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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24장 49절 (소유성과 성령) 240924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24장 49절 (소유성과 성령) 240924b-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24장 45절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튜브로 들어오시는 거예요. 와서 들어왔으면 마음을 열어서 성경을 깨닫기 하기 전에는 무엇 무엇을 모르느냐 하면은 그리스도의 고난 받고 삼일 후에 살아나는 것과 죄 사함의 회개 이것이 우리가 마땅히 일어날 일이 아니고 인간이 버린 그 분이 우리한테 혜택을 주는 거예요. 혜택을 주기 위해서 부활하셨다 끝나는 게 아니고 부활하신 상태에서 실제적으로 활동을 개시하는 겁니다. 활동을 개시하면서 49절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라고 하셨습니다. 능력이 임할 때까지니까 이거는 능력이 임하기 전까지는 아직까지 성령을 안 받을 때에요. 성령을 안 받았다는 말은 예수님의 모든 그 구원의 효과를 제대로 덮쳐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그 성령이 덮쳐지고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덮쳐지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그 전에 인간들은 신을 이해하면서 자기 소유성에 근거해서 이해한다. 자기한테 유리하도록 자기 존재가 더 강화되도록 유리하게 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건 성령이 오기 전이고 성령이 왔으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약속은 또는 약속된 성령은 인간의 모든 생각을 지워버립니다. 인간의 모든 생각을 지워버리는 거예요. 생각을 안 한다가 아니라 생각을 해. 생각을 하든 행동을 하든 네 마음대로 해.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내가 너에 대해서 일체 신경 쓰지 않겠다. 왜? 의미 없기 때문에. 내가 행동을 잘했으면 어땠을까? 바르게 했으면 어떨까? 걱정과 근심은 다 인간의 자기 소유성 깨질까봐 소유성에 지장이 될까봐 하는 거예요.

인간의 모든 행위와 생각은 공포 속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공포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에요. 공포에 입각한 발언과 행동. 무슨 회사에서 회의를 한다든지 어디 거리에 나가서 데모를 한다든지 안 그러면 집에서 조용히 혼자 숙제 수학문제를 풀어도 항상 이겁니다. 공포에 입각해서 수학문제 푸는 거예요. 벌벌 떤다 이 말이죠. 왜? 자기 문제 홀로 해결해야 되니까. 자기문제를. 그런데 인간이라는 것은 자꾸 문제만 만들어내지요. 어떤 해결책은 없어요. 내가 여기 있다는 자체가 자동적으로 문제거리 골칫거리만 계속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인간이라는 게. 그런데 고마운 할례는 뭐냐? 그거는 고민거리가 아니라고 계속 우리를 제거해 나가는 것이 할례입니다. 주님 이것 때문에 고민입니다. 내가 지워줄게. 내가 지우개로 확 지워버릴께. 자꾸 지워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베드로도 마찬가지고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고 근심이나 걱정은 사도 바울의 걱정은 복음을 제대로 전하는 그것뿐이지 자기 신상에 대해서는 어떤 걱정도 하지 않아요. 내가 궁핍하다 또는 여유있다. "내가 궁핍에 처할지라도 여유 있을지라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것은 뭐냐 하면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약속의 범위 안에서 못 벗어난다는 것이 덮쳐왔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의 시편, 하나님의 율법, 선지자의 글 그것이 새로운 현실이 되어서 우리가 몰랐던 생각도 못했던 진짜 현실로 자기가 흠뻑 뒤집어썼다는 사실, 성령 받으면 그렇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되느냐? 절대로 주님으로부터 못 벗어난다. 적어볼게요. 지금 적는 것 중요해요. 나는 절대로 주님으로부터 못 벗어난다. 그 다음에 히히히. 흐흐흐. 이게 성도입니다. 나는 절대로 주님으로부터 못 벗어나. 아 짜증나. 이거 지옥 갑니다. 자율성, 나의 선택권, 나의 결정권 그거 주님께서 할례, 할례는 자른다는 뜻이에요. 그걸 다 자르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은 할례 행해도 뭐냐? 무할례자가 돼요. 무할례자. 율법 이전의 아브라함이 돼요. 율법을 받기 전에 할례 받기 전의 아브라함이 되거든요.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할례가 주어짐으로 말미암아 나의 할례 받을 때 아브라함이 아니라 할례 안 받을 때 아브라함 사이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의 실효적인 통치 지배를 받게 되는 거예요. 이게 바로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겁니다. 더 쉽게 하게 되면 하나님의 의가 먼저 있고 나는 있을 필요가 없고 이렇게 돼요. 하나님의 의가 있음을 위해서 내가 있어야 되지 나는 있는데 하나님의 의 받아서 구원 받는게 아니고 '하나님의 의가 있음으로 충분해' 라는 말을 증인으로 하기 위해서 내가 이 땅에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번 이야기했지만 성도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늘 짤리지요. 뭘 제거되는 거예요? 제거되려면 내 생각이 있어야 돼요? 없어야 돼요? 계속해서 내 생각이 나와야 되겠죠. 내 생각이. 남은 잘 사는데 나는 왜 못 사나. 모든게 뭡니까? 내 소유성과 관련된 것이 끊임없이 끊임없이 아침에 눈만 뜨면 또 시작이고 또 시작이고 뭘 할때도 벌벌벌 떨면서 실패하면 안 되는데 잘해야 되는데 손님 오면 원피스 하나 팔아야 되는데. 이번 달 수입 계산해보니 큰일났다 문 닫아야 되나. 끊임없이 이게 나와줘야 엄청난 복음이 그게 문제거리가 아니고 고민거리도 아니라는 사실을 할례 입장에서 그걸 제거해나가는 겁니다. 그게 마음의 할례에요. 고민은 혼자 다 해놓고 나중에 혼자 한 고민이 하나님의 이미 의롭게 됨 앞에서는 그거는 고민거리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그걸 계속 발견해나가는 겁니다. 계속 발견해나가는 거예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게 되면 말은 그렇게 하는데 실제로 그런 사람 있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주님이 계시면 그런 사람 생깁니다. 주님이 부활했으면 그런 사람 생깁니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게 바로 사도행전이에요. 사도행전 나온 인물들 보면 하나같이 실성했어요. 실실 늘 웃어요. 꼭 실성한 것 같애. 웃을 일도 아닌데 웃어요. 기뻐해요. 지진 났다고 웃고 감옥 갇혔다고 웃고 미친 것도 아니고 미움 받는다고 웃고 귀신 달려든다고 웃고 돌 던진다고 기뻐하고 이건 뭐 실성이라는 말 외에 다른 적당한 말이 없어요. 그러면 실성이란 말 대신 다른 말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성도의 삶은 혼돈입니다. '혼돈'.

