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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절반 + 절반 역대하 27:2 260904설교역대하

20260904a 울산강의-역대기하(24강) 27장 2절 : 절반+절반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역대하 27장 1절, “요담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륙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루사라 사독의 딸이더라 요담이 그 부친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오히려 사악을 행하였더라 저가 여호와의 전 윗문을 건축하고 또 오벨성을 많이 증축하고 유다 산중에 성읍을 건축하며 수풀 가운데 견고한 영채와 망대를 건축하고 암몬 자손의 왕으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그 해에 암몬 자손이 은 일백 달란트와 밀 일만석과 보리 일만석을 드렸고 제 이년과 제 삼년에도 암몬 자손이 그와 같이 드렸더라 요담이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정도를 행하였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 요담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전쟁과 행위는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여기까지 보겠습니다.

여기 요담이 나오는데 요담이 누구냐 하면 남쪽 유다 열한 번째 왕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있는데 남쪽은 유다가 되고 북쪽은 이스라엘이 됩니다. 남쪽의 열한 번째 왕 이름이 요답입니다. 근데 그 사람이 해야 될 일이 뭐냐 하면 왕이에요. 여기서 우리가 한 번 생각해봐야 돼요. 굳이 왕이 있어야 됩니까?

하나님을 각자 믿으면 되잖아요. 너도 하나님 나도 하나님 믿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도 믿는구나, 너도 믿는구나 해서 네게 복 주마. 얼마나 간단해요. 정말 대단히 간단한 문제거든요. 근데 왕이 끼어든다는 것은 오히려 개인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그만큼 장애, 방해요소가 되지 않을까요? 훼방되는 게 아닐까요?

예를 들어볼게요. 야곱이 하나님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믿으면, “잘 믿는구나.” “예, 잘 믿습니다.” “복 줄 게.” 그러면 간단하잖아요. 아무 문제없지요. 그런데 하나님과 야곱 사이에 사다리가 있어요. 이게 왜 있지요? 이게 왜 있느냐 말이죠. 우리 신앙을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다시 생각하면서 생각의 폭을 좁히기 위해서 내가 두 가지를 먼저 쓸게요.

1. 마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끊고자 한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었잖아요. 그것 인정합니까? 하나님이 안 만들었으면 누가 만들었겠어요? 하나님이 만들었는데 그 중간이 누가 끼어들었어요? 마귀가 끼어들었어요. 그때부터 나가라 했지요. 하나님께서 “나가!” 인간 나가리 됐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나갔습니다. 관계가 끊어졌어요. 화염검으로 인간이 생명나무를 따먹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차단했습니다.

아담이 그냥 독립하고 싶어서 이제 스스로 하나님이 짜증나서 자기가 알아서 에덴동산에서 나갔습니까? 그래 나간 거예요? 나 이제 하나님과 안 살래, 하고 그냥 나간 거예요? 강제 추방당한 거예요? 강제로 추방당했지요, 인간은.

인간은 뭐냐 하면 강제 추방당한 자에요. 아무리 인간이 이 땅에서 화려한 문명과 대단한 기술과 그러한 평화와 단단한 국가를 건설해도 뭘 해도 그들은 뭐냐 하면 인간은 추방당한 자라는 이 사실이 취소됩니까? 아니지요. 흔히 하잖아요. 머리 검은 짐승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안 달라진다고요.

한 번 추방당한 인간이 그 인간행세 어디 갑니까? 추방당했다는 그 요소가 태어날 때부터 거기 안에 요인으로서 들어있어요. 길가에 인간이 있다, 이 말은 뭐냐? ‘너도 추방당했지.’ 그거에요. 너도 쫓겨났잖아, 라는 동질감이 있어야 돼요. 똑같아요. 다 추방당한 거예요. 그것은 마귀가 개입해서 그렇게 추방당한 자에요. 그래서 마귀는 뭐냐 하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끊고자 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뭐하시느냐?

2. 하나님: 인간과 연결해서 천국 백성 되게 하신다.

마귀와 하나님과의 뜻이 다르지요. 이 뜻이 다른 두 개의 대조된 것이 잘 나와 있는 성경이 뭐냐? 욥기에요. 욥기에서 운을 먼저 던진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사탄아. 너, 어디 갔다 왔지?” “인간이 사는 세계에 갔다 왔습니다.” 이야기가 그걸로 갔다 왔구나. 알았어. 이러면 끝나는 문제에요. 그런데 네가 욥을 봤느냐, 이래 나왔어요.

욥을 먼저 누가 언급했느냐? 하나님이 먼저 언급했다고요. 욥을 봤느냐? 내가 보기에는 욥은 믿음이 대단하다, 신앙이 대단하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욥에 대해서 언급을 했더니만, 악마가 하는 일은 뭡니까? 하나님의 뜻과 어떻게 돼요? 자꾸 비틀지요. 하나님의 말씀과 비틀며 나갑니다. 사탄이 하나님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욥은 몰라요. 자기를 놓고 하나님과 마귀가 내기했다는 사실을 욥은 끝까지 몰라요.

“욥, 저도 아는 데요.” 악마가 하는 말이, “내가 인간에 대해서는 경상도 말로 내가 빠삭합니다. 내가 인간에 대해서는 화끈하게 다 잡고 있습니다. 욥이 하나님 보시기에 굉장히 신앙이 있고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준 게 많아서 그렇습니다. 건강 줬지요, 재산 줬지요, 자식들 다 잘 되지요. 그만큼 받아 챙겼으면 주신 분에게 감사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하나님. 따라서 욥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보세요. 욥이라도 하나님을 원망할 것입니다. 왜? 내가 인간에 대해서 잘 아니까요.”

악마는 인간에 대해서 너무 잘 알아요. 왜냐하면 인간을 끌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도록 유발한 그 유발자가 악마거든요. 악마가 인간이 선악과 따먹으면 하나님이 내칠 줄 이미 알고 있었던 거예요. 자기는 지옥 가기로 확정됐는데 인간은 천국에서 생명나무 있는 데서 사니까 성질나서 인간을 꼬셔서 나랑 같이 영원히 지옥 가자, 하고 빼돌린 것이 악마기 때문에 악마는 인간에 대해서 너무 잘 압니다.

악마의 주장이 뭐냐 하면 믿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진 게 있기 때문인데 가진 것을 빼앗아보세요. “그래 좋다. 네 마음대로 해봐라.” 그런데 욥이 원망했어요, 원망 안 했어요? 주신 자도 하나님이요, 가져가신 분도 하나님인데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래 했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봤지? 욥이 저 정도야.”

그러면 몸의 건강을 빼앗아보지요. 내가 인간에 대해 잘 아니까. 지금 자식이 죽어도 자식 몸과 내 몸이 다르니까 내 몸 아니니까 죽든 말든. 그리고 재산도 또 벌면 되니까. 자기 몸을 한 번 건드려보지요. 악마가 왜 그러냐 하면 인간의 자아는 어디를 기초하느냐 하면 인간의 몸에 기초하는 겁니다. 몸을 딱 건드렸더니만 어떻게 되었어요? 욥의 입에서 뭐가 나옵니까?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나왔지요.

이걸 여러분들이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은 인간을 천국 백성 되게 하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끊고자 한다. 세 번째, 주님은 □, 뭐하려고 하신 분이냐? 인간을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데, 그것은 창세전에 예수님과 의논해서 자기 백성을 건지는 거예요. 아버지기 주신 자를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살린다 했잖아요. 아버지의 뜻은 자기 백성 된 사람은 놓치지 않아요.

