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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사람이 마귀다 270809우리교회야고보서

사람이 마귀다(야고보서 4:7-10)

인간이 마귀다

2026년 8월 9일 본문 말씀: 야고보서 4:7-10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4: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이 세상에 마귀는 없습니다. 하나님도 없습니다. 이미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마귀의 포로가 되어 버린 인간 입장에서 악마의 존재 자체를 거론하는 것이 이 세상에 대해서 모독하는 언사가 됩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인간대 인간의 활동과 그 결과물들 뿐입니다. 하나님이나 여가 가지 종교 개념이나 용어들도 모두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지어낸 것들입니다.

자,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해서 인간들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가 나를 위해서 사는 바’를 절대화하겠다는 겁니다. 실은 이런 현실의 모습이 악마가 원했던 현실관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귀의 존재’가 실제로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 악마는 대적하라고 합니다.

‘악마에 대한 대적’이 성립되려면 ‘악마의 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악마를 대적으로 간주하시는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은 태어나면서 이미 악마편의 존재로 등장됩니다. 하나님에 대적하는 기분으로 중무장되어 하나님의 배격하면서 자기만의 절대 세계를 따로 구성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십자가 복음 속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자기 일에 흠뻑 취해서 미래에 온갖 계획들로 가슴이 뜁니다. 멋진 계획을 상상만해도 행복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십자가 복음을 접하고 난 뒤에는, 더 이상 ‘자신을 위한 일’이 성립되지 않음에 실망하게 됩니다. 매사가 억지스럽기 한량없습니다.

더는 나를 신나게 만드는 ‘나의 일’이 없으면 과연 이 세상 살맛이 날까요? 인간의 마귀의 사정에 대해서 누가복음 11:24-26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 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눅 11:24-26)

즉 인간은 악마를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밥입니다. 인간은 악마가 쏘아대는 말에 견딜 수 없는 표적지입니다. 늘 괴롭힘을 당합니다. “똑바로 바르게 살아야 네가 희망하는 것이 이룰 게 아니아, 실수하면 안되지. 철저해야 너가 원하는 꿈은 이루어져! 신나는 미래를 포기하지마!”

여기에 대해서 인간은 평생 자체적으로 마련한 자기 방어 무기를 다 꺼집어내어 놓고 악마에게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이 정도 살았으면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잖아. 장하다고 말해줘!”악마는 말합니다. “그것으로 너는 성에 안 찾아야. 왜 솔직하지 못해! 여기서 멈출거야? 너는 할 수 있어. 더 대단한 네가 될 수 있어! 남들 봐”

그렇습니다. 악마는 없습니다. 그저 인간들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인간이 자기를 위한 삶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절대자’ 개념입니다. 그런데 그 절대자는 자꾸만 선악논리로 추궁해 들어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가지고 모든 현실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마귀는 빠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마귀 개념을 집어넣으시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십니다. 인간은 마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면서도 마귀의 힘을 못 벗어나는 것은 ‘죽기를 무서워하기’때문입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히 2:14-16)

즉 인간이 뭘 시도하기 전에 악마의 족쇄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러나 벗어날 재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2:16에 희망이 보입니다. 그것은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라는 대목입니다. 그렇습니다. ‘흩어진 12지파’의 원조격인 구약 이스라엘 민족에서 주어진 일을 가지고 내막을 살피십니다.

만약의 다음의 두 종류의 병원이 있다면 어느 병원에 가겠습니까?. A타입의 병원“아프면 오세요. 병 낫게해드리겠습니다.” B타입의 병원은 “안 아프다하시면 우리 병원에 오셔서 아픈 병인 것을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기어이 죽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기어이 그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게 해주시겠습니다”

인간은 안 죽고 싶어도 기어이 죽고, 안 망하고 싶어도 기어이 망합니다. 이점을 악마도 알고 하나님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조치는 악마를 겨냥해서 악마의 일을 하나님께서 오신 분으로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스가랴 3:1-4에 보면, 하나님의 조치가 잘 나와 있습니다. 특히 아브라함의 자손에 대해서 대처가 나옵니다.

“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수 3:1-5)

기존의 인간이 아닌 제 3의 인물을 하나님께서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본격적으로 하늘의 일을 전파하기 전에 먼저 세례 요한을 만났습니다. 세례요한이 하던 일은 개인이 아니라 장(場)에 관한 일입니다. 물이 있고 사람들로 하여금 물 속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물에 합장하는 가운데 예수님도 그 물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에게만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과 말입니다. 이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물로서 장field를 펼친 것처럼, 성령으로 장을 펼치실 뿐입니다. 악마가 결사적으로 우리의 개체를 집중 공략합니다. 국소화시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피의 죄사함의 효과를 발휘하는 장, 곧 십자가 공간을 주목케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네가 독자적으로 따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자의 독자적인 일을 믿는 것이다”고 말입니다.(요 6:29) 하나님으로부터 악마를 책망토록 합시다. 어떻게든요 깨끗한 죄사함을 받은 옷을 입고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일이 뜯어져 나갔음에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의 말로 사람을 대하지 말고 우리 안에 말씀의 세계에 관한 성령님의 말이 나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26강-야고보서 4장 7-10절(사람이 마귀다) 260809-이근호 목사

하나님 말씀은 야고보서 4장 7-10절입니다.

야고보서 4:7-10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여기 7절에 보면, ‘하나님’이 나오고 그다음에 누가 나오냐 하면, ‘마귀’가 나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라” 그다음에 “마귀를 대적하라”는 이걸 통해서 하나님 쪽과 마귀가 붙들고 있는 쪽이 반대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하나님께는 순복하되 마귀엔 대적하라.’ 그러면 이 말은 이렇게 볼 수 있어요, ‘하나님은 마귀를 천국에 들여보낼 생각이 없다.’

