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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자석의 능력 260809우리교회요한계시록

자석의 능력(요한계시록 5:8-14)

자석의 능력

2026년 8월 9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5:8-14

(5: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5:9)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5: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5: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5: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5: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5:14)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사도 요한은 이미 구원받은 자입니다. 하지만 지상에서 그의 육신이 아직 떠나지 않는 처지에서 이 땅에 주님의 계시를 마저 메워야 될 사명이 있습니다. 그는 천국의 실재성을 계시로 보여주는 일입니다. 이 연출을 위하여 그는 PD가 됩니다. 감독이 됩니다. 그런데 그가 만든 영화의 각본이 다 현실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웁니다. 어서 현실을 만들어줄 주인공이 나타나서 일곱겹으로 봉인된 계시을 뜯어내 줄 분을 말입니다. 그러자 천국의 장로가 말합니다. 울지말라. 다윗의 사자(獅子)가 이겼다고 알려줍니다. 다윗의 후손에서 Lion 같은 역할을 완수하실 분이 나타나서서 계시를 현실화되지 못하도록 막은 세력을 꺽어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천국의 본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천국 전체가 새 노래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는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 막 홍해를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는 합창을 연상시켜 줍니다. 그래서 먼저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 노래 가사 내용을 봅시다. “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그 택한 장관이 홍해에 잠겼고 큰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에 내렸도다 )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 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리는 자를 엎으시나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초개 같이 사르니이다”(출 15:7)

그런데 이들 이스라엘이 왜 애굽에서 나와야했지요? 그것은 그들이 이 지상에서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용사가 되지 못한다면 이 지상에 처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출 15:17)

이 말씀의 취지를 쉽게 설명하면 이러합니다. 미국에서 목성 탐사선을 만들어 6년 동안 여행 끝에 목성에 당도했습니다. 그리고 탐사선을 목성을 착류시켜 보았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내려가도 착륙을 바쳐줄 땅이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목성은 기체로 된 행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날 장소는 없습니다. 이 땅의 인간들은 자꾸만 꺼져갑니다. 지옥으로 꺼져갑니다. 내려앉습니다. 지옥에 이를 때까지 내려앉습니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바쳐 줄 단단한 자신의 바탕을 친히 만드셨습니다. 그게 약속된 땅에서 건설될 성전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에 자기 백성들이 합류가 되어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딴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전 만들기’에는 관심 없고 일반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 생존의 땅을 먼저 생각한 겁니다. 하나님과 합류될 생각보다 자기만이 나라를 생각한 겁니다. 성전이 왜 자기 나라에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성전에는 보좌가 있는데 그 보좌는 오늘 본문 12절에,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즉 ’어린양‘의 희생이 그들의 존재의 바탕이어야 하는 겁니다. 이는 어린양께서 이 지옥의 세계에서 죽지 않고서는 안 빠져나왔다는 점을 말해주는 겁니다. 그것을 영원토록 기념하는 곳이 성전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즉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힘으로 애굽에서 구원받고서는 어린양의 죽음에 참여할 마음이 없다는 겁니다. 도리어 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죽으면 살려주겠다는 데 그것을 못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과 애굽 사이에 간격을 의도적으로 두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죽음의 경험하기 위해 배경‘입니다.

사람의 본질은 배경을 통해서 나타나고 전달되어야 하는 겁니다.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살 수 없는 광야에서 그 사람들의 본심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멈추지 아니했습니다. 애굽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지만 그런 의의를 알지 못하고 걸핏하면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거하는 성전을 만들겠다는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버티고 버팁니다.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왕을 세우고 왕국을 만들어도 그들은 성전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왕을 보내시지만 조건을 ’죽음을 당한 어린 양의 취지‘를 품은 왕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왕=제사장이 되는 기능을 완전히 수행한 자라야 가능합니다. 즉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는 나라는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나라입니다. 그 외 다른 나라는 천국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 있어 진정한 복이 누구를 매개로 해서 지상에 나오는지를 전쟁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 14:17-20)

여기에 등장하는 멜기세덱의 본질은 히브리서 7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 7:1-3)

