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 250727
홍해(히브리서 11:29)
홍해
2025년 7월 27일 본문 말씀: 히브리서 11:29
11:29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제시한 믿음과 합치되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일단 인간은 자신을 지키려고 합니다. 자연적으로 자기를 지키려는 믿음으로 무장되게 됩니다. 인간은 안정감을 원합니다. 요란한 세상 변화에도 자기만큼은 흔들리지 않고 평온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홍해’, 혹은 ‘십자가’라는 용어가 나오더라도 쉽게 잊어버리면 자기가 만든 삶에 몰입하고 그것을 충실히 지키려고 합니다. 죽을 때까지 자기에게 함몰되는 삶이 되는데 있어서 마음 아래가 강하게 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이 힘에서 인간은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한결같이, “나만 챙기만 돼”에 전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존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 존재와 나라는 존재의 이질성을 띠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인간에게 물으십니다. “너 나에게 감사하고 있어?” 인간으로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자기에게 충실한 존재이니 오로지 자신에게만 감사하고 있을 때문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은 자기 외에 다른 이에게 감사하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봉사하고 되어 있고 희생하게 되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세계에 합류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깁니다. 더나아가서 그 분과 한 몸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 사람은 자아가 점차 이별하게 됩니다. 자신의 계획, 자신의 목표, 자신의 기대와 예상과도 멀어지게 됩니다.
홍해 사건을 준비하신 쪽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쪽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요구사항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예상하는 경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간들은 본인이 사는데 집중하기에 살기 위한 경로를 예상합니다. 그런데 홍해는 바로 그 인간들의 기대를 좌절시킵니다.
‘거기로 가면 길이 없어요. 우리 다 죽어요’라는 바로 그 길이 홍해 바다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홍해 바다로 이스라엘을 통과시키므로서 하나님깨서 받아줄 수 있는 일단의 무리의 성격을 일방적으로 지정해주십니다. ‘홍해의 의미를 믿으라’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홍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산 사람들은 결코 그 ‘살아 있다는 의식’으로 인해 도저히 들어설 수 없는 곳이라는 겁니다. 인간은 단순히 죄를 지는 자가 아니라 죄 뿐인 존재입니다. 저주 이외에 다른 대우는 성립될 수 없는 자가 바로 인간이 본질입니다. 이런 사실이 곧 하나님의 인식입니다.
과연 이 하나님의 인식에 부합되는 인식을 가진 자를 하나님께서 홍해 바다라는 장벽을 통해 친히 생산하시려는 겁니다. 애굽 군대의 인식은 이러합니다. “저들 히브리인들이 홍해 바다를 걸어서 갔으니 자신들도 똑같은 인간으로서 통과할 수 있다”는 겁니다. 즉 ‘홍해를 건너갈 수 있다’는 생각이 그들을 망하게 한 겁니다.
마치 교회에 와서 남들이 천국갈 수 있는 것처럼 나도 천국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자신들으로 지옥가게 하는 망할 의식인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홍해 바다에 선 이스라엘들은 이런 희망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 모세를 대하여 항의했던 자들입니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 14:11-12)
즉 이스라엘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항의했고 모세에게 항의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인간이 태어나면서 지니고 있었던 인간의 본 모습입니다. 한시도 살아 있는 자신을 전제로 하지 않는 생각이 나와 본 적이 없습니다. 온통 자신은 마땅히 살아야 합당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홍해가 맞이하는 시간과 공간은 이 세상과는 철저히 절단되어 있는 세계입니다. 이 홍해 안의 세계는 미래가 마중 나오는 세계며 ‘어제가 없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그 홍해 안에는 ‘여호와의 이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출 15:3)
이 여호와께서는 철저하게 유월절 정신을 실행에 옮기시는 분이십니다. ‘유월절 정신’이란 인간의 무기력과 무능성을 전제로 해서 일하시는 정신입니다. 이 유월절 정신이 담겨 있는 절기가 바로 안식일입니다. 절기가 ‘중지 요소’를 품고 있습니다. “인간 STOP!”입니다.
안식일은 인간의 노동이 전면적으로 금지가 되는 날입니다. 즉 인간에 애쓰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 대신 인간이 끼우는 가축에 대해서는 일을 시키지 않더라도 먹을 것은 주어야하는 날입니다. 즉 어느 한쪽이 친히 길러주시고 다른 쪽이 그분에 의해서 길러냄을 받는 관계를 분명히 하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이 안식일을 일곱 차례나 반복하고 추가적으로 하루가 지키면 오순절됩니다. 그리고 7년 마다 찾아오는 안식년을 일곱차례 반복하고 난 뒤 그 다음해가 희년입니다.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아 주므로서 그동안 개입된 인간의 모든 노동을 무효화하는 해가 희년입니다. “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 제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레 25:8-10)
이처럼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오거나 통과해야 하는 민족이 아니라 홍해가 제공한 시간과 공간을 짊어져야 하는 민족입니다. 즉 ‘친히 용사가 되시는 여호와’와 동행해야 하는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무슨 수로 자기 위주를 포기할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1:58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요 1:48) 즉 홍해 취지 그대로, 새로운 시공간에 계시는 분이 먼저 찾아와 주시는 공간이 발생합니다. 어제 없던 미래가 친히 마중에 나오는 세계, 이것이 바로 성도가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죄인에게 있어 천국길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이름께서 생산해낸 성도로 인해 새로 나타난 길이 곧 천국의 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십자가 사건 안에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