그러면 그거는 하나님이 하시면 되는데 예수님은 이 땅에 왜 왔습니까? 야곱에게 사다리가 왜 온 거예요. 신앙생활 하는데 왕이 왜 필요한 겁니까? 주님은 버릴 자를 철저하게 버리고, 건질 자를 철저하게 건지시는 분. 건질 자를 철저하게 건지시는 이건 누가 합니까? 하나님이 하실 일이죠. 예수님과 창세전에 의논했기 때문에 이 일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 뭐가 빠졌어요? 하나님이 하시는 것 말고 주님이 하시는 게 뭡니까? 버릴 자를 어떻게 한다고요? 철저하게 버리는 거예요. “오지 마! 천국 오지 마. 내 말을 믿지 않는 자는 천국 없어. 지옥이나 가라.” 이 작업을 주님이 철저하게 했어요. 그 철저하게 하기 위해서 이 사다리가 필요합니다. 이 사다리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언약이에요.

야곱은 하나님을 믿어요. 믿지만 지금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믿는다. 너 천국 와, 이래서 되는 게 아니고 야곱이 하나님 믿는 건 인정하는데 야곱이 뭐를 경유해서 올라가야 되느냐 하면 언약을 통해서 경유해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돼요. 언약 치워버리면 그냥 하나님이 인간을 연결해서 구원한 게 돼요.

그런데 언약을 설치하게 되면 여기에 건질 자를 건진다, 이 작업과 더불어 뭡니까? 버릴 자를 철저하게 버린다, 이게 언약이 해요. 야곱이 형이 누구였습니까? 에서지요. 에서는 쌍둥이 형제에요. 보통 어지간하면 너와 너희 집이 구원받는다 해서 하나 구원받으면 전염됐는지 다 천당 가는데 야곱은 어떻게 되느냐? 야곱은 천국 가고, 에서는 어디 갑니까? 지옥 가잖아요.

에서가 지옥 간다는 것은 로마서 9장에 나오지요(13절,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사랑받을 자를 사랑하고, 미움 받을 자는 미움 받는다. 이 작업을 언약을 통해서 하는데 언약이 뭔데 이 작업을 할 수 있느냐?

<흔적>(최유나)이라는 트로트 노래가 있어요. 가사에 이런 게 있습니다. 남자보고 이야기하는 거죠. 절반의 책임도 안 지고 왜 떠나느냐, 이런 내용이 나와요. 절반의 책임이란 뭐냐 하면 애 낳고 남자가 떠났다 이 말이거든요. 이 절반의 책임이 바로 하나님 쪽과 플러스 사람 쪽에서 사람은 이미 버렸어요. 이미 악마가 버렸는데 하나님 쪽과 사람 쪽에서 ‘절반+절반’을 합해서 1이 되는 계약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창세전에 세워버렸어요.

그러면 인간 자리에 누가 가겠습니까? 하나님은 절반의 책임을 진다. 이 인간 자리에 누가 들어가겠습니까? 빨리, 빨리 답변해보세요. 예수님이 들어가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거예요. 이쯤해서 노래 들어봐야 되는데…. 왜 절반의 책임도 안 하고 떠나버리노? 난 어떡하라고? 애 하나 낳았는데 나는 엄마로서 책임지는데 아빠로서 책임져야지. 이게 절반의 책임이에요.

인간이 책임을 못 져요. 마귀와 한 통속인데 뭘 책임집니까? 이 책임지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아버지 앞에 하나님 절반, 나 절반 이게 계약입니다. 옛날 계약할 때 반지 같은 것 해서 나중에 진짜 내 사람인지 맞춰보고 하고 그런 드라마 많지 않습니까. 얼굴 보면 되지 맞추기는 뭘 맞춰. 요새는 편리하게 DNA 검사하고 하는데 증표를 맞추고 하잖아요.

언약이 깨어졌다는 말은 이게 깨어졌다는 말이에요. 증표, 머리띠가 됐던 뭐가 됐던 이게 깨어진 거예요. 하나님은 안 깨어졌는데 어느 쪽에서 깨어졌다? 이스라엘 쪽에서 깨어진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문제 나갑니다. 이스라엘 왕이 하는 일이 뭡니까? 우리가 하나님 믿으면 되지 이스라엘 왕이 왜 필요해요? 왕이 하는 일이 뭐겠습니까? 왕이 하는 일이 언약 자리에 들어가서 왕이 해야 될 사람이 해야 될 절반의 책임자로 왕이 들어가요.

그래서 왕의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면 율법이 기다리고 있는 자리에요. 그게 신명기 17장 18절에 보면,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누구한테 이야기하는 거예요? 일반백성한테 이야기한 거예요, 서민한테 이야기한 거예요? 아니에요. 왕에게.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다윗 때가 되게 되면 하나님과 다윗과 일대 일로 언약을 맺어요. 다윗이 원했던 겁니까? 밤중에 사다리 내려온 게 야곱이 원했던 거예요? 야곱이 돌 베고 잠자고 있는데 이쯤해서 사다리 내려와야 될 텐데, 이랬습니까? 야곱은 그냥 하나님 믿어요. 그걸로 자기는 오케이 여긴 거예요. 오늘날 보통 교인들과 똑같아요. “저 하나님 믿습니다, 믿습니다.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 헌금도 하고 예배참석하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이러고 있단 말이죠.

그러면 믿는다는 그 인간은 이 절반의 책임을 질 수 있어요? 절반의 책임 질 수 있냐고 물으면 나는 언약 같은 건 모르고 그냥 하나님 믿어, 이러고 있다고요. “성경 봤어?” “나는 성경 보면 잠 오니까 안 봤어.” 보면 잠 온데. 구약이 뭔지 몰라요. 그냥 하나님 믿어요. 신약? 신약도 몰라요. 아이 키우고 돈 번다고 성경 볼 시간이 없다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해야 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겁니다. 이번에 수련회 창세기 했지요. 어떤 분이 몹시 아팠다 하는데 창세기가 뭐냐 하면 이거에요. ‘없음의 세계를 있음이 방해한다.’ 이게 창세기입니다. 없는 데서 인간 나름대로 노니까 그 인간이 무슨 세계를 지금 모독하고 있어요? 애초부터 없음의 세계를 모독해요. 이게 창세기에요.

이 세상에 뭔가 물질로 등장했다는 것은 없음의 훼방질, 방해질하는 그러한 존재로 움직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누구냐 하면 마귀죠. 마귀가 피조물이잖아요. 천사잖아요. 만들어놨는데 마귀가 하나님 일에 훼방질하죠. 그래서 천국을 만드는 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어떤 있음도 천국 만드는 데 기여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천국에 인간이 살 수 있다면 그거는 없음의 세계를 만드신 하나님의 자기희생으로 그 있음의 존재, 인간이 저지른 모든 죄를 대신 해소했기 때문에 성립이 되는 거예요. ‘그 죄를 씻었다, 안 씻었다’를 뭘 보고 확정할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되겠지요. 진짜 내 죄는 씻어졌다고 하는 것도 내가 그냥 억지 부리는 거고, 안 씻어줬는데 씻어줬다고 우기면 나중에 심판 받을 때 나 씻었는데 하다가 나가, 해서 지옥으로 떨어질 수가 있어요.

진짜, 아주 진짜로 씻어줬는지 씻어줬다고 자기가 억지를 부리면서 고집을 부리는지 그거는 뭐로 아느냐? 사도행전 20장 28절,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했다, 교회를 구입한 근거가 뭡니까? 피, 무슨 피요? 여기서 하나님의 피.

