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안산(나라장로교회) 06 - 요한복음6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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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오용익(IP:)
05안산강의(나라장로교회) 06 - 요한복음6(10장)
04,12,27강의: 이근호 목사
◈ 교회와의 만남인가, 성경과의 만남인가 ?
성경공부의 취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모이게 된 취지나 방향과도 같은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요한복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들어보신 적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림을 그려보면, 교회가 있고, 우리가 나오고, 교회에서 목사님이 성경을 들고... 이런 식으로 되는데, 이것이 교회와의 만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공부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교회를 생각하지 말고, 바로 성경과 만나자는 겁니다.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비켜가서 성경과의 만남을 가지는 것입니다. 교회를 비켜가서 우회로 성경이 우리 속에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가 만나면서 스스로 이해할 수 있고, 터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죠. 하나님의 말씀을 터득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모임을 통해서 가져보는 취지로 그동안 공부를 해왔습니다.
제가 이 취지를 말씀드린 것은, 공부해서 교회에 도움이 되겠다든지, 교회충성과 봉사를 더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 성경이 도대체 무슨 내용으로 되어있는가를 알아서, 본인 스스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취지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부터 10장까지 해왔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 취지가 분명해질 겁니다. 이 공부는 녹음이 되면서 전국의 많은 분들이 공부할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요한복음 10장 27, 28절을 보면서, 그것을 가지고 취지에 대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요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 영생을 받는데 왜 교회가 빠져 있는가?
여기 교회라는 것은 빠져 있지요? 영생을 얻는데 어떻게 한다구요?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며, 예수님은 양을 알고 양은 예수님을 알며" 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라는 것은 완전히 빠져 버렸지요? 그러니 영생이라는 것은 무엇이 빠져도 된다는 말입니까? 교회가, 교회가 빠져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교회가 필요 없다" 라는 말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교회는 "필요 없다, 있다" 라는 게 아니라, 교회는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생기게 되어있는데, 중요한 것은 영원한 생명을 받아서 교회가 혹은 목사가 영생을 나누어주는 역할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 목사 - 교인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심부름꾼 !!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생이 되지요. 다시 말해서, 목사가 없이도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뒤에 모인 것이 교회라는 말입니다. 목사가 교회를 만들어놓고 오라고 해서 교회가 된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그러니 목사라는 것은 교인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 담임목사라고 해서 교인들을 대신해서 말해줄 입장도 못되고, 심판대 앞에 예수님과 자기 자신과 그렇게 단독으로 일대일로서 서는 것이기 때문에, "저 사람이 어떻고, 이 사람이 어떻고, 친구가 어떻게 했다" 라는 방식의 것들은 모두 다 핑계에 지나지 않으니까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한복음 펼치니까, 영생이란 교회에 간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음성을 듣고 그대로 믿게 되면, 그 영생을 빼앗을 자가 없는 입장에 놓여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영생을 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난 시간에 했는데 예수님은 무슨 목자라고 했습니까? '선한 목자' 라고 했지요. 질문 방식으로 합니다. 둘 중에 하나입니다. 선한 목자라는 말은, 다른 목자도 있는데 그 중에서 채우자는 말입니까? 아니면 선한 목자는 예수님밖에 없다는 말입니까? 아무도 목자가 없는데 예수님만이 목자라는 뜻입니다. 목자가 많은데 그 중에서 좀 나은 사람이 예수라는 말이 아닙니다.
◈ 선한 목자의 특징 - 자기가 대신죽음 !!
선한 목자는 그 특징이 있는데, 자기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 죽음' 이라는 말입니다. 예배당 꼭대기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를 믿는 자는 누구냐? 오라" 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대신죽음을 믿는 인간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양이고, 안 믿는다면 자기 양이 아니라는 뜻으로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천주교 성당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십자가가 아니고 예수님의 형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안식교, 박태선 이단이 있습니다. 그들은 비둘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일종의 신비주의자들입니다. 성령에 충만해서 신비롭게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 교회란, 예수님의 죽음 덕분에 영생을 얻는 관계로 자진해서 들어온 사람들 !!
