러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이유는 고독하지 않기 위해서 만나요. 사람이 돈 없어 못 사는 것 맞아요. 하지만 돈보다 더 심각하게 인간의 정신을 피폐시키고 주저앉히는 것은 대화할 상대가 없는 거예요. 좋은 집에 이사 가서 혼자 널찍하게 살면 뭐합니까? 아무도 이야기할 사람이 없는데, 집 샀다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는데.
여러분의 휴대폰이 고장 나서 전화번호 다 지워졌을 때 여러분 행복했던가요? 대리점에 가서 빨리 회복해달라고 하죠. 왜? 전화번호를 왜 회복해요? 혼자서는 못 살기 때문에. 집에 돈이 없어요, 왜 혼자서 못 삽니까? 외로워서 못 산다는 거예요. 왜 외로운 데요, 왜 외롭습니까? 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지금 시편 72편은 이스라엘 보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중간에 폭포 하나 거친다 했지요. 내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는 게 아니고 중간에 뭡니까? 하나님은 왕, 그 당시 구약이니까 왕의 기도를 응답해요. 왕의 기도에 응답하는 것은, 백성은 반드시 왕의 소유가 되기 때문에 백성의 운명은 백성 개인이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누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느냐 하면 왕이 결정해버려요. 모든 집중이 왕에게 돼 있다고요.
이 시가 무슨 시라 돼 있어요, 앞에? [솔로몬의 시]라 돼 있지요. 그러면 솔로몬이 썼던 글, 잠언서 중에 하나 보겠습니다. 잠언 25장 2절,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의 편집한 것이니라” 그다음에 다 같이 읽어봅시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아멘.
왕은 하나님의 꼬붕이에요. 꼬붕인데 문제는 왕 외에 하나님의 꼬붕 노릇을 못 하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해주고 있는 겁니다. 처음부터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어요. 왕 자리에 율법이 들어갔거든요. 그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럼 나타난 것은 율법, 모세 십계명, 율법이 있지요. 여전히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데 율법 자리에 그 율법이 하나의 인격체로 전환되어 나타난 직책이 뭐라고요?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이다.
여러분, 백성은 왕이 있습니까? 없지요. 왕이 있다는 말은 필히 무슨 조건을 갖췄다? 왕의 백성이 있다는 조건을 갖췄다. 그럼 백성들의 조건은 어떤 조건이냐 하면 하나님과 왕이 맺은 조건의 확장, 그게 연장선이 바로 왕과 백성의 관계로 그것이 실제로 나타나게 됩니다.
제가 이 말 하는 것은 계속해서 내 컨디션이 어떠니 하루 수입이 어떠니 하는 그런 이야기는 특수한 땅, 천국이죠. 구약에선 특수한 땅이 약속의 땅이지만 신약은 천국이잖아요. 천국 바깥에선 그리 이야기한다 이 말이죠. 스물네 시간 누굴 위해서요? 빨간 걸로 했는데 일부러.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땅, 왕이 계시고 왕과 하나님의 관계를 Ctrl+v 그 관계를 복사를 해버리면 백성이 되지요. 하나님과 왕의 관계를 복사를 해서 Ctrl+v하게 되면 왕과 백성의 관계가 Ctrl+v로 복사가 되지요. 그러면 하나님과 왕의 관계, 언약입니다. 어떤 언약?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인격화된 언약, 이걸 다윗언약이라고 하거든요. 이 언약으로 맺은 관계가 왕과 백성 사이에 언약으로 그대로 들어와요.
그러면 이 백성은 왕의 백성인 동시에 누구의 백성이 되겠어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서 이 나라는 무슨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다 알았지요. 그런데 그 계획이 시답지 않은 이유가, 인간은 스물네 시간 오로지 누굴 위해서? 자길 위해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모든 것도 주무시는 것도 전부 다 자기를 위해서예요.
제가 주일인가 이런 설교한 적이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삽니까, 그 질문을 설교시간에 한 적이 있지요. 그 답변이 뭐냐? 젊은 사람들은 편하게 산다 했어요. 맞지요. 편하게 살아요. 어린아이까지. 주일 설교입니까? 편하게 사는 게 누굴 위해서 누구 좋으라고 편하게 사는 거예요? 나 좋으라는 거죠.
그러나 그 사람이 교회 나왔다. 그럼 자기 편한 것을 유지합니까, 포기했어요? 유지하면서 교회 오지요. 교회 나오는 것도 나한테 이익이 되기에 하는 거예요.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계산적이라 합니다. 계산적인 존재에요. 한시도 계산에 머릿속에서 멈춘 적이 없어요. 특히 자기 몸 챙기는 데 이 새로운 음료수는 하루에 몇 번 마시며 약은 얼마 먹어야 되는지 모든 게 계산적이죠. 이 계산적인 것을 합리적이라 합니다. 이성적, 합리적.
그렇게 해서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있잖아요. 실제로 많이 일어난 일들 있지요. 그걸 해석할 때 뭘 중심으로 해석하느냐 하면 계산적으로 해석한다는 말은 내가 이익이냐, 손해냐 하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해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간에 지진이 일어나고 태풍이 일어나고 뭘 해도 이게 나한테 이익이냐, 손해냐를 따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거는 뭐냐? 약속의 땅 밖의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지금 엘리야 같은 경우에 이 땅에 살 수 없는 땅 밖에 유행하고 통용되는 그 신을 약속의 땅이라고 하는 이 백성들이 그걸 수입해다 썼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조치는 뭐냐?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조치를 한 거예요.
그들은 비가 오지 않는 이유가 중간에 뭐 하나 거쳐야 된다는 그것을 생각 못하고 신이라면 신은 사랑의 하나님이니까 직접 나한테 내가 원하고 내가 편하게 살고 내 계산에 부합되도록 하나님이 조치를 해줘야 그 신은 내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만한 신이라고 본 겁니다. 지금 우리 실정을 이야기한 겁니다. 다시 한 번 실정을 우리 형편을, 성경을 버리고 실정을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나를 위하여. 두 번째, 계산적이다. 세 번째, 현실 해석을 내 중심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것을 뭐로 보느냐? 우상 숭배적이죠. 우상 숭배자. 우상, 그러니까 가짜 신이죠. 가짜 신과 진짜 신 여호와와의 차이점은 이거는 신과 내가 직접 관여한 반면에 진짜 신은 중간에 언약이 있다는, 언약을 거치는 거죠.
세 가지, 일 번, 이 번, 삼 번이 그대로 주입되는데 진짜 신은 일 번, 이 번, 삼 번 이게 다 날아가요. ‘나를 위해서’도 아니고, 계산적인 것도 인정하지 않고, 현실해석에 내 해석이 잘못됐다는 거예요. 그럼 다 날아가고, 여러분 옛날 국민학교 때 시험 칠 때 기분 나쁘지요. 뭐가 기분 좋아요? 동그라미 좋지요. 그 동그라미는 뭐냐 하면, 나를 위해서 → 주를 위하여, 계산적이다 → 은혜다, 그다음에 현실해석은 내가 한다 → 주님이 해석하시는 동시에 그걸 현실화시킨다.
이 땅에 일어난 모든 현실은 예수님의 새 언약, 십자가 사건의 파급된 여파, 파동이에요. 십자가 사건 중심으로 해서 물결치는 그 물결이 여러분들을 천구백 몇 년도에 이 땅에 태어나게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시작과 끝을 중간에 만들어진 존재가 끼어들 순 없어요. 누가 시작했는지, 끝나는 것도 계산적으로 천국 가고 싶다는 계산도 이거는 틀린 거예요.
