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누가복음 24장 37절 (인간 끝) 240903b-이근호 목사
강남-누가복음 24장 37절 (인간 끝) 240903b-이근호 목사
두번째 시간 합시다. 구원이라는 것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에요. 소유할려면 소유자가 발생되야 되는데 이미 자아는 죽은 자에요. 죽은 자가 어! 저기 괜찮은거 있네 가져야지! 이거는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여놓고 주신다는 말은 받아 놓고 우리 쪽에서 내 자아가 마중 나와가지고 죽었지만 이 생명을 내가 잘 관리 보존 관리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어요. 이게 자아가 두 종류가 돼야 돼요. 하나의 자아는 새롭게 주어진, 누가 찾아오심, 나는 죽고 내 안에 누가 산다? 그리스도가 산다. 예수님의 자아가 우리 자아를 대신하는 겁니다. 그게 아까 양이 죽었다가 양이 살아나는 거예요. 주일날 설교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인간은 못 들어갑니다. 양을 대신해서 집어넣아야 돼요. 그럼 양이 가는 코스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 코스가 내가 왜 하나님 앞에서 죽어 마땅한가를 보여주는 코스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성경은 이래요. 인간은 죄인이다. 이미 성경에서 규정, 확정되어있지요. 그러면 성경대로 산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 다음부터는 내가 '나'라는 육신에서 펄펄 어떤 경우라도 어떤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죄만 나온다는 것을 우리가 확인하면 되는 겁니다. 이게 성도의 삶이에요. 죄가 나오는 것을 확인하면 돼요. 이게 만약에 죄가 나온게 아니고 어떤 내 의미 가치가 나온다면 우리는 그 다음부터 또 다시 나를 그 가치있는 나를 안 놓치고 살려내려고 또 시도하게 될 겁니다.
저번까지는 내가 뭣도 모르고 주님도 모르고 죄 지었지만 이제는 새 사람 되었으니까 새 사람 답게 주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사도 바울이 편지를 그러므로 딱 넣어가지고 앞에는 교리고 뒤에는 실천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아내 사랑하기를 교회가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것처럼 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 말만 하지 말고 아내 위해서 목숨 바친 적이 있나? 만약에 아내 위해서 목숨 바치면 그 아내는 얼마 안 가서 과부됩니다. 남편이 장렬히 전사했거든요. 아내를 위해서. 당신을 위해서 죽었기 때문에 살다가 살다가 하다하다 너무 사랑해서 내 목숨 바쳐서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그래서 진짜 목숨 바쳐가지고 죽으면 아내는 좋겠다 심심해서. 연금이나 타고 있을까? 당신 죽으면 안돼 나 외로워서 못 살아. 그럼 남편 하는 이야기가 에베소서 5장을 못 이루는데요. 예수님은 교회를 위해서 죽었잖아요. 그 다음 차례는 남편 차례 아닙니까? 그러면 에베소서 5장 못 이뤘으니까 분명히 의가 되지 못하고 다른 것은 다 지켰는데 단 한가지가 모자라네. 아내를 위해서 죽지를 못했어. 땡! 탈락. 저주나 받아라. 이럴 것 같으면 결혼하지 말지. 결혼이 자기 맘대로 됩니까? 안하고 싶다고 안하고 하고 싶다고 하는게 결혼이 아니에요. 인간은 짐승이기 때문에 땡기면하지. 뭐 앞뒤가 어디있어 신앙을 본다? 돈을 본다? 그냥 반해서 결혼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인간을 죄인으로 규정했잖아요. 그런데 인간의 자아가 죄짓는 재미로 살아가요? 잘난 재미로 살아갑니까? 의로운 재미로 살아가잖아요. 이 격차, 이 격차가 있어줘야 네가 나 죽인 거 맞잖아 가 분명해지잖아요. 복음이 들어온 사람은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 온 사람은 자기의 죄가 어디까지 그 죄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체험하는 식으로 평생을 살아갑니다. 죄를 더 많이 아는게 감사가 되는데 만약에 20살 때 성령받아서 죄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22살에 군에 갔는데 수류탄 터져가지고 죽었다. 그러면 아 아깝다. 2년치 죄밖에 몰랐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죄 사함을 먼저 염두에 두고 우리 인간은 모르죠. 주님은 알아요. 창세 전에 예정했기 때문에. 죄사함을 염두에 두고 그 사람을 자기 백성을 십자가로 데려갑니다. 십자가로. 그게 성령의 역할이에요. 성령은 줄 것 다 주고 선물이니까. 이 선물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알려줍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율법대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그 사랑, 이웃을 사랑하는 율법의 다 지킴, 그 능력이 죄인 마저 나같은 죄인 마저 살려냈다는 사실을 후차적으로 알려주죠. 후차적으로. 그러니까 이 작업은 이미 죽은 우리 인간은 못하고요 자아가 나서서 못해요. 자아가 나서서. 주님의 자아가 나서서 해주는 거예요. 그러면 이거는 생겨나는 것이고 발생되는 것이고 일어나는 것이지 우리 자아가 소지해서 우리가 관리하는 게 아닙니다. 계속 일어나는 거예요. 일어나는 그 표현을 제가 달리 적당한 표현이 없어서 이런 표현을 씁니다. 환경. 환경이 달라져서 우리가 구원받은 거예요. 환경이. 예수님이 완성한 환경이 우리 지옥같은 이 세상 속에 찾아와서 그 환경에 사로잡혀서 그게 덮쳐져서 구원받는 거예요.
