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강의20240927a 로마서 8장 30절(정도와 본성의 차이)-이 근호 목사 (그림 추가되었습니다)자유게시판로마서

광주강의20240927a 로마서 8장 30절(정도와 본성의 차이)-이 근호 목사

p.98 [예수님이 죽은 이유]. 죽은 이유에 대해서 p.99 중간에 이렇게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한평생 촌에서 농사나 짓고 살았으면 하등 죽일 이유는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촌에서 농사지었으면, 농사꾼 하나 죽이겠다고 그렇게 온 나라, 온 권력층이 다 동원될 필요 없겠죠.

그래서 예수님이 죽은 이유가… 민중들, 일반 백성들이 선동해서 ‘(예수를) 죽여 주세요.’라고 요청한 게 아니고, 지도층에서 예수님을 죽이도록 모의하고 앞장섰어요. 예수님이 촌에서 농사지었으면 죽일 이유가 없다는 말은, 예수님에게 힘이라는 것, 권력이라는 것이 나왔다는 거예요.

예수님에게서 힘이 나왔단 말이죠. 힘이 나왔고 그 힘이 뭐를 지적했죠. 예수님의 말씀에 힘이 들어있고 그 힘이 지적을 했는데 방향이 있어요. 지적을 하겠다는 방향이 있어요. 인간의 힘입니다. 인간의 힘이 집결된 곳이 그 당시 유대사회의 지도자층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에서 힘이 나왔고 그 힘은 인간의 힘을 지적했다면, 예수님의 힘은 어디서 나왔는가? 요한복음 5장 17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대목이 나와요.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나님 아버지죠. 아버지의 일로 인하여 자신이 일을 하신다.

그러면 예수님의 일은 아버지의 일에 포함되어 있다는 거예요. 예수님의 일은 아버지께 포함이 되어 있는데 포함된 예수님의 일이 인간의 힘이 집결된 곳을 향해 지적했다는 말은, 인간에게 분명히 힘이 있는데 그 힘은 아버지 일에 포함이 안 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아버지와 예수님 사이의 관계에 너희 인간들이 들어가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하시는 거예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속에 너희들은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겁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과의 충돌에 의해서 인간 자체는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 관계에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인간의 힘은 단독적인 힘인가?’, 즉 인간의 힘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이 아버지의 일과 함께 있는 것처럼 ‘인간은 뭔가 보이지 않는 다른 미지의 힘에 묶여 있는가?’라는 점을 생각해봐야 돼요. 다른 힘에 묶여 있는가.

인간들은 ‘내 힘은 내가 노력해서 내가 수집해 끌어 모았고 끌어 모은 것을 저장했고 그걸 펼친다.’ 그렇게 이야기하죠. 방금 이야기한 것을 적어보겠습니다. 인간의 힘은, 끌어 모았다→ 저장했다→ 펼친다. 이 ‘펼친다’가 대외적으로 뭐로 작용해요? 힘으로 작용하는 겁니다. 끌어 모았다 하는 것은 지식이죠. 지식을 끌어 모았고, 저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지식의 잠재된 힘이죠. 잠복된 힘 또는 기억력이에요. 잠복된 힘이 있고 이걸 펼친다. 이게 내 자아에서 이렇게 이루어진다, 그렇게 보는 겁니다.

그러면 인간이 끌어 모을 때 뭐로 끌어 모으는가? 세 가지가 있어요. 상상, 지성, 이성으로 끌어 모아요. 상상은 이미지죠. 그림, 이미지로 상상하고 내게 필요하다는 지성으로 끌어 모았고 이성이라 하는 것은 이걸 차분하게 정리 정돈하는 거예요. 그렇게 끌어 모은 지식을 저장했다가 펼친다고요. 힘으로 발산하는 거예요.

이게 인간들 생각이거든요. 그래서 인간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이걸 먼저 생각합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단독적 의식이에요. 나는 내가 알아서 내가 인생 산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걸 풀이하면, “사는 대로 그냥 살면 안돼요?” 이 질문이에요. 대인관계에 있어서 이 본마음이 항상 잠재되어 있어요. “교회 갑시다.” 하면 “그냥 내버려 둬. 내가 사는 대로 그냥 살래. 왜 내가 그냥 살면 안 되는데? 왜 지적질인데? 왜? 왜 내 삶을 까는데? 그냥 사는 대로 살면 안 되냐?”

이걸 주님께서 어떻게 지적하느냐 하면 이렇게 해요. “너는 무엇을 따르느냐?” 여기에 인간이 기절하는 거죠. “뭘 따라? 난 내 인생, 내가 상상하고 내가 지식으로 갖추고 그다음에 내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나는 꾸준히 지금껏 내 인생을 내가 일구어 왔고 난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지, 뭘 누굴 따라? 내가 뭐 어디 김정은을 따르고 누굴 따라? 아무도 안 따라요.” 이렇게 되거든요.