그러나 교회는 십자가를 세워 놓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죽음 덕분에 우리가 살았습니다" 라고 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것이 '교회' 라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합니다. "교회란, 예수님의 죽음 덕분에 영생을 얻는 관계에서 자진해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라는, 이것이 곧 교회인 것입니다. 여기서 요한복음 10장을 15절을 보겠습니다.
(요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왜 내 스스로 목숨을 내놓겠다고 하시는가?
이 말을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까요? "내가 밥살께" 라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만약 이 자리에서 "제가 당신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라고 하면, '멍' 합니다. "아니, 저 사람이 미쳤나. 나는 가만있는데 자기가 왜 죽고 난리야. 내가 뭐라고 했는데 자기가 죽나" 라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뭐 했기에 당신이 십자가에서 죽습니까?" 라는 말에는, 여기에는 뒷말이 붙어야 합니다. "안경을 주겠습니다" 라고 하면, 안경을 쓰라는 소리이고, "물을 주겠습니다" 라고 하면, 마시라는 소리이고, 그리고 "휴지를 주겠습니다" 라고 하면, 뒤를 닦으라는 소리이고, 그렇게 다 이해되는데, 그런데 "내가 당신을 위해서 죽겠습니다" 라는 것도 역사 뒤에 설명이 붙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당신을 위해 목숨을 내놓겠다" 라는 말은, "당신은 가만히 있으면 지옥 간다" 라는 말입니다. 들어보니 이 말은 상대에 대한 모독입니다. 엄청 희생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것 같아도, 사실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 같으면, 자기 자신을 깡그리 무시하는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훌륭한 사람에게는 "착하게 살라" 라는 것은 말이 됩니다. 착한 사람에게는 "남에게 봉사해라" 라는 것이 말이 됩니다. 훌륭하고 착하니까, 직장에서 그렇게 "봉사하며 착하게 바르게 살아라" 라는 것이 이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죽어야만 한다" 라고 하면서, 자기의 죽음을 들이댔다면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너는 무슨 일을 해도 훌륭하지 않고, 결국 하나님이 보시기에 멸망의 대상이다" 라는 뜻이 됩니다. 요한복음 10장 17, 18절에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요 10: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요 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내가 하늘에서 왔는데, 너를 살리기 위해 내 목숨을 스스로 버릴 처지에 내가 놓여있고, 네가 놓여있다" 라고 이야기했을 때, 자칭 이만하면 자기가 살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척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그 옆에 나란히 달린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강도들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가장 흉악한 살인강도들인데, 그러니 십자가 형벌을 받는 것인데, 그런데 놀랍게도 한쪽은 천국에 갔습니다.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말입니다. 전혀 훌륭하지 않은데 천국에 갔다면, 그 효과는 도대체 어디에서 얻은 효과이겠습니까?
이 사람이 착한 일을 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으니, 그 강도의 천국에 간 효과는 중간에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신죽음이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보너스로 한 덩어리가 되어서 그날 밤에 예수님과 같이 천국에 간 것이 되는 것입니다.
◈ 나는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다 - 누가 믿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논리는 누가 일방적으로 이야기했습니까? 예수님 혼자서 다 이야기했습니다. 의논한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예수님 혼자입니다. 그러니 웬 미친놈이(?) 와서 "나는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다" 라고, 그야말로 예수님 그런 식으로 혼자 주장한 것입니다.
미친 사람처럼 혼자 주장한 것을 믿는다는 것이 참으로 이상합니다. 갑자기 공부하고 있는 웬 미친놈이 와서 자기를 믿는 자 어쩌고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믿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지요. 누구나 독선적으로 이야기할 자유가 있기에, 그것은 자기 자유고, 그런데 문제는 미친 자가 맞는데 그런 사람을 안 믿는 것이 정상인데 한 강도가 믿었다는 것입니다.
◈ 인간 - 모두가 다 자기 잘난 맛에 !!
