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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5대구강의]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15 - 상속자 예수님설교

[25대구강의]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15 - 상속자 예수님

25,06,02 강의 : 이근호, 정리 : 구득영

* 죽었나? 죽었구나 !!

여러분, 조폭들이 뭐라고 합니까? 물론 실제로 조폭들을 만날 일은 거의 없는데, 영화를 보면 "돈을 안 갚으면 담근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죽여버리겠다는 것인데, 그런데 주님은 이런 조폭들보다도 더 세게 나온다는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까, 주님은 "애가 죽었나? 죽었구나" 라고 하시는데, 그렇게 죽음을 확인하고 난 다음에, 그렇게 죽었으면 아무런 소리도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일방적인 부활의 능력으로 살려내시는데, 그때만 구원이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마르다와 마리아가 아무리 예수님의 턱 앞에 앉아서 열심히 말씀을 공부해도, 그렇게 예수님에게 바짝 달라붙어서 말씀을 공부한다고 해서 구원해주시는 것이 아니고, 먼저 죽인 다음에 살려내신다는 겁니다.

* 나와 나 사이에는 예수님의 죽음이 !!

그러니까 '나(A)'와 '나(B)' 사이에는 무엇이 있느냐 하면, 죽음이 끼어 있다는 말이죠. 이것을 절단면, 또는 단절면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즉 "나와 나 사이에는 죽음이 끼어 있다" 라는 겁니다.

부모로부터 태어난 '나'와 주님에 의해서 태어난 '나' 사이에는, 그냥 죽음이 끼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되면 가룟유다가 자살을 해도 구원받는 셈이 되니까 말이죠. 그러니 보통 생각하는 죽음이 아니고, 예수님의 죽음이 이 안에 끼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 노력으로 '나(A)'에서 '나(B)'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게 된다는 말이죠. 즉 "나의 노력으로 구원될 수 없다" 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인데, 그런데 이것을 사람은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사람은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이죠.

"사람은 할 수 없다", 그 다음에 "하나님만이 하신다" 라는 것인데, 그런데 이것을 위와 아래로 두는 것이 아니고, 옆으로 나란히 해서 서로가 마주 보게 하자는 겁니다. 즉 '사람 하기' 라는 것과 '하나님 하시기' 라는 것을 섞지 말고 마주 보게 하자는 말이죠.

* 성경은 마주 보기 !!

그렇게 이 두 개의 요소를 서로 마주 보게 한 내용이 무엇인고 하면, 그게 바로 '성경' 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무엇을 말하고 있다는 겁니까? "사람은 할 수 없고, 주님만이 하신다" 라는 것인데, 그것을 성경이 이야기해주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되면, "사람은 할 수 없고 하나님은 하신다는 것을 내가 믿습니다" 라고 나오는데, 그것은 정답이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하나님이 문제가 된다는 말이죠. 여기에서 "당신이 이해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라고 물어보게 되면, 전부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이야기한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실제로 사람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겁니다. 그렇게 오시니, 그래서 어떤 차이가 났습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과 직접 이 세상에 나타난 하나님이 인간들이 보기에 같았습니까? 아니면 오히려 반대였습니까?

다른 정도가 아니고 아예 반대였다는 것인데, 하나님이라고 오신 분이 마치 이단 같고 귀신 들린 것 같다는 말이죠. 요한복음에 의하면, 하나님이 율법을 위반하는 것 같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인을 서서히 의인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하시는데, 사람들은 그게 율법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는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의인을 부른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율법으로 말미암아 점점 더 의인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면,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점점 더 뭐가 되는 겁니까? 죄인이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점점 더 죄인이 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말씀이라는 겁니다.

(막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그러면 우리가 생각할 때, 점점 더 의인이 되는 것이 기분이 좋습니까? 점점 더 죄인이 되는 게 기분이 좋습니까? 점점 더 의인이 되는 게 기분이 좋은데, 그런데 정작 마음의 짐, 즉 인생의 무게는 어느 쪽입니까?

점점 더 죄인이 될 때, 그러면 굳이 남에게 내세울 게 없어지는데, 그게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는 말이죠. 남들에게 "나는 이렇게 잘났다" 라고 내세울 게 없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뭐냐 하면, 그게 바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라는 말씀이라는 겁니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교회를 수십 년을 다니고 몇 대째 신앙가정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과연 자유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고 하니, 교회에 오래 다니면서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에 접근하고 있음을, 거기에 대해서 지금 한없이 기뻐하고 행복해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자유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죠.

* 그런데 집사님의 자식은 요새 무엇을 합니까?

우리가 교회에서 말씀도 보지만,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남들과 대화를 할 때는, 그 사람의 배경이나 그 사람의 실력, 그 사람의 삶의 환경, 그런 것을 견주는 기회가 된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서, "집사님이 이번에 딸내미를 시집을 보낸다고 하는데, 신랑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라고 하는데, 그러면 "신랑이 연대 교수라고 하네요. 자기가 알아서 연대 교수와 연애를 했어요. 그러고 보니 집사님의 아들은 이번에 의사 며느리를 봤다면서요?"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아직 취직도 못하고 있는 자식이 있는 제3의 집사님이 감히 끼어들 수가 있겠습니까? 괜히 끼어들었다가 "집사님의 자식은 요새 무엇을 합니까?" 라고 묻게 되면 곤란해진다는 말이죠.

* 삼체 현상 !!

이게 무슨 현상이냐 하면, 물리학에서 제일 풀기 어려운 '삼체 문제(三體問題, three-body problem)' 라는 것인데, 즉 '너'와 '나' 사이에 제3의 요소가 끼어들면 물리적으로 어떻게 되는고 하니까, 변수가 엄청나게 많이 늘어난다는 겁니다.

이 물리학의 삼체 현상은 어느 정도냐 하면, 태양이 있고 그리고 지구가 있는데, 태양의 위성 가운데 제일 가까운 쪽에 있는 것은 수성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연구를 해보니까, 수성의 궤도가 1m도 아니고 1cm도 아니고, 지금의 궤도와 1mm만 달라지면 수성은 지구하고 충돌을 한다는 겁니다. 그게 삼체 현상이라는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두 사람이 있을 때는 문제가 간단한데, 그런데 제3자가 끼게 되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그렇게 제3의 물체, 즉 n개의 물체, 그렇게 4, 5, 6, 7개의 물체가 등장하게 되면, 거기서 발생되는 변수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지금 가만히 있다가 에어컨이라는 제3의 사물 변수가 오니 기침을 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래서 어제 주일 오후시간에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는 지금 자기가 속해있는 상황을 자기가 만든 상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고 이것은 엄청나게 많은 변수가 작용한 주님이 만드신 상황입니다" 라고 했다는 말이죠.

* 킹콩을 아시나요?

그렇게 주님이 만드신 상황에서 자기가 분노하거나 절교하면 되겠습니까? 과거에 '킹콩' 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 킹콩이 가슴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게 우리 인간인데, 우리 인간이 평소에 "살겠다, 못 살겠다" 라고 하는 게 무슨 뜻이죠? 변수를 고려하는 것인데, 즉 자기가 원했던 상황이 안 되니까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가슴을 친다는 말이죠.