혼돈이라는 것은 내 쪽에서 체계를 잡을 필요가 있다? 없다? 체계 잡으면 안돼요. 체계 잡을 필요없어요. 그게 소용없어요. 주께서 들쑤시는데 체계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이게 오히려 인생의 짐을 자기가 짊어지는 거예요. 엄마 내가 3년 뒤에는 성공할게. 여러분 이런 질서를 잡지 마세요. 내가 온 재산을 다해서 카페 해가지고 네가 나라는 남자하고 결혼한 것이 얼마나 네가 참으로 멋진 선택이었다는 것을 내가 보여줄게. 카페해서 다 말아먹고. 멋있는 남편되기 위해서 전집 아줌마하고 재혼하면서 자기는 수억들여서 카페했는데 카페 망하고 손님이 와야 장사가 되지. 복음의 위대함 앞에서 주님께서 나의 위대함을 함몰시켜주잖아요. 이게 기쁨이잖아요. 이게 이미 시작된 천국생활이고 이게 성령 안의 생활이거든요. 내가 꿈꾸는 위대함은 아예 나한테 들이붙을 그러한 처지가 아니에요. 나한테 위대함이라든지 인생 성공이라는 것은 아예 나와 어울리지 않아요. 붙으면 안돼요.

혼돈이라고 했지요. 실성이라는 말보다 더 적당합니다. 실성한 거예요. 맨날 허허허 웃고 실성한 거죠. 이번에 6억 날렸어 허허허. 이건 진짜 돈 날려서 진짜 실성한 건지 성령 받아서 실성한 건지 구분이 안돼요. 그런데 그러한 모습을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증인이라고 합니다. 증인. 이게 무슨 증인이냐? 토네이도 있잖아요. 토네이도의 등급은 얼마나 쎄냐 얼마나 속도가 빠르냐에 결정되는 게 아니고 피해 정도에 따라서 결정돼요. 이게 뭐냐 하면은 이 증인의 등장은 이 세상 자체가 재판이 되고 말아요. 재판장에 모든 인간은 피고가 됩니다. 재판의 대상이 돼요. 이게 보이니까 허허허 웃는 거예요. 남 보기에는 실성했지만. 쉽게 해서 무슨 말이냐 하면은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것은 지금 구치소가 뭡니까? 구치소에서 고스톱 쳐가지고 돈 500원 따고 좋아하는 것하고 똑같은 거예요. 또 땄어. 246번 너 나와. 끝나. 끝나. 돈이고 뭐고 끝나는 거예요.

