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체험
히브리서 11:35-38 죽음 체험
죽음에 대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안 죽고 싶더라도 상황이 들이닥치면 어쩔 수 없이 마주하고 맞이해야 합니다. 수긍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람은 죽음이 오면 본능적으로 피합니다. 이점에 있어서 짐승이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는 미지에 대해서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장래를 대비하는 방법은 과거의 경험치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살아 생전에 단 한 번에 죽음에 대해서 경험한 바가 없습니다.
타인의 장례식에는 숱하게 참석하지만 그저 자신들에 눈에 뜨이는 것은 시신이지 결코 죽음 그 자체는 아닙니다. 죽음에 대한 신비에 대해서 인간들은 누구나 외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허락하신 약속 속에는 ‘죽음 체험으로서 초대장’이 들어 있습니다. 인간이 자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움을 벗어나고자 괴로움의 주체인 자신을 스스로 제거하는 것은 약속 속에 담긴 죽음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기에게 덮친 공포를 감당못하고 도망치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에 담긴 죽음은 자기와의 결별을 말합니다. 더 귀한 것, 더 소중한 것의 초대에 응하다가 보니 어느새 성도는 자신이 미처 예견하지 못하는 낯선 죽음 속으로 들어와 버린 겁니다.
구약 성경, 즉 아직 하나님의 약속에 도달하기 전에는 외부 상황들의 조력에 의해서 그들은 원치 않는 육체적 난도질을 당했습니다.
‘톱으로 켜임을 당하는 것’은 평소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주저없이 공포를 가져다주는 도구와 마주 대하여 하는 죽음입니다. 당연히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피하지 못하도록 만드십니다. 바로 이 강제 조치가 그 어떠한 죽음의 공포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도의 생애는 전체가 다 ‘세상이 감당 못할 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준비된 환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