그것을 주로 어디서 하느냐 하면, 그게 장례식장이라는 겁니다. 나이 95세에 돌아가신 호상이 아닌, 아이들이 사고사를 당해서 죽는다든지 했을 때는, 그 부모가, 특히 엄마가 가슴을 친다는 말이죠. 완전히 킹콩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교회에 다니고 성경공부를 할 때는, 자기가 킹콩인 줄 몰랐다는 말이죠. 아무런 탈이 없으니까, 지금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런데 자기가 만든 상황에서 조금만 삐걱을 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지금의 이런 상황은 내가 원했던 상황이 아닙니다" 라고 하면서 킹콩으로 돌변을 한다는 겁니다.

* 마주 보고 있는 상황에서 !!

그러면 그럴 경우에, 방금 우리가 뭘 배웠습니까? 성경 내용은 뭐라고요?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상황과 하나님이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섞여 있는 게 아니고, 마주 보고 있다는 말이죠. 마주 보고, 즉 대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집안에 답답한 일이 생겼다고 했을 때, "하나님, 이럴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 것은 이미 답을 한 것인데, 어떻게 말인가요? "하나님, 이룰 수는 없습니다. 이럴 것 같으면 하나님을 안 믿겠습니다" 라는 것이란 말이죠.

바로 그럴 때 이 '하나님' 이라는 개념이 도대체 뭐냐는 겁니다. 이때 하나님의 개념은, "만사가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 라는 것인데, 그러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만들어낸 가짜 하나님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진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고 하니, 모든 인간은 가짜 하나님을 믿는데, 진짜 하나님은 사람이 되어서 오신 분이라는 겁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사람 앞에 등장했다고 생각을 해보자는 말이죠. 그것도 사형을 당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재판은 누가 합니까? 사람이 하는데, 그러면 피고는 누가 되는 겁니까? 하나님이 피고가 되는데, 참으로 기가 막인 상황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이런 상황은 하나님이 만든 상황이라는 겁니다. 그게 십자가라는 상황이라는 것이죠.

* 피고는 하나님, 재판장은 인간 !!

우리가 '기독론'을 하면서, 이러한 준비 과정들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 다음이 중요한데, 하나님이 피고가 되고, 재판장은 인간이 되었다는 말이죠. 사실 이것은 반란인데, 악마의 반란이라는 겁니다. 배후에 있는 악마가 그렇게 했다는 말이죠.

그렇게 하나님이 피고가 되고 사람이 재판관이 되었을 때, 이 상황을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인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을 어떻게 비교를 하느냐 하면, 이것만 하나 알아도 우리 인간은 영원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겁니다.

* 인간은, 중간 존재 !!

그것은 "인간은 중간 존재이고, 주님은 시작과 끝이다" 라는 것인데, 우리가 '끝내준다' 라고 할 때,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아예 모든 마감은 그 사람이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말이죠. 주님은 시작과 끝이고, 인간은 그 중간 존재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렇게 주님이 시작이고 주님이 끝이 되기 위해서, 인간의 중간 존재에 끼어드는 하나의 자료, 또는 소재가 된다는 말이죠. 즉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 때, 인간은 그 제품의 원료가 되는데, 그러니 인간이 가슴을 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자기가 최초입니까? 아닌데, 그러면 자기가 최후인가요? 역시 아니라는 말이죠. 알파와 오메가는 따로 있는데, 그런데 왜 중간 존재가 시작이고 끝인 것처럼 여기고 가슴을 치고 하느냐는 겁니다.

그게 바로 가룟유다인데, 그 다음에 뭡니까? 자기 스스로 목매어 자살을 한다는 말이죠. 왜 그렇게 해요? 자기는 시작도 끝도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는 그냥 중간 존재에 지나지 않는데, 왜 가슴을 치느냐는 것이죠. 이것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짓이라는 겁니다.

* 주님이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 이유는?

그러면 여기서 이제 궁금한 것은, 주님은 무엇의 시작이고, 그리고 주님은 무엇을 끝장내려고 오셨느냐는 것인데, 그리고 거기에 왜 인간 존재가 끼어 드느냐는 말이죠. 이게 궁금하다는 겁니다.

인간에게는 뭐가 있느냐 하면, 가족이 있다는 말이죠. 가족은 아버지와 자식으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이 장자 르우벤을 보고 "너는 나의 기력의 시작이다" 라고 하는데, 즉 아버지는 장자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겁니다.

(창 49: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어제 낮 설교시간에, 딸이든 아들이든 전부 다 아버지에 속한다고 했는데, 남자에게 속한다는 말이죠. 즉 남자의 후손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족보에 남자 이름이 들어가지 여자 이름은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것은 마태복음 1장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창세기는 무엇입니까? 남자의 자손이 아닌 또 다른 노선이 있다는 말이죠. 그게 여자의 자손인데, 그러니 그 여자를 찾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이미 남자에게 속했는데, 그런데 이 남자에 속한 이 노선이 아닌 여자에 속한 노선이 따로 있다는 것이죠. 그 여자에 속한 노선을 찾아내야 하는데,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소속이 불분명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남자의 소속이라서, 스스로 자기를 극복해내지는 못한다는 말이죠. 자기 노선에서 알아서 나가서, 여자의 노선으로 가고 하는 것은 없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골로새서 1장 13절과 14절을 잠시 보겠습니다.

(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 '아들 안'에서 !!

13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라고 하는데, 아들인데 그 아들 앞에 무엇이 붙어 있습니까? 사랑의 아들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이것은 바로 요단강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이야기하는, 즉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라고 했을 때, 바로 그 유일한 사랑의 대상인 아들인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14절에 보면, 그 아들 다음에 무슨 단어가 하나 딱 있지요? '아들 안' 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안은 포대기 안이라는 말이죠. 이것은 옴팍 쌓여서 더 이상 그 바깥에는 안 나가도 되는 상태라는 것인데, 그게 '안' 이라는 겁니다.

바로 그 '아들 안'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인데, 아들 안에서 자기가 구원을 받는 게 아니고, 구원이란 것이 포대기 형식으로 되어있고, 그 포대기 구조 안에 퐁당 빠진다든지 그 안에 들어올 때, 이미 그 사람은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죠.

*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

이게 성경에 나와있는데, 이것과 같은 의미가 에베소서 2장에도 나온다는 겁니다. 여기서 에베소서 2장 2절과 3절을 보겠습니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사람들이 에베소 2장 2절과 3절을 보면서 대충 넘어가는데, 제대로 본 사람 같으면, 이것은 이 분노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2절에 보면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고 하니, "인간들아, 너희는 이미 갇혀있다. 꼼짝 말아라" 라는 것인데, 어디에 갇혀있다는 말이죠. 그 권세가 무엇인고 하니, 공중 권세를 잡은 자에게 갇혀있기 때문에, 그래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 자기 만들기 !!

