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강의 (486강/487강) 줄것과 방을 것, 생명의 종류 241105
486강-YouTube강의(줄 것과 받을 것 전도서 12:9)20241105-이 근호 목사
제486강, ‘줄 것과 받을 것’. 준다는 것은 출발점이 나한테 있죠. 그러니까 인간은 줄 것 주고 받을 걸 받는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그거 문제점 있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 출발을 어디서 해야 되는가? ‘내가 없었다’부터 출발을 해야 돼요.
만약에 ‘내가 있다’부터 출발해버리면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아요. 그럼 항상 모든 대인관계에 있어서 ‘이게 나한테 이익이냐 손해냐’가 모든 행동의 개시점이 되어버려요. 있음을 있음으로 계속 붙들어 매야 되니까. 인생이라는 것,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생각해보면 간단해요. 나 있는 것을 나는 양보 못 하겠다, 그것부터 이제 출발을 하는 겁니다.
이게 아주 어린 애, 갓난애는 모르지만 두 살 넘어서 약간이라도 크게 되면 그때부터는 나 있음부터 아주 단호하게 되어가죠. 나이가 들면 점점 그것이 딱딱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항상 돌아보면서, 나 인생 이만큼 살았는데 내가 손해 봤냐, 이익 봤냐를 계산하고 있죠.
그래서 남이 좋은 걸 갖고 있다든지 하나님이 좋은 걸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는 이렇게 하죠. ‘하나님, 뭐를 바치면 그 좋은 것 저한테 30배, 60배, 100배 주실 겁니까?’ 평소에 계산하는 법을 그대로 발휘하게 돼요. 왜 그런 발언이 나오죠? 내 것 지키기 위해서. 내 있음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그런 발언들이 나온단 말이죠.
과연 우리한테 줄 게 있느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구약의 전도서는 지혜인데요. 인간은 자기가 지식을 확보해서 지식으로 줄 것 주고 거기에 대한 보상으로 받을 걸 더 많이 챙기겠다는 생각인데, 지혜는 인간을 아예 ‘없음’부터 출발해요. 내가 여기 없었다는 것부터 출발하는 겁니다.
그게 전도서 12장 7절,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흙은. 우리 인간을 지칭할 때 ‘인간아’ 이렇게 하는 게 아니고, 너 흙이었었어. 흙이니까 하나님의 조치는 아주 간단합니다. 흙을 뭐로 돌려보내요? 다시 흙으로 돌려보내서 흙들 속에 합류시키면 그게 하나님의 일이죠. 흙 주제에 내놓을 게 뭐가 있겠어요? 아무것도 없죠. 내가 하나님께 이만큼 했으니까 이만큼 받아야 되겠다는 것은 본인이 흙이라면 차마 그런 소리해서는 안 되겠죠.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神)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줄 것 주고 다시 나 있는 곳으로 받아 챙기는 것이 아니고, 그냥 돌아가는 거예요. 다 털린다 하죠. 다 털려버리죠. 하나님 앞에 탈탈 털려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수해 가는 겁니다.
재활용품 바깥에 내놓습니까? 보통 쓰레기 내버리죠. 그거 내놓으면 ‘회수한다’ 하죠. 쓰레기차가 회수하듯이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가는 경로에 쓰레기로 내놓습니다. 그럼 주님께서 어떻게 합니까? “여기 흙이 또 나와 있네? 가져가야지.”하고 가져가버리죠. 끝입니다.
뭐 어떻게 살았든 어디서 무얼 하며 살았든 흙이 흙 주제에 흙 표면에다 거창한 걸 도배하든지 안 그러면 치장을 하든지 메이크업을 하든지 장식을 하든지 주님께서는 그런 거 보지 않고 하나님이 흙으로 봤다면 뭘 해도 우리는 흙에 불과한 거예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안 빼앗기려고 버티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걸 빼앗아버립니다.