대적하라고 했으니까, 그렇죠? 그 말은 뭐냐? ‘마귀에 속한 자는 하나님께서 천국에 들여보낼 생각이 없다.’ 이렇게 돼죠. ‘마귀에게 붙잡혀 사는 마귀의 종이 된 자는 마귀한테 가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게 하나님의 일이 되겠습니다. 한결같은 일이죠.

보통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잖아요. 보통 교회 오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시다. 그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그런 분에게 오늘 본문에 근거해서 묻고 싶습니다. “마귀를 인정합니까? 마귀가 살아서 활동하는 것을 늘 일상생활 속에서 감지하고 있습니까?”라고 묻고 싶어요. 하나님의 은혜 주심과 하나님의 도와주심은 늘 상 버릇처럼 이야기하면서, “마귀가 이런 일을 나한테 했습니다” 하는 말은 별로 안 들려요. 잘 언급을 안 하고 있어요.

이건 무엇을 뜻하느냐? 분명히 말씀에는 “하나님께 순복하라” 그다음에 “마귀를 대적하라”라고 했어요. 마귀의 존재를 분명히 인정하는 세상이어야 하는데 우리 눈에 마귀가 존재한다는 것을 못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마귀와 한패 먹었다.’ 그런 결론에 도달됩니다. 어떤 사람은 “마귀가 안 보이는데요? 안 보이니까 마귀가 없잖아요.” 이렇게 하는데 네가 마귀잖아요, 네가!

여기서 우리가 내리는 결론은 간단합니다. ‘사람이 곧 나타난 마귀다.’ 사람이 나타난 마귀다. 그러면 교회는 뭐냐? 마귀 모아놓고 구원하겠다는 것이 교회가 되어버렸어요. 마귀는 분명히 천국에 못 가는데, 교회 나오는 사람 모두가 이미 마귀한테 붙잡혀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마귀를 한 데 모아놓고 “우리 천국 갑시다”라는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그런 주장을 교회는 옳은 것처럼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간에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생각은 있는데 마귀 존재는 인정할 생각이 없어요. 왜 그러냐 하면, 벌써 마귀하고 한패 먹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있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알기 전, 또는 하나님 믿기 전에는 평소에 이 세상 사는 것이 자기 포부로 아주 신바람이 나 있어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나 이거 하고 싶어, 저것도 하고 싶어.’ 그리고 ‘제대하고 나면 이거 하고 싶어.’ 벌써 군에 있을 때부터 계획을 다 잡아놨어요. 애인하고도 “우리가 결혼하게 되면 이런 계획이 있는데 나에게 시집와 줄래?” 뭐 계획을 다 잡아놨어요. 그런데 교회 나와서 하나님을 알고부터는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사는 재미가.

여러분, 주님 알고 하나님 알고 십자가 알고부터 사는 게 그렇게 재미나던가요? 재미가 있어요? 뭐 억지로 재미 찾으려고 해도 재미가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시거든요. 인간이 마귀와 한패가 되어서 지옥 가는 이유가, 마귀가 인간을 자기편으로 물들여 놨어요. 물들여 놓은 그 증거가 뭐냐 하면, 나를 위해서 사는 거예요.

인간은 나를 위해 살 때는 신바람이 나요. “앞으로 내 계획은요…” 누구 만나면 자기 앞길에 대해서 아주 신이 났습니다. “우리 가족은 앞으로 이렇게 살 거예요…” 밤에 이불 뒤집어쓰고 뭐 계획 하자면 밤이 새도록 계획하기 때문에, 그 계획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안 믿는 사람 같으면 소주 한 세 병 먹고 하면 계획이 더 많아져요. 환상이 생깁니다. 로또 당첨금으로 20억 타면 그거 가지고 집 사고, 카페 열고…, 계획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아침에 깨서 내린 결론은 “로또 사자.” 이렇잖아요.

사는 게 자기 일 자기 포부가 실현되는 영역이 있다는 그 자체로 사는 에너지가 막 솟아나요. 7번 넘어져도 8번 일어나는 이유가 내 일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가오, 자존심을 위해서 내 죽어가는 인생을 살려내고 싶어요. 그런 오기같은 것이 철철 넘쳐요.

그런데 복음을 들었다고 칩시다. 듣는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복음을 딱 듣게 되면 복음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사는 자는 지옥 간다’라고 하거든요. 자기를 위해 사는 자는 하나님이 하늘나라에 안 받아줘요. 받아주질 않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자기를 위해 산다는 것은 그 바탕이 자기를 사랑하는 게 돼요.

자기를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의 저주를 유도하는 바가 됩니다. 저주를 사서 받아 챙기는 게 돼요. 고린도전서 16장 22절에,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성경은 저주에 대해서 아주 아낌없이, 빠짐없이 언급합니다.

그래서 교회 좀 다니고 예수님을 알고 복음을 안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자기를 위해서 살고 있다는 것은 뭘 계산하지 못했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지옥에서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에게 퍼붓는 그 지옥의 형벌, 너무 잔혹하고 너무 잔인하게 영원토록 유황불에 집어넣는, -인간들 입장에서 너무 과도하게 내리는- 그 형벌의 취지, 그 정도에 대해서 감을 못 잡고 있다는 거예요.