그러한 믿음으로 논리상 천국으로 들어갔다면, 제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전체 내용을 간추려 보면 무슨 이야기가 되겠습니까? 제가 간추려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기 전에는 모든 사람은 각자 잘난 사람이고, 각자의 꿈이 있고 그 꿈은 남이 자기를 간섭한다면 당연 화내고 거부할 수밖에 없는, 그런 자존심 강한 인간들이 이 땅에 모여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특징은 모두가 다 자기 잘난 맛에 산다는 것입니다. 제 말이 맞지요? "나도 너 못지 않게 배울 만큼 배웠고 알만큼 안다. 너도 잘났지만 나도 언젠가는 너를 추월할거야" 라는 야심이 있기에 오늘도 죽기 싫어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데 예외인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데, 그런데 갑자기 난데없이 기독교의 교주라는 소위 '예수' 라는 분이 등장한 겁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하나 하나에 대해서 하는 말이, "나는 너희를 위해서 내 목숨을 내 놓겠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다 자기 잘난 맛에 살지요? 아마 당연한데 왜 묻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라고 하면, "그래요. 죽어서 좋은데 보내겠다는 말이지요" 라고 하겠지요. "그럼 좋죠. 나 지금 잘났으니까, 착하게 혹은 훌륭한 교훈을 주면 그것을 지켜서 구원받죠" 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데 엉뚱하게 "당신들이 뭘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내 목숨을 당신들에게 제공하게 되면, 그 내 목숨 안에 영생이 들어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우리 죄로 인하여 대신 죽는다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
다시 말해서, 예수님 자기가 내어주시는 십자가의 목숨은, 우리 죄로 인하여 자기가 대신 죽는다는 것을 믿게 되면,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이 주어지고 그 외에는 영생이 없다고 말할 때, 그것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믿지 못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왜요? 우리는 잘났으니까 말입니다. 지금도 잘났고, 앞으로도 잘났고, 죽을 때까지 잘났으니까요. 한쪽 강도처럼 안 믿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래서 그는 "당신이 먼저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기적을 보여달라" 라고 했던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그때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쪽 강도는 말하기를 "우리가 죽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예수님의 이야기는 이 땅 이야기가 아니고 천국에서 영생을 주시는데, 그것은 우리 잘남으로 얻을 수가 없고 오직 우리 죄를 대신하시는 하늘나라에서 오신 분의 말을 그대로 들어라" 라는 것입니다.
◈ 양(洋) - 오로지 예수님의 말씀만 !!
그것이 요한복음 10장 27절에서 30절 말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로지 이 말을 믿는 자만 양이라고 하는 판정을, 다른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린 판정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10장의 핵심이라는 말입니다.
(요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그것을 잘 기억해 주시고, 이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교회에 관한 겁니다. 여러분, 교회는 무엇입니까? 이것이 오늘날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모인 것이 교회이다 - 웃기지 마라 !!
아까 제가 교회는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모인 것이 교회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으라고 하니 참 미친 사람 같습니다. 착하게 살라고 하면 믿겠는데, 자기 목숨으로 영생에 들어간다는 그런 이상한 소리를 배울 만큼 배운 우리보고 믿어달라니, 그것은 우리를 모독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식으로 오늘날 그렇게 목회를 하면, 교회에 모이는 숫자가 몇 명될까요? 저는 그것을 묻고 싶어요. 예수님처럼, 그런 식으로 하면 믿는 것이 드물고, 아니 없고, 안 믿는 것이 너무나도 정상인데, 어떻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겠습니까? 당연히 적겠지요? 아니 미친놈들이 모이는데, 많이 안 모이는 게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 인간들이, 대뜸 자기들을 보고 죄인이며 영생은 예수님의 자기 목숨으로 얻는다고 하니까, 어떻게 들으면 기분 좋기도 하지만, 가만히 들어보니 졸지에 자신을 지옥 갈 놈으로 싸잡아서 공격하니, 사람을 무시해도 보통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해서 사람이 적게 모이면 교회가 장사가 안 되잖아요. 아니 돈이 얼마나 나오겠습니까? 전기세는 무엇으로 내고 말입니다. 처음에 열두 사도의 특징이 다 죽었다는, 즉 순교했는데, 그 뒤에 예수가 말한 복음을 전해보니 교인들의 숫자가 불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으려면 내 주먹이나 믿어라" 라는 식의 핍박이 오니 겁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사람을 모으는 방식으로 구성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 자크 엘룰 - 오늘날 교회는 '구제'로 조작된 교회 !!