즉 멜기세덱의 세계는 살아 있기를 원하는 인간으로서는 들어설 수 없는 세계입니다. 이런 세계에 들어가기보다는 인간의 본질성 계속 살고 싶은 충동이 유지되는 세상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진정한 새 노래, 천국의 노래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세계입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했던 과학 실험입니다. 종이 위에 쇠가루를 뿌려놓고 얇은 종이 밑에서 막대자석을 두고서 그 막대자석을 이리로 저리로 이동시킵니다. 그러면 쇠가루는 자신의 그 어떤 의지나 결심과 무관하게 자석이 당기는 방향으로 이동됩니다. 천국가는 쇠가루는 비로소 압니다. 나를 이미 죽은 자로 간주해서 다룬다는 것을 말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이렇게 갈라집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왜 우리가 지옥가는 자와 어떤 점으로 달라야 하는지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19강-요한계시록 5장 8~14절(자석의 능력)260809-이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계시록 5장 8~14절입니다. 신약성경 380페이지입니다.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하더라,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하니,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아멘.

천국 나왔습니다. 우리가 돌아갈 고향이고 본향입니다. 이제는 지옥 가고 싶어도 지옥을 그리워하고 싶어도 빠이빠이(Bye-Bye)입니다. 못 갑니다. 그리고 지옥에 간 사람은 두 번 다시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형제가 됐든, 자매가 됐든, 부부가 됐든, 자식이 됐든 소용없습니다.

이 더운 날, 이걸 보고 있는 이 광경을 조금만 참으시면 주께서 보내 주십니다. 요양병원에 가든지, 어디를 가든지, 본문에 있는 여기에 영원히 살도록 보내 주십니다. 보내 주시는 데 있어서, 사도 요한은 이미 이곳을 봤습니다. 먼저 봤죠. 우리보다 먼저 봤고, 이 계시를 남겼는데, 사도 요한은 자기가 이 땅에서 프로그램을 짜는 일종의 PD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PD라 하는 것은, 감독이라는 것은, 영화를 찍어도 끝까지 감독이 거의 안 나와요. 연출도 거의 안 나옵니다. 거기에 등장인물만 나오죠. 스토리를 주도하는 이 배우들만 나옵니다. 그래서 여기에 사도요한은 하나님이 주신 계시대로, 각본대로, 영화를 이제 만들어서,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에게 이제 천국의 영화를 상영해야 하는데, 이 주인공이 역사라는 이것을 뜯어야 해요.

7개로 봉인된 그 역사책을 두두둑, 단추 떼듯이 뜯어내야 하는데, 이걸 뜯어야 연출을 하든, 영화를 만들든, 연극을 하든, 하는데, 이걸 못 뜯어서 울었어요. 지난번에 울었습니다. 계시는 나와 있는데, 이 계시를 현실로 바꿀 분이 나타나지를 않아서, 지금 영화 상영을 못 하고 있으니까, 여기 요한계시록 5장 5절에 보면,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여기에 “사자”란 말이 나와요.

“유다 지파의 사자” 여기서 사자가 대사(大使)나 메신저(messenger)라는 이 뜻이 아니고, 사자라 하는 것은 으르릉거리는 동물원에 나오는 라이언(Lion)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유다 지파의 라이언(Lion), 무시무시한 짐승인 사자, 정글의 왕이라는 이것을 왜 예수님에게 이런 표현을 했을까? 동물 표현을 왜 했을까?

그 뒤에 나온 게,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겼다는 말을 통해서, 짐승 가운데서 사자보다 더 힘센 게 없기 때문에, 모든 힘, 그동안 인간으로 하여금 천국이 없다고, 천국을 못 보게 만들도록 하늘과 땅 위에, 이 땅을 악마의 권력이 완전히 차지해서, 하늘나라라는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완성의 세계를 못 보도록, 그동안 누르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역사 속에, 하나님의 이런 스토리 속에 천국 이야기가 들어와야 하는데, 이걸 두두둑, 역사라는 이 봉인된 것을 뜯어내지를 못하니까, 천국 대목이 안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다윗의 뿌리가 이겼어요. 이겼는데, 그게 사자처럼 이겼다는 거죠. 이 대목은, 이 사자라 하는 게 어디에 나오느냐. 창세기 49장 9절에 나옵니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사자의 특징을 여기서는 뭐라고 하느냐면, ‘이게 어디서 까불어’라고 하면서 찢어버리고, 올라타는 기능의 사자인데, 그게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유다 지파가 그것을 하게끔, 이미 하나님께서 계시 돼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점은, 이렇게 돼야 하늘나라가, 하늘나라답게 상영이 돼요. 아직까지 하늘나라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도 요한을 통해서, 사도 요한을 감독으로 삼아서, 그 장면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 세상이 암울해요. 암울하고 희망도 없어요. 이 성경 요한계시록 5장, 요한계시록 5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신천지밖에 없지, 다른 데는 이야기하지도 않고, 사람들은 이 성경 자체도 관심 없고, 이러한 지경에서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는 것이, 이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이 점을 예를 들기 위해서, 미국에서 목성에 탐사선을 하나 보냈어요. 탐사선을 보내서, 몇 년 동안 여행하다가, 드디어 목성에 탐사선을 착륙시켜 봤습니다. 근데 보통 착륙이 되려면, 우주 탐사선을 받쳐줄, 내부에서 받쳐줄 단단한 암석이라든지 땅이 있어야 하는데, 착륙선이 자꾸 내려가요. 124km까지 계속 내려가고, 내려가고, 내려가도, 이걸 밑에 착륙이 가능한 단단한 지반인, 토지가 나오지를 않아요. 목성이.

