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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6대구강의]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25 - 회개 만들기설교

[26대구강의]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25 - 회개 만들기

26,07,06 강의 : 이근호, 정리 : 구득영

* 북경으로 향하는 기차 !!

오늘은 교재 219페이지의 '3) 회개에 대해서' 라는 부분부터 해보겠는데, 이것을 하기 이전에 218페이지에 있는 글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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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시간 기차를 탈 때는 졸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때 '다음 역은 북경역입니다' 라고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것은 졸고 있는 사람에게 '이제 깨서 북경역으로 기차를 운전하세요' 라는 것입니까? 그런 말이 아니고, '당신은 이미 북경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라는 사실을 알리기 하기 위함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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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하면 인생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자기가 운전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방향 이미 좋든 싫든 북경으로 가고 있다는 말이죠. 여기에서 '북경' 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이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라는 강의를 제가 북경에서 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ㅋㅋ).

그곳이 북경이 맞는지 지금 헛갈리는데, 아무튼 "북경으로 향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라는 말이죠. 그러니까 성령께서 우리를 보고 하라고 하는 게 아니고, 성령께서는 그때그때마다 우리의 졸음을 깨우신다는 겁니다. "야 이놈아, 정신 차려라" 라는 차원이라는 것이죠.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한다" 라고 하는 것은 꿈인데, 우리는 그렇게 꾸벅꾸벅 졸고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아, 그런 환경은 무엇과도 같은고 하니, 자기 주변에 무엇이 있습니까? 환경이 없는 자기는 없다는 말이죠.

그러면 이 환경이 무슨 환경이냐 하면, 약속대로 형성이 되어있는 환경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누구와 관련되어 있느냐 하면, 예수님과 관련이 되어있다는 말이죠. 예수님께서 환경을 일방적으로 조성해놓고, 그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간 사람의 경우에는, 이 환경에 따라서 조는 사람을 성령께서 오셔서 깨우면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졸 때 아무런 생각이 없습니까? 아니면 꿈을 꿉니까? 졸면서 지금 자기가 있는 곳이 기차인지 집인지 분간을 하지 못하면서 꿈을 꾸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죠. 환경이 있는데, 그 환경은 실제 현실이라는 겁니다.

* 현실이 아닌, 자기 중심의 환경 !!

그런데 그 현실이 아닌, 자기가 꿈을 꾼다는 것은 자기가 만든 무엇이 되겠어요? 그것은 자기가 만든, 자기 중심의 환경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이 환경이 어디서 나왔냐 하면은, 이 환경은 살아가는 동안의 경험에서 나오고, 그 경험이 모이면 무엇이 되느냐 하면, 그게 기억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기억 안에는 무엇이 있느냐 하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인데, 기억이 이것을 만들어낸다는 말이죠. 그런데 졸다가 깨보니, 이 환경은 과거입니까? 현재입니까? 미래입니까? 어느 쪽입니까?

* 영원한 현재, 곧 예수 안 !!

무슨 말인고 하니, 바깥 환경, 즉 꿈과 같은 환상 속의 자기 세계에 위에서 약속대로 만들어 가는 하나님의 환경은 과거일까요? 현재일까요? 미래일까요? 하여튼 여기 대구는 조용한데(ㅋㅋ), 이게 바로 영원한 현재라는 겁니다.

영원한 현재, 이것을 곧 '예수 안' 이라고 한다는 것이죠. 혹은 '성령 안' 이라고 하는데, 즉 "잠을 좀 깨라" 라는 겁니다. "너는 사나 죽으나 이미 천국 안에 있다" 라는 것인데, 이것이 로마서 14장에 나오는 말씀이라는 겁니다.

(롬 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롬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 내 현실은 따로 있다 !!

그러면 이미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은 이미 어디에 도착을 했어요? 천국에 도착을 했다는 말이죠. 그렇게 도착을 했는데, 그런데 인간의 이런 경험과 기억. 이것은 육신이라는 겁니다. 그런 육신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천국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우리가 일방적으로 우기고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여기는 아직 천국이 아니야. 이게 무슨 천국이야? 날씨가 더워서 잠도 못 자는데" 라고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가 만든 자기의 경험, 즉 자기의 과거기억에 의해서 뭉쳐진 경험인데, 우리는 그렇게 우기고 있다는 말이죠. 현실은 전혀 그게 아닌데, 그런데 우리는 "내 현실은 따로 있다" 라고 한다는 것이죠.

* 타인들의 군집 !!

여기서 좀 더 나가보겠습니다. 경험, 즉 기억이 있잖아요? 이 경험과 기억 속에, 그런데 이것은 자기가 만든 겁니다. 자기가 만든 환경, 그렇게 자기가 만든 것은 반드시 누구 중심이죠? 예수님 중심이 아니고 자기 중심이라는 말이죠.

그러한 자기 중심의 환경에 경험이 있는데, 이 경험 안에 무엇이 들어있냐 하면, 이게 오늘 강의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인데, 그 경험 안에 누가 있냐 하면은, 그게 '타인들의 군집' 이라는 겁니다. 이 타인이라는 것은 남인데, 즉 '타자' 라는 말이죠. 자기가 만난 타인들의 군집, 이게 경험으로 되어있다는 말이죠.

* 자기 것이 된 타인과 헤어진 타인 !!

이 타인, 여기엔 자기 경험상 두 종류가 있다는 겁니다. 하나는 뭐냐 하면, 자기 것이 된 타인, 그리고 헤어진 타인이라는 말이죠. 여기서 자기 것 된 타인은 자기 소유가 되고, 이미 헤어진 타인은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원수가 되든 뭐가 되던 자기 게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면 이 '군집' 이라는 것은 한 두 개가 아니라는 것인데, 이것은 자기 것이 된 타인들의 모임이나 집합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바로 자기 인생의 무엇이 된다는 겁니까? 그것이 경험이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여러분이 과거의 기억을 말하면 주로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남들과 만난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동호회나 교회에서 누구를 만난 이야기를 하는데, 그래서 "그 사람이 요즘 안 보여.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라고 한다는 말이죠.

이런 것이 다 무엇입니까? 자기 기억화가 된 타인인데, 혹시 여러분은 트럼프가 이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아십니까? 그것을 알 필요가 없는데, 왜냐하면 자기가 트럼프를 기억은 하지만, 자기 것이 된 타인인 트럼프는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타인들의 군집이 무엇을 형성하는고 하니, 그게 바로 자기 기억을 형성하고, 그런 자기 기억이 곧 자아가 되고, 그렇게 자아가 되는 여기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죠.

* 처음부터 다시 !!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꿈을 꾸는데 성령이 와서 뭐라고 합니까? 이 꿈이 뭐냐 하면 개꿈인데, 즉 헛된 꿈이라는 겁니다. 부질없다는 말이죠. 현실은 주님의 약속대로 되는데, 우리는 어디에 고집을 부리느냐 하면은, 자기 현실에 아주 몰입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까 했던 이야기를 여러분에 묻겠는데, 성령께서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지금 이 기차는 어디로 간다는 겁니까? 사실은 성경은 더 어렵게 이야기를 하는데, "너는 이미 천국에 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서도 성경에선 인간의 육을 생각해서, "천국에 이미 있다" 라는 것을 "너는 천국으로 가고 있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어적 육신의 한계 때문에 "천국이 있다" 라고 하면, 그게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는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것이 무슨 천국이냐?" 라고 나오는데, 하지만 천국 안에 있는 자만이 어디로 갑니까? 기차를 탄 사람만이 천국에 가는데, 이게 같은 말이라는 겁니다. 즉 "천국 안에 있기 때문에 너의 미래는 결정되었다. 천국으로 가고 있다. 그래서 너의 잠을 깨우겠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 회개에 대해서 !!

