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대구강의(조직신학의고속도로)26 - 1에서 2로
[26대구강의]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26 - 1에서 2로
26,09,07 강의 : 이근호, 정리 : 구득영
오늘은 교재 226페이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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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는 연합인데, 이 '연합' 이라고 하니 창세기 2장의 아담과 하와가 생각나죠. 그들은 확실히 두 사람인데, 즉 분명하게 두 개의 독립된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데, 그 두 개의 독립된 몸을 두고서 '한 몸' 이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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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몸' 구원 !!
창세기 2장을 보면, "2에서 1이 될 때, 1을 구원할 것인가? 2를 구원할 것인가?" 라는 것이 나오는데, 분명히 아담과 하와, 즉 남자와 여자, 그렇게 두 사람이라는 겁니다. 즉 '2' 라는 말이죠. 그런데 구원하는 것은 한 사람, 즉 '한 몸'을 구원한다는 겁니다. 한 몸으로 구원이 된다는 것이죠
그렇게 창세기 2장에서 아담과 하와, 그들은 한 몸으로 구원이 되는데, 그 시작은 무엇인고 하면, '2'로부터 된다는 겁니다. 즉 남자와 여자, 그렇게 '2' 라는 말이죠. 남자와 여자, 그렇게 두 사람이라는 겁니다.
* 사람 구원은 없어 !!
아무리 부부라고 하더라도 아담과 하와, 이게 두 사람인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두 사람에 대해서, 이들을 구원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즉 사람 구원은 없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무엇을 구원을 하느냐 하면, 분명히 두 사람인데 이게 한 몸이 될 때, 바로 여기에서 몸의 구원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있는 이 인간 세계에서는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수가 없다는 말이죠.
이 세상에서는 두 사람은 어디까지나 두 몸인데, 그렇지요? 아니 무슨 재주로 두 사람이 한 몸이 되느냐는 겁니다.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신앙생활을 해도 각자 각자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인간 세계에서는 두 사람을 무엇으로 보느냐 하면, 두 몸으로 본다는 겁니다.
이 두 몸이라고 하는 것은 육신, 또는 육체라는 말이죠. 육체, 이것을 아주 고상하게 표현을 해서 '실존(實存)' 이라고 하고, 이런 실존을 밀어붙이는 것을 두고 '실존주의'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실존주의라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이발을 하면 이발하지 않은 상대는 이발하지 않은 상대가 된다는 말이죠. 아니 아내가 이가 아프다고 하면, 그러면 남편이 대신해서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됩니까? 그러면 아프던 이가 어디 낫습니까?
* 구원과 해산(海産) !!
성경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테마를 잡는 것은 해산인데, 아기를 가진 여자 쪽에서 해산할 때, 여기에 남자라는 존재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남자에게는 아기가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여자의 경우에 그 특징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구원을 닮았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자기 몸에 새로운 아기 몸이 생겼다는 겁니다. 아기 몸이 발생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면 이것은 해산하기 전에는 두 몸인가요? 한 몸인가요?
이것은 실존주의에 저촉을 받지 않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엄마가 밥을 먹으면 그 밥이 어디로 가지요? 아기에게 간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질문을 이렇게 하면 되는데, "그 자궁 안에서 아이가 살았어요? 죽었어요?" 라고 말이죠.
아기는 살았는데, 그렇다면 그 몸은 두 몸인가요? 한 몸인가요? 한 몸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한 몸인데, 즉 해산하기 이전까지는 한 몸이라는 말이죠. 그렇게 한 몸인데, 즉 엄마가 살면 아기도 같이 살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라는 몸 안에서 성도가 구원을 받는 방식이라는 말이죠. 그리스도 몸 안에서 따로 자기가 나와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은 없다는 겁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실존주의라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내가 구원을 받아서, 즉 내가 예수를 믿어서 내가 구원을 받아오면, 그러면 여전히 내 몸은 그리스도와 같은 몸이 아니고, 나는 그냥 사람의 몸이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 두 사람이 한 몸이 되는, 그 몸 !!
아까 사람 구원은 있다고 했어요? 없다고 했어요? 사람 구원은 없다는 말이죠. 오직 몸만 구원이 되는데, 그런데 그 몸은 반드시 뭐냐 하면, 두 사람이 한 몸이 되는 변화를 통해서 생긴 몸, 그 몸만 하나님께서 건지신다는 겁니다.
이게 시편에 나오는데, 139편 16절 누가 한번 읽어주세요.
(시 139:16)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
여기에 보면,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라고 하고, 그리고 그 다음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라고 하는데, 즉 주의 눈이라는 말이죠. 그 주의 눈이 보셨다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 형질 이전에 다른 존재가 먼저 있었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주님이 자기 형질을 만들 때, 주께서 눈으로 보고 주께서 친히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엄마 뱃속에 아기 형질이 생기기 이전에, 엄마 몸이 먼저 성립이 되어있었다는 말이죠.
그 다음에 보세요.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라고 하는데, 주께서 그냥 보기만 했습니까? 생일, 즉 돌이 되기 이전부터, 아니 태어나기 이전부터 주의 책에 기록이 되어있다는 겁니다.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하셨다는 겁니까? 책이 먼저 성립되고, 그 책의 명단대로 주께서 형질을 만들었다는 말이죠. 그 명단이 어디에 있다고 했어요? 주의 책에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만들어진 인간은, 태어나서 딴 사람이 되어서 돌아다니든 간에, 그 사람의 마지막은 어디로 돌아와야 한다는 겁니까?
명단이 있는 주의 책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말이죠. 이게 무슨 책이냐 하면,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책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0장에 보면, 15절에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계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 생명책과 행함책 !!
그러니 불못을 왜 마련했냐 하면, 자기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천국에 들어온 것을 차단하기 위함이라는 말이죠. 그렇게 차단할 때 두 권의 책이 있는데, 하나는 뭐냐 하면, 그가 어떻게 행동하든 어떻게 살았던 간에, 기어이 하나님 쪽으로 들어온다는 책인데, 그 책이 바로 '생명책' 이라는 겁니다.
그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주님의 생명나무가 있는 곳에 가고, 그렇다면 다른 책은 뭐냐 하면, 이게 천국에 가지 못할 사람을 따로 분류시킨 책이라는 말이죠. 그 책이 바로 '행함책' 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 책이 두 개라는 것은, 한쪽은 주께서 행하신 행하신 일이 기록된 생명책인데, 그 생명책은 주께서 행하신, 즉 "그 인간이 어떻게 돌아다니던 간에 반드시 내 사람으로, 내가 만들었기 때문에 내가 데려오겠다" 라는 노선이란 말이죠.
그것을 언급한 것이 생명책이고, 반면에 불못에 들어가는 사람, 이것은 행함책이라는 겁니다. 이 책에 기록이 되어있는 사람, 이것은 주님이 관여하지 않고 방치된 채로, 마귀가 가야 될 지옥에 의해서 선악과를 따먹고 살아간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선악과를 따먹으면 무엇이 나오지요? 거기에서 행함, 다른 말로 하면 행위가 나온다는 겁니다. 바로 이러한 행위가 기록된 자와 구별하기 위해서 따로 두 권의 책이 있는데, 이쪽은 천국이고 저쪽은 지옥이라는 말이죠.