이쪽에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나오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지난날도 은혜다, 앞으로도 은혜다. 그건 나를 위해서? 아니.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그 모든 일도 주님이 자기가 완성한 새 언약의 축하파티 하는 식으로 우리는 초대받은 사람이 되죠. 혼인잔치에 그냥 덤으로 초대받아서 우리 아드님이 한 공적을 찬양하는 그 동네를 뭐라고 하느냐 하면 ‘천국’입니다.
이 천국을 제대로 알게 되면 사람들이 제일 기피하고 하기 싫어하는 것이 어디냐 하면 바로 천국이에요. 그것은 꿈도 꾸기 싫어요. 왜? 자기를 부인해야 되니까. 천국을 이렇게 하면 교회 오지를 않지요. 자기 계산과 어긋나니까. 나를 위해서 나의 행복에 도움 되고 행복에 상승되는 그런 계산을 했는데, 그리고 현실해석에 대해서, 아래층 아직도 이사 안 갔어요, 점집? 갔어요? 하여튼 현실에 대해서 관심이 없군.
자기중심의 해석을 해주고 이렇게 하면 여러분 계산적으로 이익 봅니다, 하는 그 종교단체는 특징이 성령이 없어도 이해가 돼요. 희한해요. 성령 없는데 이해 너무 잘 돼요. 근데 성령은 신약에 십자가 영입니다. 성령이 왔다는 것은 이 둘을 다 보여주는 거예요. 이러면 어디 간다? 천국은 지옥과 동반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이게 바로 지옥이다.
그래서 얼마 전에 지난 설교에 지옥의 특징은 뭐냐 하면 ‘자율성 보장’ 자율권 보장되는 것. 나 하고 싶은 대로, 젊은 사람들처럼 나 편하게 살고 싶다. 그게 바로 지금 본격적으로 지옥 가기 전부터 이 땅에서 착실하게 지옥 쪽으로 방향을 그쪽으로 가는 그 훈련을 지옥연습을 아주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어제 오후 설교에 불신자들 보고 뭐라 했습니까? 진짜 존경스럽다. 지옥 가는 데도 그렇게 열심히 살아요. 결국 지옥 가는데 아주 열심히 살아요. 안 죽으려고. 안 죽는데 어디 가 사느냐 하면 지옥 가 살아요. 그러니까 불신자에게 안 죽습니다, 삽니다, 영원히. 어디서? ‘어디서’가 문제에요. 언약이 없는 언약 바깥의 땅에서 영원히 삽니다.
여러분 가운데 복음을 안 받아들이는 식구들, 특히 안 믿는 남편들 참 내가 보기에도 자랑스러운 남편감이에요. 나는 평소에 돈을 그만큼 못 버는데. 남자, 여자 떼버리면 남는 게 뭐가 있느냐 하면 노동자에요. 하나의 노동하는 한 사람이 전혀 노동하지 않는 사람을 먹여 살리니 이렇게 대견하고 고마운 분이 어디 있습니까?
뭐 가사노동을 한 달에 이백 오십에서 삼백으로 치자. 그거는 돈 안 주면 자식 안 키울 거예요, 젖 안 줄 거예요? 아이 젖 줄 때 “잠깐 너 얼마 줄 거야?” “오백 원. “삼 초만 빨아. 이게 오백 원 어치야.” 이렇게 키웁니까? 아니잖아요. 어쨌든 간에 이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든 게 마지막에 돈으로 계산이 되는 입장에서 한 사람은 돈을 버는데 전혀 돈을 벌지 않는 쪽을 밥 먹여준다는 거, 이것이 그 사람이 지옥 가기 위해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러면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런 남편한테 잘해줘야지, 이러거든요. 여자 분들이 모르는 것은, 남편에게 가장 잘해주는 방법은 딱 하나만 있어요. 일체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 그것만 됐어요.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 그걸로 충분해요. 여자들은 굉장히 배짱이 세요. 돈도 못 벌면서 잔소리는 다 하니까. 야아 완전히 똘기…. 우리나라 법이 좋긴 좋아.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이혼할 때 이조삼천 억을 받으니.
지금 왕이 어떤 분인지 제가 이야기를 아직까지 안 했어요. 왕이란 것을 먼저 우리 자신을 대비해서 이야기한 거예요. 우리 자신은 이렇게 살아가는데 하나님께서 왕을 박아 넣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왕이 누구냐? 아까 잠언에 나왔지요.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숨겨요. 왜? 피조물과 하나님은 직접 만날 수가 없어요.
중간에 뭐냐 하면 아까 이 이야기, 하나님과 왕 사이의 관계, “하나님과 왕이 있단다. 그래 나 왕 믿고 하나님 백성 돼야지.” 안 돼요. 왜냐하면 하나님과 왕 사이에 언약이 있잖아요. 언약이 도달해야 돼요. 언약이 덮어씌워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백성 되고 싶다고 백성 되는 게 아니에요. 다윗을 왕으로 인정한다고 백성 되는 게 아닙니다.
다윗을 왕으로 인정했던 백성들의 의도가 뭐예요? 이상하게 다윗 왕이 전쟁하면 다 이겨요. 전쟁하면 노획물을 얻지요. 노획물만 얻는 게 아니에요. 그 지배받는 속국이 된 나라는 정기적으로 이스라엘 다윗 나라에 조공을 바치게 돼 있습니다. 그것도 두 당. 조폭도 그런 조폭 없습니다. 세금 바쳐야 돼요. 그게 식민지 처지에요. 온 주변 나라가 다 식민지에요, 다윗 때에. 솔로몬 때도 그 영광이 극에 달했고. 스바 여왕까지 와서 뇌물을 바쳤으니까요. 제발 침략하지 말라고, 공격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다윗 때 주변의 국가들이 여호와 하나님 때문에 자기들은 다윗의 속국이 된 겁니다. 여러분, 속국이라는 것은 예속됐다는 것은 세상적인 뇌물을 바치고 조공을 바치는 것이지 백성 개념이 아니에요. 속국 된 특징은 뭐냐 하면 왕 있고 백성 있잖아요. 왕과 백성은 어떤 관계일까요? 제가 묻는 거예요. 이방나라 여호와가 없는 왕과 백성은 어떤 관계일까요? 어떤 관계냐 하면 재물관계에요. 돈 관계입니다.
지금 복음이 있는 이 신약 시대에 인간들, 아까 제가 돈보다 외로움이 더 크다 했지만 일단 돈이 연금이라도 따박따박 나올 때나 하는 소리고요. 진짜 돈 없으면 외로움 챙길 시간이 없어요. 언약이 없는 모든 세상의 마지막 대화, 외로움 벗어나려면 대화잖아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 대화는 돈 문제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에 보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보면, 무엇이 우상숭배냐 하면 재물 밝히는 게 우상숭배에요. 땅의 지체를 죽여라. 탐심은 우상숭배다. 탐심은 뭐로 측정하는가? 재물로 나오겠지요. 그래서 왕과 백성 사이에 재물이 계속 살게 해야 되는데 만약에 왕이 들어서서 살림살이가 좋지 않다? 그러면 이 백성은 쿠데타를 일으켜서 뒤집어버리죠. 왕 바꾸는 거예요.
이게 바로 북이스라엘, 하나님의 언약이 살아 있는 다윗의 등불이 있는 유다나라의 역사와 다윗의 등불이 없는 등불 바깥의 대상,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된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주로 쿠데타로 왕들이 바뀌어요. 그런데 그쪽에서 좀 회개했다, 여호와를 찾으면 약간 그 대수가 자기 족보가 차기 아들이 왕이 되는 대수가 좀 늘어나요. 하지만 여호와를 버렸다 하면 또 다시 쿠데타 일어나서 엉뚱한 그야말로 DNA도 해당이 안 되는데 왕이 돼버려요.