어떤 영역 안에, 공간 안에 이미 갇혀 있는데, 어디에 갇혀 있는고 하니, 하나님에 대해서 불순종하는 힘이 작렬하는 곳에 갇혀 있다는 말이죠. 불순종하는 권세니까 힘인데, 그 힘이 현실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고 하면, '자기 만들기'에 열정을 다하는 모습으로 불순종의 힘이 작용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 만들기, 이게 불순종의 힘이라는 말이죠.

마귀가 그 얼마나 교묘한지 모르는데, 마귀는 AI와도 같다는 겁니다. 인공지능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인공지능은 인간을 위로하고 인간을 도와준다는 말이죠. 인간을 보고 칭찬하는데, "참 훌륭하십니다, 대단하십니다. 앞으로 더 잘하시면 발전할 수 있습니다"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겁니다.

동료라는 것은 친구라는 뜻인데, 어떤 사이가 친구 사이가 됩니까? 친구 사이의 반대말은 원수 사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인간 세계 속에서 불순종이니까, 인간을 지배하는 악마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지만, 악마의 권세 안에 있는 모든 인간은 악마와 동료 사이, 친구 사이, 즉 서로서로 격려하는 사이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누가 버려도 나는 너를 안 버릴게" 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동업으로 이어지고, 인류 역사상 가장 흔하고 보편적인 동업이 바로 혼인이라는 말이죠. 혼인은 곧 동업인데, 깊이 있게 생각할 것도 없다는 겁니다.

* 동업과 결혼 !!

예를 들어서, 여자가 식당을 한다고 하면, 그러면 남편은 무엇을 합니까? 식당을 도와주면 되는데, 그리고 남편이 식당을 한다고 하면, 역시 여자는 도와주면 된다는 말이죠. 남자가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여자는 시집을 와서 아침부터 나가서 호미를 들고 일을 해야한다는 겁니다.

나이가 40이면 요즘은 청년인데, "이제 서울생활이 지긋지긋하다. 귀촌을 하련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그 아내가 남편을 따라서 촌에 온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농사를 짓는데 도움을 되겠다는 것이고, 반면에 "당신 혼자서 가라" 라고 한다면,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당신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동업을 하지 않고, 나는 서울에서 아이의 공부에 신경을 쓰겠다. 당신은 농사를 잘 지어서 돈이나 벌어와라" 라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굳이 외국까지 갈 필요가 없는 기러기 부부가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이 부부라고 하는 것은 동업 형식인데, 옛날부터 양식을 구하는데 있어서, 서로 결혼을 해서 협력해서 구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혼은 동업이라는 말이죠.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동업이니까 한 패가 되는데, 백날 싸운다고 해도 삼체, 즉 3번째 타인이 등장하면 부부는 한 몸이 되어서 열심히 싸운다는 겁니다.

이러한 불순종의 세계에서는 전체가 하나님을 대항하는 원수가 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악마는 불순종하는 인간들로 하여금 그 불순종을 감추게 하고는, 인간의 자기 만들기에 열정을 다하게 한다는 겁니다.

* 네가 신처럼 되리라 !!

왜냐하면 악마는 인간의 독립을 부추길 때, 인간을 보고 뭐라고 했습니까? "네가 신처럼 되리라" 라고 했다는 말이죠. 모든 판단과 결정과 목적이 자기로 마감되는 존재를 신이라 하는데, 그러니 모든 결정과 최후의 목표가 자기가 잘 되면 끝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직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게 하는데, 그것을 출애굽기 32장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우상'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즉 자기를 위해서 만든 모든 것은 다 우상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게 설령 아무리 하나님이라고 해도 우상이 되고 만다는 것이죠.

(출 32: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라

에베소서를 계속해서 보면, 이게 무슨 내용인고 하니, "불순종의 역사하는 영이다. 그런데 인간은 육은 그 불순종의 영을 이기지 못하니까, 악마의 영이 인간을 잡아먹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

그런데 여기 2장 3절에 보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라고 하는데, 이것을 우리 인간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말이죠. 기본적 요소가 저주를 받아야 된다는 것인데, 우리 인간은 그런 저주와 한 가족이라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런 대목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성경을 대충, 아니 아예 보지도 않으니까 말이죠. 우리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데, 그러면 성경에서 왜 우리를 보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규정을 할까요?

구원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바로 시작을 여기서부터 해야하는데, 왜냐하면 인간은 중간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시작과 끝에 대해서 우리 인간은 모른다는 말이죠. 어떻게 시작했고 어떻게 끝났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렇게 모르는데, 그런데 하나님이 중간 존재로 인간을 다룰 때, 그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너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다"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왜 "사람은 고쳐서 사용하지 못한다" 라는 말이 있는데, 물론 성경에서 나온 표현은 아니라는 겁니다.

아무튼 우리 인간은 본질 자체가 진노를 받을 것만 튀어나오는 존재라는 것인데, 그래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을 하자는 말이죠. 그러면 이미 성령으로 인해서 자유를 받은 사람은, 비로소 이 성경을 볼 이유가 발생하게 된다는 겁니다.

인간은 중간 존재라고 했는데, 그런데 골로새서에 보니, 어디 안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까?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예수는 무엇입니까? 시작이고 끝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미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이제 무엇을 발견하느냐 하면, 어떻게 시작했고 어떻게 끝났는지, 그것을 한 공간 안에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다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게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라는 말이죠.

그렇게 다 알기 때문에, 동시에 무엇도 다 알게 되느냐 하면, 자기가 누구인지를 안다는 겁니다. 자기가 중간 존재로서, 자기가 도대체 어떤 존재였기에 주님이 찾아와서, 전에 있던 영역에서 새로운 영역으로 옮겨 주었는지를 안다는 것이죠.

이전에 자기가 있던 영역, 그 공간은 과연 어떤 공간이었고, 그리고 지금 자기가 속해있는 공간은 또한 어떤 공간인지, 그것을 성경을 보면서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는 겁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말이죠.

그러니 그 시작부터가 "너는 마귀야. 네 속에는 마귀가 있다" 라고 하는 것인데, 즉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는데, 큰 사랑으로 인해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려주셨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엡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

그리고 6절을 보면 "또 함께 일으켜서" 라고 하는데, 그 다음에 뭐라고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 제가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는 말이죠.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고 하니, "우리는 여기에 있고, 예수님은 저기에 계신다" 라고 여긴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여기에 있고 예수님은 저기에 있으니까, 그만 떨어져 있음이 되어버린다는 말이죠.

그렇게 예수님은 저 하늘에 있고 우리는 땅에 있으니까, 그렇게 뚝 떨어져 있으니까, 때가 되면 주께서 우리 있는 곳에 재림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뚝 떨어져 있는 게 아니고, 안에 있다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안에 있다" 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예를 들면, 꿈을 꾸면 자주 등장하는 집이 있는데, 배경은 안동에 있는 새 한옥집이라는 겁니다. 집이 50평은 되는 것 같은데, 자기는 안방에 있고 식구들은 다른 방에 있다면, 그러면 떨어져 있는 겁니까? 같은 집 안에 있는 것인데, 그렇지요? 그런데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찾는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것은 떨어져 있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성경에서 "주님을 찾는다" 라는 것은, 같은 집에 있다는 뜻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관심사' 라는 말이죠. "일상에서 당신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한다면,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 천국에는 심사관이 없어 !!