여기 예수님의 피가 아니고 하나님의 피에요. 벌써 예수님은 하나님이라고 기정사실화하신 거예요. 예수님의 피가 어쨌다고? 그 피가 내 죄를 없애줬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그냥 말로만 억지를 부려서 죄 사함 받았다가 아니라 진짜로 우리가 할 수 없는 절반의 책임을 예수님이 대신 치렀다는 사실을 그 피를 보고 알아요.

주께서 피 흘리고 난 뒤에 다 이루었다고 했잖아요. 물 위를 걸어놓고 다 이루었다 했습니까? 부활하고 난 뒤에 다 이루었다고 하지 않았지요. 오병이어하면서 다 이루었다 하지 않았지요. 앉은뱅이 걷게 했을 때 다 이루었다 하지 않고, 죽은 자를 살릴 때 다 이루었다 하지 않았어요. 다 이루었다 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맺은 약속, 예수님 자기 자신의 일에 대해서 아버지만 아는 인간은 모르는, 인간은 그 근처에 올 수도 없는, 인간은 거기에 거들 수도 없는 일, 홀로 하실 일, 피 흘림을 다 이룬 거예요. 그 피 흘림을.

그걸 성령을 통해서 사도들을 통해서 전파하라 했던 겁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가, 다른 말로 하면 십자가가 네 눈앞에 보이거늘 누가 너로 하여금 미혹하더냐? 마귀는 이 인간을 알기 때문에 끝까지 뭡니까? 끝까지 인간보고 자꾸 정신 쥐고 압박을 가해요. 이것 해야지 저것 해야지 이렇게 마음잡아야지. 마귀가 이야기합니다. “마귀를 주의하라!” 마귀가 이야기해요. “사탄과 싸워라.”

왜? 마귀는 말씀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마귀가 예수님 시험할 때 말씀 들고 시험한 것 여러분 아시죠. 시편 92편인가 떨어지면 천사가 받는다는 그 이야기. 시편 91편 11절, 12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마귀가 말씀을 이용한다고요. 마귀가 인간의 정신을 갖고 논다고요, 이렇게.

여러분들 뽀빠이 만화 알지요. 거기에 덩치 크고 얼굴 네모나고 우아한 부르투스인가 나오지요. 여리여리한 여인 올리브의 어딜 잡고 흔들든가요? 가느다란 목을 잡고 나한테 시집오라고 흔들잖아요. 그때 올리브가 뭐라고 외칩니까? “뽀빠이, 살려줘요!” 딴따라단따 시금치 먹고 오잖아요.

지금 그 장면 보세요. 부르투스가 올리브의 목을 쥐고 앞뒤 위아래로 흔들면 인간은 정신 하나도 없습니다. 정신이 없는 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내 인생에 내 생활 왜 이런지 모르겠다, 이런 거요. “내 인생 요즘 왜 이리 꼬이는지 모르겠다.” 이게 흔들어대거든요. “도대체 뭘 해야 돼? 금식을 할까, 헌금을 할까, 전도를 할까, 성경을 볼까,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할까?” 이런다고요.

사탄이 욥을 쥐고 흔들도록 하나님이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욥은 계속 원망 쏟아내는데 그 욥과 하나님 사이에 누가 있어요? 사탄이 있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탄으로 하여금 욥을 시험하게 해서 욥의 고백이, 인간이 마지막 나올 수 있는 고백으로 하나님께선 정해버렸어요. 뭐냐 하면 모르겠다는 거예요.

만약이 여러분들이 모태신앙, 태어날 때부터 세례 받아서 한 살 때부터 하나님 믿었다 칩시다. 그리고 나이가 오십 됐다 칩시다. 오십 년 동안 진짜 무탈하고 꾸준하게 교회 나오면서 말씀에 대해서 별 의심도 없다고 칩시다. 그런데 오십 중반 쯤 해서 갱년기 들어가서 갑자기 “아이고, 나 요새 인생 뭐 때문에 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또는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겠다.” 이런 것, “신앙생활 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 게 신앙생활인지 모르겠다.”

방금 세 개 이야기했지요. 끝에 뭐가 나왔어요? ‘모르겠다.’ 이거는 이미 우리의 선배 된 욥이 고백한 거예요. 바르게 살아봤고, 어려운 사람 도와 봤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자식들 위해 기도 다 해봤는데 지금 내 꼬락서니 내 모습에 대해서 나는 뭐 하나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 나는 모르겠다. 정말 하나님 살아계시면 따지고 싶다. 왜 나한테 이러는지.

하나님께서는 그 욥을 예수님이 십자가 지는 시련 안에 욥의 요소를 집어넣어요. 왜냐하면 욥이 예언자기 때문에. 욥에 주어졌던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으로 계시가 되어 성경책이 됐잖아요. 욥기라는 그 계시, 예언이 십자가 안에 들어가 버려요. 들어가면 그것이 뭐냐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 지기 직전에 겟세마네 기도에서 갈등요인이 돼요. “하나님이여,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이 지나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인간들아 그것 어렵나? 난 죽어도 부활해.” 지금 이렇게 으스대지 않아요. 죄 있는 인간이 죄 때문에 겪어야 될 모든 것을 끝까지 그 끝을 향하여 주님은 인간의 체험을 다 경험합니다. 왜? 뭐 때문에? 절반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계약은 누구와 계약? 아버지와 아들의 계약으로 모든 일은 시마이, 끝나는 겁니다. 그 예수님의 역할을 오시기 전에 담당해야 될 자가 누구냐? 바로 구약의 요담 같은, 또는 아하스 같은, 히스기야 같은 누구냐? 바로 다윗 혈통의, 다윗의 등불 하에 있는 다위 혈통의 유다 왕들의 역할이 그거에요.

그렇다면 우리가 역대하를 하면 그 유다 왕들, 북쪽 이스라엘 왕, 많은 왕들이 등장했잖아요. 여러분들이 강의를 들어보면 왕들이 예수님처럼 왕다운 왕 노릇을 했습니까? 율법대로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안 했지요. 이 점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그 왕들에게 어떻게 원망하실 거예요, 어떻게 할 거예요? 의견을 이야기해보세요. 원망할 작정입니까? 이 점에 대해서.

왕이나 됐으면 그렇게 하나님이 도와줬으면 왕 노릇 제대로 하지, 그게 뭐야 그게. 왕이 앞장서서 바알 섬기고. 여기 요담도 마찬가지에요. 역대하 27장 하지만 그 똑같은 내용이 열왕기하 15장에 나옵니다. 오늘 본문 아까 읽었던 역대하 27장 2절에 보면, “요담이 그 부친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오히려 사악을 행하였더라” 이게 무슨 말이에요? 사악을 행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 자기 부친 웃시야의 행위대로.

웃시야는 뭘 했느냐 하면 역대하 26장 16절 보게 되면, 웃시야 왕이 요담의 아버지입니다.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아니 자기가 왕이잖아요. 그리고 그 나라에 있는 모든 시설이나 어떤 집이나 기관은 왕이니까 통치자니까 들어갈 수 있어요, 없어요? 들어갈 수 있지요.

