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24장 37절 (인간 끝) 240903a-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24장 37절 (인간 끝) 240903a-이근호 목사

오늘은 누가복음 24장 36절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그렇게 되어있지요.

예수님께서 전도 방법이 부활입니다. 부활체, 영체. 예수님의 복음은 영체가 되지 않으면 전달이 안됩니다. 왜냐하면은 예수님이 직접 부활하셔서 사람에게 나타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복음 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나타날 때 부활체가 되어야 복음이 전달됩니다. 부활체가 되어야. 부활체라고 하는 것은 조건이 있어요. 죽어야 돼요. 죽지 않으면 부활이라는 게 성립이 안되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체는 특징이 있어요. 그냥 죽으신 게 아니고 사람에게 맞아 죽었지요. 배척을 받고 죽으신 거예요.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서 내려진 사형집행에 의해서 죽으신 분이에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복수죠, 여기 한 사람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이 살아났습니다. 살아났으니까 영체라고 합니다. 살아나셔가지고 이게 끝이 아니고 이걸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났어요. 제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난 이유가 뭐냐 하면은 복음을 전파하라고 나타나신거에요. 그러면 여기서 복음 전파 방식은 뭐밖에 없어요? 부활체 밖에 없고 그 부활은 그냥 자살해서 죽는 건 안돼요. 사람들에게 심판받아서 죽은 그 죽음에서 부활한 분의 영체, 그것만이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하면은 그래야 복음 안에 뭐가 들어있느냐? 인간의 끝. 인간은 끝났다. 이게 뭐라고요? '기쁜 소식'. 이게 복음이에요. 인간은 끝났다. 그러니까 창세기 3장과 계속해서 그 취지가 살아있는 거예요. 인간의 끝, 인간은 끝난 거예요. 이걸 똑같은 네 자로 하면 길이 없다. 생명으로 가는 생명나무 먹을 수 있는 길은 인간에게는 없다. 인간은 없다 예요. 제가 설교시간에 여러번 해서 좀 식상할만한데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귀한 강정, 그것도 땅콩 강정을 설 지나고 따로 딱 귀하게 모셔놓아가지고 그때 얼마나 귀했다고요. 설 지나고 난 뒤에 손자들이 "할머니 땅콩강정 주세요" 하면 할머니 말은 간단했어요. "없다" 그게 할머니가 전할수 있는 기쁜 소식이에요. 없다 땅콩 잊어라. 땅콩강정은 없다. 인간은 길이 없어요. 길 찾지 마세요. 끝났어요. 왜? 인간에게 맞아 죽은 분이 전하는 복음 내용이 그거예요. 끝났어요. 이걸 심판이라고 하지요. 이제는 너희들은 심판의 대상일 뿐이지 구원이라는 것은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여기 오늘 본문에 39절부터 보게 되면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내', '나'가 나오지요. 39절 마지막에 "나는 있느니라" 나는 있느니라. 주님이 스스로 계신 분이지요. 여호와니까요. 나는 있느니라 되어있어요. 나니까 보통 하는 말로 자아라고 하지요. '나'라는 자아는 여기 있다. 여기 있다 되는 거에요. 37절에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뭐로 생각합니까? 영, 유령으로 생각한 거예요. 예수님이 수정을 해주지요. 야 여기 유령있다. 나 여기 있어 나. 인간들의 자아는 인간들의 나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본 거예요. 제자들이 예수님을 유령으로 봤다 하는 것은 누가 있다는 말입니까? 내가 여기 있다는 말이에요. 내가 여기 있고 나 있는 것처럼 있지 않을 때는 그게 유령이 되는거죠. 나는 여기 있다. 있는데 이상하게 나처럼 있지 않아야 될 어떤 분이 있을 때 유령인가? 영인가? 이렇게 생각했단 말이죠. 그때 예수님이 내가 여기 있는 거예요. 나 종류가 몇 종류 되겠어요? 두 종류가 된 거예요. 두 종류가. 두 종류 사이에 길은 없어요. 인간의 자아는 끝났습니다. 이게 기쁜 소식 이게 복음이에요.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가 심판받고 죽었구나를 아는 게 복음이에요.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은 심판을 기분 좋게 세상 끝날까지 널리 전파하라 이 말입니다. 