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치신 분의 고향 260920
인치신 분의 고향(요한계시록 7:1-3)
인 치신 분의 고향
2026년 9월 13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7:1
(7: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7: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천사는 바람입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슥 6:5) 하늘에서 보이기 이 세상은 사각형입니다. 그리고 각 모퉁이에 천사가 감시하고 있습니다. 즉 하늘에서 보기에 이 세상은 감옥입니다. 인간은 빠져 나갈 수가 없습니다.
출생하면서 감옥입니다. 거기고 그 안에서만 성장하고 결국에는 그 감옥 안에서 죽고 공동묘지에 묻힙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상관없이 그저 감옥입니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너무 험난하고 파괴되어 왔기에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린다고 할지라도 사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봅니다. “너 어떻게 살 생각이야?” “편하게 살 생각입니다.” “뭐가 편한데?” 인간의 마음 속에서 과거가 추억이 되어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나온 생각들을 모아서 나름대로 고향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편하게 산다는 것은 그 고향에 살던 방식을 이제 성공하고 여유로운 입장에서 살고 싶은 겁니다.
어릴 때 같이 뛰놀던 일가 친척과 친구들과 서로 왕래하면서 살고 싶어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이 눈에 보이는 세상이 감옥인 것을 전혀 감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이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함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선천적으로 영적 장애인들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그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죽고 멸망될 세상에서 그들이 살아보겠다고 분투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지옥으로 갑니다. 지옥은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기 이전부터 이미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지옥을 만드신 분’입니다. 남아 있는 것은 지옥갈 자와 천국갈 자를 차질없이 분류하는 일 뿐입니다.
그 일에 인간은 관여될 수 없습니다. 관여를 해본 자가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에 천사를 보내어 심판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다급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어떻게 의인도 죄인과 같이 심판받는 그런 경우는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브라함으로 인해 ‘의인’이 됩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복이 없는 자가 같이 멸망당할 수는 없는 겁니다. ‘악인을 멸망시킨다’와 ‘의인은 멸망당하지 않는다’의 이 두 원칙을 행사하실 하나님께서 의인이 있는 (조카 롯의 가정)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할 수 있느냐에 의구심을 품게 됩니다.
어떻게든 아브라함은 기도를 통해서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이 지체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심판 실시의 취지는 취소되지 않고 천사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심판합니다. 심판 전담반은 천사들입니다.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마 13:38-40)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멸망 직전에서 천사를 롯에게 보냅니다. 하지만 롯은 천사의 말대로 떠날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소돔과 고모라 땅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던 자신의 과거가 다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과거를 버려요? 과연 그게 성립됩니까? 무슨 수가 과거를 버립니까?
도리어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미래에 만회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거가 전제가 되어야 만회하는 데서 기쁨도 생기는 법입니다. 천사는 롯의 가정을 강제로 끌어냅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창 19:16)
이렇게 해서, 의인은 심판을 받지 않고 악인에게는 그 누구도 강제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저주를 그대로 흠뻑 뒤집어쓰야하는 원칙이 하나님에 의해서 수행이 됩니다. 이때 롯은 압니다. 자신이 아브라함의 언약에 입각해서 구원된 것임을 말입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창 19:29)
즉 인간들 사고방식에서 상호 모순되어 보이는 원칙들이 하나님의 일로 통해서 보면 모순없이 성취되는 겁니다. 따라서 인간들은 자기 삶의 원리와 원칙에 대해서 스스로 배신당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수완으로, 자기 요령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인간의 예상과 기대를 벗어나는 구원하는 원칙이 에스겔에서도 나옵니다.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겔 3:3-6)
이 본인에 의할 것 같으면 천사에 의해서 죽게 되는 자들 중에는 어린 아이와 부녀들도 있습니다. 단지 이마의 검은 인을 바르지 않았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은 죽임을 당합니다. 그렇다면 모순으로 부딪히지 않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어떤 식으로 구원을 낳을 수 있습니까?
성령으로 인치심입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 1:21-22) 즉 심판이 계속 진행하면서도 수시로 심판 행위를 멈추면서 의인이 죄인과 더불어 심판받는 모순을 제거하십니다.