우리나라 헌법에 보면 삼권분립이라 돼 있지요. 삼권분립이 뭡니까? 대통령, 국회의장, 그리고 대법원장 이게 균형을 맞춰야 된다 하지요. 그래서 대법원장이 대법원 자리를 위해서 왕이 허가해 달라고 하니까 대통령이 안 된다 하는 거예요. 그게 삼권분립이에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돼요? 대통령이 아니고 뭐가 돼요? 삼권분립이 아니고 셋 중에서 고수가 되죠. 왕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웃시야 밑에 뭐가 있느냐 하면 제사장이 있어요. 왕 밑에 제사장이 있다고요. 그런데 제사장이 성전에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웃시야 때에 나라가 강성했어요. 나라가 강하니까 자기는 하나님께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훌륭한 사람이라고 간주했기 때문에 이 훌륭한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해도 하나님께선 거기에 대해서는 탓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어딜 들어갔습니까? 성전에 들어간 거예요. 자기 나라니까 들어갈 수 있잖아요. 제사장이 말렸어요.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제사장이 뭘 근거해서 안 된다는 거예요? 답변해보세요. 왕은 들어가겠다, 제사장은 안 된다. 근거가 뭡니까? 뭐 때문에 그런 거예요? 율법 때문에 그런 거예요.

아까 신명기 17장 18절에 했지요. 왕이 세요, 율법이 세요? 율법이 더 세잖아요. 그러면 왕 밑의 제사장은 왕을 믿습니까, 율법을 믿어야 돼요? 율법을 믿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나라는 뭡니까? 우리나라는 율법 자리에 뭐가 있어요? 헌법이 있지요. 헌법 밑에 삼권분립이 있잖아요. 권한을 한쪽에 몰아넣지 않고 분리시키는 것.

들어가면 안 됩니까, 한 거예요. 그러니까 웃기네. 너 죽을래, 이래서 들어갔어요. 분향을 했습니다. “도대체 제사장이 뭔데 그렇게 위세를 떨어. 내가 해볼게, 내가. 나, 왕이니까.” 했어요. 역대하 26장 19절에,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누가 노를 발해요?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하니까 이게 어디다대고 지시야. 네가 높아, 내가 높아? 화를 냈잖아요. “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살아 있네. 이스라엘에 누가 살아 있어요? 하나님이 살아계신 거예요. ‘살아 있네’를 오늘날 성도가 순환하면서 늘 수시로 이걸 느껴야 돼요. 그러니까 웃시야가 문둥병 걸린 것이 복입니까, 저주입니까? 둘 중에 하나인데. 복이죠, 복. 이게 복이죠. 왜? 뭘 느꼈기 때문에? 살아 있지요. 하나님의 율법이 살아 있고, 말씀이 살아 있고, 십자가가 살아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만이 일하십니다. 우리는 손을 떼세요. 그럼 우리 일은 뭡니까? 우리는 죄를 짓는 일만 하시면 돼요. 죄 지으라 해도 그 편한 것도 움찔하고 있다고요. 왜 인간은 죄 지으라 해도 그러면 안 되는데, 왜 그렇게 합니까?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어쨌든 간에 나를 착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악할 때 찾아오는 재앙을 미리 내가 선점해서 이걸 예방 조치하려고 하는 거예요.

평소에 새벽기도 나오지 않다가 수능 백일도 안 남았잖아요. 갑자기 안 나오던 새벽기도 나오고 왜 이럽니까? 예방 조치하는 거예요. 내가 룰루랄라 죄만 짓다가 그 죄 값이 고스란히 우리 아들한테 쓰여 버리고요. 문제 정답을 내려써서 1등급이 7등급으로 떨어져서 의대 가려고 했는데 의대는커녕 점수가 형편없어 갈 학교가 없다, 이러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돼요? 그 절반의 책임을 누가 져요? 본인이 지려하잖아요. 이게 마귀가 원했던 거잖아요.

절반의 책임은 누가 집니까? 주님이 다 이루었어요. 책임졌어요. 그럼 절반의 책임은? 아버지가 아들을 내버려둘 때. 그게 로마서에 나오거든요. 참 하나님 아버지도 마음먹고 일했어요.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제단에 번제로 드릴 때 그 심정이 아버지 심정이잖아요. 여기 로마서 8장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31, 32절) 자기 아들, 그다음에 나오는 부사가 뭡니까, 자기 아들을 어떻게 한다고요?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그 은사 중에 딸려 나온 게 뭡니까? 문둥병이에요. 그러니까 유다나라의 왕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 우리는 막 답답해.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승리케 하고 많은 선지자들을 해서 했는데 아까 웃시야 보면 어떻게 됐습니까? 모든 게 잘 풀렸거든요. 신앙도 좋았다고 평하고. 아까 역대하 26장에 보니까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어떻게 되고요? 교만하여, 그다음에 악을 행하고.

그러니까 유다의 어떤 왕도 다윗 혈통의 어떤 왕도 모든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그러한 책임자였다, 아니었다? 아니었다. 똑같이 예수 믿는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서 바르게 사는 이것이 우리를 구원받게 한다, 못한다? 못한다. 그러니까 구약에 나타난 왕들의 행위가 오늘날 우리의 행위와 똑같아요.

가정이 좀 편안하고 남편이 돈 잘 벌고 무탈할 때 이게 어느 정도로 교만하고 어느 정도로 악한지를 우리가 감을 못 잡고 있어요. 성경 보기는 왜 봐요. 만사형통한데. 보면 잠 오는데 뭐하려고 억지로 봐요. 모든 게 아무 문제없고 무탈한데 왜 성경을 보냐고요. 답답해야 보는 것 아닙니까? 아무 탈이 없는데 성경을 왜 봐요.

따라서 여기에 27장, 요담이 정직히 행하였으나, 영어로 하면 ‘but’ ‘그러나’ 할 때 “아이고, 또 이거 메시아 아니구나. 오실 메시아가 이 사람들이 아니구나.” “백성은 오히려 사악을 행하였더라”(2절) 이 사악이 뭐냐 하는 거예요. 이 사악이 열왕기하 15장에 나옵니다. 34절에, “요담이 그 부친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요담 본인은 산당에 안 갔는데요. 백성이 갔지 왕은 안 갔는데요.” 여러분, 이래 이야기하고 싶지요. 이 말은 뭐냐 하면 장차오실 예수님이 진짜 왕이라면 죄 짓는 건 모르겠고 나만 아버지 앞에 구원받으면 된다, 이런 왕이십니까? 아니에요.

자기 백성이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이미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잊어버릴까, 그걸 놓칠까, 그런 것을 기억하지 못할까 그래서 교만하고 자만하고 나 어때, 하고 자기 자랑할까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영을 보내서 주께서 수시로 사건, 사태 일으키고 고민거리 만들어서 구원받는 것은, 내가 바르게 살아서 절반의 책임을 지는 게 아니고 주께서 이미 자신의 피로써 모든 천국 백성 됨을 해소했다는 것을 고마움과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도록 수시로 순회하면서 우리의 인생에 관여합니다.

너한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예수님 내가 일부러 일으킨 일이라는 것을 사태 터지고 난 뒤에 주께서 이 땅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합니다. 10분 쉽시다.

20260904b 울산강의-역대기하(24강) 27장 2절 : 절반+절반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해봅시다. 아까 쉬는 시간에 뭐 있었지요. 최유나의 <흔적>이라는 노래 가사를 찾아봤습니다.

이제는 가도 되는 건가요 어두워진 거리로
오늘만은 왠지 당신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아요
어차피 내가 만든 과거 속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절반의 책임마저 당신은 모르겠지요
지나간 날을 추억이라며 당신이 미소 지을 때
기억해요 슬픈 여자 마음에 상처뿐인 흔적

하나님 믿으면 되지 사다리가 왜 필요하냐 하는데 야곱에게 이제 왜 필요한지 아시겠지요. 하나님 믿는 게 나한테 의가 되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하나님 믿잖아요. 이게 마귀가 뒤에 부추긴 거예요. 네가 믿는 믿음은 안 받아줍니다. 아까 가사 내용을 내가 풀이해줬는데 그 떠나는 남자가 뭐라고 하던가요? 다 지나간 과거라고 미소 띠울 때 당신 알아? 내 안에 상처뿐인 흔적을. 그래서 노래 제목이 <흔적>이잖아요.