주님께서 “너는 무엇을 따르느냐?” “나는 단독자라. 단독자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처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내 인생 내가 알아서 마무리도 내가 하고 시작도 내가 하고 다 내가 살아왔다.”라고 하는 데 있어서 주님께서는 “너는 지금 누구를 따르고 있다.”는 거예요. 주님께서는 지적을 이렇게 해요. 제대로 살아야지, 이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네가 지금 이런 식으로 ‘사는 대로 살면 안돼요? 단독적으로 나 살고 싶어요.’ 하는 것이 배후에 조종하는 존재가 있어서라는 거예요.

너는 누구를 따르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네가 지금 힘이 있다는 겁니다. 힘이 있다. 네가 힘이 있는 것은, 네가 뭔가를 챙겨서 네가 그걸 저장하고 네가 그걸 소비, 발산해서 그렇게 힘이 있는 게 아니고 누가 너에게 힘을 주고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을 보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이유가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서 나오는 모든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예수님은 성령에 의해서 움직이거든요. 성령은 누구의 영이냐 하면 아버지의 영이에요. 십자가 지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힘으로 살아요. 그런데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예수님,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표준이 되어버리면, 저쪽에 예수님께 지적받는 인간들이, 그깟 인간을 지적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 자신이 아버지에게 힘을 받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아버지와 상관없는 다른 쪽으로부터 힘을 부여받으면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모습으로.

그걸 어떻게 파악하느냐? 이렇게 파악하죠. ‘경험’.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경험에 입각해서이다. 나는 지금까지 경험에 입각해서 살았어요. 경험. 저건 나한테 유리할까, 불리할까. 또는 대구강의에서 한 것처럼 저게 나한테 유쾌한 일이냐, 반대로 불쾌한 일이냐. 이게 기본이 되어서 유쾌한 경험은 받아들이고 불쾌한 경험은 차버리고. 그래서 인간은 그렇게 살아온 거예요. 경험에 입각해서.

그런데 경험에 입각해서 살아온 이 경험이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느냐 하면, ‘입법기능’을 나타냅니다. 입법기능이 뭐죠? 법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거예요. 우리나라 법은 국회에서 만들어내요. 법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인간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입법기능을 하는 겁니다.

그럼 이 입법기능을 통해서 ‘나의 경험을 절대화’시키는 거예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이게 아니고, 인간이 살아온 만큼 자기가 자기를 지키는 법칙을 본인이 제정하는 거예요. 입법기능이니까 법을 제정하는 겁니다. 입법. 법 제정. 개념이 어렵게 되어 있지만 쉽게 말해서 이런 거예요. ‘고집 있다.’ 산(살아온) 만큼 고집 있네.

야, 할아버지 고집 세네요. 이걸 어렵게 말해서 ‘입법기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할아버지, 왜 그렇게 고집이 세요?” “내가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하죠. 이게 경험에 입각하여 자체적으로 법을 세우는 입법기능을 발휘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절대화돼요. 자기 자신이 더욱 더 단단해져요. 동맥경화증처럼 정신경화증이에요. 딱딱해지고 절대화에서 더 나아가버리면 초월적인 존재가 돼요. 이게 뭐냐? 신이 되는 겁니다. 신(神). 절대화되는데 이걸 ‘주체의 초월성’이라 해요. 주체의 초월성. 이걸 아주 어렵게 말했지만 쉽게 말해서 ‘아이고, 강단 있네.’ 이거에요. 고집 있네 또는 강단 있네.

언제까지 강단 있게요? 언제까지 고집이 셀까요? 치매 이전까지. 치매는 자기 입법기능도 자기가 기억을 못해. 저장기관이 고장 났기 때문에. 그동안 자기에게 유쾌한 것, 내가 잘난척하는 것만 다 끌어 모아서 저장을 했는데 이 저장기능, 해마기능, 선조체기능이 망가져버렸어요. 두뇌 전체가 기억과 관련되어 있는데 기계가 오래돼서 고장이 나버리니까 자기는 분명히 옛날 버릇으로 고집을 내세워도 이게 앞뒤가 안 맞아요. 논리의 앞뒤가 안 맞아요.