천국에는 심사관이 없는데, 왜냐하면 주님이 구원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안식교에는 그런 교리가 있는데, "여러분, 제대로 말씀대로 살아야만 천국의 심사에서 통과가 됩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안식교에서는 그것을 '조사심판' 이라고 하는데, 즉 안식일을 비롯해서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안식교 교인들은 이렇게 조사해서 심판을 한다는 교리를 거부하지 않고 반긴다는 말이죠.

그런데 조사해서 심판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 그들은 "원래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나오지 싶다는 겁니다. 어머니 교회를 주장하는 안산홍이 있는데, 그리고 통일교, 신천지, 천주교, 기독교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다만 안식교에서 조사심판을 교리로 만들어서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뿐이라는 겁니다. 은연중에 장로교든 침례교든 감리교든 모두 이런 것을 교리로 만들어서, 인간들 속에 삽입을 시킨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교인들은 성령을 받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성령을 받지 않았다는 말은 다른 영이 있다는 것인데, 즉 악령이 들어있다는 것이죠. 그러면 그 악령은 어디에다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자기가 마감이니까, "내가 어떻게 천국에 골인할 것인지 말 것인가?" 라는 것에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즉 자기가 죽고 난 뒤에 영원히 천국에서 살 것인지 말 것인지, 거기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죠.

그 다음에 관심이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자기는 구원을 받았다고 치고, 그러면 자기 남편이 천국에 갈 것인지 지옥에 갈 것인지에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남편보다 더 중요한 게 자식인데, 그래서 자식이 천국에 갈 것인지 지옥에 갈 것인지에 관심이 있고, 그리고 자식보다 더 귀한 손자가 천국에 갈 것인지 지옥에 갈 것인지에 관심을 가진다는 말이죠.

하지만 천국에게는 심사기준이 없는데, 왜냐하면 어떤 누구에게 기준을 내민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것이 "네가 하기 나름이다" 라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 때는 심사기준이 있게 된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서, 어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는데, "당신은 술을 합니까? 담배를 피웁니까?" 라고 묻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술과 담배를 합니다" 라고 하면, "그러면 우리 회사에게 입사하지 못합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죠.

그런 회사가 제법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회사의 평가 기준은 무엇입니까? "술과 담배를 하면 안 된다" 라는 것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천국의 심사기준이 있느냐는 것인데, 천국에서는 심사기준은 없다는 말이죠.

* 하나님은 자기 아들만을 구원해 !!

왜냐하면, 그것이 오늘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데, 자기 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만을 구원하는데, 아들이 아닌 사람은 구원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리고 우리는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들의 영이 와야만 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심사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일방적으로 성령을 주셔서 성령을 받은 자만을 천국백성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인데, 그러니 무슨 심사 기준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에 다녀버리면, 항상 무엇을 찾고 무엇을 듣고자 하느냐 하면, "목사님, 제가 천국에 갈지 안 갈지 스스로 나를 평가할 수 있는 어떤 기준이 없습니까?"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말이죠.

'MBTI' 라고, 그게 성격을 조사하는 것인데, 성격을 남이 조사를 합니까? 자기가 조사를 합니까? 기준만 주면 자기가 조사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끝까지 인간은 자기 문제를 자기가 해결하고 싶어한다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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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어스-브릭스 유형지표(영어: Myers-Briggs Type Indicator) - 개인이 쉽게 응답하는 자기보고서 문항으로 개인이 인식하고 판단하면서 각자 선호하는 경향을 찾고, 이런 선호 경향들이 개인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여 실생활에 응용하려는 주장을 바탕으로 구성한 심리검사다. MBTI 유형으로 자신의 유형을 16가지 중에서 찾는다. 캐서린 쿡 브릭스와 딸 이저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제작하였다. 융의 성격유형이론을 근거로 했다고 한다. 내향성 또는 외향성, 감각 또는 직관, 사고 또는 느낌, 판단, 지각의 4가지 범주를 지정한다.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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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기가 하지 않으면 믿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남이 한 것은 믿을 수가 없고, 오직 자기가 한 것만을 믿는다는 것이죠. 그런데도 인간은 믿음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래서 없는 믿음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어떻게 합니까?

성경을 가지고 심사기준을 만들어서, 그 기준대로 자기가 체크를 한다는 겁니다. 요즘은 은행에 가면 그렇게 체크를 하는데, 그렇게 자기가 체크를 하고 싶다는 말이죠. 그리고 바로 그게 유대교라는 겁니다.

유대교는 안식일 교리만 해도 체크할 것이 700가지가 넘는데, 안식일에 홍시를 삼킬 것인지 아니면 퍼먹을 것인지. 그런 것까지도 다 나와있다는 말이죠. 자기 육체가 노동하면 안 되기 때문에, 꿀꺽 삼키는 것은 되는데, 그런데 퍼먹으면 노동이 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두고 지독하다고 이야기를 해야 될지 미쳤다고 이야기를 해야 될지 난감한데, 이것은 자기 자신한테 미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는 말이죠. 그야말로 자기 구원에 완전히 미쳐있다는 겁니다.

* 우리는 바리새인들과 동기 !!

그런데 그 바리새인들이 다 우리하고 똑같은 아담의 동기인데, 아담의 후손이라는 말이죠. 우리 본성에 그게 이미 다 들어있다는 겁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그런 유대전통이 덮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거기에 초월한 것처럼, 우리는 자기한테 어떤 기준이 없는 것처럼 행사하고 있지만, 막상 그런 기준이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또 리스트를 만들어서 체크를 한다는 말이죠.

마치 MBTI를 가지고 성격이 외향적인지 적극적인지, 그런 것을 체크하듯이 자기가 자기를 알고 싶고, 그렇게 알게 된 자기를 성경에 맞추어서, 주님의 기준에 맞추어서, 목사님의 설교에 맞추어서, 합격될 자인지 안 될 자인지, 그것을 자기가 먼저 정립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자기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어떻게 합니까? 먼저 교회에 가라고 해놓고, 그 다음의 두 번째 작업이 무엇입니까? 교회에 가서 오늘 무엇을 배웠는지, 행동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렇게 자기가 알았던 체크리스트를 그대로 적용시켜서, 지금의 현재 가족이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사는 가족이 되도록 한다는 말이죠.

* 폭삭 속았수다 !!

'폭삭 속았수다' 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그것이 가족 이야기라는 겁니다. 가족은 한 배를 타야 한다는 것인데, 하지만 누구 마음대로 한 배를 타고 천국에 간다는 겁니까? 성경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예수님은 "처나 자식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 라고 하셨는데, 달리 말하면 "어디서 갑자기 너희의 본성대로 가족 문제를 들고 나오느냐?" 라는 겁니다.

