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강의 20241230 주일오전오후 설교 요약-이 근호 목사
대전강의 20241230 주일오전오후 설교 요약-이 근호 목사
오후부터 요약하겠습니다. 왜 오후부터 하느냐? 이게 나중에 했기 때문에 기억력이 좀 살아있거든요. 주일 오후에 핵심부분이 뭐냐 하면, 옛날부터 제가 궁금했던 거예요. 출애굽기 20장 5절에 분명히 삼사 대까지 저주를 받는다 했잖아요.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그래서 한때 기존 목사들이 그걸 이용해서 목회에 성공을 했다는 소문이 퍼졌어요. 당신의 가계, 당신의 족보에 흐르는 저주를 끊으세요. 책도 여러 권 나왔거든요. 그러면 그걸 보고 자기 집구석에 아주 화딱지를 내고 있는, 여자 같으면 친정과 시가집 두 집 아닙니까, 이 저주를 어떻게 끊어야 될지. 처럼 저주를 어떻게 끊어내느냐.
거기에 대해서 푸는 방법으로 낙관적인 희망 그런 게 있는 사람들이 거기에 이제 빠지는 거예요. 출애굽기 20장 5절에서 당신 대에 끊어버리면 이게 삼사 대까지 안 가고 이 대에 끊어질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기 애가 장애자라든지, 애를 낳았는데 공부를 잘 못한다든지 하면, 이건 저주 받았구나. 또는 건강이 안 좋다든지 이럴 경우 있잖아요. 그리고 또 임신한 여자가 DNA가 잘못됐나 싶어서 미리 또 기도로… 모차르트 음악가지고는 성에 안 차요. 임신했을 때 기도빨로 은혜가 충만한 애가 나오기를 기도할 때 일단 자기 집안을 자기가 잘 아니까 이제 내 대에서 저주는 끝! 끝내기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한 인간의 심보 그 자체가 출애굽기 20장 5절을 보면,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너를 위하여 신을 섬기지 말라’할 때, 그들은 나를 위해서 우상 섬기면 안 되고 나를 위해서 여호와 섬기면 되는 걸로 여겼던 거예요. 그래서 저도 신학교 다닐 때 그 대목을 보면서, 왜 ‘삼사 대 저주’라는 그 말씀을 하셔가지고 인간들을 주눅 들게 만들어서 교회를 세우면 100% 기복신앙으로 왜 빠지게 하시는지… 이거 안 빠지게 하려면 이 본문부터 뭔가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것 같은데 모르겠다고 저도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지난 주일 오후 때, 주님께서 시간 전략을 짰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뭐냐 하면, ‘안 가르쳐주지~’ 작전이었어요. 완성된 것을 안 가르쳐주고, 완성된 것의 부분적인 것을 언급하면서 완성된 것을 후(後)에 배치한 거예요.
그래서 ‘저주’라는 말을 한 것은 이런 뜻입니다. 앞으로 언약이 주어지게 되면 부분적으로 율법을 줄 때는 ‘잘못한 게 있으면 삼사 대 저주받는다.’ 이렇게 되죠. 그러나 나중 언약이 오게 되면 ‘몽땅 다 입을 막고 저주아래 있게 함이라.’라는 언약이 주어질 것이다.
그때는 뭐 “우리는 삼사 대 저주 받은 게 아니다. 너희 집은 저주받았어. 빨리 끊어.” 이런 소리를 너나 나나 할 자가 없게 만들어요. 그게 십자가 죽으심이에요. 십자가 앞에서 모든 인간은 저주받아야 돼요. 왜? 하나님을 몰랐으니까. 하나님을 모르면서 율법 붙들고 지켜야겠다는 것은 출제의도도 모르면서 나 문제풀었다고 우기는 것과 똑같은 거거든요.
시간 전략에서, 어제 오후에도 이야기했듯이 ‘인간이 현재를 산다는 것은 미래 자체가 장벽이다.’ 인간은 뚫어내지를 못해요. 뚫어내지를 못합니다. 막혀있어요. 막혀있으니까 마음 놓고 주께서는 새 언약을 미래에 준비한 거예요.
그렇게 하고 다시 해보면, 모든 인간은 저주받는다. 저주받는다는 말은 아버지 때문에 내가 저주받는다는 그런 입담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토막을 내버려요. 피자를 토막 내듯이 토막을 내서 모든 영혼은 각자 내가 알아서 내가 심판하는데 어떤 심판? 부모 죄 때문에 저주받는다는 그것은 폐기처분하고, 모든 인간은 모든 자기 죄로 인하여 처벌은 본인이 받는다는 새로운 새 언약에 입각해서 처벌해버립니다.
