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내기
야고보서 1:19-21 성내기
‘성 안내기’가 아니라 ‘성내기’가 인간 본성에 맞습니다.
어떤 점에서 인간은 성낼 거리를 찾아 헤매는 식으로 평생을 삽니다. 자기 내부의 울분을 터뜨릴 상대자를 찾는 데 대단히 특화된 감각을 키워왔습니다.
인간은 내부적으로 폭발하는 성질을 자체적으로 잠재우기 위해 착한 사람, 순한 사람, 말 잘 듣는 사람, 훌륭한 사람, 그리고 신의 복이 자동적으로 덮칠 것 같은 사람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여 자기 곁에 두고서 늘 덕을 보겠다는 심리도 작용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일방적인 자신의 결정이기에 그 사람은 평생 내가 수시로 쏟아내는 분을 다 받아내어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요구하게 됩니다.
그 규정으로 상대를 묶어두려고 합니다. 상대는 무슨 죄가 있습니까? 상대는 나의 못된 성질로 인해 시도 때도 없이 언제든지 터질지도 모르는 성질을 다 받아내어야 한다는 데서 오는 긴장감과 압박감을 늘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도 같은 차원입니다. 모든 것을 용납해 주는 사랑의 하나님을 찾아 그리고 용감하게 “믿습니다!”라고 외칩니다.
이런 간교함에 대한 하나님의 대처는 단호합니다. 봐주지 않습니다. 그냥 심판입니다. 그냥 저주입니다. 즉 인간들의 내부 심란함이 곧 징벌이 시작된 현상입니다.
인간은 벌은 하나님에게 받고 분풀이는 인간에게 합니다. 나중에 이런 시도가 성이 안 차면 자기 내부로 향하게 됩니다. 즉 “신이시여. 저는 쉬지 않고 반성하고 회개하고 나 자신을 낮추는데도 왜 저에게 평안을 보상으로 주지 않으십니까?”
여기에 대해 사도 바울은 감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인 중에 괴수라는 사실이 확실해지고 분명해졌으니까요. 도리어 왜 자주 성내고 있지 않는지, 왜 쉬지 않고 성내지 않는지 도리어 이상하게 여기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 7: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