주님의 상처가 뭡니까? 십자가죠.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6장에서 마지막에 나한테 주님의 뭐가 있다? 십자가의 흔적, 상처가 있는 거예요. 성도는 다 상처가 있어요. 성령께서 그 상처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상처 때문에 구원받았음을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에게 통보해주는 역할을 성령께서 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왜 늘 교만합니까?

두 번째 시간하면서 질문을 이렇게 해야 돼요. 역대하 27장에 보면 요담도 자기로서는 잘했다고 볼 수 있는데 백성들마저 왕 수하의 백성들 전부가 여호와를 섬겨야지 왕은 뭐 지가 믿음 좋다고 섬기고 백성들은 산당에 가서 바알 섬기고, 그러면 되겠느냐? 우리가 그렇게 왕한테 비난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여러분들의 가정이나 식구 보세요. 나 믿음 있다고 아내, 남편이 따라오던가요. 자기 몸도 간수 못한 주제에 백성들까지 자기 신앙이 전달될 수 있습니까? 전달되지 않지요.

그래서 이렇게 보셔야 돼요. 요담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정직하게 행했다는 이 대목 있잖아요. 이 대목을 이게 웬일이야. 그런 일이 왜 생기지, 이렇게 반문해야 돼요. 너도 다른 왕들처럼 앗싸리 망해버리지 너는 왜 하나님 섬기는 마음이 왜 생기지? 이상하네. 하나님 안 섬겨도 왕 할 수 있는데 하나님 왜 섬기지? 오히려 그걸 의아해 해야 되고 귀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게 바로 다윗의 등불이에요.

하나님과 다윗이 맺었던 그 언약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맺은 언약에 앞당겨서 맺은 언약이잖아요. 그래서 그 언약을 다시 써보겠어요. 마귀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단절시켰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고자 한다. 세 번째, 주님은 뭐 한다 했습니까? 주님은 버릴 자를 철저하게 버리고, 건질 자를 오류 없이 실패 없이 건진다. 왜? 아무리 지옥으로 내빼도 반드시 끌고 오는 거예요. 실패 없이 건진다.

실패 없이 건지는 그 원칙이 뭐냐 하면 이거에요. ‘너의 판단과 행동이 최종적이 아니다.’ 후회는 하되 좌절하지 마라. 네가 그때 왜 그런 행동을 했고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해도 최종적이 아니에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잖아요. 그래서 베드로 아웃 됐습니까? 나가리 됐어요? 끝까지 찾아오잖아요. 내가 너를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한다.

그러나 단 하나는 아니라는 것, 그게 누구에요? 가룟 유다. 열두 제자들에게 내가 너를 끝까지 사랑한다. 요한복음에 나와요. 끝까지 사랑하지만 하나는 아니라고 했거든요. 13장 1절,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그래놓고 마귀가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그런 이야기 나오거든요.

그러면 우리보고 너의 판단과 너의 행동이 최종적이 아니다. 그럼 최종적이 뭐냐? 이거에요. 피입니다. 예수님이 흘린 피가 죄 사함을 위한 피에요. 이게 모세언약에 의한 피입니다. 히브리서 7장, 8장, 9장, 10장에 의하면 벌써 모세언약까지 들어가면 골치 아프지요. 여러분 참으셔야 돼요. 다윗언약에 오기까지 이전에 무슨 언약? 모세언약이 있었다고요.

모세언약에 의하면 제물이 흘린 피를 제단에 바르면, 그리고 사람에게 바르면 그게 뭐가 된다? 거룩이 돼요. 하나님이 받을만한 존재가 돼요. 그릇에 피 바르면 하나님께서 쓰시는 제구의 역할을 주께서 인정하시는 제사기구가 돼요. 그래서 피 흘림이 없은즉 뭐가 없다? 사함이 없다고 했어요. 없다는 부정어를 다시 고르게 하면 뭡니까? 피만 있으면 그 어떤 경우라고 거룩함이 되는 거예요. 어느 종교에 이런 게 있습니까?

모세언약에 이게 이미 나온다 이 말이죠. 모세언약의 원칙을 누가 인수인계 받느냐 하면 다윗과 그 후손이 인수인계 받아야 돼요. 그러면 너의 판단과 행동이 최종적이 아니라는 이걸 한꺼번에 묶어서 뭐 앞에 세우느냐? 예수님의 피 앞에 세우게 되면 이거는 뭐가 되느냐 하면 인간의 판단과 행위는 그 앞에 죄가 되는 거예요.

자, 이 점을 솔로몬은 어떻게 보았는가? 열왕기상 8장 46절, 우리 다 같이 찾아봅시다.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됐습니다. 여기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어요, 없다고 했어요? 없다고 했지요. 여기서 놀라운 언약의 효과가 있습니다. 범죄 했으면 어떻게 해요? 입 다물고 고스란히 저주받고 지옥 가야지요.

그런데 범죄 했습니다, 하고 어디를 향하여 기도하느냐 하면 열왕기상에 보면 솔로몬이 뭘 만들어놨어요? 성전을 만들었지요. 죄 짓고 죄 없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다음에 뭘 보느냐 하면, “그래 포기하자. 나 끝났어.”가 아니라 뭘 보는 거예요? 성전을 보는 거예요. 그럼 성전은 죄를 씻어주는 장치, 제도가 성전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십육 년 동안 지은 성전을 보시고 거기서 비둘기 팔고 동전 바꿔주는 사람들 쫓아냈잖아요. 요한복음 2장에서. 그리고 예수님이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이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다. 이렇게 더럽게 했다고 하면서 그다음에 뭐하느냐 하면 사십육 년 동안 지은 이 성전을 헐어버려라. 내가 사흘 만에 짓겠다. 이틀도 아니고 나흘도 아니에요. 삼 일만에 짓겠다고 했어요.

그때 제자들이 사십육 년 동안 지어도 완공을 못하고 있는 성전을 헐어버리고 이 자리에 삼 일만에 성전을 짓겠다? 그 말을 제자들은 납득을 못했어요. 그런데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이렇게 돼 있어요. 그들이 예수님이 부활하고 난 뒤에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겁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22절)

처음에 베드로는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라 해서 고기를 많이 잡았을 때에 베드로가 뭐라고 했느냐 하면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내가 죄인입니다(눅5:8), 하고 떠나라 했어요. 왜? 주님은 레벨이 다르기 때문에 나와 상종할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그 주님께서 고기 잡을 때 나중에 부활하고 난 뒤에 또 다시 베드로 고기 잡는데 찾아왔어요. 이거는 뭐냐 하면 네가 성전을 붙드는 게 아니고 성전 되시는 분이 베드로의 모든 죄를 이미 다 끝냈다, 종결했다, The End 그걸 끝났다는 사랑으로 듬뿍 선물을 가지고 베드로에게 찾아온 거예요.

지금 구약은 뭐냐 하면 성전 지어놓고 죄 안 진 사람이 없사오니 죄 지을 때마다 어디를 향하여 기도한다? 건물 된 성전보고 기도하면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 했어요. 그럼 건물 된 성전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까? 반복적으로 희생제물을 희생해서 불에 태우고 피를 바르고 하는 일을 반복했지요. 그 반복된 일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온전하게 거룩하게 되었습니까? 솔로몬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솔로몬 이후의 왕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북쪽 이스라엘은 성전 자체를 부정해버렸어요. 희한하게 요담은 뭡니까? 요담은 성전의 가치와 의미를 살렸지요. 자기가 왕이면서도 모든 걸 터치할 수 있는데 뭐는 터치해서는 안 된다? 성전만큼은 터치해선 안 된다. 고 정도까지는 요담이 했어요. 그러니까 요담은 어때요? 상당히 어떤 사람입니까? 신기한 사람이죠.