왕은 뭐냐 하면 백성들과 왕 사이에 재물,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걸 제공해줄 때 우리의 권위를 우리의 권리를 일단 당신에게 집중시키고 양보하겠다는 계약이에요. 그 계약이 뭐냐 하면 인간 대 인간의 계약, 사적 계약이에요. 인간 대 인간이 하는 계약.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은 누구와 계약한다 했습니까? 인간과 계약하지 않아요. 하나님과 누구의 계약? 왕과의 계약. 여기서 시편 89편 봅시다.
시편 89편 20절, 누가 크게 읽어보세요.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 나의 거룩한 기름으로 부었도다” 됐습니다. 그겁니다. 하나님께서 누굴 찾아냈다고요? 다윗을 찾아낸 거예요. 왜 찾지요?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왜 찾습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맺기 위해서. 그러면 다윗 말고 다른 사람들은 뭐예요? 그건 하나님과 다윗과의 그 언약에 의해서 아까 Ctrl+v라 했지요. 복사.
하나님과 다윗이 맺은 그 언약이 그대로 복사를 해서 왕과 백성 사이의 언약에 끼어들게 되면 그런 사람에게만, 사람이라고 백성 되는 게 아니고, 태어나서 백성이 아니라 그런 사람만 그 다윗 나라의 백성이 된다고 제가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그게 다윗의 등불이죠. 특히 솔로몬 때 다윗의 등불이에요. 언약의 유효성, 언약의 효과가 계속 메시아가 올 때까지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여러분, 이 이야기 들으면 아아 옛날에 다윗 때 그랬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러면 오늘날은요? 오늘날 Ctrl+v는 뭡니까? 어떤 관계가 복사가 됩니까?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 그게 이번 수련회 때 ‘이자관계’지요. 이자관계의 계약이 무슨 계약이냐 하면 새 언약입니다. 그 새 언약 안에는 여러분 다 아는 이야기하려니 뭐한데 그래도 그냥 복습한다 생각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새 언약 안에는 구성요소가 뭐냐 하면 노아언약, 모세언약, 그다음에 다윗언약, 예레미야서에서 예언된 새 언약, 이게 새 언약 안에 함축되어 다 들어있어요. 예를 들게요. 노아 때 홍수 났잖아요. 예수님 말씀에 노아 때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더니 그다음에 뭡니까? 인자가 올 때도 그러하도다. 보세요. 노아 때에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했지요. 이 말은 사람 대 사람의 비교는 홍수 앞에서 의미 없다. 자기의 키, 성격, 그리고 자질, 나이, 재산, 인품, 홍수 앞에서 다 날아갑니다.
그걸 어렵게 이야기해서 뭐냐? 이렇게 해요. 단지 땅에서 살았다는 이유라. 그래서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신이 인간과 함께 하지 않겠다는 이유가 뭐냐? 인간은 사람이 아니고 육이 됨이라, 또는 육신이 됨이라, 했어요. 그러니까 육신이 되는 땅은 하나님께서는 거부합니다. 땅 자체가 전부 다 물로 덮였어요. 그럼 노아의 땅은, 노아의 텃밭은? 노아가 텃밭에 고추 심는다고 한 50평 있는지 모르겠어요.
노아의 텃밭은 물이 잠기겠습니까, 안 잠기겠습니까? 잠기겠지요. 노아는 땅도 없어요. 저쪽은 땅과 더불어 가족이 다 몰살했고, 노아는 땅만 날아갔지요. 그러면 살아 있는 노아에게 제공된 것은 뭡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이지 뭐. 그 새 하늘과 새 땅은 무슨 땅이냐? 피의 언약으로 지속되는 땅. 홍수 이후에 새로운 언약이 추가됩니다. 이 땅에 피 흘리지 마라.
심판 받아야 될 이유와 그다음에 다시는 물로서는 심판하지 않겠다는 것은, 바로 네가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다. 다 아는 이야기죠. 창세기 8장 21절,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에. 악한 데서 나오는 피는 어떻다? 악하다. 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 악한 피는 하나님의 구원계약에 들 수 없다. 이 말은 하나님이 다른 피를 준비했는데 그게 정결한 피에요.
여러분, 방주 들어갈 때 어떤 짐승은 두 쌍, 어떤 짐승은 일곱 쌍 되지요. 두 쌍은 뭡니까? 더러운 것. 일곱 쌍은 정결한 짐승 잡아요. 차이를 둬요. 두 쌍은 바로 남녀, 생식을 피하는 남녀의 구분, 이거는 아담과 하와의 창조세계라면 일곱 쌍은 뭐냐? 칠일 만에 창조한 것을 획기적으로 다 엎어버리고 새롭게 창조하는 거예요.
기존의 아담과 하와에서 나온 그러한 노력은 일체 받지 않는 칠로 시작해서 칠로 완성이 되는 새로운 세계를 방주 안에다 집어넣고 잡기는 누가 잡아요? 이 더러운 피는 안 받습니다. 누굴 잡아요? 정결한 새와 짐승을 잡아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제공하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심, 언약 안에 이게 포함이 돼 있어요.
그래서 요한복음 5장 39절에 모든 말씀은 누구한테 한 것이다? 모든 말씀은 예수님한테 달려오는 거예요. 예수님은 방주처럼 받아들이고 모든 말씀을 지고 그다음에 이 모든 말씀을 가지고 아버지한테 벌 받기 위해서 십자가 지셨잖아요. 이 악함에 대해서 벌 받기 위해서. 이게 언약이죠.
거기에 비해서 일반사람들은 누굴 위해 산다? 자기를 위해서 산다. 자기를 위해서 몸이 어떻고, 우리 가정이 어떻고, 요 근래 남편이 잔소리가 많아졌습니다, 이런 것 가지고 모든 스물네 시간 자기를 위해서. “이러다가 내 제 명에 못 살지.” 원래 죽은 건데 원래 죽은 인간이 자기 목숨이 어디 있어요? 자기 목숨 같은 것 없어요. 태어날 때부터 언약 바깥의 존재를 보여주기 위해서 목숨이 있다 이 말이죠.
모세언약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관련된다는 그것은 히브리서에 아주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새 언약에다 이 다윗언약 있잖아요. 시편 72편을 우리 하고 있으니까. 다윗언약을 요 중간에 끼어보자. 노아언약, 모세언약. 모세언약은 딴 게 아니고 유월절 어린양을 이스라엘과 더불어 계속 살아 있게 만드는 거예요. 그거 옛날이야기다, 이게 아니고 애굽에서 나왔던 그 유월절 어린양을 지금 이스라엘에게 내린 약속으로 보는 것이 모세언약입니다.
율법 안에 애굽에서 나왔던 유월절의 그 깔끔한 정리, 노아와 똑같아요. 피 없는 자는 신분이나 나이, 직업, 인품 관계없이 단지, 천사들은 융통성이 하나도 없어요. 단지 피 없다는 것 때문에 딴 거 확인하지 않아요. 피 없다. 죽여. 피 있네. 피 있지만 저 집은 성폭행…. 묻지 마. 그냥 넘어 가. 교도소를 몇 번 갔다 왔든지 관계없이 무조건 넘어 가. 한 번 따라 해보세요. ‘천사는 융통성이 없다.’ 융튱성이 0, 융통성이 없어요. 시키는 대로 해요.
융통성이 없다는 계산적이 아니죠. 그러니까 천사는 천사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지요. 하늘나라에서 존재하는 그 특성을 실제로 땅에서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면 천사가 그랬다면 다윗은 어떠해야 돼요? 아까 시편 89편 20절, 다윗을 집었잖아요. 아까 천사 이야기했으니까 다윗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해야 돼요? 천사처럼 곧이곧대로 융통성 없이 해야 되지요. 그런데 다윗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 이야기하고 첫째 시간 마치겠습니다.