여기서 교재 210페이지를 보면, 오늘은 회개에 대해서 하겠는데, 처음에는 선택을 이야기했고, 그 다음에는 소명을 이야기했고, 기억이 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ㅋㅋ).

이게 뭐냐 하면, 성령께서 선택을 이야기하고, 그리고 성령께서 소명을 이야기한다는 말이죠. 오늘 이 시간에는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또 하나의 비품을 구경시켜주시는데, 그 세 번째가 '회개' 라는 겁니다.

* 회개란, 자기 환경에서 약속의 환경으로 옮겨지는 것 !!

이 회개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까, 그게 벌써 나왔는데, 이 회개는 자기가 만든 환경에서 어떤 환경인고 하니, 이미 하나님의 약속의 환경으로 옮겨지는 것, 그것을 두고 '회개'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여기서 어려운 질문을 하겠습니다. "회개를 해야 구원을 받습니까?" 라는 것인데, 즉 회개를 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느냐는 겁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내가 해결한 행동을 해야 구원을 받는가?" 그게 아니라면, "내가 나에게 해결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가?" 라는 것이죠.

* 인간은 회개할 줄 몰라 !!

질문 자체가 잘못인가요? (ㅋㅋ) 정답을 말씀해드리겠는데, 인간은 회개할 줄을 모른다는 겁니다. 인간은 회개할 줄 모르는데, 인간이 자기 세계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것, 그것을 회개가 아니고 반성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반성, 그게 교재 220페이지에 나오는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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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과거에 똑바로 가겠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뒤돌아보니까 너무 삐뚤삐뚤 엉뚱한 길로 갔어요. 그래서 '아, 내가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구나' 라고 하고 하면서 되돌아가는 것을 반성이라고 합니다. 어느 도둑이 '내가 다시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으리' 라고 하고 교도소에서 다짐을 했는데, 그런데 출감한 후에 다시 도둑질을 했습니다. 그리고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회개입니까? 반성입니까? 반성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기껏 돌아가 봐야 과거에 정해놓은 규칙인데, 하지만 그것은 영적 규칙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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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개인가? 반성인가?

그러니 인간이 말하는 회개는 무엇입니까? 그게 곧 반성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 현실을 완벽에 가깝게 단도리를 하는, 즉 잘 단속을 규칙이지, 그것은 결코 자기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렇다고 하면, 여기에 대해서 "목사님, 어떤 사람은 빠져나왔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 사람의 경우에, 그게 반성이 아니고 회개라고 하는 성경기준이 혹시나 있습니까?" 라고 물으신다면, 그러면 저는 "예, 성경에 있습니다" 라고 답변을 해드릴 수가 있다는 말이죠.

여기서 마태복음 21장을 보겠는데, 17절에서 32절입니다.

(마 21:27)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마 21: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마 21:29)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마 21: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마 21:31)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마 21: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포도원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가 있는데, 아들이 두 명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포도원은 천국을 의미하는데, 아버지가 첫째 아들에게 "가서 일을 해라" 라고 하니, 그 아들이 "예, 가겠습니다" 라고 하고는 열심히 율법을 공부한다는 말이죠. 이게 누구인고 하니, 예수님을 쳐죽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라는 말이죠.

그리고 둘째 아들에게도 이같이 말하니, 그 아들이 "아뇨, 싫습니다" 라고 하고는, 그 이후에 뉘우치고 갔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이들 두 아들들 중에서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냐?" 라고 하니, 그것을 듣고 있는 자들이, 그들이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인데, 그들이 "그것은 바로 둘째 아들입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여러분, 과연 이 대답이 맞습니까?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했느냐는 질문을 예수님이 했고, 거기에 대해서 답변을 사람들이 한다는 겁니다. 첫째 아들이 아니면 둘째 아들이라고 답변을 할 수가 있는데, 그들은 "둘째 아들입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이 대답이 과연 맞느냐는 겁니다.

* 과연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지금 잠시 침묵이 흐르고 있는데(ㅋㅋ),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했습니까? 첫째가 맞습니까? 둘째가 맞습니까? 둘째 아들이 맞다는 것을, 그 당시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이 알고 있는 이 상식을 엎어버린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아버지의 뜻대로 한 자는 첫째도 아니고 둘째도 아니고, 정작 이 말씀을 하는 예수님이라는 말이죠. 예수님 본인이 정답인데, 왜냐하면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인간이 내 말을 지킬 수 있다" 라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요? 그것은 우리 인간은 제 아무리 지키려고 해봤자, 그것은 자기의 경험과 기억인데, 그러니 그것은 주님께 가는 것이 아니고, 쪼르르 다시 자기 쪽으로 돌아와 버린다는 말이죠.

만약 실제로 이런 포도원에 아들이 둘이 있다고 하면, 둘째 아들은 주님께 가는 사람이 아니고, 아버지의 말대로 잘했다고 스스로 자화자찬을 하면서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자기 자신에게로 가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회개가 아니고 반성이라는 말이죠.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라고 하셨는데, 그야말로 충격적인 말씀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세리와 창기가 회개를 했습니까? 조금 전에 인간의 전제는 뭐라고 했습니까? 인간은 회개할 수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인간은 회개할 수 없다는 말이죠.

강의가 이쯤 되면, 벌써 여러분은 제가 첫 번째로 이야기했던 북경으로 향하는 기차는 다 잊어버렸지 싶은데, 그렇지요? (ㅋㅋ) 북경으로 가는 기차의 경우에, 그게 그 안에 탄 사람이 운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 염치불구한 동행 !!

다시 말해서, "내 인생은 내가 운전하는 게 아니다" 라는 것인데, 그냥 타고 가는 것이란 말이죠. 이해를 하시겠지요? 그러면 여기서 기차가 누구인고 하니,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우리가 염치 불구하고 동행하고 있다는 말이죠.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려고 가는데 누가 염치 불구하고 뒤를 따라 갑니까? 이삭이 따라 간다는 겁니다. 이삭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물론 아브라함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죠. 그런데 아브라함이 "잘 걸렸다. 너를 잡아야 되겠다" 라고 하면서, 아들을 잡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 이삭이 도망을 칩니까? 도망을 칠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북경으로 가는 기차가 시속 300km를 달리고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탈출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이게 바로 복인데, 주님께서 강제로 천국으로 데리고 가는데, 여기서 우리는 꿈은 맨 날 꿀지언정, 주님이 운전하시는 그 성령의 기차에서 탈출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반성밖에 할 줄 모르는 인간들에게 우리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회개' 라는 탈출이 전혀 되지 않는 공간을 이제부터 말씀을 통해서, 즉 십자가를 통해서 만들어내신다는 말이죠.

다시 반복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인간은 회개하지 못하는데, 그런데 회개하는 공간을 누가 만들어낸다는 겁니까? 아버지를 아시고 성령이 일하시는 예수님께서 회개하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는 겁니다.

* 회개를 당하는 인간 !!

그러면 이제 남은 문제는 무엇입니까? 회개가 안 되는 인간을 회개하는 공간으로 집어넣게 되면, "회개하라. 회개하면 구원을 받는다" 라는 그 말씀을 회개를 당하는 인간이 실현한 겁니까? 그게 아니면 회개를 만드신 예수님이 그렇게 해주시는 겁니까? 어느 쪽입니까? 예수님이 해주는 것이란 말이죠.

그러면 회개하면서 그 모든 공로와 영광을 누구에게 돌리겠습니까? 당연히 주님께 돌리는데, 지금 예수님은 그 방법을 사용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줍지 않게 회개도 아닌데 회개인 것처럼 주장들을 것들을 우리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회개도 아닌데 회개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을 제가 하나 준비했는데, 오늘 준비물이 여러 가지라는 겁니다. 제가 조금 전에 인간의 경험 안에 남, 즉 타자가 들어있다고 했는데, 즉 자아 안에 타인이 가득하다는 말이죠.