* 구원받은 자의 특징 !!
그러면 이 구원에 있어서, 어제 오후 설교시간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구원을 받은 성도는 뭐냐 하면, 자기 행함에 대해서 그것을 자기가 마음에 둘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자기 행함을 마음에 둘 필요가 있느냐는 겁니다.
'1', 자기 혼자 행한 것은 기억에 담아두지 않고, '2', 주님 안에서 있으니까, 쉽게 하면, 엄마 안에서 자기가 태어났는데, 엄마의 자궁 안에 있을 때 자기가 하루에 발로 엄마 배를 7번을 치던 8번을 치던, 그것을 자기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는 말이죠.
아니 7번을 쳤다고 해서 빨리 나오고 6번을 쳤다고 해서 나오지 않고, 그런 것은 없다는 겁니다. 몸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어요? 엄마에게 있다는 것이죠. 엄마가 자기 아이를 해산할 때, 그 자궁 안에서 아이가 행한 것은 일체 인정을 합니까?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할 필요가 없는데,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도 주께서 하신 일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구원이란 것은, 일종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겁니다. 이미 결정이 다 났는데, 새삼스럽게 자기 행함이 추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그것을 시편 139편에서 신앙인이 예언하는 차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즉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누가 나를 지켜보더라. 누가 다 지켜봐 가지고, 그분이 나를 만들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다른 사람이 뭐라고 반박을 하겠어요? "그게 네가 태어나기 이전인데, 너의 눈과 코가 없을 때인데, 그냥 형질만 있을 뿐인데, 그것을 네가 어떻게 알았지? 주께서 지켜봤다는 것을 네가 어떻게 알았어? 이게 어디서 구라를 떨고 있어? 그게 말이 돼?" 라고 한다는 겁니다.
계속해서 말하기를, "눈이 있을 때는 주체적인 '본다' 라는 것이 성립되는데, 너의 눈이 만들어지지 않고 팔다리가
생기기 이전인데, 그런데 어떻게 주께서 나를 딱 째려보고 있었다는 것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말이죠.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것을 뭐라고 하냐 하면, '상호작용', 즉 일이 끝나고 난 뒤에 그 효과에, 그 결과물에 도달하는 것으로, 그러니까 일이 벌어지고 난 뒤에 안다는 겁니다.
* 빨간 선 VS 파란 선 !!
과학적으로 이것을 실험한 사람들이 있는데, 2,000년 전부터 심리학자들이 그런 실험들을 했다는 말이죠. 톰 크루즈가 나오는 '미션 임파스블' 이란 영화에 보면, 빨간 선을 끊어야 될지 파란 선을 끊어야 될지 아주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여기서 잘못 끊게 되면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심을 하는데, 자기 의지대로 빨간 선을 끊었다는 말이죠. 그러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는데, 파란색의 선을 끊었으면 엄청난 규모의 원자폭탄이 터지는 수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파란 선과 빨간 선을 끊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연구해보니까, 그게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는 말이죠. "무엇을 끊어라" 라는 것은 두뇌 쪽에서 0.3초 이전에 먼저 결정하고, 그리고 나서 결심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을 심리학자와 과학자들이 밝혀내었는데,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자기가 자기 의지로 결심을 했는데, 그러니 그 결과는 자기 의지의 결과라는 말이죠. 그런데 연구를 해보니까, 자기 의지라는 것은, 두뇌가 먼저 실시한 일을 자기가 상호작용으로 그냥 행동에 나서는 것뿐이라는 것이죠.
실제로 사람들은 평소에 행동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들 하는데, 즉 "아차, 그때 내가 운전할 때 핸들을 꺾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인데, 자기 생각으로 핸들을 꺾기 이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는 말이죠.
* 몸은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 !!
그래서 내린 결론이 무엇인고 하니까, "몸은 ( )의 말을 듣지 않는다" 라는 것인데, 이 ( )속에 무엇이 들어갈까요? 겁니다. 바로 '자아' 라는 것인데, 즉 "몸은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즉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 나는 모르겠다" 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우리는 어떤 계기가 있을 때 그런 고백을 하게 되지만, 하지만 평소에 하는 모든 행동은 몸의 무의식으로 움직인다는 겁니다. 몸의 무의식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이것을 두고 "이 몸은 자아의 말을 듣지 않는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 프로이드의 '무의식' !!
자아는 의식이 있는데, 이렇게 몸이 자기 의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있게 연구한 것이 1920년대부터인데, 그때 그것이 하나의 학문 장르가 되었다는 말이죠. 이게 뭐냐 하면, 프로이드의 '무의식(無意識)' 이라는 겁니다.
의식이기 이전의 전의식(前意識), 그 이전에 무의식이 있는데, 이 무의식은 이미 몸에 몸에 베어져 있다는 말이죠. 그것을 뭐라고 하냐 하면. '충동'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내린 결론은 간단한데, "인간은 의지로 사는 게 아니고, 충동으로 산다" 라는 말이죠. 인간은 충동으로 산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의학에서 말하는 정신병은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병이 아니고, 충동이라는 겁니다. 인간은 충동으로 사니까, 그래서 정신병은 없다는 겁니다. 이유가 뭐냐 하면, 모든 인간이 정신병자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라캉의 이론이 그것인데, 모든 인간 정신병에 걸려있기 때문에 굳이 정신병자라는 것은 없다는 겁니다. 멀쩡하다는 인간들이 알고 보면 전부가 다 정신병자라는 말이죠. 그래서 뭐라고 거짓말을 합니까? "내가 알아서 했다. 내가 착실히 했다" 라고 한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내가 의지를 굳게 해서 했다" 라고 하는데, 그렇게 "내가 선택했다. 내가 결정했다" 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그것은 그야말로 개소리라는 겁니다. 그냥 두리뭉실하게 이야기를 한다는 말이죠.
학자들이 연구를 해서, "이 자아가 이 문제구나. 자아라는 게 자꾸 나를 힘들게 하는구나" 라는 사실을 밝혀내었다는 겁니다. 우울증부터 해서 모든 것이, 그게 자아가 한 게 아닌데, 그런데 이 우울증 환자들은 뭐라고 합니까? 누가 했다고 합니까? "모두 내 탓이야"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정신분석을 하는 학자들이 보면, 이게 웃기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것은 몸의 충동대로 한 것인데, 그 몸의 충동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누구에게서 물려받은 겁니까?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는 것이죠.
부모에게는 DNA가 있는데, 사람마다 받은 것이 모두가 다르다는 겁니다. "나는 잡채를 좋아하지 않아" 라고 하는데, 이것은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이죠. 제 아무리 강제로 먹이려고 해도, 먹으면 마구 토하고 한다는 겁니다.
* 구원은, 자아로부터 빠져나오는 것 !!