그런데 이 환경이라는 이 말은 어른들한테 무슨 말인가 하지만 어린아이한테는 이거는 딱이에요. 부자집 도련님이 날 때부터 색동저고리 입고 태어났습니까? 그런거 아니거든요. 벌거벗고 태어났지만 입혀주는 것은 부자집 재력으로 입혀줬잖아요. 환경이잖아요 환경. 가난한 집에 태어나가지고 젖도 제대로 못 먹었다. 그럼 나중에 커가지고 자기 과거를 탓하면서 그 엄마한테 돈 달라고 해가지고 네가 마트에 가가지고 분유 1개월치 사가지고 너가 앉아서 먹으면 되잖아. 꼭 엄마가 타주기를 바랬느냐? 지금 몇 살보고 하는 이야기하는 소리에요?! 걷지도 못하는데 마트를 어떻게 가요. 인간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시기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잊지마세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거예요. 환경에 의해서 정해진 거예요. 환경에 의해서. 유도리는 있겠지만 나중에 커서. 그 유도리를 보통 가출이라고 하죠. 가출. 보통 가출하면 가출해서 성공한 사람 이야기하는데 태반은 거의 90%이상은 가출해서 망해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지요. 대표적인 가출 아들 탕자. 이 교회 이름 뭐에요? 탕자교회. 환경 이야기했지만 악마가 주도하는 세상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백날 복음 들어도 밖에 나가면 기다리고 있어요. 서로가 다르다. 다르다는 이야기를 해요 이 세상은. 그러나 복음은 뭡니까? 다른게 아니고 틀렸다. 다르게 되면 자기의 자존심과 자기의 긍지는 건질 수 있잖아요. 틀려버리면 이것마저 날라가버려요. 그러면 뭐가 되느냐 하면은 자아 자체가 이게 원망스럽죠. 왜? 뭘해도 다른게 아니고 뭘 해도 틀리니까. 그런데 이 자아는 틀렸다로 끝났어요. 인생은 끝이니까. 틀린 것을 옳게 고칠 수 있는 재주나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자, 오늘 본문 한번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두 군데를 찾아야 돼요. 24장 내에서. 먼저 두 사람, 글로바하고 한 사람에게 주님께서 늘어지게 잔소리를 한거죠. 25절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이렇게 되어있지요. 자, 27절 다시 읽겠습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그 다음에 누가 나옵니까? 어떤 자아가 나오지요? 예수님 자아에 관해서 설명되어있지요. 이 대목을 덮지마시고 같은 누가복음 16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6장 31절 거지 나사로 비유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부자가 지옥가가지고 빼도박도 못하고요 지옥갔단 말이죠. 그러면 지옥가면 사람이 지옥은 왔지만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왜 지옥에 왔는지? 부자 때문에 지옥에 온건 아니고 왜 지옥에 왔는지. 31절에 나옵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그러니까 뭐냐? 모세와 선지자의 말을 너희가 들어야 천국가고 그걸 무슨 뜻인지 모르면 어디 간다? 부자 되도 지옥가고 가난해도 지옥가고 거지 나사로라도 모세 선지자를 모르면 지옥가는 거예요. 가난하다고 무조건 천국가고 그런 거 없어요. 천국은 복지대책으로 세운게 아니니까요.