자기가 만났던 남들, 그것 때문에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라는 겁니다. 이 '나' 라는 자아 안에 타자, 즉 자기와 결부된, 자기가 만났던 남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는 말이죠. 이 스토리가 인생인데, 그러니 인생은 하나의 소설책이라는 겁니다.

그 소설책의 등장인물이 누구니까? 주인공은 '나' 라는 것이, 그 다음에 보조로 등장한 게 타인들이라는 말이죠. 여기에서 '기도' 라는 노래를 소개해드리겠는데, 그 가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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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RAYER ]

안드레아 보첼리 & 셀린 디온

주님이 우리의 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 관한 일을 지켜주소서.

갈 길을 잃었을 때 지혜를 주소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드립니다.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이때에 행할 곳을 인도해주소서.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소서.

주님의 빛을 찾기를 기도합니다.

별빛이 없는 깜깜한 밤마다 주님이 우리의 영원한 별빛,

이것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앞길을 어둠이 덮일지라도,

행할 것을 인도해주시고 자비로 인도하소서.

믿음을 굳게 하셔서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소서.

우리는 더 이상 폭력이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정의와 희망이 살아 숨쉬는 세상 되기를,

모든 이들이 자기의 이웃과 악수하는 세상을,

형제 같은 사랑으로 평화의 상징이 되는,

그런 사랑을 간절히 구합니다.

자비를 베푸신 하늘에서 우리를 굽이 살펴주소서.

이 세상의 모든 영혼들을 사랑해야 될,

또 다른 영혼을 찾을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세상 모든 모든 어린아이 같은,

그런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소서.

믿음을 주소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소서.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불타게 하시오니,

우리를 구원해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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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투적이고 종교적인 멘트 !!

여러분, 어떻습니까? 상투적이지 않습니까? 장로님이 하시는 큰 교회의 대표기도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것이 회개입니까? 반성입니까? 하나님이라는 타자, 그 타자를 허수아비처럼 세워놓고서, "하나님, 잘 들으세요. 내가 이렇게 흠잡을 데 없는 완결한 기도를 드립니다" 라고 하는데, 이게 관념이 아닙니까?

이게 얼마나 우리 현실과 상관없이 붕 뜬, 그야말로 상투적인 종교적 멘트들의 나열이라는 겁니다. 여기 나오는 내용을 여러분이 비판해보세요. 시간을 5초 드리겠는데, 이게 모든 세계 교회의 보편적인 모습이라는 말이죠.

이 기도가 무엇이 문제입니까? "주님이 우리의 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라고 하는데, 벌써 초반부터 심각하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나오는데, 우리가 그냥 비어 있으니까, 이 우리 안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지요?

아까 강의할 때, 자기의 현실, 그게 비록 꿈일지라도 우리는 꿈인 줄 모른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유일한 현실은 '나' 중심의 현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아프면 무조건 싫다는 말이죠. 이게 자기 현실을 포기하는 겁니까? 굳게 지키는 겁니까? 지킨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현실을 유일한 현실로 잡고, 물론 없지만 혹시 하나님이 있다면, "저기 계신 하나님이여, 나의 이 고통을 면할 수 있도록, 내가 아주 겸손한 마음을 갖추어서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부탁하는 그 겸비하고 낮아진 마음, 그것을 주께서 캡처를 해서 자기의 하자가 없는, 잘못이 없는 기도에 응답을 해달라는 겁니다. 그야말로 관념적인데, 정말로 현실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죠.

이런 기도를 하고 나면 갑자기 자기가 아프지 않고, 그 상처가 없어집니까? 괴로움이 사라집니까? 이것이 어떤 노래인지 잠시 후에 들어보도록 하겠는데, 안드레아 보첼리와 셀린 디온이 부른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래라는 겁니다.

그러니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했다는 것인데, 하지만 저는 이것을 지극히 비현실적인 것으로 본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이렇게 기도하는 대상인 하나님은 이미 누구의 소유가 된 하나님입니까? 자기에게 익숙한, 즉 자기의 것 된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가짜인데, 100퍼센트 가짜라는 말이죠.

그것은 회개의 기도가 아니고, 그러니까 회개란 뭐냐 하면, 그런 우리의 기도를 공격하는 게 회개라는 겁니다. 우리의 기도를 공격하는 것이 회개인데, 그 이유가 뭐냐 하면, 회개는 누가 만들어낸다는 겁니까?

우리는 회개를 하지 못하는데, 우리는 반성밖에 할 줄 모른다는 말이죠. 그래서 주님께서는 따로 회개를 만들어서, 회개를 하지 못한 우리를 주님이 만든 회개 안에 들어오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게 회개라는 것이죠.

* 회개케 함이라 !!

그러니 성경에서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은 어떻다는 겁니까? 예수님께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불러" 라고 하시고, 그 다음에 뭐라고 하셨지요? 그게 누가복음 5장에 나오는데, "회개케 함이라"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눅 5:30)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눅 5:3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눅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다시 말해서, "네가 했던 기도는 기도도 아니고, 그야말로 엉뚱한 소리다" 라는 것인데, 자기 세계를 붙들고 있는 것이 무슨 기도입니까? 이것은 관념적이고 상투적인데, 즉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란 말이죠.

* 타인을 요청하는 '나' !!

그러면 여기서 대외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것을 어렵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인간들은 어떻게 하는고 하니, 이렇게 타인이 있으면, 그 타인의 몸이 자기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여기서 몸은 들어오지를 않고, 타인에 대한 자기 기억을 회수한다는 겁니다.

왜 회수를 하느냐 하면, 왜 타인이 자기를 회수해서 자기에게 군집, 즉 집단으로 모이느냐 하면, 자기가 하는 자기의 기만을 타인을 통해서 덮어씌우고 감추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은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 라는 것이 있고, 그리고 자기가 느끼는 현실이 있다는 겁니다. 아픔의 현실, 그것을 타인을 통해서 아프지 않은 척을 하기 위해서 뭔가 뚜껑이 필요한데, 그게 뭐냐 하면, 타인을 요청하는 것이란 말이죠.

그렇게 타인을 불러서, "저 사람은 나에게 좋은 사람이니까 나의 아픔을 덮어서, 내가 다른 타인에게 나섰을 때, '나는 늘 행복해. 나는 기뻐. 나는 고민도 없어' 라고 하면서, 내 아픔이 티 나지 않기 위해서 불러모으는 타인, 그 사람과 친한 척하는 타인",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교회라는 것이, 자기 치부를 덮을 뚜껑을 찾기 위해서 나오는 수도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작은 교회는 몇 명이 되지도 않으니까, 큰 교회에 가서 경우의 수를 넓히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 큰 교회에 처녀나 총각이 나갔다고 하면, 그러면 청년회에 간다는 말이죠. 거기에는 결혼상대가 있는데, 거기서 결혼 상대자가 자기 마음에 들면 정신 없이 교회에 빠지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띄엄띄엄 나오고 한다는 말이죠(ㅋㅋ).