그것은 자기가 의지로 먹고 말고 하는 것이 아닌데, 매사가 다 그렇다는 말이죠. 그래서 성경은 이미 이것을 알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구원이란 어떤 현상을 남기는데, 그게 자아로부터 빠져나오는 것, 그것을 구원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 !!
이것을 먼저 역사적으로 보게 되면, 애굽 나라에 누가 있었죠? 히브리 민족이 있었다는 말이죠. 이 히브리 민족은 조상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 있었다는 겁니다. 그게 성경에 나오는데,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이들에게 무엇이 부여되어 있습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인데, 이들이게 계약서가 부여되어있다는 말이죠. 이 계약서는 계약을 받을 때만 성취되는 게 아니고, 이 계약은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 만날 때까지, 그리고 이 땅에 주님이 오실 때까지, 또한 이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해서 유효한데, 그것을 계약서가 스스로 셀프 성취를 이루어 나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이 애굽에 살 때, 계약서에 의해서 모세와 아론에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압력을 가하는데, "모세야, 애굽으로 가라"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모세는 애굽에서 나왔던 사람인데 도로 가라는 겁니다. 그래서 모세는 나이 80이 되어서 돌아간다는 겁니다.
물론 모세는 "나는 그 애굽에 가기 싫어요. 제가 왜 돌아갑니까?" 라고 하는데, 그래도 하나님은 "가거라. 내 백성을 건져내야지"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과 떨기나무에서 하신 모세와의 개인적 대화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애굽에 있던 히브리 민족들이 사전에 미리 알았어요? 몰랐어요? 몰랐다는 말이죠. 시내산에서 모세와 하나님과의 단독 대화를 저 멀리 있는 애굽에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겠느냐는 겁니다.
여기에 홍해가 있는데, 오만이 이렇게 있고 이쪽이 이집트라는 겁니다. 여기가 지중해고, 그리고 이렇게 이스라엘이 있고, 여기에 시내산이 있다는 말이죠. 요즘 아라비아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물론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모세가 애굽에 내려가기 이전에 하나님과 "가거라 - 못 갑니다" 라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하던 떨기나무에서 불이 붙을 때, 그래서 애굽으로 갔다는 말이죠. 그리고 애굽에 있는 이들은 애굽 나라가 아니면 갈 곳 없다는 겁니다. 가고 싶지도 않고 말이죠.
그게 무려 430년이니까 이웃과도 정이 들었는데, 왜 나오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세와 아론의 개입으로 그동안 정들었던 홍해를 건너게 되는데, 그러니 애굽에서 무엇을 했다는 겁니까? 탈출을 했는데, 이곳에서 빠져나왔다는 말이죠.
* 애굽에서 나오면 자아로부터 나온 것인가?
그러면 제가 묻겠는데, 그 질문은 "이들이 집단으로 애굽이란 나라에서, 그 권세에서 빠져나와서, 그렇게 노예생활을 하다가 빠져나왔으면, 이것은 자기가 자기로부터 빠져나온 것이 됩니까? 안 됩니까?" 라는 겁니다.
이것이 지금 제가 하는 질문인데, 자기가 한국에 있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 자아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 맞아요? 아니라는 말이죠. 북한의 김정은 치하에 있다가 중국의 단둥을 통해서 한국으로 탈북했을 때, 그러면 그런 사람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로부터 벗어난 사람인가요?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북한에 살다가 한국으로 와서 사는 것은 맞는데, 진짜 구원, 즉 자아로부터 빠져나온 적은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탈출을 어디까지 계속 하시느냐 하면, 이 탈출이 구원이 아니라는 겁니다.
자아가 자아로부터 빠져나오는, 이때까지의 긴긴 여정이 어떻게 되는고 하니까, 그렇게 잡아당기는 역사가 무려 1,440년이 걸렸다는 말이죠. 개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빠져나오는데 있어서,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있다는 겁니다.
그 이스라엘 역사를 보게 되면, 이때가 B.C 1,440년인데, 그렇다면 이때 한반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죠? 한반도에는 고조선(B.C 2,333년 ~ B.C 108년)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이 2,026년이니 여기에 2,333년을 더하면, 올해는 단기 4,359년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이런 한국 역사에 그때 언약의 하나님이 관여했습니까? 그렇지 않은데, 이스라엘에게만 하나님의 언약이 계속해서 개입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개입을 하느냐 하면, "자아는 생각하지 말라"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인간들은 이 자아를 한 사람, 혹은 한 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이 낯선 자아, 하나님, 주님, 또는 주의 이름, 모두 다 좋은데,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네가 인정할 거야? 인정하지 않을 거야?" 라고 하는, 그 이야기가 몇 년도라고요?
출애굽이 B.C 1,440년인데, 이게 1이 아닌 2로부터 해서, 그 다음에 1로 가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1로부터 1로 가서 1로 구원받는 게 아니라, 분명히 1인데, 그런데 이스라엘만큼은 하나님이 함께 있다고 해서,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
출애굽기 4장 22절에 보면 분명히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고, 뭐라고 하십니까? 애굽의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은 내 아들이다" 라고, 그렇게 전달하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이 구절은 잘 아시죠?
(출 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그러니 다른 민족, 즉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 민족은 관계가 없다는 말이죠. 오직 이스라엘에만 "내 아들이다" 라는 것인데,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보고 "네가 애굽에 가서 내 아들을 건져내라"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아버지와 아들 관계인데,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말이죠. 그런 관계가 되는데, 이것은 패밀리, 즉 하나의 가족이라는 겁니다. 가족은 그 생식한 분이 계시고, 즉 생식된 자가 있을 때 가족이라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부모가 먼저 있고 자식은 나중에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부모가 사람이 아니고 누구라고 되어있어요? 하나님이 부모가 되어있다는 말이죠. 물론 부모라는 말은 좀 어폐가 있지만, 아무튼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무엇을 낳았다는 겁니까? 자식을 낳았다는 말이죠. 하나님이 자식을 낳은 것인데, 신약에서는 뭐라고 되어있냐 하면,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라고 되어있다는 겁니다. 독생자 예수님은 한 가족인데, 즉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는 말이죠.
* 하늘의 계약서에 의하면 !!
그런데 출애굽기 4장 22절, 여기에서는 집단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기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인고 하니, 이게 임시조치라는 것을 감안해서, 하나님께서 "너는 내 아들이다" 라고 하는 것은, 아들이라고 누가 있는 게 아니고, 아들이라는 그 계약, 혹은 언약이라고 하는데 말이죠.
이 언약이라는 말이 어려우니까 계약으로 바꾸어서 이야기를 해보면, 하나님의 계약에 의해서, 계약서가 무엇인지 알지요? 집을 살 때 계약서를 쓴다는 겁니다. 그 하나님의 계약서에 의하면, "이제부터 너는 내 아들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죠.
그 계약에 의하면 우리 아버지가 사람이 아니고, 족보에 있는, 선산에 있는 아버지가 아니고, 우리 아버지는 누구인고 하니,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는데, 그것은 하늘에서 주신 계약서에 의해서만 성립된다는 겁니다. 오직 그 계약서에 의해서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데, 그게 빌립보서 3장 20절에 나온다는 말이죠.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러니 이게 인간들이 교회에 나와서 종교활동을 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벌써 세 번째로 이야기하는데, 태아에 있는 아이가 종교활동을 한다고, 새삼스럽게 그 아이가 새삼스럽게 하나님의 자식이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죠.