마치 뭐처럼? 유령처럼. 왜냐하면 성도는 성령이 옵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성령 안에 예수님의 자아가 들어오는 것을 성령이라고 해요. 예수님의 자아가. 그러면 성도의 몸 안에 자아가 두 개 생기죠. 하나는 전에 '나'라고 여긴 것은 십자가 사건에 근거해서 이거는 심판받으려고 하나님을 도리어 심판함으로서 심판받는 거예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복음이란 하나님이 죽었다. 이게 복음이거든요. 하나님이 죽었다가 복음이란 말이죠. 그러면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무슨뜻이냐 하면은 내가 죽었다를 아는 게 복음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하나님이 죽었다라는 것이 하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나한테 소식을 전해줬기 때문에 하나님이 죽었다는 사실, 인간에게 맞아 죽었다는 사실을 굳이 나에게 이야기한다는 말은 제대로 사신 분은 바로 예수님만 제대로 살아있다는 뜻이고 예수님 살아있다는 말은 그럼 누가 죽었다는 말입니까? 죽은쪽이 누구에요? 내가 죽은 거예요 내가. 내가 죽어야 복음 안에서 주님이 죽음의 영체가 계속 살아있는 바가 된다 이 말입니다. 내가 살아있으면 복음을 가리잖아요. 주님이 죽었다가 살아있으려면 왜 주님한테 죽었다는 그 절차가 왜 필요한가 이유도 같이 담겨있어야 되잖아요. 하나님이 왜 죽었어요? 사람에게 맞아 죽었잖아요. 우리가 뭡니까? 우리가 사람이잖아요. 그러면 사람에게 맞아 죽었다는 것은 누구한테 맞아 죽었다? 바로 나같은 인간에게 맞아 죽었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하나님을 때린 그 속성, 그 종류 속에 내가 포함이 되어있다는 뜻이고 죽은 인간이 생명나무 따먹을 것은 땅콩강정 없다 하는 것처럼 길은 없어요. 생명나무 가는 길이 없다는 말은 그게 인간의 끝이죠. 나의 끝사랑 하는 노래 있지요. 인간은 끝이에요. 인간이란 끝을 보여주는 존재. 자기 자아의 끝을 보여주는 존재. 복음 전파는 바로 부활하신 주님의 몫이고 주님만이 할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8절 한번 보겠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볼일 없다고 다시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가 있었어요. 두 제자가 있는데 한사람의 이름이 나와 있어요.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 이 글로바라 하는 이 사람의 이름에 대해서 제가 좀 기억을 잘하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탁구 기구와 관련된 회사 상표가 글로바. 글로바라는 제자가 같이 동행을 했단 말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 33절 반대로 갔어요. 나오다가 도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거죠. back한 거죠.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나타났다고 이야기할 때에 이 글로바라는 사람 있잖아요. 그 사람은 사람이 왜 이렇게 달라졌습니까? 조금전까지 별 볼일 없다고 엠마오로 내려가던 사람이 왜 이렇게 달라졌습니까? 이거 미친 사람 아닙니까? 왜 이 이야기하면 남들한테 욕 얻어먹을 거 뻔히 알잖아요. 옛날에 돌아가신 분이 살아났다 그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얼마 전에 사형선고 받고 돌아신 분이 살아난 거예요. 그러면 어떤 조치가 잘못됐다는 거예요? 다시 살아날 분을 사람들이 뜻을 합하여 죽였다는 거예요. 이걸 함부로 발설해야 됩니까? 자칫하면 자기가 죽는 수가 있어요 이게. 발설해도 눈치껏 발설해야지 이거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되잖아요. 그 당시 유대인들이 의견을 합해서 예수님을 죽였는데 거기에 대해서 다 동의한 셈이 되는데 그 죽인 사형수가 다시 살아나버리면 이거는 사형했던 조치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바가 되는데 자신의 결정이 옳은 결정이 아니고 이게 틀렸다는 거예요. 틀렸는데 그냥 '아 우리가 잘못했네 재판 새로 하면 되겠네' 이게 아니고 감옥에 집어넣은 사람을 '아이고 억울하게 누명 씌웠네' 하고 풀어주고 다른 진범을 찾자 이렇게 되는게 아니고 이미 전부 손 털었어요. 왜? 죽었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은 인간이 할수 있는 역량의 끝입니다. 인간의 끝이 죽음이잖아요.