어떻게 왕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최고임에도 불구하고 성전 앞에서 자기를 낮췄다는 말은 성전에서 일어나는 일 앞에서 나는 뭐가 된다? 왕이지만 죄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거예요. 교인들이 교회 나오는 것도 자기 죄를 인정했다는 겁니다. 이거는 신기한 일이에요. 이거는 성질이 좋아서 마음씨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발길을 인도해서 그런 거예요.

그다음에 시편 봅시다. 이거는 다른 분이 크게 읽어보세요. 시편 143편 2절,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아멘. 됐습니다. 지금 여러분, 시편 143편 2절의 이 말씀이 앞뒤가 맞다고 생각합니까, 안 맞다고 생각합니까?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그다음에 뭐라고 돼 있어요?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이게 선악 체계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말이 안 맞아요. 착하면 상 받고, 악하면 벌 받고 이게 선악 체계에 부합되잖아요.

그런데 언약이 있는 사람은 주여, 저한데 뭐라고 했습니까? 형벌을 저한테 심판을 행하지 마옵소서. 왜? 제가 워낙 죄인이라. 이거는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이 성전 앞에 인간이 나올 때 무슨 마음가짐을 원하는지를 간파했기 때문에 그래요. 주님 앞에 나올 때. 천하의 죄인이라고 나오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효과입니다. 내가 천하의 죄인인 것도 효과고, 그런데 죄라고 낙담하고 나 몰라. 이제 내 마음대로 살 거야, 이게 아니고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는 이 능력은 오직 주님에게만 나오는 능력입니다, 이런 뜻이에요.

이 모순, 도대체 이거는 이미 인간은 선악을 알고 있는 입장이잖아요. 이런 인간의 입장을 능가하는 다른 힘이 작동하고 있다는 거예요. “맞아, 맞아. 벌 받는 것 맞아. 내 하는 행동 보면 우리 애 석 달 뒤에 수능 치는데 날아가도 할 수 없지. 내가 하나님을 믿은 적이 있어야지.” 그러고 말 건데 그러니까 십자가, 이거 뭐예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막 되게 행동한 것과 애가 수능을 앞두고 있는 것도 다 누구의 활동 안에 있다? 주님의 활동 중의 일부입니다. 내 일은 없고 모조리 누구 일이다? 주의 일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이야기합니다. 네 자, ‘살아 있네’ 한 번 더하면 살아 있네, 살아 있어. 주께서 살아계셔요. 어떻게? 언약으로. 어떻게? 버릴 자를 철저하게 버리는 거예요. 천국 가겠다고 교회 나와도 버려버려요. 너는 내 사람 아니다. 그리고 내빼도 철저하게 천국으로 이끄십니다. 그게 절반의 책임을 지는 거예요. 최유나의 <흔적> 듣기, 말기? 1절 가사라도 들어보세요. 거기에 언약이 담겨있어요.

자, 그다음의 문제에요. 성경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방금 제가. 그런데 여러분이 마귀라고 칩시다. 아까 마귀가 할 일이 있다고 했지요. 마귀가 할 일이 없는 게 아니에요. 팡팡 노는 게 아니에요. 마귀는 뭐냐? 자기 사람을 데려가는 데 굉장히 열과 성의를 다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하는 일이 뭐라고 했어요? 이미 하나님과 관계가 맺어졌더라고 그 관계를 시비 걸어서라도 끊어버리려고 했지요.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한 것, 여러분 아시죠. 겁나서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을 건드리느냐. 다른 사람은 겁나서 못하지만 마귀는 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런 단서를 붙이면서 if 가정법으로 네가 만약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렇게. 아닌데 한다면 돌이 떡 되게 하라. 이게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에요. 네가 성도라며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았다며, ‘네가 성도라면’ 이래서 마귀가 찾아오지요.

여러분들이 마귀라면 어떤 식으로 우리 자신을 흔들어대겠습니까? 마귀가 성도를 흔들고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행위입니다. 또는 행동에 시비 건다. 이 행동에 시비 걸 때 악마가 시험걸 때 이렇게 대처하세요, 라고 지침서를 사도 바울이 준 적이 있어요. 그 지침서가 뭐냐 하면 로마서 7장에 나옵니다. 그 매뉴얼에 보면 이렇게 돼 있어요.

내가 악을 행한 것이 아니다. 마귀야 내가 악한 짓한 게 아니야. 누가 했는데? 내 속의 죄니라(17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 매뉴얼에 의하면 사도 바울이 자기를 두 조각냈어요. 절반의 책임인가? 이게 재미있는 게 뭐냐 하면, 이게 재미있는 건지 중요한 건지 모르겠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이면서도 사람이시잖아요. 예수님이 어떻게 보면 하나님과 사람 양면성이 있다는 말이 두 개의 조각을 합쳤다고 볼 수 있지요.

예수님의 족보 원형이 나옵니다. 히브리서 7장에 나와요. 예수님은 누구의 족보를 받느냐 하면 바로 멜기세덱의 족보를 따르지요. 멜기세덱은 사람입니다. 살렘의 왕입니다. 예루살렘의 왕이고 제사장이었어요. 그런데 히브리서 7장에 보면 그분은 어떠냐 하면 족보도 없고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마치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 동격이다,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왜 예수님의 족보에 대해서 멜기세덱을 거론하느냐 하면 인간의 지상의 족보는 DNA를 따라요.

멜기세덱과 예수님은 언약과 연결돼 있는 반면에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인간의 DNA 혈통과 연결돼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마리아 몸에서 태어난 건 맞는데 육으로 태어난 것 맞아요. 예수님의 아버지가 누굽니까? 예수님께는 아버지가 없어요. 누가복음 2장에 보면 대명절 유월절에 요셉과 엄마와 같이 거기 참석했는데 예수님을 잃어버렸어요.

문제 나갑니다. 요셉 가정이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까, 예수님이 알아서 아버지 가정을 떠나서 성전에 갔습니까? 어느 쪽입니까? 예수님은 거기서 아버지를 떠나서 아버지한테 갔어요.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내가 아버지와 함께 있을 줄 몰랐습니까, 아버지여.” 이게 무슨 말이에요? 그래서 지난 오후설교 제목이 뭐냐 하면 신원조회가 불가하지요.

그런데 예수님만 신원조회가 불가한 아니에요. 성도도 신원조회가 안 돼요. 왜? 성도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니까. 그리고 모든 주민등록은 어디 가 있어요? 이미 하늘나라에 있어요. 그 말은 이 땅에서 신원조회가 안 되는 이유가, 성도는 이 땅에서 죽은 자에요.

그래서 사도 바울을 내 속의 죄니라, 이 말은 나는 이미 살려고 하는 존재가 아니고 어쨌든 간에 이 땅을 떠나는 빨리 육신에서, 자기 육신을 거적때기로 보는 거예요. 뭐 입고 뭐 가렵고 온 몸이 속도 안 좋고 나이 육십, 칠십 넘어가면 팔도 안 올라가고 지금 마스크 하고 계시고. 거적때기 몸 좀 벗으면 안 됩니까? 육에서 난 것은 육이잖아요.