우리 인간의 예상을 비켜가시는 방식입니다. 그래야 온전히 일방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으로 구원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사랑’과 ‘믿음’과 ‘소망’은 ‘사랑받는’ 그 인간의 소속이 아닙니다. 성도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지옥이고, 그 지옥에서 벗어나는 방식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소관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계속해서 일관되게 심판하시고 그 가운데 마찰없이 구원하시는 바를 우리를 통해서 증거토록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24강-요한계시록 7장 1~3절(인친 자의 고향)260913-이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계시록 7장 1~3절입니다. 신약성경 380페이지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아멘.
하나님께서 나름대로 일을 하시는 것은 인간의 예상을 벗어납니다. 인간의 예상은 뭐냐 하면, 우리 사람이 스스로 사는 방식을 인간끼리 공유하는 거, 그게 지식이고, 지혜이고, 정보 세계잖아요. ‘이렇게 하면 땅에서 잘 살더라’하는 그것을 같이 나누면서, 같이 이 땅에서 잘 사는 게, 사람의 사는 목적이죠.
어떤 행동 하나 생각하나가 이 땅에서 죽으려고 살지는 않잖아요. 살려고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굳이 성경을 볼 이유가 없어요. 성경 읽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해서 나 사는 데 보탬이 되는 것이 이 땅에서 사는 지혜인 것처럼, 그렇게 간주합니다. 바쁜데 왜 교회 참석할까요? 이상하잖아요. 기차가 고장 나도 참석하잖아요.
바쁜데 왜 교회 나오느냐. 그러면 교회 나온 사람들이 말합니다. 교회를 나오는 것도 나를 위해서 나와야 한다고. 그러니까 그것은 교회 나와도 소용없는 거예요. ‘나를 위해서’라는 그 자체가 교회 나와도 소용없어요. 모든 생각이 ‘나를 위해서’가 아닌 게 어디 있어요? 다 ‘나를 위해서’예요. 그런데 성경은 일체 ‘나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눈치 못 채게, 알아먹지 못하는 일을 벌이시는데, 그 일을 벌이시는 것이 오늘 7장 1~3절까지 나와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있어요. 그렇다면 땅은 하나님 보시기에 사각형입니다. 사각형이라는 말은 갇혀있다는 뜻이죠. 사각형 바깥으로 벗어나는 땅은 없다는 거예요. 그 땅에 일어나는 일체 모든 것이 천사의 감시하에 놓여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사각형으로 되어 있고, 누구의 감시하에 놓여있다면, 이건 두 자로 ‘감옥’이에요.
감옥입니다. 인간은 감옥에서 태어나서 생일 축하 노래 부르고, 돌잔치하고, 죽을 때도 감옥 밖으로 못 벗어나요. 감옥에서 태어나서 감옥으로 갑니다. 그 감옥은, 감옥에서 태어난 인간이 죄를 알아서 사는 것이 아니고, 후차적으로 살아가면서 ‘감옥일 수밖에 없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여정을 감옥 안에서 뺑뺑이 돌면서 살게 합니다.
저는 ‘태진아’라는 가수가 불렀던 ‘옥경이’라는 노래 가사를 아직도 잊지 못해요. 어디서 뭘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희미한 등불 밑에서 고개를 못 들고 있어요. ‘옥경아, 너는 그동안 어디서 뭘 하며, 어떻게 살았느냐?’ 그저 고개도 못 들고, 가사에 보면 ‘눈물만 뚝뚝뚝’ 꼭 굳이 말로 해야 합니까? 어디서 뭘 하며, 어떻게 살았든지, 성경대로 말하면 그거 해봤자 그 주소가 감옥 안에 있는 주소예요.
감옥에서 못 벗어난 채, 나름 살아보려고 악바리처럼 살아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 불신자를 참 존경합니다. 불신자의 특징은 날 때부터 정신적으로, 정신적 장애자예요.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하는 장애자들이 육신의 본능은, 이건 동물 같아요. 뭐가 됐든지, 진리고 뭐고 나는 모르겠고, 하나님이고 예수고 나는 모르겠고, 나는 무조건 살아야 해.