자기를 위해 사는 게 그렇게 나빠요? 갑자기 영화 대사가 생각나요.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요한계시록 19장 20-21절에 보면,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짐승과 그리고 이적을 행하는 가짜 선지자들, 이 둘은 산채로 그것도 영원토록 유황불 지옥에 집어넣습니다. 날 위해 사는 게 그렇게 나쁜 짓입니까? 이렇게 하나님이 잔인하게 우리를 짓밟아도 아직까지 그 형벌의 강도에 대해서 자꾸 우리가 의심을 하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나쁜 짓을 한 거예요, 지옥 갈 정도로? 그것도 유황불에.’

최고 기온 섭씨 39도가 문제가 아닙니다. 지옥 불, 유황불은 39도가 아니에요. 온도로 측정이 안 돼요. ‘거기 있어도 에어컨 켜면 되지.’ 에어컨이 없어요. 물 한 방울도 없어요. 지옥 가는 부자 소원이 뭐였습니까? 물 한 방울이었잖아요. 좀 더 늘이면 생수 한 병이고요. 생수 한 병이 없어요. 지옥 간 그 부자가 계속 곰곰이 생각해 봐도 계속해서 알 수 없는 것은 뭐냐? ‘내가 이 땅에서 부자로 누리고 산 것이 그렇게 나쁜 짓이냐?’ 하는 거예요. ‘그게 그렇게 나쁜 짓이냐?’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뭔지를 감을 못 잡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말합니다. “네가 귀신이잖아. 네가 마귀 자식이잖아.” 마귀 자식이니까 마귀가 자기변호하고, 자기변명하는 것이 당연하죠. “네가 지옥 가서 영원토록 ‘왜, 왜, 왜, 왜 나에게? 왜 나에게?’ 하는 그 질문을 해대라. 나는 널 지옥 보낼 거야.” “왜요?” “가서 알아, 가서.”

여러분들이 “나는 마귀를 못 만났는데요? 영화에서는 막 모가지 비틀어지고 그런 거는 봤지만 실제로는 못 봤는데요?” 이렇게 하는데 사람 만나세요. 전부다 마귀 자식들입니다. 사람 만나면 돼요. 그게 전부다 마귀 만나는 거예요, 집안 식구라 할지라도, 부부라고 할지라도.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가 만나는 것은 귀신 둘이 결혼식 하는 거예요. 뭐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왜? 각자 자기를 위해 살기 때문에. 자기 자신뿐이에요. 자기만 사랑하죠.

그래서 오늘 본문 7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는데 ‘마귀를 대적하라’는 이 대목에서 마귀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인간이 평소에 누구하고 만나느냐 하면, 사람하고 만나요. 여러분들이 8월 한창 뜨거울 때 논바닥을 한 번 보세요. 물이 잘 안 보여요.

논바닥에 왜 물이 안 보이느냐 하면, 거기에 풀이, 개구리밥이 빡빡하게 벼 밑단에 쫙 깔려 있어서 물 보려면 개구리 풀을 헤쳐야 보여요. 우리가 사는 것은 인간관계로 꽉 짜여 있어요, 인간관계. 사람 대 사람 관계가 개구리 풀처럼 쫙 덮혀있기 때문에 그 뒤편에 마귀가 있다는 것을 못 느껴요. 마귀가 있다는 것을 볼 수가 없어요. 앞에 사람이 커버하고 있기 때문에요.

24시간 생각하는 게 사람과 사람 관계잖아요. 사람 생각 빼놓고 달리 할 게 있습니까? 없잖아요. 개구리밥을 풀어 헤쳐야 비로소 무슨 세계가 보이느냐 하면 말씀의 세계가 보이고, 말씀의 세계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사탄을 대적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이 말씀이 들어있는 거예요.

그래서 야고보가 “하나님께 순복하라.” 그리고 “마귀를 대적하라.” 여기서 하나님과 마귀라는 개념이 어디에 들어있느냐 하면, 말씀의 세계 안에 들어있다는 거예요. 말씀의 세계 안에 들어있는데 사람들은 자기 소망, 자기 일에 미쳐가지고 사람 만나는 데에 24시간을 다 소비합니다, 사람 만나는데! 그러니까 인간은 사람이 만드는 현실 거기에 있기 때문에 어떤 field, 말씀의 장(場)으로 나갈 일이 없어요.

사람 만날 때 사람이 알아듣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사람 만날 때…, 예를 들어서 상견례 할 때 잘 차려입고 가야 돼요. 사돈 될 사람과 초장부터 분위기 좋아야 하거든요. 안 그러면 파혼될 수가 있어요. 만날 때 신경 바짝 써서 만나는데, 평소에 잘 안 가던 한식당에 가서 고급 식사하면서 인사치레를 하지요.

위선 떨면서 “아이고, 딸내미 어떻게 그렇게 잘 키웠습니까?” “아이고, 사돈네 아들도 만만치 않아요.” 하고 붕붕 띄우는데 갑자기 성령께서, 성령께서…, 하여튼 성령께서는 눈치코치가 없어요. 마태복음 10장 20절에 보면,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성령이 우리 허락도 없이, 눈치코치도 없이 막 그냥 튀어나왔어요.

분위기 좋았는데, 결혼 성사 다 됐는데 “마귀를 대적하라!” 야고보서 4장 7절이 툭 튀어나와 버렸어요. 이거 어떻게 수습해야 돼요? “사돈요, 하나님께 순복하고 마귀를 대적하세요.” 사돈은 절에 가는데요. 거기서 하나님 거론해 버리고 마귀를 거론했어요. 사태 수습이 안 될 지경입니다.