그러면 모세 선지자의 말을 우리가 듣고 실천하면 되지 않느냐. 그게 누가복음 오늘 본문에 의하면 그 모세 선지자의 글은 전부 다 누굴 겨냥하느냐 하면은 예수님을 겨냥한다고요. 그런데 그 예수님이 사람에게 맞아죽었잖아요. 그러니까 어떤 인간도 모세 선지자 말을 이해할 수 있는 해석할 수 있는 위인이 있다? 없다? 없는 거예요. 이게 복음이라니까. 성경 봐도 이거는 소경이에요. 무슨 뜻인지 몰라요. 백독은 했겠지요. 백번 모르지요. 그럼 천독하면? 천번을 몰라요. 성경 보고 아는 것은 성경 많이 봐서 아는게 아니고 십자가를 알아서 십자가의 영이 와서 아는 겁니다. 십자가의 영이 와서. 안 오면 어떻게 하느냐? 왜 내가 너한테 가야 되는데? 이게 성립이 안 되거든요. 네가 뭔데 내가 너한테 가야 되는데? 내가 너한테 왜 가야 되는데? 좀 와주면 좋을텐데. 네가 뭔데 내가 너한테 가야 돼? 너는 이미 심판이야. 다시 말해서 인간 자체가 이미 틀린 거예요. 틀려먹은 거예요. 지옥이 딱이에요. 창세 전에 숨겨놓은 뭐 있겠지. 그거는 나만 알아고 있고 너는 모르고. 그걸 네가 컨닝해서 알 수가 있어? 천사도 아닌게 지가 어떻게 알아요. 그냥 틀린 거예요 우리는. 그냥 모르는 겁니다. 성령이 오니까 아 우리는 모르게 되어있구나 라는 사실. 우리 몸에 자아 구조 자체가 아무것도 모르게 되어있어요. 아무것도 모르니까 뭘 해도 소용없어요. 경건해도 경건한 게 아닙니다. 그런데 약속 안에 뭐가 들어있느냐 하면은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 하는 약속이 들어 있어요. 그 약속은 반드시 예수그리스도의 행함을 근거로 해서 주어지는 겁니다.
두 사람한테 이렇게 잔소리를 하시는 주님께서 44절에 또 잔소리를 하십니다. 11명 모인 사람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 말은 뭐냐? 모세와 율법과 선지자의 글에 예수님을 겨냥했다 라는 것을 율법과 선지자들이 백독 천독을 해도 이게 나옵니까? 안 나오는데. 무슨 시편을 봐도 예수가 나옵니까. 선지자들이 무슨 예수가 나와요. 안 나오죠. 인쇄가 잘못 됐나? 잘못 되든 제대로 되든 예수님이 안 나온다니까요. 왜? 안 가르쳐주지~ 안 가르쳐주는 거예요. 그 이유가 뭐냐? 로마서에 나옵니다. 이게 복음이에요. 복음. 방금 이야기한 모든 것은 복음의 내용이 다 담겨있습니다. 로마서 16장 25절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그 다음 뭡니까? 감추어졌지요. 감추어진 거예요. 하나님께서 아주 작정을 했어요. 너희들 죄인 맞다. 죄는 뭐죠? 죽음이죠.
대구강의에서 했지요. 인간이 왜 죽는다 했습니까? 선악과 따먹어서 죽었지요. 살 인간이 아닌 거예요.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보고 넌 살 인간이 아니래요. 선악과 따먹은 후손이기 때문에 살 인간이 아닌 겁니다. 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의 취지를 알아먹으세요. 우리는 천국이고 뭐고 살 인간도 아니고 살아있는 인간도 아니고 이 자체가 죽은 거예요. 자꾸 우리 고집 부리지 말고요 주의 말을 좀 건성으로 듣지 말고 진지하게 들어봅시다. 그대로 들어봅시다. 이미 죽은 거예요. 죽어있으면 어떻게 되느냐? 죽어있으면 돼요. 그냥 죽어있으면 돼요. 깨워야 된다? 그거는 죽은 인간이 죽어있으면서 손가락 내밀어가지고 자기를 깨운다. 아이고 그 손가락을 부러뜨리던가 해야지. 이게 말이 돼요? 이게? 내가 복음을 연구하고. 이게 말이 돼요? 왜 복음을 지가 연구합니까? 자기가 십자가 지지도 않았는데.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이에요. 복음을 만들어낸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는 십자가를 진 적도 없다고 했어요. 십자가 지신 사람이 이 분이라고 소개하는 입장이죠. 배달의 민족이에요. 주문했습니까? 아 이 집 아니네. 그럼 가면 되죠. 내가 심방하고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하고 했는데 네가 나를 안믿어? 내가 너 교회 오라고 봉투에 5만원 줬는데도 떼먹고 안왔지. 그런 소리 하는 게 아니에요. 정성은 기르는 개한테도 하는데. 되지도 않는 일을 왜 했어요.
