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바라보기
히브리서 12:2-3 십자가 바라보기
자기 백성을 온전케 하기 위해 주님께서 부끄러운 일을 서슴치 않아야 될 이유가 뭘까요? 그만큼 ‘구원’이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지경 안에 있는 자들에 대한 건짐이라는 말입니다.
즉 사람들이 존재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수치스럽고 더럽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더러운 것일까요? 그것은 윤리와 도덕의 문제가 아닙니다.
고집에 관한 문제입니다. 기어이 자신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평생을 버티고 있는 겁니다. 집에 곰이 쳐들어오니 집주인도 곰의 탈을 쓰고 곰보고 나가라고 소리친 경우가 있습니다.
‘구원’이 언급하기 전에 ‘구원될 수 없는 자’를 추방하는 일에 철저를 기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구원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수치를 알지 못한 채 천국에 접근을 시도하는 자를 주님께서는 그들보다 더 심하고 극단적으로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그들을 후쳐 내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구원되는 자는,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까지 자신을 낮추어셔야 하는지 비로소 이해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표현하신 그 부끄러움의 모습은 현 인간들이 일상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있어 ‘하나님을 바라보자’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자’입니다. ‘온전함’이란 주님이 이 세상을 다녀가신 코스를 밟아야 파악이 될 일입니다.
십자가의 수치심에 합류하는 것을 결코 수치스럽게 여겨서는 아니됩니다. 구원될 자라면 하나님으로부터 얻어낼 이익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덕을 보겠다는 심보가 얼마나 추잡고 더러운 생각인 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존재인지도 모르는 채 하나님이나 주님이나 십자가를 쳐다보면서 천국에 가서 행복할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우편’의 자리는 저주할 것들에 대해서 저주가 쏟아지는 바로 그 자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주를 퍼부어야 마땅함을 아는 자만이 저주의 자리에서 구원의 주님이 내려오신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