이미 하나님은 이 세상 자체를 심판장으로 만들어 버린 거예요. 심판장으로. 왜? 하나님을 죽였으니까. 하나님을 죽였으니까 지 구원받는 것은 이미 결정된 거고 그 다음에는 너희 차례. 나 죽였으니까 멀쩡하다고 생각하면 안돼지. 하나님을 죽였으니까 그 배후에 악마부터 해가지고 그 추종자들을 내가 심판할게. 그래서 하나님은 이미 천국에 가 계시기 때문에 이 땅의 활동은 지옥의 사자. 이 땅과 천국하고 이미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천국게 가 계신 분이기 때문에 지옥의 사자로 활동하는 겁니다. 그리고 성도는 그 지옥의 사자에 대리자고 증인이고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부터 과연 사도행전의 상황이 사도행전의 그 현실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내용들이 펼쳐지는지 여러분들 사도행전 한번 씩 다 봤잖아요. 이런 관점을 유지하면서 사도행전을 다시 봅시다. 보게 되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 제가 먼저 말씀드리는 겁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을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너희들은 지옥 간다.

사도행전 비시디아 안디옥 13장에 보면 사도 바울의 설교가 나와요. 29절에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그렇게 되어있어요. 이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에요. 인간 세계에서 이게 통하리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잘못이에요. 인간 세계는 이걸 원하는 게 아니에요. '살아있는 내가 이 땅에서 잘되는 것을 원하지 반드시 죽어야 돼' 라는 그것을 어느 인간도 원하는 인간이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안 믿은 것처럼 사도 바울 이 말도 사람들이 안 믿어요. 안 믿지요. 안 믿어야 되지요. 같은 인간끼리 인간이 뭘 추구하는지를 서로 서로 잘 아는데 뻔히 아는데 내가 이 말했다고 그 사람이 믿을 거 같아요? 안 믿지요. 그래서 45절에 보면 설교를 오랫동안 해요. 오래 하면 뭐 합니까? 아무도 안 믿는데.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반박하고 비방하는 거예요. 48절에 보면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설명을 해봐요. 이게 어떻게 믿을 이야기인지. 너는 사나 죽으나 하나님은 관심도 없어. 이게 어떻게 이 말을 믿습니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한테만 집중해서 자기한테만 관심을 두고 내가 어떻게 버티느냐 어떻게 죽어서 천당 가느냐 이것만 관심 있지 어떻게 예수님이라는 타인, 타인 이야기에 왜 관심을 둡니까. 있을 수 없지요.

그런데 여기에 보면 기뻐하는데 기뻐할 때 조건이 붙어요. 뭐냐? 영생 주기로 작정한 자. 영생 주기로 작정한 자라는 것은 어떤 인간도 이걸 미리 캐치할 인간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현상적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것을 자기의 자아를 포기하면서까지 이게 덮쳐온 사람에게 그리고 그 덮쳐진 것이 날마다 내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날마다 삭제시키고 제거한다는 것, 내 행동하는 생각하는 모든 것을 무의미로 제거하는 이 자체가 이게 내 현장에서 내 삶을 통해서 현실적으로 일어난다는 이것을 기뻐하는 사람은 이것은 본인이 어떻게 착해서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너는 영생 주기로 이미 하늘에서 작정했어' 라는 그런 통보를 받게 된 겁니다. 구원 받는 본인도 뭔가 유혹거리 있잖아요. 미끼, 뭘 하면 뭘 주시겠습니까 이런 것을 일체 주지도 않고 그냥 예수님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예수님 이야기만 하는데 예수님 앞에서 나 의미 없네 이렇게 자기를 정리하는 사람들. 내가 잘해도 의미 없고 못해도 의미 없고 망해도 의미 없고 성공해도 의미 없다. 그런데 울고불고 할 어떤 가치도 없다. 왜? 세상은 내 세상이 아니고 주님께서 딱 묶어놓은 변하지 않는 세상으로 확정 났기 때문에. 그 원칙만 작용하고 작동하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서 그냥 받아들이면 되네요. 아 쉽네. 편하네. 이 모든 것이 성경에 응하게 함이라. 그렇지 뭐. 성경 우리가 지키나 주님이 홀로 지켰지. 이걸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걸 받아들여보니까 이런 자에게는 보너스 죄 사함이 있고 이런 게 있으니까 이건 그냥 머리 긁적이면서 '되게 미안하네. 뭘 잘했다고 죄 사함까지 받고 왠 은혜인지.‘