다시 이야기합니다. 어떤 인간도 복음을 받아들일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복음을 기뻐하세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복음을 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그 다음부터 취조들어가죠. 네가 복음을 안다 소리하는데 진짜 우리교회에서 잘해요. 처음 오는 사람 가만 두지 않습니다. 교회 오라고 하는게 아니고 내보내기 위해서. 알아들어먹을 일이 없다. 의심하고 내쫓기 위해서 취조하는 거예요.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언제부터 들었습니까? 취조 당사자도 나는 의심돼. 자기는 구원을 소유했어요? 구원은 소유가 아닙니다. 구원은 자기가 쥐고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피어나는 거예요. 그게 고린도후서 2장에 나옵니다. 2장 고체도 아니고 액체도 아니고 기체로 나타나 있습니다. 15절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그 다음에 뭐라고 나와있습니까? "망하는 자들에게나" 야 사도 바울이 인간을 어떤 식으로 모독하는가를 보세요. 그 심판 받을 인간에게 존중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극단의 모독을 해버려요.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이것만 하면 되는데 굳이 뭘 집어넣습니까?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냄새를 피우는 거에요. 기체. 환경이죠. 냄새를 피우니까요.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죽은 인간한테 발라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거는 살리고자 하는 그게 아니에요.
더 아주 심하게 말해서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이런 말씀 있거든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 대목 나오지요. 버스정류소에 그런거 많이 붙어있으니까. 근처 교회에서 붙이라고 해줬는 모양이에요. 그런데 그 말이 주님한테 심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미리 앞당겨 심판받는 거예요.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어차피 맞을거. 어차피 죽을거 미리 죽는 거예요. 지금 그 간수한테 이야기했다고요. 간수는 인생 완전 조졌어요. 자기가 지켜야될 죄수를 다 놨으니까 자기가 사형 당할 입장이거든요. 그럼 자기만 사형 당하면 됩니까? 자기 가족은요? 가족파탄 끝났지요. 어찌 할꼬 이러고 있다고요. 사도 바울보고 책임지라는 거예요. 어찌 할꼬. 그런데 사도 바울이 구원이라는 언급을 했지요. 같은 말이에요. 지금 네가 당한 형무소직 이거 날라간 게 인생 심판으로 보이느냐? 이건 심판도 아니야. 제대로 심판 받아야지. 주님한테 심판 받아라. 그러면 네가 공무원 짤려도 짤린건 짤리고 구원은 구원대로 받을 것이다. 그걸 전했지요. 그게 망할 자인지 구원될 자인지 그건 사도 바울의 고유 권한 아니지요.
사도행전 마지막에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는 그런 자기의 선교여행했던 그 긴긴 삶의 마지막 소감은 뭐냐? 하나님 앞에 소감문 딱 쓰는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게 소감문이에요. 그런데 그게 주의 약속대로 됩니다. 창세 전 주의 약속대로 된겁니다. 망할 자는 망하고 망하는 게 정상이에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놀랍게도 구원될 자가 있는 거예요. 이거는 이렇게 따지고 논리를 아무리 따져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예요. 사도가 놀래버리죠 사도가. 사도가 놀래버리는 거예요. 기적을 행하는 사도가 놀래버리죠.
대구강의에서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도르가, 다비다. 같은 이름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 나와요. 사람들의 심보가 여제자가 선행을 구제를 많이 하니까 도움을 많이 얻은 거예요. 아까 저녁 먹을 때 나온 노래 있지요. 왁스의 화장을 지우고. 거기에 보면 나오지요. 아무것도 한 것도 없이 받기만 했다는거예요. 그러니까 남자가 떠나니까 돌아와. 다시 사랑을 이어가자는 거예요. 지금 도르가 이 사람이 너무 선행하니까 이 사람이 구제가 아까운 거예요. 그럴 때 베드로가 이야기한 것은 선행 구제가 아니고 죽은 자를 완전히 죽은 자를 살린 거예요. 이 다비다를 도르가를. 그 말은 뭡니까? 도르가처럼 죽었다 안 살아나도 그 죽었다가 살려낸 그 과정을 통해서 뭘 해야 돼요? 야 우리 구제 많이 얻게 되었다 이러면 안되고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그렇게 한 거예요. 복음의 증인되라고. 이제는 구제 없어도 괜찮고 선행 안 받아도 괜찮고 지금 당장 말기암 환자로 죽어도 괜찮아요. 약속 속에 있는 주님의 자아가 내 자아를 대체한 거예요. 그 전제로 내가 필히 심판받아야 돼요. 그래서 심판한다는 그것이 이 세상에 내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기쁜 소식은 주께서 나를 심판한다는 소식이에요. 최고입니다.
