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뿐인 입법자
야고보서 4:11-12 하나뿐인 입법자
법이 없다는 것은 법이 저촉되는 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법이 있다는 것은 법에 저촉받을 대상자가 등장했다는 말입니다.
인간 존재보다 법이 먼저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
인간보다 법이 우선이다 는 사실을 기피하는 방법은 인간 손에서 인간을 위하여 법을 따로 제조하면 될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재판관들입니다.
이 법은 다음과 같은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고전 6:1-3)
성도들이 자체적으로 불의한 자앞에서 그들의 판단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불의한 자에게서 나오는 모든 법은 천사나 영적 존재의 기반을 알지 못하기에 그 자체로 옳지 못합니다.
따라서 자신이 불의한 존재를 밝혀줄 토대가 없기에 무조건 자신들이 정당하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즉 그들의 판단과 판결의 목표는 결국 ‘나는 제거 대상이 아니고 심판받은 대상이 아니다’를 밝혀보려는 것에 있습니다.
심지어 이런 의식으로 그들은 성경을 봅니다. 그들은 구원이란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모든 행동은 ‘나는 무조건 옳다’에서 나오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구원은 무조건적으로 입법자이신 주님께 있다고 단언하십니다. 이는 인간 자체가 멸망당해야만 하는 대상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법은 이 멸망의 당연함을 알리기 위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