그러면서 예수님이 하신 것을 받아들일 때 갑자기 자기 자식 불러놓고 "야 너 오늘 수학 몇점 받았어?" 이게 큰 문제가 아닌 거예요 이게. 오늘 직장 상사한테 혼났다. 사표 내려다가 집어넣었다. 이게 별 문제 아니예요. 사표 쓰나 안 쓰나 이게 무슨 문제예요 이게. 괜히 볼펜만 닳지. 각오 세운다고 뭐 달라질 게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는데. 동생이 빵을 훔치나 내 빵을 먹거나 그게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게. 어차피 '나'라는 것은 매일 제거되어도 그 다음을 또 생기고 또 생기고 매일같이 생기는 것이 나 위주. 그 다음에 은혜를 받으면 또 내 위주로 살았구나 하고 또 허허허 하하하 그렇게 되는 겁니다.

사도행전 1장 25절. 사도 바울은 실성했다 베드로도 실성했다 미쳤다 이게 제 말이 아니고 그 당시 사람들이 이야기했으니까요. 네가 미쳤구나. 1장 25절에 보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그 다음에 뭡니까? "제 곳으로 갔나이다" 야 참 주님께서 분리 하나 끝내줍니다. 유다는 제 곳으로, 가야 될 곳으로. 지옥 갈 사람들은 지옥으로 보내는 것. 그래서 이 시대는 실효적 통치 안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요. 가룟 유다가 제 곳으로 갔대요. 그 대신 맛디아를 뽑은 겁니다. 맛디아를. 자, 사도행전 2장 16절을 보면서 누가복음 24장 49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4장 49절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2장 16절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이게 뭐냐? 약속이죠. 그럼 약속을 누가 손 댑니까? 약속을 누가 친히 활동 실시하시는 거예요? 우리 주님이잖아요. 그럼 그걸 믿으면 되잖아요. 어렵습니까? 내가 열심히 직장에서 일한다고 사는 게 아니거든요. 직장에서 일하고 싶어도 갑상선 암 걸리면 못하잖아요. 모든 것은 뭡니까? 약속이 약속대로 되어질 뿐이고 그 주도권에 끼어들 자리는 없습니다. 직장생활, 농사짓든 촌에 가서 뭘 하든간에 그것조차도 주님의 약속 속에 포함이 되어있는 거예요. 약속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믿지 않고 주님의 약속은 십자가 죄 사함이고 농사 짓는 것은 제가 결정했습니다. 이게 촌에 가서 한번 당해봐야 제거 한번 당해봐야 아 이게 촌에 온것도 내 뜻이 아니구나 한번 알아봐야 아하 다시한번 잃어버렸던 하하하 허허허가 다시 소생시켜주는 겁니다. 내것이 없다는 것은 나에게 윽박지를 공포가 날라가버렸다는 거에요. 공포가 날라갔어요. 공포는 언제오는가? 내것 불러모을 때 내것 내것 내것 불러모을 때 일곱귀신 같이 따라오는 거예요.

사도행전 2장 22절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그 다음에 뭡니까? "표적을". '표적'. 성도의 존재 자체가 표적이다. 성령 받은 성도 자체가 표적이니까 표적이 내 것이라고 하면 안돼요. 표적은 주인이 따로 있어요. 나는 나지 표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에요. 나는 나의 표적이라는 말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 인데 표적이라고 말 할수 있는 분은 나를 나 되게 하신 분만 쓸 수 있는게 표적이에요. 네가 미국 가나 뉴질랜드 어딜 가도 예수 그리스도가 너와 함께 있음을 알려주는 그런 시그널로 사용되는 거예요. 시그널로. 시누이가 못 되게 군다. 시누이가 못 되게 구는 그 가정에 시집 가게 만든 그 것이 뭡니까? 주께서 하신 표적이에요. 시누이가 너무 못되게 구는데 어떻게 합니까? 너도 못되게 하면 되. 너도 못되게 하면 되잖아. 왜 못하는데? 자존심이 상해서. 바로 그거잖아요. 자존심. 나는 내가 안 지키면 누구도 나를 지킬 수 없다는 것. 그게 바로 예수님을 죽인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 십자가 죽음을 경유해서 부활해서 나온 것이 성령이거든요. 성령은 항상 뭡니까? 이 세상 일어난 모든 일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예수님이 죽을 수밖에 없는 사건으로 모든 것이 집중되게 일을 벌리시는 겁니다.

