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달리기
히브리서 12:1 주님께 달리기
질주, 정신없이 달릴 수 있는 것은 자기를 가볍게 할 경우에는 가능합니다. 그것은 자기만의 소망이나 소원이 있다면 이 기대에 거는 자신의 무게로 인하여 제대로 속도를 낼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촘촘한 힘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힘들이 막아서고 있습니다. 이 힘들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누가 쏟아놓고 있는 걸까요?
권력이란 어떤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국가 권력, 교회 권력, 가정 권력, 직장 권력 등등입니다. 사실은 이들의 이름은 ‘나’를 구성한 확장된 ‘나의 이름’입니다.
나의 육신이 아니라 내 육신을 주위에 둘러싼 ‘나의 세계’입니다. 숱한 ‘나의 이름’들이 힘을 키우기 위해 각종 만남을 형성하다보니 힘들과 힘들이 서로 마주치고 있는 겁니다.
이 빡빡한 힘들 사이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사적인 저항을 주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부터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백성들을 발생시켰습니다.
이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언약으로 인하여 열린 길이 그들을 이끈다는 겁니다. 그들이 길을 찾아가는 식이 아닙니다.
그들 앞에 길이 마련되는 겁니다. 이 길이 보다 구체적인 인물로 첫 번째 등장되는 자가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는 백성들과 더불어 광야 길을 동행했는데 백성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살 길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이 갈 수 있는 지도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로 하여금 자꾸만 앞 길이 막아버리십니다. 그리고 그 막힌 길이 다시 열리는 경우는 ‘하나님 이름’으로 직접 이 여정에 직접 관여하고 있는 사실이 나타날 경우 뿐입니다.
그 예가 바로 탈락자가 속출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는 ‘너의 이름’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겁니다.
즉 율법 안에는 주의 이름으로부터 시작으로 주의 이름으로 마감되는 경로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성막에서 행해지는 제사 기능이 바로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