예수님이 살아났다는 것은 인간은 끝났다는 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복음의 내용이 뭐냐? 인간은 끝났어 너희들 이게 복음이에요. 그래서 자기가 스스로 살아있다는 인간 치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지요. 자기가 살아있는데 끝났다니 이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아직 내 할 일이 있어. 나 아직 살아있어.' '아니야 너 끝났다. 살아있어도 소용없어 끝난거야.' 이걸 어떻게 내가 스스로 내가 '어 그래' 하고 받아들입니까. 세상 좀 살고 한 90 넘어 살다가 죽으면 천국가면 그게 복음이라면 받아들이지요. 그게 복음이라면 받아들여요. 열심히 살만큼 살다가 죽어서 또 살고 이거는 뭐 손해 보는 장사 아니니까 이거는 받아들이는데 내가 살던 죽던 나는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 너라는 자아는 이미 끝났다는 것, 죄인으로 규정했다는 사실. 네가 살아있어도 실은 죽은 것이다. 죽은 존재가 살아있는 척 하지말아라. 그게 복음인데 이거 누가 받아들입니까? 아무도 안 받아들이죠.

그러니까 이 글로바라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죠. 예수님이 부활을 받아들이면 '나'라는 존재가치가 어떻게 되는가를 그걸 좀 고려하고 받아들이지 그냥 예수님 살아계셨다 이렇게 해버리면 그럼 나는? 길이 없는거죠. 예수님은 살아계신데 우리는 지금 죽으면 살 가능성이 없잖아요. 주님이 살아나도 주님 자기 인생이란 말이죠. 내 인생이 아니잖아요. 주님 살아났다고 덩달아 우리도 살아납니까? 그럼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근거 없어요. 근거고 뭐고 간에 우리는 그 살아나신 분을 우리는 죽이겠다고 거기에 묵시적으로 소극적이나 적극적이나 이미 동조가 된 거예요. 저분은 안돼, 저분은 죽으면 안돼 라고 나선 사람이 11제자 중에 누가 있습니까? 없잖아요. 그런니까 한 사람이 살아나면 나머지는 자동적으로 죽은 거예요. 이거는 희망도 끝났어요. 끝났다는 이 소식을 '아 기분 억수로 좋아' 하고 그걸 받아들인 능력이 자질이 인간 가운데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요. 누가 있어요? 살만큼 살다가 천당간다 이거는 다 받아들이는데 너 아니야 너는 끝났어 이걸 누가 받아들입니까? 그런데 그 사정도 모르고 글로바는 좋다고 예수님 살아났다고 이야기했거든요. 제자들로서는 감당이 안되지요. 왜냐하면 자기가 예상하거나 기대하거나 자기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이 부활하신 예수님 믿는 것부터 해서 그분이 말하는 복음전파도 이미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오늘 강의 이걸로 끝낼까요? 예수님은 좋겠다 죽었다가 살아나서. 예수님 죽었다 혼자 살아나서 좋은데 나머지는 끝났지요.

자, 예수님은 살아났는데 나머지는 전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주님이 깜짝쇼 하실라고 그렇게 한 거예요? 놀랬지? 너희들 나 죽을줄 알았지? 살아났어. 그래 구경했으니까 나는 갈 길 간다. 잘 먹고 잘 살아라. 가버렸을 때 결국 이것은 예수님의 복음 전파의 취지는 모든 인간은 심판받아 합당하다 이겁니다. 예수님이 죽고난 뒤에 나중에 제자들이 우리가 죽으면 안될 분을 죽였고 우리가 지켜야 될 분을 못 지켰어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을 미안하니까 기념해서 주님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1년에 한 번씩이라도 하자. 그래서 예수님이 남긴 그 귀한 말씀, 이웃 사랑하라 하나님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런 말씀을 기념하자. 그게 복음 전파입니까? 그게 교회입니까? 예수님 죽은 것을 기념하는 것이 교회일까요? 그게 복음전파입니까? 그거 친목모임 아니에요? 계모임 같은 거죠. 그래놓고 자기는 안 다치는 거예요. 왜? 미안해했으니까. 다른 사람은 주님 죽은 거 미안해 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미안해하니까 아마 죽으면 천국갈 거다. 이런 엉터리같은 교리 같은 이런 것 만들어서 위로하는 것, 푼돈 좀 내가지고 운영비 형광등 전기세 이런거 내고 그러면 그게 교회고 그게 복음 전파의 결과의 교회입니까? 아니지요. 복음전파는 부활하신 주님이 하시고요 복음이 전파되려면 인간은 어떤 현상을 보이느냐 하면은 그냥 심판 받아 합당하다 하는 이런 현상을 나타내는 게 아니고 결사적으로 복음을 차단하려고 아주 결사적이에요. 죽기 살기로 결사적으로 복음에 대해서 훼방하고 방해하는 공작을 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에게 미안해하고싶어도 그거는 힘을 못써요.