그래서 저쪽 사돈이, “오늘 모임은 없는 걸로 하겠습니다.” “아직 식사도 못 하셨는데요?” “바쁜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하고 얼굴 새파래져서 먼저 나갔어요. 상견례 하는 날 무슨 바쁜 일이 있겠어요? 그렇게 나가면서 딸보고 “야, 네 남자 친구 이단이다. 어떻게 사돈들 앞에서 ‘마귀를 대적하라’는 그런 소리가 나오냐? 네가 보기에 내가 마귀냐?” “자상하신 아버지입니다.” “그렇지? 그런데 나보고 마귀래. 가자, 가자. 이 결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하고 완전히 엉망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단이 되지 않으면 구원도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기존 모든 인간이 마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창세기 3장에서. 인간 대 인간의 장(場), field에서는 이걸 못 알아봐요. 성경 안에 들어가야 나오는 겁니다. 이단이 되지 않으면 구원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단이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 인간은 죽지 아니하면 다시 사는 게 없어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하나님이 하는 일은 우리를 죽이는 일입니다.

보세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면서, 개구리밥의 세계에서 만나면서 얼마나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 오해하고 살았습니까? 이게 바로 악마가 우리를 이렇게 꼼짝 못 하게 묶어 놓은 거예요. 성경의 세계에 못 들어가도록 악마는 인간을 이렇게 훈련시켰습니다. ‘넌 너를 위해서 살아. 그러면 너는 이 세계에서 훌륭한 사람 되는 거야. 죽고 난 뒤에 어떻게 되는가, 그런 건 몰라도 돼. 네가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사람답게 네 앞가림 잘하고 훌륭하게 살면 모두가 칭찬해’라고 인간을 그렇게 만든 거예요.

‘가끔 교회도 나오고, 예수도 믿고, 하나님 믿고 그렇게 하면 칭찬받아.’ 그게 믿는 겁니까? 지금 갖고 노는 거죠. 하나님, 예수님 그거 왜 믿습니까? 자기를 위해서 믿는다는 이런 토대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 뭔가 도움 주고 행운을 줄 존재를 집어넣는 거잖아요. 이것도 뭉뚱그려서 자기를 위해 사는 거잖아요.

천국이라는 건 자기를 위해 살지 않는 사람이 가는 곳이에요, 자기를 위해 살지 않는 사람. 그게 만약에 대기업이라면 대기업에 취직 못 하고 불합격되면 어디 가느냐 하면, 자기를 위해 사는 중소기업에 다 집어넣어 버려요. 그 중소기업이 지옥입니다. 탈락했으니까요.

그래서 이 악마가 시키는 대로 이 땅에 사는 사람은, 자기를 위해 살기 위해 준비된 모든 것이 마지막으로 자기를 지키는 무기로 사용되는 세계, 내가 평생 살았던 모든 것을 ‘나는 날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라는 그 가치를 지키는 용도의 무기로 다 동원시킵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제가 두 가지 병원을 소개할 테니까 두 병원 중 어느 병원에 갈지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세요. 첫째 병원은, “아프면 오세요. 고쳐드리겠습니다.” 이 병원이 있어요. 여러분은 그 병원에 갈 겁니까? 두 번째 병원 소개합니다. “안 아파도 오세요. 아프게 해드리겠습니다. 왜? 여러분들이 아파 죽어야 그게 여러분한테 마땅하기 때문에.” 이게 두 번째 병원입니다. 어느 병원에 가실 겁니까?

아플 때나 가는 병원이겠습니까? 아니면 안 아프기 때문에 아파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프게 해달라고, 내가 환자임을 드러내는 병원에 가실 겁니까? 모든 악마에 속한 인간들은 첫 번째 병원에 갑니다. 왜? 나는 소중하니까요. 소중한 나를 위해서 의사가 나를 고쳐줘야 한다는 거예요. 이 병원을 악마가 원장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말합니다. “그 악마를 대적하라.” 이번에는 인간이 나서서 이 하나님의 뜻에 반대합니다. “악마에 대해서 대적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엔 악마가 없고 나만 존재하기 때문에 ‘나를 위해 하나님을 믿을 거냐, 마귀를 믿을 거냐?’라는 이런 질문 같으면 저는 ‘마귀 믿지 않고 하나님 믿겠습니다’라고 나오겠지만, ‘마귀가 어떻게 일을 했고 어떻게 마귀가 나를 어떤 인간으로 만들어놨는데 현재의 그 너를 위해서 살라고 하는 그 마귀를 대적하겠느냐?’라고 할 때 우리는 ‘그런 마귀는 없다’라고 말하면서 우리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을 계속해 나갈 겁니다.”

이 문제가 어떻게 하면 해결되겠어요? 어떻게 하면 천국이라는 대기업에 취직이 되겠습니까? 무슨 짓을 해도 자기를 위해 사는데, 자기를 위해 살지 않은 나라에 무슨 수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여기서 야고보는 1장 1절에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수십 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하는 겁니다. 이 열두 지파가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이스라엘에서 나왔어요. 이스라엘의 그 현장, 이스라엘 나라에만 있고 다른 민족에게서는 찾아볼 수도 없는 특이한 것이 이스라엘에게만 있다는 말이거든요? 그러면 이스라엘에 뭐가 있느냐 하는 거예요. 이스라엘에 뭐가 있는가?

이스라엘에는 진짜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안 찾아오면요, 인간은 마귀에 의해 이렇게 만들어졌다는 것, 마귀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그것을 몰라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그 구조 속에 진짜 하나님이 나타나 버리니까 지금 내가 안 죽으려고 하고 살아야 한다고 하는 이것이 마귀 작품이라는 것을 이스라엘의 율법을 통해서, 계시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된 거예요.