다윗은, 모세도 마찬가지에요. ‘다윗은 자기가 자기에게 배신당해야 한다.’ 이게 바로 성도입니다. 이게 신앙인이에요. 내 원칙, 내 원리, 나를 위해서 살던 그 나한테 누가 피해를 보느냐 하면 내가 피해보는 거예요. 모세가 분명히 하나님의 종 맞아요. 하지만 성질나서 반석을 두 번 쳤는데 뻔히 그것도 사전에 죽어라가 아니라 다 보여줘요. 느보 산에 올라가서 다 해요. 정경 찍어요. 드론 막 띄운 것과 마찬가지로 전대보다 좋구나 해놓고, 가지 마! 너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영광을 가렸어.
그래서 히브리서 3장에 보면 철저하게 모세는 종이에요.(5절,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본인이 천국 가는데 모세가 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본인이 뭘 해서 그것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에요. 값없이 구원받고 단번에 죽으심으로 의로움 얻는 것은 새 언약까지 기다려야 돼요. 모세, 다윗 실패하지요.
그래서 문장 하나 쓰겠습니다. ‘실패한 자만이 구원받는다.’ 10분 쉽시다.
20260914b 부산강의 : [시편]88(72:1)-왕이 만든 백성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하겠습니다.
칠판에 보면, ‘사적 계약과 언약적 계약의 차이는?’ 이렇게 돼 있지요. 그래서 언약적 계약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신약의 사례를 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17장,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그 장면이거든요. 11절부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아까 땅 이야기했잖아요. 그걸 생각하시면 여러분 이해되시지요. 주님은 주님이 오신 땅으로 되돌아간다 이 말이죠. 그리고 인간들은 주님이 오심으로서 이 땅이 애초부터 주님이 버릴 카드라는 사실을 알지요.
아까 구약의 언약에서 그 땅이 어떤 땅이에요? 언약의 땅이잖아요. 근데 바깥에 있는 바알, 아세라 섬기는 사람들은 무슨 땅이에요? 땅은 땅 맞아요. 그들은 농사짓고 대대로 자자손손 살았던 땅은 맞는데 뭐가 없어요? 언약이 없지요. 지금 우리가 뭐가 궁금해 살아 있느냐? 언약이 뭐냐는 거예요. 땅 밥 먹고 사는 게 문제가 아니고 언약이 뭐냐는 거예요. 언약이 없으면 사람대우를 못 받으니까.
사적 계약에서는 뭐냐 하면 돈 없으면 사람대우 못 받아요. 사적 계약에 입각하게 되면 하나님이고 예수고 교회 다니고 집사고, 권사 오케이 그런 건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근본적인 건 뭡니까? 권사 오십 년 된지 오래 됐다, 난 판사다, 뭐 의사다, 하지만 결국은 요새 망한 의사도 굉장히 많아요. 판사도 술 먹는 판사도 많고요.
기본적인 것, 사적 너와 나의 계약에서 기본적으로 너와 나와 대화를 시도할 때 어떤 요소가 들어 있느냐? 반드시 그 마감 요소가 돈입니다. 왜냐하면 돈 없으면 사람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대우받지 못합니다.
뭐 다 아는 이야기를 제가 나발 불어서 죄송합니다만 부모, 가족, 특히 형제, “돈도 없는데 오지 마. 네 얼굴만 봐도 짜증나.” 돈 있는 동생은, “와, 와. 자주 와.” 올 때 빈손으로 안 오면 자주 와. 부모라 할지라도 자기 몸에서 난 자식이라도 돈 없으면 용서가 안 됩니다. 용서 되고 안 되고는 돈이 결정하는 거예요. 성공했다, 윗사람 된다. 뭔 뜻입니까? 돈 푼이나 있다 이 말이거든요.
그래서 사적 계약, 이 세상 계약이에요. 여호와 언약 말고 사적 계약에서 모든 개인들의 기대와 소망과 열의는 딱 하나입니다. 크게 쓸게요. 붉은 건 중요한 겁니다. ‘너, 나를 위하여 희생할 수 있니?’ 솔로에서 연애가 성립되는 필수조건이죠. 너,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를 안 놓치지요. 왜 놓칩니까? “너, 나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어?” 연애할 땐 무슨 소릴 못하겠어요? “희생할게.” 그러면 옛날 처녀들은 속아 넘어갔어요. 그 말이 진짜인 줄 알고. 오빠 나 믿지, 하는데 요샌 안 믿잖아요.
그러면 희생할 수 있어? 희생할게. 말로 하지 말고 돈이나 담보, 그리고 통장, 부동산 그런 걸로 증명해봐. 아가씨가 이래 나올 때 참 시어머니 될 사람은 며느리 못 돼먹었다 하지요. 누가 키웠어요? 우리가 키웠던 거예요. 가정에서 특히 밥상머리에서 복음 이야기한 적 없어요. 네가 빨리 사회 나가서 무슨 대우받아야 돼요? 사람 대우받아야. 사람 대우받으려면 뭐가 있을 경우에만? 여분의 돈이 있어야 사람들이 끓어요. 왜? 사람들은 너를 향하여 너 돈 있으니까 그 돈으로 나한테 뭘 해줄 수 있을 경우에만 들끓기 때문에.
그러면 이제 결혼했다. 결혼했다고 해서 사는 게 아니에요. 두고 보자에요. 언제 돈 떨어지는지. 내 새끼 키울 능력 없으면 나중에 후회하기 전에 일찌감치 갈라서자 이렇게 되지요. 아까 이야기한 남자, 여자 떼면 뭐가 남는다 했어요? 노동자. 이게 사적 계약입니다. 이것도 계약이에요. 도장 찍고, 뭐 잡고 온갖 것 하지요. 사적 계약은 바닥에 뭐가 차지하고 있습니까? 돈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윗계약은 이게 바로 요한복음 17장 11절에서 12절, 얼마나 차이 나는지 보세요.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이건 뭐 사적 계약을 평생토록 세뇌 박혀있는 이것만 줄곧 있어서 이 기준에서 돈의 기준에서 평생을 살아보고 성공하고 행복 찾겠다는 그런 사람에게 이 11절 예수님의 기도 내용과 어떤 차이가 있어요? 완전히 동떨어지잖아요. 어떤 공통점이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더 놀라운 게 12절에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여기 ‘저희’가 누구냐 하면 열한 제자에요.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예수님이 열한 제자를 지켰다 이 말이에요.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게 계약에 들어 있어요. 멸망의 자식. 다윗계약에는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멸망될 존재를 꼭 집어서 규명한다는 것, 지정한다는 것, 선택이죠. 지정하는 내용이 어디 들어 있어요? 다윗계약 안에 들어 있습니다. 너 아니거든. 너는 아니야, 라는 거죠.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모집할 때 장차 천국 갈 사람만 모집했을 거라는 우리의 선입견을 주님께서 뒤집어버리죠. 그럼 멸망될 제자도 집어넣는데 그 멸망될 제자를 집어넣을 때 집어넣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영화를 찍을 때 어떤 배역을 맡을 때 역할이 있을 것 아닙니까. 가룟 유다의 역할은 뭐냐? 예수님 빼놓고 주께서 지키겠다는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신하게 만드는 사건 하나를 일으켜버리죠.
무슨 사건이죠? 십자가 사건. 아아, 예수님이 저런 분이었어? “가자. 고기 잡으러 가자. 나, 저런 분인 줄 몰랐어. 예수님 스토리가 저렇게 끝난다는 걸 우리는 상상도 못했어. 내가 미리 내 생각에 우리 주님이 저렇게 끝장 본다는 것은 내가 못 받아들인다. 그때 그 광경 참 아름다웠는데….” 물위를 걷고 할 땐 좋았지요. 그러나 중요한 건 그건 과거지사고 현실은 뭡니까? 예수님은 쓸쓸하게 그 시대에서 사라져버렸어요.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죄수 취급받고 사라져버렸습니다.