왜 말로는 "나는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원합니다" 라고 하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자기만이 아는 자기 허술함, 즉 아무것도 아닌 그야말로 내세울 것이 없는 '나', 그런 '나'를 괜찮은 타인이 와서 덮어씌우면, 즉 "그가 나의 뚜껑이 된다면, 나는 같이 묻혀 들어간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같이 묻혀 들어가는 것, 그러면 자기가 아는 사람에게 가서 "내가 같이 다니는 사람이 있다" 라고 자랑을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가짜, 기만적인 자아를 가지고 타인들의 사회 연결망, 그런 관계망 속에 하나의 '나' 라는 개인으로, 즉 인간다운 인간으로 행세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나이가 많으면 누구를 잘 만납니까? 만나지 않습니까? 만나지 않는데, 왜냐하면 만나봤자 그 존재가 그 존재라는 아니까, 돈만 들지 별로 필요가 없다는 말이죠. 사람이 퇴직해서 60대가 되면,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서 등산을 하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그게 다 술을 마시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서 자기 자랑을 하는데, 그러면 듣는 사람도 귀찮고 나중에는 자기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자기도 싫다는 말이죠. 그 정도로 인간은 자기 밖에 모르는데, 자기가 만든 현실만이 전부고 유일한 현실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뭐라고 봅니까? 한 글자로 표현을 하면 '꿈'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서 "졸고 있네" 라는 의미라는 것이죠. 즉 "이놈아, 그게 바로 꿈이다. 꿈 같은 거야"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 그러면 꿈이 아닌 진짜는?

두 번째로, 그러면 꿈이 아닌 진짜는 무엇일까요? 헛된 망상과도 같은 이런 기도, 이런 언어의 자투리, 거기에 가서 하나님을 고상하게 믿는 척을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런 것이 아닌 진짜 자기 모습은 어떠하냐는 겁니다.

그것이 여기 두 번째로 나눠준 가사에 보면 나오는데,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내 마음은 당신이 날 떠났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요" 라고 하는데, 여기도 역시 '나' 라는 것이 나온다는 것이죠.

* 들통이 나버린 '나' !!

그러면 아까 '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잘나 보이는 '나' 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의 '나' 라고 하는 것은, 벌써 자기가 알던 타자, 즉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타자가 그만 자기 곁을 떠나버렸다는 말이죠.

이렇게 되면 누가 아파요? 자기가 아프다는 겁니다. 그 아픈 '나', 즉 더 이상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속이고 기만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들통이 날대로 나버린 '나' 라는 것인데, 바로 그런 '나'를 이야기하는 가사라는 말이죠.

계속해서 가시를 보면, "내 마음은 당신을 날 떠났다는 믿을 수 없어요.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믿어지지 않아요" 라고 하는데, 이 한마디 한마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 고통에서 나왔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당신이 원한다면 난 뭐든지 다 해낼 수 있는데, 하지만 당신만은 잊을 수가 없어요.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지만, 당신이 떠나버리니까, 내가 당신에게 해준 것보다도 당신 자체가 나에게 더 소중했는데, 당신은 날 떠나버렸어요" 라고 하는데,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 나를 잊지 마세요 !!

떠나간 그 타인에게 "돈 포겟 투 리멤버 미" 라고 요청을 하는데, 즉 "나를 잊지 마세요. 우리의 지난 사랑도 잊지 마세요. 나는 여전히 그대를 기억하고 사랑을 해요" 라고 한다는 말이죠.

왜 이렇게 나옵니까? 그것은 자기 마음속에 무엇이 남아있다는 겁니까? 추억이 남아있다는 것인데, 이것이 현실이 아니냐는 겁니다. 아까 첫째 강의에서, "인간 속에 추억과 과거의 기억이 남아있다" 라고 했는데, 심지어 누구에게 들려줄 추억이라는 겁니까? 별들에게도 자랑스러워서 들려줄 추억이라는 말이죠.

* 당신은 내 영혼의 거울 !!

"사랑하는 이여, 나를 잊지 마세요. 그리고 내 방에는 당신의 사진이 아직도 걸려있습니다. 어떻게든 당신을 잊어보려고 노력을 다 했는데, 당신은 내 영혼의 거울입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제가 이 가사를 소개했는데, 인간이 제 아무리 멀쩡한 척을 해도, 대단한 척을 해도, 그 어떤 경우가 있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척을 했는데, 그런데 그게 자기가 아니고, "그대가 내 곁에 있을 때 그것을 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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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n't Forget To Remember ]

Bee Gees(비지스)

그대가 내 곁을 떠났다는 것을

나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사실이라고 믿으려고 해 봐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어떤 일도 포기하는 것만큼은 안되는군요

저를 잊지 말아주세요

우리의 지난 사랑도 잊으면 안 됩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가슴에 추억이 남아 있습니다

별들에게 들려줄 만한 추억들이요

사랑하는 이여 저를 잊지 말아주세요

벽에는 당신 사진이 걸려있지요

어떻게 하든 당신을 잊으려고 노력을 해 보았지만

당신은 나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존재인가 봅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구원해 주세요

이제 당신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노력해 볼 겁니다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

우리의 지난 사랑도 잊으면 안됩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가슴에 추억이 남아 있습니다

별들에게 들려줄 만한 추억들이요

사랑하는 이여 저를 잊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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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VS 거울 !!

제가 한번 적어볼게요. "그대는 내 영혼의 거울이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이렇게 거울이라고 하면, 자기가 중요합니까? 자기가 누구인지 그때마다 그 '나'에게 만족스러운 이미지로, 그런 그림을 제공하는 거울이 중요합니까?

백설공주를 보면, "거울아, 거울아!" 라고 하는데, 그 계모에게 거울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수어 버리지 왜 그것을 자꾸 거울에게 묻습니까? 왜 인간은 자꾸만 남들에게 전화를 하고 왜 만나자고 합니까?

그렇게 되면 남이 무엇이 됩니까? 자기를 아주 근사하게 만들어주는 거울이라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친구를 만나자고 하는 것이 결국은 뭐냐 하면, 자기를 괜찮아지게 만들어주는 거울기능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 거울이 어떻게 되었어요? 그만 떠나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뭐라고 해야될까요? 우리 다같이 이야기를 해볼까요? "제발 나를 구원해주세요"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들은 "제발 나를 구원해주세요" 라고 다같이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데, 바로 거기에 들어온 것이 뭐냐 하면, 그게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이 예수가 얼마나 가짜냐는 것이죠. 지금 제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처음에 이야기한 '기도'에서는 자기가 믿는 예수가 들통나지 않는데, 그렇지요? 그러나 두 번째의 이 노래에서는 어떻습니까? 자기 인생에 있어서 자기가 안다고 하는, 즉 자기가 기억하는 '예수' 라는 이름을 가진 신적인 존재는 결국 무엇이라는 겁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위한 예수가 아니고, 즉 진짜 예수가 아니고 자기의 허접스러움을 곱게 포장할 수 있는 가짜라는 말이죠. 이것이 진실이라는 겁니다. 이쯤에서 이 노래를 들어봐야 되겠는데, 여러분도 이 노래를 아시죠? 그러면 여기서 잠시 음악감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 Prayer ♬, Don't Forget To Remember ♬

이 두 개의 노래 가운데서 어느 것이 진실에 가깝습니까? 평소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갑니까? 두 번째가 우리의 본마음인데, "제발 나를 슬프게 하지 말아주세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데"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 특징은 둘 다 '회개' 라는 것은 물 건너갔다는 것인데, 그렇지요? 회개는 없다는 겁니다. 교회를 다니든, 아니면 어떤 누군가와 깊이 사랑을 나누든 간에, 전혀 회개할 마음은 애당초 없었다는 말이죠.

* 제3의 인물의 등장 !!

그러니 회개할 능력도 회개할 마음도 없는, 그야말로 자기 세계에 깊이 빠져있는 인간들인데, 여기에 주님께서는 어떤 해결책을 주셨을까요? 아까 읽은 마태복음 21장에서, 첫째 아들이 나오고 둘째 아들이 나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는 아들이 분명히 두 명인데. 그러나 제3의 인물이 그 이야기에 의해서 등장했다는 겁니다.