예수님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했잖아요. 했을 때 아까 누가복음 다시 언급해서 했듯이 예수님이 참 좋겠다 혼자 살고. 그런데 여기서 뭐냐?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에 시편에 나를 기록한 것이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약속을 남기고 갔지요. 그런데 그 전에 내가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난다는 약속을 예수님이 했지요. 예수님이 했는데 제자들이 믿었어요? 안 믿었어요? 안 믿었어요. 그러니까 다시 찾아온 거예요. 찾아와서 너희들 약속 안 믿는 것을 전제로 해요. 너희들 약속 안 믿었지? 너희들은 약속을 안 믿고 안 지켰는데 누구 쪽에서 지켰어요? 예수님 쪽에서 약속을 지키고 약속대로 살아나서 찾아왔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제자들은 주님께서 계속 진행중인 약속을 하시는 약속 속에 그들은 편입된 거예요. 편입. 이제는 주님이 하신 일을 증거함이지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내쪽에서 내밀면 안돼요. 약속은 생겨나는 거예요. 일어나는 것이지 내가 소지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약속은 주님이 소지해서 주님이 알아서 이루십니다.
마지막날에 내가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살리는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 분명히 들었어요. 안 믿었어요. 그런데 주께서 찾아와서 어떤 일을 하느냐? 안 믿는 너희에게 이제부터 믿게하는 약속을 너희에게 실행하겠다. 그게 바로 오순절 성령 오심입니다. 그럼 제자들은? 야 이제 구원받았으니까 다시 고기 잡으러 가자 이렇게 합니까? 그렇게 안돼요. 뭐냐 하면은 성령을 받게 되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찾아왔던 그 영체, 동일한 영체로 달라져야 돼요. 영체가 뭐 번쩍번쩍 해가지고 레이저 쏘고 이런 게 아니죠. 성령을 받은 거예요. 그리스도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성령 받은 사람과 안 받은 사람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야되겠지요. 격차, 차이. 격차 차이는 틈이라고 할수 있는데 틈은 예수님을 십자가 죽기까지 또는 죽을 때 사람들의 견해, 예수님에 대한 사적인 견해들 있잖아요. 환경이죠 악한 환경. 이 세대. 환경과 예수님이 찾아와서 성령까지 온 제자들의 견해와 어떤 차이가 있을겁니다. 그 차이가 사도가 전하면 다른 복음과, 복음 두 가지 다를 말해줘요. 두 가지 다를 말해줍니다.
그러니까 진리라는 것이 뭐냐하면은 최소한 두 개의 기표가 있어야 진리가 되는 겁니다. 두 개의 기호가 있어야 된다. 인 것과 아닌 것. 또는 없음과 있음. 두 가지가 최소단위가 있어야 돼요. 그러면 복음을 전파하라고 되어있어요. 복음을 전파하라. 그럼 제자들은 뭘 느끼겠습니까? 두 가지의 차이를 몸소 그들은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그러니까 이거는 복음을 쥐고 전하는 게 아니고 제자들이 가게 되면 거기서 일어나는 거예요. 왜? 환경이 따라가니까. 제자들이 속한 환경이 달라요. 부활의 환경.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니까. 그리스도가 부활 세계에 속하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는 말은 부활의 세계에 지금 제자들이 성도들이 들어온 거예요. 그러면 그들은 예수 안에 있는 겁니다. 예수 안이라는 새로운 공간 안에 살고 있어요. 공간 안에. 이 말은 뭐냐 하면은 예수님이 이 땅에 왔을 때 사람들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예수님을 앞태를 보자 뒷태를 보자 아무리 봐도 하나님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안 보이죠. 그런데 예수님 뭐라고 합니까? 자꾸 나는 아버지와 함께 있다 하고 아버지 일을 하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하는 말이 요한복음 8장에서 그래 너는 너 잘났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 대봐. 다른 사람 증인 대봐 하니까 율법에 이르기를 두 사람만 증인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하나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고 또 한 사람은 '나'라는 거예요.