뭐냐 하면은 목성은 땅으로 된 게 아닙니다. 고체가 아니고, 이게 기체로 돼 있어요. 계속 가라앉는 거예요. 계속 가라앉지요. 여러분들도 감기약을 먹고 밤에 누우면서, 뭐라고 합니까? ‘왜 자꾸 오늘 가라앉지’라고 하죠. 어디까지 가라앉을지 모르지만, 계속 가라앉는 거예요. 지금, 이 세상 사람들은요, 복음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그냥 허공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조금씩 조금씩 내려앉고 있어요.

내려앉는데 받쳐줄 게 없어요. 받쳐줄 게 없고 계속 내려앉는데, 어디까지 가느냐? 지옥까지, 지옥에까지 가서, 거기서 이제 덜커덩하고 걸려서, 영원히 지옥에 갑니다. 왜 자기의 고향으로 자기를 당기는 게 지옥이거든요. 여기 나온 이십사 장로 참 부럽죠. 천국에 이미 합격했으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이 훌륭해서 합격 된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종이 한 장 놓고, 위에는 쇳가루 뿌려놓고, 밑에서 자석을 가지고 하는 실험을 초등학교에, 실험 같지도 않은 과학 실험을 하죠. 자석을 가지고 종이 밑에서 이렇게 쭉 당기니까, 위에 있는 쇳가루가 자기의 의지나 의사와 상관없이 막 끌려가는 거예요. 아래에서 서쪽으로 밀면, 위에는 서쪽으로 따라가고, 동쪽으로 밀면 동쪽으로 따라가는 거예요.

여기 이십사 장로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서 천국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서. 그럼, 지옥 가는 사람은요? 지옥 가는 사람도 천국은 좋아하겠죠. 그런데 마귀가 자석으로 지옥으로 잡아당기니까, ‘어~~~’ 하다가 지옥 가버리는 거예요. 인간은 쇳가루에 불과하니까. 여러분들은 누구한테 끌려가지고 교회까지 왔어요? 내가 알아서 온다고 하면, 날씨 더 더우면 못 오죠.

그래서, 여기서 이겼다는 게 뭐냐 하면, 악마로 끌려가는 힘을 이긴 거예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힘이 없으면, 그냥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본인은 물론 죽어서 천국 가고 싶죠. 거기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그러고 싶어도, 그런 마음이 있더라도, 악마가 잡아당기면, 이 복음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돼 있습니다.

‘안 들을란다’라고 이렇게 돼요. 성경은 보고 싶지도 않아요. 내가, 이 땅에서 자리를 잡으면 그게 그 목성 탐사선의 착륙이라고 이러고 있어요. 이 땅에는 푹 꺼지게 돼 있지, 이 땅에는 착륙해 봐야 그게 착륙이 아니에요. 지옥까지 가는데 거침없습니다. 그냥 내려앉게 돼 있어요. 인간은 감기약 먹은 것처럼 쫙 가라앉습니다. 부자 됐다고 ‘뭐, 이만하면 됐습니다’라는 이런 거 없어요. 그냥 가라앉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핵심은 뭐냐. 도대체 이 천국이 어때서, 택한 자를, 이 철 가루에 지나지 않는 자를, 자기의 소망과 의지에 관계없이 천국으로 이끄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느냐 하는, 그 이야기입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은 여기에 오늘 본문에 보면 나옵니다. 7절에,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라고 이렇게 돼 있어요.