사도 바울의 소망이 그거였어요. 거적때기 옷이거든요. 이 옷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의 부활로 짠 옷이 있어요. 주의 영광으로 우리가 변화된다 했습니다. 이번에 수련회 할 때 고린도후서 3장 18절인가(“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우리 주의 부활한 영광을.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활 눈부시게 영광 할 때 이걸 남의 일로 보면 안 됩니다. 이게 누구의 영광이냐 하면 곧 우리 영광이에요. 우리 영광을 앞당겨서 보여준 거예요.

자꾸 육이 살려고 하니까 날파리가, 요새는 날파리가 좀 없다마는. 얼마 전까지 운동할 때 날파리가 부채로도 안 되고. 그래서 내가 운동할 때 뭐냐? 양봉하는 사람들 덮어쓰는 망 있잖아요. 그것 덮어쓰면 앞에 약을 올리게 돼요. 가까이 와봐, 와봐. 망 쓰면 완전히 예수 안에 있는 기분 드는데.

이미 죽은 자기 때문에 죽은 자는 산다가 성립이 안 돼요. 죽은 자인데 무슨 산다가 돼요? 나는 죽고 내 안에서 한 분이 살아야 돼요. 누굽니까? 예수님이 사는 식으로 우리가 거적때기로 그 나라 가는 거예요. 우리의 정체를 속이고. 빨리 거적때기 벗어버리고 부활한 영광의 모습으로 달라지는 겁니다.

그러면 또 고린도전서 15장에 우리의 원수를 뭐라고 하느냐? 우리의 원수는 사망. 사망이 자꾸 우리를 건드려요. “너 그래선 못 산데이. 너 암 걸려서 젊은 나이에 죽는데이.” 계속해서 우리의 자아를 건드리고 있어요. 칠십 되어 죽으나 삼십 되어 죽으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걸 마찬가지가 아니고 아니야, 아니야. 애 아직 시집도 안 보냈어, 이러고 버티고 있는 것은 우리의 자아지요. 그러면 시집보내려면 어떻게 하느냐 하면 내가 바르게 살아야지. 이래 나오는 거예요. 자꾸 이런 식으로 마귀한테 말려드는 겁니다.

이스라엘 왕도 그렇게 모세도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왕이 자꾸 시험에 빠지는 이유가 있어요. 크게 써야 돼. 원래 정치상황과 관련돼 있습니다. 누구든지 권력 잡으면 본성 나옵니다. 그래서 옛날 남자들이 이걸 알아서 초장에 자기 마누라 잡겠다고 하다가 오히려 잡히는 경우가 있잖아요. 누구든지 권력을 잡으면 본성이 나와요. 왕 되기 전까지 그렇게 겸손했어요. 누가? 사울 왕이. 사울이 왕이 되고 난 뒤에 인간의 숨어있는 죄의 그 본성은 이런 거다, 하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겁니다.

반대로 분명히 왕으로 추앙이 되도 왕이 되지 않겠다고 거절한 사람이 있어요. 구약에 나와요. 누굴까요? 사사기 8장 22절,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그다음에 희한한 일이에요. 예, 이러면 되잖아요. 그게 아니고,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23절)

여러분들이 신앙인이면 개나 소나 다 하는 줄 알지만 막상 여러분들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봅시다. 대통령까진 아니더라도 여러분들의 대통령의 부인이 되었다. 그 정도까진 너무 멉니까? 그럼 가까운 것 봅시다. 남편이 목사가 되었다. 그런데 다른 교인들이 뭐냐? 사모, 사모라고 하더라. 갑자기 뭡니까? 그 사모님 되신 분은 어떻게 돼요? 갑자기 권력을 느끼기 시작하는 거예요. 권사들 잡자, 이런 거. 그리고 부교역자들 사모 다 잡자. 부교역자 사모들 다 군기 잡아야 돼. 우리 남편한테 어떠한 해코지도 오지 않도록 당신들이 전위부대가 되어 다 커버를 해야 돼.

남편이 장로가 되었다면 교회는 누구와 의논합니까? 보통 큰 교회에서 목사가 장로와 의논하게 돼 있다. 당회에서 결정했잖아요. 그런데 다음 날 되면 다 뒤집어져요. 왜냐하면 목사 부인이 있고 장로 부인들이 있어요. 남편한테 압력 넣어 교회 일 다 뒤집어집니다. 교회정치는 권사들이 하지요. 이게 숨어있는 인간의 힘이에요. 최측근이 갖는 막강한 힘.

그래서 이제부터 남은 시간 동안 어려운 것 들어갑니다. 어떤 어려운 걸 해야 되느냐 하면 모세언약이 어떻게 다윗언약으로 전환되면서 이스라엘 왕들은 다윗언약에 속하면서도 그 뿌리는 모세언약을 인수인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애굽에서 백성들과 나오고 난 뒤에서 모세가 도중에 나 하나님께 간다. 알아서 잘하세요, 하고 빠이빠이 했습니까? 아니면 가나안 땅 앞두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 모세가 백성들을 떠나지 않고 자기 할 일 다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다 했지요.

모세가 여러 번 이야기했어요. 하나님, 저 백성 나 모르겠습니다. 그냥 날 죽이소서. 내가 어떻게 저 백성들 마음대로 합니까, 하고 불평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로 하여금 원망을 하든 따르든 간에 어쨌든 간에 그들에게는 우리의 지도자는 누구밖에 없다? 모세밖에 없다는 쪽으로 끝까지 따라왔어요. 그 험한 광야를. 그런데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모세를 약속의 땅에 들여보내지 않습니다. 그게 안 찾아봐도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신명기 34장 7절에 보면 잘 나와 있어요.

모세는 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않는가? 몸이 육신이 약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근데 신명기 34장 7절에 보면,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건강상 물러갈 때가 안 됐는데, 이 정도 기력 같으면 같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도 있는데. 신명기 32장 49절에서 52절에 보면, 네가 느보 산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여기서 너는 죽는다. 죽고 약속의 땅에는 네가 들어가지 못한다, 이렇게 했습니다.

뜸 들이지 않고 바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왜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않았는가? 그것은 바로 모세언약이 모세를 대신해서 들어간다. 모세언약은 뭐냐 하면 여기는 영적 존재가 관리해요. 이게 바로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 정복할 때 여호수아를 가로막고 나선 존재가 있지요. 누굽니까? 천사지요. 지난 수요일에 이야기했잖아요. 사사기 2장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천사가 백성들에게 너희를 위반하게 되면 약속의 땅에서 이방인한테 학대받는다고 이야기한 존재가 누구냐? 천사였어요.

그러면 이 말은 약속의 땅은 누구 땅이다? 인간 땅이다. 아니다 누구 땅이다? 하나님의 나라, 천사와 더불어 있는 땅이 돼요.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사람이 걸어서 가잖아요. 주일날 이야기했지만 애굽에서 백성들과 나올 때 그래서 그들은 날아서 왔습니까, 걸어서 왔습니까? 걸어서 왔지요. 그런데 왜 출애굽기 19장에서 독수리 날개에 업혀서 왔다고 왜 이야기합니까? 언약을 받기 위해서예요. 언약은 날아갑니다. 인간은 걸어가고.

