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 없는 자식260322
아비 없는 자식(예레미야애가 5:3-7)
아비 없는 자식
2026년 3월 22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애가 5:3-7
(5:3) 우리는 아비 없는 외로운 자식이오며 우리 어미는 과부 같으니
(5:4) 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섶을 얻으오며
(5:5) 우리를 쫓는 자는 우리 목을 눌렀사오니 우리가 곤비하여 쉴 수 없나이다
(5:6) 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
(5:7) 우리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대대로 내려오는 공동체의 풍습과 관습을 외면하기란 인간으로서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혈육이란 삶의 기본적인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정신적으로 지주 역할을 하게 마련입니다. 생계에 필요한 금전 조달은 주로 근력이 강한 아버지로부터 제공됩니다. 따라서 아버지가 없다는 것은 존재의 근간이 끊어지는 겁니다.
‘살 수 없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가치가 모두 무너진다는 겁니다. 따라서 형편이 이 정도 되면 종교나 율법이나 하나님이니 따지지 않고 일단 살고 보자 하는 식으로 나가게 마련입니다. 이 와중에서 예레미야는 현 유다 나라의 형편을 절망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즉 옛날처럼 하나님만 섬기면서 풍부한 삶을 지낼 수 없다고 봅니다.
이 모든 것이 ‘아비가 없음’을 탓합니다. 선조들이 자신들에게 물러준 것은 죄악 뿐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선지자가 현실을 규정하는 것은 곧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에 해당됩니다. 육적으로 몸부림치면서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결국 육의 한계에 갇히는 바가 됩니다.
그렇다면 신약에 와서 이스라엘은 과연 아비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호세아 11:1에 보면, “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들’이 되는 조건은 필히 ‘애굽’에 거해야 합니다. 즉 이 세상 전체가 애굽입니다. 모조리 아비의 죄를 전수받은 형편에 있습니다.
따라서 그 아비의 아들이요 육에서 연결된 육입니다. 이 호세아 11:1의 완성은 예수님을 통해서 구현됩니다.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 2:14-15)
즉 진정한 ‘아들’은 예수님 뿐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에게는 아예 ‘아비’가 없습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그런즉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러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마 1:16-
18)
예수님의 출생은 다른 모든 인간들의 출생과 차별화됩니다. 예수님의 출생에 일체 그 어떤 남자도 관여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것이 아니라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이 스스로 나신 것입니다. 도리어 여성 마리아는 예수님의 출생을 돋보이는 게 하기 위해 등장한 여자입니다.
이처럼 유일한 하나님 아들의 탄생에 대해서 주목하는 쪽이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사단입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계 12:1-4)
따라서 인간들이 자신들이 아비 없다고 탄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되시는 분이 먼저 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예수님에게 일어나는 동일한 조건 안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그 동일한 조건이란 ‘아비 없음’을 기정사실로 해야 된다는 겁니다. 육으 아비는 없는 언약의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께서 그 없음의 자리를 채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아들 관계가 성사되는 율법의 원칙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브라함 언약을 통해서 알려집니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앞두고 간절히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심판을 주어지지 말기를 원해서 하나님께서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을 들이밉니다.
그것이 바로 ‘의인은 악인과 더불어 심판받을 수 없는’ 원칙입니다. 죄없는 자가 죄 있는 자와 더불어 함께 벌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돔과 고로나는 애초의 계획대로 불심판이 감행됩니다. 과연 롯은 의인일까요? 그리고 롯의 아내를 제외한 롯의 두 딸은 구원받고 난 뒤에 의로운 행위를 보였을까요?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자 그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창 19:31-
33)
즉 두 딸은 자신들에게 자식이 있는 것이 옳고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자식이 세운 나라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모압과 암몬입니다.(창 19:37-38) 이방민족에 해당됩니다. 하나님께서 롯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건져내신 것은 롯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하나님과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창 19:29)
아브라함은 심판 때에 소돔과 고모라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관계 안에 하나님의 의가 있었고 롯은 아브라함의 조차로서 아브라함의 기도가 혜택을 입었던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우선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에서 ‘아들이 되는 조건’에 모자람이 없어야 합니다.
그 아드님의 영이 임하게 되면 롯처럼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서 건짐을 받게 되는 겁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6-18)
즉 육으로 된 자녀가 아니라 영으로 된 자녀가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사람의 힘이나 능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음을 명심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