이번 주 ‘인간극장’에 치매 걸린 노인네, 나이가 팔십 먹은 할머니가 나왔는데 그 할머니를 딸이 극진히 모셔요. 할머니가 치매 걸렸는데 정신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초기 치매 현상을 보여서 대충 아는데 앞뒤 논리가 안 맞는 거예요. ‘솔로’라는 프로그램 알죠? 국민 정신병자들 다 나오는 프로. 남녀 여섯 명씩 또는 다섯 명씩 해서 국민 대표 정신병자들 나와가지고 지 잘났다 하는 프로 있어요. 솔로 프로를 보게 되면 인간은 왜 절대로 남과 못 사귀는지 그 이유가 나와요. 모든 말을 본인이 뱉어놓고 본인 걸로 상대를 끌어당기는데 서로가 그렇기 때문이에요. 할머니가 그 프로그램을 재밌게 본 모양이죠. 자기 딸보고 하는 말이 “너도 한번 나가라.”그러는 거예요. 지금 남편 옆에 있는데. 남편이 하도 같잖아서, “이번 프로는 돌싱 특집인가? 이혼해줘? 이혼하고 돈 좀 줄 테니까 나갈래?”

여자 나이가 얼마냐? 52세에요. 52살인데 솔로 나간다는 게… 이런 프로그램도 있어요. 충청북도 지방 방송에서 하는 거 있어요. 나이 60 넘어서 모여가지고 비슷하게 하는 게 있어요. 추해서 못 봐. 그 프로에 나와서 남녀 이야기하는 거 보면 전부다 고집들이 있어가지고 처음 만난 여자보고 하는 말이 ‘남자가 두 번 사면 여자도 한 번 사야지.’ 이거해가지고 여자한테 까이고 그래요. 나이가 벌써 60되니까. 70 넘은 할아버지도 재혼하겠다고 나온 프로에요, 그게. 50대 나오는 것은 JTBC에서 하는 ‘끝사랑’이라고 또 있어요.

그러니까 인간은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대해서 인간 자기를 공격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주님의 말씀은 인간을 공격하는 게 아니에요. 인간은 공격대상 자체가 아니에요. 너 뒤에 영적존재가 있다는 겁니다. 너 뒤에 영적존재. 구약에서부터 그래요. 구약의 모든 이스라엘 역사에 나오는 모든 언약이나 말씀이 그 이스라엘 백성들 보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 속에 잠복되어 있는 힘 있잖아요, 힘. 인간의 힘이라는 게 인간이 얻은 힘이 아니고 악마로부터 조종 받는 힘, 하나님 쪽에서 그걸 겨냥하면서 율법을 준 거예요.

인간 쪽에서는 주체의 절대화죠. 주체의 절대화는 자체적으로 입법기능이 있는데 이건 다른 사람과 의논하는 게 아니에요. 다른 사람의 경험과 내 경험, 느꼈던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 나름대로의 자기가 자기 법을 세워요. 법을 제정한다고요. 나는 인생 이렇게 살고 싶어. 왜? 그게 유쾌하니까. 그게 육신이 원하는 거니까.

입법기능인데 자기한테 절대적이죠. 이걸 공박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은 뭐냐 하면 ‘계약’입니다. 계약. 이 계약에 의하면 인간의 사적인 입법기능은 주님의 계약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구약 때부터 이스라엘에게 지적한 거예요. 언약을 지켜라. 다른 신, 바알 신에는 이런 계약이 없고 하나님만 언약 또는 계약을 주셨다.

그럼 언약의 특징은 뭐냐? 언약의 특징은 인간이 손댈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언약은 하나님과 하나님 이름 사이의 계약이기 때문에 주님과 주님 사이의 계약이기 때문에 인간은 손댈 필요가 없다고요. 손댈 필요 없이 이미 확정된 거예요. 확정된 것. 이 사실을 믿으면 너희한테 계약의 힘이 나오죠. 계약의 힘을 복이라 하고 신약에 오면 이게 바로 천국이에요. 천국.

그러면 인간이 천국을 막습니까, 악마가 천국을 막아요? 악마가 인간 편에 서서 온갖 힘을 다 주면서 ‘너는 너 스스로 네 법칙을 만들어서 네가 최고의 존재로 살아야 돼.’ 하는 그 모든 악마의 의도가 어디 있습니까? 이 계약 때문에 그래요. 언약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확정된 계약을, 악마는 인간을 앞장세워서 훼방 놓고 방해 놓는 거예요.

그 예를 한번 들어봅시다. 사도행전 5장. 사도행전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서로 싸우지도 않고 세상에 이렇게 마음이 잘 맞는 부부가 또 있나 싶을 정도로 아주 마음이 맞는 그런 부부가 나와요. 얼마나 다정한지 한 날에 둘다 다 죽었어요. 아나니아와 아내 삽비라가 소유를 판 값에서 얼마를 감추고 사도 앞에 내놨어요.