(마 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성경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또는 인간에서 나오는 것과 주님에게서만 나오는 아버지의 뜻, 그 두 개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성경이 쓰여졌다는 말이죠. 대조하는 방식인데, 그러니까 이유도 없고 원인도 없이, 그냥 이미 구원된 사람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성경을 볼 이유가 생기게 된다는 겁니다.

자기가 옛날에 놀던 동네, 여러분은 그런 옛 동네에 가보고 싶지 않습니까? 물론 지금은 다 재개발이 되어있지만, 아파트를 짓지 않는 곳이 없다는 말이죠. 어릴 때 놀던 그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는 겁니다.

* 값없이 구원받는 동네 !!

그런데 우리 동네는 재개발이 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살던 동네는 지금 이 동네이기 때문에 말이죠. 이 지묘동이 고향이란 말이 아니고, 지금의 이 세계, 그 돌아가는 모든 것이 우리가 구원받기 이전의 동네인데, 그 동네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즉 성경말씀이 계속해서 유효하게 우리 마음속에 다가온다는 말이죠.

사람들은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데, 그런데 로마서 3장에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믿음을 이야기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행함으로 구원받은 사람에게 로마서 3장 읽어주면, 그 사람의 믿음이 자기가 해야될 행함으로 어느새 전환이 되고 만다는 것이죠. 행함으로 만들어내는 믿음이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에서, 그것을 또 방비하는 차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값없이 의롭다함을 받았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기도원에 가서 "믿습니다, 믿습니다" 기도해서 믿음을 가졌다고 치자는 겁니다.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러면 값없이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로마서 3장에 나오는 이야기, 이것을 행함의 입장에서, 즉 조사심판을 통과하려는 입장에서 값없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어떻게 처리를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죠. 만약에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처리를 하겠습니까?

* 친절한 신학자들 !!

처리를 하지 않으면 되는데, 그런데 그것을 친절하게 처리해주는 자들이 있다는 말이죠. 값없이 구원을 받는 것도 행함으로 전환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누구인지 잘 모르겠지요? 그런 전문가들이 있는데, 그들을 3글자로 '신학자' 라고 한다는 말이죠.

신학교에 있는 교수들, 로마서 4장이 신약에 있었기 때문에 신약을 전공한 신학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값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그런 말을 한 사도바울의 개인적인 신학이고 사견일 뿐이다" 라고, 신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는 것이죠.

전혀 놀라지 않는 표정들인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성경이라고 다 믿지 말고, 너의 구미에 맞는 것만 골라서 믿어라" 라는 겁니다. 즉 "값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사도바울의 개인적인 견해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체험이 그랬으니까 그렇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는 평소에 자기가 하던 대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족치는데, 그런데 갑자기 누가 왔습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값없이 구원을 받았다" 라고 주장을 한다는 것이죠. 그러니 이것은 바울 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냥 까놓고 말해서, "성경은 성령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다" 라는 것인데, 그래서 신학자들이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말이죠. 만약에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박사학위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 예수를 믿으면 학위는 없어 !!

미국에 예수를 믿으면 박사학위를 주지 않는 대학이 있는데, 그게 하버드 대학이라는 말이죠. 하버드 대학에 신학과가 있는데, 왜냐하면 하버드 대학이 신학부터 시작을 했다는 겁니다. 그 하버드 대학교 신학과는, 예수를 믿으면 학위고 뭐고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물론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만 말이죠.

그러면 무엇을 하느냐 하면, 성경이 얼마나 인간의 책인지를 완전히 파헤치는데, 그런 동네라는 겁니다. 악마의 권세가 하버드를 삼켰다고 보면 되는데, 그것을 가지고 좌파 대학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그 어떤 것도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그게 인간 세계에 자리잡고 있는 악마의 원칙이라는 겁니다. 인간보다 더 위대한 것은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말이죠.

* 예수님은 청소부 !!

왜냐하면 인간은 굴복하면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인데,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시작과 끝이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시작이 되고 마지막이 되느냐 하면, 예수님은 무엇을 하시는 분이냐 하면, 그것이 '청소' 라는 말이죠.

청소하는 자가 그 공간을 지배하는 자인데, 무슨 말인고 하니까, 청소는 언제 합니까? 모든 것이 끝났을 때 한다는 겁니다. 남자 화장실의 지배자가 누구입니까? 여자 청소부인데, 남자들은 자꾸만 흘리고 말이죠(ㅋㅋ).

아무튼 그 공간의 지배자는 청소하는 사람인데, 청소할 때 어떻게 합니까?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한다는 겁니다. 그 일을 누가 하느냐 하면, 주님이 청소를 해버린다는 말이죠. 그렇게 청소하기 전에, 주님은 자기가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을 에베소서 2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것이 바로 "너희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고, 악마의 마음으로 살았다" 라는 것인데, 악마의 마음으로 산다는 무슨 의미입니까? 악마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인데, 악마가 안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그런데 성령이 와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면서, 비로소 과거 성령이 오기 이전에 육으로 살았을 때, 그 육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들이 얼마나 악마적인가를 본격적으로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게 사도바울이 말한 감사와 기쁨으로 이어진다는 말이죠.

그 신학자들이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것은 두고, "그것은 그의 개인의 견해니까, 여러분 꼭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참고로만 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는데, 저는 그런 이야기를, 그것도 박사학위 논문이라고 내놓은 것을 보면서 사도행전 19장 15절이 자꾸 생각이 난다는 겁니다.

(행 19:15)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 너희는 누구냐?

이것은 여러 번을 했지만, 좀 지루하더라도 감내하시기 바랍니다. 마귀가 뭐라고 합니까?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마귀는 예수님과 바울이 같은 집에 있다고 보았다는 겁니다. 즉 예수 안에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마귀는 어디에 있습니까? 사도바울이 속해 있는, 즉 예수님과 함께 있는 그 바깥쪽에 마귀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마귀는 무엇을 안다는 겁니까? 예수 안에 있는 사람과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을, 마귀가 귀신같이 안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성령을 받은 사람과 성령을 받은 것을 흉내내는 사람을 누가 안다는 겁니까? 악마가 귀신같이 안다는 겁니다. 어떻게 아는고 하니, 그게 곧 관심사인데, 그 사람이 평소에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거기서 드러난다는 말이죠.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할 것에 관심을 두고, 관심을 두어야 할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예수 밖에 있는, 즉 육적인 사람의 특징인데, 그런 육적인 사람의 입장을, 이제 성령을 받은 사람은 다 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살던 동네이기 때문인데, 사람들이 관심을 두어야할 것에 왜 관심을 두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안다는 말이죠.

여기서 마태복음 7장 13절과 15절을 보겠습니다.

(마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 좁은 문 VS 넓은 문 !!