제가 어릴 때 봤던 <전설의 고향> 단골 멘트가 이겁니다. 갑자기 누가 등장하니까 이런 대사가 나와요. “귀신이야, 인간이야? 사람이면 정체를 밝히고 귀신이면 썩 꺼져라!” 이렇게 하잖아요. 귀신이면 썩 꺼지라고 하잖아요. 연세 드신 분들 전설의 고향 좀 보셨지요? “귀신이면 썩 꺼져라!” 하잖아요. 왜 귀신보고 자꾸 꺼지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이 전설의 고향 피디도 몰라요.

그런데 히브리서 2장에 보면 나옵니다. 14-16절에 보면 이렇습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여기 마귀 등장하지요? 말씀의 세계에서는 마귀가 등장해요.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죽기가 무서워서 “안돼 죽으면 안 돼.” “죽어도 살려줄게.” “싫어, 나는 아예 안 죽을래.” 하고 죽는 걸 무서워하는 모든 자를 살려주는데 그 모든 자가 뭐냐? 16절에 보면,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여기 ‘아브라함 자손’이 나옵니다. 마귀에 속한 자가 모든 민족인데 하나님께서 그중에서 모든 걸 제치고 오직 ‘아브라함 자손’에게만 ‘네가 마귀에게 속했다’라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마귀 품에서 주님 품으로 옮겨오는 작업을 위해서 하나님 쪽에서 그 장치, 시스템을 하늘에 만들어놨어요.

하늘에 만든 그 시스템, 장치를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통해서 이 땅에 설립하고 그 장치를 통해서 마귀에서 하나님으로 옮겨놓는 그 작업이 구약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 구약에서 하나님의 그 언약궤, 제단, 피, 그리고 백성들, 성막, 이런 장치를 하는 이유가…, ‘나는 나를 위해 살아야 돼.’ 모든 인간이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이스라엘 민족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나를 위해 살아야 돼.’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나를 위해 살아야 된다는 것, 나에게 좋으면 선이고 나에게 불리하면 악이라는 이런 선악 체계, 이것이 떡 하니 있으니까 주님께서는 어떻게 보느냐? 그것이 악마가 쏘는 표적지가 된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은 뭐냐? 그 표적지를 뜯어내는 거예요. 나를 위해 사는 것.

한 번 이렇게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의 여권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집 거실에 턱 하니 붙여 놓고요, 그러면 마귀가 수시로 내 사진을 표적 삼아 화살을 슈슈슈, 하고 쏘아 날리는 거예요. 내가 만약에 미국으로 이민 간다면 미국에서 기다리는 마귀가 슈슈슈, 하고 쏘아대는 거예요.

성경 누가복음 11장 24-26절에 보면,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이것은 뭐냐 하면, 자기만의 정결하고 깨끗하고 거룩한 인간을 마련한다고 할지라도 귀신이 들락거리는 것을 막을 능력과 재주가 인간에게는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악마의 밥입니다. 그리고 악마가 날마다 쏘아대는 표적지고요. 그러니까 인간은 거기에 대해서 악마라는 존재를 몰라요. 악마라는 존재를 모르는데, 맨날 느끼는 것은 뭐냐 하면, ‘내가 나를 위해 사는 데 왜 이 세상에 지장 되는 게 많은가? 왜 내 뜻대로 원대로 내 인생이 안 풀리는가? 착하게 한번 살아봐? 뉴질랜드에 이민을 가봐? 직장을 바꿔봐? 기도원에서 기도를 해봐? 교회를 나가봐…?’

어떤 노력과 시도를 하더라도 내 것은 결국 내 거잖아요. 내 것을 내가 쥐고 있는 한 죽기를 무서워하는 이러한 본성은 떠날 생각이 없네요? 왜? 그걸 마귀가 집어넣었기 때문에. 죽기가 무서워서 늘 진동하는, 늘 진동…, 바들바들 떨면서 살아요. ‘진동’하니까 생각나는 게 하동 근처 톨게이트 이름이 진동이에요. 그런 마을이 있어요. 그 이름이 특이한데 늘 우리 인생은 불안정하고 진동해요.

앞으로 난 어떻게 될 것인가, 주위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 인생을 살려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고, 어떤 자격증을 따야 하고…, 항상 진동해요. 이게 하나님 말씀의 세계에서는 뭐냐? 죽기를 무서워해서 벌벌 떠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의 방법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그 표적지를 떼버립니다. 표적지를 떼버리니까 그 뒤에 나타난 것이 뭐냐? 예수님의 피였어요, 피, 예수님의 피!

‘너는 이미 나와 함께 죽었다’는 겁니다. 마귀는 우리보고 죽지 말라고 하고, 주님의 병원은 뭐냐? “내가 너를 죽일게. 다시 부활시키면 되잖아.” 이게 주님이 만든 병원입니다. 여러분, 지금 결정하세요. 어느 병원에 갈 겁니까? “계속 너를 위해서 사는 데에 하나님 내가 도와줄게!” 이 병원에 갈 거예요? 아니면 “어차피 버린 몸 주여, 죽여주옵소서. 나를 죽여서 더 이상 마귀의 표적지 ‘나를 위해서 살아야 된다. 나한테 이익이 되도록 살아야 한다, 내 행복대로 살아야 한다’는 이 표적지 자체를 주님이 좀 찢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없애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꿀 발라놓고 벌 오지 말라는 게 말이 돼요? 마귀가 심어놓은 선악, 네가 잘해야 산다는 것, 이 선악 체계가 온몸에 묻어 있는데 마귀보고 “오지 마. 가, 가, 가!” 마귀가 말합니다. “청소 깨끗하게 해놔. 내가 더 악한 일곱 귀신 데리고 네 집에 들어갈 거야. 평소에 너 귀신하고 살았잖아. 더 심한 귀신 내가 보낼 거야.”