성도와 불신자의 차이점은 성도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십자가에서 다시 한번 다 이루었다는 것이 십자가를 경유하면서 다시 내 쪽으로 확산되는 거예요. 표적이 되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겁니다. 4번째 2장 25절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야 사도 바울이 설교를 하면 무엇을 언급합니까? 다윗을 언급해요. 아까 누가복음 24장 다윗의 쓴 글이 누구한테 된 것이다? 다윗의 쓴 글은 예수님을 겨냥해서 한 거죠. 누가 이야기했어요? 예수님 본인이 이야기했어요. 예수님 본인이 다윗의 모든 글은 나에게 주어졌고 다윗의 글이 완성되기 위해서 너희들에게 미움 받아서 죽어야했고 그리고 부활했어야 했고 성령을 너희에게 주고 이 모든 것이 다윗의 말씀 안에 다 들어있다는 거예요. 다윗의 말씀 안에. 그런데 다윗의 말씀을 네가 구원받기 위해서 네가 손 대? 내가 손 대야지. 내가 손 대는 거예요.

그러면 한번 보잔 말이죠. 25절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것은 뭐냐? 인간이 왜 손 대면 안 되느냐 하면은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 사이에 이야기가 다윗의 이야기예요. 그럼 다윗은 뭐에요? 하나의 시그널이죠. 표적이죠. 물론 그 당시 다윗은 그걸 몰랐습니다. 몰라가지고 왜 자꾸 사울은 나를 미워하느냐 이렇게 하고 있는데 27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라고 다윗이 이야기할 때 세상 사람들은 다윗의 시편을 손 대면 뭐냐 하면은 여기 음부에 버리지 않고 하는 것은 다윗의 이야기다 라고 해석하는 거예요. 왜? 다윗이 말했으니까. 본인이 말했으니까 본인이 나라고 했으니까 라는 것에 대해서 사도행전 2장 29절에서 형제들아 다윗은 죽었다. 아직도 부활되지 않고 아직도 죽어서 우리 가운데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다윗 이야기 아니잖아. 누구 이야기냐? 다윗 안에 예수님이 다윗이라는 껍데기를 통해서 예수님이 그때 당시에 이야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뭐냐? 당신들 껍데기 속에 누가 들어있습니까? 라고 베드로가 설교하고 있는 거예요. 이 말이 논리적으로 틀리고 맞다고 할지라도 자기밖에 생각 안하는 오늘 현대인에게 이런 설교 하는 게 실성한 거예요. 미친 거예요 그거는. 그거 믿으면 돈 나오나? 얼마 주는데? 이렇게 나올 거예요. 그래서 31절에 그래서 주님은 미리 다윗 속에 들어가서 다윗을 사용해서 이용했고 살아나셨다 32절에 우리가 다 이 일에 뭐가 됐다? 증인. 너희들은 종속된 거야 인간아. 나 자체는 없어. 너의 자아는 예수님이 가져가고 너는 예수님의 자아의 증인이다 이 말이죠. 내가 어떻게 됩니까 하지 말고 주님이 내 안에서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 이야기해야 돼요 주님이. 그럼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합니까? 안 믿는 가족들이 성령 받은 가족 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너는 왜 비겁하게 너 할 일을 가지고 자꾸 예수님 핑계 대고 예수님한테 밀어붙이느냐. 너는 너 할 일 해 너 할 일. 이게 자기 할 일 자신 없으니까 예수님 예수님 하니까 우리가 못 알아듣잖아. 좀 알아듣는 이야기해.