여기에 좁은 문이 나오는데, 성경은 대비된다고 한 것이 아직은 기억이 나지요? 그러면 이렇게 좁은 문이 나왔으면 무슨 문 나와야 합니까? 당연히 넓은 문이 나온다는 겁니다. 좁은 문은 넓은 문과의 대조를 통해서 의미가 둘 다 확정된다는 말이죠. 좁은 문은 어떻다는 겁니까? 찾는 이가 찾는 이가 적은데, 반면에 넓은 문은 찾는 이가 많다는 것이죠.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악마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모든 보편적인 관심사는 어디에 있다는 겁니까? 넓은 쪽에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넓은 쪽에 관심이 있다는 말은, 자기도 악마에 속해서, 악마처럼 자존하고 자립하고자 하는데, 그게 악마의 마음이라는 것이죠.

* 내가 곧 신이다 !!

다시 말해서, "내가 곧 신이다" 라는 것인데, 여기에 환장해 가지고, 여기에 광기를 부리면서 모든 열정과 정렬을 다 쏟아 붓고 있다는 겁니다. 그게 우리의 실제 모습이니 굳이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도 없는데, 자기 자신과 그 가족들을 보면 된다는 말이죠.

자기 자신부터 시작해서 가족들을 돌아보면, 그들의 모든 행동과 태도와 그 말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전체를 통합으로 보게 되면 어떻다는 겁니까? 그 관심사가 자기 꿈이기 때문에 열정을 다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브라질의 쌈바춤인데, 그들이 어떻게 춤을 춥니까? 그야말로 정열적으로 추는데, 빨간 주름 치마를 입고 엉덩이를 마구 흔들면서 말이죠. 유치원의 아이들부터 모든 인간은 어디에 정열적인 춤을 춥니까? 자기를 꾸미는데 모든 것을 다 바친다는 겁니다.

* 열정, 열정, 열정 !!

그것을 어제 낮 시간에 "자기를 표현한다" 라고 했는데, 그렇게 자기를 표현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 붓는다는 말이죠. 그러면서 암세포 이야기를 했는데, 암세포가 에너지를 많이 끌어당긴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세포보다 암 세포가 번식을 많이 한다는 것이죠.

오늘날 자본주의는 이러한 암세포와도 같은 열정들을 원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직장에 다니기가 힘든다는 겁니다. 그런 영화도 있는데, "열정을 다해 우리 회사를 위해서 충성하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

기독론에서 서론 부분을 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해보겠습니다. 시작과 끝, 그 다음에 인간은 중간 존재로 있는데, 그 중간 존재는 무엇으로 구성이 되어있는고 하니, 가족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가족은 뭐냐 하면, 아버지와 자녀들로 구성이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아버지의 관심사는 뭐냐 하면, 그 많은 자식들 가운데서 어디에 관심이 있는고 하니, 장자에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장자에게 아버지의 모든 유산을 다 넘겨준다는 말이죠. 그렇게 넘겨주고, 그러면 둘째와 셋째에게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그것은 장자가 결정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장자가 "너는 내 동생이니까 내가 키워 줄게" 라고 하는데, 그때 둘째와 셋째는 장자의 종이 된다는 말이죠. 노아가 자식들 중에서 한 쪽은 축복을 하고, 다른 한 쪽은 저주를 하는데, 여기에서 저주라는 것은 "저 장자의 종이 되어라" 라는 뜻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중간 존재인 인간의 혈육의 관계에서, 장자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결정이 됩니까? 태어날 때의 시간적인 결정으로 되는데, 이 땅에 먼저 발을 디딘 쪽이 장자가 되고, 몇 년 뒤에 태어나면 그것은 둘째가 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만약에 쌍둥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쌍둥이라고 하면 배 안에 있을 때의 순서를 말합니까? 그게 아니면 나올 때의 순서를 말합니까? 역시 나올 때의 순서라는 겁니다. 베레스가 나중에 터치를 하고 나온다는 말이죠.

창세가 38장에 보면 그런 대목이 나오는데, 시아버지인 유다와 그 며느리 다말 사이에 있었던 일로서, 자식들의 순서가 바뀌어 나온다는 말이죠. 그리고 이삭의 아들인 야곱과 에서에 있어서도, 먼저 나온 자가 에서고 나중에 나온 자가 야곱이라는 겁니다.

(창 38:28)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사를 가져 그 손에 매었더니

(창 38:29)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 형제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터치고 나오느냐 한고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창 38:30) 그 형제 곧 손에 홍사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그런데 불임여성에서 나온 언약된 존재는 어떻다는 겁니까? 이 지구라는 환경, 이 세상에서 언약된 존재가, 이 출생된 지구에서는 그 언약이 그대로 적용되면서, 기존 인간들의 혈육으로 구성된 이 혈육적 세계에서 순서가 바뀌어지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먼저 된 자가 나중이 되고 나중 된 자는 먼저 되도록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게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나오는데,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말이죠.

(마 25: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마 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이 포도원 비유에서, 아침 10시에 온 종과 오후 5시에 온 종을 이야기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내린 결론이 무엇인고 하니, "천국은 포도원 같으니" 라고 하시면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들이 혈육으로 사는 이 세상을 어떤 무대로 삼느냐 하면, 하나님의 하나님의 됨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그렇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자기 세계의 공간으로 전환시키신다는 말이죠.

여기서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라는 말은, 정해진 먼저 된 자가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는, 그런 현상을 유발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러니 이 세상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대조적인, 즉 거꾸로 된 세상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요단강에서 들린 하늘의 음성인데, 즉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라는 것으로, 즉 예수님이 장자라는 말이죠.

(마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그렇다면 예수님이 장자라는 말은, 이 땅의 장자 개념과 일치가 됩니까? 일치가 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일치되지 않는 개념으로 오셨다는 겁니다. 이 장자가 곧 상속자인데, 그런데 신명기 21장에 17절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여기서 16절과 17절을 보겠습니다.

(신 21:16) 자기의 소유를 그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로 장자를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신 21:17)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 기력의 시작이라 !!

이게 하나님의 율법인데, 여기 17절에서 "기력의 시작이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아버지는 죽는데, 그렇게 죽으면 아버지가 보입니까? 보이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보입니까? 역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렇게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러면 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는 장자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전에 있던 아버지의 위치를 점유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아들을 보냈다는 말은, 그 아들에 해당되는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을 통해서만 표현이 되고 나타난다는 뜻이라는 말이죠.

요한복음 14장 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는데, 그런데 왜 자꾸만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다. 아들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라는 의미라는 것이죠.

(요 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여기서 "아버지의 아들이다" 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인고 하면, 인수인계자, 즉 상속자라는 겁니다. 인수인계자는 것이죠. 하나님이 계신 곳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면, 그 하나님 나라의 인수인계자가 누구라는 겁입니까? 하나님은 그 나라를 상속자인 아들에게 주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들이 있는 그곳이 바로 아버지와 함께 있는 곳이라는 말이죠. 그리고 이스라엘의 율법에 의하면, 일반적인 가족의 경우에도 역시 그렇다는 겁니다. 그런데 신명기 21장은 뭐냐 하면, 그것이 밉다는 것인데, 그렇게 미울 때는 어떻게 하는고 하니, 밉더라도 장자한테 주어라고 한다는 말이죠.