그러니까 ‘아이고, 이렇게 귀한 재산을 바쳤습니까? 고맙습니다.’ 이렇게 한 것이 아니고, 8절에 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 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3절에 나오는 단어를 한번 보세요.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그다음 나온 단어가 뭐죠? “사단이”

사탄은 지금 확정된 계약을 어떻게 하든지 간에 이걸 훼손할 의도를 가지고 인간의 마음속에 작용해요. 그래서 5장 3절에 대립되는 두 개의 단어가 나옵니다.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누구를 속였다고 되어 있어요?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이렇게 되죠.

그러니까 성령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인간이 손댈 필요 없이 이미 확정된 건데, 확정된 것에 대해서 계약 확정된 것을 그냥 받아들이면 될 텐데 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못 받아들입니까? 그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결혼해 살아오면서 자체적으로 한 가정으로서 자체 내에 입법기능이 작용하기 때문에 그래요. 어떻게 사는 것이 우리 생존에 유리하냐, 이미 확정된 법 같은 것이 그들 내부에 공감되고 공유되고 있었던 겁니다.

쉽게 말해서, 왜 헌금을 다 하지 않고 얼마를 숨겼습니까? 간단하죠. 더 살고 싶어서. 이왕 사는 거 더 풍족하게 살고 싶어서. 그럼 이건 뭔 뜻입니까? ‘확정된 계약 따위 나는 모르겠고, 그냥 내 식대로 살도록 좀 놔둬요.’ 이런 거예요. 내 식대로 내 방식대로 my way 내 방식대로 인생 살도록 좀 놔두라는 거예요.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거기에 대해서 말씀은 ‘네가 무엇을 할까’를 생각하지 말고 ‘누가 너에게 그걸 시키더냐’고 네 배후의 조종자를 네가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게 성령의 모든 말씀이고 예수님의 말씀이에요. 네 배후에 누가 그렇게 시키던가? 누가? 모르죠. 인간은 몰라요. 자기 스스로 자기 사는 데 정신 팔려가지고 온 경험치는 다 끌어 모았는데 배후에 악마 있고 그런 건 모르죠.

그래서 아나니아, 삽비라 입장이 되어 보세요. 우리가 이 본문을 볼 때. 아나니아, 삽비라 입장이 되어 봅시다. 베드로가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중에서 그 두 단어 빼내면 납득이 돼요. 뭐냐 하면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네가 어떻게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이러면 이제 인간 대 인간으로 말이 되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성의는 표해야 되겠고 마침 땅 팔려고 어제 마음을 먹었는데 오늘 아침에 꼭 쓸 일이 생겨서 다음에 또 하지 했습니다.” 뭐 주절주절 변명들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베드로가 거기다 그렇게 이야기한 게 아니고, 거기에 단어 두 개를 집어넣었잖아요.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고’ 그다음에 뭘 속이고? ‘성령을 속이고’ 단어 두 개만 딱 집어넣으니까 아나니아, 삽비라 입장에서는 뭐래, 이게? 도대체 의사소통이 안 되는 거예요. 평소에 ‘좀 놔둬요. 나 사는 식으로 살게.’ 여기에 필요한 단어들 있잖아요. 그 쓰는 단어들과 전혀 다르게 성령이 어떠니 사탄이 어떠니 하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5절에,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무슨 말인지 모르고 죽었어요. 그러면 우리가 늙어죽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는 죽는 이유를 살아 생전에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가 죽는 이유를. 사도행전 5장의 뜻은 이거에요. 인간은 하나님 일의 방해자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일의 방해자에요. 그 증거가 뭐냐? 죽음이죠. 그 증거로 죽습니다.

그 증거의 절정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고요. p.99 중간에 [예수님이 한평생 촌에서 농사나 짓고 살았으면 하등 죽일 이유가 없다.] 하등 죽일 이유가 없어요. 주님이 그냥 농사짓지 않고 그 권력층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까지 와서 사람들을 지적질하니까 일반 대중들은 좋아하는데 누가 싫어하는 거예요? 인간과 인간들끼리 소통되고 납득되는 힘들이 결집된 그 최고기관, 그 지도층에서 예수님을 죽이기로 한 거예요.

이 뜻은, 인간들은 ‘정도의 차이’와 ‘본성의 차이’를 구분 못한다는 거예요. 정도의 차이라 하는 것은요. 살고 싶을 때는 힘+힘+힘+힘+… 힘 더하기에요. 수학에서 더하기(+) 있죠. 이게 존재+존재+존재+존재+… 존재 더하기에요. 있는 것+있는 것+있는 것+있는 것+… 있는 것 더하기에요. 그럼 이건(-) 뭡니까? 있는 것을 빼는 것, 있는 것이 없어지는 것, 이게 마이너스에요.