마태복음 16장 보겠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거지만 16장 21절에,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예수님께서 이야기할 때 죽임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베드로가 대표로 나서서 주여 그리 마옵소서 그런 일이 안 일어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하니까 예수님이 뭐라 해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이거는 어제 낮 설교에 했지요.
인간은 자기 안에 악마가 들어있어서 언약 밖에서 일어나는 사적인 계약을 성사될 수 있어도 진짜 계약에 대해서 악마가 그것을 흐지부지하게 만드는 그 힘이 인간 속에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걸 인간들은 몰라요. 예수님, 사랑합니다. 여기 사적 계약한 사람들 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고, 교회 다녔던 사람들이고 성당 다녔던 사람이죠. “나, 예수님 사랑해요. 믿어요.”
하지만 모든 일의 추진력은 예수님 믿고 하나님 믿고가 아니고 뭡니까? 추진력은 돈이 나오죠. 돈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거라고요. 그래서 돈 섬길래, 하나님 섬길래? 딱 객관식 문제에 문항이 두 개밖에 없어요. 이것도 저것도 양다리 걸치기 안 돼요. 돈을 최종적으로 보느냐, 하나님을 최종적으로 보느냐?
이걸 제가 아까 달리 변명했지요. 돈 좋아한다는 것은 돈 좋아하는 게 아니고 자길 위해 사는 거예요. 돈 없더라도 자기를 위해 사는 것, 하나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자길 위해 살지 않는 것. 딱 그걸로 묶으면 돼요.
아까 유월절 날 융통성 하나도 없는 천사들이 뭘 보고 한 가정은 맏이를 죽이고 한쪽은 살려줬습니까? “안녕하세요. 천사에서 왔는데 잠시 상담 좀 해드릴까요? 문답형인데 맞추면 생수 하나 드리겠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게 온 거예요? 대학선교단체 간사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한 거예요? 도를 아십니까, 뭐 이런 것 하는 겁니까?
뭐라고 그들은 천사들은 갈라서라 했어요? 어린양의 피 없으면 그렇다 했지요. 근데 방금 뭐라 했습니까?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과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는 사람을 구분한다 했지요. 방금 이렇게 했지요. 그렇다면 이 다윗계약 안에 사적 계약의 요소 때문에 희생당하신 그분의 피가 다윗계약의 본질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님을 죽인 거예요. 우리가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찾아올 때 네가 나를 죽였다는 식으로 우리를 구원합니다. 그게 바로 열한 제자에게 부활하시고 찾아가는 이유에요. 찾아가면서 내뱉는 단어가 뭐냐? 이거잖아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의 움직임은 내 쪽이 아니에요. 날 위해서 사는 내가 사랑을 해요? 어디서 거짓말을 하고 있어. 주님이 사랑한다고? 아니에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나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 분이 사랑을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 그게 십자가고 그게 바로 성령이십니다.
모세도 자기가 애굽에 안 갈라 했는데 주께서 강제로 가서 건져냈잖아요. 다윗도 왕 되고 싶어서 왕 코스프레 했습니까? 자기 형이 일곱 있었는데 다 사무엘에게 걔도 아니야, 걔도 아니야, 걔도 아니야. 아까 시편 89편 20절, 누굴 찾아낸 거예요. 누굴 찾아냈어요? 다윗을 찾아낸 거예요. 그럼 찾아낸 다윗은 어떤 짓을 저질러야 돼요? 살인죄, 그다음에 무슨 죄? 간음죄. 살인죄, 간음죄 저질러야 돼요. 왜? 그래야 다윗이 이스라엘 왕답기 때문에.
율법을 아는 것, 달달 외우는 것 그거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인간이 본인이 할 수 없는 게 나오는 것을 가지고 성도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에게만 계산만 나오잖아요. 돈 계산. 내가 저 사람 만나서 손해냐, 이익이냐? 그것만 나오잖아요. 그건 인간에게 나올 수 있는 거고, 인간에게 나올 수 없는 게 성도에요.
그러면 이것은 우리에게 누가 찾아와야 되거든요. 왕이 찾아오는 거예요. 왕이 찾아온다는 말은 무슨 의미냐? 여기 오늘 본문 시편 72편에 보면, 왕이 찾아와서 하는 일이 있어요. 아까 잠언 25장 말씀처럼 숨어계시는 분은 하나님이고, 그 숨어있는 일을 실천해서 옮기는 자는 누구의 일이다? 왕의 일이다. 그 뒤에 보면 왕이 하는 일이 뭐냐 하면 가난한 자를 돕는 일로 돼 있어요. 시편 72편 4절에도 나오고요.
왕이 하는 일, 가난한 자를 돕는 일. 가난한 자가 누구냐? 왕이 하는 일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이 땅에 가난한 자가 있어야 돼요, 없어야 돼요? 반드시 나타나야 돼요. 근데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가난한 자의 특징, 특히 정답은 마태복음 5장 11절에서 12절에 보면 나와요. 특히 마태복음 5장 3절에 보면, 여러분 알고 있지요? 팔복의 시작에 나오잖아요. 뭐가 가난한 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다음에 보상이 뭐예요? 천국이에요.
그럼 그 이야기 들으면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서 난감함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고 싶지 않아요. 가고 싶은 천국을 가야 되는데 조건이 딱 붙어있으니까 난감한 거예요. 어떻게? 심령이 가난한 자. 심령이 가난한 자 말고 예수 피로 가고 싶은 거예요. 내 심령이 어떻든 예수의 피로 가고 싶은 거예요.
주께서는 죄인을 부르러 왔는데 이 죄인 자리를 하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모세 율법의 완성이 무슨 언약? 새 언약. 이때는 빨리 이야기해야 돼요. 여러분 곤란할 수 있으니까. 모세언약의 완성은 새 언약. 새 언약이 들어올 때만 율법이 들어올 때만 우리가 뭐가 된다? 죄인 된다. 율법 없이 죄인 되는 것은 악인이 되는 거예요. 선악논리에 의해서 악인은 이건 애초에 날아간 사람입니다.
여기서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아까 이야기, 요한복음 17장. 예수님 기도할 때 모든 자를 지켜준다 할 때 그 안에 뭐가 있어요? 멸망한 자가 있지요. 멸망한 자란 구색을 갖추어야 돼요. 언약에 멸망한 자가 되는데 그 멸망한 자가 지 나빠서 멸망합니까, 예수님 배신해서 멸망한 거예요? 멸망한 이유가 나와 있는데? 요한복음 17장12절에 멸망한 이유가 나와 있어요.
누가 이야기해보세요. 가룟 유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와 있어요. 성격이 포악하다든지 스승을 팔아먹었다든지 뭐라고 돼 있어요? 보물찾기도 아니고. 안 나와 있어요?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그렇지요. 본인이 나쁜 짓해서 멸망당한 게 아니고, 성경에 응하게 함이라. 아까 다윗을 집어냈잖아요. 이번엔 가룟 유다를 집어내는 거예요. 멸망 받으라고, 지옥 가라고. 에서는 지옥 가고 야곱은 천국 가고. 이 아브라함의 이삭의 언약도 예수님이 그대로 수용합니다. 그걸 새 언약으로 이루었지요.