인간은 깜깜한 소경이니까, 그런 소경인 인간을 천국으로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자기 세계에 함몰이 되어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인간세계에 함몰되지 않은 바깥 분이 오셔서, 즉 함몰이 되었다는 그 차이를 외부에서 말씀을 통해서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죠. 그렇지요?

* 새로움 !!

이것을 칠판에 크게 써보겠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자기 세계로 인도하는 방법은 딱 세 글자인데, 그것은 바로 '새로움' 이라는 겁니다. 새로움, 즉 우리가 과거에, 익히 아는 것에 함몰되지 않고, "아니 이런 게 있었어?" 라고 하는 '새로움' 이라는 말이죠.

이 새로움은 누구의 작품인고 하니, 성령님의 활동으로 우리에게 새로움을 계속해서 피어 나오게 하신다는 겁니다. 옛날에 "성경을 백독하면서 다 알았다" 라고 하면, 이것은 새로움이 아니라는 말이죠. "내가 과거에 신학공부까지 했는데, 그런 것을 모를까봐?" 라고 한다면, 그것은 전혀 새로움이 아니라는 겁니다.

* '과거' 라는 쓰레기통 !!

이 '새로움' 이라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우리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 라고 하는 것, 여기에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인간의 현실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 이 전체를 과거로 묶어버린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 전체가 어떻게 되는고 하니, 인간이 오래 살아도 다들 어디에 사는 겁니까? 과거에 적체가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과거는 쓰레기통이니까, 우리의 현실은 모두 쓰레기통으로 모인다는 말이죠.

그러면 과거가 아니고 새로움이 우리의 전체를 과거로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주님께서는 이 새로움을 가지고서, 우리의 이 '나' 라는 현실을 7월 2일, 7월 3일, 7월 4일, 7월 5일, 이렇게 쪼가리가 나게 만든다는 겁니다.

* 쪼가리 감사 !!

어제 오후의 설교제목이 '쪼가리 감사' 라고, 여기에 새로움이 삽입이 되어버리면, 지나간 것은 어떻게 됩니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니까 없고, 또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깐 없고, 그러면 현재라는 것도 없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현재라고 여기는데 0.1초만에 무엇이 되어버렸어요? 과거가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과거와 미래가 있다는 것은, 중간에 이것은 여기는 뭐가 있느냐 하면, 수학을 하면 이게 항상 제로가 된다는 겁니다.

* 천왕봉은 없어 !!

예를 들어서, 우리가 산봉우리에 가면 무엇이 있습니까? "이쪽 비탈이냐? 저쪽 비탈이냐?" 라고 하는 것뿐이지, 산봉우리 자체는 무엇입니까? 그런 것은 없다는 말이죠. 그게 없어서 인간들이 일부러 어떻게 합니까? '천왕봉' 이라고 하면서 비석을 하나 세운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 비석은 어디까지나 인공적인데, 그래서 이 비석을 치워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이 '산꼭대기' 라고 하는 것은, 그냥 이쪽 비탈과 저쪽 비탈의 경계선에 불과한 것이지, 그런 꼭대기 자체는 없다는 말이죠.

여러분은 여기에 동의가 됩니까? 과거는 없는데, 그리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현재는 곧장 어디로 미끄러져요? 시지프스의 신화에 나오는 돌처럼 계속해서 다시 과거로 미끄러지니까, 현재는 없다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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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지프스의 신화 핵심 - 전승에 따르면 코린토스의 왕 시시포스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속여 가두는 등 신들에게 도전했고, 그 대가로 바위를 정상에 올리려다 매번 굴러떨어지는 노동을 반복하는 형벌을 받습니다. 이 반복성은 '목표 달성이 불가능한 노동'의 상징이 되어, 현대에는 '시지프스적'이라는 표현으로 무의미한 반복 업무를 비유하는 데 쓰입니다.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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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새로움은 뭐냐 하면, 자기 인생 전체를 '없다'로 만들어버린다는 겁니다. 꿈이고 곧 허상이라는 겁니다. 즉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 없는 것에 대해서 마치 있는 것처럼 여기지 말라" 라는 이야기라는 것이죠.

여기까지는 여러분이 아시겠죠? 그러면 새로움이 이쪽에 올 때, 우리가 새로움이 왔는지 아닌지 그것을 어떤 식으로 느낄 수 있느냐는 것인데, 그것을 또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따져봐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사도행전를 보겠는데, 11장 18절입니다.

(행 11: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이게 베드로의 설교인데,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을 얻는 무엇을 주셨다고 합니까? 회개를 주셨다는 말이죠. 그러니 회개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냥 선물로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회개는 성령을 통해서 온다는 것이죠. 성령을 통해서 말이죠.

그렇다면 성령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새로우니까, 우리는 "무슨 이런 것이 다 있어" 라고 하는데, 새로움이 없으면 항상 불안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새로움이 오게 되면, 즉 새로운 복음이 복음이 오게 되면, 자기 인생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이 된다는 말이죠.

그런 혜택을 입게 되는데, 그 순간 여기서 나오는 것이 뭐냐 하면, 감사가 나온다는 겁니다. 그것이 누구에게 인고 하니, 타인에게 그렇다는 말이죠. 즉 자기 것이 되지 않는, 자기 것으로 동화되지 않는, 즉 자기 소유가 되지 않는 타인, 그렇게 해서 회개에 합당한 찬양이 된다는 것이죠.

회개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주께서 만드시고 우리에게 주입시킬 때, 기쁨과 더불어서 드러나게 된다는 겁니다. 회개를 보통 눈물을 줄줄 흘리는, 그런 슬픈 것으로 여기는데, 그게 아니고 기쁨과 감사를 동반해서, 여기서 무엇이 나오는고 하니, "아하, 내가 만든 세계는 주님이 보시기에 존재하지 않는, 없는 세계구나" 라고 깨닫게 만든다는 것이죠.

바로 그러한 점을 생각하면서, 요한복음 1장 3절에서 5절 말씀을 누가 큰 목소리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 나는 생명이 들어있는 껍데기다 !!

여기에 보면, 생명은 우리 인간에게 있다고 합니까? 없다고 합니까? 인간에게는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생명은 인간에게 없는데, 그런데 생명이 빛으로 오게 되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분명히 생명이 없는 인간인데, 생명이 있는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주께서 오셨다는 말이죠.

그렇게 주님께서 오셔서 생명이 없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겁니다. 그렇게 생명을 주시면,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자기가 있다는 게 아니라, 자기 안에 무엇이 들어있다는 겁니까? "나는 생명이 들어있는 껍데기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생명이 들어있는 껍데기, 그러니 전에 있던 것은 다 죽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려면 이 생명이 들어오기 위해서, 기존에 있는 우리 현실을 무엇으로 만들어야 새로움이 성립이 됩니까? 생명, 즉 새로움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기존에 있는 것들을 다 죽인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다 죽었어. 그러니 입 좀 다물어" 라는 것인데, 그래서 주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자근자근 씹어서 죽여버린다는 겁니다. 그렇게 죽이면서 생명이 새로움을 가지고 들어온다는 말이죠. 즉 "이미 죽은 것을 가지고 걱정하지 마라. 생명이 들어오는 절차가 곧 네가 죽는 것이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이제부터 남은 시간은 이것을 설명해드리도록 하겠는데, 질문형식으로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행함으로 구원을 받습니까? 그게 아닌데, 영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행함에 속한 회개는 하나님께서 받습니까? 받지 않는다는 말이죠.