거기에 대해서 적당한 성경 말씀은 마태복음 7장에 나옵니다. 개, 돼지한테 복음 전하지 말라. 복음은 개, 돼지한테 전하는 게 아니다. 전도한답시고 함부로 전하는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본인도 우리 성도도 본인도 이게 너무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는데요. 이걸 아주 논리적으로 따져가지고 하면 그 사람이 믿을 것이다. 그런 말도 안되는 기대는 하지 마세요. 그 문제는 주님이 할 문제지 주님이 성령이라는 호스를 강제로 집어넣는 것은 주님 소관이지 우리가 상대방에서 설득력 있게 할 이유도 없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 마세요. 그 다음에 7번째 3장 21절. 여러분 이렇게 보니 어때요?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이 미쳤지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거 같애. 통하는 말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3장 21절 여기 뭐가 나오느냐 하면은 이건 베드로가 설교한 건데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라는 이 대목이 나와요. 예수님의 재림 이야기거든요. 예수님의 재림은 베드로는 어디에 근거해서 이야기하느냐 하면은 그분이 승천했다는 것을 근거로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예수님이 승천이 되어버리면 성도한테는 무엇이 구애받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이 구애받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 다시 말해서 나는 미국이나 북한 어디 있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요 교도소 가도 마찬가지고요. 시간에도 구애받지 않아요.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이거 구애받을 필요 없어요.

인간의 육신에 속한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이미 이건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재판장이죠. 모든 것은 제거되도록 예비되어있다. 예비. 보관되어 있다. 컨테이너에 있는 내 이삿짐. 창고에 있는. 그냥 가만 두어라. 가만 두어라 내가 불태워줄 테니까 가만 둬. 공산주의가 어떻고 사회주의가 어떻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고 하마스가 어떻고 어떤 이야기라도 그냥 아무 문제 아니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기 때문에 그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고민이다 기름값 올라서 어떡해 이런 고민은 할 필요 없어요. 이미 예수님이 승천했다는 것은 성도한테는 승천한 그곳이 성도의 시간이고 공간입니다. 예수님 계신 시간과 공간의 접촉을 받기 때문에 기존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는 접촉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주름살 좀 생겼다고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그거는 폐기되어야 될 피부에요.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사도는 하여튼 내가 어떻게 죽고 사는 문제 생활을 어떻게 하는 문제 이 자체가 없어요. 사도행전 7장 봅시다. 7장에 스데반 집사 나오는데요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잖아요. 돌에 맞아 죽는데 돌에 맞아 죽으면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아 주옵소서" 승천했으니까 받아주는 거예요. 60절에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다시 말해서 '저들이 나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이미 내가 구원 받았음을 확인하게 위해서 주께서 허락하신 조치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그들에게 죄를 묻지 말아주옵소서' 라는 뜻입니다. 이런 대장부가 다 있습니까. 재림했다는 것을 재림이라고 하지 마시고 승천했기 때문에 재림하시거든요. 땅에서 떠낫기 때문에 재림이 성립되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이 승천했다는 말은 우리의 시공간은 어디있다? 예수님의 시공간과 우리가 함께 있기 때문에 이쪽에 있는 것은 허깨비같은 것이다. 자, 그 다음에 3장 18절 봅시다. 다 주님이 이야기한 약속입니다. 약속한 성령이 왔을 때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라고 되어있어요. 이 말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오기 전에 누구한테 왔습니까? 예수님한테 왔지요. 예수님께 왔을 때 주님께 일어난 현상은 주님이 사람들로부터 뭘 받는다? 해악을 당하는 거예요.

그 동일한 약속이 동일한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이 시대에 땅에 사는 우리들이 예수님의 성령의 약속을 받아버리면 우리에게 뭐가 옵니까? 비난과 무시와 실성했다는 소리와 정신병자라는 소리와 온갖 모욕적인 발언을 듣겠지요. 그게 바로 좁은 길. 이번에는 4장 18절 봅시다. 베드로 요한이 전도를 하니까 권력자들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똑같은 현상을 오늘날 성령 받은 성도들이 똑같이 겪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사도들은 어떤 태도를 가진 줄 알아요? "기뻐했다" 했어요. 야 진짜 주님이 함께 계시는 거 맞구나. 주님이 함께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로 삼은 거예요. 이런 비난을 받을 때에.

