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행 19"11-16 (악귀의 고백)
Re..행 19:11-16 (악귀의 고백)
이름 : 이근호(IP:)
악귀의 고백
2005년 4월 6일 본문 말씀: 사도행전 19:11-16
19: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19: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9: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19: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9:15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9: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세상이 마음 먹은대로 안된다고해서 세상이 잘못되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보세요. 현실에 내 마음에 안든다고해서 전면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취소한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재림을 없는 걸로 여기십니까? 여기 있는 그 성경 말씀을 무시하는 식으로 일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가 영적으로 생각할 줄 모르고 늘 육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욥의 경우를 보시기 바랍니다. 욥은 늘 악마로부터 시달리고 있습니다. 영의 세계로부터 감시당하고 있습니다. 영이 육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욥의 생활에 대해서 마귀가 관여한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로 인해 그의 인생이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사실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해서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신 신앙을 취소하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욥은 스스로 자신을 지키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자기 인생을 맡겼습니다. 그것만이 욥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보신다는 겁니다. 자신이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욥이 요령을 부려 악마의 공격으로 피할 그런 입장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맡기는 것 외에 달리 할 게 없다는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맡기는 것을 무책임하게 여깁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영적으로 생각할 줄 모르고 육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런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마술사인 스게와의 7 아들들입니다. 이들이 육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영적인 존재인 악귀로부터 도리어 호되게 당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영적인 안목입니까? 오늘 본문 11-12절을 찬찬히 보기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분명히 악귀를 행하신 분은 하나님이지 결코 사도 바울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능력을 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부류는 바로 하나님과 악귀와 그리고 사도 바울입니다.
그런데 위의 사실을 놓고서 만약 육적으로 판단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렇게 됩니다. "나도 사도 바울처럼 과연 신앙인이라면 악귀가 나를 통해서 나가는 그런 기적이 나타나야 합당하다. 따라서 하나님에게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겠다. '하나님, 저를 통해서 사도바울과 같은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벌어져서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위대한 하나님의 종임을 알리게 하옵소서' 라고 말이다"
바로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해석한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그들은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입니다. 이들은 영이 활동하는 그 현장을 보면서도 영적인 것조차 육적으로만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곧 자신의 마음의 무게를 확 빠져나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자기가 자고 있는 베개에다 쇠나 납덩어리를 집어넣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꾸만 무거워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 마음이나 영혼은 온갖 잡동사니 같은 무거운 것처럼 틈만 나면 집어넣고 채웁니다. 그러다보니 자기라는 인간의 마음은 너무나 무거운 집니다. 그러한 무거운 자아상을 또 낑낑되면 억지로 끌고가야 하는 본인에게도 얼마나 힘겨운 일입니까.
악마는 압니다.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은 결코 자기 능력으로 악귀가 물러간 것이 아님을 아는 자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명예나 영광이라는 무거운 쇠덩어리를 마음 속에 담아 놓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일을 하셔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 뿐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스게와의 일곱 아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육적인 사람들이기에 자꾸만 자신의 속을 가득 채워야 안심을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마술을 행해서 생계도 유지하며 유명세를 펼쳤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 눈에는 갑자기 라이벌 같은 사도 바울이 등장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행했던 기적같은 것 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기적을 펼친다는 소문이 그들의 귀까지 들려왔습니다.
이 육의 세상에서는 남보다 더 나은 기술이 없으면 버텨내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따라서 좋다는 것, 유명하다는 것, 효과봤다는 것은 있는대로 그 주워 실험해 나서봐야 합니다. 그래야 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겁니다. 따라서 그들은 사도 바울이 어떤 식으로 귀신을 효과적으로 잘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비책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이름'이라는 주문이 관권이라는 것을 나름대로 일방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이 육의 세계는 이러한 방식으로 경쟁하는 것은 비일비재합니다.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정보와 기술과 지식을 먼저 확보하는 일이 본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따라서 남들이 해서 효과봤다는 것은 어김없이 수입해서 자기에게 적용시켜봅니다. 그런데 이런 육적인 행동에 과연 영적인 존재들이 주눅이 들까요? 꼼짝달싹 못하게 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신학에 굴복하는 마귀는 없습니다. 인간의 기도술에 쩔쩔매는 그런 악마는 없습니다.
육을 영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영을 이기는 육은 없습니다. 노벨상을 타고 남보다 더 많은 존경을 받는다고해도 악마는 그 사람은 존경하기는커녕 자신의 부하로 여깁니다. 악마는 인간의 학문과 경력과 경험과 지혜에 겁먹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런 것들은 악마의 노리개감으로 전락될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악귀의 고백을 들어봐야 합니다. "나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는 누구냐?"라고 말입니다. 악귀는 영의 세계를 제대로 압니다. 악귀 본인이 누구의 능력으로 추방되었음을 악귀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바를 우리는 귀담아 들도록 합시다. 자신을 위대하고 만들기 위해 자신의 존재의 무게를 채우는 그런 행동은 도리어 악귀로부터 전혀 하나님의 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악귀는 압니다. 사도 바울처럼 주님의 영에 의해 지배받고 사는 사람을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포부나 꿈은 다 주님으로부터 묵살당하고 거부당한 것을 우리는 도리어 사도 바울에게 내린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점을 인정합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악귀까지 고려해서 사도에게 그런 능력을 베푸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또한 세상만사가 우리 포부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빈 마음으로 하나님께 맡김으로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가시는지 영적 깨달음을 지속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