이게 서수(序數, ordinal number, 순서 수)가 아니고 기수(基數, cardinal number, 세는 수)라 했죠. 수련회 참석하셨으니까. 제가 분명히 이야기했어요. 이 세상에는 순서밖에 없는데, 순서밖에 없는 걸 가지고 자기가 여기 1이 있으니까 자기와 닮은 다른 토끼보고 1이라 하는 거예요. 토끼 한 마리 있네? 어? 계란 하나 있네.

계란 하나 있다 할 때 이 하나는 어디서 나왔어요? 카운트하는 내가 늘 하나(1)이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모든 인간의 진리와 지식은 ‘내가 여기 하나로 있다’가 시작이 되는 겁니다. 내가 여기 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죽는 것은 진리냐, 진리 아니냐? 그건 진리에 포함 안돼요. 내가 죽고 난 뒤에는 진리도 필요 없다는 거예요. 진리라 하는 것은 내가 여기 하나 있을 때나 필요한 게 진리고 지식이에요.

그러니까 뭐가 궁극적인 진리입니까? 나 여기 있음. 그게 진리에요. 내가 진리니까 ‘내가 뭘 하든 좀 잔소리하지 말고 내버려 둬. 그냥 나 살던 대로 살게.’ 이게 진리에요, 이게. 그 진리가 입만 벌리면 나와요. 계속해서 나온다고요. 뭐 다른 사람이 하면 밉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런 이야기(지적)하니까 지도층에서 예수님을 죽여 버렸잖아요.

내가 진리니까 사람들은 이거에요. 인간들의 마음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Please, 제발 날 건드리지 마요! 제발.’ 이건 자식이 됐든 부모가 됐든 형제 간이 됐든 부부 간이 됐든 타인에게 비는 거예요. 참, 손바닥 비는 건 존재를 없앤다 했죠. 간절히 원하는 것은 딱 하나에요. 제발 날 건드리지 마라. 안 건드리면 내가 당신에게 내 성의껏 성의를 표할게. 단, 조건이 있어요. 날 건드리지 않는 단 한 가지 조건 하에.

무엇을 모른다 했어요? 무엇을 모른다 했습니까? 정도의 차이와 본성의 차이. 정도와 본성의 그 차이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강의하는 것은 우선 정도의 차이부터 시작하겠어요. 정도의 차이부터 시작하고 그다음에 본성의 차이까지 설명하고 강의 끝납니다.

첫 번째, 정도의 차이. 2차원 평면구조에서 어떤 점이 하나 있을 때 이 점이 어디 있는가를 표시하기 위해서 평면에 있는 선을 하나 상상하는 겁니다. 수평에 x축, 수직적으로는 y축. 좌표평면상의 한 점을 P라 하고 x축과 y축의 교점을 원점(O)으로 생각해서 원점에서 P점까지 얼마나 떨어졌는가를 생각하는 겁니다. 이 거리(R)는 어떻게 되는가? 피타고라스 정리에요. x²+y²=R² 이 공식으로 R을 구할 수 있어요.

자, 한번 보세요. 이게 수학입니다. 수학은 인간 모든 지성의 극치에요. 수학을 이야기하게 되면 인간의 모든 지성은 거기서 다 나와요. 여기서 한번 보세요. 이 원점이 뭐죠? 왜 원점이 있어요? 제가 거리를 잴 때 ‘원점으로부터 수평적으로 x, 수직적으로 y를 잡아서 제곱해 더하면 빗변에 해당하는 거리 나옵니다. 밑변a, 높이b, 빗변c라면 a²+b²=c², 피타고라스 정리에 의해 이렇게 나옵니다.’ 여기에 대해서 지식으로 이걸 ‘아니요’라고 할 사람 있습니까? 없죠. 맞는 이야기에요. 맞으니까 진리가 되죠.

그런데 여러분, 이게 진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이 이걸 몰랐어요? 알았어요. 피타고라스가 그 전에 사람이니까 다 알고 있었어요. 다 알고 있었는데 예수님을 왜 죽이죠? 예수님이 촌에서 농사지었으면 안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이런 걸 지적하느냔 말이에요. 뭘 지적하는 거예요, 주님께서?

(좌표에) 원점 있잖아요. 원점. 이 원점 누가 정했어요? 인간이 정했죠. 이 원점이 뭐냐 하면 ‘관찰자’에요. 관찰자 중심의식인 거예요. 관찰자 중심의식. 관찰자가 있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까? 관찰자가 있다는 말이에요, 인간들은. 있다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죽여 버렸는데요, 이 관찰자를? 이 관찰자를 죽여버리면 이 a,b,c 이 피타고라스 정리가 무슨 의미가 있어요?