제가 지난 주인가 설교 시간에 이걸 했잖아요. 설교 시간이기 때문에 이걸 상세하게 설명을 못해드렸어요. 상세하게. 이게 인간의 환경에서 통하는 논리가 아닙니다. 내가 나를 증거하는게 증거 채택이 가능하냐. 이게 가능합니까? 내가 있는데 따로 내가 떼어 나와서 바깥에 내가 하나 있어요. 나 1과 나 2가 있어요. 나 2 보고 내가 나라는 것을 이야기해봐. 이게 인간 세계에 가능하냐 이 말이죠. 예수님께서 두 사람 있는데 한 사람은 아버지다. 아버지. 아버지하고 나하고 둘이 있으면 이것이 율법에 이야기한 대로 증거가 확립된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동안 예수님은 율법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잖아요.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은 그동안 인간들이 이 해석을 못 끄집어냈다는 말은 인간의 모든 율법 해석은 다 엉터리였다 라는 뜻입니다. 제대로 아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버지라고 상상해놓고 해석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 거예요. 너 빼놓고 두 사람, 아니야 나 포함해서 두 사람. 나 포함해서 두 사람. 왜 주님 말이 옳으냐 하면은 하나님의 말씀에 일체 인간을 끌어당기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일체 인간이 하나님의 일에 들어가서는 안되는 거예요. 아버지와 아들 둘로 완결되어야 돼요.
그래서 왜 인간이 끼어들지 않는가. 인간은 이미 쫓겨난 주제에 생명나무를 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배후에 누가 그 짓하게 합니까? 마귀가 그 짓하게 하지요. 마귀가. 네가 힘들게 살았는데 죽어서는 호강해야지. 자꾸 마귀가 와서 자꾸 부채질하는 거예요. 그래 내가 가만있으면 안되지 뭐라도 해야지 자꾸 이렇게 나온단 말이죠. 그런데 성경에서 보면 인간은 뭡니까? 죄인으로 규정됐지요. 설치면 설칠수록 뭐만 나와요? 죄만 나온다고요. 여기까지 듣고 삐져서 밖에 나간 사람 없지만, 이왕 삐져서 나간 사람은 그러면 만약에 그런 사람이 강의를 듣는다면 그동안 뭐를 듣고 싶어서 줄창 앉아있느냐 이 말이죠. 다 맞고 하는데 내쪽에서 내가 뭘하면 나한테 구원이 주어지느냐 그 이야기를 해달라니까 이러고 있다가 아예 없다고 하니까 짜증 확 올라오면서 나가지요. 그게 왜 그러느냐 하면은 인간 대신 약속이기 때문에 그래요. 인간은 약속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이 이루지요. 인간이 이루는 게 아닙니다. 약속이 알아서 이미 잘 알아서 창세 전에 오직 택한 자만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제대로 딱 천국에 가도록 약속이 알아서 다 해주십니다. 그럼 이렇게 이야기하면 삐져서 나가려다가 들어와 앉아가지고 그것 좀 진작에 이야기하지 끝물에 이야기하나. 그런데 그 약속이 언제 오는데? 그거 듣고싶다.
그래서 여기에 사도 바울에 편지에 나와있는 복음에 대해서 다 한번 찾아봤어요. 모조리 다. 약속이 약속을 이룰 때 사도가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은 이렇게 이야기해요. 너는 복음을 전파하라 이렇게 해요. 복음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 복음에서 너를 낳았으니까. 새롭게 태어났으니까. 복음에 태어난 사람의 특징이 뭐라고요? 복음을 전파하게 되어있어요. 복음을 전파하는 것.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파하라. 에베소서 6장 19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디모데후서 4장 2절. 그 다음에 전부 다 복음 이야기하는데 그 공통점은 뭐냐? 복음을 가져라 복음을 믿으라 복음을 간직하라 이게 아니고 전파하라. 복음을 내놓아라 이 말이죠. 그 말은 뭐냐? 약속이라는 환경이 우리를 그냥 가만두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약속이 구약때 약속이 만든게 뭐냐 하면은 이거였어요. 성전이었습니다. 맞지요? 시내산에서 율법 받고 그들이 땅에 만든게 뭡니까? 성막이었죠. 성막이 커서 뭐 됐다? 성전이잖아요. 성막은 이동성, 들고 다니는 것. 성전은 고정되는 것. 성전의 의미는 고정되는 거예요. 제사 기능은 똑같지만 고정되는 거예요. 성전이 하늘로 가버리면 하늘나라에 박혀 고정되어버립니다. 이 말은 성전이 고정된다는 말은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은 하나님쪽에서 이미 확정 지었다. 다른 장소에서 만나지 않는다. 오직 성전에서 만난다.