언제까지 귀신하고 동거할 거예요? 오늘 말씀은 뭐냐? 마귀를 쫓아내라, 대적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마귀를 대적한다’는 거예요. 자, 이 장치에 대해 좀 더 설명합니다. 이 장치를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느냐? 언약궤가 있어요. 언약궤 중심으로 하나님이 장막을 만들어놨습니다. 장막을 만들고, 그다음에 그 장막 근처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진해 놨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를 위해 살아요. 하나님을 믿고 어쩌고, 그것과 관계없이 무조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단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마귀에 속해 있습니다. 자기밖에 몰라요.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그 성막 중심으로, 언약궤 중심으로 완전히 둘러쳐져 있습니다. 그때 중요한 인물이 등장해요.

제사장이 말합니다. “백성들아, 다른 것에는 다 갈 수 있어도 여기는 가까이하지 못한다.” 가까이하지를 못해요. 언약궤에는 가까이하지를 못합니다. 가까이하게 되면 넌 죽는다는 거예요. 넌 죽는다. 그러니까 악마가 나를 죽이는 죽음보다 더 센 죽음, 더 센 죽음이 있는데 이러면 죽음이 두 종류에요.

보통 인간이 죽는 죽음은 악마도 알고 있어요. 이 세상의 모든 죽음은 악마가 아주 고소해 하지만 한 분의 죽음은 건드리질 못합니다. 왜? 그분의 죽음은 죽었다가 살아나기 때문이에요. 신약에 나오는 십자가 죽었다가 부활하는 그 예수님이 이미 구약의 죄 씻는 장치에 박아놓은 것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바로 희생제물의 피가 언약에 묻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그 길을 위해 가까이 오면 안 돼요. 피해야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저 천국 가고 싶어요. 그런데 난 나를 위해 삽니다. 어떻게 해결책이 있겠습니까?”에 대해서 하나님의 답변은 뭐냐? 넌 지금 ‘하나님 있고, 마귀 있다’ 이렇게 두 존재만 생각하잖아요? 구약부터 내려오는 성경의 핵심은 뭐냐? 하나님, 마귀 말고 제3의 존재를 거기에 내세웁니다. 그게 뭐냐 하면,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을 이 하나님과 마귀가 있는 세계에 집어넣어 버려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인간은 마귀와 한통속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망해야 되는 겁니다. 망해야 되는데, 이 망하는 인간이 어떻게 천국에 합격이 되느냐? 그것은 제3의 분이 많은 인간 가운데서 자신의 피로 죄를 없애줬기 때문에 천국이 성사가 돼요. 우리가 죽는 이것은 변동이 없어요. 죽어야 돼요. 죽는데 그냥 죽지 않고, 그냥 죽지 않고 예수님의 죽음을 거기에 섞어 넣어서 죽어버리는 죽음을 시도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스가랴에 나와요. 스가랴 3장 1절에서 5절에 보면,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악마)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어떻게 책망하는지 그 이유가 나와요. “…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 이스라엘을 택한 여호와죠.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예루살렘이 불타 버려요. 하나님의 성전도 불타고 다 불타 버려요. 그러니까 그 백성들이 불탔다고 보면 돼요. 불탄 백성들중 한 사람이 누구냐? 여호수아 제사장이 불탔기 때문에 그 재가 남잖아요. 옷이 시커먼 거예요. 불에 그슬린 시커먼 옷을 입고 있을 때 하나님이 악마를 책망하는 방법이, -우리를 책망하는 것이 아니고, 그동안 우리는 악마와 한패를 먹었으니까 우리를 책망하는 게 아니고- 우리를 붙잡고 있는 그 악마를 책망하는 방법이 뭐냐?

옆에 있는 천사보고 하는 말이 “천사야.” “예.” “저 여호수아가 입고 있는 옷을 벗겨라. 더러운 옷을 벗겨라. 그리고 깨끗한 옷으로 입혀라. 이것으로 악마야, 내가 너를 책망한다”는 거예요.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우리의 더러운 옷 벗기고 깨끗한 옷으로 입은 것뿐인데 책망은 누가 받는가? 그동안 우리를 붙잡고 안 놔주던 악마가 책망을 받는 거예요. 이 방법이 바로 흩어진 열두 지파 이스라엘에게 구약으로 이미 주어졌어요. 이게 말씀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24시간 인간관계밖에 모르잖아요. 사람 관계밖에 모르잖아요. 그 개구리밥같이 꽉 인생을 덮고 있는,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모든 것으로 덮여 있는 것을 주께서는 성령을 통해, 말씀 세계를 통해서 그 개구리밥을 제치고 그 안에 들어있는, 거기에 가려져 있던 말씀의 세계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말씀의 세계에서 우리는 철저하게 우리 자신으로부터 손을 떼기를 원합니다. “손 떼, 손 떼!” “누구한테서요?” “네가 너한테 손 떼. 네가 너를 관리하지 마. 너는 이미 버린 몸이야. 자꾸 너한테 미련 두지 마.”