왜냐하면은 만약에 예수님에게 미안한 게 조금이라도 남한테 들켜버리면 그 공동체에서 우리가 예수님은 죽을만해서 죽인건데 왜 네가 우리의 뜻을 따르지 않고 이제 와서 배신하느냐. 너 세상 살기 싫어? 아직도 죽어 없어진 예수님을 추모하고 미안해하지마. 우리 인생 살아야지. 우리 의미 찾아야지. 우리가 존재하는 의미. 그전에 하나님 섬기고 율법 섬기고 잘했잖아. 그대로 그냥 살면 돼. 예수님이 죽던 말던 우리는 말씀대로 살면 되는거야. 이게 유대인들이 죽고 난 뒤에 행동이었습니다. 누구한테 그렇게 행동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지 않은 사람은 다 그렇게 했어요.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지 않은, 내방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참 안됐지 뭐 죽을 사람은 아닌데 너무 나대다가 죽었잖아. 이런 식으로. 뭐 어쩔 수 없지 뭐. 운이 나쁜데 어떻게 하겠어. 우리라도 반듯하게 율법대로 살면 되지. 율법 있으니까. 이게 바로 복음에 대해서 결사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이에요. 이게.

그래서 사도 바울이 전할 때 뭐도 같이 전했습니까? 다른 복음도 같이 전했지요. 다른 복음. 아니 복음을 전한 게 아니고 뭐부터 전했어요? 다른 복음부터 전했어요. 다른복음. 그 다른 복음의 내용이 뭐냐?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우리가 의인 된다. 이게 다른 복음이에요. 하나님은 율법대로 심판하기 때문에 심판에서 면제되려면 이 말씀을 실천에 옮기고 반듯하게 살아야 된다. 어떻게? 몸을 다하여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그거 이야기한 거예요. 그럼 복음은 뭐냐? 몸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심판을 전하는 거예요. 심판을. 목숨을 다하여. 끝났어 끝났어. 이걸 전하는 거예요 이걸. 글로바가 미쳤지요. 글로바가 미친 사람이에요.

지금 18절에 글로바가 미쳤지요. 좀 더 뒤에는 저녁 먹을 때 미치겠지만. 그때 주께서 눈을 뜨게 해주세요. 저녁때 미쳤는데 이 두 사람 미침이 37절에 보니까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니까 11명하고 그때 거기 모인 사람 다 미쳤어 이거는. 아프다가 좀 건강해졌다 이거는 미친 사람 아니지요. 교도소 갔는데 10년 만에 나타났다. 11년 만에 나타났어요. 10년 전에 나를 죽인게 너지? 뭐 이런 거. 메시지 막 보내고. 이런 건 있을 수 있지요. 억울하게 옥살이하다가 나왔으니까. 백설공주에게 보낼거야 뭐 이런 식으로 이거는 가능한데. 이건 미친 거 아니에요. 나는 억울하게 옥살이 했다 이런 거. 넌 죽었어. 그게 아니고 이미 죽은 분이 살아났데. 이제는 우리가 죽을 판이야. 우리가 이제 당할 판이래. 그런데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이런 거. 이게 앞뒤가 안 맞아. 그게 왜 기쁜데? 그게. 그게 왜 기쁜 소식이 되는데요. 그게 왜 기쁜데? 아무도 기쁘지 않아요. 예수님이 부활한 게. 아 우리 쪽에서 처리했으면 좀 그냥 죽은 척 좀 계시죠 왜 우리에게 나타나서 우리의 가치 체계를 이렇게 흔들어대고 우리의 의미를 무의미로 만듭니까. 너는 이제 죽었어. 그럼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결국은 길이 없는 게 되거든요. 심판 대상이니까. 이래도 심판이고 저래도 심판이에요. 뉴질랜드 이민 가도 심판받고요 나이 80 넘어도 심판받고 태어나자마자 죽어도 심판받고 사도 바울의 복음이 그거잖아요. "모든 인간은 죄를 범했으매 사망이" 그게 고상해 보이지만 무슨 이야기입니까? 어린이집에 애 놀잖아요. 너 죽었어 이 말이잖아요. 너희들은 끝났어 살아도 소용없어. 너 죽었어. 이 반에 15명이네 다 죽었어. 주일학교에서 전도사님 이야기해주세요. 보자 오늘 참석한 1명 죽고 2명 죽고 3명 죽고 오늘 너희들 죽은 거 이야기해줄게 뭐 이런 거.