‘살아야 해’라는 이 선천적 정신적인 장애자가 악착같이 살려고 하는 그 모든 것이, 그것이 바로 지옥을 묘사하고 있는 대목이에요. 그들에 의해서 지옥을 구현하고 묘사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하시면 됩니다. ‘지옥은 하나님이 만드셨다!’ 그걸 달리 바꾸겠어요. ‘하나님은 누구신가? 지옥을 만드신 하나님!’ 깔끔하죠. 깔끔해요. 지옥을 만드신 하나님. 지옥을 위해서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
‘내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제발 지옥이 지옥다워지도록, 지옥이 완성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도가 할 기도가 그런 거예요. 지옥이 지옥답게. 그런데 그 지옥에서는 이미 저주받기로 되어 있고, 저주받는 장소예요. 그런데 이 선천적으로,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불신자들은 악착같이 살려고 애를 쓰는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이게 존경스럽고 애처롭습니까? 진짜 한 마디 하고 싶은 거예요.
‘끝났어! 끝났어! 끝 날이 올 걸. 그 끝 날, 그 시간이 올 걸’ 지독하게 말도 안 듣더니만 결국은, 결국 평생을 지옥 가기 위해서 그토록 조바심을 내었고, 지옥 가기 위해서 그렇게 요령 요령을 다 부렸고, 이용할 대로 이용했고, 또는 스트레스받아서 술 퍼먹고, 담배 피우고, 몸에 문신해서 스트레스 풀었고, 그거 백날 해봤자, 그건 인간 사는 게 곧 지옥입니다. 그리고 지옥으로 가고 있고요.
따라서 하나님의 오늘 7장의 본문은 이렇습니다. 천사들이 사각형을 파수(把守)하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천사한테 이야기합니다. “파수 잘 섰나? 그 네(4) 모퉁이, 초소에 잘 있지?” 예! 옛썰(Yes, Sir)! 다 돼 있습니다! “그래?” 하나님, 바람 불까요? 이제 지옥 만들까요?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어! 가만! 바람, 잠시만 바람 멈춰!” 천사들이, ‘왜요?’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바람 확 불어 가지고, 바람은 요한계시록 6장에 보면, 세상의 3분의 1을 작살내는 거죠. 온 천지가 지진이고, 엘니뇨 현상이고, 뭐 전염병이고, 쉴 새도 없는 전쟁이고 계속 일어나는 거예요. 어떻게 또 바람을 한번 일으켜 볼까요? “아, 잠깐 기다려!” 왜요? “그중에 하나님의 인 맞은 사람이 있잖아” 이게 지금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이 그렇게 고민하고, 또 아브라함이 몰랐던 대목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는데, 그건 천사가 할 일이에요.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심판은 천사 담당입니다. “추수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마13:39)
실무자가 천사예요. 팀장은 미가엘이고. 그러니까 천사가 활동한다는 건, 이 땅은 심판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천사가 할 일을 인간이 말릴 수가 없어요. 못 말립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곧이곧대로 하는 천사를 누가 말립니까?
제가 수요 설교에서 했지만, 유월절 어린 양 할 때, 천사가 와서, 피 없다고 다 깔끔하게 처리하잖아요. 그래서 수요 설교 때, 그걸 가지고 뭐라고 했냐면, ‘이삿짐 청소 직원’, 그것도 아주 뛰어난, 아주 이삿짐을 뭐 하나 놓치는 거 없이, 빠뜨리는 거 없이 깔끔하게, 이 세상에서 천국 쪽으로, 이 세상에서 지옥 쪽으로, 아주 분류 잘하고 정리 잘해서, “어이, 천국! 어이, 지옥! 뭐 남긴 거는 없지? 깔끔하지. 우리가 청소하는데”
깔끔하게 두 부류로 영원히 나누어집니다. 요새 날씨만 시원한 게 아니고, 이 말씀도 시원해요.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이 이 점을 몰랐던 거예요. 천사가 심판하니까 아브라함이 제일 걱정 되는 것이 근친도, 자기 혈육인 조카(DNA 12.5% 일치)가 생각나는 거예요. DNA를 나누어 가졌던 조카여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의인이 있는 데도,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있는 데도 심판하면, 하나님이 의로운 자를 저주하는 게 되기 때문에, 이건 하나님 자신의 행동에 모순되는 게 아닙니까?’라고 이렇게 이제 질문을 한 거죠. 의인이 없으면 심판되는 것이 하나님의 정당성에 합당한데, 의인이 있는데 의인을 심판한다? 그러면 심판 기준이 모호하지 않습니까? 깔끔한 게 아니잖아요.