그게 십자가죠. 처벌을 해버릴 때 인간은 더는 의롭다 할 수 있는 입장은 이제 못 됩니다. 그런데 새 언약, 다음 주일에 새 언약 하는데요. 예레미야에 새 언약이 주어지게 되면, 인간 각자가 죄인이 되고요, 새 언약이 주어지고 완성이 되지 않습니까.
그 완성은 바로 인간들 몽땅 저주받게 하는 위에 새로운 층을 만들어요. 그걸 ‘부활층’이라 합니다. 새로운 층. 이 층은 일단은 누가 만드시는가? 이 땅에서 죄 없이 살다 가신 분이 만든 나라, 부활의 나라가 되고요. 부활의 첫 열매니까. 그 다음에 그 첫 열매에 참여해야 될 사람 모집을 지상에 죄인 가운데서 뽑아내는 거예요. 죄인 가운데 뽑아내버립니다.
뽑아낼 때 조건이 하나 있어요. 일단은 네 죄 값을 치러야 되고 죽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럼 내 죄 값을 누가 치르느냐? 내(예수님)가 대신 치른다는 조건을 네가 받아들여야 된다는 거예요. 네가 받아들이는 조건 하에, 네 안에 십자가가 들어가는 조건 하에 부활이 되는 겁니다.
십자가를 품에 안아야 되지, 십자가 빼놓고 ‘나는 십자가 지나갔으니 난 부활되었다.’ 이런 사람은 그건 새 언약 백성이 아닙니다. 구원받지 못합니다. 하도 그런 사람이 많아가지고요. 십자가 내놔야 될 것을, ‘나 구원받았다’를 내놓는 사람이 많아가지고 많이 답답해요. 그게 바로 오후 설교의 내용이었어요.
이것은, 나는 이 땅에 죄 짓고 나보다 앞선 시간은 내 모든 죄를 다 이루었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7분 지났는데 3분 동안 또 하겠습니다. 주일 낮 설교 중에서 제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인간의 몸은 60조 개의 세포로 되어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몸 안 받습니다. 왜? 떡을 돌로 돌아가게 한다는 말은, 떡을 먹어 사는 인간의 육신을 흙으로 돌려보내는 그 작전에 의해서 주께서는 흙으로 돌려보낸다는 거고요.
아담에 속한 형상이니까 돌려보내고, 말씀 완성을 위한 육신을 따로 준비해놨어요. 그게 바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새로운 피조물 만드는 조건 하에 말씀으로 재조립된 몸을 주께서는 하늘나라에서 받습니다.
그럼 말씀을 주는 그 작업은 누가 하느냐? 우리 주님이 성령을 통해서 하십니다. 말씀을 준다는 게 무슨 뜻이냐 하면, 말씀 안에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자기 활동이거든요. 예수님의 자기 활동을 말씀 안에 담았기 때문에 ‘아, 예수님 활동에 입각해보면 우리 때문에 죽었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살아나셨구나.’ 라는 것을 포함해서 말씀을 늘 담아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교회 문만 나가면, 말씀이 실제 생활에 영향력을 줘야 되는데… 제가 오죽했으면 ‘먼지털이개 빌려드릴까요?’ 했잖아요. 이거 뭐 돼지갈비 먹고 냄새 날 때 페브리즈 뿌리는 것처럼 말씀을 다 희석시켜요. 세상에 돈 버는 일에 매진해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주님은 지금도 거울 안에서 “피! 피!”, 쉽게 말해서 “오겡끼데스까?” 하는 것처럼 “피! 피!” 이야기하는데, 사람들은 말씀을 떨어내기 때문에 사람들은 “뭐? 돈 벌라고요? 주식 투자해서 요번에 대박 났어요. 비행기는 떨어져도 주식은 올랐습니다.” 뭐 이런 거. 모든 몰입을, 이 세상은 남의 나라인데 내 나라 아닌데 떠날 이 나라에서 내가 인정받는 데에 전부 다 올인해서 몰입하고 있어요.
그럼 대책이 뭐냐? 그 이유가 우리가 영적 존재가 안 되기 때문에 그렇단 말이죠. 그럼 영적 존재가 되는 방법은 뭐냐? 주께서 영과 육을 통하는 유일한 출입구가 있어요. 사자성어로 가룟 유다. 내년에는 everybody 가룟 유다 되는 거예요. 바닥부터 새로 시작. 가룟 유다보다 더 못된 사람이 사도 바울.
그러니까 선을 넘은 자까지라도 이 하나님의 유언의 효력은 어느 정도로 세냐? 지옥 품, 마귀의 품 안에 ‘이건 안 내놓는다. 내 사람이다.’ 해도 주께서는 그 인형을 빼앗아갈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시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말씀드린 것은 자기를 미워하자. 말씀을 안 듣고 결사적으로 나를 미워하는 그러한 즐거움을 누립시다. 이게 어제 설교 결론이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