이 엄청난 반말 조의 이야기가 마태복음 10장에 나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구약에 이스라엘이 있다. 순서를 잘 따라오세요. 구약에는 이스라엘이 있다 → 이스라엘에는 다른 민족에게는 없는 성막이 있다 → 성막 안에는 언약궤가 있다 → 언약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 언약궤에 얼씬도 못 한다 → 대제사장만큼은 1년에 한 차례씩 피를 가지고 지성소 안에 들어가서 언약궤 위에 바른다 → 바르게 되면 그 한 해의 백성들의 모든 죄, -알고 지었든 모르고 지었든- 그 모든 죄는 한꺼번에 용서가 됩니다.

성경에서는 그 희생양이나 소 염소가 산 채로 가는 것이 아니고, 죽은 채로 들어가요. 죽었기 때문에 피가 흘렀고 죽었기 때문에 흘려진 피, 안 죽으면 생기지 않는 그 피를 하나님의 언약궤,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에 제사장이 들고 들어갑니다. 그러면 죄를 없애는 방법은 아예 우리를 죽이는 방법이에요. 우리는 죽이는 방법입니다.

죽이는 것이 방법인데 희생제물을 대신 죽이는 방법으로, 그런 장치가 있음으로써 ‘우리가 특별하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택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려주는 거예요. 출애굽기 4장 23절에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내 아들을 놓아줘라. 왜? 그들은 내 아들이니까.’ 이러한 작업의 시작이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니고, 우리가 요청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쪽에서 이미 택한 백성에게 이 작업을 실시해 온 거예요. 벌써 예수님 쪽에서 자기 백성을 못 놓겠다고, 천국 대기업에 취직시키겠다고 이미 작업을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여러분이 마귀라고 생각한다면, -아까는 마귀라고 했는데 좀 더 완화해서 마귀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책을 세우겠습니까?

질문을 그렇게 해 보세요. 여러분이 마귀라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 용서해서 건져내는데 여러분이 마귀라면 어떻게 반발하고 반응하겠습니까? 강의 시간 같으면 한 분 한 분 물어보고 싶습니다. 대책 뻔합니다. “네가 그걸 믿어라. 그걸 받아들여라. 네가 순종하라.” 여기 순복하라고 되어 있어요. “순복하라. 네가 마귀를 대적하라. 성경대로 살면 된다.” 이렇게 마귀가 부추길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부추길 거예요.

마귀가요, 이미 교회를 장악했으니까 그렇게 시킬 거예요. 그런데 제가 아까 분명히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일에 대해서, 우리를 죄용서 하는 일에 대해서 인간은 관여할 수가 없습니다. 관여할 수가 없다면 관여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야 하겠지요. 그게 마태복음 10장에 나오는데 그냥 아무 짓도 안 하고 듣기만 하세요.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그다음에 참새 두 마리 나옵니다. 29절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이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악마의 장마당이라는 거예요, 시장터라는 겁니다. 시장터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구성된 세상에서 본다면 참새가 팔리는 그것도 ‘산 사람이 있고 판 사람이 있다’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것은 하나님의 허락하에 이루어진 일이라는 겁니다. 네 인생은 하나님의 허락하에 움직여지는 거예요.

‘그동안 인간은 배후에서 악마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인 것처럼, 악마가 조율한 대로 악마가 배치한 대로 흘러가면서 인생을 살아온 것처럼 이제는 하나님께서 조율하시고 배치해서 일을 할 테니까 너는 딴 것 아무것도 하지 말고 두려워 말라.’ 이것은 뭘 하라는 것보다 더 어려워요. 30-31절에,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두려워 말라. 네 몸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 말라.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는 자를 두려워하라.’ 일관되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그 이야기를 하십니다. 지금 여러분은 이것이 감(感)이 잡히려면 뭐가 감이 잡혀야 하느냐? 주께서 부활해서 일하신다는데 주께서 살아계셔서 일하시는 그것을 내가 감을 못 잡는다는 이것이 문제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 잡히게 하는 그 방법이 뭐냐 하면, 성경을 가지고 줘요. “마귀를 대적하라.” 그러면 마귀의 존재를 기정사실로 잡지요. ‘갑자기 마귀를 대적하라? 마귀를 대적하면 이단 되는데?’ 그러면 주께서 ‘이단이 되지 않으면 구원도 없다.’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이단이에요. 창세기 3장에 의하면.

보세요. 그동안 인간들이, 교회가 얼마나 사람을 속여왔어요? 이단 되면 안 된다고요? 인간은 모두가 이단이에요. 모두가 이단입니다! 뭘 이단 되면 안 돼요? 사람들 만나면 마귀는 빠지고…, 아니에요! 성경에는 마귀 이야기가 들어온다고요. 마귀가 뭐 하는데요? 우리가 죽는 것을 무서워하도록 뒤에서 그렇게 조종해 왔잖아요.

어쨌든 죽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기어이 살아 남아야 된다는 거예요. 누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마귀를 빼지만 마귀의 영향력은 ‘나를 위해서’입니다. ‘절대로 남은 망해도 나는 망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마귀에게 감잡히고 살아왔어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감은, 주께서 부활했다는 그 감은 이겁니다. 하나님 일에 우리가 낄 자리가 없다는 거예요. 가까이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주께서 혼자 다 했다는 겁니다. 이것에 대해서 여러분이 고민이 되지요. 내가 끼지도 않았는데 결과는 내 구원, 천국? 이게 어떻게 말이 됩니까? 여러분은 뭔가 전에는 날 위해 살았지만 이제 하나님 믿고 하나님 일을 하고 싶어 하지요. 아주 멋들어지게 선교도 하고 전도도 하고 싶어 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주의 일이 아니거든요.