의인만 골라서 구원하고, 악인만 골라서 심판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걸 이제 아브라함이 따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아브라함 보기에 하나님이 성급하게 심판부터 먼저 저지르고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거기에는 조카 롯이 있거든요. 조카 롯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의로워서 구원받는다는 조건을 하나님이 주셨어요.
하나님이 제시한 조건이 두 개가 충돌돼요. “아브라함 자손은 믿음으로 의롭다” 오케이. 구원, 감사합니다. “그런데 악인은 멸망한다” 예, 그렇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겠다는데 갑자기 조카가 살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에 심판을 하니까, 아브라함이 기도를 하는 겁니다. ‘10명만 있어도 좀 보류 안 되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알았어요. 한 명도 없다는 거.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심판은 심판대로 하되, 의인은 의인대로 건진다는, 인간 보기에 모순이 되는 이 두 가지의 원칙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어떻게 둘 다 실현되는지를 아브라함은 지켜보기로 합니다. 왜?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심판 전에, 아슬아슬하게 롯의 가정을 빼내는데, 여기서 일에 차질이 있네요. 롯이 인간인지라 살던 고향이 편한 거예요. 살던 고향이. 저는 젊은 사람한테 묻고 싶습니다.
진리대로 사십니까? 편한 대로 사십니까? 이건 뭐 물어보나 마나지. 젊은 사람들은 편한 대로 살아요. 그럼 다시 묻죠. 그 편하다는 게 뭡니까? 어떤 걸 편한 대로 산다고 하는 건지. 어떤 게 너한테 편하냐? 옛날부터 지금까지, 20살이면 20살 때까지 익혀 들은 그것이 나한테 몸에 딱 맞는 편한 거예요. 편한 겁니다. 사람은 고향을 못 떠나는 이유가 고향은 내 과거 속에, 내 편한 과거 속에 고향이 담겨있기 때문에 그래요.
편하다고 하니까 갑자기 그게 생각나요. ‘속 편한 내과’가 생각나요. 대구에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속 편한 내과. 사람들은 편한 대로 살아요. 그 본성을 젊은이들은 숨기지 않고 그대로 보여줍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예배 시간에 자기 편한 데로 해요. 흔들고, 지가 편한 대로 하는 거죠. 구속받지 않고. 자기 고향을 어린아이든 청년이든 그리워합니다.
심지어 그들이 커서 어른이 되어도 그들은 자기의 고향을 잊지 못합니다.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살구꽃~ 아기 진달래. 거기서 발을 뺄 수가 없는 거예요. 소돔과 고모라에서 발을 뺄 수가 없는 거예요. 안 가겠다는 거예요. 천사가 와도 안 가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경상도 말로, 천사가 움짐달았지요. 움짐. 서울 사람들은 모른다. 움짐달았다는 말은 ‘조급했다’
조급한 거예요. ‘이게 안 나가나?’ 강제로 잡아당기면서, 강제로 잡아당겨서 롯의 가족은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아브라함의 기도에 따라 강제조치로 빠져나왔습니다. 강제로 빠져나오고, 그다음에 소돔과 고모라 작살나고, 따라 나왔던 아내는 나올 때 조건인 “뒤돌아보지 마”라는 조건. 고향인데, 고향이 어떻게 되는지 그게 궁금한데, 왜 안 돌아보겠어요.