이 원점 지점을 주님께서 구멍내버린 거예요, 구멍을. 인간들은, 피타고라스 정리에 의해서 거리 R 나왔다. 점의 거리가 나왔다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계약입니까? 확정된 거예요? 이게 생명입니까? 아니죠.

생명도 아닌데 이 수학을 왜 연구하는 거예요? 아까 이야기했죠. 수학을 왜 연구하는 겁니까? 뭐를 모으기 위해서? 힘. 무슨 힘? 생존의 힘. 생존의 힘 끌어 모아서 뭐가 되는데? 이게 자아. 자아가 되면 뭐할 건데? ‘제발 나 건드리지 마. 나 이 정도 힘이 비축되어 있어. 건드리지 마. 나 피타고라스 정리 알아. 건드리지 마.’ 이거잖아요. 이게 지성 아닙니까.

좀 더 해봅시다. 수학이 어떤 세계인지. 이게 지금 2차원 평면이에요. 2차원 평면인데 이걸 3차원으로 바꾸되 무슨 3차원이냐 하면 시간을 포함한 3차원(4차원)으로 한번 바꿔봅시다. 그러면 x축 해놓고 한 점을 Q라 해봅시다. 원점으로부터의 이 Q지점의 거리를 S로 해봅시다. 그리고 수직축 y를 시간으로 바꾸는 거예요. y를 시간으로 바꿔보면 이건 공간차원이 아니고 앞에 시간이 붙어서 시간이 포함된 시공간차원이 돼요. 시공간 차원이 되는 거예요. 이걸 로렌츠 변환(Lorentz transformation, 특수상대성이론의 기초가 되는 좌표 변환식)이라 하는 겁니다. 물리학에서.

시공간차원으로 바꿀 때에 수직축을 시간으로 바꾼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이해를 돕기 위해 옛날식 저울(양팔 저울)을 그려보겠습니다.

y축은 아까 2차원 평면에서는 길이였어요. 4차원에서는 시간이죠. 시간은 t입니다. 단위가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단위가 맞아요, 안 맞아요? 저울 한쪽 접시에 62kg, 다른 쪽 접시에 키 180cm. 이게 맞아요, 안 맞아요?

단위가 안 맞다는 말은 이런 거예요. 어떤 길이 있는데 화살표가 오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가고 있는데 만약에 교차되어 위에서 아래 쪽 방향으로 길이 온다면 이거 충돌해요, 안 해요? 충돌하겠죠. 2차원 동물들끼리는 충돌할 거예요. “오? 막혔는데. 못 가는데.” 이렇게 되겠죠. 그런데 고가도로 만드는 사람한테는 이게 쉽죠. 고가도로는 2차원이 아니고 3차원이기 때문에 쓱 지나가도 이건 충돌이 안 되고 차원이 하나 더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빌립 집사가 성령에 의해서 오잖아요. 차원이 지금 이쪽 차원이 아니고 하나 더 높은 차원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거예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게 중첩 차원이죠. 중첩 차원이기 때문에, 하나가 더 있기 때문에 하등 이상할 게 없어요.

너희는 땅에 속하고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다는 말을 전혀 이해 못 하는 거예요. 이해 못하는데 차원이 낮은, 차원이 빠져있는 그 사람을 향해 예수님이 말씀해버리니까 인간들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거예요. 차원이 다르니까.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차원이 다르니까 알아먹을 수 없는 거예요. 전혀.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차원을 맞추기 위해 다른 걸 제시한 게 아니고, 자신의 죽음을 인간들 손에 맡겼던 거예요. 인간들 손에. 그러면 예수님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인간의 죽음인 동시에 영생의 시작이 되는 거죠. 왜? 두 개의 차원이 십자가에서 만나니까.

전립선암 3기다. 그거 걸리면 어떻게 돼요? ‘집사님, 나 살고 싶어요!’ 이렇게 나오겠죠. 집사님, 나 살고 싶어요. 암 말기인데 살고 싶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다른 차원으로 갈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살아온 차원으로 도로 거기에 벌벌 떨며 매달려 있는 거예요. 꼭 쥐 같아. 다른 차원을 모르는 쥐 같아요.

그럼 자기가 있는 세계에 속했다는 말은 아까 얘기에 의하면 어디에 속했다는 말입니까? 아까 강의 쭉 들어보면. 경험. 경험 위주의 세계에 속한 게 되죠. 경험 위주. 경험에서 뭘 얻는다? 힘을 얻는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온다? 정보죠. 지식을 얻는 거예요. 지식을 얻으면 힘이 된다는 겁니다. 지식을 얻으면.