우리의 인식이 자꾸 사적 계약으로 평생을 살다보니까 항상 주인공은 계약당사자는 나잖아요. 그런데 나기 때문에 뭐가 막히느냐 하면, ‘성경에 응하게 함이니라’를 자꾸 놓쳐버려요. 놓치니까 그걸 그냥 놓치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매일 우리의 삶에 누구를 죽이고 또 죽이느냐 하면 예수님을 죽이고 또 죽이는 거예요. 왜? 예수님의 죽으심은 성경에 응하게 함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을 그렇게 중요시 여기지 않고 돈이 중요하다는 이러한 모든 짓거리가 무엇에 응하게 함이라? 성경에 응하게 함이라. 내가 죄인 된 것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어요. 내가 예수님을 죽인 당사자란 것을 알게 된 것이 성령의 역사 아닙니까. 이미 그 사람은 자기를 뭘 느끼느냐? 하나님이 내 안에 들었다고 보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성령이 없는 모든 사람들은 바르게 살려 해요. 착하게 살고. 왜? 내 미래는 누가 지킨다? 이 세상에 나를 지키는 자는 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상담의 원칙이 뭐냐 하면 상담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에 이것 하나 하고 상담 받으러 온 사람을 돌려보낼 때 하는 멘트가 있어요. “너 자신을 귀하게 여겨라. 네 자신을 소중히 생각해라.” 이것 하고 상담료 받고 보내버리죠. 마지막엔 역시 돈이죠. 희생의 대가는 돈이잖아요.
아까 누가 했습니까? 돈만 많은 게 아니고 아는 것도 많을 때는 부자에요. 부자에게 찾아올 때 찾아온 마음가짐이 당신이 나를 위해서 희생 좀 해주면 안 돼? 부탁이야. 내 당신한테 고개 숙일 테니까 당신이 날 위해서 희생해줘, 하고 사적 계약이 맺어지죠. 살림을 잘해줄 테니까 돈 버는 건 당신이, 이런 것.
지금 가난한 자를 언급할게요. 가난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가난하게 된 거예요. 이걸 누가 아느냐? 왕이 알아채야 돼요.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가난한 자를 누가 돌봐야 돼요? 왕이 돌보는 그러한 역할의 만남, 하나님이 짜놓은 영화에서. 너의 역할은 왕, 나의 역할 가난한 자. 가난한 자의 특징이 뭐냐 하면 왕 당신의 도우심 없이는 나는 주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편에 보면 하나님이 도와주는 범위가 살아생전만 아니라 죽고 난 뒤에도 도와줘요. 그래서 시편 16편, 어제 낮 설교했지만 다윗은 죽고 난 뒤에도 음부에 가도 거기에 하나님이 계셔서 나를 다시 썩지 않고 살려준다 했거든요. 범위 자체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에요. 이 문제는 자리 문제에요.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영생 얻기로 작정된 그 자리, 주의 책에 기록된 백성의 자리가 없어서 가난한 자가 바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가난한 자에요. 이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 그리고 이 기도는 어디를 통하느냐 하면 왕에게 쏟아지게 돼 있어요. 오늘 강의 처음에 뭐라 했어요? 우리기도 받는다, 안 받는다? 안 받지요.
그런데 가난한 자의 기도를 받는 이유가, 가난하게 된 게 내가 살인강도가 되어서 십자가 지게 된 게 내가 창녀가 되고 세리가 된 게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됐기 때문에 예수여 오늘 밤에 당신의 나라에 가실 때 저를 생각해 달라, 언약적으로 요청하는 거예요, 언약적으로. 왜? 다윗의 자손이니까, 예수님은. 평생 문둥병자로 병들 때 예수님보도 뭐라 했습니까? 다윗의 자손이여, 했잖아요.
다윗의 자손이 품고 있는 의미가 뭐예요? 저주받은 우리를 왕이 오면 이 저주가 풀리는 거예요. 산상설교 끝나고 난 뒤에 문둥병자가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고쳐주고 네가 어떻게 고침 받았다는 제물을 너희 제사장한테 보여줘라. 그게 뭐냐 하면 그의 짐을 대신 담당한다는 그 모세언약을 완성하러 예수님 내가 왔다는 거예요.
예수님을 찾는 이유가 달라요. 돈이 있어서 못 찾고, 그게 아니에요. 심령이 가난해서 찾는데 그 심령이 가난한 마음에 뭐냐 하면 바로 주의 백성이 되기로 지정된 자만 왕을 찾게 돼 있어요. 나를 찾는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Ctrl+v 하나님과 왕의 구조가 오늘날 다윗의 자손을 통해서 그대로 반복하고 재현하는 그런 식으로 세상을 완성한다는. 상당히 예상보다 복잡해요. 이것은 잠언에도 나와요. 25장에도 나와요, 왕의 할 일은.
두 번째 왕의 할 일은 오늘 본문에도 나오지만 전쟁입니다. 첫 번째는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 두 번째는 전쟁에 승리하는 것. 순서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전쟁에 승리해야 비로소 가난한 자가 발생해요. 돈 있다고 해서 부자라고 해서 가난한 자가 아닌 게 아닙니다. 돈 있으니까 가난한 자다? 아니에요. 돈 있든 없든 간에 주의 전쟁의 이유를 아는 사람은 무조건 이 사람들은 가난한 자에요.
쉽게 정리합시다. 예수님에 의해서 구원받은 모든 자가 돈의 유무와 상관없이 몽땅 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요. 똑같은 이야기에요. 심령이 가난한 자 복이 있나니, 마음이 청결한 자 복이 있다니, 앞의 심령이 가난한 자를 계속 Ctrl+v 되풀이한 거예요. 마지막에는 뭐냐? 주의 의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기뻐하라. 너희 선지자들도 이와 같이 고난을 받느니라.
돈이 없어 선지자가 아니에요. 선지자는 하늘의 것만 바라보기 때문에 그 시대상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까? 어서 다윗의 약속대로 오실 분, 이 전쟁에 승리할 분을 빨리 보내주셔서 여호와를 모르는 이 모든 세상을 작살내 주시옵소서. 이것이 다윗언약에 이미 담겨있기 때문에 다윗언약에 준해서 요엘, 아모스, 호세아, 사람들 대개 읽지도 않는 스바냐 이런 것, 모든 책의 내용이 뭐냐?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그게 뭐냐 하면 이스라엘 건드리는 자는 주변 나라 다 망한다는 이야기가 반드시 거기 들어가요. 그리고 마지막 때에 내가 택한 백성은 필요 다 택한다는 이야기가 선지자입니다. 그만큼 선지자들은 마음이 심령이 가난한 자에요. 그러면 그 전쟁의 승리를 누구와 하느냐? 전쟁을 하려면 상대가 있어야 되지 않느냐, 누구와 하느냐? 그게 시편 2편에 나옵니다.
시편 2편 보기 전에 아까 했던 다시 한 번 여러분들 생각나게 하면 다윗은 뭘 해야 된다? 간음죄, 그다음에 뭡니까? 살인죄. 그렇게 해서 다윗은 왕이라는 자기 직책이 하나님의 오실 메시아의 왕 자리를 본인의 잘남으로 가려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왕 자체가 이제는 오히려 긍휼을 받을 자리로 대표자로서 이스라엘의 왕이에요.
그래서 다윗은 나중에 스스로 제사장이 돼요. 아라우나 타작마당에서 백성들이 죽어나갈 때 자기가 제사장이 되어 제단을 마련하니까, 그게 모리아 산이거든요. 하나님께서 천사보고 “거두어라. 됐다” 융통성 하나도 없는 시키는 대로 하는 천사에게 됐다. 바로 자기에 대해서 실망하고, 자기에 대해서 배신한 자가 장차 메시아 하실 일을 미리 당겨서 보여준 모습이에요.
나를 위해서 산다는 그것이 주를 죽이게 만드는 요인인 것을 예수님보다 앞서온 성도는 그걸 표현하고 예수님 십자가 뒤에 나타난 우리들은 그걸 뒤늦게 성령을 통해서 이 세상에 재현합니다. 쉽게 말해서 “주여, 저는 백날 복음 이야기해도 돈 없이는 못 삽니다, 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하고 기뻐하는, 혼자. 미쳤어요. 주님 백날 십자가해도 나는 돈 없으면 미칩니다. 그다음부터 얼굴이 반짝 당황하지 않고 화색을 띠면서 세상에 이제 내가 본질을 알았습니다, 하고 감사하는 거예요.
