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2005년 3월 27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3:13-15
Re..마 23:13-15 (허위)
이름 : 이근호(IP:)
허위
2005년 3월 27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3:13-15
23:1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23: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우리 인간들은 인간들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지옥까지 단단히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요지부동한 뜻입니다. 지옥을 만드셨다는 것은 지옥에 들어갈 사람들도 반드시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지옥 갈 사람에 대해서 예수님은 '화있을진저'라는 저주를 퍼부으시는 겁니다. 사랑의 하나님, 그리고 긍휼의 하나님 입에서 사정없이 저주가 쏟아지는 겁니다. 만약 우리 인간들이 인간들을 만들었다면 단 한 사람도 지옥에 들어가지 않게 조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을 만드셨기에 우리들 중에는 반드시 지옥 갈 사람이 생겨나야 하고 그런 사람들은 따로 분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옥은 정원수를 다 채우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인간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확정된 뜻입니다.
그런데 세상 안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은 확정되지 않는 변화들 속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세상은 항상 예상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늘 의도적으로 자신의 예상을 빗나가는 것처럼 움직입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근심과 걱정에 휩싸이게 됩니다.그리고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하나님, 왜 만사가 내 원대로 잘 안되는 겁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응답하실 것입니다. "내 뜻은 이미 확정되어져 있다. 그런데 너는 확정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자신의 뜻이 마치 확정된 뜻인양 간주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확정된 뜻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9:22에 '피흘림이 없은 즉 죄사함이 없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피가 어떤 이에게는 전 인격 전부에게 적용될 효력을 지니고 어떤 이에게는 전부가 아니라 부분적으로만 적용될 피입니까? 이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인간들이 조금이라도 지켜낼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 해당되는 하나님의 속죄함의 은혜는 그 일부를 제외하고 나머지에만 적용될 사항이 아닙니다. 즉 어떤 이들에게는 죄 사함이 많이 적용되어야 되고 어떤 이들에게는 죄 사함이 적게 적용되는 것이 하나님의 죄사함의 방식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저주받아야 될 대표자로서 등장하는 자들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잠시 극악무도한, 즉 주위로부터 마땅히 저주를 한 몸에 받아도 싸다 할 수 있는 사람의 경우를 연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를 살해한자, 자식을 욕보인자,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길 가는 사람을 무참히 살해한자 라든지 재미로 사람을 죽이든 살인 폭군이라든지, 수천 만의 인민을 죽이 스탈린 독재자라든지, 그 어떤 악마 같은 경우를 우리들이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화있을진저 지옥갈 악마의 자식이야'라고 저주해도 조금도 양심이 가책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예수님이 제시하는 전형적인 지옥갈 자는 그런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과는 정반대에 놓인 하나님의 말씀 순종에 열심내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쏟아졌다는 것이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옥을 만들지 않은 우리들이 상상하는 지옥갈 사람의 특성과 정말 직접 지옥을 만드시 그 당사자 되시는 분이 염두에 두고 계시는 지옥 갈 사람의 특성이 이처럼 극과 극으로 비교됩니다. 이런 놀라운 기준을 제안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불쑥 이 땅을 방문하신 하나님 그 자체이십니다.
요한복음 8:23에 보면, 보다 분명히 언급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따라서 참으로 누가 지옥에 들어갈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우리의 상상력으로 결정지을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이 제시한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0:28-29에 보면,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지옥불에 들어가는지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 이유는 바로 천국문을 가고 막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물론 그들 본인들도 천국문에 들어가지 않고 말입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신학은 이러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서 복도 받고 죽어서 구원도 받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하는 주의입니다. 참으로 신앙심이 깊어있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천국문을 가로막는 사람'이라고 단언하신 분은 예수님이 처음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실 때 몸만 달랑 오신 것이 아니라 천국의 원리까지 함께 이 땅에서 선포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본심은, 자신의 착한 마음에 대한 마일리지 축복이 쌓이기를 원하는 겁니다. 축적된 그 착함이 자신을 건지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나 지옥을 만드시 예수님 입장에서 봐서 바로 그런 자들이 지옥에 가도록 예비된 자들이라는 겁니다. 오늘날 소위 예수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믿고 있다고 장담해도 인생에 조그만 변화만 터져도 예수님을 제깍 버리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풍랑이는 바다 위에 지나간 제자들의 모습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이 배 아래는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울 때에, "왜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뱐화속에서도 예수님의 구원의 위력을 그들은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이와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우리들에게 변화를 주셔서, 예수님에게서 주어지는 확정된 용서가 그 어떤 변화에도 요지부동 흔들림이 없음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천국문을 가로 막은 상태에서 아무리 전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들을 더욱 더 곱빼기나 지옥 백성 만들어 버릴 것이 뻔한 일입니다. 피 흘림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으로 갈 사람이 결정나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그 어떤 마일리지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이미 확정나 버린 사실 앞에서 우리가 흔들림이 없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