그런데 그 힘에 대해서 우리 주님께서 뭐를 지적했습니까? “너, 그 힘이 어디서 왔지?”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인간이 알 수 없는 다른 추가된 차원, 중첩된 차원을 포함해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며 지적하는 거예요. “너 누구를 따르지?” 인간들은 뭐라고 합니까? “따르기는 뭘 누구를 따라? 지금껏 나는 누구를 따른 적도 없고 나는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이때껏 살아왔다. 따르기는 누굴 따라!” “아니야, 너는 누구한테 부름을 받았어.”

예수님이 끄집어내는 게 이거에요. “너는 부름을 받았다.” 로마서 8장 30절 읽어봅시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여기 부르시는 게 있죠. 불러주는 거. 부름을 받은 사람은 단독자입니까, 아니면 부르는 자에게 종속됩니까? 종속되죠. 로마서 8장 30절에서 하는 게 그 말이에요. 인간은 단독자가 아니라 이 말이죠.

아까 이야기했죠. 인간이 경험을 쌓게 되면 거기서 무슨 기능이 나옵니까? 뭘 제정한다고 했습니까? 입법기능. 인간은 아는 만큼 자체를 지키기 위한 법을 만들어요. 법을 만들 때 자기가 자기 지키는 법을 만들죠. 법 제정이에요. 입법기능이죠. 그럼 그것은 하나님의 계약을 방해한다 했죠.

하나님의 계약, 입법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결정됐고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부르심을 입어서 사명을 받아 입법을 했는데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확정된 계약, 언약을 누가 방해합니까? 마귀가 방해하기 위해서 따로이 인간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인생의 자기 방식과 원칙을 본인의 지식과 힘으로 제정하길 원하는 거예요. 촉구하는 거예요.

누가? 마귀가. 너 사는 법칙 네가 알아서 네가 만들면 되지, 왜 누구한테 물어? 네 인생 네가 알아서 법을 만들어. 그게 네 인생이고 그렇게 되면 너는 절대적 초월자가 되는 거야. 제가 아까 강의한 게 그거잖아요. 그게 주체의 초월성이라 했잖아요.

그런데 로마서 8장 30절에 보면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불러주심이 없으면 어떻게 돼요? 불러주심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 안에 자기를 위한 입법내용, 자기만 잘 사는 법이 계속 그대로 살아있는 거예요. 그거 살아있는 한 뭐가 안 들어와요? 주님의 확정된 계약이 들어올 수 없죠. 내 인생 내가 사는 법칙이 따로 정해져 있는데.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그다음에? “영화롭게 하셨”다.

제가 지금 수학을 말한 것은 그 입법기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야기하는 겁니다. 저울. 62kg에 180cm가 들어가면 안되죠. 단위를 맞춰줘야 돼요. 여기 길이에 해당되는 것을 시간으로 바꾸는 게 로렌츠 변환이라 했죠. 시간으로 바꿀 때 여기에 뭐를 넣어주면 길이가 시간이 되겠습니까? 이걸 그동안 인간의 머리로서는 뚫어낼 수 없었는데 그전의 수학자들도 했지만 아인슈타인이 이것을 해냈어요. 길이와 시간을 서로 같은 단위로 맞췄습니다. 두 가지를 집어넣어요. 하나는 𝑖(허수), 또 하나는 c(광속).

자, 이것이 인간의 이성과 지성 속에서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가 나오는지를 이제부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인간은 서수가 아닙니다. 기수는 인간에게 반칙이에요. 서수는 반칙이 아닌데, 서수는 순서대로 가는 거예요. 옛날에 돌멩이, 돌멩이를 나선형으로 쭉 순서 지어서 늘어놓고 제사를 지내는, 옛날에 알타미라 동굴 같은 데 벽화 나온 거 있죠. 순서를 정했다. 이거하고 나면 이거하고, 순서를 정한 거예요. 그러나 기수라 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 발달해서 나온 게 기수이기 때문에 기수는 현실 속에 없어요.