'자크 엘룰'이 지은 책 중에서 교회의 변질에 대한 것을 다룬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이름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성경대로의 교회가 분명히 있는데, 그런데 이 세상의 교회는 그것이 아니고 어떤 조작을 해서 커졌는데, 그 이유를 보니 놀랍게도 '구제' 라는 것입니다. 이 '구제'라 하면, 세상 사람들이 '뿅' 갑니다. 노숙자들을 방송사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보세요.
기자가 "오늘날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합니까?" 라고 할 때 뭐라고 대답합니까? 그래도 어디에서 들은 풍월은 있어서 "교회는 빛과 소금이 되어서,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고, 억눌린 자들 옥에 갇힌 자들 외로운 자들과 함께 하는 사랑의 실천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이번 크리스마스 때도 많이 듣지를 않았습니까? 꼬방동네에서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식의 다큐멘터리 같은 것이 많이 나왔잖아요.
일반인들의 교회에 대한 인상은, 아무리 이 세상이 썩었어도 그래도 아직도 이 나라에서 가장 건전한 곳 꼽으라면 역시 교회고, 아무리 목사가 더럽다고 해도 빛과 소금의 지도자 역할 할 사람은 순수한 목사밖에 없다는 인식이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 우리나라의 부패한 직업의 리스트가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1)정당 2)경찰 3)검찰 4)건설업 등등, 이런 식으로 주욱 나오는데, 그래도 비교적 사람들의 좋은 이미지로 갖고 있는 것이 교회고 목사라는 말입니다.
◈ 교회에 갑니다 - 아하, 착하게 살려고 애쓰는구나 !!
아직은 교회와 목사를 그래도 불교와 승려보다는 낫게 봅니다.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자원봉사하고, 이런 식으로 사회의 어두운 곳을 보살피며 헌신하고 치매노인들을 보살피는 등, 착한 일하는 교회가 많을수록 좋다는 겁니다. 물론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말입니다. 교회를 욕할 때는 욕을 하면서도 그래도 누군가가 교회에 나간다고 하면 "아하, 착하게 살려고 애쓰는구나" 라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 교회의 구제 - 로마의 통치전략 !!
그러나 '구제'나 '이웃사랑' 이란 것은, 이렇게 교회가 대중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갖기 위한 술책이었습니다. 로마 당시에 부자들이 교회를 통해서 구제함으로써 부자에 대한 이미지를 사회에 각인시켜서, 부자가 리더십으로 세상을 원활하게 통치할 수 있는 방침을 교회를 통해서 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가 커지면서 '전국민의 신자화'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교회에 나올 때는, 빈 맘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좋은 이미지를 갖고 옵니다. 교회는 술끊고 담배를 끊는 등, 인간을 개조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옵니다. 그동안 엉망으로 살았기에 지옥에 가기 쉬운데, 이제는 철들어서 좋은 일 하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그런 장치로서 교회를 보는 선입견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선입감 속에 스스로 정해놓은 죄관이 들어 있습니다. "담배피고 술 먹으면 나쁜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가정이 화목해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착한 일을 해야 한다" 라는 식의 선입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착한 일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평소에 구린데가 많다는 뜻입니다. 당당하다면 "교회 같은데 안 나가고 이대로 산다' 라는 식으로 할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에 올 때는 "이렇게 나쁘게 살면 안 된다" 라는 것을 갖고 오기에, 목사는 성경보다는 그 사람의 마음을 달래고 위로하는데 역점을 두고 설교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설교는 어려운 말씀보다 간증이 최고 !!