태아에서 오물오물하고, 엄마 배를 찬다고 해서, 행위로 말미암아서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미 존재 자체가 뭐냐 하면, 엄마 뱃속에 있어야 된다는 말이죠. 그 엄마 뱃속에 이미 있다는 것이 뭐냐하면, 그게 계약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계약, 이 계약을 처음 받았던 자가 누구냐 하면, "나는 사람이다. 나는 육신을 갖고 있다. 내 몸은 하나다" 라고 하는 이 3가지에 대해서,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이상합니까? "나는 사람이다" 라고 하는 게 무엇이 이상해요? "나는 육신을 가졌다" 라고 하는데, 만져보면 육신을 가졌다는 말이죠.
* 아브람(1) VS 아브라함(2) !!
이 육신 덩어리, 그래서 "나는 몸이다" 라고 하면, 그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 정상이라는 겁니다. 그렇지요? 우리가 보기에 너무나 정상이라는 말이죠. 바로 그런 사람의 이름이 뭐냐 하면, 그가 아브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 아브람은 너무나도 정상인데,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이 무엇이 왔어요? 하나님의 계약이 왔다는 말이죠. 그렇게 계약이 오니까 어떻게 됩니까? 그동안 아브람이 했던 이 범주, 이 범위 바깥에의 계약서에 누가 들어있냐 하면, 아브람이 아니고 아브라함이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은 계약 안에 있는 아브라함을 이해를 할까요? 하지 못할까요? 물론 정답은 둘 중에 하나인데,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아브람은 "나는 사람이니까, 나는 육신을 가지고 있다" 라는 것인데, 그리고 그것은 자기 몸이니까 숫자로 하면, 이게 무엇이 됩니까? "나는 나다" 라는 것을 숫자로 하면 '1'이 된다는 겁니다. 이 '1'은 어디까지나 '1'이라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나는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내 몸이 늙어 죽어도 나는 나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나에서 나를 탈출시킨다' 라고 하는 것은, 아니 왜 탈출을 해야 하느냐는 말이죠. 자기 몸으로 충분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탈출할 이유가 없고, 또한 탈출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죠. 아니 탈출을 해서 과연 어디로 간다는 겁니까? 자기 몸이 '나'를 벗어나면, 그 '나'가 어떻게 됩니까? '나' 라는 것이 용해되고 분해되고 해체되는데,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 아브람의 버티기와 하나님의 눌리기 !!
그러니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얼마나 귀한 '나' 인데, 왜 그런 '나'를 떠나느냐는 말이죠. 그래서 아브람은 하나님께 버티기 시작하는데, 하나님께서 "네 자식이 복을 받을 것이다" 라고 하니, "예,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여종인 하갈을 통해서 아기를 낳는데, 그리고 나서 "하나님, 이제 되었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제 자식이 생겼습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아기를 놓고 나니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인고 하니, "그 아기가 아닌데? 네 자손이 아니야"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 아기는 아브람의 자손이지,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니라는 말이죠. 그것은 자기 육에서 나온 육,M 즉 자기 'DNA' 라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약서에 있는,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이다" 라는 것은 육이 낳은 자식은 아니라는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느냐 하면. 인간의 한계, 즉 "인간은 기껏 이것밖에 못한다" 라고 하는, 그것이 '1'에서 '1'로 가는 것인데, "1에서 나이가 0살, 10살, 20살 80이 되어도 1에서 1밖에 모른다" 라고 하는, 즉 인간은 죽을 때가 되어도, 아니 지옥에 가서라도 '1', 즉 자기밖에 모른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한계, 이런 버티기에 대해서 굳히기로 들어가시는데, 그래서 "그러면 내가 고쳐줄게"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이 계약서에 아브라함이 들어있다는 것을 아브람은 모르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아브람, 즉 '1' 이라는 육신을 통해서 '2'가 성립되는 새로운 자식을 주신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하면, 바로 천사 3명이 등장하는데, 한 분은 하나님이고, 두 분은 천사라는 말이죠. 하나님과 그 수행천사라는 겁니다. 그들이 아브람에게 왔는데, 이때 그의 아내인 사라는 나이가 90으로, 아직 얼굴은 아직 예쁘지만 아기는 낳지 못한다는 말이죠. 물론 그때는 사라가 아닌 사래라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년 이 맘 때에 아기를 낳을 것이다" 라고 하시는데, 그때 어떻게 확인을 했느냐 하면, 남편의 생식기능은 아직 살아있었다는 말이죠. 아브람은 하갈를 통해서 아기를 낳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사래는 이미 생식기능이 완전히 죽었다는 말이죠.
생식기능이라는, 즉 인간의 하나밖에 없는 육체에 속한 기능이 완전히 죽었다는 겁니다. 그것이 확인되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내년에 사래를 통해서 네가 아기를 낳을 것이다"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 언약은, 몸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형식 !!
그러면 이것은 무엇에 대한 부정인가요? 인간은 몸이 중요한데, 그런데 하나님의 계약, 즉 언약은 인간의 몸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 형식으로 찾아든다는 말이죠.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인간 몸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그리고 나서 여기에 임신이 된다는 겁니다. 그 임신한 아기 이름이 무엇입니까? 이삭인데, 그 이름의 뜻이 뭐냐하면, '비웃음' 이라는 말이죠. 즉 인간들의 비웃음이란 것이죠.
* 있음에서 있음으로 나가는, 양자 물리학 !!
있는 것에서 있음, 그것만 생각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양자 물리학이라는 겁니다. 있는 것에서 그 있는 것을 있는 관찰자가 끝까지, 제일 작은 있음은 무엇이고 가장 넓은 있음은 무엇인지를, 즉 "우주는 어떻게 생겼을까? 외계인은 과연 있을까? 없을까?" 라고, 그렇게 항상 있음에서 있음으로 나간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은 없음을 인정하지 않고 있음에서 있음으로 나간다는 말이죠. 이게 인간의 한계인데,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패밀리, 즉 하나님이 임신해서 낳은, 하나님의 자기 자식을 만들기는 이러한 한계를 부정하면서 찾아온다는 겁니다.
그렇게 찾아올 때, 여기 경계선에서 인간들은 무엇으로 버팁니까? 그것이 바로 비웃음인데, 그래서 태어난 그 아기의 이름은 무엇이 됩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비웃었다" 라는 것을 이름으로 지어버린다는 말이죠.
그런 아기는 있을 수가 없는데, 임신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있음에서 나온 비웃음이 없음의 존재로 추론이 된다는 것이죠. 없음으로 존재로 말이죠. 말이 좀 어렵습니까? 하나의 예를 들면, 여기서 고린도전서 1장을 보겠습니다.
* 막혀버린 출입구 !!