여기서 여러분은 다음과 같이 짐작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언약이 계속 진행되면서, 어떤 자리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을까요? 그게 바로 '장자 자리' 라는 것인데, 즉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는 세계로 나타내는 하나밖에 없는 인물은 과연 누구여야 하는가?" 라는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 장자의 자리 !!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거기에서 우리 인간은 그 게임의 후보감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다는 말이죠.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자 외에는 들어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장자가 될 권한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장자가 되지 아니하면 아버지 나라의 아들로서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에, 어쨌든 장자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장자가 될 권한이 없다는 겁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장자가 될 권한이 없는 자가 장자가 되는, 즉 장자 된 자의 가족이 되는 요건이 바로 유월절 어린양이라는 말이죠.

여기서 출애굽기 13장을 보겠는데, 1절과 2절입니다.

(출 13: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출 13:2)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 장자와 유월절 어린양 !!

시간적으로 처음 태어난 것을 장자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장자, 즉 초태생은 구별해서 자기에게 돌리라고 하시는데, 왜냐하면 자기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장자가 주님의 것이 되어버리면, 그러면 장자의 자리는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장자의 자리는 누가 가져갔습니까?

하나님이 가져갔는데, 그러면 그 장자의 자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유월절 어린양이 그 자리를 차지했는데, 그러니 인간의 장자는 무엇이 되느냐 하면, 그때부터 인간의 장자는 죽은 자가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죽어야 될 장자가 유월절 양과 바꿔치기가 되었으니, 그 집안의 진정한 장자는 이제 유월절 어린양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유월절 어린양 때문에 살아난 그 아들은 어떻게 해야합니까? 유월절 어린양을 늘 드러내야 하고, 그 모습대로 살아야 되는 율법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출애굽기 4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네 수교 4장을 제가 읽어보고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지겠습니다.

(출 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출 4: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 바로는 왜 자기 아들을 놔줘야 하는가?

여기서 질문이 나가는데, 바로는 왜 자기 아들을 놔줘야 합니까? 왜 자기 아들을 보고 "더 이상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라고, 그렇게 해야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만약에 바로가 그렇지 하지 않고, "너는 내 아들이다. 나의 장자다" 라고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고 있으면 어떤 결과가 생긴다는 겁니까? 그러면 죽게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는 세계가 바로가 통치하는 애굽인데, 즉 "이 아들은 나의 미래를 책임질, 나의 대를 이을 장자다" 라고 하면서, 자기가 계속해서 붙잡고 있는 세계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러한 애굽 나라에서는 장자의 죽음은 면할 길이 없다는 말이죠.

지금 그 나라에 누가 갑니까? 지금 모세가 가고 있는데, 그러면 모세에게는 자기 아들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모세는 자기 아들이 있는데, 그러면 모세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놓아주어야 하는데, 모세도 거기서 빠질 수가 없다는 겁니다. 바로만 자기 아들을 놓아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모세도 놓아주어야 한다는 말이죠.

* 모세를 죽이려는 하나님, 왜?

모세가 지금 어느 나라로 갑니까? 애굽으로 가는데, 애굽 나라의 임금인 바로가 자기 아들을 계속해서 붙들고 있으면, 자기 아들은 죽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모세도 자기 아들을 계속해서 자기 아들이라고 여긴다면, 그러면 누구의 아들이 죽습니까? 모세의 아들이 죽는데, 그래서 그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숙소에서 모세를 죽이려고 했다는 말이죠.

(출 4:24)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

(출 4:25)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출 4:26)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그럴 때 십보라가 죽어가는 모세에게 급히 인공호흡을 시행한 것이 아니고, 모세는 그냥 놔두고 엉뚱한 자기 아들의 붙들고 할례를 행해버렸는데, 그러자 누가 살았습니까? 모세가 살아났다는 겁니다.

그럴 때 모세는 뭐냐 하면, 모세는 모세(a)에서 모세(b)로 변하게 된다는 말이죠. 여기에서 모세 (a)는 "나는 내 자식이 있다" 라는 것이 되고, 반면에 모세(b)는 무엇인고 하면, "내가 하나님의 새로운 아들이 되었습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 할례 언약 !!

그러니 중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모세(a)에서 모세(b), 그 나이에 무슨 언약이 들어갔습니까? 할례 언약이 들어갔다는 말이죠. 이 할례 언약에 대해서 십보라가 "당신은 나의 피 남편이다" 라고 했는데, 그것은 "당신은 나에게 피를 보여줄 내 남편이다" 라는 의미라는 겁니다.

모세에게는 알다시피 아내와 아들이 있는데, 즉 가족이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성경에서는 특이하게도, 이 대목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그 다음부터 일체 모세의 아들 이야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할례를 받은 집단인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주목을 받아야하는 것이지, 그래서 모세 개인적 가정의 아들은 그 다음부터 성경에서 사라졌다는 말이죠. 아들이 죽었다는 말이 아니고, 사용할 때는 사용하다가 그 기능을 다 했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내가 할례를 행한 것이 아버지의 목숨을 살렸다" 라는 것인데, 모세의 아들이 하려는 것이 아들 스스로가 하는 게 아니고, 아버지의 아내인 엄마가 할례를 행함으로써, 그 아버지와 엄마는 이제 피로서 맺어진 새로운 가족이 된다는 말이죠. 하나님의 새로운 아들이 되는 가족으로 구성이 되었다는 것인데, 즉 아들이 생산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난 뒤에 모세는 어디로 가느냐 하면, 애굽으로 간다는 말이죠. 애굽으로 가서, 기존에 있던 애굽 나라의 육적인 가정과 할례를 행한 특이한 가정, 즉 모세의 가정과 대조가 되면서, 여기서 탈출이 성립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여러분한테 물어보겠는데, 유월절을 행했던 모든 사람들은, 그들 가운데서 할례를 행하지 않아도,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지방에 바르지 않아도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게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데, 48절입니다.

(출 12:48) 너희와 함께 거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 할례는 유월절 사건의 현재화 !!

유월절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는 할례를 받지 않더라도 되는데,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주어진 것이 무엇입니까? 반복되는 유월절에 의해서, 유월절 사건은 사건은 지나가면 끝난다는 말이죠. 그래서 지나간 사건을 지금으로 현재화를 시키기 위해서, 그 유월절 사건을 반복하는 방법이 뭐냐 하면, 그것이 할례라는 겁니다.

자기 몸에 유월절 사건을 새기는 것, 그게 뭐냐 하면, 그것이 바로 '할례' 라는 말이죠. 그러면 신약에서는 어떻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마음의 할례로 새기는 것인데,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 죄를 치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 라는 것인데, 그것이 십자가 사건이라는 겁니다. 유월절 사건, 즉 어린양의 피를 바름으로써, 하나님의 가족이 되지도 않은 인간이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말이죠. 그래서 천국이라는 한 집에 살게 되었다는 겁니다.