그래서 12장 8절에 보면,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흙이라 해서 ‘너 흙이지만 나중에 잘 될 거야.’ 이걸 의미하는 게 아니고, 흙 자체를 뭐와 동일시하는가? 흙? 그 말 무슨 뜻인지 알아? 헛되다는 뜻이야, 이 인간아. ‘너 흙이야.’ 이 말은 “네가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하고 얼마나 큰일을 한다 할지라도 내가 보기에는 다 헛되고 헛된 거야. 너 그걸 알아야 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럼 자, 하나님께서 회수를 해줬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전도서가. ‘그러면 헛되고 헛된 것을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신경 쓰십니까?’ 라는 질문에 답변이 있어야 돼요. ‘헛될 것 같으면 왜 만들었습니까? 아무것도 아닌 흙이라면 흙으로 왜 인간을 빚었습니까?’ 같은 뜻이에요. ‘아무것도 아니라면 왜 하나님께서 계속 주시해왔었습니까?’
거기에 대한 해답이 전도서 12장에 나옵니다. 12장 11절에 보면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의 주신 바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헛되고 헛되고, 또 흙에 불과한 우리에게 하나님 쪽에서 주신 게 있어요. 우리에게서 받는 게 아니고, 뭘 내놔라가 아니고요. 우리는 내놔도 소용없어요. 중요한 것은 내놔도 헛되고 안 내놔도 헛되고 이거는 한결같아요. 하나님의 평가는 늘 하나같이 헛됩니다. 헛된데 그 다음에 나오는 질문, ‘헛된데 왜 하나님께서 관리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헛됨과 매치시키기 위해서, 만나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흙인데 흙에 하나님이 뭘 주신다? 말씀을 줘버리는 거예요. 흙인데 말씀을 줘버리면 말씀이 스스로 뭔가 완성하는 게 있어요, 완성하는 것. 자체적으로. 자체적으로 말씀이 완성해버리면 헛된 것 속에서 말씀의 완성이 거기서 발현이 돼요. 하나의 열매를 맺어요.
헛된 것 속에 말씀이 주어지고 말씀이 자체적으로 자기 완성태를 만들어낸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게 있다고요. 그러니까 이사야 40장 말씀과 같은 뜻이죠. 우리는 다 풀이요 우리의 잠깐 영광도 풀의 꽃 같지만 그것은 헛되이 져버리기 위해서 잠깐 핀 것이요 영원한 것은 뭐냐? 말씀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우리 안에.
“모든 육체는 물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사 40:6-8)
끝으로 그렇다면 우리가 대인관계나 다른 성도들을 만났을 때 무엇을 내놔야 되고 무엇을 제시해야 되겠어요? 내가 하나님께 바친 것, 하나님께 충성한 것, 열심낸 것 그거 내놔야 돼요? 그거 내놓으면 헛 겁니다.
그럼 뭘 내놔야 되겠습니까? 나를 헛되게 만드신 그 능력. 내가 흙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그 능력. 그 능력은 뭐였죠? 하나님의 말씀. 구약에는 말씀이고 신약에 보면 말씀의 완성이 되고. 말씀이 육신이 되었으니까 완성이 되고.
그러니까 전도서 이 말씀에 의하면 전도서 제일 끝부분 12장 13절에 “일의 결국을” 일의 결국이라는 것은 끝부분이죠,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누구보고? 청년들아. “너는 청녀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구약적 상태에서는 이게 결론이에요. 말씀을 지켜라. 구약 말이 틀린 게 아니죠. 왜? 흙인데 헛된데 무엇이 주어졌다? 말씀이 주어졌으니까 그 말씀이 너를 가만두지 않고 너 헛됨 안에서 말씀이 자체적으로 완성을 볼 것이다, 라고 구약은 여기서 마감을 지어버려요.
그러면 이 말씀이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신약 성경으로 오게 되면 말씀이 완성이 되죠. 그럼 아까 했던 질문을 다시 하겠습니다. 오늘날 성도는 서로가 무슨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됩니까? ‘말씀이 지켰다’ 아니죠. ‘말씀이 왔다’ 아니죠. 뭘 해야 됩니까?
말씀이 나를 헛되게 만들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대해서 말씀이 자체적으로 성공을 시켰고 그 성공된 결과가 바로 하나님의 복음, 다 이루었다는 하나님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심.