그러면 옆에서 “그렇게 은혜 받았어? 돈 십만 원 빌려줘.” “미쳤어? 분명히 했지. 난 돈 없이는 못 산다고. 나도 지금 내 아들딸 필요한 돈이 많은데 내 연금도 바닥났어, 안 돼.” 나도 살고 봐야 돼, 라고 사건을 통해서 뭐냐? 내가 바로 죄인 중에 괴수라는 그 기쁨, (아멘) 진짜 마지막에 할 이야기를 미리 나왔네. 얼마나 기뻐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평생 동안 자기를 속이다가 십자가 앞에서 도저히 못 속이겠다, 정말. 개코도 신앙도 없으면서 있는 체하는 그게 그동안 너무 힘든 인생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땐 잠시 옥경이 되세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눈물만 흘리면서, 이제는 고개를 들어라. 다 내가 용서해줄게. 참 그거는 옥경이가 아니고 딴 노래인데, <우연히>란 노래.
시편 2편 보겠습니다. 시편 1편에 보면 시편 내용 전체가 나와 있습니다. 그거는 뭐냐? 악인과 의인의 구분. 그 구분되는 기준은 율법을 묵상하는 자, 복 있는 자. 그리고 율법과 관계없는 자는 저주받은 자. 악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 그러면 악인의 무게는? 4절에,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뭔가 대단한 존재 같지만 중요한 건 제로, 쭉정이 같은 거예요. 쭉정이인데 쭉정이 아닌 것으로 행세하면서 구십 평생 살아온 거예요. 어제 설교한 나발, 이름도 하기 싫어. 거기에 비해서 부인 이름은 아비가일. 이름도 얼마나 고상합니까? 총기 있지요, 특히 중요한 것은 이쁘다는. 다윗의 아내가 됐지요.
어쨌든 간에 이 악인과 의인을 구분하는데, 그럼 1절 말씀대로 묵상해야지, 하면서 그때부터 큐티하고 난리도 아니에요. 그 율법에 함축된 내용이 시편 2편에 보면 기름부음 받은 왕이 등장해요. 그 왕을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두 자로? 시편 2편에서 왕이 등장하는데 왕이라 하지 않고 뭐라고 돼 있지요? ‘아들’로 돼 있지요. 내가 아들을 보낸다.
시편 2편 7절,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갑자기 아들이 나와 버렸어요. 아들의 특징은 모든 율법을 자기 쪽으로 빨아 당기죠. 인간은 줘도 소용없어요. 못 지키니까. 자기를 위해서 사는 인간이 뭘 율법을 지켜요? 말이 안 되지요. 그러면 이스라엘을 버려야 되는데 주께서는 아까 시편 89편 20절, 딱 집어냈다는 거예요. 누굴? 다윗. 다윗을 집어내어서 하나님이 계약을 맺었어요. 그 계약이 시편 89편.
내가 시간 관계상 하진 않겠는데 그게 다윗언약입니다. 시편 89편 전체 내용이 다윗언약으로 해서 다윗언약은 하늘에서 준비된 그 복을 아들을 통해서 얼마나 집약시키고 중심으로 펼쳐나가는 식으로 다윗언약을 그냥 밀어붙이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쉽게 하면 ‘내 백성들아’란 말, 이사야 41장, 42장, 43장에 나오잖아요. 야곱은 내 아들이라. 두려워 말라. 널 지킨다. 대학교 학생들 선교단체에서 얼마나 좋아하는 구절입니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너는 내 사람이다. 나한테 기도하면 응답하리라.
그 이야기가 어디서 나왔냐 하면 나와 신과의 관계가 아니에요. 그거는 언약이 없는 관계고, 이 백성들아 할 때는 반드시 누구와 하느냐? 내 아들, 하나님이 지시한 내 아들의 일하신 결과물, 효과가 백성이 거기서 생산되는 거예요, 내 백성이. 이사야 53장, 여러분 잘 알다시피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의 상함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린다는 말이, 왕이 먼저 내 아들이 오셔서 일을 벌여야 돼요. 이게 바로 다윗언약입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다윗언약의 완성을 복음이라 해요. 복음을 탁 깨면 다윗언약이 들어있고 다윗언약은 뭐냐 하면 자기 백성 만들기 프로젝트에요. 어떻게? 하나님과 아들 사이의 관계가 그대로 복제가 되었거든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잖아요. 그게 그냥 못 넘어와요. 성령을 통해서 다윗을 찾아내듯이 성령이 와서 다 찾아내게 되면 그 사람은 비로소 하나님의 양자된 게 아니고 창세전부터 준비된 아들이기에 뭘 아느냐 하면 내가 주님을 죽인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 백성들은 자기 자랑할 게 남아있어요, 없어요? 내가 죽인 분이 찾아와서 구원했기 때문에 영원토록 천국 가서 면류관을 주님께 반납하고 오직 주님만 찬양하는 일에 대해서 본인의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굉장히 감사히 여기죠. 그때는 옷도 허름한 육체가 아니고, 육체 자체의 옷이 벗겨지고 예수님의 부활한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에 나와요.
새 옷으로 완전히 갈아입으면 주님도 영광, 천사도 영광, 백성들도 영광, 다 같이 해 같이 빛나는 영광스런 모습이 되지요. 예수님도 해같이 빛나고, 엘리야도 해같이 빛나고, 모세도 해같이 빛나는 그 변화산의 정경이 바로 우리의 고향입니다. 우리의 미래 모습이에요. 조건은 뭡니까? 십자가 앞에서 자기를 다시 한 번 내가 누군지 발견하게 되는.
시편 2편 봅시다. 누구와 싸우느냐 하잖아요. 2편 1절부터 보겠습니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이 열방 가운데 아 대한민국 포함됩니까, 포함 안 됩니까? 열방 가운데 대한민국이란 한반도의 나라가 포함돼요, 포함 안 돼요? 당연히 포함되지요. 여기 한동훈이 포함됩니까, 안 됩니까? 여기 이재명이 포함되지요. 정치인들 다 포함되지요. 그 사람들이 그렇게 언론을 차지하고 떠들고 국회에서 기자회견할 때 예수 이야기하던가요? 안 하지요. 남의 나라거든요. 이방나라에요. 그들이 그렇게 정치적으로 이슈를 나타내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용혜인이란 사람 들어봤어요? 이 사람의 주제는 이거에요, 간단합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을 일한 사람이 밥 먹여 살리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거예요. 노는 것이 돈 벌 수 있는 권리가 되어야 되는 사회, 농땡이 부리는 것이 하나의 시민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행세하는 거고 그 권리는 국가가 그 사람이 노는데 필요한 자금을 대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라는 겁니다.
이유가 뭐냐 하면 돈 버는 사람은 머리가 똑똑해서 돈 벌고, 능력이 있어서 돈 벌고, 집안이 좋아서 돈 벌기 때문에 그럼 돈 못 버는 사람은 재주가 없어 아이큐가 떨어져. 여러분, 직장에서 제일 골치 아픈 게 뭡니까? 일을 제대로 못할 때 ‘나가, 씨’ 월급이 문제가 아니에요. 일을 못하면 누구한테 피해를 줘요? 남들에게 피해준다고요. 남들에게 피해주니까, 나가!
그런데 용혜인 이 사람이 뭐냐 하면 직장에서 무능해서 쫓겨난 사람에게 직장생활 잘해서 칭찬받는 사람의 월급과 보너스를 그 사람 때문에 취직을 못했으니까 책임을 누가 진다? 하루 열 몇 시간씩 일하는 그 사람이 놀고 농땡이 치는 도박하고 돈 날리는 사람의 모든 생활비를 대줘야 이게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거예요. 이걸 사회주의라 하거든요.