지금 제가 하는 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어쨌든 간에 하나님의 언약, 이게 둘로 되어있는데, 그게 구약과 신약, 즉 성경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이 언약으로 들어오려고 하는데, 그 출입구를 막아버려야 한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인간들이 끄집어낼 수 있는 모든 지혜와 모든 학문과 모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일체 이 언약의 세계에, 십자가 세계에 들어오지 못하게 그 출입구를 막고 또 막아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 언약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는 겁니까?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들어올 수 없는 세계에 이미 놓여있다고 하는 것, 그것을 사후적인 작용으로 인해서 발견하게 된다는 말이죠.
인간들이 신의 세계, 즉 천국인데, 이 세상 종교에서의 시도, 즉 그것을 뚫어서 하나님이 계신 곳에 가겠다고 하는 그 모든 시도, 그것이 고린도전서 1장에 나와있다는 겁니다. 1장 19절부터 21절까지, 약간 길지만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고전 1: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 인간의 모든 종교는 사기다 !!
여기 21절에 보면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라고 하는데, 이것을 쉽게 말하면, "인간의 모든 종교는 사기다" 라는 것이죠. 모두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기독교든 천주교든 이슬람교든 불교든, 모든 종교는 전부가 다 사기라는 것인데, 즉 마귀가 만들었다는 겁니다. 악마가 말이죠.
그런 종교의 특징은 뭐냐 하면, '나', 즉 '1'을 구원시키려고 한다는 겁니다. '2'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데 "나, 여기에 있다. 죽어서 좋은 곳에 갈래" 라고 한다는 말이죠. 천국에 가겠다는 것인데, 예수님께 빌고, 하나님께 빌어서 천국에 가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사기인데, 이런 사기는 인류가 있을 때까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인간은 의지나 의식이 아니고, 인간에게는 무엇이 작동한다고 했습니까? 그것은 충동인데, 즉 인간은 충동으로 움직인다는 겁니다. '1'의 충동이라는 것이죠.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되는데, 그런데 인간이 그만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악마와 결탁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악마가 인간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악마가 무엇이라고 달콤하게 유혹을 했습니까? "네가 신처럼 되리라"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신은 무엇인가요? 신은 언제나 최후의 결승전을 통과한 승자인데, 바로 그 '신', 즉 '1' 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인간은 비록 먹지 못하고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 남들에게 자존심만은 남아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남들에게 지기 싫어한다는 것이죠.
* 표적은 구하는 유대인들, 그러나 !!
계속해서 살펴보면, 이러한 거짓말로 하나님에게 가려고 했을 때, 여기서 22절을 보겠습니다. 여기에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라고 한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원하는데, 한반도의 고조선, 이쪽 필리핀, 아프리카와 남미, 그 종족들은 전부 다 뭐냐하면, 그냥 이방민족이라는 것이죠.
(고전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그러면 유일하게 하나님이 찾아온 민족은 어느 민족입니까? 이스라엘, 즉 유대민족이라는 겁니다. 그런 유대인들은 무엇을 원한다는 겁니까? 기적을 원한다는 말이죠. 표적이 바로 기적인데, 유대인들은 이런 기적을 원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살아있어? 그렇게 살아있으면 내가 설명할 수 없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능가하는 기적을 나에게 보여라. 그러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을 게"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그러한 유대인들의 충동,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기적과 표적으로 이끈다는 겁니다.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거기에 엘리야 1명과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 그렇게 '1대 850'으로 붙는다는 말이죠. 그때 조건이 4개가 있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재단을 쌓고, 나무를 쌓고, 그 송아지를 올리고, 그리고 불을 붙이는 것이었다는 겁니다.
(왕상 18: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인이로다
(왕상 18:23) 그런즉 두 송아지를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저희는 한 송아지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며 나도 한 송아지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고
(왕상 18: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왕상 18: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
(왕상 18:26) 저희가 그 받은 송아지를 취하여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가로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으므로 저희가 그 쌓은 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그런데 엘리야가 흙에다가 무엇을 부어요? 물을 붓는다는 말이죠.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번 내기에 있어서 그야말로 최고의 난이도를 요구하는데, 그 어떤 어드밴티지도 없게, 완전히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바로 그런 기적이 있기를 원했다는 말이죠.
* 기적으로는 탈출할 수 없어 !!
그러면 여기서 지금까지 강의를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다시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해서 재단에 불을 내리게 했다고 하면, 그러면 구경했던 백성들은 자아로부터 탈출에 성공했습니까? "야, 멋지다. 정말로 대단하다. 이런 기적이 있을 수 없다" 라고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바다가 갈라져서 걸어왔다고 하면, 그야말로 놀라운 기적인데, 그 기적을 경험했다고 해서, 그들이 자아로부터 탈출을 했느냐는 말이죠. 즉 '1'로부터 '1'이 '0'이 되고, 이것이 '2'에 흡수가 되어서 구원이 되었느냐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0'이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죠. 죽어도 안 되는데, 지옥에 가도 '1'로 남는다는 겁니다.
* 아브람이 아닌 아브라함 !!
그런데 아브라함의 경우에, 그도 역시나 버틴다는 말이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을 때, 이 아브라함의 '1'이 무엇이 되느냐 하면, "내 자식을 내가 낳았다" 라고 하는 것, 그게 '1'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것을 무엇으로 바꾸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셨는데, 그것이 이스마엘이 아니고, 무슨 노선이라는 겁니까?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이 나왔다는 말이죠.
여기서 방향을 한번 보세요. 아브람에게서는 이삭이 나오지 않는데, 이삭이 나온 것은, 여기 아브라함의 빈자리에 누가 들어가느냐 하면, 아브라함이 들어갔다는 말이죠. 즉 하나님의 계약이 들어갔다는 겁니다.
그 계약에 들어와서는, 화살표 방향이 "아브람에서 이삭이 나왔다" 라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 이삭이 아브람 쪽이 아니고 아브라함 쪽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없는 '나'를, 없는 자아를, 즉 '아브람' 이라는 자아를 '아브라함' 이라는 자아로, 그렇게 있게 만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구 덕분입니까? 주님 덕분에 빠져나왔다는 것인데, 어디에서 빠져나왔지요? '나' 라는 '1'로부터 빠져나왔다는 말이죠. 여기에 누가 등장을 합니까? '나'의 아버지가 등장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삭의 아버지가 누구입니까?
로마서 4장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이 의도를 했습니까? 아브라함은 충동적인 존재인데, 그런 의도를 할 수 없다는 말이죠. 아브라함이 결심을 했다고 하면, 오히려 아브라함은 반대로 버티기에 들어갔는데, "그럴 일은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웃었다는 겁니다.
(롬 4: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롬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롬 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 하나님께 농락을 당한 자가 성도 !!
그러니까 이것은 다음과 같이 보면 되는데, 우리는 하나님에게 농락을 당했다는 말이죠. 그것이 성도라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농락을 당하게 되면 어떤 좋은 점이 있느냐 하면, 사람에게 기죽지 않는다는 말이죠. 사람이 무섭지가 않고,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타자의 시선을 의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자식이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는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는데?" 라고 하면, 그러면 아버지는 "이놈의 자식이, 내가 너를 공부시킨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것도 몰라?" 라고 하면서 화를 낸다는 겁니다. 이게 너무나 많이 들었던 이야기인데, 그렇지요?