인간이 죽인 양이 되살아났어요. 죽음으로 들여보낸 양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양을 죽여서 보내는 것은 여전히 성전 제도가 유효하다고 믿는 그 시절이었어요. 왜? 성전이 양을 요구하니까. 그런데 죽었던 양이 살아나버리면 그동안 성전 중심 자체가 날라가버리고 성전이 날라가버리면 사두개인 자체가 날라가버리고 제사장도 다 날라가버리고 성전 중심으로 해석해왔던 율법체계 전체가 다 날라가버리고 소용없어요. 뭘 해도 소용없어요. 길이 없으니까. 뭘 해도 소용없고 길이 없다 이게 복음입니다. 이걸 전해야 돼요. 그러면 우리가 기본적으로 이 이야기를 이 복음 이야기를 자기 아이 두 살보고 너 죽었다 하는 그걸 부모가 못 받아들이죠. 애는 무슨 소리인줄도 모르고요. 그 이야기를 받아들인 게 이상한 겁니까? 못 받아들인 게 정상이에요? 어느 쪽입니까? 못 받아들이는 게 정상이죠.

그러니까 다시 한번 여러분들을 탐색하고 조사해봐야돼요. 여러분 조사해봐야돼요. 내가 지금 죽은 척하고 살아있다고 하는지. 죽은 척하고 있는지. 심판받기 싫은데 심판 심판 하니까 예 심판받아 마땅합니다 라고 입술로 그렇게 조작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봐야 돼요. 찾아오라고 기대한 것이 벌써 26년 지났는데 아직도 주님이 안 찾아왔어. 답답하니까 나라도 복음을 나라도 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요? 성경에 복음 내용 많잖아요. 주워모아서 믿습니다! 라고 하는 거. 그걸로 주님 찾아오신 것을 대신하겠다. 그런 시도는 안해봤어요? 그 시도가 왜 가짜냐 하면은 그거는 사람이 해낼 수가 있습니다. 신학교 가서 성경보고 해가지고 엑기스 추리고 있잖아요. 복음 정석. 수학 정석말고. 정통 복음 이런 거. 그 책 보면서 자기가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해낼 수 있잖아요. 야무지게 기도원에 가가지고 성경 보고 참고서 기독교 강령 칼빈 이런 거 보면서 참고해가지고 외우면서 나는 다 이루었다. 인간이 해낼 수 있단 말이죠. 해낼 수 있는 것을 안 하고 그냥 손 놓고 있어요. 뭐라도 해야지요. 해내야된다고요. 그거라도 해야 교회에서 큰소리 치고 기독교 알아요? 모르죠. 그거는 안 미친 거예요. 안 미친 겁니다. 안 미친 인간이 복음 안다고 우길 때에 그들이 생각한 부활은 뭐냐? 이거에요. 신비. 신비하고 부활하고 다릅니다. 정반대에요. 인간이 해내지 못한 신비로움이 있다. 그 신비로움이 너를 어떻게 했는데? 신비로움을 하나 추가했지 뭐. 여기 밥 하나 추가요 하는 것처럼. 신비로움 하나 더 걸친 거예요. 그런데 부활은 뭡니까? 뭐 하나 걸치는 거예요? 우리를 심판하는 겁니까? 우리를 심판하는 거예요. 걸치는 게 아니고. 너는 죽었어. 하나님이 죽었다는 이 사실. 그것도 주님이 그냥 나이 많아서 죽으신 게 아니고 하나님이 어떤 충돌에 의해서 돌아가신 거예요. 아담이 하나님을 죽인 거예요. 피조물이 창조주를 죽인 거예요. 우리는 소속이 어디입니까? 창조주 소속이 아니고 어디 소속입니까? 피조물 소속이죠. 사태가 끝났어요 인간은. 인간은 끝났어요. 아무 희망이고 희망 갖는 게 나빠요.