미가 1장에 수요일날 언급했잖아요. 성전에서 뭐가 나와요? 심판이 나와요. 성전이 이미 마련되었기 때문에 나머지는 뭐가 돼요? 성전 바깥이 되겠지요. 성전 바깥에 있는 것은 심판 받고 저주 밖에 없어요. 그런데 구약에서 약속한 건 성전이었단 말이죠. 그러면 신약에서 약속이 이뤄지는 환경은 어떤 환경이냐? 우리의 육신, 우리의 몸이 뭐가 돼요? 이게 뭐가 됩니까?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겁니다. 안에서 약속이 약속대로 저절로 생겨나요. 저절로. 밀폐된 용기에 연기 피우면 연기가 가득 차겠지요. 그걸 충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령에 의해서 약속이 충만해져요. 충만해지면 우리의 육신은 움직이면서 입과 귀와 코가 있잖아요. 그러면 외부에서 들려오는 것, 두뇌에서 생각하고 사고하는 것 거기서 논리적인 조립을 하는 것 그리고 그걸 내가 결과로 행동이나 말 할 때 이게 성전에 약속을 경유한 외부의 모든 변화의 조짐이 입을 통해서 발설되는 겁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어떻게 했는가를 보면 사도 바울은 뭐냐? 세상에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오직 이 모든 일을 일으킨 주동자는 예수님이다. 주님이 주 되셔서 이 모든 일을 이루었다. 모든 것이 복음으로 연결되도록 거기에 해당된 변화만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다니엘에 느부갓네살 우상 나오지요. 첫 번째 바벨론 두 번째 금 같은 바벨론 은 같은 메대 바사 그 다음은 놋 같은 헬라 마케도니아 네 번째 철 같은 로마, 철과 10가지 깨진 진흙, 로마 후시대죠. 현재 200개 나라가 갈라졌잖아요. 이미 다니엘에 예언되어있단 말이죠. 예언되어있는 것이 그냥 역사가 되어있습니다. 자, 역사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이후에도 무엇을 틀어막아요? 하나님이 죽었다는 소식을 틀어막는 거예요. 그것도 누가 죽였습니까? 힘들고 어려울 때 찾는 그 하나님을 이미 인간 손에 죽었어요. 지가 죽여놓고 지가 찾고 있다 이 말이죠. 그 복음이 듣기 싫어서 인간 세계는 이 역사대로 그냥 밀어부칩니다. 그러면 이미 주님의 성령이 찾아온 성도는 어떻게 되겠어요? 이미 성전이 되었지요. 성전 안에는 뭐로 다 이루었습니까? 약속으로 다 이루었지요. 예수 그리스도 중심 약속이 다 이루어졌다. 이걸 발설을 하는 거예요. 발설을 하면서 무슨 외부환경과 만나지요. 바로 하나님의 준비된 약속의 외부환경. 그게 뭡니까? 로마와 그 이후의 시대. 짐승의 시대. 짐승의 시대와 정면으로 피부로 마주하게 되는 겁니다. 짐승의 시대. 짐승의 시대는 뭐가 없어요? 복음이 없지요. 짐승의 시대는 복음이 없어요. 복음이 없다는 말은 무슨 힘으로 역사의 원동력으로 삼습니까? 인간의 지혜와 이성과 노력과 결집력 이거죠. 인간들이 결집해서 하나님을 죽였잖아요. 하나님을 없애버리고 이제 남은 것은 인간밖에 없지요. 배후에는 악마가 하겠지만 인간의 유구한 역사는 세상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질주하겠지요. 그러면 이 세상은 뭐를 모르느냐 하면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죽었기 때문에 죽은 하나님을 근거로 해서 이 세상을 심판하지요. 그러면 이 세상은 뭘 몰라요? 그들이 살아봤자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몰라요. 살아봤자. 맨날 판사 검사 백날 되도 그들은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몰라요. 짐승의 세계니까. 뭐 가봐야 알지 이래요. 예수님께서 좁은 길 넓은 길 왜 이야기했겠어요? 지옥 길은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지옥 길. 많은 사람이 찾는 길.