그래서 자식이 "그래서 제가 아버지 자식이 되었잖아요" 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자식이 아니고 아버지의 자식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너는 내 자식이 되어야지. 누구의 자식이 되는데?"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자식이 "저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하면, 그러면 아버지는 "이놈의 자식, 집 나가!" 라고 한다는 겁니다.
대화가 서로 통해야 하는데, 고생해서 자식이라고 키워놓았더니만 하는 소리가, 그야말로 막 되먹은 소리를 골라서 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아버지는 "도대체 그렇게 가르친 교회의 목사가 누구야?"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가족끼리는 서로 용납이 되는데, 아무리 욕을 해도 가족은 가족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이것을 동창회에 가서 하면, 아무리 친한 친구들이라고 해도 연락이 다 끊어진다는 겁니다.
* 유대인의 표적, 헬라인의 지혜 !!
다시 고린도전서 1장으로 돌아와서, 헬라인들은 무엇을 찾고, 그리고 히브리인들, 즉 유대인들은 무엇을 원한다고 했습니까?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고, 유대인들은 표적을 원한다는 말이죠.
(고전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이 헬라인들의 지혜, 바로 여기에서 세계 최초로 철학이 발달한다는 겁니다. B.C 600년부터 철학이 시작된다는 겁니다.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도 이 시대에 등장하는 사람이라는 말이죠. 그리고 이때 나온 것이, 요즘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오디세이' 라는 영화라는 것이죠.
그때 트로이 전쟁이 있었고, 제우스의 법, 그리고 그와 같은 시기에 중국에서는 공자와 맹자가 등장했다는 겁니다. 또한 같은 시기에 인도에서 석가모니가 나왔다는 말이죠. 그것이 후기 베다시대인데, 브라만의 법에서 벗어나서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고 외쳤던 삿달타가 불교를 창설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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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의 시대(Axial Age)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1949년 출간한 그의 저서 '역사의 기원과 목표'(Vom Ursprung und Ziel der Geschichte)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 시대를 인류문화사에서 중요한 종교적, 철학적 사고의 광범위한 전환기로 생각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축의 시대라고 불렀지만, 현재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개념은 아니다.
그에 의하면 이 시기에 속하는 기원전 900년경부터 기원전 200년경까지는 고대 그리스, 인도 아대륙, 중국 대륙, 중동 등의 지역에서 인류 문명의 큰 영향을 끼친 세계의 주요 종교와 철학이 탄생하게 된 중요한 시기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아브라함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헤브라이즘의 기원이 될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 제2이시야와 같은 선지자들이 활약하였다. 중국 철학과 종교의 대표적인 시작들이 거의 이 시기에서 비롯되며 공자, 노자, 맹자, 장자 등 다양한 철학자들과 학파가 나타났다.
인도에서는 브라만교의 개혁과 갱신이 시도되어 육사외도를 비롯한 인도의 사상 종교가 될 석가모니의 불교, 고전 힌두교가 생겨났다. 이란에서는 자라투스트라가 전 우주의 작용이 선과 악의 투쟁의 결과물이라는 주장을 하며 고전 이란의 종교로 위치할 조로아스터교를 창시하였다.
그리스에서는 헬레니즘으로 이어질 호메로스와 탈레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소피스트 철학자들이 활약했고 투키디데스, 아르키메데스 등의 학자들이 나타났다. 고작 몇 세기에 이 모든 대표적인 고대의 지식인과 학자들이 그리스, 인도, 중국, 중동 지역 등에서 독립적으로 그리고 거의 동시기에 나타난 것이다. 야스퍼스는 이 시기에 등장한 새로운 사상과 철학은 그리스, 인도, 중국, 페르시아에서 직접적 문화교류 없이 서로 독자적으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칼 마르크스가 세계사의 과정을 원시공산사회 → 노예사회 → 봉건사회 → 자본주의 →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 공산사회 라고 주장하였다면, 야스퍼스는 역사의 과정을 선사시대 → 고대문화 → 축의 시대 → 과학의 시대 → 두 번째 축의 시대로 나눈다. 알렉상드르 쿠아레라는 과학사학자가 주장한 과학 혁명기 개념과 비교되기도 한다.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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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 이삭, 야곱, 곧 하나님 이름의 변천 !!
그러면 여러분, 그것이 계약입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계약이냐는 말이죠. 그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것은 누구의 이름이냐 하면, 이게 인간 이름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의 이름이고, 그 이름의 변천이라는 말이죠.
특히 야곱의 경우에, 그 이름이 무엇으로 바뀝니까? 이스라엘로 바뀐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이름이라는 것이죠. 그렇게 하나님이 변하는데, 하나님께서 위에서 점차 다가오면 올수록 어떻게 됩니까?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모세, 다윗, 그렇게 계속해서 내려가서 무엇이 되느냐 하면 사람이 되신다는 겁니다. 독생자이신 하나님의 아들, 즉 말씀이 육신이 되는데, 사람이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사람이 되면서, 그 경로를 따라서 일을 끝내고 나서 다시 올라가신다는 겁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런데 그 예수님이 누구냐 하면, 처음에 제가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했는데, 하나님 아들은 숫자로는 '2'가 된다는 말이죠. '2'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그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라는 겁니다. 그러니 '2' 라는 조건이 있을 경우에 하나가 된다는 것이죠.
여기서 시편 47편 5절을 보겠는데,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시 47:5) 하나님이 즐거이 부르는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 올라가시는 하나님 !!
여기에 보면 "나팔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라고 하는데, 나팔소리 중에 누가 올라가죠? 내려왔던 분이 나팔소리와 더불어서 올라간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이 나팔소리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에서 처음 들었느냐 하면, 시내산에서 처음 들었다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시내산으로 모세를 불러 올렸는데, 모세를 며칠 동안 불러 올렸습니까? 그게 40일인데, 모세는 거기 시내산에서 물도 마시지 않고 음식도 먹지 않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는 말이죠. 몰래 비상식량을 챙겨간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 여기, 율법이 왔어요 !!
그런데 그렇게 올라갈 때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모세가 무엇을 배달하기 위해서 올라갔느냐 하면, 하나님만이 아시는, 즉 하나님과 그 아들인 예수님이 함께 있던 창세 전의 그 계약에 의하면, 쉽게 말하자면 원칙인데, 하나님이 그 천국에 존재하는 원리 원칙이 율법 안에 담겨 있었다는 겁니다.
바로 그 율법이 누구의 손에 들려서 아래쪽까지 배달이 됩니까? 모세가 배달을 하는데, 그 도착 지점이 어디라는 말이죠? 그게 계약에 의해서,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들, 남자만 무려 60만인 집단인 그들에게 무엇을 배달했습니까? 모세가 배달꾼이 되어서 율법을 가지고 왔다는 겁니다.
