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241211)요약 열왕기상 3장 4-10절(번제와 응답)
수요설교(241211)요약 열왕기상 3장 4-10절(번제와 응답)
어제 솔로몬의 기도 응답. 보통 교회에서는 일천번제 강조하죠. 천 번을 반복하라. 새벽기도 나올 때마다 돈 천원 내라 이 말이거든요. 천 번 내면 복 이루어진다는 건데 기도 응답에 관한 문제에요. 중요한 것은 기도 응답받은 그것이 꿈이라는 거예요. 꿈속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꿈속의 솔로몬하고 꿈 바깥의 솔로몬이 같을까요, 다를까요? 다르겠죠. 꿈속의 솔로몬은 다윗 언약의 자리에 들어선 솔로몬, 꿈 깨고 난 솔로몬은 여전히 육신에 속한 솔로몬. 어제 육신 이야기를 제가 강조했습니다.
그럼 육신적인 솔로몬은 꿈속의 솔로몬과 어떤 연관성을 갖느냐? 솔로몬이 지혜롭게 통치하고 뭐 이렇게 해도 육신적 한계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면 자기를 위한 통치가 되어버려요. 자기를 위한 통치가.
그런데 꿈속의 하나님의 응답은 일방적인 응답이에요. 솔로몬이 요구하지도 않은 내용을 섞으셨어요. 뭐라고 하느냐 하면, “네가 원하지 않는 그 재물과 목숨 연장과 원수가 망하는 것, 네가 그런 걸 원하지 않아서 참 좋았다.”라고 하시거든요. 그런데 그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요. “너 지금 육신적으로 그거 되게 좋아하고 있잖아.”라는 것을 언급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뭐냐 하면, 취직하려고 서류를 작성할 때 “저는 회사에 말단 직원으로 청소나 뭐 제일 말단 일해도 괜찮습니다.”라고 서류를 냈는데, “너는 상무를 원하지 않고 전무를 원하지 않고 정책 실장을 원하지 않아서, 너를 위해서 어떤 것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너는 들어오자마자 내가 사장 자리 줄게.” 이런 거예요. 참…….
솔로몬 본인이 본인을 평가한 것보다 오버하신 거예요. 하나님께서 오버해가지고 ‘나는 아니니이다’라는 솔로몬 이미지를 가지고 일방적으로 응답을 줘버렸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인간이 기도해서 받은 응답은 자기에게 돌아오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적 기도는요, 하나님께서 기도를 시작해서 응답의 부분으로 그 사람을 사용하고 다시 그 모든, 안 되는 걸 되게 했다는 식으로 공로를 하나님 자신이 가져가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응답을 할 때, “너는 네가 지금껏 본 왕 중에서 네가 최고고, 앞으로 너 만한 왕, 그렇게 영화롭게 복을 누리는 왕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거든요. 하면서 어제 수요일도 이야기했지만 그다음에 중요한 게 있어요. “만일 네가 다윗의 언약대로 지킨다면, 만일 네가 아버지 다윗에게 준 언약을 지킨다면, 율례와 법도를 지킨다면”이라는 말이 나왔다고요.
이게 무슨 말이에요? 이거는 네가 지금 응답받았다고 깨춤 추다가는 넌 잘린다는 뜻이에요, 그게. 그래서 제가 어제 수요일에 했죠. 인간은 어떤 시작점을 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시작점을 인간에게 허락한 적이 없다. ‘오늘부터 내가 주님과 1일로 친다. 나 오늘부터 성도의 시작이다.’ 그건 니 생각이고.
인간이 생각하는 출발점은 없습니다. 왜? 흙에서 왔으니 어디로 가야 돼요? 흙으로 가는 것이 합당하니이다. 이거는 합당한 거예요. 흙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에요. 여자도 남자에서 나왔기 때문에 같은 흙으로 만들었으니까 돌아가야 되는 거고요.
여자에게 준 이 생명, 산 자의 어미. 생명이라는 그것은 주님이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을 통해 합세한, 어제 그걸 이중성이라 했어요, 합세한 주님의 자기 기도 응답으로서 그 생명이 주어지는 거예요.
히브리서에서는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맹세’라고 하는 겁니다. 맹세. 하나님의 일은 뭐 없이 안 된다? 맹세 없이 안 된다(7:20). 누가 누구한테 던진 맹세?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에게 하는 맹세(6:13). 맹세 없이 일이 되질 않아요. “너는 맹세에 걸려들었어.” 이런 뜻이에요. 너는 맹세에 걸려들었어. 그건 네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네가 들어온 자리가 다윗의 자리가 아니고 다윗 언약의 자리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윗 언약의 자리에.