내가 거기에 다 있는데요. 현재 나온 나는 내가 아니에요. 내가 살던 그 친척과 친구와 그 추억과 기억, 앨범 속에 있는 사진, 그게 나예요. 그 나를 놓치기 싫어서 뒤돌아봤는데 죽었어요. 완전히 소금기둥 되어서. 너는 빠져나올 자격도 안 돼. 자격도 안 돼요. 거기서 그렇게 해놓고, 아브라함을 생각해서, 그러니까 롯이 의인이 아니고, 아브라함을 생각해서 소돔과 고모라 가운데서 빼내 줬다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누구를 생각해서 여러분을 빼내 줬겠어요? 우리 주님이죠. 우리 주님이에요. 내가 믿는 주님이 아니고 주님이 믿는 나예요. 내가 소망하는 예수님이 아니고 예수님이 소망하는 게 이 죄인 중에 죄인인 나라니깐요. 내가 주님을 사랑한 적 없어요. 요한1서 4장 10절에 보면 사랑한 적 없어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주님 사랑의 대상으로 찜했기 때문에 우리를 건지는 겁니다. 심판되기 전에. 그걸 가지고 오늘 본문에서는 도장을 찍어버린다. 그걸 인(印)이라고 하는 거예요. 인(印). 오늘 본문에서 7장 2절에 도장을 찍어버려요. 그러니까 이 말은 천사가, ‘하나님, 저 심판 개시 할랍니다. 심판하는 게 우리 담당이니까, 심판 끝냅시다!’라고 하니까, “가만! 스톱(Stop)! 불지마 바람 불지 마. 내가 찜해놓은 사람이 있다”
이거는 소돔과 고모라하고 똑같은 거예요. 하나님의 인을 받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서 올라와서, 그 사람, 하나님 종들의 이마에 인을 박은 사람만 건지겠다는 거예요. 근데 이 말을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를 쏙 빼고, 도장 찍으신 분도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과 하나님 사이에 모순이 없도록, 모순이 없게 한다.
만약에 인간이 이해한다면, 그거는 구원 대상이 아니에요. 인간이 이해되지 못하는 식으로, 하나님이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이 찍어놓은 인을 받은 사람을 데려가는 식으로 구원. 게임 오버! 끝났어요. 구원 끝났어요. 인을 받은 사람이 뭐 어떻게 행동하고 하는 그거는 배제됩니다. ‘인 찍혔다, 안 찍혔다’라는 그걸로 결정하는 거예요. 인을 자기가 도장을 가지고 찍고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여기서 궁금한 게, ‘목사님, 저는 인을 받았어요, 안 받았어요?’ 이거 되게 궁금할 거예요. 이건 모르면 오늘 교회 괜히 왔지요. 그것은 바로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롯이 알지요. 낯선 복음 이야기를 가지고 누가 나한테 찾아왔고, 나 보고 이 땅에 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면서, 이 땅은 희망 없는 심판의 땅, 지옥이라는 것을 알려 줬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내몸에 밴 이 고향 때문에 주저주저 안 할 때가 없었는데, 쉽게 말해서, ‘하나님, 교회 나와서 예수 믿는데, 지금 내가 바쁜 일이 있어서 다음에 참석할게요’라는 이런 거 있잖아요.
굉장히 이 땅에 볼 일이 많아요. 이 땅에. 마치 내일과 모레는 나한테 마땅히 보장된 것처럼 착각하면서, 내일 일은 모르는데 안다고 치고, ‘우리 딸래미 시집은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이런 거. 그러면 시집보내고 교회 나오려는지 물으면, ‘우리 아들 낳는 건 봐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계속 주저주저하고 있는 거예요. 인을 박은 자만 심판에서 예외로 한다는 구절이 에스겔에 나옵니다.
에스겔 9장 3~6절에 보면, “그룹(천사)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먹물)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하나님을 따라야 되고 하나님과 함께 했던 예루살렘에, 도대체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이 왜 이렇게 없냐고 탄식하고 우는 자가 있거든, 그 먹 그릇을 가진 사람이 한 손에 먹을 들고, “아저씨 잠깐만 봅시다” 뭐요? “딴 거 아니고 잠깐 고개 한번 들어 보세요”라고 하더니, 이마에다가 시커멓게 칠하고는, “나 또 볼일 보러 가야지”라고 하고, 딴 데 가버려요.