이러한 궁금증이 그 당시 예수님 따라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있었어요. 요한복음 6장 27-28절에,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요 질문, 이 질문은 교회 50년, 60년 다녀도 끊임없이, 매일 같이 일어나는 질문이에요. 그 질문을 대신 해주니까 얼마나 고맙습니까? ‘무엇을 하여야 주의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29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나님, 마귀 들린 나, 둘 다 제치고, 둘 다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겠다는 그것도 사실은 나에게서 나온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그 하나님은 엉터리 하나님이에요. 그 하나님 제치고, 마귀 제치고, 믿을 것은 뭐냐? ‘하나님이 보내신 자, 제3의 인물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주체가 바뀌는 거예요.

‘내 인생 내가 산다’가 아니라 주께서 내 인생을, 이 땅에서 우리를 죽여서 기어이 지옥 불, 유황불에 들어가지 않도록 사전에 유황불에 참여하는 그 마귀의 표적지를 뜯어버리고 그 자리에 예수님의 피를 우리의 존재의 바닥에 깔고, 모든 것이 피에서 나오는 그 field, 그 장(場)으로 나오는 것, 그 부활의 결과물로서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 살게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마귀는 여기에 대해서 ‘너 챙겨!’ 너를 챙기라고 합니다. 이게 뭐냐? 장(場)에서 국소화 시킨다, 특정 지역을 특정화시킨다, 국소화시킨다는 말이 그 말이에요. ‘너, 네가 중요해. 네가 중요하다고!’ 악마는요, 하나님이 하시는 그러한 말씀에 대해서 악마도 악착같이, 자기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 계속 우리 자신을 향해서 ‘네가 이번에 착했어, 선했어? 네가 바르게 살았어, 나쁘게 살았어?’ 계속해서 선악 체계 가지고 우리를 끝까지 몰아붙입니다. ‘바르게 살아야 복을 받지!’ 이런 식으로요.

끝으로 이 말씀 하고 마치겠습니다. 이게 장소 문제예요, 장소 문제입니다. 여러분, 다 아는 이야기 할게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일하기 전에 어디를 갔는가? 세례요한 만나러 갔어요. 세례요한이 어디에 있었는가? 광야에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무슨 일을 했는가? 국소화된, 곧 뾰족하게 지점화 된 나를 물이라는 장(場), field에다 잠기게 해서 없애버렸어요.

‘너는 이제부터 물속에 잠긴 자’라는 것이 물세례입니다. 물에 녹아져야 해요. ‘중요한 그것은 이 물이 중요하지, 네가 중요하지 않아.’ 하고 물에 집어넣습니다. 사람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 물에 들어갔어요. 물에 들어간 이유를 모릅니다. 그런데 그 물속에 누가 들어가느냐 하면, 하나님이 유일하게 죽었다가 살리는, 곧 부활의 능력을 지니신 분이 그 물에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만납니다.

물에서, 즉 주를 만나는 장(場)이에요. field에요. 공간입니다. 공간에서 예수님이 일한 거기에 같이 묻혀서 들어가는 거예요. 예수님이 잉크를 뿌리면 그 잉크가 몸에 붙도록 주께서 잉크 뿌린 그 물속에 우리를 집어넣는 그것이 물세례에요. 물속에 들어갔지요. 들어갔다 거기서 나와서 음성을 듣습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7). 그다음에 나오는 말이 뭐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그가 너에게 어떤 field, 예수님이 만든 어떤 부활의 영역을 너희에게 공급해 줄 것이다, 맞닥뜨리게 할 것이다.’ 그 세례를 줘요. 그게 성령세례입니다. 장차 예수님이 우리에게 성령세례를 줘버려요. 그러면 개인적인 사정은 날아가고 예수님의 피가 우리에게 묻히게 되는 겁니다. 그 예수님이 먼저 어디를 가느냐?

마태복음 4장에 보면 광야에서 악령을 만나요. 마귀를 만납니다. 마귀를 이긴 자는 없어요. 그런데 인간을 이긴 마귀를 만나서 마귀하고 예수님하고 한바탕 붙습니다. 붙고 난 뒤에 예수님은 ‘나는 모든 말씀, 말씀의 세계를 다 이루어서 내가 내 백성에게 그걸 그냥 나눠주는 거’예요.

다 이루었다고요. 죄 없다고요. 죄 없다. 누구 때문에? 예수 믿어서? 아니에요. 예수 믿어서 다시 국소화되면 안 돼요. 내가 예수 믿어서 구원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믿음이 우리에게 닿아서 죽은 우리가 그 예수의 믿음으로 부활의 세계에 가는 겁니다. 부활의 세계에 합격하는 거예요. 여러분, 들어보니 어떻습니까?

지금도 마귀가 어떤 점에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공략하는지? ‘똑바로 살아야 구원받아!’라는 그 말이 여러분을 괴롭혀 온 악마의 말인 것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일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고마워하고 또 고마워하고 사랑해야 할 분이 우리 주님인 것을 우리는 왜 자꾸 자주 놓치는지.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뤘다는 그것을 모르고 국소적으로 내가 뭘 해야 하느냐에 꽂힐 때 악마가 준 협박과 공갈도 함께 우리에게 덮친다는 것을 이제는 눈을 밝히 열어서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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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 우리교회 아무 것도 아닌 존재260802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26-08-02
21,071 설교 마귀를 대적하라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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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9 우리교회 동행의 끝 260726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26-07-26
21,068 우리교회 예수님 시험 260726 시편 최고관리자 26-07-26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