그러면 다윗 언약의 자리에 들어온 것과 솔로몬이 그냥 다윗 자리에 들어온 것과 차이점은 어떤 차이냐? 일천번제를 드렸잖아요. 거창한 번제, 제물 천을 동원한 번제를 드렸잖아요. 그런데 시편 51편 16절에 보면 번제를 주께서 요구했지만 다윗이 우리아와 밧세바 사건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은… 번제는 희생물을 다 태우는 제사가 번제에요. 희생물을 다 태워요.
그러니까 희생했다는 사람이 살아있는 게 아니고, 희생한 자가 희생도 하고 희생하고 난 뒤에 뭔가 영광을 누리는 게 아니고 소멸되는 거예요. 희생의 극단으로 희생이 끝까지 희생으로 밀어붙여서 아예 이 땅에서 없어져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그럴 때 그 번제는 받아요.
내가 이 땅에 더 살고자 하는 인간이 아무리 번제해봐야 그 번제는 하나님께서 받지를 않아요. 따라서 다윗의 입장에서 살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번제에 대해서, "희생자를 희생자 되게 한 주범자로 저를 좀 끼워주면 안됩니까?” 하는 거예요. 그게 상한 심령이에요. 상한 심령. 우리아 죽는데 “누가 죽였어?” “제가 죽였어요!”하고 기쁘게 손들고 나섭니다.
주인의 탁자에서 떨어지는 떡이지만, “주인에 속한 아들들만 먹는 떡이 굴러 떨어졌을 때 개도 그 떡을 좀 먹으면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떡을 먹었으니까 주인의 상에 참여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하고 묻는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은 심정이에요.
아, 하나님께서는 이 번제라는 자기 맹세에 다윗을 걸려들게 하셨구나. 그 다음 차례는 솔로몬이 걸려든 거예요. 다윗이 다윗 자리에서 다윗 언약의 자리로 옮길 때 상한 심령으로 들어간 것처럼, 이제 솔로몬은 솔로몬에서 다윗 언약으로 가려면 이왕 솔로몬은 다윗 자리에 들어왔으니까 솔로몬은 어떻게 돼요? 희생자를 희생자 되게 만드는 범죄자 위치에 들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결국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내게 준 모든 지혜와 부귀영화가 나한테 어떤 역할을 했는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된 역할을 하라고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자기가 인생 끝내면서 고백합니다. 그리고 전도서 12장에 나오는, 인간의 신체구조가 중력을 못 이겨서 주저앉는 그 모든 모습이 바로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이 이야기 듣고 어떤 사람은 ‘너무 허무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아담에서 하와가 나왔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에서 메시아가 나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남자가 여자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여자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남자인 아담이 생명을 얻게 돼요. 이런 수가 있습니다. 말려든다는 것, 그것도 흙으로 죽어가는 게 말려든다는 것이 이렇게 복이 될 줄이야. 이게 주님의 사랑일 줄이야. 어떻게 누가 알았겠습니까?
솔로몬이 받았던 그 과정이 꿈이었거든요. 꿈을 통해서. 지난 수요일에도 이야기한 것처럼 감추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고 나타난 것은 왕의 일이라 했죠(잠 25:2). 원래 계획을 만드는 계획 담당자이신 하나님은 숨어계시고 그것을 지상에 꿈같은 것으로 드러내면서 이 세상을 심판하는 것은 왕의 일입니다.
심판하는 데에 필요한 진리를 달라고 솔로몬은 실제 일천번제 드리면서 기도한 거예요. 솔로몬이 노린 것은 그거에요. 일천번제 드렸으니까 거하게 썼으니까 거하게 보상이 올 것이다. 그 보상이 뭐냐? 이 백성들을 지혜롭게 다스릴 수 있는 게 올 것이다. 그런데 지혜의 소유자는 누구다? 내가 되어야 된다. 이렇게 하거든요. 자기는 백성 중 한 사람이지만 왕의 자리니까.
그러한 응답의 완성은 바로 고린도전서 12장에 성령이 오게 되면 누가 누구에게 지시를 하는 게 아니고 알아서 주님의 지시를 받고 사는 사람이 될 때 그 사람이 각자 받은 지시는 다 다르고 인생의 경로는 다 다를지라도 하나같이 한 이야기를 한다는 거예요. “나는 죄인입니다. 당신은 당신 경로로 죄를 알고 나는 내 경로로 죄를 알아서 주님이 희생되는 데에 있어서 우리의 죄 때문에 희생되었습니다.”를 고백하는 것.
그게 히브리서 7장 25절(“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에 나오는, 지금도 하늘에서 주님이 기도하는 기도의 응답으로 그 구체적인 결과물이 오늘날 우리의 육신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