여기 “보좌”가 나옵니다. 이 보좌가, 천국에 보좌가 있지만, 이걸 구약 이스라엘에게 미리 계시로 알려줬습니다. 그게 바로 뭐냐 하면, 성전이에요. 성전. 여기서 간단한 구약의 핵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핵심은 뭐냐 하면 처소입니다. 장소예요. 하나님이 지옥 같은 세상에 와서 덜커덩하고 걸리는 처소를 만들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출애굽기 15장 17절에 나옵니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하나님의 처소를 이 지옥 한가운데다가 하나님께서 마련했는데, 그곳이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그 성전까지 누가 오느냐 하면은,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이스라엘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살던 자들이 유월절 어린 양의 기운으로, 그 능력으로, 강제로 그 지남철에 이끌려서 하나님이 만나고자 하는 지점, 약속의 땅, 거기에 나중에 성전이 세워지는 바로 그곳, 성전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감격스러운 만남이 있습니다.

감격스러운 만남이에요. “보고 싶었다. 내 아들아” ‘하나님이 아버지 되시죠?’라는 식으로 만나는 거예요. 그렇게 만날 때, 그 만나는 지점이 애굽과는 거리가 먼, 바로 약속의 땅이에요. 약속의 땅. 거리로 보면, 11일이면 갈 수 있는 땅. 그런데 그들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40년 동안, 11일도 아니고, 40일도 아니고, 40년 동안 뺑뺑이 돌면서 못 갔습니다.

가지를 못했어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은 그 이유가 요한계시록 5장 12절에 나옵니다.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라고 나오죠. 앞장서서 인도하시는 주의 이름이 담겨있는 그분이, 이스라엘 백성을 통솔하고, 이끌고, 가나안 땅에 가는데, 그분이 어떤 분이냐 하면, 여기에, “죽임을 당하신 분”이에요.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 죽임을 당하신 거예요. 그러면 죽임을 당하신 분에게 계속해서 합류해서 동행을 하려면, 뒤따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죽임을 당해야 하는 거예요. 죽임을 당해야 해요. 알아서 죽는 게 아니고, 죽임을 당해야 하는 거예요. 죽임을 당하는 그 바깥 환경이 뭐냐. 광야였습니다. 광야. 이제 광야에서 40년을 뺑뺑이 도는 이유를 아시겠죠?

광야에서 ‘야..., 이러면 죽겠다’라고 이러거든요. 이러면 죽겠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아, 너 어디에서 살려고 했는데?” ‘내가 살던 데서 살려고 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네가 살던 데는 아니야. 네가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뛰어넘을 수 없는 그런 자질을 가진 네가, 나로 더불어 죽음까지 뛰어넘고, 죽음 뒤에 오는 그 세계에 네가 살아야 하는 거야”

‘하나님, 왜 그렇게 복잡하게 이야기합니까?’ “인도하는 내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기 때문에. 인도하는 내가” 인도하는 자와 인도받는 자가 같은 코스, 같은 운명으로 일치돼야 하거든요. 예수님은 죽임을 당한 자예요. 성전은 바로 거기에 세워지는 거예요. 그래서 성전 안에서 날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과 제물들이 제사가 되는데요.

여러분, 미국에 워싱턴 주(State of Washington)가 있고 워싱턴 시(Washington, D.C.)가 있어요. 그런데 방향이 저 끝에서 반대쪽 저 끝이에요. 워싱턴시는 저 동부의 뉴욕 근처에 있고, 워싱턴주는 저 서쪽에, 미국 태평양 북서부에, 미국에 제일 북쪽에 워싱턴주가 있어요. 이름 같다고 같이 있는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만한 땅을 주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근본적인 오산이었습니다.

살만한 땅을 주는 게 아니고, 죽었다가 살아나는 땅을 주지요. 왜? 그래야 하나님이 죽었다가 살아난, 맨날 반복해서 죽었다가 살아난 희생양, 죽었다가 살아난 희생양, 아침저녁마다 희생양을 바치면서 죽었다가 살아난, 죽었다가 살아난 염소 바치고, 소 받치고, 그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반복하듯이, 동일하게 그게 반복되는 사람만 워싱턴주가 아니고 워싱턴시에 살고 있어요.