이런 사회주의를 구현한 몇 나라를 들겠습니다. 쿠웨이트. 삼십 년 전에 세계에서 제일 잘 산다고, 그때 국민소득이 사만 불 넘은 나라에요. 지금 나라 망했어요. 왜? 돈 벌어서 다 퍼줬어요. 퍼주는 데 철저하게 퍼줘요. 어떠냐 하면 난민들, 외국사람들 그 동네 삼십 년 살아도 절대로 시민권 안 줘요. 자기들끼리 퍼먹고 나머지는 노예에요.
또 스웨덴. 스웨덴 뭐냐 하면 우리는 기독교 나라기 때문에 성경대로 가난한 나라 사람들 받아줘야 된다. 받아줘서 그 사람들이 그 자녀들이 뭐 된 줄 알아요? 갱단 됐어요. 직장에서 능력 없고 실력 없고 아는 게 없으니까 직장생활 못해요. 못하니까 걔들이 어릴 때부터 뭐냐? 갱단 만들어서 있는 사람 총 쏘고 죽이고 빼앗는 그 일을 한 거예요. 나라가 개판됐습니다.
독일도 마찬가지고. 독일은 정신 차렸지요. 그래서 주일날도 일하자 해서, 그동안 주일날 일 못했어요. 법으로 못하게 만들었어요. 왜? 기독교 국가니까. 기독교 같은 소리하네. 인간의 관계의 기본은 기독교가 아니고 복음이 아니고 뭐라고 했습니까? 돈이죠, 돈. 나중에 그들이 못 사니까 기독교고 뭐고 다 버리고 자기들끼리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 나라를 만들자, 그게 정의당이잖아요. 가난하지도 않은 지 남편 삼백오십 만원 월급 주고. 개인사업체로 만들어버렸어요. 당이. 그런데 다른 국회의원들은 안 그러겠어요? 지금 방금 이 이야기가 거기서 언약이야기 나왔습니까, 안 나왔습니까? 다윗언약 안 나왔지요. 이게 뭐냐? 이게 바로 얼마나 잘하든 못하든 관계없이 이것이 바로 악인들이에요.
기독교가 나서서 어떻게 바른 정치를 해서 나라가 잘 된다. 그 나라가 적그리스도적인 나라인데요? 교회가 잘 되기 위해서, 여러분 교회는 교회 되면 되지 교회가 잘 되면 안 돼요. 교회 머리가 누굽니까? 목사 아니잖아요. 누굽니까? 예수님이죠. 예수님이 계신데 잘못될 리가 없잖아요. 교회 나온다고 교회라고 우기기 때문에 이런 사단이 난 거예요.
내가 예수님을 죽인 피해자입니다. 돈밖에 모르는 인간입니다, 고백만 하면 그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의해서 새 백성 되었으니까 내가 감췄던 내가 그동안 몰랐던 죄가 날마다 들춰지니 이렇게 큰 행복이 어디 있어요? 이게 바로 복 있는 자잖아요. 그걸 기름 부었다 해요. 성령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계속 봅시다. 이게 배후에 악마가 있어서 악마가 세상의 군왕들을 부추깁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딴 거 안 해요. Ctrl+v, 다윗언약의 관계가 있지요. 관계있잖아요, 끈. 그 끈을 어떻게 하느냐, 그 맨 것을 어떻게 한다 말이에요? 끊어버리자는 거예요. 악마가 알아요. 악마가 하나님의 언약이 작동한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악마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라도 뭐만 끊으면 됩니까? 신약적으로 하면 십자가 복음의 관계를 끊으면 그만이죠.
그러면 악마가 어떻게 하느냐? 기도에 응답하는 거예요. 부자 되게 하고, 병 낫고, 교회 부흥되고, 온갖 것 다하고, 공부 잘하고, 화목하고. 우리의 기도는 주께서 응답하는 게 아니고 마귀가 응답할 준비가 다 돼 있어요. 그러나 주께서 기도하는 것은 말씀대로 심령이 가난하기를 기도하고, 주의 십자가로 인하여 의에 주리고 목마르도록 기도하고,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을 인하여 핍박받기를 기도하라. 내가 주의 뜻으로 기도하는 것은 내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이뤄줄게. 그 내용이 그 내용이에요.
아무도 그 기도 안 합니다. 왜? 돈 좋아하니까. 돈 해서 여유롭게 살기를 원하고, 그게 나한테 편하니까. 그러니까 여기서 성령께서 탄식하면서 조지기에 들어갑니다. 박살내요. 갑자기 보이스 피싱한테 걸려서 돈 날아가고, 멀쩡한 관절이 안 좋아서 계단도 못 올라오고, 예상 밖으로 돈이 막 세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천국 백성이기 때문에 성령께서 그냥 방치하지 않고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건지는 아주 융통성 하나도 없는 그 천사의 마음으로 성령께서 예수님 시키는 대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언약의 컨트롤, 아버지께 버림받은 예수님의 심정으로 만들지요. 그걸 아까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내가 나한테 사는 원칙에 내가 배신당할 때 그것이 바로 구원에 성공한 자에요. 내가 나한테 실망하고 나한테 배신당한 거예요.
계속 봅시다. 아까 8절까지 했지요. 9절 봅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전쟁이니까 패배자는 용서가 없지요. 그다음에 12절,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야아 이 대목이…. 아들에게 입 맞추라, 어떻게 예수님이 계셔야 입을 맞추든지 뽀뽀를 하지. 아들에게 입 맞추라.
시편 72편에 보게 되면 9절에, “광야에 거하는 자는 저의 앞에 굽히며 그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했어요. 이 말을 좀 심하게 이야기하겠어요. 원수는 딴 게 원수가 아니고 일체 예수님 앞에 입 맞추지 못하도록 예수님이 밟아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대처방법이에요. 에라이 돈이나 먹어라. 복권 1등 연발 되어라.
그러나 십자가는 너는 몰라야 돼. 십자가를 모르도록 주께서 이끌어 가십니다. 땅을 한다는 말은 이게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뱀이 줄곧 땅만 바라보고 땅에서 일어나는 일만 신경 쓰고 그것만 유튜브, 맨날 땅의 일만 찾는 그런 식으로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주께서 하시는 일이에요.
결국은 11절에 보면, “만왕이 그 앞에 부복하며 열방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 이거는 빌립보서 2장 9절에 나오는 말씀, 모든 만민이 심지어 지옥 간 인간들조차도 마지막에 예수님을 주로 섬기게 되는 그날이 온다. 그날 마귀 지옥 가서 섬겨봐야 소용없어요. 12절에, “저는 궁핍한 자의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저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이런 것이 바로 왕이 해야 될 일인 거예요.
그렇다면 여기서 도와주세요가 아니라 내가 가난한 것이 누구의 뜻이다? 저 사람 부자 된 것은 주님의 뜻이고 내가 가난한 것은 주님의 뜻인 거예요. 그래서 어제 낮에 따박따박 월 이천만 원 들어오면 그냥 잘 쓰면 돼요. 그걸 어떻게 바르게 쓰는 거 없어요. 이왕 죄인인데 돈 있으면 잘된 거고, 돈 없으면 없는 데로 쓰면 돼요. 어차피 썩으니까. 썩어도 괜찮아요. 부활되니까. 왜? 하나님의 새 언약을 알아버렸으니까. 예수님의 피보다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더 큰 재물은 이 땅에 없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한테 실패하고 우리 자신에게 실망하고 날마다 나의 계획에 내가 배신당하면 그것으로 기뻐하고 감사케 하옵소서. 더 이상 나를 믿지 않게 해주시고 더 이상 나의 지시에게 의존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