인간은 이 땅에서 자기 육신으로 노동을 하고 십자가는 그 가운데서 계속 계십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노동과 딴 나라 이민 가고 관계없어요. 십자가는 어디에도 인간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어느 공간이든 있어요. 그래서 성도가 이별하고 헤어진다고 해서 인간적 의미에서 섭섭하고 하지만 십자가는 성도라면 독일 가든 이태리 가든 아프리카 가든 십자가에서 벗어나질 않습니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그다음에 뭡니까? 하나님이 함께 있어(찬송가 524장). 최유나의 흔적만 생각하지 말고 찬송가도 좀…. 절반의 책임 그것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함께 계셔, 하나님 안에서 서로 성도가 소통이 되는 이유가, 같이 독수리 날개에 새로운 시공간에 같이 놓여있기 때문에 서로 통하는 거예요. 언약은 날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뭐냐 하면 인간의 차원, 이게 다윗언약과 관련돼 있어요. 인간의 차원을 능가하는 영적인 차원을 보여주기 위해서 모세로 하여금 극히 인간적인 행동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처음에 반석으로 보고 가리킬 때는 물이 나왔어요. 근데 두 번째 목마를 때 반석을 가리킬 걸 모세는 욱하는 성질 때문에 반석을 쳤습니다. 쳐서 욱하는 성질 때문에 반석에서 물이 나왔어요, 안 나왔어요? 이랬든 저랬든 물이 나왔거든요. 백성을 먹여 살렸는데 그 과정에서 모세는 극히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한 죄인으로 전락하고 말았어요.

모세는 백성을 살리는 것이다, 모세 생각이 있었는데 모세 생각에 수정이 있어야 돼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오만한 나의 죄가 누굴 살렸다? 백성을 살렸다. 그러면 모세가 살린 게 아니죠. 모세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모세한테 얻어맞아서, 반석이 그리스도 아닙니까. 모세의 울분에 얻어맞는 하나님의 상처가 모세는 약속의 땅에 못 가게 만들더라도 백성은 어딜 간다? 약속의 땅에 가게 만드는 언약적 원칙을 하나님께서는 구현을 하신 거예요.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멈추는 게 아니에요. 유다 1장, 유다서는 어디 있느냐 하면 요한계시록 바로 앞이 유다서입니다. 유다서에 이런 내용이 있을 줄은…. 1장 8절에서 9절,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이렇게 돼 있어요.

내용이 만만치 않지요. 안에 든 내용이. 얼른 봐서 상황을 분간하기가 난감해요. 이게 무슨 뜻이냐? 쉽게 이야기하면 모세가 약속의 땅에 못 간 것이 자기가 안 가고 싶은 게 아니에요. 왜? 기력이 정신이 맑고 들어갈 힘이 있었어요. 나이가 백이십 살 되도록 당당하니까. 모세가 백이십이 되어도 기력이 있으니까. 근데 모세가 갈 수 있는 힘이 있어도 못 가게 만든 것은 신명기 32장에 보면 이유가 있어요.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네가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51, 52절)고 돼 있지요. 이것은 모세가 두 번째 바위에 물 낼 때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욱하는 성질로 모독한 게 됐지요. 그래서 못 들어가고 어떻게 되느냐? 그 약속의 땅을 느보 산에서 바라보고 죽었어요.

사람이 죽으면 뭐가 될까요? 시체 되지요. 아브라함이 죽으면 시체 됐고 이삭도 죽으면 시체 됐고 야곱도 죽으면 시체 됐고 요셉도 죽으면 시체 됐잖아요. 시체가 돼요. 왜?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인간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죽지요. 그런데 모세의 죽음은 다른 죽음과 달리 거기에 새로운 의미가 담긴 채 죽은 죽음이에요.

뭐냐 하면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니까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큰 승리를 안기고 모세, 모세하고 이렇게 환호성 하면서 앞장세워서 모세 하나 믿고 밀어붙여야 되는데 강제로 그게 중지된 걸 느낄 수 있지요. 그것도 모세가 시체가 된 거예요. 그런데 이 시체가 유명한 시체가 되면 안 돼요.

거기에 대해서 ‘여러분이 악마라면’이란 말했지요. 악마라면 여러분들이 그 현장에 가나안 땅 앞두고 모세가 죽었다. 그럴 때 악마라면 백성들의 마음속에 어떤 마음을 심어주겠어요? 여태껏 철없는 우리를 인도한 위대한 모세를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된다? 시신을 무덤에 잘 안장해서 고인의 위업을 길이길이 기려야 된다.

시체를 찾아서 무덤을 만들고 늘 수시로 그 무덤에 와서 분향하면서 그분의 업적과 사상과 이념, 무덤을 신봉하면서 우리의 이스라엘이 이념으로 삼아야 된다. 이런 생각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지요. 하나님은 이 모세의 무덤은 찾지를 못하게 했어요. 왜? 모세의 시신은 언약 안에 매장되어서 언약이 움직이면서 모세 자체가 모세 죽음이 언약 안에 움직이는 그 내용이 바로 모세언약입니다.

이게 다윗언약이 되면 어떻게 돼요? 다윗언약 가면 다윗의 자손이 죽음으로서 다윗의 언약에 해당되는 모든 백성들은 그 다윗의 자손이 죽었고 사흘 만에 부활한 그 다윗의 자손, 그냥 다윗의 자손 그분의 부활로 앞당겨서 죽었던 다윗의 죽은 자의 무덤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면 모래에 묻혀 있다가 당기면 두둑 다 튕겨 나오는 것 있지요. 그들이 부활이 되는 그러한 언약 밧줄의 효과를 주는 거예요.

모세에게 이미 그 효과가 있는 겁니다. 모세는 죽어도 모세에게 준 뭐가 남아있어요? 모세언약은 남아있지요. 그게 바로 여호수아에 나옵니다. 누가 읽어보세요. 여호수아 11장 20절,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 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

모세에게 명한대로 진멸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은혜 받았다. 은혜니까 공짜 아닙니까. 공짜로 구원받았다는 이 마음을 어느 쪽에 가져가게 하십니까? 이스라엘 쪽에 가게 하시는 거예요. 왜? 단지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모세언약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저쪽은 뭐가 주어지면 안 돼요? 은혜가 주어지지 말고 뭐가 주어져야 돼요? 하나님의 진멸이 주어져야 돼요. 철저하게 버릴 자를 버리고 철저하게 건질 자를 건지는 원칙, 이거는 무슨 원칙입니까? 언약 원칙.

이 언약 원칙을 주께서는 어떻게 했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지요. 왜? 성령께서 십자가 증거하면서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면 그건 전부 다 마귀의 꾐에 넘어간 사람이라고 보는 거예요. 이건 인간의 지혜도 아니고 인간의 지식도 아니고 헬라인이나 이방인의 기적도 아니라 오직 이걸 아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준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십자가 믿는 내 능력이 아니고요. 그런 식으로 자꾸 오해하면 안 되고 십자가의 능력이다. 십자가의 능력이 임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세처럼 어떻게 돼요? 모세처럼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해서 마땅히 진즉에 벌써 십년 전에 이미 죽는다 하여도 그거는 하나님의 마땅한 일이 되겠지요. 이미 십년 전에 죽었다 치고 우리는 계속 죽은 자로서 살고 있는 거예요. 누구 힘 때문에? 십자가를 증거하는 증인이 되기 위해서 계속 살려주고 있는 겁니다. 이게 언약의 효과입니다.

끝으로 이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죄 짓습니다. 죄 맞습니다. 죄만 지을 거예요. 그런데 놀랍게도 가끔은 우리의 모든 죄는 주의 피로 인하여 이미 다 씻어졌다는 것이 이상하게 가끔은 경상도 말로 우짜다가 이상하게 그게 안 지워지는지 그게 왜 떠오르는지 미치겠다, 정말. “죄 지은 것은 난데 천국은 왜 내가 가느냐?” 가끔은 우짜다가 그런 생각 떠오를 때 주의 백성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성경을 안다, 믿음 있다, 소망을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 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의 효과고 우리의 솜씨가 아닌 것을 도리어 감사하고 고마워하게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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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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