헛되지 않는 주님이 헛된 우리에게 찾아와서 헛되지 않음을 완성시키시고 그 헛되지 않음을 위해서 헛된 우리를 같이 데리고 천국으로 들여보내주시는 겁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늘 말씀과 붙어있는 사람. 그게 바로 전도서에서 말한 지혜 있는 사람, 곧 성도가 되는 겁니다.
이하림gblayer('gblayer4', 'summerwood', '이하림', 'summerwood96@naver.com', '', '1', './program');(IP:180.♡.164.155)
24-11-06 09:39
487강-YouTube강의(생명의 종류 레위기 11:13)20241105-이 근호 목사
제487강, ‘생명의 종류’. 생명에도 종류가 있나 생각이 들 거예요. 생명에도 값나가는 생명 따로 있고 허름한 생명 따로 있고 무시해도 되는 생명 따로 있고 소중한 생명 따로 있나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그런데 생명에서 어떤 격의 차이가 난다는 게 아니고 생명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려 하는 겁니다.
레위기 11장 13절에 보면 “새 중에 너희가 가증히 여길 것은 이것이라 이것들이 가증한즉 먹지 말찌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매와 매 종류와” 이렇게 되어 있어요. 레위기 11장 앞에 2절을 보면 “육지 모든 짐승 중 너희의 먹을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걸 좀더 분명히 이야기하면 창세기 1장과 관련지어서 설명이 되어야 돼요. 창세기 1장에 보게 되면 새는 무엇이 결정하느냐? 하늘이라는 환경이 결정합니다. 공중을 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새에요. 이게 하나님의 분류법입니다. 뭐 매미 따로 있고 뭐 따로 있고 아니에요. 전부 다 모조리 다 새입니다. 곤충 따로 있고 독수리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다 새에요, 새.
창세기 1장 20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또 땅 밑의 물에 생물들도 있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라고 되어 있어요.
새라는 것은 ‘새가 어떠냐’가 관심사가 아니라, 새가 활동하는 그 공간, 그 영역, 그 환경을 표현해주는 것이 바로 새가 된다는 거예요. 이게 다섯 째 날이거든요. 그러면 땅에 있는 짐승은 여섯 째 날이에요. 땅에 짐승이라 할 때 짐승이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땅이라는 환경을 여러 가지 다양한 짐승을 통해서 표현해주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이렇습니다. 여섯 째날 마지막에 만들어진 것이 인간이죠. ‘인간이 누구냐’,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인간이 소속되어 있는 환경이 어떠한 환경이냐를 드러내기 위해서 인간을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종류가 벌써 하늘에 있는 생명, 물에 있는 물고기, 땅에 있는 짐승, 또 땅에 있는 인간. 결국 종류가 인간 포함해서 네 종류밖에 없죠. 인간 빼면 몇 종류입니까? 세 종류죠. 다 다섯 째날, 여섯 째날 창조된 겁니다. 땅, 하늘, 그리고 물속, 이렇게 세 가지.
그러니 생명의 종류라는 것은 네가 속해있는 환경이 얼마나 거룩하고 깨끗하냐를 드러낼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구분하겠다는 겁니다. 생명을 가지고 구분하겠다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레위기 11장의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레위기 11장에 보면 아까 2절 읽었으니까 3절,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라고 되어 있죠.
이 이야기를 지금 짐승보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새보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안 그러면 물고기보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인간보고 이야기하는 겁니까? 인간보고 이야기하죠. 그러나 모든 인간보고 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인간이냐? 인간 중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입어야 될 인간에게 이 말씀을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인간 중에서 이 말씀을 받지 아니한 자는, 인간 중에서도 거룩하지 않고 더러운 인간이 되겠죠. 그리고 이 말씀을 받고 실천한 사람은 거룩한 인간이 되겠죠.
자, 보통 거룩한 인간, 더러운 인간 같으면 ‘야, 너 참 안됐다. 더러운 인간이라서.’ ‘아, 나는 기분 좋아. 깨끗한 인간이잖아.’ 전부다 무엇에 관심이 있느냐 하면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성경말씀과 연계를 시키죠.