그것은 여러분도 마찬가지인데, 성도는 배달꾼이라는 말이죠. 하늘의 언약 원칙을 백성들에게 배달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배달할 때 코스를 남기는데, 그 시내산에서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무슨 소리가 들렸겠습니까?
(출 19:16) 제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 빵빠라 빠빠빠 !!
아까 시편 47편 5절에서, 나팔소리라고 했는데, "빵빠라 빠빠빠" 라고 하는, 그런 나팔소리와 더불어 내려왔다는 말이죠. 그러면 이 코스가 제대로 된 코스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무엇인고 하니, 그 코스대로 올라갔을 때, 내려올 때 들렸던 그 나팔소리가 들렸을까요? 들리지 않았을까요? 이 나팔은 천사가 부른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여행을 갈 때 어떤 편의점을 봤다면 돌아올 때 그 편의점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다는 말이죠. 하나님께서 나팔소리와 더불어 먼저 올라간다고 시편 47편에 예언이 되어있다는 겁니다. "주 여호와께서 나팔소리와 함께 올라가신다" 라고 말이죠.
그러면 그것을 실제로 그 당시에 이스라엘은 성전에서 나팔을 불렀다는 겁니다. 물론 나팔수들이 불렀는데, 그때의 그 상황을 인위적으로 연출을 했다는 말이죠.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보면, 주께서 강림하실 때에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합니까?
(살전 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살전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 동일한 코스 !!
여기 16절에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라고 되어있는데, 주께서 강림하실 때 죽은 자들의 무덤이 열리면서 하나님에게 끌려 올라가는, 즉 휴거라는 사건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때 무슨 소리가 납니까? 그게 나팔소리라는 말이죠. 그러니까 이 나팔소리는 어떤 조건이냐 하면, 그 코스가 하나님이 올라가셨던 것과 과연 동일한 코스냐는 겁니다.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오실 때, 그 코스가 있다는 말이죠.
여러분,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건물을 왔다갔다하고, 그리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하는데, 특히 톰크루즈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촬영하게 되면, 그 주인공의 허리에 보면 무엇이 있어요? 끈이 달려있다는 말이죠.
아버지께서 독생자 아들, 즉 가족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식구가 '1'이 아니고, 단독자가 아니고 함께 있다는 말이죠.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요? 내려올 때 끈이 있다는 겁니다. 이 끈이 뭐냐 하면, 이 끈을 성령님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성령 아버지의 영이 임한다는 것이죠.
톰크루즈가 출연한 '미션 임파스블' 이라는 영화를 보면, 마지막에 비밀 장소에서 컴퓨터 암호를 푸는데, 마지막에 그것을 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영화를 봐야 실감이 나든지 하지 싶은데 말이죠(ㅋㅋ).
그때 톰크루즈가 바닥에 쫙 뻗어 있는데, 그런데 거기에 땀방울이라도 하나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무게가 달라지기 때문에 비상벨이 울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긴장을 해서 오금이 지리고 한다는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성령께서 일을 유지하시는데,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라고 하셨다는 말이죠.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가 일을 하는데, 모든 것은 자기가 일을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행함뿐이라는 것이죠.
(요 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그런데 아버지의 경우에는 예수님이 옆에 계시니까, 항상 '2'로 같이 움직인다는 겁니다. 성령을 통해서 하신다는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마지막에 마지막에 갈등을 일으키는데, 그래서 "주여, 제가 이 저주를 뒤집어써야만 합니까? 이 잔을 뺄 수는 없습니까?"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 내 뜻대로 마옵시고 !!
그런데 이것은 누구와의 대화니까? 그때 제자들은 자고 있었으니까, 인간들은 빠진다는 말이죠. 그것은 '아버지'와 '나'의 대화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어떻게 응답을 받았어요? "내 뜻대로 마옵시고"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여기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라고 하는 게 뭐냐 하면, 자아에서 벗어나는, 육에 속한 자아가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새로운 자아로, 그렇게 육에서 분리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이때 누가 도와주었느냐 하면, 끈, 즉 성령이 도와주신다는 겁니다. 성령의 힘으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저주를 받았다는 말이죠. 그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라고 한 다음에,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마 27:46)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다시 말해서, 육이기 때문에, 즉 '1'이기 때문에, 그 '1'을 버리고 '2'로 채택해서 천국에 넣어주겠다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원칙은 변동이 없다는 말이죠. 요지부동인데, 아주 고집이 대단하다는 겁니다. '1'로 사는 인간은 천국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래서 "내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라고 하면, "저리 가라. 네 같은 인간은 받지 않아"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교회에 가면 그런 인간들이 많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고 하면서, 그런 것을 다 알아서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데, 교회놀이는 교회에서나 많이 즐기라는 말이죠.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라고 하셨을까요? 자기를 벗어나는 것, 그 어떤 인간도 실패하는 존재로 태어났다는 겁니다. 그러니 믿음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바로 자아로부터 벗어난 사람이라는 말이죠.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불신으로 받는 구원 !!
그러니 놀랍게도 불신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겁니다. "나는 주님을 믿은 적도 없었습니다" 라고 하는, 그것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죠. 만약에 자기가 믿는다고 하면, 그 믿음은 누구의 소유가 되지요? 자기 소유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를 부인할 수 있습니까? 자기 안에 믿음이 들어있는데, 그러니 자기를 부인하면 자기 믿음도 그만 날아가 버린다는 말이죠. 여기서 교인들은 버티기에 들어가는데, 성도가 아닌 교인들이 그렇다는 겁니다.
"내가 50년을 믿었습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믿었습니다. 모태신앙입니다" 라고 하는데, 그런 것을 훈장과 같이 여기면서 계속해서 버틴다는 말이죠. 그리고 목사들은 뭐냐 하면, 여기서 계속해서 종교적인 행사를 추가하면서 훈장과 같은 것을 더 제공해준다는 겁니다. 특히 천주교나 성공회도가 이런 것을 잘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가는 코스를 보면 어떻습니까? 성령을 통해서 자리에서 버려진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예수님은 버림을 받았다는 말이죠. 그런데 성령은 예수님을 버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아버지의 영으로부터 예수님은 포기가 되었어도, 성령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죽었던 예수님을 사흘만에 부활시켰다는 말이죠. 성령에 의해서 죽은 예수님이 살아나시게 되는데, 바로 그 이야기를 히브리서가 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로마서 8장 9절에서 11절을 보겠는데,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 죄인 VS 악인 !!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인데, 여러분이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죄인과 악인이 구분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악인은 시편 58편 3절에 나오고, 그리고 죄인은 시편 51편 5절에 나온다는 겁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시편 2개를 찾아보면서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먼저 악인부터 보겠는데, 시편 58편 3절입니다.
(시 58:3)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아기는 모태에서 멀어지면서, 즉 태어나면서 "너는 이미 악인이야" 라는 조건 하에 이 세상의 출생을 허락받게 되었다는 겁니다. 남자들이 군에 가게 되면,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그러면 자대 배치를 받는다는 말이죠. 그러면 신고를 하는데, "충성, 이병 아무개는 386부대로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 라고, 그렇게 하면서 허락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무엇인고 하니까,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악인밖에 없다는 말이죠. 그렇게 악인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 없다는 겁니까? 죄인이 없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죄인은 그냥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시편 51편 5절을 보겠습니다.