그러면 오늘날 시대 봅시다. 이런 문구가 있어요. 인공지능에 충성합시다. chat gpt아닙니까. 애들 시험볼 때 공부할 때 뭐합니까? chat gpt쓰지요. 전에 이야기했지만 우리 교회 집사님께서 chat gpt 월 29,000원인가 주고 해가지고 오갖 궁금한거 다 물어봤어요. 뭐까지 물어봤느냐 하면은 이근호 목사의 설교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 이야기해요. 어느 목사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으니까 이근호 목사의 설교는 십자가 중심이고 자기가 이야기한 목사는 세상 사람들 구미에 맞춘 설교입니다. 인공지능이 이야기해요. 인공지능이. 웃기지도 않지요. 정 궁금하면 여러분 이름도 한번 물어보세요.
그러니까 이 말은 뭡니까? 인공지능에 뭐하자? 충성하자. 충성이라는 말은 도저히 내 능력으로서는 따라할 수 없다고 굴복을 선언하는 거예요. 굴복을. 이제는 자식 대신에 인공지능 돈 얼마 안해서 하게 되면 약 먹는 시간 알려줘 놀아죠 같이 대화 상대해주고 웃기기도 해줘. 인공지능이 다 해줘요. 다 돼요. 다 돼요 전부 다 인공지능이. 병원에 가기 전에 인공지능에 물어보세요. 요새 나온 신약의 내용은 어떻고 아직까지 이건 안되는 약이고 이거는 확률이 50%고 30%고 다 나와요. 괜히 약 가지고 돈 벌려다가 인공지능한테 걸리면 안된다니까. 인공지능이 우리 인간보다 뛰어나니까 인간의 본성상 무슨 소리 나와요? 충성합시다. 이게 짐승한테 충성하는 거예요. 짐승한테 충성. 아 똑똑한데 뭐 잘난척 해봐야 자기만 손해죠. 충성해야지요. chat gpt있으면 설교 준비할 것도 없어요. 다 나와요. 어떤 유형을 원하십니까? 전부 다 나옵니다. 성경 본문찾기 다 나와요. 글자 쓰면 나오고 그런거 아니에요. 문장을 만들어줘요. 문장을. 이것은 헬라어인데 여기에 합당한 것은 구약에 이겁니다. 다 알려줘요. 다 chat gpt에서 나온거에요. 양반들 인사할 때 같은 데에서 배껴가지고 인사하는데 나중에 보니까 같은 대서소로 인사하는거 하고 똑같아요. 처음에는 좀 주춤하다가 까놓고 합시다 해가지고 나는 1357로 나오고 당신은 2468. 그게 유명한 웃으면 복이와요에 나오는 코미디 코너에 나왔던 겁니다. 모든 것이 통일되죠. 통일되고 인간은 이미 심판받아 죽었습니다 말 안해요. 그런데 또 집사님이 그것까지 물어본 거예요. 인간은 죽었지만 부활한대요. 인간은 죽었지만 부활합니다. 두 가지 자아를 이야기 못하지요. 왜? 인공지능은 인간을 닮았기 때문에 똑닮았기 때문에 자아를 포기를 못하는 정신으로 무장되어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발전하고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는가. 그것을 그 각 시대마다 지금 부활하신 주님의 성령을 보내가지고 성도로 하여금 마주치게 하는겁니다. 마주치게. 그럼 복음만 전한다는 말은 뭡니까? 둘 다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다른 복음과 복음. 둘 다를 전하면서 그 차이를 십자가 사건에 근거해서 증거할 수가 있는겁니다.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인공지능까지 발달시켰습니까? 우리 주님이죠. 우리 주님. 예수님 십자가 달린 그 상황과 조금도 환경은 달라진 적이 없다는 것. 그때 내가 있었으면 예수님 배반 안했는데 그런 거 없어요. 각 모든 시대가 똑같은 시대에요. 하나님이 죽었다를 그것도 인간 손에 이미 하나님은 물 넘어갔다. 왜? 남은 것은 심판밖에 없다는 말을 성령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못 받아들이는 세상. 그러니까 이것이 어찌 즐겁지 아니하냐. 정말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일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이유가 바로 복음 때문에 있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안 믿는 것이 정상이고 거부하고 화 내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어떻게 하나님이 죽고 심판의 대상이라는 이 사실이 우리에게 어떻게 기쁜 소식이 되고 놀랍고 감사하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소식이 되는지 주의 부활의 능력이 찾아온 결과인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