그러한 방법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당신이 그동안 술 담배로 쓸데없는 데 뿌린 돈을, 이제는 교회가 착한 일을 대신해서 할 테니까, 교회가 하는 착한 일에 돈을 보태시면 그것이 하늘나라에 동원될 때 당신은 천국에 도착합니다" 라는 식입니다. 돈을 앞세우고 흥정하고, 그래서 거래가 성립됩니다. 이것을 과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목사는 설교를 이렇게 합니다. "여러분, 자기 인생을 돌아보세요. 얼마나 탕자로 살았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나요? 그러니 이제는 인간다운 인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라고 해놓고 엉터리 간증을 늘어지게 합니다.
40세인데 간암에 걸려서 어쩌고, 그런 식으로 예상지도 못하게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이제부터는 착한 일을 해서 죽음을 대비하는 것이 보험에 드는 것보다 낫다고 하면, 청중들이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라고 하면서 바람잡이들같이 분위기잡고 하면 감동이 슬슬 오기 시작하는데,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하나도 지금 감동이 안 오고 있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ㅋㅋㅋ
교인들이 "그럼 어떻게 하면 됩니까?" 라고 하면, 목사는 "하나님이 주신 돈이 있잖아요. 그 돈을 혼자 다 씁니까? 나쁜 일 하는데 쓰고, 또 자기 배만 채우기 위해서 돈을 쓸 겁니까? 이제부터 다만 얼마라도 내면, 그 정성을 보시고 하나님은 30배 60배 100배로 갚아 주십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13장은 전혀 그런 이야기가 아닌 것임을 아시죠.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다음 기회에 하겠습니다.
(마 13:1)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마 13: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마 13: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마 13:4) 뿌릴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마 13: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마 13: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마 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마 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마 13: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결론적으로 말해서, 교회에 헌금한다고 하나님께서 착하다고 보시지를 않습니다. 술과 담배를 끊고, 못된 성격을 고친다고 하나님께서 훌륭하다고 보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런 인간은 앞으로 개과천선을 어떻게 해도 예수님의 피가 없으면 영생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이 원하는 기준은, 하나님에 의해서만 도달될 수 있다 !!
교회란 착한 인간을 만드는 곳이 아닙니다. 그동안 살아보니 하나님 원하는 기준에, 자기가 아무리 애써도 도착하지 못한다는 것을 자인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기준은 하나님에 의해서만 도달될 수 있습니다. 그 기준 앞에서 아무리 교회를 50년, 60년 다니고 제 아무리 애써도, 그런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인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찾아봅시다. 야고보서 2장 10절입니다.
(약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자가 되나니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된다" 라고 하는 것, 그것이 곧 하나님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시험문제 100문제 중에서 하나가 틀리면 99점인데, 그게 0점이나 같다는 것입니다. 왜요?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 율법 - 99점은 곧 0점 !!
파출부가, 아니 가정 도우미가 한 사람이 있는데, 여주인이 그녀에게 일을 시킵니다. "아줌마, 빨래하세요. 설거지하세요. 아기 기저귀 좀 갈아 채우세요" 라고 하면, '예, 예' 라고 하면서 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줌마, 큰방 청소하세요" 라고 하니, "아차, 다른 것은 다 했는데 그것은 못했습니다" 라고 한다면, 지금 여자 주인이 요구한 것은 4가지였는데 3가지밖에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 여자 주인은 가정 도우미에게 4가지를 다 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러니 한가지 한가지 명령은 모두가 다 똑같은 주인의 권위가 실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 청소를 하라고 했는데 그것을 안 했다는 것은, 이 여자 주인의 권위를 무시한 것이 됩니다. 그것은 완벽하게 100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릴 때부터 완벽하게 삽니까? 죄 없이, 실수 없이 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 왔습니까? 완전하지는 않지요? 때로는 본의 아니게 실수도 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처음에는 인간을 완벽하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의 완벽한 상태와 지금의 완전하지 않은 것과 비교를 해봅시다. 하나님께서 본래 원하는 처음의 완전한 그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죄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들이 들어가면, 죄가 마치 바이러스와 같이 천국에 확산되어서 천국이 망가져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완벽하고 완전한 자 외에는 천국은 전혀 용납하지를 않습니다. 