"우리가 회개를 행한다. 기도를 행한다. 반성을 행한다. 예배를 행한다. 헌금과 봉사를 행한다" 라고 하면, 주님은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게 전부 다 어느 묶음에 들어갑니까? '행함' 이라는 묶음에 들어가기 때문에 받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그 출발점이 자기가 행하는 현실이라면,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의 행함이 부정을 당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우리가 살아도 산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 되느냐 하면, 주님이 보시기에 생명이 없는 대상이 되면 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무엇을 해도 생명이 아니기 때문인데, 그래서 "우리가 밉다" 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우리가 미운 게 아니고, 무엇을 해도 생명이 아니니까, 우리의 그 어떤 노력과 행한 것도 주께서는 거부한다는 겁니다. 그것으로는 구원이 안 된다는 말이죠. 즉 "우리의 행함으로는 구원이 안 된다" 라는 겁니다.

* 다윗의 죽음 !!

이게 구약성경인 사무엘하 12장에 보면 나오는데,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해서 아기를 낳았다는 말이죠. 하나님께서 아기를 낳게 했는데, 임신 중에 엄마 태에서 죽은 게 아니고, 멀쩡하게 아기가 태어나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몇 년을 살았습니까? 몇 년은 고사하고 얼마 안 있어 죽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살아있을 때 다윗이 무엇을 했느냐 하면, 회개를 했다는 것이죠. 자기 딴에는 살아있을 때 회개를 했다는 겁니다. 그 애가 아프니까, 하나님께서 애를 태에서 죽이지 않고 태어나게 하셨는데, 즉 다윗으로 하여금 다윗이 행할 수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용도로 애를 살려 주었다는 말이죠.

그렇게 아이를 살려주니까, 다윗은 자기가 회개하는 덕분에, 그것을 근거로 해서 아이가 무럭무럭 잘 자라기를 바라서 간절히 금식하면서 기도를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눈물로 하는 그 기도를 주께서 응답하실 것이고 여겼다는 말이죠.

여기 13절에 보면, 나단이 다윗을 보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라고 하는데, 실제로 다윗이 회개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래, 네가 회개를 하는구나. 너의 소원대로 아이를 살려줄게" 라고 했습니까? 그게 아니면, 아이를 죽였습니까? 아이를 죽였다는 말이죠.

(삼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삼하 12:14)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하고

(삼하 12: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삼하 12: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여기서 문제가 나가는데, 하나님께서 어차피 죽을 아이를 살려주시는 것은 아이를 죽이기 위함이 목적입니까? 아니면 다윗을 죽이기 위함이 목적입니까? 다윗의 모든 행함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즉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아이를 잠시 살게 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정말 철두철미한데, 다윗이 아이가 죽고 난 뒤에 슬퍼했습니까? 아니면 멀쩡했습니까? 멀쩡했는데, 즉 "들켰구나, 들켰어. 내 소유가 된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 아니었구나. 오히려 나를 죽이지 못해서 환장하신 분이 하나님이구나" 라는 사실을 다윗이 알게 되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 아기를 하나님께서 이용하는 것처럼, 이번에 하나님께서 누구를 이용합니까? 다윗 자신을 이용하신다는 겁니다. 그렇게 다윗을 이용하시는데, 왜냐하면 다윗 안에 언약이 들어있다는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사무엘하 12장 이전인 7장에 보면 뭐라고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뭐라고 했느냐 하면, "네 아들이 태어날 것이고, 네 아들의 자리가 영원한 메시아가 오는 자리다" 라고 분명히 언급을 하셨다는 겁니다

(삼하 7: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삼하 7:13)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삼하 7: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삼하 7:15)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그만 다윗의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곧 죽었다는 말이죠. 그렇지요? 그래서 다윗도 "나도 이 아이와 같이 죽을 인간밖에 되지 않는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 아이의 운명이 바로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이죠.

그러면 아들이 죽고, 즉 다윗 자신은 죽고 언약의 자식은 어디에서 태어난다는 겁니까? 언약의 자식은, 이사야서 7장 14절에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라고 하는데,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겁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왜 처녀가 아기를 낳아야 하는가?

그러면 왜 처녀, 즉 남편이 없는 여자가 아기를 낳아야 합니까? 그리고 왜 다윗에게 솔로몬이라는 아기가 태어나야 합니까? 정말 다윗이 나쁘고 밧세바가 나쁘다면, 밧세바를 추방하고 다른 여자를 통해서 아기를 낳아서 왕위를 잇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느냐는 말이죠.

자기가 잘못했는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래, 비록 너는 못난 인간이지만, 다윗 네가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아기를 낳으면, 그것이 메시아가 올 노선이다. 그러면 내가 언약대로 추진하겠다" 라고 하면, 그게 맞지 않느냐는 겁니다.

* '간음했음'이 계속 꽂혀있는 여인, 밧세바 !!

우리의 생각은 그렇게 되는데, 그런데 그 새로운 아기인 솔로몬의 엄마가 누구인고 하니, 그 엄마가 밧세바라는 말이죠. 이 밧세바는 무엇입니까? 무엇을 했다는 것이 계속 거기 꽂혀있습니까? '간음했음'이 계속 살아있는 여인인데, 그 여인의 자식으로 누가 나오는고 하니, 솔로몬이 나온다는 겁니다.

이것은 바로, 주께서 죄인을 불러서 의미인 되게 하기 위해서 중간에 무엇이 필요하다는 겁니까?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그런데 그 회개는 인간이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회개라는 말이죠.

그 회개가 출원되는 근원을, 주께서 언약대로 하시는 그것을 받아내는 접시, 또는 기구로 누구를 사용하느냐 하면, 그게 밧세바와 다윗인데, 그냥 오늘날 우리들을 사용하신다고 보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주께서는 우리의 행함을 피해 가시는지 모르는데, 왜냐하면 우리 행함은 환상 속에 있는 '나'만이 진짜 현실이기 때문에, 그 기싸움에서 주께서는 절대로 우리에게 지지 않는다는 말이죠.

만약에 주님이 그런 기싸움에서 져버리게 되면, 그래서 자기가 익히 아는, 자기가 예상하는 것이 찾아오게 되면, 그러면 여기에서 무엇이 안 됩니까? 새로움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새로움이 없으면 또한 무엇이 없지요? 감사, 즉 고마움이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주님께서는 말도 안 되는 인간, 그런 '나'에게 새로움, 즉 생명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어떻게 하십니까? 계속해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사건이 찾아오게 하신다는 겁니다. 새로운 사건이 말이죠.

방금 이야기한 것을 제가 물리적으로 설명해드리겠는데, 그 이전에 여기 교재에 나오는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교재 219페이지에 말라기서 4장 5절과 6절의 말씀이 나오는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말 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말 4:6)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 엘리야의 기능에 실패한 세례요한 !!

이 말라기서의 예언대로 온 엘리야, 그 엘리야가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보기에 엘리야가 누구입니까? 그냥 상식적으로 이야기해보세요. 엘리야가 누구입니까? 세례요한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이런 엘리아 기능에 성공했습니까? 실패했습니까? 실패했다는 말이죠.

그러면 예수님이 엘리야 기능을 직접 하시면 되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고, 왜 "말라기에서 말한 선지자가 세례요한이다" 라고 언질을 주시면서, 그 세례요한을 엘리야의 기능적인 역할에 있어서 실패를 시키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그것이 교재 220페이지에 나오는데, 무엇이 안 된다는 겁니까? 세례요한이 제대로 말씀을 전했는데, 그리고 이 세례요한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가 요단강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회개하라, 심판의 날이 가깝다" 라고 분명히 외쳤다는 말이죠. 세례요한은 자기 사명에 게으름을 피운 적이 없다는 겁니다.

