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난 도르가 260809
살아난 도르가 260809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말씀은 다시 산 도르가. 도르가는 어떤 아주머니 이름입니다. 이 아주머니는 굉장히 사람들에게 자기를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많은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 많이 도와준 사람이에요. 어떤 욥바라는 동네가 있는데 바닷가에서 고기 잡아서 생활하는 동네인데 고기 잡다가 만약에 배가 부서지면 어떻게 되지요? 수입이 없잖아요. 남편도 같이 고기 잡다가 배가 뒤집어지면 바다에서 죽어서 죽고 당할 때는 남편은 갔는데 배도 없고 남편도 없고 이러면 그 다음부터는 자식들 자녀들과 안에 있는 엄마가 애들과 어떻게든 살아야 되거든요. 애가 지금 하나 둘 셋 세 명이 돼요. 그래서 어려운 사람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 어촌 마을에.
거기에 이 도르가라는 이 분이 아주머니께서 자기 사정처럼 생각해서 저 사람들은 먹을 것도 없구나 해 가지고 자기들이 어디서 도와주기를 좀 요청해서 그 받은 거 가지고 많이 도와줬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없어져도 이 도로가 아줌마만 있으면 좋은 세상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도움을 받는 자기는 계속 살아 있는데 안 아픈데 도와주는 이 도르가 아주머니께서는 그만 슬슬 아프기 시작하더니만 자리에 누워서 곧 죽을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누가 괴로우냐? 도르가도 물론 괴롭겠지만 이게 아파서 죽어가는 사람도 힘들겠지만 산 사람 멀쩡하게 산 사람이 더 애통해 하는 거예요. 다른 악한 인간들은 죽어도 괜찮은데 저 아주머니는 죽으면 안 돼. 그런데 이분은 지금 자기도 모르게 자기는 누워서 누워 있는 거예요. 누가 이렇게 했겠어요? 누가 이렇게 아프게 했겠어요? 하나님이 아프게 한 거예요. 하나님이. 사람들은 도움 받으면요, 저 사람은 늘 도와줘야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나를 도와준 사람이 아프다. 아프다 할 때 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느냐? 없어요. 없어요. 아이고 아프구나. 아프네. 많이 아프네. 못 고쳐. 못 고쳐. 끝. 그러면 곧 죽겠네. 죽지. 그래서 도르가가 이 여자분이 그만 죽고 말았어요.
이렇게 착한 일을 많이 하는 여자가 죽고 말았어요. 왜 하나님께서는 이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을 왜 죽였을까요? 이게 이제 여러분들이 궁금해해야 돼요. 학교 같으면 담임선생님이 물을 겁니다. 여러분 착한 사람이 오래 살아야 돼요? 나쁜 사람이 오래 살아야 돼요? 물으면 좋은 사람이 오래 살아야 돼요, 라고 생각하잖아요. 그게 바로 땡 틀렸습니다. 그게 빵점이에요. 그게 빵점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착하기 때문에 착하기 때문에 일찍 죽어야 된다는 겁니다. 왜? 도움 받는 사람이 지가 도움 받으니까 지가 더 살아야 될 가치가 있는 걸로 지가 착한 걸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사람이 자꾸 도와주면 권리인 것처럼 여기잖아요. 자주 도와주면. 어느 누구도 이 도르가를 죽어가는 이 아줌마를 필요한 분인데도 살릴 재주가 없습니다. 그래서 울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다가 안 되겠다 해서 특별한 분을 모셔야 되겠다 했는데 예수님 같으면 누구 찾아오겠어요? 예수님 찾아오겠죠.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떠났어요. 이 땅을 떠나서 하늘나라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땅에 찾을 사람이 없습니다. 근데 마침 그 욥바라는 동네에 누가 가까운 동네에 누가 와 있느냐 하면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가 있었어요. 베드로가 있었는데 베드로가 여기에 이 도르가가 있는 여기 오기 전에 애니바라는 이름이 애니바, 제가 한번 볼게요. 애니아. 애니바가 아니고 애니아라는 사람이 중풍에 걸려서 7년 동안 누워 있었어요. 이거는 안 죽었어요. 그냥 누워 있어요. 누워 있었는데 베드로가 가서 그 사람을 낫게 했습니다. 그 소문이 딱 했을 때 저분이다. 죽어가는 사람도 살 수 있다면 지금도 이 도르가가 죽어가고 있으니까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두 사람이 슬퍼하다가 베드로한테 찾아갑니다.