오로지 완전한 자만이 천국에 가는데, 그런데 예수님만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기에 오직 예수님만이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천국에 갈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 기독교 - 성령을 보내셔서 자신의 피로 깨끗하게 !!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일컬어 성령이라 하는데, 그 성령을 보내셔서 아무리 애를 써도 완전치 못한 자를 데려와서 완전케 하시는데, 그 방법은 자신의 피로써 그 죄를 씻어주면, 바로 그 예수님의 피로 완전한 사람이 되어서 천국에 골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를 찾아보겠습니다. 다들 직장 때문에 피곤하셔서 길게 안 합니다. 저도 분위기 파악을 좀 하거든요. 많이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고 말입니다.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고후 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5: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고후 5: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후 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들을 보면서 얼마나 제가 놀랐는지요. 보통 죄를 지으면 자기가 죄를 지었으니 그 벌이 자기에게 온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기에, 우리 앞을 가로막는 몰상식한(?) 예수를 안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죄를, 그 심판을 예수님께 돌려버립니다. 그래서 21절에 보면,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으로 하여금 우리 죄를 '대신'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좋아서 이것만하고 마치겠습니다. 여기 '대신' 이라는 것이 자기가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남이 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입니다. 죄를 그분 것으로 삼아버리고, 우리는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 즉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살인강도가 천국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강도가 죄지었는데 그날 밤 천국에 갔잖아요. 하나님께서, 즉 그 옆에 달리신 예수님이 일부러 그렇게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강도를 낙원에 보내기 위해서 강도의 죄를 강도에게 돌리지 아니하고, 그 죄의 물꼬를 틀어서 예수님에게로 돌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강도는 그렇게 끔찍한 살인죄를 지었지만, 죄가 없는 상태에서 예수님과 함께 합류를 해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누가 믿습니까? 미친놈이 있죠. 그 강도가 놀랍게도 이것을 믿었고 그래서 "네가 오늘밤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는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 목회자 - 오로지 예수님의 일방적인 공로만 전하는데 일생을 !!
이제 끝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교회에 바라기는, 교회를 없애고 싶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교회는 그냥 있을 것인데, 방금 제가 이야기한대로, 예수님의 일방적인 공로만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십일조를 한다고 복 받는다는 식으로 전하고, 또 목사한테 잘하면 복 받는다는 식으로 사기를 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복음을 전해주시니 너무 고마워서 제가 우동 한 그릇을 사겠습니다" 라는 것은 있을 수가 있지만, 목사한테 잘하면 복 받는다는 것은 사기라는 겁니다. 목사가 착한 일을 대신 해줄 테니 돈을 자기에게 가져오라는, 그런 식으로 사기를 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장사꾼은 목사가 되면 안 됩니다. 목사는 사도처럼 밀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당장 죽어도 좋다고 해야 합니다. 자기는 죽고 남은 살리는 그런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왜 이 모양입니까? 도대체 누구의 책임입니까?
그것은 일반인들이 복음을 모르고서 평소에 그렇게 살다 보면, 죄를 짓고 찜찜하니 죄를 거론하면서, 착한 일을 하면 복 받는다는 식의 이야기가 잘 들리고 이해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잘난 맛에 살게 해주니까,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사기입니다. 전 재산을 다 갖다 바쳐도 구원이 안 됩니다. 돈은 있으나 없으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만 오로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된다는 것입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신혼이 시작되는 가정에 왔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고생을 하는 것은 어느 가정이나 다 똑같이 고생하면서 사는데, 행복을 바라는 것도, 늘 최고가 되는 것도 다 욕심일수 있습니다. 욕심은 여전히 있겠지만, 오늘 주님이 부르신다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예수님의 그 용서하심을 받아들이는 가정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2005,4,21 녹취 - 오용익 - 오늘밤에 목사님에게 그리스도의 평안이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 아들자랑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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