이 예루살렘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탄식하는 사람에게만, 이마에 표를 바르는 거예요. 이 사람이 바로 이 면제될 사람, 심판에서 제외될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이야기를 여러분이 들었으면, ‘나도 그때 그 먹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이렇게 좀 찍어달라고 해야 하는데’라는 뭐 그런 생각이 들 거예요. 그러나 그것은 이 바람의 성격이 뭐냐 하면, 인간 개인이 조정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요한복음 3장 8절에 보면, 성령을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성령은 마치 바람과 같다고 했어요. 네가 호출한다고 오는 것도 아니고, 이리 와서 뭐 하라고 한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이 먹을 가지고 인을 하나 박는 사람은, 창세전에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의 명단과 합치되는 자에게만 천사가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인을 바릅니다. 먹을 발라요.
여러분이 걱정하기를, 놓치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이 실수할 수 있는데, 창세기 전에 예정됐는데 혹시 또 빠뜨리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런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 요한복음 6장에 보면, 그런 거 놓치는 게 없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6:39)
예수님이 오신 것은 아버지가 주신 자 중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은, 명단에 없는 인간을 천국에 데려가는 일은 없다는 거예요. 인간은 ‘그럼 나를 구원해 주지, 왜 나를 빠뜨리나’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없어요. 왜냐하면 천성적으로, 영적으로 장애자이기 때문에 꽉 막혀 있어요. 종교를 10개 만들고, 10개 다 돌아다녀도 소용없어요.
인간은 영적인 하나님의 일에 의해서 완전히 막혀 있기 때문에, 그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올 수가 없어요. 이미 구원받은 사람은, ‘아, 하나님이 놓치지 않았구나’라는 그 고백만 나올 뿐이지, ‘만약에 날 안 데려가면 어떻게 합니까?’라는 그런 이야기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에서는 그 먹, 먹으로 인을 받은 게 어디에 나오느냐. 고린도후서 1장에 나와요.
1장에도 나오고 4장에도 나오는데, 고린도후서 1장 21절에 보면,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러니까 먹물을 바른다는 그것이 구약이라면, 그때, 그 당시에 가서 먹물을 바르는 사람 찾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신약에서는 기름 부음을 줘요. 그 기름 부음이 뭐냐.
성령의 기름 부음은, 22절에,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성령을 마음에 주시면 사울이 바울이 된 것처럼, 마음에 다른 눈이 떠요. 눈이 뜨여져서, 전에는 내가 열심히 해서 구원받겠다는 그 마음이 이게 마귀 마음인 것을 알게 돼요. 성경대로 바르게 살고 열심히 해서 구원받는 것은, 세상에 이런 것은 하나님이 주신 적이 없어요.
그거는 마귀가, ‘너는 성령 못 받았으니까, 성령 받은 척이나 해라’라고 해서, 성령 없는 인간들이 성령 받은 티를 낸다고 열심히 해요. 교회 나와서, 목사가 시킨 대로 다 합니다. ‘이케요? 이케요? 이렇게 하면 됩니까? 저렇게 하면 되니까?’라는 이런 거예요. 그러면 성령을 받은 사람은 뭐냐 하면, 내가 주를 위해서 하는 어떠한 행위도 주께서는, ‘노(No)!!’ 받지 않는다는 데서 오는 그 존재의 가벼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두 가지를 고마워하는데, 세상 지옥을 만드신 하나님, 그래서 세상이 지옥 돼서 불로서 멸망시킨 하나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말하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이 두 가지만 말하면 돼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하신 일입니다. 인간이 감히 끼어들 수 없는 일, 말씀대로 모든 것이 되어졌기에 세상은 마땅히 지옥이고, 우리가 마땅히 지옥과 함께, 지옥을 고향이라 여기는 자와 망해야 마땅한데, 이것이 지옥이고 나 또한 그냥 망해야 될 인간인 것을, 성령 받았기에 비로소 눈이 열려서 고백케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