신비는 뭐냐? 성경 보면서 부활 다 끄집어내는 신비로움은 부활은 내가 애초부터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애초부터. 그런데 신비로움은 내가 소중하니까 소중한 나를 지키기 위해서 신비를 내 몸에 걸치는 거예요. 신비는 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나로 하여금 더 추가적인 긍정적인 요소를 덧입혀주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에서는 이걸 은혜받았다고 하지요. 자기가 세상으로부터 미친 사람 소리 듣기 싫은 거예요. 남들이 모르는거 하나 추가했기 때문에 멀쩡한 정도가 아니고 멀쩡한데 더 지니어스 아주 천재적인 세상이 모르는 그 신비체험까지 추가했기 때문에 안 그래도 멀쩡한데 더욱 범접할 수 없는 독보적으로 톡 튀어나올 정도로 대단한 사람. 이것을 뭐라고 하느냐? 적그리스도.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 적그리스도는 한 명이 아니라고 했지요. 적그리스도가 물 사마귀같이 계속 피부에 다 나오는 거예요. 적그리스도 경쟁이 되가지고. 과일에 설탕 바른 거 뭐라고 합니까? 탕후루 가게 생기니까 옆에 막 생기는 것처럼. 교회 다녀서 다가 아니라 신비체험까지 해야되니까 그것까지 추가해가지고 추가하는 유행이 되어버린 거예요. 신비로서 자기를 커버하는 것. 그것은 뭐냐하면은 복음을 못 받은 대가에요. 복음을 못 받는 대가. 다른 복음이죠.

갈라디아서에서 다른 복음 이야기할 때는 그리고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사도 바울이 다른 복음 이야기할 때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의 정상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받은 사람은 이거는 인간이 자기가 받으려고 해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 조차도 안 할 때 난데없이 주어졌기 때문에 본인이 무척 입장이 난처해진 사람들. 주어진 것 떨어지지도 않고 받아들인 복음을 끄집어내려면 교회에서 미친 사람 소리 듣고 무슨 팔자가 이런 팔자가 됐느냐. 그냥 엠마오로 내려가지 말라고 왜 예루살렘으로 뒤돌아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뜻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세상은 끝났다. 그걸 전파하는 거예요. 그걸 전하는 거예요. 그걸 전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예수님처럼 되지요. 예수님 복음 전파하다가 맞아 죽었잖아요.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고요. 마태복음 24장 43절에 보면 세례 요한 죽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한다 했어요. 제자들 뽑아서 복음 전파하지요. 사도행전 8장 35절 쭉 보게 되면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합니다. 스데반, 돌에 맞아 죽었잖아요. 그런데 스데반 입장에서는 돌에 맞아 죽든 어떻게 죽든 지금은 자기가 그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지금은 복음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면 쉬워요. 어떤 사람이 권투 시합을 이렇게 합니다. 영화같은데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I'll be back. 이런 거 나오잖아요. 다시 오께. 영화같은데 보게 되면 두사람이 돈내기 권투를 하죠. 두 사람 시합하는 게 나오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체육관에 구멍이 뚫리면서 눈부신 광채가 두 사람에게 환하게 비칠 때 두 사람이 지금 권투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는 게 의미가 없는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당신은 어느 행성에서 오셨습니까? UFO가 나타나서 광채를 비치니까. 이걸 고린도후서 4장에서 이걸 가지고 뭐냐? 이걸 가지고 복음의 광채라고 해요. 복음의 광채. 세상 신이 복음의 광채를 비치지 못하게 만든다. 광채가 나타나지 않을때는 사람들 하는 일이 뭡니까? 네가 잘났냐? 내가 잘났냐? 네가 쎄냐? 내가 쎄냐? 네가 수입이 많아? 내가 수입이 많아? 서로 권투질하고 있는 거예요. 주위에 사람들은 이겨라! 이겨라! 응원하고 있고. 누가 성공하는가? 누가 승진하는가? 누구 애가 공부 잘하는가? 싸움하고 있단 말이죠. 이게 일상이에요.

교회 가도 마찬가지고 누가 믿음 좋은가? 누가 헌금 많이 하는가 싸움질하겠지요. 그런데 이걸 일거에 제거하는게 뭡니까? 싸움을 멈추게 하는게 뭐에요? 천장에서 햇빛보다 더 빛난 광채가 비춰버리면 우리 지금 뭐하고 있지? 이렇게 되지요.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구약에도 있지만 신약에 있어요? 없어요? 있었지요. 누가복음 2장 크리스마스때 나오는 이야기잖아요. "하늘에서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쁨을 입은 사람 중에 평화로다" 천사가 환하게 조명빨 천사가 개입한 거예요. 천사를 만났다 하는 자체가 미친 인간이에요.