(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여기에서 다윗이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으며,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라고 하는데, 다윗이 이것을 어떻게 알았냐 하면, 11절에 보면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 라고 한다는 말이죠.
(시 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다윗이 이전에는 자기가 악인이 되지 않으려고 그야말로 발버둥을 치면서 살았었는데, 그런데 성신, 즉 성령을 받고 보니까 어떻게 되었다는 겁니까? 자기가 엄마로부터 이미 죄인 그 자체로 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아까 본 로마서 8장에 의하면, 인간이 죄인이 된 것은 이미 성령이 임해서 천국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인데, 그래서 자기가 어떻게 살았든 간에 자기는 죄인이라는 겁니다. 무엇이 아니라는 겁니까? 악인이 아니고, 애초에 지옥에 가기로 결정된 악인이 아니고, 자기는 죄인이 되었다는 말이죠.
로마서 8장에 왜 죄인이 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나오는데, 즉 "내 안에 성령이 임하면, 그 성령이 의인의 영, 예수님만이 의인이기 때문에, 그 의인이 내 대신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는 그 의인, 즉 대신 죽으신 주님을 의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 나는 죄인이 된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의 표정을 보니까 별로 느낌이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여기서 마태복음 8장 17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 대신 담당 !!
이것은 이사야서 53장 4절 말씀을 이루신 것인데, 그러니까 대신 담당하셨다는 말이죠. 예수님이 먼저 대신 담당하셨는데, 그러면 우리는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대신 담당하실 것이 우리 안에서 생산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우리가 행한 악이 아니고,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가 손을 쓸 수가 없는, 부모의 노선대로 물려받았던 죄,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는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데,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버림을 받았다는 말이죠.
그러한 죄의 육신, 그것을 죄인이라고 하고, 그것을 예수님이 마태복음 9장에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대신 죄를 처리해서 우리를 본래 예수님의 세계, 예수 안에 있는, 그런 잉태된 아기의 자리로 되돌리기 위해서 말이죠.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
아브람은 자기가 잘난 줄 알았는데, 그러나 아브라함이 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기가 죄인임을 알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믿게 된 그 계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 죄를 위해서 누구를 갖다 바쳤는고 하니, 하나님 앞에 이스마엘을 갖다 바친 것이 아니고, 누구를 갖다 바쳤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이삭을, 그 이삭은 아무 죄가 없다는 말이죠. 그 이삭을 번제로 바칠 때, 하나님께서 비로소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라고 부신다는 겁니다.
(창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 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아로부터 빠져나온, 이미 생명책에 기록된 그 아브라함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삭이라는, 생기지도 않은 자식을 생기게 만들어서, 그래서 독생자인 그 아들을 바쳐서 아브라함이 되게 했다는 말이죠.
* 그 이삭이 곧 예수님 !!
그와 같이 로마서 4장에서는 그 이삭을 누구를 보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17절에 보면,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롬 4:16)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이제 끝으로 이 말씀을 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나' 라는 자아에서 빠져나올 때, 요한복음 16장에 보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여기에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는 겁니다.
(요 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요 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 압축된 고통 !!
예를 들어서, 이가 썩어서 아프다고 하면, 밤새 잠도 이루지 못하고 매우 고통스럽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 고통과 치과에 가서 이를 뽑을 때의 고통, 이 둘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아플까요? 밤새도록 당하는 고통이 더 아프다는 겁니다.
그 고통을 함축해서 보면, 의사의 경우에 환자를 보고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습니다. 실손보험은 들었지요? 이제 이를 뽑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마취제를 놓는다는 말이죠. 그러면 잇몸이 불룩해지는 느낌이 온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 환자는 뭐라고 착각하느냐 하면, "이제 마취를 제대로 했으니 아프지는 않을 거야" 라고 여긴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빨을 한번 뽑아보라는 말이죠. 마취가 아무런 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그 고통은 어떤 고통입니까? 압축된 고통인데, 저만 그런가요? (ㅋㅋ)
우리는 "인간이 십자가를 졌다고 하면 아프겠다" 라고 여기는데, 물론 아프다는 말이죠.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은, 모든 자기 백성의 죄가 다 함축되어있기 때문에,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 압축된 고통이 십자가 안에서 이미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그게 평생토록 나누어서 제공이 된다는 것이죠.
*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여러분, 동창생과 같이 여행을 가면 참으로 좋지요?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말을 하면, 성도가 입을 열었다고 하면, 그것은 사람의 말입니까? 아니면 성령의 말입니까? 성령의 말이 나오니까,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됩니까?
이것은 마치 화살을 가지고 있는 것과도 같은데, 그때 동창생이 9명이 있었다고 하면, 자기가 말을 하면 9명이 화살을 가지고 발사를 한다는 겁니다. "아니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우리가 납득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지" 라고 하면서, 마구 쏘아댄다는 것이죠.
* 이미 결정된 운명 !!
사람의 운명은 이미 결정이 되었는데,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 안에서 작용하게 되면, 천국에 갈 사람은 천국에 가고, 자기가 아무리 교회에 가서 설치고 봉사를 해도, 주께서 아니라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아니라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화를 내지 않는데, 오히려 은근히 기분이 좋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교회에 열심히 다녀도 천국에 가지를 못한다면, 차라리 교회에 가지 않은 것이 어떻습니까? 시간도 벌고 돈도 절약한 것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여기에 대해서 누가 화를 냅니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마구 분노를 일으킨다는 겁니다. "신학박사님인 우리 목사님은 그렇게 이야기지 않던데, 그런데 네가 뭔데 감히 그런 소리를 해?"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게 무슨 고통입니까? 십자가에 이미 들어왔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이 있는 자들에게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다는 말이죠.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제 고린도전서 1장을 마저 보고 마치겠는데, 22절에서 25절입니다.
(고전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 부르심은 입은 자 !!
22절은 아까 보았고, 여기 24절에 보면,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라고 한다는 겁니다. '부르심은 입은 자', 이 절차가 절묘하지 않습니까? "나사로야 나오너라" 라고 하는 것처럼,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그게 유대인이던 헬라인이던 한반도 사람이던, 그게 이스라엘 관계와 같다는 말이죠.
그리고 23절에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게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지혜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런 사도바울의 결론을 여러분이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지 간에 말이죠. 그러니 타자의 평가,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된 자가 곧 자아로부터 벗어난 사람이라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버지, 저희들이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그동안 가족들의 평가, 남들의 시선, 그런 것에 주눅이 들면서 얼마나 남을 의식하면서 평생을 살아왔습니까? 이런 지긋지긋한 주눅드는 생활에 벗어나서, "다시는 너에게 정죄함이 없다" 라는 이 기쁜 소식에 감사하면서, 오히려 남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Salvation Received Through Unbelief !!
2026,09,14 오전 10시에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