그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사람들이 익히 아는 약속의 땅, 눈에 보이는, 밟으면 밟히는 그 땅, 그 땅을 주면서 그 땅을 뛰어넘게 만들어버려요. 그 땅을 주면서 그 땅에 성전을 만들 때, 이스라엘 백성은 또 오해했어요. ‘야, 이 땅에 성전이 있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산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그거 하고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저도 그 이스라엘 땅에 가봤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봤고, 그 성전산(聖殿山)이라고, 거기에서 동그란 황금 돔까지 가봤어요. 거기 이스라엘 경찰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 밑에 서쪽 담에는 유대인들이 모자 동그란 거 쓰고, 상체를 앞뒤로 끄떡끄떡하면서, 통곡의 벽이라고 해서, 거기서 기도하고 했었어요.

지금도 거기에, 감람산에 메시아가 오기를 지금도 이스라엘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그런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안 죽어요. 지금 죽어야 되는데, 이게 안 죽은 채로 천국 가려고 하는 거예요. 주님은, 우리를 이끄는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시는 분은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그 따르는 자들은 거기서 빼달라고, 빼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성전은, 성전을 세웠는데 어떻게 세웠느냐. 그거 뭐, 성전이 불타버리죠. 성전이 불탄 이유가, 그 성전에는 성전의 조건이 있어요. 나중에 이스라엘의 왕이 주어지는데요. 왕은 성전의 취지를 온전하게 이룰 수 있는 왕만이 다윗의 뿌리, 그래서 이 세상의 악마를 이기는 힘을 가진 진정한 왕이 되는 겁니다.

신명기 17장 18~19절에 보면 왕은 반드시 옆에 율법을 등사해서 옆에 두고 읽어야 돼요.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왕이 되는 조건은 여기 율법을 이룰 때, 왕이 되는 조건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세웠습니다. 성전에는 제사장이 있지요. 근데 성전 세워놓고,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충실히 하나님의 계명을 다 이루게 되면, 그 성전에 하나님이 나타나는데, 어떤 모습이 나타나는가. 왕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왕의 모습으로. 왕의 모습이 나타나면 왕국이 되고, 그 왕국이 있다는 말은 자기 백성이 있다는 말이고, 바로, 왕의 통치와 지배를 받는 양상이 오늘 요한계시록 5장에 나오는 다윗의 뿌리가 이긴, 그분이 왕이 되고, 나머지는 백성이 되면서 영원한 천국, 천국 국가가 유지될 수 있는 겁니다.

바로 그것이 성도한테는 고향입니다. 과연 고향인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하느냐.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에게 왕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편에 보면, 시편 24편에 보면, 왕이 와요. 왕이 오는데, 예루살렘의 왕이 옵니다. 24장 7~8절에,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아까 출애굽기 15장에서 출애굽 할 때, 미리암이 앞장서서 찬양을 했잖아요. 새 노래로 찬양을 했어요. “우리 여호와 같이 대단한 용사가 어딨느냐”라고 이렇게 하면서.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출15:21)

그렇게 애굽에서 끄집어낸, 지남철에, 자석에 끌려온 그자들이 바로 백성이 된다는 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문제는 왕이, 왕으로 오신다고 했으니까, 이제 제대로 왕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다윗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다윗도 나중에 안 되고, 솔로몬 때 가서 보니, 솔로몬도 안 되고 이렇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등불을 통해서 왕을 줬는데, 이제 핵심 부분 들어갑니다.

역대하 26장 19절에 보면 왕이 있는데, 웃시야 왕이 문둥병에 걸렸어요. 문둥병 걸렸는데, 걸린 이유가 역대하 26장 18절에 나옵니다. “웃시야왕을 막아 가로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하니까 왕이 제사장에게 노를 발할 때, 갑자기 왕이 이마에 문둥병이 걸렸어요.

저주받은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성전과 왕이, 왕이 성전을 제대로 이념을 구현해야 하는데, 다윗의 자손들의 왕들은 성전과 일치되지 못하고 오히려, 왕의 처소와 성전의 처소가 분리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공하는 겁니다. 그럼, 왕과 제사장이 하나 되면 되지 않겠느냐. 하나 되는 그분이 와요. 신약에 오시는데, 구약 창세기 14장에, 왕과 제사장이 하나가 된 분이 이미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름이 멜기세덱이라고요. 멜기세덱은 이 땅에서, 제사장이라는 선을 쳐버리고, 왕이라는 것을 치면서 나타나신 왕이 바로 멜기세덱이에요. 이 멜기세덱의 그 위상은 히브리서 7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지금 우리 고향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복잡해요. 고향 이야기하면서. 우리 자신이 자꾸 엉뚱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걸 피하기 위해서 복잡할 수밖에 없어요.