(마 3: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마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

(마 3:3)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교재 220페이지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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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기 4장에 있는 대로, 회개란 하나님이 보내신 어떤 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분을 말라기에서는 엘리야라고 합니다. 그러면 엘리야가 누구냐고 물을 때, " 이 사람이 엘리야입니다" 라고 대답하지 마세요. 그러면 어떤 사람을 엘리야라고 해야 합니까? 말라기 4장 6절처럼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라는 데 성공한 분이 엘리야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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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세례요한을 엘리야라고 했는데, 그는 무엇에 실패했습니까?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그리고 자녀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는데 세례요한이 성공했습니까? 실패했습니까? 실패했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이것은 "인간의 행함은 실패다" 라는 것을 전제로 해놓고, 즉 "인간은 이제 무엇을 해도 구원이 안 되는 것이 맞지? 세례요한의 경우에도 물세례를 했는데, 성공을 했어?" 라는 것인데, 실패를 했다는 겁니다. 세례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은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 돌아왔습니까?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이죠.

그러니 물세례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는 겁니다. 선지자를 보냈는데 실패했다는 말이죠. 그러니 어떻게 하더라도 자녀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하나님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새롭게 각인되어야 할 새로움이 있는 현실상이라는 말이죠.

여기서 일단 한번 정리를 합시다. 현실은 무엇인고 하니, 백날 노력해도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 것이 현실인데, 뿐만 아니고 하나님도 우리에게 "아이고, 잘했다. 아이고, 귀하다" 라고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는 겁니다. 그게 우리가 붙잡고 있는 현실이라는 말이죠.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지금 여러분은 이것을 절망이 아닌, 기쁨으로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3절에서 7절입니다.

(눅 15: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눅 15: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눅 15: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눅 15: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눅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 죄인(1) VS 의인(99) !!

여기 7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라고 되어있는데, 회개를 하는데 죄인이라는 겁니다.

죄인 하나가 더 회개하면, 그러면 몇 명입니까? 회개한 사람이 하나인데, 그러면 회개를 하지 않은 사람은 몇 명이죠? 99명인데, 그런데 그 회개한 사람을 두고서 뭐라고 합니까? 부르는 호칭이 무엇입니까? '의인'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스스로 의인인 것처럼 기만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선악체이기 때문인데, 즉 "내가 나쁜 줄은 알지만 그래도 내가 선은 알고 있잖아. 선하려고 애쓰고 있잖아. 그러니까 나보고 죄인이라고 욕하지마. 몰아세우지마" 라고 하는데, 이게 바로 의인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그 의인의 숫자가 얼마입니까? 99명인데, 반면에 회개한 죄인은 몇 명입니까? 하나인데, 그런데 이것이 쪽수로 따지면 게임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왜 이렇게 "1 대 99"로 정해놓았을까요?

우리 인간에게는 회개가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우리 인간에게는 회개가 없다는 것인데, 대다수에게 회개가 없다는 말이죠. 사실은 대다수가 아니라, 아예 인간은 회개할 줄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럴 때 기쁜 소식이 무엇인고 하니, 회개할 줄 모르는 자에게 누구를 집어넣을까요? 우리 자신을 집어넣자는 말이죠. 우리는 회개할 줄 모르는데, 그런데 북경으로 가는 기차는 타고 있다는 겁니다.

* 너희는 저의 말을 들어라 !!

여기서 여러분이 기뻐해야 되는데, 시나리오상 말이죠(ㅋㅋ). 오후설교 때 누가 복음 9장을 했는데, 35절에 보면, "너희는 저의 말을 들어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저는 이게 굉장히 감격스럽고 최종적인 해답처럼 느껴진다는 겁니다.

(눅 9: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

여기에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라고 되어있는데, 아버지는 하늘의 구름 위에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아들은 제자들 앞에 있다는 겁니다.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뭐라고 지적을 하느냐 하면, "너희는 너희의 말을 듣지 말라" 라고 하셨다는 것이죠.

아까 이야기했는데, 우리 안에 무엇이 들어있다고 했습니까? 타인들이 들어있는데, 한 두 명이 아니고 군집이라는 겁니다. 그냥 좀비들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욕망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기계라는 말이죠. 죽었는데 이상하게 살아있는 것처럼 그냥 움직인다는 겁니다. 좀비 괴물이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너희는 너의 말을 듣지 마라" 라고, 즉 "너는 네 주변에 있는 타인들의 말을 듣지 말라" 것인데, 그러면 누구의 말을 들으라는 겁니까? "내 사랑하는 아들의 말을 들어라" 라는 것인데, 딱 집었다는 겁니다. 즉 아들이라는 말이죠.

* 제자들에게 주인은 따로 있어 !!

그러면 이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가 어떤 관계입니까? 종속 관계인데, 즉 예속 관계라는 겁니다. 이런 예속 관계의 경우에, 자기가 자기에게 주인일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는 말이죠. 주인은 따로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 "예수님의 말을 듣는다" 라는 것은, 예수님이 이미 우리의 주님이 되시기 때문에, 그러면 종이 자기 판단을 합니까?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종이 판단하는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것을 '비현실' 이라고 하는데, 백날 해봐야 현실에 전혀 영향이 없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환경에 전혀 변동이 없다는 것인데, 즉 "내가 백날 노력해도 나는 어디까지나, 내가 나에게 원하는 것은 현실이 아닌 비현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라는 것인데, 그러면 현실의 중심은 누가 있다는 겁니까?

* 기계 + 회개 = 성도 !!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 그것이 현실이 된다는 겁니다. 이제 예수님이 행하실 것인데, 어떻게 말인가요? 기계 더하기 회개가 곧 성도인데, 공식이 그렇다는 말이죠. 좀비와도 같은 이 세상 사람들은 무엇이 안 됩니까? 회개가 안 된다는 겁니다.

* 회개 = 성도 - 기계 !!

그러면 여기서 회개란 뭐냐 하면, 성도 마이너스 기계, 그것이 회개라는 말이죠. 이 정도 수확은 할 수 있지요? 성도에서 무슨 요소를 빼먹으면 기계가 된다는 겁니까? 회개라는 말이죠. 성도에서 기계가 빠지면, 이 기계는 우리가 아는 타인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타인을 빼면, 그러면 영적 존재가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회개가 영적 존재가 되는데, 즉 회개가 나온 열매가 바로 성도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기계가 남는데, 이 기계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본능적으로 사는 것인데, 그게 바로 기계라는 말이죠.

* 처음 자리도 나중 자리도 모르는 인간, '입자' !!

그렇게 기계가 되니까, 이 기계를 이제 물리적으로 한번 바꿔보겠습니다. 물리적으로 이것을 '입자' 라고 하는데, 입자, 즉 알갱이라는 겁니다. 이 입자의 특징을 어제 낮 설교 시간에 "처음 자리를 모르고 나중 자리를 모르고, 그냥 눈에 보이는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자기를 '나 여기에 있다' 라고 한다" 라고 했다는 말이죠.

그러니 자기를 하나의 작은 알갱이로 규정하는 것인데, 세상 사람들은 처음 자리를 압니까?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는가?" 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고 있다는 말이죠.

또한 이 세상 사람들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를 압니까? 모르는데, 그런 자들이 무엇을 이룬다는 겁니까? 타자의 군집을 이룬다는 겁니다. 타자의 군집, 하지만 처음 자리와 나중 자리를 모르고 있으면, 누가 뭐라고 해도 기계라는 것이죠.

그러면 처음 자리를 알면 어떠한고 하니, 이 두 개의 자리는 영적인 것인데, 그런 영적인 것을 알게 되면, 이 영적인 것에서 무엇이 나옵니까? 회개가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기계 플러스 회개는 무엇이 됩니까? 그럴 때 비로소 성도가 되는데, 이 영적인 것은 항상 우리에게 새로움을 준다는 말이죠.

* 입자에 영적 요소가 들어간 것이 성도 !!