이 사람이 베드로예요. 찾아갑니다. 지금 어떤 귀한 분이 죽어가고 있는데 살려주세요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지체하지 말고 빨리 오세요. 곧 죽으니까. 그러니까 베드로가 곧 죽으니까 죽기 전에 빨리 낫게 해 줘야지. 죽기 전에 낫게 해 줘야지. 하고 베드로도 같이 생각해서 갔어요. 갔는데 끝났어요. 왜? 죽었어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죽기 전에는 지체 말고 가야되었는데 가보니깐 거기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미 죽어가는 게 아니고 도르가는 이미 시체가 되었어요. 산 사람하고 같이 합류가 안 됩니다. 이미 이 세상사람 아니에요. 끝났어요.
끝나가지고 염해가지고 다 처리하고 속옷과 겉옷 내보이면서 갔어요. 가가지고 끝났습니다. 좀 더 빨리 와야 할 걸, 빨리 올 걸 이랬어요. 그런데 베드로는 뭘 생각하느냐 하면은 이 일을 베드로 본인이 하는 게 아니고 지금 죽었다가 살아나서 하나님 옆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이 도르가 착한 도로가를 죽였다는 생각이 딱 들었거든요. 그러면 예수님이 죽였으면 예수님이 일을 계속하려면 맛있는 거 나눠주는 일로 해야 좋아요? 죽었던 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주님의 살아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데 좋을까요? 우리 초등학교 1학년 답변해 보세요.
질문. 죽어 가는데 병을 낫는 게 나을까요? 이미 완전히 죽었는데 다시 살리는 일이 더 멋있을까요? 1번일까요? 2번일까요? 양팔 긁지 말고 어느 것이, 어느 것이 하나님의 일의 절정이겠습니까? 끝을 보는 거예요. 어느 쪽이에요? 죽었다가 살아나는 일이 더 대단한 겁니까? 죽어가는 사람을 낫게 하는 게 대단한지, 어느 쪽이에요? 지금 세 번 물었다. 나도 포기해야 되겠다. 베드로가 여기 우는 아줌마들 좀 시끄러우니까 나가 주세요. 좀 문자 같은 오지 말고 좀 까톡 까톡 하지 말고 좀 다 나가세요. 다 보내고 베드로하고 도르가 딱 두 사람 남기고 베드로가 시체를 향하여 말합니다.
다비다야. 도르가 이름이 또 다른 말고 다비다예요. “다비다야. 자꾸 꾀부릴래?” 이 나이롱환자야. 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다비다야. 죽었냐?” 혼자 말을 하는 거예요. “죽었냐? 그러면 이제는 살아야지. 주의 일을 계속해야지.” 하니깐 다비다가 공주처럼 잠자는 공처럼 아우 잘 잤다 하는 식으로 마치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마치 잠 푹 잠잔 것처럼 일어났어요.
그럼 사람들은 말할 거예요. 이건 맞춰야 돼요. 이 도르가를 죽였다가 살린 것이 베드로입니까? 예수님입니까? 이거 맞춰야 돼. 둘 중에 하나 찍어라. 베드로가 살려줬다. 예수님이 살려줬다. 몇 번입니까? (2번) 100점이야. 백 점. 이거 돈 500원 받아야 돼요. 100점. 바로 그것을 믿는 거예요.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를 늙어 죽이는 것은 다시 살리기 위해서 늙어 죽게 한다는 거. 그것은 바로 내 일이 아니고 주의 일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냥 이 땅에 살아서 아프고 하는 것만 그게 다가 아니라 죽은 데서 살리는 것이 주의 일이오니 미리 우리가 살면서 주의 일을 믿을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