하나님, 저 소고기는 먹었어요.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했으니까 소가 새김질하잖아요. 저는 소고기는 먹었지만 굽이 갈라졌으나 새김질 못하는 짐승, 돼지는 먹지 말라 했단 말이죠. 그럼 사람들이 이걸 보고 뭐라 하겠어요? 옛날 구약 때, ‘하나님, 저는 소고기는 먹었지만 돼지고기는 안 먹었으니까 저 거룩한 사람 맞죠?’라고 생각할거죠. 그렇죠? 이 말씀대로 했으니까. 그러면 거룩한 인간됩니까?
성경을 보면서도 관심사가, 내가 얼마나 대단하며 내가 죽어서 천국 갈 사람인지 지옥 갈 사람인지 거기에 관심을 두면 성경하고 상관없어요. 성경해석이 잘못된 겁니다. 성경해석은 어떻게 하는가? 아까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물고기는 물에 대해서 드러내기 위해서, 새는 공중에 대해서 드러내기 위해서, 짐승은 땅에 대해서 드러내기 위해서. 그럼 인간은? 땅에서 하나님이 무슨 일을 일으키는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진 거예요. 따라서 그 인간 중에서 하나님이 하신 것을 드러내지 않는 인간이라면 레위기 11장에 보면 그 인간은 부정한 인간이에요. 더러운 인간 되겠죠.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11장 20절에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가증하니” 이렇게 되어 있죠. 날개가 있으면 어디서 살아야 돼요? 공중에 살아야 되겠죠. 그런데 네 발이 있어 기어 다니는 곤충은 오롯이 하늘을 묘사하는 것도 아니고 오롯이 땅을 묘사하는 것도 아니고 불분명하죠. 이런 것은 가증스럽다는 거예요.
날개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제대로 뭐를 묘사 못해요? ‘너 소속이 하늘이야, 아니면 땅이야?’를 분명히 드러내지 못하겠죠. 드러내지 못하면 이 말씀에 의해서 뭐가 돼요? 더러운 게 돼요, 더러운 게. 이 더러운 것을 가증하니 먹지 말라했어요. 먹지 마라.
그러면 인간 속에 다섯 째날, 여섯 째날에 만들어진 것이 인간의 음식으로서 인간 속에 들어오게 되죠. 인간 속에 들어오게 된단 말이죠. 들어오게 되면 인간은, 특히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다른 인간과 달리 이스라엘 백성이 독특한 환경 속에 독특하게 인도받고 있다는 것을, 그것도 말씀으로 인도받고 있다는 것을 다시 감지해야 돼요. 그 취지를 알아야 돼요.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살던 사람이 홍해를 통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에요. 유월절 홍해를 통해서. 지금 레위기가 광야에서 받은 거잖아요. 모세를 통해서. 그렇다면 그들 이스라엘 환경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냥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 땅의 것을 먹을 수 있는 그 환경을 반영해야 돼요, 안 그러면 독특한 환경을 반영해야 됩니까? 독특한 환경을 반영해야 돼요.
어떤 게 독특한 환경이냐? 우리는 다른 사람과 달리 거룩한 환경을 표현해야 될 책임이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거룩한 백성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엇이 거룩하지 않냐를 알 수 있는 사람, 무엇이 더러운가를 알 수 있는 그들이 거룩한 백성이에요.
그러나 일반 이방민족에서는 인간 다 똑같아요. 그냥 너나 나나 똑같아요. 나쁜 짓 더하고 덜하고 그건 의미 없어요. 본질 자체가 그들은 똑같다고 보고 이스라엘은 똑같지 않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음식 먹을 때 어떻게 하느냐 하면 제대로 환경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네 속의 일부로서 양식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새김질을 계속 한다는 이 말은, 애굽에 있을 때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서… 새김질이 뭐에요? 먹은 걸 다시 새롭게 내놓는 걸 의미하죠. 그리고 굽이 갈라졌나 안 갈라졌나 주목한다는 것은 우리가 기존의 인간과 갈라진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거예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모든 것은 바로 유월절 사건, 홍해사건이 음식 속에도 그 내용이 담겨있음을 알고, 유월절 양을 주신 하나님께서 음식을 이런 식으로 구분해서 먹으라는 이 말은 음식 속에도 출애굽 사건이 담겨있다는 바로 그러한 새로운 환경을 드러내고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생명, 특별한 생명, 영생에 합당한 생명의 종류가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