이제 성도에 대해서 알았는데, 그 다음 논리로 들어가면, 이제 조금만 하면 끝이 나니 참으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입자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성도의 경우에는 이 입자에 무엇이 들어갑니까? 영적 요소가 들어가는데, 그게 성도라는 겁니다.

인간은 입자니까, 즉 덩어리라는 말이죠. 기계, 사물 덩어리로 볼 수 있는데, 그런 덩어리에게 영적으로 오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영적으로 오는데, 그러면 그 처음 자리와 마지막 자리가 우리 인간에게 보입니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 어린아이의 운명은?

저에게 "어린아이는 어떻게 회개를 해서 구원을 받습니까?" 라고 질문을 한 분이 있었는데, 어린아이가 울면서 회개하면 해결이 되느냐는 겁니다. 정답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인간을 상대할 때, 어린아이 시절의 아담을 상대하지 않았다는 말이죠.

그렇지요? 하나님은 이미 어른이 된 아담과 상대해서 규칙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어린 아담을 보고 "선악과를 따먹지 마라" 라고 했습니까? 아니라는 말이죠.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린아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어떤 아이는 구원받기로 작정이 되었고, 다른 어떤 아이는 지옥에 가기로 작정되었기 때문에, 그것조차도 영적 요소라는 겁니다. 시작과 처음 자리를 묶어주는 것, 즉 알파요 오메가라는 말이죠.

* 예수님은 사건을 몰고 !!

그러면 알파요 오메가는 누구뿐이죠? 예수님뿐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인간을 가지고, 피조물을 가지고 처음 자리, 즉 인간에게 무엇으로 오시느냐 하면, 이게 사건으로 오신다는 말이죠. 그런 사건으로, 즉 영적으로 오시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이게 소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아까 인간은 무엇을 모른다고 했습니까?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타인으로 해서, 그것을 자기 경험으로 삼아서 자기 기억에 담아놓는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타인은 바디인데, 자기도 바디라는 말이죠. 즉 몸체가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남에게 잘해주었던 것을 자기 기억으로 삼아서 타인의 군집을 만들었는데, 그런데 사건은 어떻다는 겁니까? 그 사람이 만났던 그것은 자기 속에 기억으로 들어있는데, 하지만 사건은 바람과 같아서 자기 소유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사건이 오게 되면, 이 입자가 무엇으로 바뀌느냐 하면, 입자에서 파동으로 바뀐다는 말이죠. 그렇게 파동으로 쪼개지니까 어떻게 됩니까? 여기서 마태복음 6장 3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여기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라는 이유가 뭐냐 하면, 한낮 괴로움은 어디에만 폭삭 있다는 겁니까? 그날에 있다는 것인데, 이 그날은 우리가 정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의 새로움 안에서만 인간은 잠시 무엇이 되느냐 하면, 이게 잘라졌으니까, 그 잘라진 것만 오늘 치의 입자가 된다는 말이죠.

* 사건+사건+사건=제로 !!

우리는 과거까지 합쳐서 그 전체를 두고 '나' 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사건이 오게 되면, 그게 말씀사건인데, 즉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라고 하는 사건이 터져 버리면, 사건은 이것을 쪼가리를 낸다는 말이죠.

그렇게 쪼가리를 내면, 그 카스테라 하나 하나가 무엇인고 하니, 사건 플러스 사건 플러스 사건 플러스 사건, 그렇게 되는데, 그러면 그게 제로가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아예 없다는 것인데, 아까 인간은 없다고 했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자기를 없애는 것인데, 즉 하루만 살고 없애고 또 다시 하루만 살고 없애는, 그런 것들이 계속해서 진행된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일을 당했던 우리의 선배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었다는 말이죠.

그들이 광야를 갈 때 농사를 지었습니까? 농사는 지속적인데, 추수를 기다린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그들의 먹을 것은 어디서 나왔지요?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먹을 것이 내일 온다고 했습니까? 그게 아니면 그들은 오늘 치의 만나만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까? 어느 쪽입니까? 내일 또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내일 일을 염려할 자격은 너희들에게 없다. 너희들은 오늘 치의 입자이기 때문에, 하나의 사물 덩어리이기 때문에 그렇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또 다시 기계 더하기 영적 요소인데, 즉 하늘의 만나가 투입됨으로서 성도가 된다는 말이죠.

* 일용할 양식 !!

주기도문에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하면서, 그 다음에 무엇이 나옵니까? 그냥 양식이 아닌 일용할 양식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 일용한 양식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시험에 빠져 버린다는 것이죠.

그래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라고 하는데, 즉 "내 인생을 내가 관리하지 않게 해주옵소서" 라는 겁니다. 관리하시는 분이 따로 있다는 것인데, 우리는 그분의 종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자기의 주인은 누구라는 겁니까? 하나님이 "너희는 저의 말을 들어라" 라고 하셨는데, 이미 예수님으로 확정이 되었다는 것이죠.

(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입자에서 파동으로 !!

그러니 입자가 파동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파동이 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파동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아시죠? 이렇게 꼬불꼬불한 모양이 파동인데, 여기 위에 있는 것을 가지고 고점이라고, 여기 아래를 저점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왜 주식을 할 때 고점과 저점을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요즘 개미들이 주식투자를 한다고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예상을 해도 맞출 수가 없다는 말이죠. 물론 AI도 맞추지 못하는데, 언제 사야 되고 언제 팔아야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널뛰기를 한다는 것이죠.

* 파동과 쪼가리 감사 !!

그러면 여기서 고점은 무엇인고 하니, 고점은 관념이고 저점은 진짜 우리의 현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붕 떴다가, "아,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구나. 나의 일이 실패로 끝나네" 라고 한다는 말이죠. 또 붕 떴다가, "이게 되네. 내가 성공한다고 했잖아" 라고 하는데, 그러다가 그냥 꼴아 박아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께서는 우리를 쪼가리와 쪼가리 사이에서 나오는, 그렇게 떨어지면서 올라가는, 즉 주님은 우리를 입자로 다루는 것이 아니고 파동으로 다루신다는 말이죠. 그래서 여기서 '쪼가리 감사'가 나온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움이고, 이러한 상태를 두고 '회개' 라고 한다는 말이죠.

이러한 회개 상태, 이것이 과연 이 세상에는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는 말이죠. 이 세상의 자연에서는 이런 식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입자로 이해하지만, 곧장 하나의 파동으로, 그런 파장으로 이해를 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성도의 모습이라는 말이죠.

* 야, 그만 자고 일어나 !!

그러면 입자가 될 때는 어떤 형식인고 하니, 이것만 설명하고 마치겠습니다. 입자가 되는 다시 불러모으는데, 즉 타자라는 겁니다. 자기의 잘남, 즉 자기가 영원한 신이 되기 위해서 타자의 기억들이 다시 끌어 모은다는 것이죠.

그러면 사랑하는 주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너는 첫째 아들이 될래? 그렇지 않으면 둘째 아들이 될래? 아니면 나의 종이 될래" 라고 하시는데, 그렇게 말씀으로 다시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겁니다.

하지만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이 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것은 둘 다 우리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말이죠. 즉 "내가 이것을 해서 구원을 받아야지" 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이미 북경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그 안에서 졸고 있는 우리를 깨우시는데, 그것이 바로 '새로움' 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이제 지금까지 우리가 생전에 가보지 못했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겠는데, 그게 얼마나 새로운 맛인지를 경험해보시기 바랍니다(ㅋㅋ).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없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졸면서, 주님께서 내일 치의 양식을 준 게 아니고, 오늘 치만 주고 감사하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 앞에 생명으로 살아가면서,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고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On the train to Beijing !!

2026,07,13 오후 3시에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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