모든 게 서수인데 기수가 나왔다 이 말이죠. 기수가 왜 나왔나? 인간은 ‘있음’부터 출발한다 했죠. 있음에 있음을 더한 걸 뭐라 했습니까? 이걸 더하기(+)라 했어요. 더하기. 직선에서 가운데를 0이라 하면 우측으로 1,2,3,4,5,… 이렇게 되는 거예요. 2는 1+1이고, 3은 1+1+1, 4는 1+1+1+1이 되죠. 방향이 뭡니까? 있음에 있음을 추가하는 식이죠. 빼기는 0에서 -1,-2,-3,… 좌측으로 빠지고, 빠지고, 빠지고, 이렇게 되죠.

imaginary number, 이게 허수(虛數)인데 첫 글자를 따서 𝑖로 표기해요. 𝑖는 수직선상에 수가 없어요. 제곱해서 -1이 되는 수는 없어요. 직선상 말고 나머지 주변에 있는 수를 하나 생각하는 겁니다. (아래 그림에서 검은 색 실수축 측면에 노랑색으로 표시된 부분) 수직선이 있음의 차원이잖아요. 있음의 차원에 없음의 차원을 하나 더 보태는 거예요, 인간이. 더 보태는 겁니다. 그래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길이와 시간의 단위를 맞추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25cm하고 하루, 이틀하고 이게 안 맞잖아요. 안 맞을 때는 여기에 없는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 시간은 보이지 않으니까 보이지 않는 세계의 숫자를 여기다 도입하는 거예요. 단순히 𝑖를 도입한다고 이게 되는 게 아니에요. 도입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뭔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길이를 상정해서 집어넣는 거예요.

길이, 시간 이 두 요소를 다 포함하는 게 뭐냐? 어떤 시간에도 변하지 않는 길이, 그게 바로 c(빠름을 의미하는 라틴어 ‘celeritas’의 앞 글자를 따서 c로 표기), 광속(光速, 빛이 진공상태에서 이동하는 속력)입니다.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 원리에서 이걸 밝혀낸 거예요. 10분 쉽시다.

**강의에서 언급된 그림은 첨부파일에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6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8,297 자유게시판 37강-히브리서 7장 20-22절(맹세와 율법)241013 - 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24-10-13
8,296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예수님의 부활 / 241013 - 최고관리자 24-10-13
8,295 자유게시판 10월 부산 성경공부 안내 시편 최고관리자 24-10-13
8,294 자유게시판 19강-말라기 4장 2-3절(주의 날개) 241009 - 이 근호 목사 말라기 최고관리자 24-10-10
8,293 자유게시판 483강-YouTube강의(기초 예레미야애가 3:26)20241008-이 근호 목사 예레미야애가 최고관리자 24-10-09
8,292 자유게시판 482강-YouTube강의(오류 발생 요나 3:8)20241008-이 근호 목사 요나 최고관리자 24-10-09
8,291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24장 49절 (소유성과 성령) 240924b-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4-10-07
8,290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24장 49절 (소유성과 성령) 240924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4-10-07
8,289 자유게시판 123강-예레미야 29장 1~4절(새로 생긴 열매)241006-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4-10-06
8,288 자유게시판 36강-히브리서 7장 16-19절(빈형식에 담긴 영생)241006 - 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24-10-06
8,287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선 넘은 영생 / 241006 - 최고관리자 24-10-06
8,286 자유게시판 거짓 - 최고관리자 24-10-06
8,285 자유게시판 20241004b 울산강의-역대기하(7강) 8장 12절 : 번제로 통치 역대하 최고관리자 24-10-06
8,284 자유게시판 20241004a 울산강의-역대기하(7강) 8장 12절 : 번제로 통치 역대하 최고관리자 24-10-06
8,283 자유게시판 18강-말라기 4장 1절(심판과 피) 241002 - 이 근호 목사 말라기 최고관리자 24-10-04
8,282 자유게시판 대전-십자가를 아십니까(31강) 로마서7:9(십자가 반복) 20240930b(강의: 이근호 목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24-10-01
8,281 자유게시판 122강-예레미야 28장 1~4절(선지자의 맞은 편)240929-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4-09-29
8,280 자유게시판 35강-히브리서 7장 11-15절(존재와 기능)240929 - 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24-09-29
8,279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주님과 함께 / 240929 - 최고관리자 24-09-29
8,278 자유게시판 광주강의20240927b 로마서 8장 30절(정도와 본성의 차이)-이 근호 목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24-09-29
열람 ➜ 자유게시판 광주강의20240927a 로마서 8장 30절(정도와 본성의 차이)-이 근호 목사 (그림 추가되었습니다) 로마서 최고관리자 24-09-29
8,276 자유게시판 481강-YouTube강의(싫음과 좋음 사무엘상 22:17)20240924-이 근호 목사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24-09-25
8,275 자유게시판 480강-YouTube강의(죽음 그 이후 민수기 16:46)20240924-이 근호 목사 민수기 최고관리자 24-09-25
8,274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24장 37절 (인간 끝) 240903b-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4-09-23
8,273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24장 37절 (인간 끝) 240903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4-09-23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