이 멜기세덱은 7장 3절에 보면,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족보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엄마도 없어요. 이거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을 줍니다. 예레미야 31장 22절에 보게 되면,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딸은 예루살렘이에요,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새로운 왕이 되시는 분이 마리아에 의해서 임신 되어서, 이게 해산이 되어서 나오신 그분이, 바로 다윗의 뿌리에 합당한 하나님의 온전한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제물의 이념과 그분이 왕이라는 이념과 합치될 때, 모든 게임은 오버, 게임 끝났어요. 게임 끝났습니다. 그분이 바로 영원한 하늘나라를 이룹니다.

이제 남아있는 건 뭐냐? 남아있는 건 그분의 부활의 영. 성령이 우리에게로 와서 지금 지옥으로 가고 있는, 자기 좋다고 하고, 자기가 최고라 여기는 우리를 강제로, 강제로 성령께서 자석을 잡아당겨서, 쇳가루에 불과한 우리는 그냥 천국으로 나중에 끌려갈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내가 행한 것이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한 걸음, 이렇게 이끌려서 천국 갔다면, 우리에게 나오는 것은 뭐밖에 없습니까? 노래밖에 없는 거예요. 출애굽기 15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나오면서 노래 불렀듯이.

노래를 부른다는 말은 여유가 있다는 뜻이고, 그 여유에는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한 것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모든 걸 이룰 때, 기분 좋아서 노래를 부릅니다. 제 아버지가 밥 먹고 난 뒤에 노래를 부르셨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말씀드렸잖아요. 만족스럽다는 이 말이거든요. 그래서 성도는 자기 본향을 생각하면서, 그 고향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미리 이 땅에서.

“일찍 죽임을 당하신 분 때문에 덕을 봤다”라는 이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천국 간다고, 지금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지옥으로 미끄러져서, 지옥으로 주저앉는 사람들에게 지금 자랑을 하는 그것이, 지금 성도의 우리의 남은 일이 되는 겁니다. 세상에서 뭐 좀 못 한다, 남한테 졌다는 그런 시시한, 그런 돈 자랑, 그런 거 좀 하지 마세요.

시편, 73편에 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뻔” 뻔! 뻔! 실족할 뻔! 했다. 왜? 악인들이 장사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건강하고, 죽는데도 환란이나 고통 없으니까, 뻔!한 거예요. 뻔! 뻔! 우리는 맨날 뻔합니다. 미끄러질 뻔해요. 우리가 지옥을 안 갔잖아요. 그러면 주께서는 충분히 주님부터 보상을 다 얻었잖아요. 뭐 부도가 났다, 보이스피싱 당했다, 이런 것들은 다 뻔이에요. 뻔.

누나가 동생을 챙겼는데, 그 누나가 동생한테 마지막에 남는 라면, 긴 것도 아니고 끊어진 라면 끄트머리까지 다 챙겨서 먹여줘요. 누나가. 그런데 전말이 어떻게 되냐 하면, 긴~ 거, 라면 긴 거는 이미 사전에 누나가 다 먹었어요. 이제 먹지도 못할 끊어진 그런 것만 국물하고 같이 주는 거예요. 지금 아마 그렇게 준 누나는 속으로 노래를 불렀을 겁니다.

무슨 노래? 새 노래. ‘가져가, 가져가라. 이 지옥 갈 인간들아, 가져가! 나는 일찍 죽임을 당하신 그분께서 지남철로 잡아당겨서, 성령으로 잡아당겨서, 나는 지금 집으로 간다. 천국 가고 있다’ 이런 넉넉함, 이 넉넉함이 일상의 노래가 되어서, 천국 아직 안 갔어도 미리, 천국의 노래를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자꾸만 말씀과 멀어지고, 세상과 가깝고, 하나님도 귀찮고, 예수도 귀찮고, 말씀도 귀찮고, 내 편한 것만 최고라는 그 자리가, 사실은 지옥으로 가라앉는 자리인 것을 이제는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누군가 이끌어줄 때, 비로소 천국 가는 맛이 난다는 이 기쁨을 항상 찬양으로 드러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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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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