다시 이야기합니다. 인간들은 복음을 못 받아들입니다. 어느 인간도 복음을 못 받아들여요. 인간이 인간에게 말해서 복음을 못 받아들여요. 중간에 누가 관여해야되고 누가 개입해야 됩니까? 살아계신 주님이 관여해야돼요. 오늘 본문에 제자들에게 찾아온 것처럼.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미루고 있는 그 내용이 뭐냐? 찾아왔다. 주님 혼자 좋겠네. 부활했으니까. 그럼 우리는 뭐가 되지? 우리는 뭐가 돼요? 구경 잘했습니다 참 좋겠네요. 가자, 주님 부활했데. 주님 부활해서 가고 우리끼리 살면 되지. 어차피 우리는 부활되지도 못하는데 살아도 소용없지만 애들 봐서 우리도 열심히 살아야지. 애를 봐서. 소용도 없지만. 부활이 안되면 소용이 없는 거예요. 생명나무고 뭐고 길이 없는 거예요. 그럴 때 주님께서는 그 제자들을 어떻게 했습니까? 그냥 보냈습니까? 아니면 뭐를 주시기 위해서 따로 모았습니까? 사도행전 1장에서 그들을 따로 모았지요. 뭘 줬느냐 하면은 이걸 줬어요. 약속을 주었습니다. 약속을.