* 아들의 나라 !!

아까 골로새서 1장에 보니까, 천국을 아들의 나라라고 하는데, 아들의 나라, 즉 예수 안에서 예수님이 집을 짓는다는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아들의 나라의 식구로서, 즉 아들로서 합류가 된다는 겁니다. 그때 예수님은 장자가 되고, 그 장자는 밑에 있는 동생들을 형제로 맞이해서, 그 동생들을 키운다는 말이죠. 아버지가 키우는 게 아닌데, 장자가 돌본다는 겁니다.

이게 교재 144페이지에 나오는데,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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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세계에서는 형제가 형제를 지배하지 않고 부모가 지배를 하는데, 그런데 성경 속의 아들은 형님이 동생을 자기 소유로 삼습니다. 그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우리들 중에서 그 누구도 아들이 아니라고 분명히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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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여기에 대해서 아버지가 화를 내느냐 하면, 화를 내지 않는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아버지의 목적이 뭐냐 하면, 장자를 장자답게 만드는 일이 아버지의 목적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먼저 태어난 게 대수인데, 왜냐하면 아버지의 기력이니 말이죠.

아버지의 모든 에너지가 장자한테 쏟아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계획과 오직 아들을 통해서만 완성하겠다는 것이 천국이고, 그것을 골로새서에서는 '아들의 나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골로새서 1장 16절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아들을 위하여 있다" 라고 하는데,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점을 우리가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죠.

다시 말씀을 해드리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고 예수님을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나 예수님을 위한 것이나 같은 말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이것을 전혀 똑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인데, 같지 않다는 말이죠.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예수님을 위해서 만들어졌는데, 그게 빌립보서 2장에도 나온다는 겁니다. 아버지의 뜻은 뭐냐 하면, 모든 만물이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굴복한다고 아버지가 기뻐하는 게 아니고, 빌립보서 2장에 보면 누구한테 굴복을 합니까? 예수님에게 무릎을 꿇게 해서, 그것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는 말이죠.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러니 이런 것은 교회에 오래 다닌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성령을 받아야 알게 된다는 겁니다. 성령도 없이 그냥 교회에 다녀버리면, 자기를 꾸미는데 올인을 하는데, 즉 교회에 충성을 다하게 된다는 말이죠.

* 자기를 꾸미는 중보기도 !!

자기를 꾸미는 것, 이것은 악마의 권세로 교회에 다니는 것과 똑같다는 겁니다. 모두 자기 좋아라고 하는 것이란 말이죠. "나는 이제 구원을 받았으니까, 그 다음으로는 내 아들이 구원을 받자" 라고 나오는데, 그때 필요한 것이 중보기도라는 겁니다.

중보기도는 누구 이름으로 합니까? 자기 이름으로 하는데, 왜냐하면 남의 자식이 아니고 자기 위해서 하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그러니까 그 중보자, 즉 매걔자의 자리에 누가 들어갑니까? 자기가 들어간다는 겁니다.

물론 기도의 마지막으로 예수 이름으로 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구색을 맞추는 것이고,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말이죠. 주인공이 누구인고 하면, 아들도 자기처럼 되기를 원하고, 남편도 자기처럼 되기를 원하고, 아내도 자기처럼 되기를 원하고, 그렇게 자기가 자기가 중보자의 자리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종교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이죠.

이제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19장 20절을 설명하고 마치도록 하겠는데, 그러면 여기서 19절에서 21절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계 19: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계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계 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 짐승(국가)과 거짓 선지자 !!

여기 요한계시록 19장을 보면, 드디어 짐승이 붙잡혔다는 겁니다. 그래서 20절을 보게 되면,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와 함께 잡혔으니"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이것이 무슨 내용인고 하니, 아까 청소 이야기를 했는데 겁니다. 청소하는 자가 최후의 마지막 지배자라고 했는데 말이죠.

그런데 여기에서 짐승이 나오고, 또 하나의 존재가 나오는데, 짐승과 또 무엇이 나옵니까? 거짓 선지자가 나오는데, 그러면 이 짐승은 뭐냐 하면, 여기서 짐승은 국가를 의미한다는 겁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 그게 국가라는 말이죠.

(계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 이름들이 있더라

그런 국가에는 왕이 있는데, 그런데 이스라엘은 왕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왕은 누구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를 하신다는 말이죠. 주님이 직접 통치를 하시는데, 그러니 국가라는 것이 왜 굳이 필요하냐는 겁니다. 창조되지 않는 바다에서 나온 숨어있는 짐승, 그 짐승이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국가에는 무엇이 있느냐 하면, 법이 있다는 겁니다. 왜 법을 가지고 국가를 만들었을까요? 국가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모든 매매를 금지한다고 되어있는데, 그것이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나온다는 말이죠. '666' 이라는 숫자도 나오고 한다는 겁니다.

(계 13: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계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그 다음에 국가와 짝이 되는 것이 뭐냐 하면, 국가가 종교를 만들었다는 말이죠. 국가, 즉 짐승의 힘을 받아서 종교를 만드는데, 그래서 종교는 여기에서 뭐라고 표현이 되는고 하니, 그게 거짓 선지자라는 겁니다.

*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

그러면 참 선지자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전부 다 십자가 언약으로 끝나버린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모든 선지자 안에 예수님의 영이 들어 있어서,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거짓 신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국가에 봉사하는 것인데, 국가가 시키는 데로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들 둘 다 어디에 갑니까? 유황불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거짓 선지자가 국가를 섬긴다고 할 때, 여기에서 그들의 지배를 받는 종들이 있다는 말이죠.

그것은 마귀의 권세, 즉 마귀의 영을 받은 종들이 종교와 국가에 완전히 몰입을 한다는 겁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합니까? 자기를 꾸미기 위해서, 즉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요한계시록 12장 11절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계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 그냥 통과만 하자 !!

이 세상에서 자유를 얻는다는 것, 그것은 이미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죽이든 살리든 그것은 누구의 소관이라는 겁니까? 주님 소관이라는 말이죠. 주님 안에서 함께 죽었고, 주님 안에서 함께 살았기 때문에, 그래서 더 이상 죽고 사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반면에 이 세상에 있는 사람, 즉 예수님의 영이 없는 사람은 어쨌든 간에 누구에게 아부를 하든지 굴복을 하든지 해서, 자기가 사는 게 최우선 과제라는 말이죠. 자기 죽으면 모든 게 끝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바로 그러한 이 짐승의 세계, 지옥의 세계를 현재 우리가 광야처럼 통과를 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제가 부탁을 드리는데, 그냥 통과만 하시라는 겁니다. 굳이 살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버지, 예수 안에서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 그런 자들이 자랑할 수 있고 내세울 수 것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그 피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를 이제 다시 살렸사오니, 주님의 이러한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주님의 일방적인 자신의 견해와 뜻으로 이루어진 것인 것임을 명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5,06,05 오후 8시에 마침.

Let's just pa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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