4장 31절 제가 언급한 이유는 이렇게 방금 18절에서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 했지만 성령이 임하니까 진동이 일어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복음을 전했다는 이야기에요. 그런데서 꿀리거나 양보하거나 좋게 좋게 지낼 필요는 없다 그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사도행전 8정 18-20절 아주 재미난 거 나옵니다. 재미나요. 베드로 요한이 성령받기를 기도하니까 성령이 왔어요. 오니까 거기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사도에게 돈을 주면서 말하기를 성령 받는 그 희한한 현상을 재주를 나한테도 넘겨달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베드로가 하는 말이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라고 되어있어요. 하나님의 선물이죠. 베드로가 이 말 할 때 뭡니까? 내 동생이고 내 부모고 내 자식이라 할지라도 성령 오는 것은 내 소관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거예요. 돈 주고도 못 한다는 말은 이거는 선물이기 때문에 주고 말고를 주님이 결정하지 받을 사람 내가 왜 결정해. 나도 받은 입장인데 내가 받은 거 반반 나눠주는 게 됩니까? 이게 안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 23절에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너는 은과 함께 너는 망한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시몬이 쫄아가지고 '망하지 않도록 대신 기도해주세요' 하는데 기도한다고 될 문제입니까? 기도는 무슨 기도냐 하면은 '나'라는 껍데기를 통해서 지금 살아계신 주님께서 계속해서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자기 백성에게 성령주는 일을 저를 통해 해 달라는 기도지요. 하나님 우리 둘이 아는 사이니까 이 사람은 나하고 친한 친구니까 어떻게 성령 좀 주세요 라는 것을 하는 게 아니예요. 계속 주께서 저를 사용해달라는 거예요. 주의 시그널로. 그런데 그런 기도하는 사람 있겠습니까? 하는데 하하하 허허허 웃는 사람은요 신바람이 났어요. 신바람 나가지고 그걸 아주 즐겁게 해요. 찬송가입니다. 정식 찬송가가 아니고 제목이 찬송가에요. hymn. 사랑에 대한 찬송. 가사를 한번 보세요. 푸른 하늘이 우리를 위해 무너진다면.

지금 방금 우리가 강의 들었잖아요. 우리는 일단 실성한 겁니다. 우리도 혼돈되었어요. 무엇이 혼돈되게 하는가? 사도 바울의 편지에 보면 사랑입니다. 그게 사랑이에요. 사랑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데 어느 정도냐? 푸른 하늘이 우리를 위해 무너진다 해도 모든 대지가 허물어진다 해도 만일 당신이 나를 사랑해준다면 그것으로 아무래도 좋아요. 당신 대신 예수님을 집어넣어 보세요. 아침마다 사랑이 내 마음에 넘치고 당신의 손길로 예수님의 손길로 내 마음이 떨고 세상이 아무래도 좋아요. 아무래도 좋아요. 당신의 사랑이 있는 한. 나는 세상 끝까지 갈 수 있어요. 당신을 위해 금발로 물들이겠어요. 당신이 원하면 머리도 금발로 물들이겠대요. 만약에 당신이 원하신다면 달이라도 따오겠어요. 보물을 훔치겠어요. 만약에 당신이 그렇게 원하신다면. 조국도 버리고 친구도 버리겠어요 만약 당신이 원한다면. 사람들이 아무리 비웃는다 해도 나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어요. 언젠가 인생이 당신을 나에게서 갈라놓는다 해도 당신이 죽어서 먼 곳에 가버린다 해도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겐 상관없어요. 나도 당신과 함께 죽는 것이니까요. 우리의 영원함을 가지는 거예요. 우리는 끝없는 푸른 하늘 속에서 아무 문제도 없는 하늘 속에서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아무 문제 없는 하늘에서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이어줘요 라는 노래 가사 보셨지요. 가사 보면서 노래 한번 들어보세요.

사도 바울의 편지에 사랑,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다. 대구강의에서 했지요. 믿음 소망 사랑의 원천은 나에게서 나오지 않고 따로 계신데 그분의 사랑이 선물로 은사, 선물로 주어지게 되면 그 속에 이런 사랑이 오고 이런 사랑 오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아무 문제가. 그런데 이 이야기 듣고 문 열고 나가잖아요. 그 다음부터 주워 모으는 거예요. 남한테 기 죽지 않기 위해서 나 사는 사람처럼 산다고 남한테 내세울 것을 찾기 위해서 또 내 소유성이 발휘되지요. 그런데 그것조차도 주님 보시기에는 아무 문제없어요. 왜? 주님께서 조질 거니까. 주께서 십자가 또 만나게 해가지고 그걸 경유하면서 그전보다 더 큰 감사와 기쁨을 여러분에게 주실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죄악과 악마성을 경유해야 비로소 주님의 사랑이라는 말씀을 주님 쪽에서 친히 다루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다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이 시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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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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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