자, 오늘 강의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 나옵니다. 약속은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약속은 받는 게 아니에요. 약속은 일어나는 거예요. 구원은 내가 받는 게 아니고 구원은 일어나는 거예요. 왜냐하면 인간은 받았다가 맨날 내팽개쳤기 때문에. 그동안 율법 받고 뭐 받고 백날 받아 봤자 인간 손에 넘어간 이상은 말짱 다 깨집니다. 5년 전에 구원받았고 10년 전에 은혜 받았고 소용없습니다. 약속은 일어나는 거예요. 구원은 일어나는 것. 생명은 일어난다. 부활은 일어나는 것이다. 죄사함은 일어나는 것이다. 십자가 피 믿고 죄사함 받는게 아니고 죄사함부터 먼저 주고 죄사함 받은 자를 십자가로 데려가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믿을 능력도 없고 죄사함이 뭔지도 몰라요. 끝난 인간인데 뭘 알아듣겠어요. 아무도 못 알아들어요. 알아들어서 소지하겠습니다. 소지하면 안돼요 우리는. 우리는 이미 망가졌기 때문에 심판의 대상이기 때문에 뭘해도 우리는 외곡되어버려요. 우리 안에 들어오면. 신학을 하든 뭘 하든. 칼빈 신학을 하든 뭘 하든. 이건 소용없어요. 외곡된다니까요. 내것 가질려고 해요. 왜? 인간에게 뭐가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자아가 있기 때문에 그래요 자아가. 인간은 자아를 자기에서 뽑아낼 수가 없어요. 자아라는 게 없는데 마귀가 심어놨거든요. 아담이 무슨 자아가 있고 하와가 무슨 자아가 있어요. 숫자를 계산할 때 너와 내가 2이 아니고 1이 되는데 어떻게 자아가 있어요. 1이 된다면 너의 자아는 성립이 안되지요. 그러면 뭐냐? 그냥 우리가 되는 거죠. 우리가. 나와 네가 합해서 우리가 되는 게 아니고 그냥 우리예요. 한몸이 되어버린다니까요. 하나님이 허락한 자아는 두 사람이 한 몸 된 자아만 허락하는데 이건 나누어지면 자아 자체가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자아가 되죠. 그런데 악마는 나누어서 각자 자아를 집어넣어놨다니까요. 다시 우리가 될 수가 없어요. 부부는 한몸이라고요? 한몸이니까 결국 이혼할까 이런 소리 나오지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이 말기암 걸린 남편이 오늘 내일 병원에서 오늘 죽는다고 했는데 가보니까 살아있어. 오늘 내일 하는 환자. 여보 죽지 말고 살아있어야 돼. 당신에게 꼭 할 말이 있어. 해봐. 우리 이혼하자. 암 말기 환자하고 이혼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이게. 우리 이혼하고 각자 어떻게 잘 사는지 한번 보자. 그게 성립 됩니까? 모든 인간은 죽은 자인데 죽은 인간이 이혼이 무슨 의미가 있어 둘 다 죽은 자인데 둘 다 시체인데. 이혼 당하면 할수 없지. 그러나 그게 아니고 이혼하자는 말 자격 자체가 안돼요 우리는. 왜? 결혼한 적이 없어요. 동업했지 돈 떨어지면 이혼이에요. 동업했지요. 솔로라는 프로에 나와가지고 실례지만 상철씨 하시는 일이 뭡니까? 15년째 놀고있습니다. 그걸 누가 선택하겠습니까? 삼성에 다니고 있습니다 뭐 이래야 좀 관심있지. 나 15년째 놉니다 지금. 엄마집에 얹혀 삽니다. 이걸 누가 결혼해요. 여자도 마찬가지에요. 전부 다 자기 자랑할라고 나온 거예요. 자아 자랑이요. 자아가 있으니까 동네 귀신 다 와요. 왜? 자아는 마귀가 집어넣었잖아요. 귀신은 마귀의 졸개죠. 자아가 있으니까 죽은 인간이 사는 척 하니까 동네 귀신 다 달려들어요. 여러분 벌이 어디에 많이 달려들지요? 뭘 발라놓으면 벌이 달려듭니까? 꿀 발라놓을 때. 벌이 왜 오지? 자아한테 꿀 발라놔서. 꿀 발랐더냐? 한번 먹어보자 봉숙아. 왜 집에 갈라고 하니 봉숙아. 있지요. 꿀 발라 놨더냐? 한번 먹어보자. 인간은 자꾸 꿀 발라놓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목사님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듭니까? 꿀 발라놨거든요. 10분 쉽시다.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6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8,297 자유게시판 37강-히브리서 7장 20-22절(맹세와 율법)241013 - 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24-10-13
8,296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예수님의 부활 / 241013 - 최고관리자 24-10-13
8,295 자유게시판 10월 부산 성경공부 안내 시편 최고관리자 24-10-13
8,294 자유게시판 19강-말라기 4장 2-3절(주의 날개) 241009 - 이 근호 목사 말라기 최고관리자 24-10-10
8,293 자유게시판 483강-YouTube강의(기초 예레미야애가 3:26)20241008-이 근호 목사 예레미야애가 최고관리자 24-10-09
8,292 자유게시판 482강-YouTube강의(오류 발생 요나 3:8)20241008-이 근호 목사 요나 최고관리자 24-10-09
8,291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24장 49절 (소유성과 성령) 240924b-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4-10-07
8,290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24장 49절 (소유성과 성령) 240924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4-10-07
8,289 자유게시판 123강-예레미야 29장 1~4절(새로 생긴 열매)241006-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4-10-06
8,288 자유게시판 36강-히브리서 7장 16-19절(빈형식에 담긴 영생)241006 - 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24-10-06
8,287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선 넘은 영생 / 241006 - 최고관리자 24-10-06
8,286 자유게시판 거짓 - 최고관리자 24-10-06
8,285 자유게시판 20241004b 울산강의-역대기하(7강) 8장 12절 : 번제로 통치 역대하 최고관리자 24-10-06
8,284 자유게시판 20241004a 울산강의-역대기하(7강) 8장 12절 : 번제로 통치 역대하 최고관리자 24-10-06
8,283 자유게시판 18강-말라기 4장 1절(심판과 피) 241002 - 이 근호 목사 말라기 최고관리자 24-10-04
8,282 자유게시판 대전-십자가를 아십니까(31강) 로마서7:9(십자가 반복) 20240930b(강의: 이근호 목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24-10-01
8,281 자유게시판 122강-예레미야 28장 1~4절(선지자의 맞은 편)240929-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4-09-29
8,280 자유게시판 35강-히브리서 7장 11-15절(존재와 기능)240929 - 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24-09-29
8,279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주님과 함께 / 240929 - 최고관리자 24-09-29
8,278 자유게시판 광주강의20240927b 로마서 8장 30절(정도와 본성의 차이)-이 근호 목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24-09-29
8,277 자유게시판 광주강의20240927a 로마서 8장 30절(정도와 본성의 차이)-이 근호 목사 (그림 추가되었습니다) 로마서 최고관리자 24-09-29
8,276 자유게시판 481강-YouTube강의(싫음과 좋음 사무엘상 22:17)20240924-이 근호 목사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24-09-25
8,275 자유게시판 480강-YouTube강의(죽음 그 이후 민수기 16:46)20240924-이 근호 목사 민수기 최고관리자 24-09-25
8,274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24장 37절 (인간 끝) 240903b-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4-09-23
열람 ➜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24장 37절 (인간 끝) 240903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4-09-23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